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부동산 PF 문제 해설

빚으로 쌓아 올린 한국의 부동산 시장

이아림 | 정책교육국장

도급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1월 11일 확정되었다. 이제 채권단은 총선 다음날인 4월 11일까지 태영건설의 부실 규모를 실사하여 워크아웃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대형건설사의 워크아웃은 쌍용건설 이후 10년 만이다. 그런데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은 ‘단군 이래 가장 복잡한 워크아웃’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태영건설이 참여 중인 부동산 PF 사업장이 60곳이나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하면 워크아웃이 실패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태영건설은 법정관리로 들어간다.

부동산, 금융업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사실 2022년부터 꾸준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이하 ‘부동산 PF’) 부실 문제는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었다. 부동산 PF 부실 문제는 왜 발생한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 과도하게 불려 놓은 빚잔치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추구한 개인이 파산하면 끝나는 문제 아닐까? 부동산 PF를 매개로 금융기관이 연결되어 있기에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이 글에서는 부동산 경기변동에 유독 취약한 한국의 부동산 PF 구조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문제가 되는 부동산 PF 부실 사태의 현황을 짚고자 한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란 무엇인가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란,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도나 담보 대신에 프로젝트의 미래 수익성을 예측하여 이를 기반으로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이 튼튼하지 않고 담보로 할 자산이 없어도, 사업계획이 좋아 미래에 돈을 많이 벌 것으로 예측된다면 금융기관에서 선뜻 자금을 빌려준다는 의미다. 그래서 PF는 주로 개발도상국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사용되던 금융기법이었다. PF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는 고위험 고수익 투자가 된다.

기업이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것과 달리, PF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우선 기업이 특정한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목적법인을 세운 뒤, 이 법인이(흔히 페이퍼 컴퍼니로 세워진다) 차주가 되어 프로젝트의 미래 현금흐름, 그리고 프로젝트 자체에서 나오는 자산(즉,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산다면 땅)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한다. PF는 기업어음이나 회사채보다 금리가 높지만 기업에 큰 장점이 있다. 기업의 이전 실적과 기업 자산에 대한 담보가 바탕이 되어 재무제표에 부채로 명시되는 은행대출이나 기업어음·회사채와 달리, PF는 명목상으로 별도의 페이퍼 컴퍼니가 빌린 돈이기 때문에 장부에 남지 않는다. 즉, 부외금융(off-balance-sheet financing)이다. 따라서 공식적인 채무비율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사업 부실 시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다. PF는 물적 담보가 있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의 미래 현금흐름을 근거로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모회사에 상환을 청구할 수 없다. 게다가 은행권뿐만 아니라 비은행권,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 제2금융권에서도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대주(채권자) 역시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어 다양한 금융회사가 광범하게 PF에 참여한다.

‘부동산’ PF는 아파트, 주상복합, 상가의 미래 예상 분양 수입금을 기반으로 건설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부동산개발은 큰돈이 필요하고, 장기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PF 방식이 일반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큰돈을 조달하다 보니 채무비율을 높이지 않는 부외금융 형식을 선호하게 되고, 장기프로젝트이기에 리스크 분산을 중시하게 된다. 그러나 집값이 오를 때 떼돈을 벌다가 집값이 내릴 때 하루아침에 줄도산에 이르는 한국의 부동산 PF 구조에는 외국과 다른 특수성이 존재한다.
 
 

경기변동에 취약한 한국의 부동산 PF 구조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자금조달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착공 전까지의 단계에서 브릿지론으로 땅을 사고, 공사 단계에서 본PF대출을 통해 브릿지론을 갚고 선분양과 중도금을 보태 건물을 짓는다. 이후 준공이 완료된 마지막 단계에서 분양대금을 통해 최종 상환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각각 한국의 부동산 PF 구조의 고유한 취약성이 드러난다.
 

