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북한의 전술핵 개발과 통일안 폐기, 어떻게 볼 것인가

한반도 비핵화만이 평화체제로 가는 유일한 길

임필수 | 정책교육실장


1. 서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한반도 비핵화’ 수정안 부결을 되돌아보며

 
2024년 3월 18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한반도 핵문제에 관한 수정동의안이 제출되었다. 2024년 사업계획에는 국제·한반도 정세를 다루면서 “미국에 대한 정치·경제·군사적 종속을 극복하고 국가적 자주성 실현과 평화지향의 외교정책 전환, 한반도 군사적 대결을 막기 위한 반전평화·세계비핵화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함”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수정안은 이 대목을 “고조되는 한반도 전쟁 위기와 핵 위협에 맞서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생산·반입·사용, 폭격기와 잠수함 등 핵자산 전개와 핵전쟁 훈련에 반대함.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전쟁과 핵무기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연대를 강화함”으로 수정하자고 제안했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며, 이를 확장하자는 게 제안의 취지였다. (1991년 남북한이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는 핵무기를 탑재한 비행기나 배가 영공, 영해로 들어오는 것도 금지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다룬다.) 다시 말하면, 세계 비핵화인가, 한반도 비핵화인가라는 문제를 쟁점으로 삼은 셈이었다. 

순전히 논리적으로 본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세계 비핵화의 일부이므로 (즉 한반도 비핵화는 세계 비핵화의 부분집합이므로) 세계 비핵화를 찬성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도 당연히 찬성해야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비핵화를 반대한다면, 세계 비핵화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세계 비핵화를 찬성한다고 말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왜 그런가. 여기에는 북한이 말을 꾸미는 전략이 숨어 있다.   

2016년 5월, 36년 만에 열린 북한의 7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핵무력을 중추로 삼는다”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재확인하면서도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 전파 방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2016년 6월 22일,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은 “세계 비핵화 전에는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 북한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위반하여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입장임에도, 자신에게 NPT 체제에서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여해달라, 그렇다면 나머지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는 것(핵 전파)을 방지하기 위해 협력하겠다, NPT 체제의 핵보유국이 모두 핵무기를 폐기하기 전까지는 자신도 (다른 핵보유국과 마찬가지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모순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북한의 말 꾸미기 전략에 비추어 볼 때, 세계 비핵화를 원론적으로는 찬성한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반대한다는 주장은 사실 북한의 핵보유를 지지하는 입장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대의원대회에서 수정동의안을 반대한 한 대의원은 정확히 이런 논리를 펼쳤다.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 대의원은 “한반도 내에서 핵무기 생산을 중단하자는 것은, 북핵 생산을 중단하라는 말이다. 만약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의 고데기만 빼앗는다면, 이것이 정의이고 평화인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비핵화는 미국의 핵부터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대의원대회 표결 결과를 보면, 수정안은 재석 대의원 992명 중 찬성 280명으로 과반에 한참 미달하여 부결되었다. 그렇다면 찬성에 손을 들지 않은 나머지 대의원 712명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지지한다는 뜻이었을까? 

대의원들의 판단이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지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으나, 필자는 북한의 핵전략·태세가 어떤 수준에 도달한 것인지, 그 군사적·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를 대의원들이 좀 더 분명히 이해한다면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은 여전히 △ 북한의 핵무기를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기 위한 외교적 협상수단(촉매형)이라거나, △ 외부의 핵공격을 억지하기 위한 방어적 수단(확증보복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전략은 핵무기를 방패로 삼아 저강도전쟁을 선제적으로 도발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 개발·배치 단계(비대칭적 확전형)로 진화한 지 꽤 오래 되었다. 더 이상 ‘외교용’이라거나 ‘방어용’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사실 북한의 ‘방어용’ 핵무기 개발도 필연적이거나 정당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1990년대, 2000년대 제네바합의나 6자회담 프로세스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평화공존 체제를 구축하는 길도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을 과장하는 자가발전을 통해서 이러한 길을 거부했을 따름이다. 물론 지금도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할 의사만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평화공존 체제의 길은 여전히 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① 북한의 핵전략·태세를 평가하기 위한 틀을 먼저 살펴보고, ② 이를 전제로 북한의 핵무장이 어디까지 왔는지 평가하고, 그 군사적·정치적 함의를 따져본다. 그리고 ③ 지난 해 말, 통일론을 폐기한다는 북한 당국의 공식적 발표의 의미도 검토한다. ④ 마지막으로 한국 윤석열 정부의 안보, 통일정책의 흐름도 평가한다. 
 
 

2. 북한의 현 단계 핵무기 전략·태세를 평가하기 위한 틀: 
신흥 핵무기국가의 핵전략·태세 분류  

 
미국, 소련과 비교해 봤을 때, 중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과거의) 남아공은 △ 핵무기고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 핵무기 비확산 체제라는 제약에 직면해 있거나, △ 민간정부-군대의 관계가 불안정하거나, △ 지역 안보 환경이 변덕스럽다는 상이한 조건에 처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핵전략·태세를 신중하게 결정하여, 자신들의 특수한 안보·정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억지력을 할당할 필요가 있었다. 즉 이들의 핵전략·태세는 미국이나 소련과 매우 달랐다. (영국은 미국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별도의 분석 대상이 아니다.) 

미국, 소련의 핵전략·태세는 대체로 대량보복, 신축반응, 상호확증파괴, 피해제한 등으로 알려졌는데, 핵무기 선제사용 능력과 충분한 보복능력을 포함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은 핵능력, 관리절차, 투명성 수준에서 미국·소련과 상당히 다르다. 미국의 정치학자 비핀 나랑은 이들의 핵전략·태세를 대략 ① 촉매형, ② 확증보복형, ③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구분했다.   
 
