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 7,8월호 기본소득 관련 입장과 정정

1. 기본소득 논의의 성격

 

- 최근 일부 사회운동 조직과 연구자들 사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논의를 주도하는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의 폭넓은 정의와 도입 취지 면에서는 공통의 지반이 있지만, 강조점과 경제적, 철학적 배경, 정치적 지향은 매우 다양해 보인다.

 

- 생산과 분배, 노동과 여가 등에 대한 다소 유토피아적 대안사회의 맥락을 강조하는 흐름도 있고,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강조하며, 사회적 총산출이 감소되지 않으면서(노동유인을 일정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개인의 필요를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점을 탐색하는 연구의 흐름도 있다. 그리고 복지국가가 처한 이중의 딜레마(재정위기, 신자유주의에 의한 근로연계복지의 강화)를 넘어서기 위한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입장도 있다.

 

- 그만큼 그에 대한 비판과 반론의 논지도 다양하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넘어서기 위한 이행의 프로그램으로서의 부적합성을 제기하는 논자들이 있고,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을 형성하는 주체와 경로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논자도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급여 서비스로 환원되지 않는 교육, 의료, 사회서비스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사회복지의 확대-재편이라는 측면에서의 공백, 난점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현실가능성 문제 역시 주요한 쟁점 중의 하나로 존재한다.

 

- 또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논자들 내에서 기본소득 ‘담론’이 출현한 역사적 전통과 기원을 추적하는 논의들 역시 매우 다양해 보인다. 길게는 16세기 토마스 모어, 19세기 유토피아 사회주의자인 샤를 푸리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민주노총『기본소득을 위하여』). 1980년대 이후의 판 더 벤, 빠레이스, 네그리 등으로 이어져온 논의들에 대해서는 공통의 해석들이 존재하는 듯하다.

 

- 그런데 이렇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한다는’ 기본 아이디어만을 놓고 본다면, 역사적 논의의 궤적 안에는 ‘우파적 전통’이라는 것도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부유세를 통해 모든 가족이 5천 달러의 재산을 가질 수 있게 하자는 Share Our Wealth 운동을 전개한 대공황 당시 미국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롱이나, 밀턴 프리드만의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주장, 기본소득 논의를 대중적 담론화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 독일의 자본가 베르너의 존재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의 제안은 보다 급진적인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는 인민주의 운동과 저소득층의 노동유인을 강화하기 위한 방책 등 철학적․경제적 배경은 상이하지만, 일반적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볼 수 있다.

 

- 기본소득 논의가 내재하고 있는 쟁점들, 예를 들면 그 권리의 성격, 실현가능 경로와 현실운동의 힘, 이행의 경로와 대안사회의 상과 원리 등은 어느 하나 간단한 문제들이 아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논자들 내에서조차도 그에 대한 견해는 매우 다양하며, 기본소득이 제기되는 층위 역시 매우 불균등하다. 그 때문인지 기본소득을 둘러싼 최근 논의에서 '기본취지'에 동의한다는 입장이 현실운동에서 가지는 의미는 매우 불명확해 보인다. '노동과 연계되지 않은 소득을 보장하라', 혹은 '보편적 복지의 확대'라는 담론 수준의 공감대 형성, 확대가 논쟁의 주된 수렴점인 듯하다.

 

-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제기한 우파적 전통에서는 정치적 담론의 측면에서 대중인기영합주의적(인민주의적) 경향성, 그리고 현실제도 측면에서 '누구에게도 위협적일 만큼 손해가 되지 않고도 실현 가능하다'는 논리가 함께 등장하곤 했다. 이에 비추어 우리 운동의 현실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양상은 숙고해 볼 문제가 많이 있다.

 

2. 현실의 맹아?

 

-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들이 그 현실의 맹아로 주로 제시하는 것은 브라질 룰라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빈곤가구생계지원프로그램(Bolsa Família)’과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오미타라라는 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일종의 시범사업으로서의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젝트’ 등이다.