1) 착공 사전 단계: 시행사가 땅을 사고 인허가를 얻는다

사실 부동산개발의 핵심 주체는 PF대출의 차주이며 개발계획을 총괄하는 시행사다. 하지만 한국의 시행사는 대개 영세하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 많다. IMF 경제위기 이전에는 건설사(시공사)가 시행사의 역할을 담당했는데, 외환위기 이후 정부에서 기업 부채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자, 건설사도 예전처럼 과도한 차입을 꺼리게 되면서 리스크 분담과 수월한 자금조달을 위해 시행사를 앞세우게 된다. 이때부터 건설사에서 많은 인력이 넘어가 시행사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다. 시행사는 땅 계약금 정도만 자기자본으로 가지고 나머지를 차입하기 때문에 개발만 성공하면 몇십 배에 달하는 이익을 회수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화천대유자산관리가 5천만 원을 가지고 대장동 개발사업 시행사였던 ‘성남의뜰’ 지분에 참여해 수천억 원대의 이득을 볼 수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대박을 터트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시밭길을 지나야 한다. 일단 땅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소문이 돌아 땅값이 심하게 뛰거나 소위 알박기가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개발 목적에 맞게 용도를 변경하는 인허가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시일이 늦어질 수 있다. 또한 부동산개발 자체가 장기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기조 변경이나 부동산 시장의 변동 위험에 노출된다.

자기자본이 별로 없는 영세한 한국의 시행사가 이토록 위험한 사업에 어떻게 큰돈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고금리 대출(브릿지론)과 건설사의 지급보증(신용보강의 일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사업 인가 전 시행사가 받는 브릿지론(bridge loan, 자금이 필요한 시점과 유입 시점이 일치하지 않을 때 다리 역할을 해주는 단기자금)은 토지잔금대출이라고도 불린다. 보통의 경우 땅을 확보하기 위해 들어가야 할 돈이 현재 땅의 가치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개발소식이 들리면 땅값이 오른다), 땅의 담보력을 바탕으로 토지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전부 대출할 수가 없다. 따라서 담보력이 없는 부분까지 포함해 제2금융권을 통해 고금리로 받게 되는 것이다. 이때 빌려주는 금융권은 경험도 돈도 없는 시행사를 온전히 믿을 수 없기에, 실질적인 개발사업의 주인인 건설사의 지급보증을 요구하게 된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수주를 많이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지급보증을 서게 된다. 이렇게 법률적, 형식적 주체인 시행사가 건설사의 바지사장에 불과한 기이한 구조가 형성된다.

그러나 해외의 부동산 PF는 사업의 미래현금, 즉 아파트가 목표한 가격에 다 팔릴지, 상가 분양이 잘 이뤄질지에 따라 대출이 이뤄진다. 이러한 미래의 현금흐름 역시 100% 장담하기 어렵지만, 이와 달리 알박기의 유무와 같은 해당 토지에서 개발사업이 시작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불확실성이 매우 큰 영역이다. 따라서 해외의 부동산개발에서도 땅을 구입하는 과정까지 PF대출을 받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부동산 개발사업 과정과 비교해 보자([그림1]). 미국의 시행사는 토지매입 단계에서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자기자본을 합해 총사업비의 대략 2~30% 정도를 초기자금으로 확보한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총사업비의 3~5% 내외가 시행사의 자기자본이다. 또, 미국은 시행사의 자기자본을 토대로 대출을 일으키기 때문에 LTV(담보가치에 대한 대출 비율)가 4~50% 수준이다. 이와 비교해 한국은 LTV가 매우 높은데, 평균 77.5%(대형증권사)에서 93.4%(중소형증권사) 수준으로 매우 높다. 이후 미국의 시행사는 더 많은 투자자로부터 추가자금을 확보해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고 토지 담보를 해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공사 자금을 대출하는 과정에서만 PF대출이 이뤄진다. 반면, 한국은 토지매입 금액까지 전부 PF대출을 통해 조달한다.

