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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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와 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싼 쟁점토론

정지영 |
일시 : 2005년 5월 16일 월요일 7시 30분
장소 :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토론
호성희 사회진보연대 여성국장
김원정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정책연구원
정인경 사회진보연대 회원
정리 : 정지영 정책편집부장


<b>호성희(이하 성희)</b>: 작년 9월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고 격렬했던 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싼 논쟁은 3월 27일 미아리 화재 사건 이후 다시 제2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미아리 화재 사건 이후 성매매방지법이 더욱 강력히 추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죠. 특히 작년에 성매매 여성들이 몇 차례 대규모 집회를 통해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문제, 공창제 문제 등 다양한 주장을 했는데, 그 영향으로 부산과 인천에서 집결지 시범사업이 시행되었습니다. 이 시범사업은 성매매 여성들의 탈성매매 의지를 전제하지 않고 지원 사업을 시행하기로 한 것이었죠. 그런데 미아리 화재 사건 이후에는 탈성매매를 전제하지 않는 지원은 없다 등의 입장이 나오면서, 성매매 여성 전체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방지법을 개정하려는 의지조차 한 발자국 뒤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작년 9월부터 성매매방지법이나 성매매와 관련된 논쟁이 사회적으로 많이 진행되었고, 어떤 단체든지 입장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사회진보연대 역시 「사회화와 노동」과 기관지 『사회진보연대』기획을 통해서 입장을 제출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해왔죠. 오늘 토론은 이런 논쟁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고, 그 속에서 쟁점이 있다면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는 토론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선 토론은 그간 사회진보연대가 제출했던 입장에 대한 간략한 평가나 의견을 들어보는 것으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b>사회진보연대 입장에 대한 의견</b>


"합법화 입장과 유사한 근거를 가지고 여성운동과 금지주의를 과도하게 비판"(원정)
"비범죄화의 입장에서 성노동자의 자기조직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생각"(인경)


<b>김원정(이하 원정)</b> : 작년에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월례포럼에 토론자로 참석을 했었는데, 제가 판단할 때 사회진보연대의 입장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성매매 여성들의 자기 조직화를 어떻게 지원하고 그 사람들의 운동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작년에 사회진보연대 입장을 처음 봤을 때부터 입장의 근거가 부족하고, 원칙적으로 어떤 지향만 이야기하고, 상당히 무모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비판이 내용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닐 수 있지만, 합법화 입장과 굉장히 유사한 근거들을 가지고 금지주의를 비판했던 부분 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성매매방지법을 계기로 성매매에 대한 온갖 주장이 쏟아졌던 그 때의 시기적인 상황에서 그런 비판을 했던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요.
저는 사회진보연대의 금지주의 비판이라는 것이 성매매를 국가의 정책을 통해 해결하려 할 때 빠질 수밖에 없는 모순이라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접근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 같아요. 그런데 성매매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근절되지 않는 문제이고 굉장히 오래 된 역사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사회진보연대가 여성운동이나 금지주의 관련해서 과도하게 비판을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유린이나 인신매매 등에 대해서 법적인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해요. 물론 법 자체를 맹신하고, 이 법을 시행하면 성매매가 근절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아예 배제하는 것도 굉장히 문제가 아닐까 해요. 성매매 여성들의 자기조직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법조항이나 법의 취지라는 것이 분명히 있을 수 있겠지만, 조직화를 지원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 정책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고 불가능할 수도 있는 부분이에요.
그리고 저는 성매매방지법이 얼마나 성과가 있었느냐 하는 부분을 사실 무슨 근거로 판단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성매매가 얼마나 음성화되었나, 얼마나 근절되었나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현재 평가 가능한 수준의 정보가 있는가, 그런 정보에 접근 가능한가하는 생각도 한 편으로는 들긴 해요. 그래도 어쨌든 지금 있는 법에 의해서 다수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여성들이 있다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일정하게 긍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b>정인경(이하 인경)</b> : 성매매와 관련한 입장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는 것 같아요. 금지주의, 비범죄화, 합법적 규제, 즉 공창제가 그것이죠. 김원정 씨가 말씀하셨을 때 사회진보연대 입장이 합법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비범죄화라는 입장에서 사회진보연대 입장이 제시됐고, 그것이 국가가 공창제의 형태로 집단을 구획해서 성매매 여성을 등록시켜 관리하는 방식의 합법적인 규제와는 차별성이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런 비범죄화라는 측면에서 성노동자의 자기조직화를 지원해야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만약 사회진보연대 입장이 금지주의와 관련해서 과도한 비판이라고 한다면, 어떤 부분을 그렇게 생각하셨는지가 쟁점이 될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역사적으로 금지주의가 성매매의 당장의 근절을 내세우면서 현실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생존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b>원정</b> : 제가 오해를 했을 수도 있는데, 사실 저는 사회진보연대 입장을 '정부와 법 등이 개입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 이런 개입 자체가 더 문제다'라고 읽었던 것 같아요. 사회진보연대가 비범죄화라는 부분도 간간히 언급을 했지만,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화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었나요?

