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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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진보진영, 각성이 필요하다

무명 | 민주노동당 당원
2월 8일, 개정 선거법이 통과됐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개정'이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반대하면서 민주당 개혁안의 핵심이었던 1인2표제, 즉 정당투표제가 무산됐다. 혹자는 부르주아 정치체제 내의 미미한 제도적 차이를 둘러싼 샅바싸움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수정당 기층조직과 지역 토호 사이의 결탁에 기반하는 지역구 중심의 1인1표제 투표방식은 민중들을 지역주의 정치구조의 포로, 정치적 백치로 만들어내는 핵심 고리의 하나이다. 이 핵심 고리 중 하나가 지배 세력 내의 일부에 의해서라도 변경된다면 보수정치체제에 정면 도전하고자 하는 모든 세력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 문제를 제도정치에 진출한 민중운동 일부, 즉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의 문제일 뿐이라고 애써 축소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제도정치 진출을 부차화하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일체의 제도권 정치 바깥에서 찾고자 하는 흐름이 존재한다면 이들은 안심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번의 선거법 개혁이 어떤 식으로 왜곡되고 말았는가를 생각해보면 결코 그런 안이한 생각에 머물 수는 없다. 1인2표제의 무산이 민주당과 자민련 사이의 긴장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관계는 '자민련 없는 DJ 정권 안정화'를 꾀한 최근의 민주당 행보에서 비롯된 것인데, 여기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바로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낙천운동이었다.
진보진영의 상당수 인사들까지도 이 운동을 '시민혁명' 운운하며 반기고 있는데, 정작 이 운동은 보수정치권 일부에 대한 민중주의적 반대에 머물고 있다. 몇몇 부패·무능 국회의원에 대한 인물 중심 비판에 그치고 있으며, 보수정치세력 전반에 대한 비판이나 제도 차원의 비판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한계 때문에 이 운동은 민주당의 개혁 색깔 덧칠하기와 한나라당의 영남권 재단결, 자민련의 충청권 재단결 전략에 놀아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총선시민연대는 선거법이 파행적으로 통과된 뒤에도 사회단체의 총선 참여에 대한 조항만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과학'이 없는 '도덕'은 왜곡된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교훈을 새삼 확인하게된다.

왜 총선시민연대가 정세를 주도하는 대중적 흐름이 되었는가? 언제부터 시민운동이 이 땅의 역사를 선도하는 세력이 되었는가? 시민사회의 발전 어쩌구 하면서 잘난 이론들을 들이댄다면, 96년 겨울의 총파업은 그럼 뭐였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는 오히려 민주노총 등 민중운동세력의 선도에 수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이 뒤따랐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역사의 대도전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그런데도 왜 진보세력은 백치같은 침묵만 계속하고 있는가? 민주노총이 총선시민연대의 문전박대를 당하는 수모가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란 말인가?


<b>공전을 거듭한 민주노동당 총선 논쟁 </b>

책임을 묻는다면, 진보정치세력의 다수파인 민주노동당부터 물고 늘어지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왜 이토록 무기력한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를 알려면 이 조직 내에서 11월부터 시작된 총선 논의를 우선 들여다봐야 한다.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의 총선 논의는 초기에 극단적인 두 입장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소위 '비례대표제 승부론'인데, 1인1표제가 바뀌지 않을 경우 지역구에 100명 정도의 후보를 내고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10% 가량의 지지를 얻어 비례대표 의석 3-5석을 얻자는 것이었다. 이 안은 당이 총선 이후 법적으로 해산되지 않기 위해서는 1명 이상의 당선자를 내거나 전국 득표율이 2%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현행 선거법 조항 중 특히 뒷부분에 주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안의 문제는 너무나 명확하다.
우선, 민주노동당만이 아니라 민주진보진영을 총동원한다 하더라도 100명 가량의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20억이라는 돈도 현재 민주진보진영의 규모로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가깝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안의 고민이 민주노동당의 법적인 생존 여부에 매몰되어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소위 '총선 보이콧론'이었다. 지역구에서 1명 이상을 당선시키는 것도 난망할뿐더러 비례대표제 승부론도 몽상에 가까우니 민주노동당은 총선에 당의 이름으로 참가하지 말고 당 차원에서는 선거 보이콧 운동을 벌이자는 것이 그 내용이다. 민주노동당 이름으로 선거에 나가겠다는 개별 후보를 굳이 제압하면서까지 불참을 고수해야 한다고 이들이 주장하는 근저에는 역시 민주노동당의 법적인 해산 여부에 대한 근심이 깔려 있다.