시행사가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과 은행에 대출받는 것 모두 결국에는 돈을 빌리는 것인데, 무엇이 그리 문제일까? 미국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나쁘면 투자자와 합의해 땅을 좀 놀리다가 경기가 좋아질 때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땅을 구입하는 자금부터 대출로 충당하기 때문에 이자가 계속 나가고, 만기까지 돈을 갚아야 하기에 경기가 좋든 나쁘든 곧바로 건물을 올려야 한다. 또한 미국의 경우 공사 단계에서 자금조달 부담이 적기에 수월하게 PF대출이 가능하다. 토지를 바탕으로 건설 자금만 확보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본PF를 통해 브릿지론을 상환하고 건설 자금이나 사업비 일부를 충당해야 한다. 따라서 대출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담보력이 온전치 못하게 되니 건설사의 지급보증을 요구하게 된다. 쉽게 말해,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 시행사가 너무 돈 없이 시작해서 생기는 문제다.
 

2) 공사 단계: 건설사가 건물을 짓는다

착공에서 준공까지 보통 2~3년이 걸리기에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첫 삽을 뜨게 되면 착공 전 단계보다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된다. 이때부터 시행사는 본격적으로 PF대출을 받는데, 이를 본PF라 부른다. 건설회사 입장에서 브릿지론보다는 본PF 지급보증을 더 수월하게 서주는 편이다. 본PF대출에 제1금융권은 선순위로 들어가고 제2금융권은 고금리로 후순위로 들어간다. 본PF 전체 대출에서 브릿지론을 상환하는 비중이 가장 크고, 나머지로 공사비 일부를 조달한다. 그럼 부족한 공사비, 각종 사업비는 어떻게 조달할까? [그림2]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선분양 제도가 있어서 계약금, 중도금을 받아서 공사비로 쓸 수 있다. 즉, 계약금·중도금으로 공사를 하고, 공사비 명목으로 빌린 돈으로는 땅을 사는 식으로 돌려막는다.
 

선분양을 통해 공사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한국의 독특한 특징인데,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에서도 선분양 제도는 있지만 사업비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사업성을 증명하는 용도일 따름이다. (선분양 비율이 높을수록 대출 이자율이 낮아진다.) 따라서 수분양자(분양을 받는 사람)의 계약금을 공사비, 사업비로 사용하지 않고 제3기관에 예치한다. 또한 분양계약을 사인 간 계약으로 보아 보증기관이 개입하지 않는다. 한국은 수분양자의 자금으로 사업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이들이 토지 및 건물의 담보권에 있어 대주단(채권단,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과 우선순위가 비슷해지고, 수분양자 보호를 위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보증으로 인해 대주단은 유사시 보증기관에 담보물의 소유권을 이전해야 하는 등 온전한 담보권 확보가 어렵다. 따라서 대주단은 보통 본PF대출 시 시공사의 지급보증을 요구하게 된다.

이처럼 본PF로 브릿지론을 상환하고 계약금·중도금으로 건물을 짓는 단계적 상환, 즉 돌려막기 구조는 부동산 경기 변화에 따라 부실 가능성을 키운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 브릿지론을 받아 비싸게 땅을 샀는데 집값이 내려가고 금리가 너무 올라, 분양이 다 되어도 사업비를 보전하지 못할 것 같게 되면 본PF를 해주려는 금융기관을 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건물을 다 지어도 예상만큼 분양 이익을 거두지 못하게 되면 건설사의 부채로 남게 된다. 심한 경우 도중에 공사가 중단되기도 한다. 현재가 딱 이런 상황이다.
 

3) 준공 및 입주 단계: 입주자가 분양대금을 완납한다

분양대금으로 본PF를 상환해야 하는 개발사업의 최종 단계다. 분양만 성공적으로 완료된다면 이전의 모든 위험성은 사라지고 땅 주인도, 시행사도, 건설사도, 수분양자도, 금융기관도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 펼쳐진다. 이제 남은 것은 최종소비자인 가계가 은행에 주택담보대출을 착실히 갚으면 되는 문제다. (고금리 시대의 가계부채 문제라는 쟁점이 있지만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겠다.) 시행사가 개발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분양이 완료되는 전 과정을 봤을 때, 결과적으로 미래의 분양대금을 끌어와 소자본의 시행사가 엄청난 레버리지를 일으켜 사업을 벌이는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대형건설사의 신용이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차적인 타격은 건설사가 지게 된다. 결국은 금융기관과 보증기관(즉 세금)에도 그 여파가 오겠지만 말이다.

