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어제 부산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철밥통들에게...


10년전이면 어땠을까요.
철도에 다닌다하면 그냥 다 철도청 직원인 줄 알았던 그 시절에
누군가들이 한꺼번에 400명쯤 짤렸다면 그랬다면 우린 어땠을까요.
그때도 KTX가 저렇게 하루도 멈추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달릴 수 있었을까요.


10년전이면 어땠을까요.
정규직이라는 사람들마저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하루하루 가슴 졸이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군가 911일을 저러고 있도록 내버려 두었을까요.
한번 입사하면 사직서를 쓰기 전까진 그냥 그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는 게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10년전쯤이었다면 우린 내 밥그릇보다는 정의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어용노조 수십년의 굴레를 마침내 벗어던지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고
감격에 겨웠던 10년전쯤이었다면 우린 당연히 억울한 자들과 함께 목이 쉬고
그들과 함께 거리에 서지 않았을까요.


정규직 비정규직이 따로 없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 같은 직원이고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대우를 받는 게 상식이었던 그때였다면 차별에 함께 저항하는 것도
상식이지 않았을까요.


굳이 정의를 소리높여 외치지 않더라도 손짓만으로도 기차가 멈추고
눈빛만으로도 한곳에 모일 수 있었던 그때였다면
우린 지금보단 마음이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요.


같은 일터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수백명이 짤리는 걸 막아낼 수 있었다면
우리가 일하는 이 삶의 터전은 지금보단 인간적이지 않았을까요.
노동자는 하나다 굳이 목청 높이지 않더라도 10년전이었다면
그들만 짤리고 그들만 싸우고 그들끼리 끌려가고 그들끼리만 울어야 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비정규직은 생존을 유린당하고 정규직은 용기를 유린당한 10년.
비정규직은 목숨이 흔들리고 정규직은 양심이 흔들리던 10년.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정규직은 영혼을 잃어버린 10년.
비정규직은 악만 남고 정규직은 눈치만 남은 10년.


정규직은 철로에서 죽어가고 비정규직은 천막에서 시들어 가야 했던
그 세월은 우리 모두에게 상처였습니다.
철비철비 철철비는 없어졌다는데도 우린 왜 행복하질 않은걸까요.
신이 내린 직장 철밥통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이 불안감은 도대체 뭘까요.
넘어진 비정규직을 우리가 일으켜 세워 줬다면 우리가 넘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울고 있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우리가 닦아줬다면 우리가 울게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올림픽 성화가 피워오르던 날 이땅 공영방송엔 공권력이 투입됐습니다.
누군가 금메달을 따서 시상대에 올라간 날 기륭전자 옥상엔 관이 올라갔습니다.
4년을 피눈물 나게 연습하면 금메달도 따는데 4년째 피눈물을 흘리는
기륭전자 노동자는 왜 시시각각 임종을 맞아야 하는 겁니까.
금메달 13개를 딴 조국은 이제 자랑스런 선진국이 됐다는데 비정규직임이
부끄러운 860만 의 노동자는 어느 조국의 백성입니까.

...


연대가 아닌 펀드가 우릴 지켜줄 거라는 믿음과 집에서 살고 싶은 게 아니라
부동산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 이명박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지난 밤 다다를 수 없는 욕망의 빈자리를 과음으로 채워넣고 그 욕망의
정직한 토사물이 이명박입니다.
밤의 욕망은 유혹적이나 그 욕망이 토해놓은 토사물을 아침에 확인하는 일은
이렇게 곤혼스럽습니다.
촛불들이 지켰던 광장을 올림픽의 환호성이 뒤덮으면서 올림픽의 진정한 승자는
박태환도 아니고 장미란도 아니고 이승엽도 아닌 이명박입니다.

