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3 겨울.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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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착륙 기대에 드리우는 장기침체와 부채위기의 그림자

임지섭 | 정책교육국장
 

1. 들어가며

 
지난해 발표한 2023년 경제전망에서 사회진보연대는 “이미 폭발한 인플레이션의 충격과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가하는 경기침체 위험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미국의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유지될지, 중국의 부동산 위기와 소비 위축이 회복될지, 한국경제가 세계적 통화긴축과 경기침체를 버텨낼 수 있을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마르크스의 구조적 위기론의 관점에서 장기침체와 부채위기라는 본질적 문제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기저에 깔려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올 한 해 각 쟁점이 중요하게 두드러졌다.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인플레이션과 고용 및 경기 상황을 두고 통화 긴축이 이어질지에 전 세계가 관심을 기울였다. 중국은 상반기 민간소비와 투자의 회복세가 저조한 가운데, 비구이위안으로 대표되는 주요 부동산 개발 회사의 파산 위험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그리고 한국은 상반기 경기가 하강했다가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이라는 연초의 전망과 달리, 부진한 수출과 저조한 성장률이 하반기까지 이어졌고 그로 인한 ‘세수 펑크’ 문제가 불거졌다.

2023년이 마무리되는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올해와 마찬가지로 2024년에도 세계경제의 핵심 위협은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과 2008년식 부채위기가 결합할 가능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인플레이션 위협이 상존한 가운데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전반적으로 가계·기업의 부채와 정부의 재정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각국의 경제 상황에 따라 고금리 기조 장기화에 따른 파급효과의 편차가 커지고 있는데, 한국 경제의 경우 인플레이션, 재정위기, 부채위기 모두에서 상당히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세계 경제 전망

 

1) 인플레이션 전망

올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과 공급 병목현상의 완화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면서도 급격한 경기침체나 대규모 실업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낙관적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실업률이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매우 완만하게 상승하고 소비와 투자 회복세가 강하게 나타나면서, 경기 활력이 크게 저하되지 않으면서도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불편하게 높은 수준에서 고착화되는 ‘끈적한 인플레이션’(sticky inflation)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다. 즉 지금까지의 인플레이션 감축이 공급망 회복과 서비스업 회복의 영향으로 다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앞으로는 높은 금리 수준에 따른 경제의 취약성이 커지는 한편 지정학적 불안과 근원물가의 경직적인 흐름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감축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세계 주요국 인플레이션 고점은 2022년 6월 미국 9.1%, 7월 한국 6.3%, 10월 유로 지역 및 영국 각각 10.6%, 11.1%, 2023년 1월 일본 4.3%였고, 최근 인플레이션 수준은 영국 6.7%, 유로 지역 4.3%, 미국과 한국이 3.7%, 일본 3.2%다. 지난해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비교해보면 올해 주요국 대부분의 인플레이션은 4%대로 내려온 모양새지만, 여전히 기존 중앙은행의 물가 목표인 2%를 현저하게 상회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 3분기 이후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이 제약되고 있는데, 그 원인은 국가별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유로 지역은 에너지 가격 상승을 반영하는 공급충격의 이차효과와 함께 서비스 부문에서 높은 수준의 임금 상승이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이 가장 크게 제약되고 있다. 게다가 제조업 부진이 지속되고 금리 인상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은 올해 0.8%, 내년 1.3%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유로 지역의 경우 인플레이션율은 더 높고 성장률 둔화는 더 심하다는 점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의 강도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공급충격에 따른 효과는 대부분 완화되었지만, 견조한 고용 상황과 수요 회복으로 서비스 물가의 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서비스 물가 상승 압력이 약화하고 있지만, 원자재 등 비용상승압력의 파급효과가 지속되면서 3분기 들어 소비자물가가 상승하는 추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이러한 차이에 따라 주요 기관들은 향후 물가상승률이 중앙은행의 정책목표인 2%에 도달하는 시점을 미국 2026년, 유로 지역 2025년 하반기, 한국 2025년 상반기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가 적어도 2024년까지는 현재 수준에서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그 파급효과는 각국의 경제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클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여전한 가운데 금리 인상의 여파가 부채위기와 재정위기의 가능성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선진국에서 공공부채와 민간부채 수준이 매우 높은 가운데 신흥국의 부채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 금리 인하에 대한 전망이 아직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러한 부채 부담은 민간의 경제활동을 저해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에 제약을 가하면서 세계 경제 전반의 침체를 추동하고 있다. 즉, 이른바 ‘중·고금리-고부채-중물가’ 시대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IMF는 10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세계 경제의 회복세는 절뚝거리고 있고 편차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세계 경제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 여전한 인플레이션 고착화 우려 ▲ 선진국 경제의 회복세 둔화 ▲ 통화긴축의 장기화에 따른 각국의 재정위기(특히 미국의 재정위기)와 부채위기(특히 중국의 부동산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2) 연착륙 기대와 재정위기 우려가 엇갈리는 미국 경제