시행사가 아파트 개발사업의 바지사장인 증거는 시행사가 아니라 건설사의 시공능력평가순위를 토대로 PF대출을 판단하고, 건설사의 신용등급이 PF금리를 결정하고, PF유동화증권도 결국에는 건설사의 신용도와 신용보강을 기초로 발행된다는 점이다. 결국 국내 부동산 PF는 사실상 건설사의 신용을 기초로 하여 실행된 일종의 담보대출, 사실상 기업금융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부동산개발의 특성상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미국 역시 금융기관이 담보 및 모기업의 신용보강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향후 임대 수입이나 선분양비율을 통해 확인한 수요가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또한 미국에서는 반드시 건설사만 신용보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금융기관도 나서서 장기대출로 전환해 주거나 신용을 추가로 제공하기도 한다. 한국과 미국의 이러한 차이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에서는 대주단이 온전히 담보력을 행사할 수 없기에 생기는 문제다. 이러한 이유로 대주단은 시행사에 돈을 빌려주면서 건설사의 신용보강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 건설사의 지급보증과 같은 우발채무(특정한 조건이 되면 갚아야 할 잠정적인 채무)가 급속히 증가했다.

이처럼 리스크를 분담하려는 PF의 취지가 무색하게 결과적으로 최종 리스크를 건설사가 지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부동산 거품이 조정되는 국면에서 PF 부실 문제가 건설사의 부도위기로 비화한다. 대형건설사의 파산은 경제에 큰 부담을 지운다. 당장 태영건설만 해도 500여 곳이 넘는 협력사가 있다. 그런데, 부동산 PF 부실 사태는 단지 돈 빌려준 금융기관과 돈을 빌린 시행사, 그리고 보증은 선 건설사만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레고랜드 사태에서 확인했듯이 금융시장 전체로 확대될 수 있는데 그 매개는 PF대출채권을 바탕으로 한 유동화증권이다.
 
 

금융시스템 위기로 전염될 위험성을 높이는 부동산 PF 유동화시장

 
2007~09년 금융위기 당시에 확인했듯이 자산유동화가 위험한 이유는 기초로 하는 자산이 실물자산의 가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가공자산이라는 데 있다. 부동산이라는 담보물은 실물자산이지만, 부동산 PF를 빌려줬고 갚겠다는 약속이 담긴 대출증서는 금융자산이다. 자산유동화는 후자를 기초자산으로 하여 증권을 발행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이다. 또한, 만기까지 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대출증서를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유동자산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채권-채무 관계가 불투명해진다. 부동산 PF가 연체되면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발행된 유동화증권을 매개로 채권시장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림3]의 8번부터 12번까지가 부동산 PF의 유동화 과정이다. 대략의 메커니즘은 이러하다. 아무리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라고 하더라도 장기간 거금을 통째로 빌려줄 ‘대주’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시행사는 증권사의 도움을 받아 유동화 회사(SPC)를 설립해 단기 채권을 발행한다. 즉, 1000억 원을 5년 뒤 상환하겠다는 장기 계약을 토대로, ‘3개월 뒤에 1억 1000만 원을 준다’는 채권을 1매당 1억 원으로 발행해 1000장을 판매하여 자금을 조달한다. 3개월마다 이 작업을 반복해 빚을 빚으로 갚는 식으로 5년을 버티기 위해서는 20번의 차환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시 증권사가 채권매입을 하겠다는 신용보강을 해주기 때문에 PF 유동화증권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이처럼 유동화 과정을 통해 기존에는 본PF가 어려웠던 사업장까지 부동산 PF 시장이 더욱 확대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부동산 PF 유동화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표1]을 보면, 국내 유동화증권 전체에서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자산담보부 단기사채(ABSTB)의 비중이 가장 높은 이유는 만기가 통상 3개월 이하인 초단기증권이기 때문이다. 또한, 발행 주체의 입장에서도 공시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제도적 편리성이 존재한다.) 「국내 증권업 부동산PF 유동화시장의 추이와 위험 분석」(자본시장연구원, 2019.)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사이, 부동산 PF 대출잔액이 42.5조 원에서 64조 원으로 1.5배, 유동화증권의 발행잔액은 11.7조 원에서 25.0조 원으로 2.1배 증가했다. 부동산 PF의 대출과 유동화증권 모두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고, 그중에서도 유동화시장의 성장세가 더 두드러진 모습이다.
 