 
 

1) 촉매형: 1980년대의 남아공

(어떤 점에서는 1967~1991년의 이스라엘과 1980년대 말의 파키스탄)  
 
촉매형(catalystic)은 사활적 이익이 위협을 받을 때 제3자의 군사적·외교적 지원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남아공의 경우,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해 인정도 부정도 않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자국의 안보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핵무기 능력을 공개하겠다고(nuclear breakout) 압력을 가함으로써 미국의 지원을 촉진하고자 했다. 제3자의 중재를 목표로 하므로, 매우 제한적인 핵무기 보유고로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심지어 핵무기가 완전히 조립되거나 작동할 필요도 없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존력 있는 2차 타격 능력’(먼저 핵공격을 받은 후의 보복공격 능력)이나 전술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핵무기 보유 여부의 모호성을 유지해야 하므로, 핵무기 능력을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며, 핵무기를 국가의 공식적인 군사교리에 통합하지도 않는다. 

특히 만약 적대국이 월등하게 우월한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제한적인 핵능력으로 직접 적대국을 억지하려 들기보다는, 제3자의 지원을 촉진하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만약 직접적인 억지를 시도할 경우, 핵무기 비확산 체제에 따른 고강도 제재라든가, 적대국의 예방적 공격과 같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2) 확증보복형: 1964년 이후의 중국과 1974년 이후의 인도 

확증보복형(assured retaliation)을 실현하려면, 일정 수준의 피해를 보더라도 적대국의 핵심 전략목표들에 확실한 보복을 가할 수 있는 ‘생존력 있는 2차 타격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물론 보복이 반드시 즉각 이뤄져야 한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다.) 생존능력은 △ 관리, 지휘통제 절차를 통해서나 (예를 들어 분산, 은폐, 기만), △ 기술적 수단을 통해서 (예를 들어 해양 기반 핵능력, 예컨대 잠수함) 달성될 수 있다. 또한 상대방의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확실한 보복수단을 보유해야 한다. 

확증보복형은 촉매형에 비해 핵보유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적대국이 보복을 확신하여 선제공격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낳기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인 배치상태는 모호하게 유지하여 생존능력을 높일 수 있다. 물론 확증보복형도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 배치 패턴과 사용 절차가 중앙집중화되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전장 수준에서 즉각적으로 핵무기 사용을 결정하기 어렵다. 

확증보복형은 ‘거부에 의한 억지’(deterrence by denial) 미션, 즉 적대국이 전장에서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미션보다는, 높은 가치를 지닌 적대국의 목표물을 파괴하는 ‘징벌에 의한 억지’(deterrence by punishment)를 추구한다. 사실 ‘거부에 의한 억지’를 달성하기 위해 (전술)핵무기를 배치할 경우, 그러한 (전술)핵무기의 생존력이 떨어진다.  

종합하면, 확증보복형의 특징은 ‘2차 타격 능력’을 안전하게 보유하는 것이자, 전술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는 것이다. 1964년 이후의 중국과 1974년 이후의 인도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중국, 인도 양국은 핵무기를 선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선언했고, 핵무기 운용절차를 볼 때 선제사용이 실제로도 어려웠다. 
 
 
 

3) 비대칭적 확전형: 1960년 이후 프랑스, 1998년 이후 파키스탄 

비대칭적 확전형(asymmetric escalation)은 상대국의 지상 재래식 공격을 억지하기 위해, 분쟁의 초기 단계에 상대국의 군사/민간 목표물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는 신속하고 비대칭적 확전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비대칭적 확전형은 핵능력, 배치패턴, 사용조건을 투명성 있게 밝혀야 한다. 즉 그래야 적대국이 비대칭적 확전을 믿을 수 있다. 

재래식 공격을 확실성(credibility) 있게 억지하려면, (평상시에는 핵무기 배치가 중앙집중화되더라도) 핵무기가 전투수행 수단으로서 운용 상태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비대칭적 확전형은 핵자산을 신속하게 분산하고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하며, 전장의 최전선에 있는 최종사용자(야전사령관)에게 핵무기 사용 권한을 사전에 위임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상당한 지휘통제 압력을 낳으며, 의도하지 않은 핵무기 사용이라는 위험을 동반한다. 이는 핵무기 작전관리에 광대한 비용과 긴장을 초래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는 비대칭적 확전형을 채택한 국가가 반드시 확증보복 능력까지 갖출 필요는 없지만, 경험적으로 보면 그러한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북한은 반대의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볼 때 특별한 사례다.

그런데 비대칭적 확전형은 상대국의 재래식 공격을 억지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으나, 현상변경을 추구하는 국가가 ‘비대칭적 확전 능력’을 방패로 삼아서 먼저 저강도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따라서 비대칭적 확전형은 핵무기 보유 국가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공격적인 옵션이다. 그것은 핵무기의 수적인 우위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핵무력을 어떻게 확실성 있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냉전기에 프랑스는 소련이라는 재래식 전력도 우세하고 핵무기도 보유한 국가의 위협에 직면했다. 프랑스는 소련군에 대한 핵무기 선제사용을 선포했다. 1998년 핵실험 이후 파키스탄도 인도의 우세한 재래식 전력을 억지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전환했다. (파키스탄은 오랫동안 2차 보복능력을 보유하지 않았다.) 
 
 

2. 북한의 핵전략·태세는 어디까지 왔나? 

 
그렇다면 이러한 잣대로 살펴볼 때, 북한의 핵전략·태세는 어디까지 왔나? 먼저 2020년대 북한의 핵개발 흐름을 살펴보자.
 

