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창간 2006년 4월 26일
 
2007년 10월 10일 (수)
제 74 호
발행처 : 인권운동사랑방
편집인 : 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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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보자 폴짝] 받고싶지 않은 입장권

생체여권이라고 들어봤니?

누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도서관 문 앞에 있던 기계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아까는 좋아졌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기계들이 좀 차가운 괴물 같습니다. 정보를 먹고 사는 괴물.

[인권교육, 날다] 파업 현장에서 펼쳐진 즐거운 연대

기아차비정규지회 화성 공장을 찾아서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 비정규직 철폐를 향해

[내 말 좀 들어봐] 공고생이라고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요?

땅값 욕심에 폐교될 뻔했던 동호공고 최효경 학생 이야기

너희들이 잘못됐다, 너희들이 잘해라 하기 전에, 같은 대우를 해주면 그만큼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우리도 다 같은 학생이니까요.

[박병상의 인권이야기] 내일을 살리는 공정한 교역

가난한 소비자로 전락한 노동자도 찾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양판점은 그렇게 가난한 노동자와 소비자를 양산한다. 가난한 노동자와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자본은 누구의 몸에 빨대를 꽂는 것인가.

복덕방에서 왁자지껄 터져 나온 주거권운동

[기획] 사회운동포럼이 낳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 (6) 살만한 집을 구하는 홈리스들을 위한 복덕방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뛰쳐나오고 싶은 공간에 있는 사람은 홈리스”라는 한 참가자의 이야기는 긴 울림을 준다. 왜 돈이 없으면 안되는지, 우리는 돈이 아닌 무엇으로 공간을 확보할 것인지...

"사회운동의 대안이념과 변혁의 전망, 실천할 준비는 되어있는가?"

[기획] 사회운동포럼이 낳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 (7) 대토론회 1부 - 사회운동의 대안이념과 전망

사회운동을 평가하고 전망을 그리는 데 있어서 반자본 운동으로만 귀결될 수 없는 다양한 의제들과 ‘노동자’로 한정되어 있던 ‘사회변혁의 주체’에 대한...

“운동하는데 왜 이리 허전하냐”

[기획] 사회운동포럼이 낳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 (8) 대토론회 2부 - 사회운동의 소통과 연대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투쟁 현장에 나타나 자기 조직 깃발부터 앞세우고 투쟁의 성과를 한 조직의 회원 불리기로 낚아채려는 욕심, 이제 막 투쟁을 시작한 민중들이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운동을 개척해나갈 수 있도록...

정치개입 근절을 넘어 정보활동 전반에 대한 통제강화로!

[기획]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5)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안

엄격한 비밀유지 의무 아래 국정원의 준법성과 책임성을 상시적으로 감시, 점검, 보완하는 전문적인 독립 국가기관을 둬야 한다는 것이 이 방면 선진국들의 공통교훈이다.

폭주하는 개인정보 유출과 늘어나는 감시…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가?

[기획]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6)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안

유럽연합 가입국을 비롯한 해외 많은 국가들이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충실히 반영한 개인정보보호법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독립적인’ 개인정보보호 감독기구의 존재이다.

좁은 대로 참고 살래? 비싼 대로 견디면서 살래?

주거실태조사를 겉치레로 만들어버리는 뉴타운계획

강남북 균형개발을 외치며 낙후한 주거환경을 바꾸겠다고 시작한 뉴타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팔아 개발업자를 배불리면서 도시 전체의 집값을 상승시키는 것이 바로 뉴타운의 실체다.

“입주권 받을 수 있다면 임대주택 들어가고 싶어요”

세입자 권리 무시하고 조합 이익 편승하는 성북구청

개발의 명분으로 주거 생활의 질 향상이 내세워져 왔지만, 세입자들은 ‘소유하지 못한 죄’로 그 과정과 결과에서 늘 배제되어 왔다. 개발로 발생된 이익은 고스란히 소유주와 건설 기업 수중에 들어갔던 것.

너무나, 너무나 친절한(?) 공무원!!

주민등록 직권말소에 얽힌 황당 체험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에이 별거 아니야”라며 그냥 넘기거나, “어쩔 수 없지”라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맞서 인권을 지키려는 ‘까칠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