이 성장세를 주도한 금융기관은 증권사였다. 2014년에서 2018년까지 단 5년 만에 증권사의 부동산 PF 유동화시장점유율은 37.4%에서 54.9%로 증가했다. 이러한 급속한 성장에 힘입어 증권사 투자은행(IB)부문의 수익은 2013년 말 6349억 원에서 2018년 말 2조 6376억 원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증권사는 부동산개발 수요가 확대되던 시기에 틈새를 노렸다. 공동주택보다는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이 경기 변화에 더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보통은 주거용 부동산보다 위험성이 크다. 은행은 대형건설사를 끼고 공동주택(아파트)처럼 대규모 대출이 요구되는 부동산 PF에 대출을 해주었지만, 증권사는 중소건설사를 통한 개발사업이나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같은 소규모 자금조달이 필요한 곳을 파고들었다. 부동산개발 시행사를 상대로 유동화증권 발행 방식의 부동산 PF를 선택하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경쟁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신규 준공 건수 기준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의 비중이 각각 2017년 상반기 14%, 6%에서 2018년 하반기 23%와 14%로 1년 반 만에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07~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기초가 된 금융자산이 모두 휴지 조각이 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미 발행된 유동화증권의 만기시점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차환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때 이 문제가 불거졌다.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 신청을 결정함에 따라 개발공사의 대출채권을 기초로 강원도가 보증해 발행한 PF 유동화증권 ABCP 2050억 원이 미상환되면서, AAA등급의 한전채가 유찰되는 일이 빚어질 만큼 채권시장에 엄청난 파급력을 일으켰다. 이 사건 이후 각종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이 차환발행에 실패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PF가 차환에 실패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정부가 50조 원이 넘는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통해 진화에 나섰지만, 이때부터 부동산 PF 시장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정리해보자. 개발연대 시기 한국은 분양받는 사람들의 돈을 빌려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이러한 선분양 제도와 함께 건설사가 은행에 빚을 지고 집을 짓게 된다. 그러다 외환위기 이후 건설사의 채무비율을 늘리지 않기 위해 시행사가 PF대출을 받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건설사의 우발채무를 공시하게끔 규제가 가해지자 이제는 증권사가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건설 자금 조달에 이바지하게 된다. 빚을 내는 주체만 바뀌어 왔을 뿐이지 부동산 경기를 타고 엄청난 레버리지를 통해 무서운 속도로 주택을 공급하는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시행사, 건설사, 증권사, 수분양자 모두 개발이익을 통한 일확천금을 바랐기에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과도한 레버리지를 바탕으로 굴러가는 시장은 거품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에도 부동산 PF 시장은 확대

 
이제부터는 2024년 한국의 부동산 PF 부실 실태를 확인하고자 한다. 수영장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부동산 경기가 호황에서 불황으로 반전되면 돌려막기 구조가 더는 지탱되지 못하고 돈맥경화가 발생한다. 부동산 PF 대출 부실로 촉발된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바로 그러했다. 그 여파는 심각했는데, 2011~13년 동안 상호저축은행 29곳이 파산했고, 당시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한 10만 명이 1조 3천억 원을 날렸다. 같은 기간 100대 건설사 중 거의 절반에 이르는 회사가 워크아웃을 경험했고 25개는 부도처리 된다. 그러나 이토록 심각한 사회문제를 겪고도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증가했다.