올해 미국 경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강력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뛰어넘은 경제성장률과 견조한 고용 상황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에는 2023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0%에 수렴하거나 심지어 역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인플레이션을 3%대로 억제하는 대가로 실업률 역시 2022년 8월 기준 3.7%에서 상승하여 2023년에는 5.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11월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3.9%인 가운데 2023년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2.2%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연착륙’ 시나리오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렇게 미국 경제가 양호한 흐름을 보인 데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빠르게 회복된 고용과 초과저축에 기반한 민간소비 회복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먼저 고용을 살펴보면,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비농업고용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예를 들어 2023년 1월 비농업고용 증가 51.7만 명 중 레저·숙박업이 12.8만 명, 전문·기업서비스가 8.2만 명, 보건의료가 5.8만 명을 차지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인 2020년 3월부터 2021년 4월까지는 노동력이 초과공급 상태였으나,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약 550만 명의 초과수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력 공급 측면에서는 노동시장 참가율 하락과 노동인구 증가율 둔화가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데, 특히 팬데믹 이후 고령자 은퇴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 참가율이 2023년 1월 기준 62.4%로, 팬데믹 이전인 2020년 2월 63.4% 수준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취업자 수 증가보다는 공석 일자리 수의 급증이 눈에 띈다(실업자당 공석 일자리 비율이 1.9배에 이른다). 이는 임금소득과 실질구매력 개선으로 이어져 소비 회복세를 뒷받침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제약되었던 소비와 정부의 이전지출에 기인한 초과저축이 민간소비의 재원으로 활용되었는데, 연준의 추정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이후 약 1조 달러 내외의 초과저축이 소비지출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내년에는 미국 경제 역시 금리 인상의 영향이 시차를 두고 누적되는 한편 그간 견조한 소비 회복을 뒷받침한 요인들이 사라지면서 성장세가 점차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서비스 부문 회복이 거의 완료되는 가운데 지속적인 제조업 둔화와 함께 서비스업도 점차 둔화하고 있으며 노동시장과 경제 활력이 이완될 것으로 본다. 한편 8월 현재 가계저축률이 3.9%로 팬데믹 이전 수준을 하회하면서 초과저축이 점차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은 초과저축의 약 60%를 소득 상위 20%가 보유하고 있으며, 상위 20% 이하의 초과저축은 올해 말까지 소진될 것으로 평가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 역시, 실업률이 낮기는 하지만 지난해 창출된 일자리의 상당수가 파트타임 일자리였고 그나마 그 증가세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제조업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경제의 고용 상황이 향후 악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연준의 고금리 정책이 장기화되면서 가계, 기업, 정부의 총수요가 감소할 것이므로 미국 경제의 연착륙 전망은 여전히 낙관적인 견해라고 평가한다.

나아가 미국의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올해 9월까지 미국의 국가 부채는 23조 달러에서 33조 달러로 3년 반 만에 약 10조 달러가 늘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 재정적자 규모가 2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2023 회계연도에 부담한 국채 이자 비용이 1년 전보다 23% 늘어난 8793억 달러로 집계된다. 이는 연간 전체 예산의 15%에 달한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앞으로 현재 100% 수준에서 2053년에는 180~250%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향후 3년간 미국의 재정건전성이 악화하고 정치 양극화로 인해 ‘거버넌스가 부식’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지난 8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의 장기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시중금리의 기준이 되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초 3.5% 수준이었다가 10월 말에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5%에 도달한 뒤 현재까지 4.5%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한 데에는 연준의 고금리 정책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 뉴욕 연방은행 총재 윌리엄 더들리는 지난 7월 시점에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올해 4.5%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세 가지였다. 첫째, 실질 중립금리가 0.5%에서 1%로 상승했을 수 있다. 둘째,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면서 향후 10년 평균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정책 목표인 2%를 웃도는 2.5%가 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와 연준의 긴축정책이 장기화되면서 기간 프리미엄이 1%에 도달할 수 있다. (즉 10년물 국채 금리 4.5% = 실질 중립금리 1%+장기 기대인플레이션 2.5%+기간 프리미엄 1%)

달리 말해, 이러한 장기금리 상승은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다는 낙관적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고착화와 재정위기에 대한 비관적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글로벌 금리와 시중금리 상승을 촉발해 세계 경제의 수요와 성장세 둔화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 기초가 취약한 국가의 신용위험을 부각할 수 있다.