 

- 2002년 집권 이후 룰라 노동당 정부는 전체인구의 1/3에 이르는 5천만 명 가량의 극빈층(하루 1달러 미만의 소득자)의 소득을 향상시킬 것을 목적으로 빈곤가구생계지원프로그램(Bolsa Família)을 도입하였다. Bolsa Família는 기존의 현금급여성 사회복지제도 대부분을 통합하여 빈곤가구에 지급하는 현금이전 프로그램인데, 2003년 시행 첫해 360만 가구에 34억 헤알(약 18억 달러)를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2006년 말까지 약 1,100만가구 4,400만 명에게 57억 헤알(약 35억 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세계은행). 이 제도의 시행으로 브라질에서 2003년에서 2005년 사이 빈곤율이 28%에서 23%로 낮아지는 등 빈곤감축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브라질 정부는 2010년 급여대상자를 전국민으로 확대할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러한 제도를 과연 기본소득의 맹아적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있어 몇 가지 쟁점이 존재한다. Bolsa Família는 현재 세계적으로 시행 중인 저소득층 생계지원 제도들 가운데 급여대상범위가 가장 넓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에 비해 개인당 지급되는 급여액은 불과 30달러 안팎에 불과하다. 이 제도가 시행되는 동안 소요된 재정은 제도시행 초기부터 2006년까지 급여수급자의 증가를 반영하여 정부 지출의 1.1~2.5%, 브라질 GDP의 0.2~0.3% 수준이다(약 162만 명이 수급대상인 2009 한국 기초법 예산은 정부예산 대비 약 1.16%).

 

- 낮은 급여수준을 감안하더라도 대상자 규모에 비해 정부 재정지출이 매우 적은 비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 이 제도를 구상하던 당시 룰라 정부는 조세개혁, 투기자본에 대한 과세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브라질 내 부유층의 반대에 부딪히는 한편, 룰라 정부 스스로의 노선 전환에 의해 상당히 변질되었다.

 

- 이 제도는 유사한 목적을 가지는 '기아제로 프로그램(fome zero)' 등과 함께 막대한 재정이 투여될 수 밖에 없는데, 이 재정은 정부 예산을 일부분으로 하여, 기업들의 후원금과 세계은행, 세계식량농업기구 등 국제기구들의 구호금으로 충당되었다. 빈국들의 빈곤감축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해온 세계은행은 '꼭 필요한 곳에 재정을 투입하는' 재정효율성 면에서, 그리고 가시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확대해 나가는 효과성 면에서 브라질의 Bolsa Família를 매우 모범적인 빈곤감축의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사회운동의 일부에서는 이 같은 정책들이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수용한 룰라 정부의 빈곤층들에 대한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해왔다.

 

- 나미비아 오미타라의 사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사업은 종교기관과 서구의 NGO들이 주축이 되어 계획되고 자금이 조달되는 빈곤감축을 위한 일시적인 실험적 사업이다. 극빈층이 대부분인 이 곳 역시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빈민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빈곤이 감축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의 지속가능성은 과연 누가 담보할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나미비아의 경제력과 정부의 정책수단들을 통해 자립적인 방식으로 이것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주요 기조는 근로연계복지를 강화하는 것인데, 이러한 정책기조는극빈층에 대한 소득지원제도들을 확대(최소한 ‘경향적으로’ 축소되지는 않는다)하는 것과 병행되어 왔다. 고용파괴적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진행되는 가운데 바닥 수준의 일자리의 확대조차도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최저의 침전지’라 할 수 있는 실업자와 극빈층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 구축은 신자유주의 정책노선과 배타적이지 않다. 실제 세계은행, IMF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절대빈곤이 극심한 제3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시행한 빈곤감축을 위한 각종 정책실험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면화되는 시기에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었다. 또한 많은 국제 NGO들이 기업과 국제기구들로부터 제공되는 기금으로 이와 같은 사업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 브라질과 나미비아의 실험들이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의 빈곤감축 계획으로부터 얼마만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 또한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핵심 요소들과 얼마나 차별화되어 있는 것일까?