<b>인경</b> : 금지주의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근절'이라는 이름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화'했다는 것이지요. 결국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라는 동일성(identity)으로 규정하게 되면 그들은 구제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되고 말죠.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접근이 여성의 성매매로의 유입을 근절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장 법 시행 이후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에 나와서 생존권을 요구하는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거죠. 따라서 그녀들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억압했다는 측면에서 금지주의를 비판할 수 있죠. 현실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이 여성들이 생존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피해자화 하기보다는 자기조직화를 통해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의 현실을 깨달아 가는 것을 지지·지원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b>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싼 입장</b>


"비범죄화 입장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과 인권유린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인경)
"성매매방지법이 좀 더 성매매 여성에게 실효성이 있는 법이 되어야"(원정)


<b>인경</b> : 금지주의가 성매매 여성들을 일관되게 피해자로 규정하고 이 피해자들을 어떻게 구제하고 보호하고 자활시킬 것인가라는 프로그램으로 성매매 문제에 접근했죠.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역설적으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죠. 예를 들어 성매매가 음성화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포주에 직접적으로 종속되고 폭력을 비롯한 인권 유린에 대해서도 문제제기 할 수 없게 된 현실이 있다는 거죠. 그렇게 때문에 금지주의는 현실적으로 성매매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이나 인권유린 등의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입장을 가질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현재 대안세계화 운동 내에서 성노동자, 즉 '섹스 워커'(sex worker)라는 규정을 가지고 그것을 지원하는 조직들이 생겼죠. 이제는 '성노동자'라는 호명이나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될 때라고 생각해요. 여성에 대한 이분법이나 성도덕 때문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형태의 노동이라는 것도 형식적으로는 자유로운 계약의 형태를 띠지만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노동력 판매를 강제당하는 것이고 이에 대해 특별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많은 노동의 형태 중에 여성들이 성매매를 택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성노동이라는 규정을 채택한다고 해도 이것이 성매매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이나 '성매매는 인간의 본성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에요.

<b>원정</b> : 제가 고민을 하는 것은 사실 이 법을 어떻게 잘 시행을 하느냐, 시행하면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리고 여성부에서 탈성매매 하는 여성들에게 지원을 확대한다, 확대한다 하는데 실제로 어떤 지원체계가 제일 좋을 것인가 이런 부분들이에요. 당(민주노동당-편집자)에서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부분들이죠.
성매매방지법 시행되기 전에 보건복지부하고 여성부하고 그런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보건복지부에서는 계속 에이즈 예방, 성병 예방하면서 콘돔을 돌리고, 여성부에서는 그렇게 하면 불법인 성매매를 용인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대하고. 여성부도 그렇고 여성단체도 그렇고, 시범지역 정하게 된 것도 애초에 시나리오에 없던 거잖아요. 모범적으로 잘 됐다는 케이스를 만들고자 하는 현실적인 판단이 들었겠죠. 그런데 탈성매매 의지가 있는 사람이란 것도 누가 판단을 할 것이며, 한다 해도 별로 의미가 없는 판단이죠. 게다가 의료나 법률 지원이나 이런 것들은 성매매 의지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당연하게 주어져야하는 권리고. 제가 자세히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지원체계들이 실질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것들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직업 훈련 같은 경우도 쉼터나 이런 곳에 가둬놓고 그 안에서 공부시키는 형식이 아니라 낙인 효과를 낳지 않을 수 있는 지원체계들을 통해서 하는 문제가 고민이 돼요. 여성부에서도 어떤 프로그램의 형식, 어떤 모델의 형식이 아니라 다른 일반적인 여성들이 접근할 수 있는 일반적인 통로들을 열어놓고 하는 방안 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성매매 여성들에게 특화된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b>성희</b> : 사회진보연대가 인천 시범지역 관련해서 단체입장 인터뷰<a href="#footnote1"><font color="blue">1)</font></a><a name="home1"></a>를 했었잖아요. 그런데 그 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시범지역이 되니까 공권력이 상주한다는 거였어요. 여성부가 문서로 명시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성매매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이 지역에 지원을 한다는 것이 합의였는데, 그럴 때 가장 큰 문제가 공권력이었다는 것이죠. 결국 성매매방지법과 성매매 여성들이 원했던 시범지역이라는 것이 같이 갈 수 없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법의 폐지나 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아니고서는 말이죠.