1) 2020년대 북한의 핵개발 흐름

(1) 2021년 1월 5~12일 조선노동당 8차 대회
이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 고도화’를 선언했다. 핵무기 소형화와 전술무기화, 초대형 핵탄두, 1만 5천 km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극초음속활공비행체(HGV), 다탄두개별유도기술(MIRV), 중형잠수함 및 핵잠수함(SSN), 수중·지상 발사 고체형 ICBM, 수중 발사 핵전략무기(SLBM 또는 SLCM), 중장거리 순항미사일, 군사정찰위성 등 연구·개발 중인 무기까지 이례적으로 소개했다.

북한이 열거한 무기들을 자세히 보면, △ MD(Missile Defence, 미사일 방어 체제)망을 뚫을 수 있는 무기, △ 저강도 핵탄두 탑재, 정밀도 제고로 실제 사용 가능성을 높인 무기, △ 상대의 선제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력 있는 무기, △ 선제 또는 보복 공격을 할 수 있는 은밀성과 기동성이 있는 무기, △ 미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주일미군이나 주한미군에게 보복할 수 있는 무기 등이다. 

즉, 단순히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일·주한미군과 한반도 전역에 대한 생존력과 보복 능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2) 2022년 4월 16일 북한 ‘신형전술유도무기’(화성 11-라) 공개
북한은 ‘신형전술유도무기’가 전술핵 운용 무기체계라고 주장했다. 최대사거리가 110km 정도인데, 강원도 평강군에서 쏜다고 가정할 경우 수도권은 물론 강원도 춘천, 고성, 속초, 홍천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수도권 타격용 미사일인 셈이다.
 
(3) 2022년 4월 25일 김정은 위원장 핵 독트린 발표 
이때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 핵 독트린은 이렇다. “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리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전쟁 방지뿐 아니라 국가의 근본이익을 지키기 위해 핵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언급이었다. 

반면, 과거 2016년 5월 7차 노동당 대회에서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적대세력이 핵으로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핵선제 불사용 원칙을 6년 만에 거둬들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4)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 채택
법령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 전문 △ 1. 핵무력의 사명 △ 2. 핵무력의 구성 △ 3.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 △ 4. 핵무기 사용 결정의 집행 △ 5. 핵무기의 사용원칙 △ 6. 핵무기의 사용조건 △ 7. 핵무력의 정상적인 동원태세 △ 8. 핵무기의 안전한 유지 관리 및 보호 △ 9. 핵무력의 질·양적 강화와 개선 △ 10. 전파방지 △ 11. 기타. 이중에서 5조 사용원칙과 6조 사용조건 사이의 불일치를 주목해야 한다. 

먼저 5조 사용원칙에서는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 보유국과 야합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이 나라들을 상대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비핵국가란 한국을 뜻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종의 비핵국가에 대한 핵선제 불사용 원칙처럼 보인다. 그러나 6조 사용조건에서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열거했다. 

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륙무기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②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③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④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⑤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즉 “국가지도부나 전략적 대상에 대한 비핵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규정할 수 있는 바다. (이렇듯 모순적인 주장이 한 문서 안에 뒤섞여 있는 것이 북한의 특유한 화법이다.)
 
(5) 2023년 3월 28일, 조선중앙통신, 전술핵탄두 화산-31 공개
북한은 전술핵탄두를 공개하며, 이를 탑재할 수 있는 8종의 무기 일러스트도 함께 과시했다. 

(6) 2023년 8월 31일, 북한 '남반부 전 영토 점령' 시나리오까지 포함한 '전군지휘훈련' 공개
북한은 전날 남한 중요 지휘 거점과 작전비행장 초토화를 가상한 전술핵타격훈련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북한판 에이태큼스(KN-24) 2발을 고도 400m에서 공중폭발시켜 핵타격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7) 2023년 12월 26~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정은 위원장 “북남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입장을 새롭게 정립하고 대적(對敵)사업에서 단호한 정책전환을 할 데 대하여”, ‘국가방위력의 급진적 발전’ 방침 발표
(이는 다음 절에서 검토한다.) 
 
 

2) 북한의 핵전략·태세는 어디까지 왔나? 

북한의 최근 행태를 보면 ‘확증보복형’과 ‘비대칭적 확전형’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촉매형’ 수준은 이미 옛날에 지나갔다.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 역사를 보면 1990년대 후반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확보에 주력했다. 이는 미국을 잠재적 대상으로 하는 ‘확증보복형’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서는 전술핵무기 능력을 과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가 따져보아야 한다. 
 
(1)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협상용’이라는 시각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촉매형’이 함의하듯,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공개할 수 있다는 위협을 바탕으로 중국의 안전보장을 촉구하거나, 또한 한국·미국·일본과의 외교정상화(국교수립)를 협상하거나, 6자회담과 같이 동북아 다자간 안전보장체제를 구축하려 한다는 시각은 이미 옛날의 것이 되었다. (201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의 평화운동 내 일각에서는 이런 시각을 유지했다.)
 
(2) 그런데 북한이 ‘확증보복형’이나 ‘비대칭적 확전형’을 추구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미국의 적대정책이 궁극적인 원인”이라는 상투적인 시각을 넘어서, 1990년대 이후 한반도 정세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사실 1990년대 이후 한반도 정세는 김대중 정부 하의 ‘햇볕정책’이 장기 지속될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중국이나 인도가 ‘확증보복형’을 추구한 이유가 무엇이었나부터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이 핵보유를 결단한 중대한 계기는 1958년 ‘2차 대만해협 위기’(진먼[금문] 섬 포격전)였다. 중국이 “진먼 섬을 해방할 것”이라며 대규모 포격전을 개시하자, 미국은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으나 7함대를 파견하여 주변에서 일종의 무력시위를 하고, 진먼 섬 방어전에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시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전술핵무기 사용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게 나중에 문서로 밝혀졌다.) 간단히 말하면 중국이 현상변경, 즉 대만 통일을 추진할 때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핵개발에 착수한 셈이었다. 또한 인도가 핵개발을 결정한 중대한 계기는 1962년의 인도-중국전쟁(히말라야 일대의 국경갈등)에서 인도의 패배와 1964년 중국의 핵실험이었다. 다시 정리해보면, 중국과 인도의 핵개발은, 중국의 적극적인 현상변경(대만 통일, 영토 확장) 의지가 첫 번째 계기였고, 그 다음으로 중국과 인도의 영토분쟁이 두 번째 계기였다. 