2011~13년 사태로 저축은행이 부동산 PF 시장에서 주춤하게 되자 여신전문, 상호금융기관, 새마을금고, 피투피업체의 참여가 확대된다. 2014년부터 2022년 6월까지 PF 대출 증가액은 은행권이 6.9조 원, 비은행권이 70.1조 원이다. 자기자본대비 PF 대출 비율을 보면 증권사, 보험사, 여전사가 큰 폭으로 상승한다. 또한 비은행권 PF 대출은 부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아파트 외 사업장이 다수를 차지했다. 2023년 9월 현재, 부동산 시장 전체 규모는 2700조로 2022년 연간 명목 GDP 2100조를 크게 웃돈다. 이중 부동산 PF 규모는 163조이며 여기서 제2금융권이 70%를 담당하고 있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2013~2014년 부동산 경기가 바닥일 때 A증권사가 PF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다른 증권사들은 ‘저러다 큰일난다’며 비난했다. 그런데 A사 이익이 급증하니 2018~2019년엔 모든 증권사가 PF를 취급하고 있더라. 증권사들이 PF에 뛰어들기 전엔 연간 이익이 4조 원 정도였는데 그 이후엔 8조 원이 됐다. 2011년 PF 투자로 호되게 당한 저축은행은 2018년부터 다시 들어갔다.”
 
 

건설사의 실질적인 우발채무는 오히려 증가

 
저축은행 사태를 거치면서 재무제표에도 잡히지 않는 건설사의 지급보증이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2011년 국제회계기준을 전면 적용하면서 건설사의 지급보증이 감사보고서 주석사항에 ‘우발채무’로 기재되게 된다. 즉, 잠정적인 부채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다. 따라서 건설사도 2010년대에 들어서면 지급보증과 같은 직접적인 신용보강을 축소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2009년 자본시장법 제정으로 증권사에 채무보증이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이 틈을 타고 부동산 PF나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에 대한 증권사의 신용보강이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증권사의 PF 대출 관련 채무보증은 2013년 말 5.9조 원에서 2022년 6월 말이 되면 24.9조 원으로 증가한다. 아래 [표2]를 보면, 최근에 확대된 부동산 PF 유동화증권 발행에서 신용보강의 주체가 주로 증권사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건설사 입장에서는 우발채무가 줄었으니 상황이 좀 나아진 것일까? 실제로 건설사의 우발채무가 확대하는 추세는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우발채무가 감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도 건설사가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사에 신용보강을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증권사의 신용보강 역시 결국 그 토대에는 건설사의 신용이 있다.

[그림4]의 왼쪽 그래프를 보면 도급 순위 상위권의 대형건설사 우발채무의 총액이 감소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오른쪽의 변형된 PF 신용보강을 포함한 우발채무 현황을 보면 2013년을 기점으로 오히려 증가함을 알 수 있다. (현재 의무적으로 공시가 이루어지는 PF 우발채무와 달리, 업체 재량에 따라 공시범위가 정해지는 변형된 PF 신용보강의 경우 업체별로 공시 규모가 크게 달라서 비교적 상세히 공시하는 GS건설, 롯데건설 사례를 바탕으로 추산되었다. 보고서는 타 건설업체도 유사한 추이를 보일 것으로 판단한다.)
 

가장 대표적인 변형된 PF 신용보강의 사례는 ‘책임준공약정’이다. 원래 ‘책임준공’이란 용어는 공사비가 계약 일정에 따라 지급되었을 때 건설사가 건축물을 완공시킬 의무라는 의미로 업계에서 사용된다. 그러나 PF 구조에서 체결되는 책임준공약정은 ‘공사비 지급여부나 시행사의 의무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건설사의 책임으로 공사도급계약서에 정한 공사 기간 이내에 해당 건물을 준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분양에 실패해 공사자금이 들어오지 않거나 이러저러한 문제로 시행사가 파산한 상황에서도, 건설사는 정해진 기한 내에 공사를 완료해야 한다. 따라서 예전처럼 PF 대출에 대한 직접적 보증은 아니더라도, 공사가 중단될 상황에 부닥치면 건설사는 빚을 지더라도 아파트 준공을 완료해야 한다.
또한 증권사가 PF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면서 제공하는 신용보강인 ‘매입보장약정’은 증권사가 유동성을 공급해 차환을 보장해 주는 방식인데, 신용위험 회피를 위한 조건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조건이란, 건설사의 신용등급이 정해진 수준 이상으로 하락하게 되면 증권회사의 매입보장 의무가 소멸한다는 조약이다. 이렇게 되면 건설사가 유동성 위험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된 우발채무가 존재하는데, 분양성과가 저조할 때를 대비해 정해진 시점까지 책임분양금액이 입금되지 않으면 건설사가 미입금된 부족분을 지불하는 책임분양제도 있다. 이 모든 사항은 궁극적으로 PF 대출원리금의 적기상환을 위해 건설사가 책임을 부담한다는 원리로 작동한다. 저축은행 사태 이전에는 건설사가 직접 리스크를 졌다면 이제는 제2금융권이 리스크를 분담하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건설사에 다시 리스크가 돌아오게 설계되었다. 건설사가 화수분은 아닐진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이러한 구조가 온존하게 된 것일까? 대마불사가 정형화된 사실로 자리 잡은 한국이라 가능한 구조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풍선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서서히 바람을 뺀다

