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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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춘 권하는 사회

장귀연 | 회원,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성 경찰서장이 스타로 떠올랐다. 태풍 아닌, 서울 경찰청 특별단속팀 테제베-허리케인의 바람이 몰아친다. 원조교제라는 망국병의 온상인 채팅 사이트를 집중 단속하겠다고도 한다. 매매춘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일부에서는 이 기회에 매매춘 자체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 성인이든 미성년이든 우리나라에서는 매매춘 자체가 불법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침소봉대, 발본색원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 나, 신문을 펼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니, 매매춘은 적극 권장해야 되는 것 아니던가?


인격적 가치는 교환 가치로, 수많은 자유는 유일한 계약의 자유로!

# 남자: 한 번 놀지 않을래? 내가 10만원 줄게.
여자: 10만원?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요.
남자: 아쭈, 네가 얼굴값 하는구나. 그래, 내 20만원 준다. 어때? (지갑에서 수표 두 장을 꺼낸다.)

# 나: (아르바이트 구직광고를 낸 후 전화를 받았다) 1주일 세 번에 40만원이라면 안되겠는데요. 시간 내기도 어렵고요.
과외선생 구하는 아줌마: 그래도 생각 좀 해주세요. 더 이상은 무리예요.
나: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일주일에 두 번 가는 대신 3시간씩 해 드릴게요.

# 프로야구 선수: 올 시즌에는 타율도 올랐는데, 연봉인상이 거의 없다는 게 말이 돼요?
구단 협상 프런트: 이것 봐. 이번 시즌에 웬만한 선수치고 3할 안 넘은 타자 있어? 예년하고는 기준이 다르다고.
프로야구 선수: 그래도 보이지 않는 팀 공헌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저도 제 몫은 했습니다. 5천은 채워주셔야 합니다.



셋 다 자신의 몸값(!)을 협상하는 상황이다. 그것도 구매자와 판매자가 자유롭게 만나 협상으로 계약을 맺는 가장 이상적인 시장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위의 상황들은 개인의 노동계약과 관련된 것이다. 외모, 지식, 육체적 힘, 사고력… 이러한 모든 것은 한 인간을 구성하는 속성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에서 '계약'을 통해 자신의 그러한 속성이 제공할 수 있는 능력들을 판매한다. 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판매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첫번째 상황에서, 구매자는 성 서비스를 제공받고, 판매자는 그것을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는다. 성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과 성적 매력이라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유 계약을 맺는 것이 왜 문제인가?
팔 매(賣)와 살 매(買)가 보여주고 있듯이 매매춘은 하나의 시장이다. 물론 성이란 것은 한 인간의 육체와 정신과 감정으로 구성된 인격적 속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매일 자신의 속성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지 않은가.
노동 '시장'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인간적 속성을 상품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가치를 선전하며 구매자를 찾지 않는가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자유라고 말해진다. 시장의 자유. 자유로운 시장과 자유로운 개인간 경쟁은 사회를 가장 조화롭고 효율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원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시장과 경쟁의 원리는 가능한 한 사회의 많은 영역에 확산될수록 좋다. 인간의 속성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시장에서도 경쟁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개별 계약이 가장 이상적이며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해고든 채용이든 자유롭게 계약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계약과정에 끼여드는 것은 시장의 왜곡으로서 악으로 간주된다. 하이에크는 사회적 정의니, 가치니 하는 것을 내세워 시장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니, 차라리 애매모호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사회적 정의라는 가치를 내세워 시장을 왜곡하기보다는, 계약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하는 편이 더 정의에 걸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매매춘 단속은 공권력까지 동원한 무지막지한 시장 왜곡이라 할 만하다. 왜 개인의 자유로운 계약을 반대하는가? 어째서 증명되지 않는 낡은 가치의 문제를 개입시켜 시장을 강압적으로 없애려 하는가? 매매춘을 뿌리뽑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장을 정비하여 자유 계약이 보장되게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불을 향해 돌진하는 부나방은 자유롭다

<# 매매춘 여성: 기술 가르쳐 준다고 하지만, 그거 배워서 취직해봤자 100만원도 제대로 못 버는데요.여기서 일하면 300만원 가까이 벌 수 있어요. 그런 일을 버리기가 쉽나요?

