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농산물 품목 235→100여개로




[한겨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7차 협상에서 우리 쪽 협상단이 국내 농산물시장 개방폭을 더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수정안을 미국 쪽에 제시했다. 또 국내 금융정보를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가져가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금융정보 가공의 국외위탁’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7차 협상 이틀째인 12일(현지시간) 김원경 한-미 에프티에이기획단 총괄과장은 “지난 6차 협상 때까지 우리 쪽에서 민감품목으로 분류한 농산물 235개 가운데 민감도가 덜한 품목을 빼고 ‘개방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초민감품목’으로 100여개를 골라 미국 쪽에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품목수는 세관의 품목분류기준(HS코드)에 따른 수치여서 과장된 면이 있고 쌀·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사과·감귤·오렌지 등이 초민감품목에 들어간다“면서 “고추·마늘·양파는 여전히 초민감품목으로 분류했지만 미국은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즉 개방을 하더라도 미국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거나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기 때문에 국내 농산물시장에 별 영향이 없다는 뜻으로, 초민감품목수를 더 줄일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초민감품목은 우리 농촌에 큰 타격이 우려돼 쌀처럼 아예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관세를 부과하되 수입물량을 제한하는 쿼터제(TRQ)로 관리, 국내 시장상황에 따라 특별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하는 긴급수입제한조처(세이프가드) 발동, 계절관세(과일의 경우 해당) 등 여러 안전장치를 두는 품목들이다. 정부는 이를 일정 기한 내 관세철폐를 하지 않는 ‘예외적 취급 품목’이라고도 한다.

모두 1531개 품목의 관세철폐 여부와 방식을 다루는 농업분야 협상에서 우리 쪽 협상단은 이런 예외취급 품목수를 처음에는 284개(2006년 9월 미국 시애틀 3차협상)로 제시했다가, ‘농산물 시장의 예외없는 관세철폐’를 주장하는 미국 쪽 요구에 밀려 한달만인 10월 4차 제주협상에서 235개로 줄였고 이번에 다시 절반 이상 더 줄인 것이다.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에서 예외품목 농산물이 100여개로 확정되면,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맺은 자유무역협정 가운데 가장 큰 폭의 농산물 시장 개방이 이뤄진다. 역대 에프티에이에서 농산물의 예외품목수는 한-칠레 에프티에이가 413개, 한-싱가포르 484개, 한-유럽자유무역연합(EFTA) 956개 등이다.

하지만 미국은 예외품목수를 대폭 줄인 수정안마저도 만족하지 않고 있다. 배종하 협상단 농업분과장은 이날 협상 뒤 “입장차 큰 품목들이 어떻게 해결될지 그림이 안그려진다”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농산물 분야 협상은, 미국 쪽에서 수세적인 섬유분야 협상과 ‘빅딜’(맞거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섬유에서 미국이 얼마만큼 양보하느냐에 따라 추가로 개방대상 품목이 더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농협중앙회의 황형성 통상협력팀장은 “양파가 4년 전 미국에서 쿼터제로 수입된 적이 있으며 지금은 중국산 저가에 밀려 경쟁력이 밀리지만 에프티에이로 미국산에 대한 관세가 낮춰지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면서 “고추·마늘도 미국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고 양보하는 경우 농업이 강한 중국이나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때 난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협상단은 또 산업은행의 국책금융기관 특수성을 인정받는 대신 금융정보 처리의 국외 위탁을 허용하기로 했다. 신제윤 금융서비스분과장은 “미국 쪽이 산업은행의 협정 적용 예외를 인정하는 카드를 내놓으면서 신용평가서비스의 국경간 거래 허용과 금융정보 처리의 국외 위탁을 조건으로 걸었다”면서 “금융정보의 국외 위탁은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정보 처리의 국외위탁은, 미국 금융기관이 국내 진출해 있는 지점이나 사무소에서 알게된 고객 정보를 미국 본사나 제3국에서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게하는 제도이다. 우리 기업들의 대출 정보 등이 미국 금융기관 본사에 들어가게 되면, 미국 금융기관은 우리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자문 등에 활용할 수 있고, 개인고객 정보와 관련해서는 사생활 침해의 우려도 있다. 또 이런 중요한 금융정보와 업무처리가 다른 나라에서 이뤄짐으로써,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국내 금융서비스의 발전이나 고용 창출 등의 효과도 퇴색된다. 국회 한-미 에프티에이특별위원회 소속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금융정보 처리를 국외 위탁키로 허용함에 따라 한국 국민의 개인정보와 기업 비밀이 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갈 위험이 크다”며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한-미 에프티에이에 반대하는 원정시위대는 미국 교포, 현지단체 회원 등과 함께 협상장인 워싱턴 코트호텔 앞에서 양국 협상 대표와 면담을 요구하며 이틀째 시위를 벌였다. 50여명의 시위대는 이날 낮 호텔로 진입을 시도하며 2시간 가량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워싱턴/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김수헌 기자 miverv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