 

 

3. ‘빈곤층 소득보장 정책의 쟁점과 대응과제’ 원고에 대한 입장과 정정

 

- 이 글은 경제위기 하에서 빈곤층 소득보장정책의 쟁점과 요구에 관해 입장을 밝힌 글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을 중심으로 현행 빈곤층 소득보장제도의 쟁점을 정리하고, 경제위기 하 빈곤층 소득보장 요구를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재 제기되고 있는 요구들 중 기본소득에 관련한 내용을 간략하게 검토하였다. 한정된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잘못 서술된 부분이 있어 정정한다. 그 외 몇 부분도 약간 보완하고 정정했다.

 

- 기본소득 정책을 운동 전략으로 적극 수용하는 경우 특정 기본소득 모델에 대한 정해진 입장과 지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위의 1,2에서 언급했다시피 기본소득 주장의 이론적, 경제적 배경이나 지향은 무척 다양하다. 현재 브라질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유사 제도에도 여러 쟁점이 있다.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모델’이 시행된 사례는 없으며, 오히려 마이너스 소득세 구상, 근로장려세제(EITC) 등 기본소득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최소한의 소득보장 및 노동유인 강화를 골자로 신자유주의에 수용된 소득보장 정책들이 존재한다. 빈곤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위험 관리 방안, 그리고 유연한 노동시장 형성 방안으로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 흐름에서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수용, 실현된 것이다.

 

-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이 빈곤층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폭넓게 반영한 아이디어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기본소득을 서술했다. 또한 빈곤층 소득보장 방안에 있어 기본소득이 현재의 계급역관계나 신자유주의적 정책 흐름과 상관없이 한국 복지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방향으로 관철되기는 어려우며, 한국에도 최근 도입된 근로장려세제(EITC)와 같이 오히려 빈곤 관리를 위한 정책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정]

현 시기 소득보장정책(기본생활보장)에 관한 운동세력의 요구와 쟁점

 

경제위기로 인한 빈곤문제의 확산에 대해 많은 요구가 제출되었다... 진보신당은 2008년 12월 <1,008만 명 기본생활 보장을 위한 3대 개선안>을 발표...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총 38조 6,110억 원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2월『기본소득을 위하여』(강남훈·곽노완·이수봉 지음)를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0~39세는 1인당 연 400만 원, 40~54세는 연 600만 원, 55~64세는 연 800만 원, 65세 이상은 연 900만 원을 지급하는 연간 290조 원 예산의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했다.(보완) 사회당도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제출했다.

 

경제위기 하에서 빈곤의 심화가 사회복지 확대를 공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계기이므로 과감한 재정 확충과 제도 신설을 요구하자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경제위기 하에서 재정 확충은 제약이 큰 문제인데다 정부 재정기조를 바꾸는 것 또한 운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요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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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소득 어떻게 볼 것인가

 

대량실업이 자본주의의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문제이자 결과라는 분석에서부터 ‘일하지 않는 자의 먹을 권리’,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소득’이 1980년대 이후 유럽 좌파의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었다. 기본소득 전략은 완전고용의 불가능성, 수준 낮은 공공부조와 실업급여의 한계, 강제노동 등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으며 노동연계복지의 강화 속에서 노동과 소득을 분리시키는 전략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실제 기본소득 정책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활용되고 시행되었다. 기존의 복지제도 대부분을 철폐하고 대신 일정한 소득한계를 정해 그 이하의 소득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복지국가의 비효율과 재정적자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제기되기도 하였고, 실제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으로 수렴되어 근로장려세제 등의 유사한 제도로 관철되기도 하였다.(수정 보완)

(‘독일이 관련해 가장 많은 논의와 활동이 벌어졌고, 또 신자유주의자에 의해 유사한 제도가 도입된 사례다.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노동거부의 인식을 전제한다.’ ->삭제)

 

이렇게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 또는 복지제도 개혁을 통한 보편적 복지 달성 전략, 나아가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복지제도를 개혁하고 노동유연화를 보완하는 전략 등 여러 층위로 제기되고 있다. 기본소득 요구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과 현실적 수용 양태, 그리고 현재의 계급역관계 등에 비추어 볼 때, 기본소득을 현 위기의 획기적 대안으로 소개하는 운동 흐름 대해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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