#원조교제 소녀: 아저씨, 백화점 가요. 내가 봐 둔 옷이 있거든요. 아이참, 여관은 있다가 저녁 때 가면 되잖아요. 그 옷 사줄 거죠? 아이, 신나.

# 벤처기업으로 직장을 옮기려는 내 친구: 스톡옵션이 있거든. 700주 준다는데, 지금 거기 주식 값이 30만원이야. 그럼 2억이 넘잖아. 물론 지금 시세가 계속 가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1억 5천은 되지 않겠어?


매춘 여성이 다른 직업을 갖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번 매매춘과의 전쟁 때 몇몇 발빠른 기업들이 매춘 여성을 (화장품 외판원 같은 것으로) 채용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화장품 외판원이나 미용사 시다는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하고서 한 달에 몇십만원이 고작이다.
다른 자원, 다른 상품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매춘 여성에게는 그런 것이 분수에 맞는 것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 중에서, 그나마 가장 상품가치가 높은 것이 성적 매력이라는 자원인데 말이다. 자원의 효율적 분배라는 면에서도 말이 안 되는 거다.

직업은 자기실현의 수단이라는 말을 도덕 교과서에서 본 듯 하지만, 아주 부분적으로라도 그것이 가능한 노동과 직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결국 인격적 속성은 구매자의 통제에 놓여진 상품일 뿐이다. 그 대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모든 만족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돈은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으며 낡은 편견들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 더군다나 돈을 향한 돌진, 그 개인간 경쟁이야말로 사회가 조화롭고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원리라고 주장되지 않는가.
매일매일 주식으로 갑자기 갑부가 된 사람들이 신문에 등장하고 100만원으로 1억 버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책이 불티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회 발전의 방향인 양 제시된다. 그러니 개인은 가물거리는 돈의 불빛을 잡으려고 떠도는 부나방일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 부나방의 자유.
원조교제를 하는 소녀들은 아르바이트라고 주장한다. 주유소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고.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며, 비난하기도 어렵다.
물론 매매춘은 불건전하고 비생산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주식으로 떼돈 번 사람들은? 나는 어쨌든 자신의 노동으로 돈을 버는 매춘 여성 쪽이 훨씬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주식 졸부들을 상찬하는 데 열렬한 신문들이 왜 자신의 자원과 능력을 최대한 활용한 고소득 매춘 여성은 신지식인으로 내세우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공상할 자유도 있다

자유로운 시장이 정의와 선(善)의 유일한 원칙으로 간주되는 사회, 돈을 목표로 한 무한 경쟁이 장려되는 사회는, 결국 '매매춘 권장하는 사회'이다.
나는 매춘을 하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 중 성적 매력이라는 자원은 매우 빈약한 편이어서 매매춘 시장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전혀 경쟁력이 없다. 그 대신 나는 다른 자원을 가지고 있어서 그 시장에서 나의 상품가격을 높이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그래서 나는 매춘 여성을 비난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다른 직업훈련을 시키라고 목소리 높이지도 않는다. 그들이 보유한 자원 중 그나마 가장 높은 가격에 상품화될 수 있는 것이 성이다. 나 역시 자신의 비싼 자원을 포기하고 미용사나 화장품 외판원을 하지는 않는데, 그들에게 그 자원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차라리 시장을 왜곡하는 지나친 중간착취나 범죄를 없애 자유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매매춘 시장을 잘 정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국가가 시장에 대해 할 일이 바로 그것이라지 않는가?

그러나, 매매춘은 나쁜 것이다. 나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인간의 자기 실현 및 행복과 결부되어야 할 성이, 계약과 거래의 대상으로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주체의 자기 실현을 가능케 해야 할 인간의 속성이 객체화되는 전형적인 소외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과 존엄과 가치에 관련된 문제이다. 그 가치는 교환 가치가 아니라 인격적 가치인 것이다.

계약의 자유 뿐 아니라 공상의 자유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꿈을 꾼다. 성을 포함하여 인간의 속성이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는 사회, 인간의 신체와 정신과 감정이 인간성 그 자체로 생각되는 사회, 그리고 '나'라는 주체의 행위가 나 자신의 실현과 행복을 위해서 쓰이고, 경쟁적 시장원칙이 아니라 자기실현의 원칙이 바로 사회 조직과 발전 원리인 사회를 말이다.

나는 매매춘이 없는 사회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매매춘 '시장의 규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교환가치에 종속될 수 없는 인간성과 인격적 가치를 생각함을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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