한-미 FTA ‘투자자-국가 제소’ 미 요구안 수용
미 투자자에만 유리…협상 실효성 의문

송창석 기자


» 투자자-국가간 분쟁의 국제중재절차에 대한 한국의 입장 변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 제소 제도’와 관련해, 우리 쪽 협상단이 대부분 미국 쪽 요구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정부의 공공정책에 따른 투자자의 불이익은 국내 사법부를 통해서만 제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우리 쪽 요구가 사실상 철회되고 투자자가 곧바로 민간 국제분쟁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 ‘사법 주권’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단의 고위관계자는 10일 “협정 당사국의 공공정책 때문에 투자자의 재산권이 침해될 경우에는 국제분쟁중재기구 대신 투자 대상국의 사법부를 통해서만 제소가 가능하도록 하자고 요구해 왔으나, 미국이 거부해 관철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공정책에 따른 간접적인 투자자 재산권 침해(간접수용) 가운데 제소 대상에서 제외하는 분야로 보건·환경·안전 외에 추가로 부동산 정책을 넣으려 했으나 미국이 거부해 ‘부동산가격 안정정책’으로 구체화해 다시 제시했다”며 “하지만 미국은 이것도 안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재 판정의 단심제 보완 여부도 ‘협정 발효 뒤 3년 안에 항소기구 설립을 검토한다’는 원칙만 명시한 미국쪽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협상단은 또 국제분쟁중재기구의 재판과 관련 문서를 공개하고 시민단체·전문가단체 등 제3자의 의견 제출을 인정하자는 미국의 요구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이대로 협상이 타결될 경우 정부의 공공정책은 물론 입법·사법권마저 제약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예를 들어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에서 공공정책이 흔들린 사례를 보면, 캐나다의 뉴브런즈윅 지방정부가 지난 2004년 치솟는 보험료를 덜고자 ‘공공 자동차보험 제도’를 도입하려다가 미국 보험회사들의 제소 움직임이 있자 도입을 포기했다.

정부는 이 제도가 한국의 투자자도 동일하게 보호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에프티에이가 한국서는 법률에 해당되지만 미국은 행정협정에 불과해 주법보다 하위에 있는 등 에프티에이의 구속력이 훨씬 떨어진다”면서 “선진국인 캐나다와는 달리 멕시코의 기업들이 한번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제소한 적이 없는 점에서 보듯 국력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런 입장 변화의 특징은 미국의 ‘투자협정 표준안(BIT 2004)’에 있는 문구들은 그대로 합의되고 표준안에 없는 문구들은 거부당했다는 점이다. 강대국인 미국마저 북미자유무역협정의 경험을 통해 국제분쟁중재기구가 행정부의 공공정책이나 입법·사법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2004년에 이를 보완한 투자협정 표준안을 만들었다. 이때 △재판 및 관련 서류 공개 △제3자 의견제출 △협정 발효 뒤 3년 내 항소심 검토는 모두 표준안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용의 국제중재 배제나 부동산 정책 제소 배제는 표준안에 없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과 반덤핑 관세 등 무역보복 절차 개선, 전문직 일시 입국 비자 확보 등 한국의 핵심 요구들이 사실상 거부당한 상황에서 투자자-정부 제소 절차마저 미국 안대로 간다면 에프티에이의 실효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2007-01-11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