지난 가을호 글 「미국 경제, 장기침체와 부채위기의 정치적 함의」는 최근 서머스와 블랑샤르 사이에서 벌어진 장기침체 논쟁을 소개하면서, “만약 잠재산출량 성장세도 계속 하락하고 실제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그에도 못 미치는 상태에 있으나, 정부지출이 과대하고도 비생산적이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높은 이자율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러한 상황을 부르는 이름은 그 악명 높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함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정리한 바 있다. 2024년을 앞둔 현재 시점에서도 아직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종료되지 않았고 세계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올해 미국 경제에서 급격한 서비스 부문 회복과 견조한 소비 회복이라는 요인을 한 꺼풀 들어내 보면, 여전히 장기침체와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협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코로나19와 부채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중국 경제

중국 경제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위협으로부터는 비켜나 있는 대신, 코로나 방역을 위한 봉쇄정책을 폐기한 이후의 경기 회복세가 당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2021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부동산 시장 침체와 부채위기는 여전하다. 이에 중국 경제의 추격과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중진국 함정론이 최근 ‘중국 피크론’(Peak China)의 형태로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면서, 주요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타난 것과 비슷하게 중국 역시 민간 소비 회복에 주로 기반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중국의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5.5%였는데, 이는 중국 정부의 목표치인 5%는 넘지만, 주요 기관들의 예상치인 7% 안팎보다는 저조한 것이었다. 

그런데 성장의 내용 측면에서 보면, 민간부문은 여전히 위축된 상태에서 국유부문이 성장을 떠받쳤다. 소비는 4월 지난해의 기저효과로 잠깐 두 자릿수 증가세(18.4%)를 보였다가 6월에는 다시 3%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여행이나 외식과 같은 서비스 수요에 비해 자동차, 전자제품, 가구와 같은 내구재 수요의 회복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고정자산투자의 경우 국유기업은 8.1% 증가한 반면, 민간기업은 0.2% 감소했다. 수익성 지표인 공업기업 이익 증가율(1~5월, 전년 동기 대비)은 국유기업이 -17.7%, 민간기업이 -21.3%로 나타났다.

이러한 민간부문의 회복세 부진을 반영하여 중국 경제에는 세계적 인플레이션 추세와 달리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소비자물가는 수요부진과 생산자물가 하락세 지속의 영향으로 전년동기대비 0.7% 상승했고, 생산자물가지수는 부동산 경기 부진과 과잉생산의 영향으로 오히려 3.1% 하락했다. 이러한 물가 하락 현상은 대외적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중국 국내 경기회복 부진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올해 중국 경제의 회복 부진이 두드러지면서 중국의 부상이 이제 정점에 다다랐다는 이른바 ‘중국 피크론’이 다시금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피터슨국제연구소소장 아담 포젠은 8월 2일 포린어페어스에 ‘중국의 경제기적은 끝났다’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길게 보면 2015년, 짧게 보면 중국 정부가 강력한 코로나19 방역정책을 펼친 2020년부터 중국 경제에서 민간 부문의 활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가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확장한 2015년부터 현재까지 저축률이 급증했고, 민간 부문 내구재 소비는 약 1/3 감소했으며, 민간 투자는 약 2/3 감소했다. 그리고 포젠은 이것이 중국 정부가 방역정책을 철회한 이후에도 경제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즉, 포젠은 중국 정부의 극단적인 봉쇄정책으로 인해 중국의 경제주제들이 이전과 달리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권위주의 정권이 언제든 자의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 따라 투자보다는 저축과 유동성 자산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를 중국의 ‘경제적 롱 코비드’ 현상이라고 지칭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단기적인 민간 투자 축소를 넘어, 중국이 국가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도록 만들고, 그에 따라 생산성 발전을 더욱 저해함으로써, 중국 경제를 장기적인 저성장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경제의 장기궤도에 관한 연구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 경제 역시 급속한 이윤율과 경제성장률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 경제의 급속한 이윤율 하락은 국유기업과 같은 비효율적 제도로 인해 발생한 자본생산성의 하락과, 저렴한 노동력이 고갈되면서 나타난 이윤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게 본다면 ‘피크 차이나’는 사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를 새로운 정상 상태로 인정한 ‘신창타이’가 제기된 10년 전으로 소급할 수 있을 것이다.