이에 비견해볼 때, 1990년대 북한이 ‘확증보복형’ 전략·태세를 추구할 이유가 없다. 1990년대 초반 한반도는 탈냉전의 기운 속에서 미국의 전술핵무기 철수,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가능한 조건이 형성되었다. 북한이 현상변경(무력통일)을 추구하지 않는 한, 남한이나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여 현상변경을 추구할 가능성은 0이라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분명히 있고, 이를 단계적으로 실천했다고 한다면, 최소한 김대중 정부 하 ‘햇볕정책’이 장기적으로 지속했을 것이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개성공단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지속했고,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날이 갈수록 고도화됨에 따라 박근혜 정부 시기에 폐쇄되었다.) 

사실 이는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냉전 시기를 보더라도 사실인데, 냉전이란 인위적인 현상변경을 추진하지 않는 가운데, 직접적인 무력충돌 대신 체제경쟁을 해보자는 의미였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선건설 후통일’을 내세웠는데, 사실 바로 이것이 냉전의 논리였던 셈이다. 북한에 실제적 위협이 될 만한 일이 있었다면,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주한미군 감축논의가 나오면서 박정희 정부가 은밀히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가로막아 좌절되었다. 

좀 더 따져보면, 최소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나온 후, 20세기 ‘미 제국주의’는 영토적 팽창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자유무역, 자유기업이 가능한 국가 간 시스템을 구성하면 될 일이지, 직접적인 영토적 팽창은 무용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간 영토쟁탈전과 대비되는 개념이 필요하여, 20세기에 들어 ‘신식민주의’나 ‘신제국주의’와 같은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나아가 2020년대에 들어 북한이 급격하게 ‘비대칭적 확전형’ 전략·태세를 갖출 필요도 찾기가 어렵다. 물론 남한의 재래식 전력이 1970년대를 전환점으로 북한을 능가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지만, 그러한 재래식 전력차 추세가 2020년대에 갑자기 급변한 것은 아니다. 2020년대 초반은 문재인 정부 시기이기도 한데, 이때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갑자기 군사적으로 호전적인 태도를 취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북한의 핵개발 현황이 ‘확증보복형’이나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이런 전략·태세를 추구하는 이유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구조에서 찾기는 어렵다.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3) 그렇다면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몇 가지 추론이 있다. 
 
① 한국이나 미국이 직접적으로 선제공격을 하지 않더라도, ‘아랍의 봄’처럼 민중봉기가 발생하고 그것이 내전으로 비화될 때, 외부의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리비아 내전 당시 유엔의 비행금지구역 선포와 미국·영국·프랑스·아랍에미리트·카타르의 공습작전(오디세이 새벽 작전) 사례가 있다.   

② 김정일 위원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 권력을 승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외부에 과시함으로써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여, 권력승계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잡음’을 차단하고, ‘핵무력 완성’을 새 지도자의 위업으로 선전함으로써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북한의 의도적 긴장 조성은 김주애로의 권력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③ 한국이 직접적인 핵공격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킴으로써, 트럼프 정부 시기에 북한이 세웠던 ‘조선반도 비핵화’ 구상, 즉 북한의 최소한의 핵동결·핵감축과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구상을 한국이 받아들이고 이에 입각해 미국을 설득하는 역할을 하고, 대북제재 해제 시 한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책임지라고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 간에,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민중봉기의 진압을 위해서든, 3대세습에 이은 4대세습을 위해서든, 남한에 대한 ‘협박수단’이든 간에, 이것은 북한의 체제개혁이나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성보다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없다. 1980년대 말 한국의 좌파운동은 소련의 개방·개혁(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사회주의 재생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어떤 개방·개혁도 반대하는 보수적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4) 북한의 최근 핵전략·태세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비대칭적 확전형이 가장 위험한 핵전략·태세라고 진단하면서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 현상변경을 추구하는 국가가 ‘비대칭적 확전 능력’을 방패로 삼아서 먼저 저강도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 위임된 지휘체계에서는 핵 사용의 임계점이 낮아진다. 극단적인 경우, 현장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우발적인 핵전쟁의 가능성이 열린다.

나아가, 중앙대학교 백승욱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시진핑 신시대-한반도 핵위기라는 ‘연결된 위기’를 상정했다. 즉 현재의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 핵의 위험이 극대화, 증폭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재래식 무기 우위가 [북한] 핵 앞에 무력해지고, 타깃 대상으로 서울과 평양이 대칭적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평양을 포기할 수 있다면), 지상전이 아닌 형태로 초단기에 공습 형태로 종료되는 전쟁이 가능하다면, 북한에 유리한 극단적 비대칭성이 확인될 수 있다. 실제 전술핵이 투하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목표는 한국의 공납국화에 있을 것이다. 북한과 남한 사이에도 ‘일국양제’의 관계가 수립될 수 있는 것이다.” (백승욱, 『연결된 위기』, p. 324.)

한마디로 북한 최고권력은 평양시민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으므로, (즉 그런 일이 벌어져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으므로) 일종의 치킨게임(겁쟁이 게임)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뜻이다. 백 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제시하는데, 다음과 같다. 