1월 29일의 민주노동당 창당대의원대회까지 계속된 조직내 논의 과정 속에서 일단 비례대표제 승부론은 평당원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으로 판명됐다. 1월 8-9일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준비위원회의 간부수련회에 참가한 300여명 규모의 활동가들은 각 지부의 수준에 맞게 지부 당원들의 결의에 따라 후보를 출마시킨다는 상식의 평형을 유지했다.
합의안으로 모아진 것은 '전략 지역 출마론'이라고 불리는 안과 가까웠는데, 그 내용은 후보를 출마시킬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지역과 노동자 밀집 지역, 전략적인 중요성을 지닌 지역(가령 신자유주의의 대변자가 출마한다든지, 광역 중심이라든지)에 30여명 규모의 후보를 내자는 것이었다. 개별 당원들이 어떤 안을 지지하느냐 여부와는 상관없이 조직내 토론의 화학적 융합은 결국 이 안을 향했다.

하지만, 전략 지역 출마론을 제기했던 동지들의 일부(특히, 민주노동당내 의견그룹인 '평등세상을 향한 노동자·민중 실천연대[약칭 '평등연대'])가 제시했던 근본 문제의식 자체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선거에 몇 명의 후보를 낼까 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구호를 부르짖어 어떤 싸움판을 만들까가 더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고, 민주노동당의 법적 생존 여부보다는 당이 진정으로 민주진보진영의 인정을 받아 백년대계의 생존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으며,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선도로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의 대중조직들과 전국연합, 노동자의 힘, 전국노운협, 청년진보당 등의 정치조직들을 아우르는 민중운동 선거연합체를 구성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러나, 정작 조직내 논의 과정에서는 이러한 근본 문제의식은 별반 주목을 받지 못했고, 30여명 수준의 총선 참여라는 산술적 결론만이 부각되었다. 이는 위에서 비례대표제 승부론과 총선 보이콧론을 설명하면서 지적한 바 있는 현재 민주노동당 내 다수의 특정한 강박, 즉 민주노동당의 법적인 생존 여부에 대한 강박이 논의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그 양상이 보다 심각하긴 했지만, 아무튼 조직 내 다수가 이 부분에 과도하게 집착한 면이 있다.


<b>진보세력, 언제까지 넋놓고 있을 것인가?</b>

물론 현재 진보진영 정치부문의 다수를 포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법적 생존 문제가 결코 가벼운 사안인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이번에도 원내 진출에 실패하거나 전국 2% 이상 득표에 실패해서 당 간판을 떼는 (혹은 떼었다 다시 다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는 현재 민주노동당에 참여해 있는 민주진보진영 다수에게만 타격인 것이 아니라 이에 비판적인 세력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에 참여한 선진 인자들의 해체는 다른 정파들의 리크루트 대상 역시 복구될 수 없을 정도로 해체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법적 생존 여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역설적으로 해악적이었다. 조직의 지혜와 상상력이 이러한 강박을 중심으로 맴돌면서 민주노동당은 현재 상황을 선도적으로 타개하고 동시에 자신의 법적 생존 역시 보다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길로부터 한참 멀어지게 됐다. 그 길이란 아직 민주노동당을 미덥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참여와 지지를 유보하고 있는 진보진영의 세력들을 신자유주의 반대 구조개혁의 전망으로 함께 일으켜 세움으로써 전체 민중이 신명을 되찾을 수 있는 '혁명적인' 계기를 만드는 전략이었다.
즉, 개혁 후보를 지지하는 전선체를 조직하여 공통의 개혁 강령을 합의하고 일종의 연합공천을 행하며 이러한 단결된 힘의 과시를 통해 대중적인 개혁 압박 운동을 만들어내는 전략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공허한 총선 논의에 빠져 있는 가운데, 정작 이런 계기를 만든 것은 총선시민연대였다.

