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어와 봤는데
썰렁합니다..
왜 그럴까요?
원래 그랬나?

여성의 나이와 관련된 재밌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특히 남성)에게 더이상 '어린 여자'로 취급되지 않아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편입니다
가끔 어리게 보는 경우엔 당당하게 나이를 밝히면서
경험과 나이에서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죠
지금도 누군가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경우엔
과민할 정도로 반응하게 됩니다
'어린 여자'라는 것만으로 의견이 무시되었던 경험은
그만큼 쓰라린 것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때론 저 역시 나이를 내세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종종 공손하게 무시하는 경우가 있죠
[언니네]에 실린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액션나우] 나이는 주소에 불과하다
글. 땐사(indisec@dreamwiz.com) / 언니네 운영진
1. 관계와 나이 Ageism에 대한 성찰

1) 나이를 묻지 않기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대개 나이를 먼저 묻게 된다. 왜 궁금할까? 그것은 우리의 관계맺음에서 ‘나이’가 첫 번째 질서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존댓말을 쓸지, 반말을 쓸지에 대한 판단이 시작되고, 알게 모르게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는 조금의 존중을 더 보태 주어야 할 듯도 하고....술자리에서 술값이 부족해지면 자연스레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던지...
나이를 묻지 않고 관계를 시작하게 되면 처음에는 조금 갑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마치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느낌도 들고... 그러나 그것도 훈련이 될 수 있다. 처음 만남에서부터 그 항목을 지우고, 그냥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는 시도를 해보면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알아야 할 정말 중요한 것. ‘어떤 색깔을 가진 사람인지’가 더 잘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의사소통의 저 밑에 흐르는 나이로 인한 질서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운, 그래서 조금은 더 민주적인 의사소통 방식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2) 나이는 단지 주소일 뿐이다.

물론 나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다는 뜻은 아니다. 10년을 더 산 사람이라면 그 만큼의 시간동안 무엇이라도 더 경험할 시간을 가졌다는 뜻이고, 10년 후에 태어난 사람이 채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기억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나 연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이해한다는 것이 나이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에베레스트 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산에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만이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에베레스트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특수한 자리라면 모르겠지만, 그냥 ‘에베레스트’에 대한 이야기라면 다녀온 사람의 직접적 경험과 다녀오지 못한 사람의 ‘에베레스트’에 대한 상식적인 인상이나 개인적인 생각도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 오히려 다녀오지 못한 사람의 ‘에베레스트’에 대한 생각들이 더 신선하고 창의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이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개인이 어떤 경험들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주소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80년대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어땠었는지...그 당시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의 경험을 물어볼 수 있고, 한국에서 초기 페미니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들어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나이는 서로 다른 시점의 경험들을 간과하지 않고 서로 나누어 더 풍부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2. 나와 나이

1) 숫자에 짓눌리지 않기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나는 정말 별 생각 없이 30대를 시작해버렸다. 이유는 내가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동기들과 나이가 달라서인 듯 하다. 내 동기들 중 나보다 2년이나 먼저 30대를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미 나의 30대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동기들에게서도 30세라는 나이는 굉장한 의미로 다가왔었는데, 대개 29살부터 30살 중반까지 중 어느 시기에 미친 듯이 힘들었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과연 30이라는 숫자가 그렇게나 힘든 숫자였을까? 내 경우를 보면 오히려 그것이 숫자의 중압감보다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조금씩 시작했으나 당최 자리가 잡히지 않는 각자의 위치에서 오는 것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압력....30대에는 어때야 한다는 그런 인식, 그림들....그에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불안감....
사람마다 인생의 궤적은 다르게 마련이다. 점만 봐도 초년에 대성하는 이가 있는 반면, 다 늙어서 자리를 잡는다는 운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은가? **를 꼭 해야 할 때...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언제라도 무엇이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나이제한이 팽배한 한국 같은 곳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그것은 단지 ‘효율성’과 ‘경제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제시된 나이에 제시된 길을 걷는 것은 단지 조금 편리할 뿐이다. 내 인생의 충만함과 맞바꾸기에는 조금 사소한 그런 편리함 말이다.

2) 시간에 따른 자신의 변화를 충실하게 돌아보기

이것은 나이 값과는 조금 다른 문제인데, 확실히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물론 이것도 죽기 직전까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한 스스로의 변화를 잘 들여다보는 것은 확실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성장을 원한다면 사회적으로 주어진 나이와는 다른 기준으로 스스로에게 기준을 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30살이 되면 머릿속에서 들끓는 잡생각들이 좀 정리되기를 바랬으나 막상 30살이 되어도 전혀 줄어들지 않아 약간 계획을 수정했다. 35살 정도까지는 사람을 조금 더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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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과 대화하기

사람에 따라 생각은 다르겠으나 나는 아름다운 주름살을 키우고 싶다. ‘나이먹어 보인다.’는 것은 주름살의 개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표정과 눈빛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몸의 변화에 대해 조금은 편안하게, 조금은 무심하게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건강을 관리하기

나이 먹는 것을 선선히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그냥 두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나이에 있건 스스로의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마음을 밝고 평안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 의무사항이다.

사회적 나이공간을 가로지르기

30살에 10대를 위한 공간에 가서 즐겁게 놀아보기, 20살에 50대가 모이는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어보기, 등등 전혀 자신의 나이에 허락되지 않은 일들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성 싶다. 한국은 나이에 의한 영역구분이 매우 분명한 공간이다. 이 공간을 지키지 않고 움직여 보는 것은 자신에게 붙은 숫자의 무게를 털고 나이를 다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옷이나 음악, 영화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대간 구분이 있고 이 구분은 소비의 힘에 의해 권력화되어 있다. 이 다양한 취향의 세계에서 자신의 세대에 갖히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자. 10대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나훈아의 ‘영영’을 부르면 어떠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