△ (대만-중국의 분쟁과 동시에 북한과 남한 사이에 국지적 분쟁이 이어지면서) 북한이 남한 중부, 남부의 공군기지를 대상으로 전술핵을 발사한다. 
△ 북한은 평양이 공격받으면 미국 서부와 서울에 전략핵무기를 사용한다고 위협한다.
△ 그러면서 북한은 남한에 무조건 항복이나 상당한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불응 시 (또는 평양 공격 시) 서울 핵공격을 위협할 수 있고, 수도권 지역 어딘가에 발사할 수 있다. 
△ 협상에 응하면 일국양제의 연방제를 추진할 수 있다. 남한은 북한의 공납국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백승욱 교수 스스로 말하듯이 이는 매우 극단적 시나리오지만, 일종의 ‘사고실험’으로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고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충돌이 고조되는 세계적 불안정이라는 국제정세가 한반도에도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국제정세 인식을 위해서도, 이런 시나리오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 국면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변호, 옹호하는 입장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 북한 민중이나 남한 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측면에서도 긍정할 수 없다.  
 
 

4. 북한의 통일정책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2023년 12월 26~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북남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하고 대적(對敵)사업에서 단호한 정책전환을 할 데 대하여”를 발표했다. “우리[북한]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남조선 것들과의 관계를 보다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에 대해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인정하면서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라, 1월 1일 최선희 외무상은 리선권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남대적부문의 기구들을 폐지 및 정리하고 근본적인 투쟁원칙과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협의회를 개최했다.

또 한편 ‘국가방위력의 급진적 발전’ 방침에서는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핵위기 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1) 당면 남북관계에 미치는 함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이처럼 남한의 진보정부와 보수정부의 대북정책 목적이 모두 북한 흡수통일에 있다고 평가하고, 남한을 ‘식민지 졸개’로 비하한다는 것은 한국과의 어떤 대화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또한 남북한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규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2023년 7월 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8월 4일 정몽헌 회장 20주기를 계기로 추진 중인 금강산 방문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외무성을 통해 밝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정부 간 대화뿐만 아니라, 남북 간 모든 접촉을 거부한다는 함의가 있다. 또한 ‘외무성’을 통해 입장을 밝힌 것은 남북관계를 일반적인 국가 간 관계(즉 외무부의 업무)로 규정한다는 뜻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발표에 따라 통일전선부 기구를 축소하고, 통일부를 상대로 남북협상을 진행해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와 남한 민간단체와의 교류를 담당해온 민족화해협의회 등을 폐지하며, 대남 기구와 인원들을 외무성으로 이전했다. 
 
 

2) 통일정책 변화의 의미

북한은 고려연방제통일방안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남한이 흡수통일 정책을 폐기하지 않으므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마치 자신들은 전통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수사를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1990년대 초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말할 때부터, 이미 북한의 통일방안은 한국 측의 국가연합안과 본질적으로 동일해졌다. 그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도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안에 공통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란 사실상 통일방안이 아니라 ‘분단관리’ 방안이라고, 우리는 해석한 바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는 남과 북 각각이 내정뿐만 아니라 국방·외교권한도 행사하는데, 그렇다면 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라고 말할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권이 최종적으로 붕괴하는 1990년대 초반에 이르면, 북한으로서는 수세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으므로, 북한이 이러한 변화를 꾀했다. 북한이 남북 유엔동시가입을 결정했을 때에 이미 한반도 2국가 체제를 최종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2000년대 후반 ‘김일성 민족’을 들고 나왔는데, 이 역시 북한 주민을 ‘김일성 민족’으로 분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한반도 ‘2민족 2국가’ 체제의 한 편이 김일성 민족이라는 것이다. 

다만 남한의 통일운동은 6·15공동선언 후에도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여전히 통일방안이라고 강변했다. △ 사실은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있었으나, 북한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북한의 레토릭에 담긴 모순을 공개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거나, △ 정말로 북한이 여전히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믿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과거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무처장이었던 민경우 씨는 2000년대 초반, 북한이 통일운동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며 활동역량을 범민련과 같은 통일운동에서 민주노동당 쪽으로 이전하라는 지시를 내렸음에도, 남측 활동가들이 그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의장에게 이를 설명하고, 그 결과  “민족민주전선에 복무하는 민족민주정당 건설”과 민주노동당 입당을 결의한 ‘군자산의 약속’이 나왔다고 한다.
 
 

3) 향후 남한 통일운동(NL운동)의 진로에 관한 예상 

일단 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 북한은 남한의 흡수통일론 때문에 연방제통일을 폐기했지만 유사시에 핵무력을 동원한 영토완정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를 일종의 통일론(즉 무력통일론)으로 간주하고 현재로서는 통일의 유일한 방안으로 승인한다는 입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토론회에서는 이런 입장을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일부 주장을 인용해 본다. 
 
△ 장창준 한신대학교 통일평화정책연구센터 소장
“‘대사변’은 ‘통일대전’과 다르지 않다. 북의 기본 인식은 평화적 방법에 의해서건 비평화적 방법에 의해서건 분단 문제는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하고 있는 미제를 몰아내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싸움에서 북이 승리하면 그 자체가 통일이라는 의미”
“언론에서는 이번에 (북한이) 통일 정책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오히려 북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통일 의지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사에서 구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사실 굉장히 폭력적인 시기를 지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이런 전쟁위기가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 터널은 지나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분단 체제라는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통일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내는 것”
 
△ 손정목 통일시대연구원 부원장
“한반도 정세가 대단히 심각하고 위험하지만, 전 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전체 인민을 위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걸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강, 벽, 산을 넘는 중이다. 그 과정의 고통은 어쩔 수 없다. 쉽게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대사변’은 남쪽 분들이 ‘그럼 우리는 뭐하지’ 고민할 일은 아니다. ‘대사변’이란 전쟁을 통해 평정한다는 것이고 그 자체가 통일이다. 남쪽에 어떻게 조치를 하냐는 그 뒤의 이야기니까 그걸 우리가 고민하면 머리 아프다.” 