급속한 성장둔화를 마주한 중국공산당은 경제안보를 포괄하는 국내안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다시 강조하며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했다. 또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 경제의 회복은 사실상 대규모 부채에 기반한 투자에 의해 추동되었다. 2010년 이후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훨씬 넘고 있으며, 정부와 민간(특히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금은 2007년 말 경상 GDP의 139%에서 2022년 말 297%로 급등했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건설부문의 성장동력, 토지 판매를 통한 지방정부의 수입원, 민간의 투자처라는 3중적 기능을 수행하며 부채에 의존하는 경제성장의 핵심 부문이 되었다.
 

현재 중국 경제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문제와 한계들은 부채에 의존하는 경제성장의 부작용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21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부동산 개발기업의 부채위기와 금융불안에 대한 우려가 대표적이다. 중국 부동산 개발기업의 부채위기는 부동산 시장 위축과 중국 정부의 재무건전성 규제가 부동산 업계의 과다 차입 구조와 결합하면서 발생했다. 

부동산 개발기업은 차입으로 자산을 외형적으로 확장하는 데 치중했고, 주택 구매자가 주택이 완성되기 전에 대금을 미리 완납하는 관행에 따라 납부한 금액을 다른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거나 계열사를 확장하는 데 사용했다. 이는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유동성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은 본래 산업화와 도시화로 부동산 장기수요가 증가하는 선순환 과정을 따라 확대되어 왔으나, 점차 도시화가 성숙단계에 접어들고,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주택가격이 폭증하면서 2021년을 기점으로 투자와 판매 모두 부진하고 있다. (중국의 주택가격은 2021년 7월을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2019년 초 수준에 이르렀다. 부동산 투자는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약 10% 감소했다.)

 여기에 2020년 8월 시진핑 주석이 집값 거품을 잡기 위해 ‘3개의 레드라인’(삼도홍선)이라는 대출 제한 규정을 시행한 것도 부동산 개발기업의 유동성 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삼도홍선(三道红线)은 ▲ 선수금을 제외한 부채비율이 총자산 대비 70% 이상 ▲ 자기자본 대비 순부채 비율이 100% 이상 ▲ 단기부채가 현금보유액 이상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부동산 개발기업이 이 기준에 하나 해당하면 신규 대출 한도를 10%, 둘 해당하면 20% 제한하며, 셋 모두 해당하면 신규 대출을 금지하는 규제 조치다. 이에 따라 지난 3년간 중국 3대 부동산 건설사 그룹인 헝다(恒大, Evergrande), 완커(万科, Vanke), 비구이위안(碧桂園, Country Garden) 모두 채무 불이행 이슈가 제기된 가운데, 50개 이상의 개발기업이 부도를 냈고 상위 50개 기업 중 34개가 달러 채권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중국 지방정부의 재정과 부채 문제 역시 심각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적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지출이 급증한 가운데,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지방정부 세입의 약 40%를 차지하는 토지사용권 매각 수입이 크게 감소하고 지방정부자금조달기구(LGFV)의 채무 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작년 역대 최대적자(11.6조 위안)를 기록한 가운데 채권 발행에 따른 연간 이자 부담이 2022년 1.3조 달러에서 2023년에는 1.55조 달러 내외로 약 22% 급증하여 재정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 규모는 대략 40조 위안(GDP 대비 32%) 수준으로 2019년에 비해 19조 위안 증가했다. 특히 지방정부의 인프라 투자 자금조달창구 역할을 담당하는 LGFV의 부채(GDP 대비 53% 추정)를 포함할 경우 부채 규모와 그 증가 속도가 엄청난 수준이다.
 

