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1999.6.1호
첨부파일
5특집4b정보현장.hwp

IC카드와 현장 통제 수단

김유신 | 현대자동차 노도조합 아산지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이른바 카드문화는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카드는 편리와 정보화의 척도(?)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에 부응하듯 정부는 2천년 3월까지 주민등록증을 카드화(전자주민등록증) 시키겠다는 발표하였다. 개인에 관한 모든 정보와 공적 사항이 손바닥만한 카드 한 장에 압축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전자주민등록증 제도에 심각한 우려(개인정보의 누출 및 침해)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노동현장에서는 인력관리의 효율성이라는 명목아래 개인의 출․퇴근 및 근무태도에 관한 사항을 점검할 수 있는 전자정보시스템이 도입됐다.
이른바 I.C카드, R.F카드가 이 시스템의 대표적 결과물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인력관리의 효율성은 완전히 실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용도로 이같은 시스템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당초의 목적을 벗어났음에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처음부터 인력관리의 효율성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한 것이며 애초에 불순한 의도로 도입했음이 명백하다.

먼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I.C카드 도입과정과 노동자 탄압의 현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은 지난 95년, 전 자동 기계화 라인을 목적으로 설립된 생산공장이다. 신설공장이다 보니 회사측은 신입사원의 입사과정에서 자신들의 리스트에 의한 노동운동출신은 입사과정에서 모두 탈락시켰으며, 울산의 진급케이스의 고참사원들을 대거 아산공장에 전입시켰다.
신입사원이 1/3을 차지하고, 울산 공장에서 전입한 고참 조합원 대부분의 진급(조장, 반장, 기사)으로 인해 사측과 밀접한(?) 조합원이 되다보니, 현장은 자연히 사측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측은 즉시 현장장악에 돌입했다.
현장장악에 돌입한 사측 관리자들은 향우회를 개최하고, 등산모임, 조기축구회 등 현장의 분위기를 잡아 나갔다. 이후 전자정보감시체제의 한 방편인 I.C카드가 도입됐다. 현장통제와 노무관리 강화의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현재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는 각 정문과 출입구에 단말기를 설치하여 출근, 퇴근, 지각, 조퇴, 외출시 단말기에 I.C카드를 찍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카드를 이용해 노동자들의 근무관리 상황을 체크하고 있음에도, 각반의 회의실에서 다시 한번 조․반장으로부터 출근부식의 근태관리(근무태도관리)를 하고 있다. 이해 할 수 없는 이중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I.C카드를 찍지 않았을 때는 징계처리를 하겠다고 협박하고, 경고장을 남발하기도 한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ᄀ 조합원은 I.C카드를 찍지 않았다고 회사측으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이 조합원은 출근시간이 단 몇십 초 늦는 바람에 I.C카드를 찍을 여유조차도 없이(콤베이어의 특성상) 작업장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사측은 카드 미처리를 이유로 즉시 자기들의 “관리체제에 반항을 하였다”며 경고장을 발부했다. 이 조합원은 이후 사측 관리자들로부터 잦은 면담을 요구받았고 조반장의 계속되는 질책, 그리고 사측의 회유에 넘어간 조합원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아 지금은 회사에 출근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이같은 I.C카드의 폐해가 계속되면서 조합원들은 이의 불필요성과 함께 노동자탄압의 빌미로 이용됨을 지적하며 철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97년 1월,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은 전면적인 투쟁을 선언하며 사측과 힘겨운 싸움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철폐투쟁 첫날, 온몸에 쇠사슬을 엮고 카드제 폐지를 요구했으며, 이에 부응하여 조합원의 80%이상이 그날 I.C카드를 찍지 않았다.
이미 조합원들 대다수가 I.C카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중관리와 인격모독까지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사측에 반발심을 나타냈었던 것이다.
이에 불안을 느낀 사측은 기사, 반장, 조장을 교육시키고 카드처리를 하지 않은 조합원들을 상대로 회유와 면담을 실시했다. 면담과 회유로도 굽히지 않는 조합원들은 부장과 과장들이 직접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사측은 보다 집요한 협박수단을 동원했는데 이는 대부분 신입사원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왜냐하면 신입사원의 경우 입사시 보증인 2명을 세워야 했는데 대부분의 신입사원은 가족이나 친척, 이웃사람, 회사의 부․과장 등 친밀한 사람을 그 보증인으로 두었기 때문에 사측은 이 약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사측은 보증인의 가정에 직접 전화를 걸어 “카드를 찍지 않으면 해고를 시키겠다. 만약 불법파업이 있으면 그 손해보상에 당신들도 책임을 져야한다.”며 압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비참하지만 가족과 친구의 만류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아직 출범초기라 조직적 힘을 갖추지 못했던 아산공장의 노동자들은 어용화된 하급 관리자들의 비열한 놀음에 눈물을 머금어야만 했다.
I.C카드 제도를 철폐 시키지 못한 채 끝냈던 이 투쟁으로 인해 더 큰 문제를 안게 됐다.(즉 그것은 현장노동자들의 분열로 이어졌다)
또한 그 결과 다른 작업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는데, 현대자동차 전주지부의 R.F카드제 도입,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본 조의 현장통제 및 모답스 공법 및 햅스공법〈작업자의 기계화〉도입 등으로 이어졌다.
노동현장은, I.C카드제 철폐투쟁에 적극적이었던 조합원과 그렇지 못했던 조합원간에 불신이 생기고, 급기야 노동조합의 조합원인 기사․반장․조장은 사측의 하수인으로 전락해갔다. 말 그대로 우리의 현장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한편 투쟁의 과정에 나타난 상황을 보면 (노동자들이 이렇게까지 철폐를 요구하는) I.C카드 제도를 계속 유지하려는 사측의 논리는 너무나 빈약하다.
사측의 변명은 『외국에서도 I.C카드를 사용하는 회사가 있다. 새로 시작하는 공장인 만큼,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였다. 또한 『이중적 근태(근무태도)관리를 하는 것은 모순이 있지만, 조․반장이 근태관리를 하는 것은 원가관리 자료로 사용하기 위함이고, 조속히 전산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중적 근태관리를 안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들 스스로도 인력관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노골적인 현장통제 수단으로 이용하려 함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위의 약속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현장은 이중적 근태관리로 일관하고 있다.
즉 사측은 I.C카드의 모순점을 인정하지만, 말 잘 듣는 노동자로 만들기 위한 노무관리와 현장 장악을 위해서는 I.C카드제도를 계속 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한편 I.C카드 제도는 엄청난 자본 낭비를 초래하기도 했다. 단말기 설치 및 프로그램 개발비만해도 엄청나다. 단말기 한 대 가격이 수억을 호가하며 프로그램개발비, 관리비 등을 합하면 어림잡아 1백억 단위가 된다.
I.M.F 구제금융시대를 맞아 돌이켜 보면 이 엄청난 비용낭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의문이다. 노동통제를 위해 쏟아 부은 이같은 비용이 결과적으로 무급휴직자나 정리해고자를 양산했다면 무리한 추측인가?
사측이 이같이 투자가치 없는 I.C카드 제도와 노동자의 생계를 맞바꾸었다면 그 누구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사측은 차 잘 팔릴 때는 “노․사는 한가족, 한마음”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와 경영진의 잘못으로 인한 위기에 직면해, “너희들이 참아라”고 을러대고 있다.
“너희들만 참아라! 고통을 전담해라!”는 것이다.