한편, 한호석 정세연구소장은 1월 말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사정은 전혀 달라요. [북한은] 통일대전을 하려는 게 아니고, 대한민국을 점령, 편입하려는 거예요... 조국통일대전은 북측 영토인 남반부를 무력으로 ‘해방’하고, 전민족회의를 소집하고, 거기서 남, 북, 해외 대표자들이 통일의 절차, 방법, 일정을 합의해서 연방제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에요. 즉 연방제 통일과 통일대전은 상호 모순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나리오가 아니에요. 대한민국을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토로 편입시키겠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근본적이고 급격한 정책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호석 소장의 인터뷰는 이런 정책변화가 불가피하고 수용해야만 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2) 통일운동을 중단하고 반제(반미반일)운동을 중심으로 활동을 재편하려는 흐름
 
그러나 공개된 연단에서 이런 주장을 앞으로도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반미반일운동을 중심으로 활동을 재편하고자 할 것이다. 

북한의 돌연한 입장 발표 후, 북한 쪽의 통일운동 기구, 즉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북측본부와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도 해산을 결정했다. 이러한 북한 측 조치에 조응하여 2024년 2월 17일 범민련 남측본부도 해산과 함께, ‘새로운 전국적 반제자주운동연합체’(가칭 한국자주화운동연합)를 결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3월 15일,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도 해산을 발표했는데, 이들도 앞으로 “해외 각 지역, 단체마다 특성을 살려 반미, 반일, 반윤석열 투쟁을 과감히 전개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범민련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통일운동을 주도했던 조직이며, 6·15민족공동위원회는 2000년대 이후 남북 민간통일운동의 교류사업을 총괄했던 조직이라는 점에서, 두 조직의 해산이 함의하는 바가 매우 크다. 북한 측의 돌연한 입장 전환이 양 조직의 해산에 결정적 계기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범민련 남측본부나 6·15해외측위원회 모두 ‘통일’이란 말을 지워내며, ‘자주’, ‘반미·반일’을 내걸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3) 북한은 남한의 흡수통일론 때문에 (연방제)통일을 폐기했다고 하지만, 남한은 통일운동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보는 입장

북한은 남한의 흡수통일론 때문에 (연방제)통일을 폐기했다고 하지만, 남한은 통일운동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보는 입장도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의 향후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6·15남측위원회는 북한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는 민족해방파(NL) 계열의 단체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1월 31일, 6·15남측위원회 정기공동대표회의는 결의문을 통해서 “모든 것을 청산하려 하거나 기존 활동을 관성적으로 유지하려는 양측면의 편향을 경계하며”, “지역, 부문, 단체, 인사들과 함께 상반기 동안 깊은 토론을 거쳐”,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역량을 재구축하여, 조직의 전망을 다시 밝힐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5월 14일 6·15남측위원회는 “새로운 자주평화통일운동 연대체의 이름을 함께 지어주세요”라며 새로운 명칭 공모를 제안했다. 이들의 사업계획을 보면, ‘통일을 지향하되, 평화와 자주에 집중하자’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사업계획에서 제안한 8·15행사의 명칭도 통일이 빠지고 자주·평화가 들어간 ‘8·15자주평화대회’다. 통일 대신 자주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범민련 남측본부나 6·15해외측위원회와 공통점이 있으나, ‘평화’가 포함된다는 차이가 있다. 이는 6·15남측위원회에는 시민단체나 종교단체도 참여한다는 차이를 반영하는 듯하다. 최종적인 조직 명칭에 ‘통일’이 포함될지, 아닐지도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렇지만 북한이 6·15북측위원회를 비롯한 모든 통일운동 기구를 해산하고, 남북 민간교류 사업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에서, 새로운 조직이 실질적인 조직력과 활동력을 보여줄지 의문이다. 
 
(4) 반미·친북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평화적 2국가 체제’ 주장

또 일각에서는 반미·친북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평화적인 2국가 체제’를 주장할 수도 있다. 1월 31일 진보당 주최 한반도 정세 국회토론회에서 정태흥 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장이 한 발언은 이런 범주에 속한다.  
 
“북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국가로 규정을 했는데, 아무리 국제정세가 변화되고 남북관계가 강대강 대결에 있다 할지라도 남이든 북이든 민족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반대다. 그 어떤 법률이든 군사훈련이든 말 폭탄이든,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해서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있어서 안 될 일이고, 남과 북은 전쟁은 절대로 불가라고 하는 것을 확인한다.” 

“진보당은 외교정책에서 현재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신냉전이냐 다극화냐 등등으로 국제질서가 대전환되는 국면에서 진영외교는 안 된다, 비동맹 중립외교로 가야 되는 거 아니겠냐 생각하고 있다. 적대적 두 국가가 아니라 평화적 두 국가로 가자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고, 당면해서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로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 그리고 남북을 포함해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이 신냉전으로 갈 것이 아니라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형성하는 데 한반도가 기여하는 게 좋겠다고 하는 기본 원칙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정태흥 씨는 1990년대 학생운동 당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으로서, 범민련의 범민족대회가 아니라 민족회의(문익환 목사의 새로운 통일운동체)의 8·15 행사로 학생들을 이끌었던 학생운동 그룹의 지도자였다. 사실 이와 관련된 역사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문익환 목사는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이나 국가연합안이 반드시 통일에 역행하는 게 아니라, 통일로 가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이는 한반도 2국가 체제와 동전 하나의 차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12월 말 입장 발표 후, 지금까지도 진보당의 공식입장은 분명하지 않다. 진보당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했고, 독자적인 별도의 총선정책도 발표하지 않았다. 즉 이것이 정태흥 원장의 개인적 견해에 가까운 것인지, 당론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4) 평가 