다만 주택 부문에 대한 일반 금융기관의 직접적인 노출이 제한적이고 중앙정부의 재정여력이 아직 충분하다는 점에서, 현재 시점에서 중국 경제가 부동산 부문의 부실로 급격한 금융위기나 경기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동산 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투자에 의존하는 경제성장이 한계에 다다르고 기업과 정부에 누적된 부채가 투자와 경제정책에 커다란 제약으로 작용하면서 앞으로 중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의 여지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IMF는 앞서 언급한 10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세계경제의 위험요인 중 하나로 중국의 부동산 위기를 지적하면서 중국 경제가 신용주도형 부동산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024년 역시 단기적인 경기침체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의 영향을 받으며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0.8% 하락한 4.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3. 한국 경제 전망

 
한국 경제는 앞서 살펴본 미국 장기금리의 상승과 중국 경제의 회복 부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가운데 정부 재정여력이 축소하고 막대한 민간부채 부담은 커지는 종합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3%대로 내려왔지만, 올해 경기가 상반기에는 침체하고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이라는 ‘상저하고’ 기대와 달리 하반기까지 투자와 소비 위축이 이어졌다. 또한 상반기에 수출 부진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반도체 경기에 대한 한국경제의 의존성과 취약성을 다시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상반기 수출 부진은 부동산 시장 하방 압력과 결합해, 정부 세입이 당초 예상보다 격감하는 이른바 ‘세수 펑크’로 이어졌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정부지출 규모를 삭감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인세와 양도소득세가 격감하면서 세입이 더욱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재정 완충이 약화하는 이러한 추세는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은행은 지난 1월 이후 기준금리를 3.5%로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 장기금리의 상승 추세에 따라 시장금리는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부동산PF 대출 부실 위험이 잠재적으로 존재한 가운데 가계와 기업의 부채 부담이 무거운 상황에서, 1년 정도 이어지고 있는 고금리 기조가 앞으로 더 장기화할 때 부채위기의 가능성과 경기에 미치는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에 따라 ‘물가냐 부채냐’라는 딜레마를 놓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해서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1) 장기화하는 내수와 투자의 부진

지난해 말 KDI는 2023년에 한국 경제가 “수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하고 투자 부진도 지속되면서 1.8%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수출이 1.6%, 설비투자는 0.7%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상황은 이보다 심각했다. KDI는 최근(11월)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202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이고 설비투자는 0.2% 증가할 것으로 보았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설비투자가 3.0% 감소할 것으로 보았다.) 수출은 하반기 들어 반도체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부진이 다소 완화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올해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의 위축이 두드러졌다. 

2024년에는 수출과 설비투자 회복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경제성장률이 2.2%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건설투자는 주택부문 건설 수주 위축을 반영해 1% 감소하고, 민간소비는 금리 인상의 여파로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1.8% 증가하는 데 그쳐 회복세가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KDI는 이에 더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확대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거나 중국의 부동산경기가 급락할 경우를 내년 경제 전망의 위험요인으로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은 이러한 내수 둔화의 영향이 반영되면서 하락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 근원물가 상승률은 3.4% 수준으로 예상된다. 2024년에도 이러한 수요 둔화의 영향으로 하락세가 이어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 근원물가 상승률은 2.4% 수준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현재까지 식료품물가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고 있으며, 여전히 전쟁과 이상기후 등으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 요인이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용은 지표상(3/4분기 계절조정)으로는 고용률이 62.6%, 실업률이 2.6%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 과정에서 고용률이 빠르게 상승하고 실업률은 빠르게 하락하는 ‘고용 호조 성장’ 현상의 원인으로 ▲ 대면 서비스업의 빠른 회복 ▲ 근로시간 감소 ▲ 여성 고용의 큰 폭 증가 ▲ 노동 비축을 제시한다. 즉, 사회적 거리두기로 큰 충격을 받았던 대면 서비스업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여성을 중심으로 취업자가 증가한 한편, 기업이 기존 취업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고용 지표가 양호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취업자 수 증감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조업과 건설업 취업자 수는 계속해서 감소했다. 서비스업 취업자 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그 증가세는 점차 완만해지고 있다. KDI는 3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상승했다는 점에 주목하는데, 이는 해당 연령대에서 자녀가 있는 여성 비중이 감소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3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의 상승은 현재 시점에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고용률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으나(다른 하나의 요인은 고령층 취업자 수의 증가다), 그 이면에는 저출산 현상의 심화와 산업별 양극화라는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내년에는 제조업과 건설업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비스업 회복세가 둔화하면서, 취업자 증가 수는 올해 32만 명에서 내년 21만 명으로 증가 폭이 감소하고 실업률은 2.7%에서 3.0%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2) 약화하는 정부의 재정완충 여력

