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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2.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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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복제를 둘러싼 쟁점들

김준범 | 편집부장
2002년 12월 인간복제 전문기업인 클로네이드사의 부아셀리에 박사는 최초로 체세포복제를 통해 복제아 이브가 탄생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전 세계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두고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그동안 기술적 한계보다 윤리적, 법적 장벽에 막혀 있던 인간복제에 성공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그 주장의 진위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간복제가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의 일이라는 생각을 전 세계인들에게 심어주었다. 또한 복제아 이브와 복제 대상자의 유전적 일체성을 보여주는 검증을 진행하겠다는 클로네이드사의 발표는 주장의 진위에 대한 의구심보다는 눈앞에 다가온 인간복제에 대한 다양한 그림들을 그리게 했다. 애초부터 인간배아 복제는 '배아를 생명으로 볼 것인가?' 라는 매우 논쟁적인 윤리적 문제를 동반했기 때문에 복제아의 탄생이 이러한 논쟁의 가운데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 같은 발표 후 한달 여, 아직도 일본인 복제아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기는 하지만, 클로네이드사는 애초에 공언했던 유전자 검사를 복제아의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명목으로 중단했다. 이는 그동안 잠복되어 있던 여러 문제들을 다시 전면에 부상시켰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쟁들은 주되게 윤리적 문제와 연계되어 있는 기술적 문제, 인간배아에 대한 윤리적 문제, 그리고 외부적인 논점인 클로네이드사 및 그 배후인 라헬과 라헬리안에 대한 호기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라헬이 어떤 인물이고 라헬리안 무브먼트가 어떤 것인지 여기서 다룰 생각은 없다. 인간복제 논쟁에서 이들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인간복제에 대한 논쟁은 이미 복제양 돌리가 처음 탄생하던 1996년부터 이미 격렬한 양상으로 진행되었고, 각 국에서 인간복제에 대한 법안 제정이라는 형태로 일정하게 종결됐다. 하지만 법안의 제정은 다만 최소한의 합의 차원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논쟁은 여전히 뜨거울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인간복제를 둘러싼 쟁점들인 인간복제의 기술적인 문제와 윤리적 문제의 이중성을 다룰 것이다. 그 전에 인간복제 그리고 인간배아복제의 개요를 그려보자.

인간복제 그리고 인간 배아 복제?

인간복제는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그 안에 생식세포를 제외한 다른 개체의 유전자를 주입하여 여성의 자궁에 착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개체는 세포제공자와 유전적으로 99.9% 같은 개체가 된다. 인간배아복제는 이러한 복제의 과정을 초기배아단계(보통 수정 후 4-5일 정도)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배아단계에서는 이후 각 기관으로 분화되는 줄기세포가 형성된다. 줄기세포는 쉽게 말하면 만능세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떠한 조직으로도 발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줄기세포가 난치병 치료에 혁명적 변화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줄기세포를 병든 조직에 이식할 경우 건강한 조직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그룹과 바이오 기업들에서는 이번 클로네이드사의 해프닝이 배아복제 실험의 전면적 금지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 인간복제는 복제한 배아를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킴으로써 이후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복제는 치료를 위한 인간배아복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가진다. 이는 불임부부를 위한 것으로 제기되고는 있으나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라는 보다 복잡한 문제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기술적 문제 - 한계의 안과 밖

대략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인간복제기술은 과학자들의 견해처럼 다른 포유류보다 복제가 쉬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성공률은 약 1%에 불과하다. 또한 1996년 최초로 탄생한 복제양 돌리에게서 이상증세가 발견되는 등, 탄생한 개체의 건강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은 실정이다. 게다가 복제 양 돌리가 무려 276번의 실패 끝에 탄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배아 뿐 아니라 임신한 여성에게도 많은 사고의 위험이 있다. 클로네이드사는 "총 10명의 여성에 착상된 배아 중 5명이 출산에 성공했다"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성공률을 발표했는데, 이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통상 복제성공률은 1~5%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아직까지는 복제의 전 과정을 기술적으로 안전하게 통제하는 데에 어떤 기술적 문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설령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 발명된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발생'이라는 무한한 확률의 장에서 부득불 위험을 내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본질적인 기술적 한계 이외에도 인간복제에는 외재적인 실행의 한계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윤리적 문제를 들어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인간 복제 실험은 앞서 말했던 초기 배아단계까지만 허용되거나 여성의 자궁에 착상하는 경우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이러한 점에서 애초 클로네이드사가 가장 처음 지사를 낸 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물론 한국이 생명공학에서 첨단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관련법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복제를 둘러싸고 가장 첨예한 지점은 이러한 기술적 한계 내, 외부를 형성하고 있는 윤리적 문제다.

