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 우리당, 총선연대, 물갈이 연대
- 자유주의 정치가 희망을 꺾어



김성구 (한신대 교수) 읽음: 242
작성일: 2004-03-14 19:49:18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정국은 탄핵의결에 대한 찬반과 재신임 여하로 단순하게 재편되는 느낌이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한달 남짓 남겨두고 형성되는 이 전선으로 대중들은 총선에서 ‘한나라당-민주당인가 노대통령-열린우리당인가’의 선택으로 내몰릴 지 모른다. 이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우려스러운 사태전개다.

탄핵의결, 찬성이냐 반대냐가 문제인가?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주요 공격대상으로 삼는 이 전선에 열린우리당과 노사모 그리고 총선연대나 물갈이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우려의 대상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적 정치, 경제개혁을 지향하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형제 또는 사촌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의 선동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문제는 총선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국면에 민주노총과 민중연대 같은 진보진영의 운동단체들이 자유주의자들의 뒤에 결합해서 이 전선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진보진영 단체들은 노대통령의 책임도 함께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런 것은 이 전선에서 묻혀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지속되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반민중성과 부패상을 총선국면에서 폭로하고 대중들로 하여금 반신자유주의 정치대안을 만들어가도록 모색하기는커녕 오히려 독자적인 운동공간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노사모-열린우리당과 함께 나갈 수 있나?

탄핵과 재신임 그리고 총선에서 대통령-노사모-열린우리당과 함께 갈 수 없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돌이켜 보면, 지난 대선은 대국민 사기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노대통령은 집권 후 이라크 파병반대, FTA 비준반대, 네이스 반대, 새만금 방조제 반대, 철도 민영화 반대, 조흥은행 매각(민영화) 반대 등 안보, 외교통상, 교육, 환경, 경제부문의 주요 대선공약을 모두 뒤집었다. 이를 믿고 표를 준 사람들은 대선이라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에서 사기를 당한 셈인데, 이들이 탄핵을 요구해도 아마 시원치 않을 일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은 바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주장해왔던 것들이다. 피 터지게 싸우는 줄 알았던 한나라당-조선일보와 대통령-열린우리당은 이렇게 놀랍게도 공통의 계급적 지반 위에 서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대중들을 위한 개혁에서 실패하고 급속하게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잃어버린 것은 그래서 필연적이다. 대통령(?) 또는 측근들이 보여주는 부정부패의 비리들, 대선자금의 불법적 관행, 이 모든 것들도 구태정치이고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노대통령이 한나라당의 1/10밖에 대선자금을 안 받았다고 하는 것은 노대통령-열린우리당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다만 지난 대선에서 당선가능성이 낮아 한나라당 보다 받아먹을 기회가 적었을 뿐이었다. 실상이 이런데도 노대통령의 개혁실패를 한나라당과 기득권세력의 발목잡기로 돌리면서 총선에서 대통령을 재신임하고 개혁표를 결집하자는 노사모-열린우리당의 주장은 국민을 두 번 기만하는 행태이다. 노사모는 탄핵의결을 심판하자고 선동할 게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사기친거나 다를 바 없는 대통령을 지지한 것에 대해 공개사과 하고 스스로 해체해도 모자란다.

대선에 속고 총선에 또 속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정권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파괴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대선과 총선 때마다 다시 한번 자유주의 정치에 표를 몰아주는 행태의 근저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시장경쟁의 이데올로기, 뿌리깊은 지역주의, 이번에는 다를까 ‘설마’ 하는 기대, 그리고 ‘그래도’ 이게 낫다는 차선의 선택 등이 그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망각’의 정치를 부추기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강요된 구조조정과 해고, 민생파탄과 생존위기, 이에 대한 파업과 저항,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부유계층의 별천지 생활, 이 쓰라린 기억들과 분노가 선거시기에는 망각 속으로 묻혀버린다. 심지어 지나간 대선과 총선에서 속았다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시 자유주의 정당에 표를 주곤 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또다시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전교조, 철도노조, 금융노조의 조합원 그리고 부안군민, 신용파산자 등이 노대통령-열린우리당에 표를 주어서야 되겠는가? 자유주의 정치는 부패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어 성공할 수도 없겠지만, 성공한다 하더라도 진보정치가 자율성을 확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보정치 발전의 약이라기보다는 이를 가로막는 독이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서 한나라당을 심판하자는 자유주의세력을 쫓아다닐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진영은 민생파탄의 현실을 고발하고 대중의 쓰라린 기억을 되살려서 이들로 하여금 한나라당 뿐 아니라 탄핵 당한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모두를 심판하고 진보정치에 새로운 희망을 걸도록 선전해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