올해 한국 경제의 큰 이슈 중 하나는 당초 전망보다 국세 수입이 부족한 이른바 ‘세수 펑크’ 문제였다. 기획재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국세수입을 재추계한 결과 예산 400.5조 원 대비 59.1조 원(14.8%)가 부족한 341.4조원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세입 감소의 원인으로는 “글로벌 경기 둔화 및 반도체 업황 침체 등에 따른 수출 부진 지속으로 기업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하며 법인세 세수가 당초 예상을 크게 하회하는 가운데, 부동산 등 자산시장 침체로 양도소득세 등 자산시장 관련 세수도 예상했던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59.1조 원의 세입 부족 중 2022년 기업 영업이익 격감에 따른 법인세 감소분이 25.4조 원으로 가장 비중이 크고, 자산시장 침체로 인한 소득세 감소분이 17.7조원에 이어 수입 부진과 지방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부가세 감소분이 9.3조 원인 것으로 추계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대규모의 세수결손에 대해 (국채 발행이 아니라) 세계잉여금 4조 원과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등 기금 여유재원 24조 원을 활용하고, 일부는 사업 집행을 하지 않거나 지자체·교육청의 재원을 활용해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채 발행을 회피하더라도 환율 방어에 써야 할 외평기금을 세수결손에 사용하는 것은 통상적이지 않고, 외평기금은 결국 외평기금채권으로 조성되기 때문에 또 다른 빚을 내는 ‘돌려막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 사업 축소와 지자체·교육청에서의 지출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문제는 내년에도 세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게다가 정부지출 증가율을 억제하더라도 여전히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수준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에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은 2005년 이후 최저인 2.8%로 편성되었으나 총수입 증가율이 2.2% 감소(전년대비 13.6조원 감소한 612.1조 원)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관리재정수지 적자(GDP 대비 3.9%)와 국가채무(GDP 대비 51.0%) 수준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3) ‘부채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

정부의 재정완충 여력이 침식되는 가운데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위험에 대한 경고 역시 커지고 있다. 한국의 민간부채에 대한 우려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겪으며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이전 시기나 다른 주요국과 비교해 유례 없이 급증한 상황에서 미국의 장기금리 상승 추세를 따라 국내 국고채금리와 회사채금리를 비롯한 시장금리 역시 상승 추세를 보이자 더욱 우려가 커지고 있다.

IMF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281.7%였다. 2017년과 비교하면 5년 만에 42.8%p가 늘었는데, 이는 조사대상 국가 중 가장 큰 증가폭이었다. 민간부채의 증가를 주도한 것은 가계부채였는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92.0%에서 지난해 108.1%로 올랐다. 전 세계에서 가계부채가 GDP보다 많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으로는 코로나19 시기 부동산 시장과 증권 시장에서의 이른바 ‘빚투’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손실을 입은 자영업자의 생계형 대출이 지적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는 기준금리가 인상되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전체 가계대출 규모가 다소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들어 주택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자, 4월부터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다시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10월에는 6조 3천억 원 증가해 지난 2021년 9월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19일 발표한 통화정책방향에서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여전한 가운데 가계부채의 증가 흐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가계부채의 급증은 주택담보대출이 대폭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건전성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경기순환에서 부동산 시장의 활력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고,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며, 고금리에 따른 이자부담이 커지면서 소비가 위축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계부채와 함께 기업부채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기업부채 역시 코로나19 위기를 지나며 757조 원 급증했는데, 대부분 대출(600조 5천억 원)과 채권 발행(119조 7천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에 따라 한국 비(非)금융 기업의 부채 비율은 2019년 101.3%에서 올해 3분기 126.1%로 높아져 홍콩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를 기록했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부채 비율(108.6%)을 넘어섰다. 또한 이는 작년 3분기와 비교해 5.7%p, 올해 2분기와 비교해 5.2%p 증가한 것으로,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최근 상황에서도 오히려 기업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회사채 시장의 경색으로 인해 기업이 회사채 발행보다 대출을 확대하는 것으로 대응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이를 감안하더라도, 올해 설비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기업부채가 급증했다는 것은 늘어난 기업부채가 대부분 투자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위한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가계부채와 마찬가지로 기업부채 역시 현재 시점에서 단기적인 채무불이행과 재무건전성 문제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한계기업을 비롯한 취약부문을 중심으로 부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대출 규모 측면에서 볼 때 대기업 대출은 200조 원 대에서 크게 상승하지는 않은 반면, 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 대출이 급증했다. 또한 기업의 이자지급능력은 약화하고 연체율과 부도 증가율이 상승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기업의 이자지급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총이자비용)은 수익성 저하와 시장금리 상승 영향으로 2021년 8.7배에서 2022년 5.1배로 하락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낮은 취약기업 비중 역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상승했다.(2021년 말 47.8%, 2022년 말 49.2%) 연체율은 2021년 이후 계속해서 상승해 올해 2분기 0.37%를 기록했고, 올해 10월까지 부도 증가율은 전년 대비 약 40%에 이른다.