윤리적 문제 1. - 논쟁적인 윤리

통상 인간복제에 대해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창조가)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종교적 시각에서부터, 현대판 우생학의 재출현이라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의 비판이 있다. 한편 생명의 창조라는 문제 이외에 인간생명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 라는 일견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이때 전통적인 쟁점으로서, 발생의 어느 단계까지가 인간인가 라는 문제가 (재)등장한다. 통상 초기 배아단계까지는 인간 생명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가능성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다.
하지만 이런 류의 윤리적 문제제기를 따라가다 보면 막히는 지점이 있다. 무엇보다 문제제기가 다분히 추상적인, 즉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든지 인간은 존엄하다 식의 되뇌임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가장 극렬하게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집단은 종교단체고, 논거는 궁극적으로 신의 섭리다. 하지만 인간배아복제 기술이 난치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환자들이나 불임부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이점을 들이민다면, 위와 같은 주장들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위의 문제제기는 과학기술이 스스로 비인간적이고 비사회적인 발전을 지속한다는 식의, 과학에 대한 묵시록적 신비화를 동반한다. 동시에 과학기술의 대립 항으로 인간의 존엄이나 자연의 순리 등을 설정함으로써 후자를 더욱 관념화·추상화한다. 그러나 양자 모두 인간복제의 구체적 문제 혹은 유전공학의 발전에 대해 전혀 무능하다. 인간복제 혹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공학의 발전을 규정하는 실재적인 이데올로기 및 기술발전이 야기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성을 결여한 비판은 구체적인 필요와 요구를 배경으로 한 기술의 출현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복제와 관련하여 제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윤리적 문제가 무엇일까? 첫째는 여성이고 둘째는 기술의 산업적 지향이다. 후자는 결국 바이오 테크놀로지가 현재의 불평등한 조건에서는 무산자들을 더욱더 소외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비판과 관련된다. 이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지만, 지금의 문제와 관련해 보자면 다소 추상적이다. 오히려 전자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현재의 문제와 관련된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갈등 요소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문제2 - 쟁점은 생명의 존엄이 아닌 사회적 인간의 존엄이다.

인간복제 혹은 인간 배아복제기술이 공통으로 전제하는 것은 '난자'다. 건강한 난자는 배아복제에서 필수적이다. 이로부터 하나의 문제가 나온다: 건강한 난자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 인간복제의 경우라면, 건강한 자궁도 필요하다. 또 하나의 문제: 건강한 자궁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현재의 인간배아복제 혹은 인간복제가 상정하는 해결책은, 여성의 몸을 그녀 자신의 소유로부터 이탈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매매를 통해, 때로는 보다 완화된 형태로서 기증을 통해. 이는 지금까지의 신체에 대한 자기-소유의 박탈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까지 나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장기매매가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일대일 대응관계인 반면, 인간배아복제나 인간복제의 경우 기술의 특성상 일대일 대응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많은 양의 난자를 확보할 수 있다면 언제든 원하는 이의 체세포를 끼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여성 신체 상품화의 강화로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매매라는 극단적 상품화를 경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희생'이란 명분으로 난자 추출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수사를 붙이더라도 난자의 제공은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인 약탈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생명윤리를 그리고 인간생명의 존엄을 말하기 전에 먼저 사고해야 할 것은, 바로 신체에 대한 그녀 자신의 결정권이다. 배아가 생명인가 라는 문제 이전에 여성의 신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라는 쟁점을 먼저 제기해야 한다. 전자를 주장하는 가운데 오히려 후자가 억압될 수 있음을 우리는 다음의 사례에서 똑똑히 확인한다:

"그것이 세포 덩어리일 뿐이라든가 세포막 몇 개로 둘러싸여 있는 액체일 뿐이라는, 언뜻 보기에는 과학적인 것 같은 관찰을 동원해서 배아를 생명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배아 실험을 관철하기 위한 억지일 수 있다. 차라리 임신중절이 아기를 지우는 것이지만 임신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상태를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 낫다" -이필렬/방송대 교수(웹진 프레시안에서 인용)-

필자는 인간복제에 반대한다. 하지만 반대 논리가 위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반대한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던 여성의 신체에 대한 문제가 죄의식 차원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장래 어머니가 될) 여성에게 만연하고 있다는 부당전제 하에, 죄를 진 것을 시인하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논리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문제를 우회하고, 배아를 여성의 신체에서 분리시켜 사회적 여성의 존엄을 자궁의 가치로만 제한한다. 또한 인간복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인간 배아가 생명인가 아닌가 라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인가 식의 악순환으로 한정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문제는 철저히 억압된다.

결론
- 문제는 기술혁신과 보수적 관점의 대립이 아닌 여성권의 문제이다-

과학기술과 관련한 논쟁에서 진정한 쟁점은 "기술"의 무제한적 발전 대(對) 이를 막아내려는 "인간"적인 목소리의 대립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발전시키는 사회적 요소 및 기술이 끼칠 효과를 논의의 전면에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복제를 둘러싼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간복제의 문제를 추상적인 미래 혹은 보수적 윤리에 의지하여 제기해선 안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구체적 혁신을 가져오는 기술적 진보 앞에 보수적 가치는 무기력하게 스스로의 입장을 철회했던 것을 기억하자. 기계의 도입에 저항했던 수공업 공장주들이 기계의 가격이 내림과 동시에 숙련 노동자들을 배반했던 과거를 떠올린다면, 인간복제에 대한 관점은 명확하다: 더 이상 여성의 신체를 자신의 결정에서 박탈하지 말라! 기술의 발전을 산업과 결합된 기술의 결정으로부터 사회적인 논의의 장으로 전화시키는 것은, 물론 이와 동시에 진행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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