최근 북한의 입장을 일종의 ‘무력통일론’으로 보고 통일방안으로 승인해야 한다는 입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 또한 연방제 통일론을 고수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남는 문제는 정태흥 씨와 같은 ‘평화적인 2국가 체제론’이다. 일종의 ‘햇볕정책의 장기지속’ 상태인 평화적인 2국가 체제는 사실 한국사회 전반이 이미 승인한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햇볕정책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가 존재했고, 북한이 비핵화를 유지하는 한 보수세력도 사실상 승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러한 평화적인 2국가 체제의 길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태흥 씨가 ‘비동맹 중립외교’를 전제로 하는 것은, 남한이 그렇게 한다면 핵을 보유한 북한과 비동맹 남한이 평화적인 2국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그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핵을 보유한 북한이나, 그런 북한과 경제교류를 하는 남한이나 모두 세계적인 핵무기 비확산 체제 하에서 제재를 당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실패한 국가’로 가는 길밖에 없다. 남북한이 모두 제재를 당하는 상태에서, 예를 들어 중국이나 러시아에 의존해서 국가적 생명을 이어가는 상태가 평화적인 2국가 체제인지, 그것이 과연 남한과 북한의 민중이 원하는 상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는 어불성설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우산 밑으로 들어가는 길 외에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백승욱 교수가 말한 ‘공납국화’의 한 가지 형태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정태흥 씨와 같은 입장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입장도 분명하게 밝혀야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면,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라면, 남북 간의 평화적인 2국가 체제라는 그의 주장 역시 공허한 상상일 따름이다.
 
 

5.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핵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2023년 4월 26일 한미정상회담과 한미핵협의그룹(NCG) 창설 

2023년 4월 2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워싱턴 선언’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는 핵을 포함한 미국 역량을 총동원하여 지원된다”고 명기했다. 한미핵협의그룹(NCG)도 창설하기로 했다. “양 정상은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핵협의그룹 설립을 선언하였다.” 또한 “정례적으로 ‘확장억제 수단 운용연습’(TTX)과 ‘핵 대응 도상연습’(TTS)을 실시하고, 한반도 인근 전략자산의 전개 빈도와 강도를 확대하여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를 발휘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2023년 7월 18일, NCG 첫 회의가 열렸다. 공동언론발표문에 따르면, “▵보안 및 정보공유 절차 개발, ▵위기 및 유사시 핵 협의 및 소통 체계, ▵관련 기획, 작전, 연습, 시뮬레이션, 훈련 및 투자 활동에 대한 협력 및 개발 등 다양한 업무체계를 확립했다.”

2023년 12월 15일, 2차 NCG 회의 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024년 8월 을지자유의방패(UFS) 훈련 등 한미 연합 훈련에 핵 작전 시나리오를 포함해서 함께 훈련할 계획”을 밝혔다. 북한의 전면전에 대비한 한미 연합 작계(작전 계획) 5015에는 핵 보복(핵우산)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북한의 대남 핵 공격 시 미국의 확장 억제가 가동되려면 3대 핵전력(전략핵폭격기, 전략핵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핵무기를 총괄하는 미 전략사령부의 작계가 가동돼야 하는데 이는 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권한 밖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군 무기를 활용하는 재래식 전쟁 작계와 미 핵전력(확장 억제) 작계가 따로 작동했다. 그러나 NCG 합의에 따라 향후에는 한국군의 재래식 무기와 미국의 핵무기를 통합해 운용하는 연습을 실시하기로 했다.
 
 

2) NCG 합의의 의미

북한은 2022년 4월 전술핵무기 ‘운반수단’을 공개하고, 2023년 3월 전술핵무기 ‘탄두’를 공개했다. 남한을 전술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 실제 상황임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그에 따라, 만약 북한이 전술핵무기를 남한에 사용할 경우, 미국의 핵우산이 정말로 펴지겠냐는 의구심이 확산했다. 즉 북한이 미국도 전략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다면,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백승욱 교수가 제시한 ‘극단적’ 시나리오도 이와 같다.) 그러면서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자적인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위배된다.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3. 남과 북은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미 간의 합의는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경계 내에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이 이미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폐기한 셈이므로, 한국도 폐기해도 된다는 게 남한 독자핵무장론이나 전술핵재배치론의 전제이지만, 사회운동의 관점에서도 한국까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한계를 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는 두 가지 맹점이 있었다. 첫째, 남한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지상 시설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즉 핵무기를 탑재한 군함이 영해로 들어오거나 항구에 정박하는 것이라든가, 핵무기를 탑재한 군용기가 (착륙하지 않고) 영공으로 들어오는 것은 선언을 위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밝힌 “한반도 인근 전략자산의 전개 빈도와 강도를 확대하여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를 발휘하도록 한다”는 계획은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이는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에 이르러서야 문서로 명기되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을 제공한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일관성 있게 취한다.” 그러나 북미 제네바합의 역시 북한의 비핵화 선언 불이행으로 인해 폐기된 상황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이 희망하는 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는 장차 이런 문제까지 다뤄야 한다. 

한편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중적 입장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안민석 의원은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서 (자체 핵무장 카드를) 계속 쥐고 있으면서 협상용으로 썼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이 카드를 포기해 버렸다”고 하는가 하면, “북한이 핵으로 공격하면 핵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것인데 한반도는 핵 전쟁터가 되고 우리 민족은 말살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한이 독자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북한 핵에 대해서 핵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진의를 알 수 없는 서로 모순된 주장을 동시에 펼쳤다. 이는 현 정부를 무조건 깎아내리려는 의도로밖에는 해석하기 어려웠다. 