한국의 경제 규모 대비 민간부채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은 2000년대 이후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미 부채가 막대한 규모로 쌓여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 시기에 이어 최근 금리 인상 시기에도 다른 주요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점에서 단기적으로 건전성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취약성 증가의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게다가 빠르게 누증되고 있는 부채 부담은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면서 단기적 경기뿐만 아니라 장기성장세를 제약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채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이른바 ‘부채 함정’에 한국 경제가 빠졌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 결론

 
2024년 세계경제는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긴축 정책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올해에 비해 성장세가 둔화할 전망이다. 또한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세계적 차원에서 공공부채와 민간부채가 유례없는 속도와 규모로 증가한 가운데, 지난해부터 역시 유례없는 속도로 본격화된 고금리 기조에 따른 부채 부담이 점차 각국의 재정위기와 부채위기를 추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르주아 경제학계에서는 세계경제가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일단락되면서 세계 금융위기 이후의 2010년대와 같은 저금리·저물가·저성장의 장기침체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부채위기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것인가를 둘러싼 장기침체 논쟁이 재개되고 있다. 지난 가을호 특집 「미국 경제, 장기침체와 부채위기의 정치적 함의」에서는 이러한 논쟁을 마르크스주의의 정상상태(定常狀態, stationary state) 이론의 관점에서 종합해보면 “수익성 있는 기술 진보의 어려움 → 고정자본 투자수익률 하락 → 만성적인 수요부족과 이력현상에 따른 장기침체”라는 그림을 얻을 수 있으며, 이러한 위기 메커니즘이 결국 국가의 재정위기와 부채위기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장기침체와 부채위기는 정치위기와도 맞물려 있다. 특히 미국의 재정적자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가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안정성에 위험을 더하고 있다는 우려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세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심화해온 미국의 인민주의와 정치적 양극화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2024년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주요 선거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장기화하고 세계적 불안정성이 증대하는 가운데 포퓰리즘과 정치가 경제를 휘두르는 ‘폴리이코노미’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대선과 ‘트럼프의 귀환’이 대표적이다.

한국경제는 2020년대 장기침체와 부채위기라는 전망의 표본이 되고 있다. 올해 한국경제는 코로나19 위기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에서 잠시 가려져 있었던 문제, 즉 반도체 수출과 부동산 경기에 대한 의존성과 급증한 민간과 정부의 부채로 인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었다. 또한 한국경제의 장기저성장, 즉 잠재성장률 하락에 대한 경고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OECD가 추정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1.9%, 내년 1.7%로 처음으로 1%대로 하락했다. 지난해 경제 정세 전망 「장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쟁점으로 살펴본 세계경제」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주요 원인은 인구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생산성 정체다. 

장기침체와 잠재성장률 하락에 대해 부르주아 경제학은 노동·연금·교육 개혁과 같은 구조개혁을 주문한다. 그러나 정상상태에 근접할수록 누구도 보편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특수한 이익을 양보하지 않으려 하며, 사회의 경쟁과 갈등은 증폭되고, 정부와 국가로 불만과 요구가 집중된다. 최근 한국 역시 통화정책을 둘러싸고 ‘물가냐 부채냐’라는 쟁점이, 재정정책을 둘러싸고 ‘확장이냐 긴축이냐’라는 쟁점이 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와 구조적 위기에 대한 대안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집권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하고 있다. 사회운동은 이러한 포퓰리즘 정치에 맞서 역량을 축적하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길을 모색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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