<b>원정</b> : 그래서 실제로 여성부 장관이 부산에 찾아가서 단속하지 말라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거죠. 그리고 여성부에서 어떤 입장을 가졌든지 간에 성매매 현장에 있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 '그 사람들에게 돈을 왜 쓰느냐'라는 식의 비판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죠. 사실 성매매방지법을 이 상태로 둔 상태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여성부든 어디든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소극적으로 탈성매매 과정이라는 것이 연속적인 과정이다 이런 정도로 얘기하는 수준밖에는.


<b>"성노동", "성노동자"라는 호명에 대하여</b>

<b>성희</b> : 성매매 여성들이 자기 조직화하여 자신의 권리를 획득하는 투쟁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성매매 여성들의 자기 조직화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법·제도적으로 할 것인가, 운동적으로 할 것인가 등의 문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에서 입장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외국의 성노동자 조직에서는 운동을 진행할 때 "성매매는 성노동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성노동자라는 호칭을 쓰는 것 자체에도 굉장한 반발감이 있죠. 이런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서도 많은 쟁점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해보죠.


"성노동은 성매매를 가시화하고, 전화의 문제를 사고할 수 있게 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성노동자라는 호명은 기존의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부과된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고 스스로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인경)
"성노동인가 아닌가를 논쟁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원정)


<b>인경</b> : 가사노동이라는 표현과 유비가 가능한 것 같아요. 가사노동이라는 말은 여성이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해서 가족 내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어떤 일들을 수행한다는 점을 드러내주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의 이러한 부불노동을 존치시키자는 주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죠. 즉 비가시화 되어있지만 현실적으로 명백하게 존재하는 가족 내 여성의 활동을 드러내주는 개념이 바로 가사노동입니다. 따라서 이 개념을 통해 '여성들이 가족 내에서 담당하는 이런 식의 노동을 어떻게 전화시켜 낼 것인가'라는 문제를 사고할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성노동이라는 것도 성매매라는 것이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것을 일단 보자는 거죠. 성매매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성매매를 하나의 노동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이를 존치시키자는 것은 아니죠. 자본주의 내에서 임노동 관계를 폐절하자고 하지만 동시에 작업장 내에서 권리라든지, 최소한의 권익 보호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것처럼 성노동이라는 것도 그런 식의 개념으로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성노동이 현실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것을 이후에 어떤 식으로 문제 제기할 것인가에 있어서 성매매 여성들이 스스로 주체화되고 있는 과정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거죠. 저는 현재 성매매방지법에서 이 법을 지지했던 많은 여성 단체들 또한 곤혹스러워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어쨌든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들의 목소리에 대해 '왜 그런 일을 하느냐?'라고 제기하거나 '피해자'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돼서 자신의 현실적인 조건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에요. 이 점이 제가 성노동자나 성노동이라는 개념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핵심 근거예요.
그런데 아까도 얘기했듯이, 성도덕이나 성윤리 차원에서 '정숙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이라는 규정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성매매라는 것을 성노동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아요. '길거리 청소부 일을 할 수도 있는데 왜 그런 일을 하느냐'라는 한 여성의 질문에 대해 성노동자는 '나도 자식들이 있고, 그 자식들은 대학에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하죠. 그러자 그 여성은 '그런데 왜 그런 일이냐?'라고 다시 묻잖아요. 여기에 대해서 성노동자는 '단지 당신은 한 남자와 잘 뿐이고, 나는 여러 남자와 잘 뿐이다. 당신은 장기 식권을 갖고 있는 거고, 나는 일회용 식권을 갖고 있다'라고 답변하죠. 이러한 항변에 대한 그 여성의 답변은 '그래도 난 한 남자하고만 잔다'였죠. 이런 것이 어떻게 보면 현재 우리가 내면화하고 있는 '정숙한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에 대한 이분법, 그리고 '여러 남자들과 자는 여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성노동이라는 표현을 사회진보연대에서 공식적으로 쓰지는 않고 있는데, 그 표현이 가져올 수 있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해도, 성매매 여성들의 자기 조직화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이 말을 쓸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b>원정</b> : 우리 같은 운동조직이나 사회단체에서 스스로 성노동자라고 호명하는 것에 대해서 찬성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 입장을 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가요?

<b>인경</b> : 성매매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있어서 중요한 쟁점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원칙적으로 성매매의 폐지를 전제로 하더라도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죠. 성노동이라는 규정의 채택 여부는 현재 성매매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b>원정</b> : 성매매방지법 논쟁을 하는 와중에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이 왜 노동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증명을 하고 그래서 인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식의 입장을 내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노동가치론 입장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냐는 거죠.

