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1999.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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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각1집시법 개악.hwp

개정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

김도형 |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기존에 국회에 상정되어 있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라고 약칭함)에 대한 개정안들을 모두 폐기하고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위원회 대안(代案)으로 제출한 집시법 개정안이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대통령의 공포 절차뿐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은 이 경우에 딱 들어 맞는다. 국민과 사회 일반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소리소문 없이 진행된 집시법 개정에 대하여 뒤늦게 사회운동단체들이 비난과 함께 저지하고자 나섰으나 이미 물 건너간 일이 되어버렸다.

개정된 집시법의 문제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타인의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에서 집회․시위를 개최하는 경우 그 거주자 또는 관리자가 재산․시설이나 사생활의 평온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이유로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는 때에는 집회․시위를 금지 또한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언뜻 보면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규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집회 및 시위의 장소 제한을 ‘주거지역’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이와 유사한 장소’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주거지역과 유사한 장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주거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장소는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확대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다. 예컨대, 해고된 노동자들이 회사 앞에서 부당해고에 대한 시위를 하려고 할 때 만일 그 회사 주변에 주거 용도로도 이용되는 오피스텔이 위치하는 경우에는 비록 그 지역이 주거지역이 아닌 상가지역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주거지역과 유사한 장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이 ‘유사한 장소’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앞으로 집회나 시위를 개최할 수 있는 장소의 범위가 매우 협소해 질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집회․시위가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것이 아니고 해당 거주자 또는 관리자의 시설보호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찰에서 당신의 거주지역에서 불온(?)한 집회를 열겠다고 집회신고서가 접수되었으니 시설보호 요청을 하라고 할 때 이를 거절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대학생들의 학내 집회에 대하여 학교 당국에 시설보호 요청을 할 것을 종용한 뒤 이를 빌미로, 수백 명의 전경들을 풀어 학교 주변을 원천 봉쇄하고 불법검문을 자행함으로써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둘째, 집회․시위의 신고를 받은 관할 경찰서장은 집회․시위의 보호와 공공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최소한의 범위를 정하여 질서유지선을 설정할 수 있고 이와 같이 설정된 질서유지선을 정당한 이유 없이 침범하여 그 효용을 해한 자에 대하여는 경우에는 최고 6개월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끔 개정하였다.
질서유지선의 설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관할 경찰서장에게 일방적인 설정권한을 부여하였고, 그 설정 요건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채 ‘집회․시위의 보호와 공공의 질서유지’라는 매우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서유지선을 설정하려면 적어도 사전에 집회․시위의 주최자와 협의할 것을 요건으로 하여야 하고, 질서유지선을 설정할 수 있는 사유에 대하여도 ‘일정 수 이상의 인원이 집회․시위에 참가함으로써 주변의 교통소통에 상당한 지장을 주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범위 내’라는 등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번에 개정된 내용은 관할 경찰서장이 질서유지선 설정권한을 남용하게 될 소지가 상당할 것으로 우려되는바, 그 남용에 대한 적절한 구제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한편 집회와 시위의 보호를 위해 질서유지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질서유지선 침범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도 불필요한 과잉규제에 해당한다. 질서유지선을 침범하여 폭력의 행사 등으로 나아가는 경우에 일반 형법 규정에 의해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데, 단지 질서유지선을 침범하였다는 것만을 이유로 징역형에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형벌권 행사의 적정한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신고한 목적․일시․장소․방법 등 그 범위를 현저하게 일탈하여 집회․시위가 진행되는 경우에는 해산명령을 할 수 있게끔 개정하였는바, 이와 같이 집회․시위에 대한 해산명령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 이번 집시법 개악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애초에 신고한 내용 그대로 집회․시위가 실제로 진행되는 경우란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예컨대, 신고서 상에 기재한 참가예정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집회․시위에 참가하게 되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 집회․시위가 폭력시위 등 기존의 해산사유에는 해당되지 않더라도, 단지 신고한 참가예정인원보다 많은 사람이 참가하였다는 것만을 이유로 관할 경찰서장은 해산을 요구할 수 있고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해산명령 이후 공권력을 투입하여 집회․시위를 진압하더라도 앞으로는 정당한 공무집행이 된다.
참가예정인원을 많이 기재하여 신고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전혀 현실을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이다. 그 동안 시국 관련 각종 집회에서 경찰 측에서 가장 많이 딴죽을 걸어 왔던 것이 참가예정인원수였다. ‘왜 그렇게 참가인원이 많으냐, 인원수를 줄여서 신고해라’, ‘노동자 집회에 학생들이 왜 참가하느냐, 학생 수가 500명을 넘기면 안된다’, ‘그 장소에 어떻게 그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느냐, 참가인원수를 줄이지 않으려면 장소를 변경하라’라는 등등으로 시비를 걸며 집회 신고서를 접수하지 않고 반려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왔다.
일례로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는 신고서 상에 기재한 시간을 훨씬 초과하여 서울역에서부터 명동성당까지 행진이 이루어졌고, 행진에 참가한 사람도 예정인원의 배를 넘겼다. 그렇지만 당시 노동절 집회가 아무런 문제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마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까지는 경찰이 집회를 해산시킬 수 있는 명분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 본 바와 같이 이번 집시법 개악은 ① 집회․시위의 장소에 대한 광범위한 제한 가능성, ② 경찰의 일방적인 질서유지선 설정권 부여와 질서유지선 침범에 대한 형사처벌, ③ 집회․시위에 대한 해산명령권 행사 범위의 확대라는 3가지로 요약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보안법이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히고 있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있어서 대표적인 악법은 집시법이었다. 그 당시에 학생운동 하다가 감옥 갔다면 거의 대부분이 집시법위반이었다. 그러한 악법이 그 동안의 오명에서 다소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이루어낸 산물의 하나로서 1989년 여소야대 국회에서 집시법이 전면 손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개악으로 말미암아 집시법은 다시금 과거의 영화(?)를 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소리소문 없이 ‘국민에 대한 날치기’로 국회에서 통과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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