그리고 총선시민연대는, 전에도 결코 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민중운동 세력의 백치적인 침묵이 계속되는 가운데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 모처럼의 대중적 흐름을 집권 세력의 시나리오에 송두리째 바치고 있다.
한편 2월 8일 이후에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식물적인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때 잠시 총선 보이콧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는 한국노총 내 개혁파 왼쪽으로부터 모든 대중운동·진보정치 세력을 포괄하는 선거연합으로 나아가자는 논의가 활발히 개진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반응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니, 사실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창당의 그 순간부터 지도부가 없는 조직이 되어버렸다고 하는 것이 옳다. 창당대의원대회에서 평등연대 동지들이 제기한 지도부 구성안(대의원대회에서 전국집행위원을 뽑아 이들로 하여금 지도부를 구성하게 하는 안)이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당내 주류와 민주노총이 어정쩡하게 타협한 노동조합식 지도부 구성안(전국집행위원이 일부는 각 지부에서 광역별로, 일부는 새로 구성되는 중앙위원회에서 선출되는 안)이 통과되면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3월 중순에야 구성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전까지 민주노동당은 각각의 지부가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중앙에는 대표와 몇몇 부대표, 사무총장의 과두제 조직만이 존재하는 일종의 선거연합에 불과하다. 그 자신이 선거연합에 불과한 '당'이 더 큰 선거연합의 구성에 소극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절망은 이러한 무능함이 전국연합이나 노동자의 힘에 그대로 대입되어도 역시 진실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민주노동당이 무능한 것까지는 좋다고 해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마저 없다는 것은 절망적이다. 민중운동의 전선체를 시급히 건설하자는 주장은 정치조직 지도부 중 그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오직 기층의 젊은 활동가들만이 역사의 벽을 느끼면서 밑바닥에서 자신들의 고통과 고민들을 토로하고 있을 뿐이다.


<b>안락사를 피하는 법 </b>

원래 진보세력 총선 참여의 최대 의의는 의석 확보 외에 총선 활동을 통한 강령의 구체화 및 대대적 선전, 지도력의 새로운 구성에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식이라면 이번 총선은 전체 진보진영의 안락사로 향하는 여정이 될 지 모른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비록 민주노동당이 한 두 석의 의석을 얻어 생존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깨지지 않은 상태에서 얻어진 그런 지역적 성과라면 오히려 새로운 문제들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전국적인 지도력이 전혀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얻어진 뜻밖의 성과는 민주노동당 내에, 그리고 전체 민중운동 내에 일부 지방분파세력이 할거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시급히 필요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민중운동이 여태껏 생존하고 발전해온 역사 과정을 다시 한 번 감행하는 것이다. 대중운동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운동가들 자신마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회생을 보여주었던 87년 6월과 같은, 96, 97년 겨울과 같은 승부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승부수가 감행되기 위해서는 일단 총선시민연대에 시민운동 단체들이 규합되어 있는 것만큼은 진보세력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이 바로 이러한 움직임의 견인차가 되어야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출발점이 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 바깥의 동지들부터라도 먼저 일어서야 한다.
현실화되지는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러한 목소리는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 전체의 대대적 재편성에서 젊고 원칙있는 세력이 주도권을 쥐는 데 유효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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