 
문재인 정부 시기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유동성이 많이 공급되어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 진폭이 극심했던 데에는 세금을 통해 수요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정책실패가 있었다. 2015년 대비 2020년 기준 개발사업 추진 건수 자체가 2.3배 이상 늘었다. 사업성이 확인되지 않은 사업장까지 자금이 몰렸다.
 

[그림5]에서 확인할 수 있듯 2020~2021년 동안 급격하게 오른 부동산 가격은 2022년 들어 급전직하했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조정되는 상황과 동시에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준금리가 올랐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표3]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보자. A건설사가 책임준공을 확약한 100억 원짜리 아파트 분양 공사가 있다고 치자. 토지 확보 금액으로 40억, 공사비로 30억이 필요해 본PF로 70억을 대출받는다. 금융비용 수수료는 10억 정도로 예상된다(70억 × 연이자율5% × 차입금평균사용기간 2년 = 7억, 각종 컨설팅 및 법률비용을 약 3%로 가정해 3억). 원래는 건설사와 시행사 각각 마진 10억씩을 남기는 사업이다. 그런데 공사비용이 자재대금 상승으로 평균 24%가 올라 37.2억이 되었다. 이자율은 10%대로 상승하였으니 금융비용과 수수료는 18억(70억 × 연이자율10% × 2년 = 14억, 각종 컨설팅 및 법률비용을 약 4%로 가정해 4억)으로 치솟았다. 분양가 하락 없이 100% 분양되어도 이미 95.2억이 비용이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 거품조정으로 분양가가 하락했다. 아파트매매가격지수 91을 적용할 경우 당장 건설사는 적자로 전환하고 차입금도 다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현행 매매가격 91억 – 공사원가 95.2억 = 손실 4.2억). 여기에 분양률마저 하락하면 건설사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고 아파트를 떠안는다.

그나마 아파트를 준공한 곳은 나은 지경일지 모른다. 40억을 주고 땅을 샀는데, 사업성이 불투명해 본PF 대출을 못 받고 멈춰있는 경우는 답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이자는 쌓여가고, 결국 만기연장에 실패하면 경매로 가야 하는데, 최근 브릿지론 단계 토지가 경매로 30~50%만큼 할인된 가격에 낙찰이 된다고 한다. 20~28억으로는 브릿지론 조차 다 못 갚기에, 시행사는 파산하고 채무보증을 선 건설사와 은행에 빚으로 쌓이게 된다. 그런데 지난 1년간 브리지론에서 착공 단계인 본PF로 진입한 사례가 거의 없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위의 표를 보면 브릿지론 금리가 100% 상승하고 공사비용도 24% 상승하는 동안 아파트 가격은 9%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똑같은 경제환경에서 코스피가 24% 하락하는 동안 말이다. 아직도 꺼질 거품이 많이 남았다는 증거다.