또 한편 최근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의 전쟁 조장, 한반도가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를 발간했다. 3월 4~14일 진행되는 한미연합군사연습 ‘자유의 방패’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의 전쟁조장”은 너무 일방적인 주장이다. 일단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실질적 합의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연합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을 먼저 파기한 것은 북한이고, 결정적인 계기는 2022년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였다. 북한이 남한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전술핵무기 프로그램을 진척시키고 있는 와중에, 그에 대응하기 위한 남한 쪽의 움직임만 ‘전쟁조장’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일방적이다. 최소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싱가포르 합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재개’를 주장해야 타당하다. 
 
 

3) 윤석열 대통령 3·1절 경축사와 통일정책

최근 북한의 통일정책 변화에 맞대응하여,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경축사에서 통일을 유독 강조했다.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입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입니다. 우리의 통일 노력이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이 되고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북한 주민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거두지 않을 것이며,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탈북민들이 우리와 함께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따뜻하게 보듬어 나갈 것입니다. 자유로운 통일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과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역사적, 헌법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현 단계에서는 북한 인권 개선, 탈북민 지원을 위한 노력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윤 정부는 8월 중에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자유와 인권의 확장으로서의 통일”을 강조함으로써 흡수통일론을 제시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남북·과거사 해법 없는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 ‘공허한 독백’이다”, 《경향신문》, 3월 1일. “이념적 통일 방안 아닌 평화적·단계적 통일 방안 세워야”, 《경향신문》, 3월 3일.) 그러나 과거 햇볕정책을 추구한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방안에서도 평화공존, 국가연합 단계를 넘어 통일로 가는 길에서는 북한이 다당제와 자유시장경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향신문》의 기준으로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방안도 흡수통일론이다. 

필자가 보기에 흡수통일론은 인위적으로, 적극적으로 북한의 ‘레짐 체인지’를 유도하거나, 무력을 동원한 ‘영토완정’을 시도하는 경우로 해석해야 타당하다. 그러나 현 정부나 앞으로 등장할 정부가 이를 실행할 의지나 수단이 현실적으로 존재할지는 의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장기적인 햇볕정책’(분단관리)이 실상 남한의 보수정당도, 민주당도, 심지어 진보정당도 수용한 대안이었다. 

물론 이런 햇볕정책도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점진적으로 유도한다는 구상이 깔려 있었다. 남북 간의 경제협력이 일방적으로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라 남과 북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경제성’이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북한의 경제 법제·관습이 모두 바뀔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 사람은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것이 곧 ‘평화번영정책’의 골자였다. (그렇지만 북한이 이를 달가워한 것은 아닌데, 북한이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에 냉랭하게 대한 것도 이런 사정이 있었다.)

당시 사회진보연대는 장기적인 햇볕정책 국면에서는 경제협력이 본격화되고 남한의 자본이 진출함에 따라, 한국 자본의 해외진출에서 나타나는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노동권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고, 또한 평화군축의 진척이라는 문제도 대두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즉 햇볕정책의 이면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 셈이었다. 

어쨌든 앞으로 예측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동안, 보수정당이든 민주당이든 누가 집권하든 간에 실제적인 의미에서의 ‘흡수통일’을 추진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다만 북한인권 문제나 탈북민 문제에 있어서 보수정당과 민주당의 입장 차이는 예상할 수 있다.) 
 
 

6. 결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 

 
긴 글을 마무리하며, 독자들이 꼭 기억하기를 바라는 세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북한의 현재 핵무기 전략·태세는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남한을 목표물로 삼는 전술핵 개발에 치중하고 있다.
 
1980~90년대 당시 북한의 초보적 핵 프로그램은 아직 핵물질(플루토늄) 추출에 머물렀기에 외부의 지원이나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여지가 있었더라고 하더라도, 그 후 북한의 행보는 차원을 달리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를 가장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나선 데다가, 2010년대 후반 이래 전술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 북한은 핵무기를 방패로 삼아 먼저 남한에 저강도전쟁을 도발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북한은 각종 무력시위와 공식적인 매체를 통해서 남한이 전술핵무기의 타깃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둘째, 북한의 핵개발은 외부적 압력(즉 예컨대 ‘미국의 적대시정책’)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다.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치중했고, 문재인 정부 시기에 전술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제네바합의, 햇볕정책, 6자회담 프로세스를 돌이켜볼 때, 북한으로서는 핵개발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정도로 한국과 미국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여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대규모 재래식 전쟁 위협을 가해서 북한이 전술핵무기 개발에 나섰다고 말할 수 없다. 북한의 핵개발은 북한 정권의 내적인 필요에 따라 북한이 선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외부적 압력을 핑계로 삼는 북한 핵 옹호론은 사실에 입각한 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자가발전한 허구적 스토리일 따름이다. 

셋째,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한 평화로운 한반도 평화공존 체제는 성립할 수 없다. 사회운동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옹호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이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던 ‘조선반도 비핵화’, 즉 북한의 일정한 핵동결·핵감축과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2019년 ‘하노이 노딜’을 통해 입증되었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한, 남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까지 북한과 관계 개선을 추진할 가능성도 0에 가깝다. 역으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향해 입장을 전환할 경우,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프로세스는 재개될 수 있다. 그러한 길이 현재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 국제사회로부터의 제재와 고립에 비해 나쁜 길이 될 수 없다. 만약 그러한 길이 나쁜 길이라고 여긴다면, 통일운동은 과거 6·15공동선언과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것이 과오였다고 먼저 반성해야 마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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