노동현장에서는 콤베이어 시스템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또한 숨쉴 틈이 없다. HAPIS(햅스)공법의 도입후 콤베이어는 M/H(적정노동강도)로 움직이지만 노동자에게 적정노동강도는 가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08시가 되면 1초의 여유도 없이 콤베이어는 팽팽 돌아가고, 오후 8시가 되어서야 라인이 정지되는 우리의 작업장, 이곳에 I.C카드는 필요치 않다.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가는 콤베이어 때문이라도 일분 일초도 늦음 없이 힘든 몸 이끌고 출근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히려 I.C카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근태관리를 하는 사용자측에 필요한 것이다.
또한 I.C카드제도와 함께 도입한 것이 APRO 21. 이 또한 현장 조합원을 개별화하려는 의도로 도입된 것으로 I.C카드제도의 현장통제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부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APRO 21은 간략히 말해, 현장의 조별, 반별로 한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일주에 한번 진행하는 ‘분임토의’로 ‘회사내 경조사 문제나 생산성 향상’ 등 사내의 문제를 그 주요 토론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노동자들의 자율성과 의식성을 높여주려는 회사의 아주 건강한(?) 발상이다.
하지만 문제는 위의 토론 내용 자체가 총무과의 검사를 통해 순위로 매겨져 나온다는 것이다. 일등부터 꼴찌까지 선정하고, 일등에게는 상품을 지급하고 꼴찌에게는 그에 해당하는 질책이 가해진다. 또한 말 잘 듣고, 몸이 아파도 잔업 및 특근을 빠지지 않는, 사용주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조합원들에게는 금강산, 일본, 중국에 연수차원으로 여행을 보내주기도 한다.
이는 조합원간의 불신과 경쟁력을 높임으로서 동료간 개별화를 조성하고, 조합원 상호간의 분열을 획책하여 동료간에도 마음 편하게 술자리 한번 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만든다.
또한 I.C카드문제 등 회사에 대한 불만은 APRO 21을 통해 맺어진 조․반장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매개로 무마되는 것이다.
한편 사측은 APRO 21과 함께 조성된 향우회 및 동우회를 이용하여 조합원을 매수 및 협박하여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활동가들 및 신입사원중의 활동성향이 강한 조합원을 강압하여 사측이 원하는 자진퇴사를 유도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바로 옆 동료와 진실한 이야기조차 못하는 실정이 되어가고 있다.

현장통제의 수단으로, 노무강화의 목적으로, 조합원의 개별화를 목표로 도입한 제도 및 장치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의 하나인 I.C 카드 또한 두말할 나위 없는 통제수단이며 다만 선진국형 노무관리라는 꼬리표만 다를 뿐이다. 사측이 여타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강변할지라도, 현장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이 이 제도에 극구 반대하는 이유는 '사측의 의도 자체'에 있다.
애초부터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 뿐더러 현장 활동가들의 활동 폭을 대폭 축소시켜 노동조합의 무력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도입되는 현실 앞에서 그 누구도 전자정보감시체제의 긍정성을 말할 수는 없다.
즉 사측이 진정으로 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려고 방향을 선회하지 않는 이상, 어떤 형태의 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그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노동자들의 찬성 또한 얻을 수 없다. 그 제도가 선진국형이든 발전된 형태이든 말이다.
진정코 노동자가 관리의 대상이 아닌 진정한 한 가족의 일원임을 인정할 때, 그때서야 효율적인 노무관리는 가능한 것이다.
주제어
노동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