금리와 원자재 가격이 올랐던 2022년에 이미 위기는 예견되었다. 그런데 지난 1~2년간 위기가 유예되었다.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금융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광범하고, 자칫하다간 시행사와 건설사의 줄도산 및 협력사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정부는 일단 브릿지론, 본PF의 만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개입했다. 2023년 4월 PF 대주단 협약을 체결해 만기연장 의결 요건을 2/3로 낮추었다. 채권단이 모두 동의해야 만기를 연장하거나 이자를 탕감해주는 자율협약과 비교해봤을 때, 의결 요건을 낮추게 되면 대형 은행권을 중심으로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발을 맞추기 쉽기 때문이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빵빵한 풍선에 바람만 막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는 법이니, 터지기 직전 서서히 바람을 빼는 과정에 돌입한다. 지난해 12월 12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PF 사업장의 옥석가리기가 불가피하다고 발언하고, 일몰된 상태였던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12월 8일 국회에서 통과되어 26일 재시행되자 약속이나 한 듯 12월 28일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 금융당국이 결국 메스를 들이댄 것일까? [그림6]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을 살펴보자. 연체율 평균치는 2.4%대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증권사의 연체율은 17.3%에 달한다. 저축은행 사태 때 저축은행의 PF 대출 연체율이 25%였던 것과 비교해 적은 수치지만, 그때보다 제2금융권의 규모가 훨씬 커진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문제는 심각하다. 
 

건설사의 우발채무, 특히 앞서 살펴본 실질적인 우발채무의 규모를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벌써 다음 워크아웃 건설사는 어디냐는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린다. 태영건설은 지난해 6월 이미 신용등급이 강등되었고 자기자본대비 우발채무가 400%가 넘는 상황이었다. 특히 본PF보다 브릿지론 보증이 많았다. 롯데건설 역시 지난해 신용등급이 강등되었고 자기자본대비 PF 우발채무가 200%가 넘는 상황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실질적인 우발채무의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보여 안심할 수 없어 보인다. 2011년처럼 건설사의 줄도산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로 끝나선 안 된다

 
금융시스템 전반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부동산 PF 같은 문제에 대처할 때에는 딜레마에 처하기 쉽다. 소수가 고위험 투자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둬드릴 때는 그냥 지켜봐놓고, 그런 투자가 잘 안 될 때에는 왜 다수가 그 후폭풍을 감내해야 하냐는 저항에 부닥치게 된다. 정부가 금융기관 중심으로 85조원 시장안정기금을 마련하고 대주단 위주로 지원책을 강구해 혈세 지원은 피하겠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곳에 쓰였을 사회적 자원이 낭비되는 꼴이다. 게다가 최상목 기재부 장관은 “필요할 경우 한국은행도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유동성 지원을 뒷받침할 계획”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펀드 조성에 참여한 공공금융기관, 대주단에 포함된 국책은행이나 태영건설 PF 사업장에 지급보증을 한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존재하기에 지금도 이미 손실의 사회화는 진행중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기에는, 금융시스템이 마비되고 줄도산이 일어날 위험이 존재한다. 일이 잘못되면 태영건설의 협력사, 이와 거래하는 곳까지 부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아무 죄 없는 노동자의 임금체불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만기를 연장하는 동안 좀비기업 역시 계속해서 양산될 것이다. ‘옥석가리기’라는 말은 쉽지만, 이 과정에서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땅 주인처럼 단기간에 떼돈을 벌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거품이 꺼지고 나서 단기간에 무너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단죄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부동산 PF 시장이 확대하는 동안 증권사 간부가 차명으로 시행업체를 만들어서 PF를 통해 떼돈을 버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대형증권사 부동산 PF 성과급이 합계 8,510억 원에 달했다는 보도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고위험을 추구한 시장참여자에 대한 페널티가 필요하다. 또한, 근본적으로 빚으로 건물을 올리는 한국의 부동산 구조 전반을 손보겠다는 계획이 수립되어야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사회구성원 간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현재는 법정자본금 3억을 들고 신고만 하면 설립 가능한 시행사의 설립 요건을 강화할 수 있다. 선분양비율을 축소하거나 중도금 비중을 줄이는 정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 집값이 이례적으로 오르는 데는 거시경제적 상황과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가계의 비이성적인 행동과 기대도 한몫한다. 오르는 집값에 배팅해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키며 부동산 시장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현재와 같은 구조가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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