잔칫집에 든 도둑처럼 올림픽을 틈타 공영방송을 훔쳐 간 이명박은 이제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부칠 겁니다.
만사는 형님으로 통한다는 만사형통의 형님께서 고문으로 있는 코오롱 그룹은
이미 코오롱워터라는 회사까지 차려놓고 수돗물 민영화를 진행하고 있고
매출 1조원에 영업이익만 4606억원의 알짜배기 인천공항은 그 아들을 위한
민영화랍니다.
그 거대한 인천공항에 정규직은 869명에 불과하고 38개 업체에
6천명이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하청화됐습니다.
민영화라는 이름은 그 869명마저 비정규직이 된다는 말입니다.
1인 승무를 막아내지 못했던 지하철은 공사로 넘어가는 걸 막아내지 못했고
매표소가 용역이 되는 걸 막아내지 못했고 그렇게 용역으로 넘어간 매표소는
결국 폐쇄됐습니다.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자를 사람이 없다고 믿었던 정규직들을 향해
지금은 서비스지원단이란 이름의 퇴출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퇴출후보들로 구성된 서울시 현장시정추진단에 배치받은 공무원은
또 한사람이 죽었습니다. KTX,새마을여승무원 동지들의 투쟁이 패배하면
철도공사의 머잖은 장래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들 대학보내서 내처럼 안살게 하겠다는 걸 삶의 목표로 삼고
인생에 유일한 낙이 잔업이었던 한진중공업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몇 년전 이 아저씨 명퇴로 짤리고 결국 아들이랑 같은 하청공장에 다니게 되면서
이제 인생에 유일한 낙이 술 마시는 게 되어버렸답니다.

2003년. 수십미터 크레인 위를 혼자 올라갔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은 비처럼,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처럼, 미치도록 하늘이
푸르른 날은 한점 구름처럼 129일을 그 자리에 찍혀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밑에서 올려다 보기만 했던 사람들은 그 까마득한 높이를 잘 몰랐습니다.
땅에 발 딛고 선 사람들은 바람이 그렇게 무섭다는 것도 잘 몰랐습니다.
비를 피할 곳이 있었던 사람들은 비가 사람의 영혼까지 적실 수 있다는 것도
그땐 잘 몰랐습니다.


그 꼭대기까지 올라간 건 투쟁전술 중에 하나가 아니라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목숨 한줌씩 내려놓는 일이라는 걸 그가 밟아 올라간 계단을 뒤늦게 밟아보고야
알았습니다.
그 까마득한 꼭대기는 땅보다는 천국이 훨씬 가까운 거리라는 것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그가 섰던 자리에 서 보고야 거기가 얼마나 아득한 높이였는지
129일을 거기 그렇게 매달려 있었다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가 지고 간 절망의 부피가 얼마만한 것이었는지를 그가 떠나고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때는 그 엄청난 절망의 무게를 그가 다 짊어지고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짊어지고 갔다고 생각한 절망이 산자의 몫으로 남는 다는 걸
깨닫게 해준 건 세월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지는 게 아니라 선명해지는 것도 있다는 걸 시시각각
일러주는 것도 세월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무거워지는 짐도 있다는 걸
영악스럽게 깨우쳐주는 것도 세월이었습니다.


지회장의 부음을 듣고 달려 온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어도
크레인에서 끄집어 내렸어야 했다고 엉엉 울었습니다.
잠긴 크레인의 문을 부수고라도 끌어내렸어야 했다고 자기의 멱살을 부여잡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우린 압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크레인에 올라간 사람을 끄집어 내리는 일이 아니라
조합원들을 만나고 설득해서 크레인 밑에 다시 모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김주익.그의 목숨이 회장님의 손안이 아니라
우리의 손안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재규형마저 보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을 땐 후회마저 사치가 된다는 걸 알려준 것도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김소연은 김주익이 되어가고 오미선은 김소연이 되어갑니다.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말은 정규직의 것을 나누자는 말이 아니라
자본의 것을 나누자는 말이었습니다.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말은 그래야만 우리가 강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말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천막농성을 하고 노숙농성을 하고 끌려가고 짓밟히고 단식을 하고
어딘가 꼭대기로 기어오르는 일이 아니라 저들도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10년전에 우리가 내밀었던 손을 저들이 간절히 내밀고 있는데 우리가
그 손을 잡아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10년전에 우리가 외쳤던 절규를 저들이 저토록 목놓아 외치는데 그 외침을
우리가 들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추석명절에 고향에도 못가시는 철도동지 여러분.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부모님을 명절 때도 찾아뵙지 못하는 철밥통여러분.
오미선,정미정,장희천,하현아,황상길 저들을 부디 잘 지켜주십시오.


출처 :기륭릴레이동조단식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