<b>인경</b> : 저는 성노동이 임노동 관계에서 노동이라는 점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문제가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성노동이라는 규정에서 계속 쟁점이 됐던 것은 성을 사고 파는 행위를 노동으로 규정을 할 경우에 여성의 성이 상품화되는 현실, 여성의 성적인 종속을 은폐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문제제기였다고 생각해요. 더 나아가면 '성매매에 찬성한다는 말 아니냐?'라는 질문인 거죠. 그러나 성노동자라는 규정을 쓰면서도 이것이 성매매를 유지, 온존시키자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죠. 여기에 대해서 성노동자들은 우회적으로 답변을 하고 있는 것이죠. 즉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노동들이 '강제'로 하게 되는 것이고 다양한 형태의 노동에 편입되는 것처럼 자신들은 성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성노동자라는 규정은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동일성을 부여하고 권리의 주체가 되어 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b>남성 구매자 처벌 규정에 대한 쟁점</b>

<b>성희</b> : 비범죄화라고 했을 때는 어쨌든 성매매를 법적으로 범죄화하고 그것을 처벌하는 식의 해결 방식을 지양하는 것인데, 여기서 가장 쟁점적인 것이 구매 남성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범죄화라는 것은 성을 구매했다는 이유로 남성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거든요. 잘 드러나고 있진 않지만, 이것이 비범죄주의를 합법화와 같이 보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 고정갑희<a href="#footnote2"><font color="blue">2)</font></a><a name="home2"></a>씨 같은 경우에도 성매매가 성노동이라는 주장은 적극적으로 하지만 구매남성의 문제는 별도로 다뤄야한다고 얘기하거든요.


"성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구매남성이 존재한다는 것. 구매남성 처벌로 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인경)
"성 구매 행위 자체가 폭력, 이를 규제하기 위한 성 구매자 처벌이 필요"(원정)


<b>인경</b> : 사람들이 성매매방지법이 윤락행위방지법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긍정적인 지점이라고 제기하는 것이 구매남성을 처벌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인데, 비범죄화는 그런 처벌이라는 형태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죠. 그러니까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얘기한다고 했을 때는 구매남성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성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를 지지한다는 것은 기존의 음성적인 구조에서 맺어왔던 성노동자와 포주, 남성 구매자, 국가와의 관계를 변화시키자는 것이죠.

<b>원정</b> : 그렇다면 구매 남성 문제 이전에 그러면 성매매를 근절을 해나가는 지향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b>인경</b> : 여성의 억압은 사회적 관계의 문제인 거잖아요. 현재 여성의 경제적이고 성적이고 심리적인 종속 관계가 존재하는데, 그런 구조적인 차원과 별도로 성매매 문제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성매매 문제를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억압의 연장선상에 두고 봐야 한다는 거죠. 성매매라는 것이 역사 이래로 늘 존재해왔다고 얘기를 하지만 역사화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 19세기 빅토리아적 가족 형태가 조직된 이후에 여성은 성욕과 분리된 재생산의 역할을 할당받은 채 가족 내로 유폐되고 말죠. 낭만적 사랑이니 모성성이니 가정성의 신화와 함께 말입니다. 동시에 가족 밖의 여성 즉 여성 동성애자나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 대해서 비정상적인 여성, 타락한 여성이라는 형태로 공격이 진행되면서 '정숙한 아내'와 '타락한 여성'의 이분법이 확립되죠. 저는 이러한 이분법의 확립이 성매매 여성에 대한 낙인효과를 가졌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여성억압의 구조로서 가족형태와 성매매의 문제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죠.
가족은 성별분업구조가 확립되고 성적 차이가 조직되는 여성억압의 핵심적인 구조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장기 식권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일회용 식권이다'라고 얘기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보면, 어쨌든 가족이라는 것도 현재 여성에게 억압적인데 그렇다고 해서 가족을 폐지해야한다고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고정갑희 선생의 말대로 가족 내 아내 구타의 문제도 있고 성폭력의 문제도 있는데 말이죠. 마찬가지로 성매매라는 것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 여성들의 일터를 폐지하고 근절하자고 하면 그 문제가 해결이 되느냐, 동일한 문제라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성매매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여성억압의 근본적인 원인의 문제로 가족형태의 변혁 또는 그 전화의 방향에 대해서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별분업구조의 폐지, 여성의 노동권 실현, 근본적으로 새로운 남녀관계의 재조직과 같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당장 성매매의 문제가 쟁점화 된 상황에서 이러한 근본적인 변혁의 과제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겠죠. 그래서 가사노동얘기를 하는 겁니다. 가사노동이라는 것도 가족형태의 전화과정에서 근본적으로는 사회화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현재는 이 표현을 쓰면서 여성이 가족 내에 유폐되고 사회적 관계 내에서 긍정적인 동일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런 노동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성노동이라는 것도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하자는 거죠. 그것을 하루아침에 근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유토피아적이지 않나요?

<b>원정</b> : 저는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 성 구매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도나 법으로 명시한다는 것이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성 구매자에게 당할 수 있는 폭력이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사실 구매 행위 자체와 어떤 식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구매자와 성매매 여성의 관계라는 것, 소위 정상적인 관계 그리고 정상적이지 못한 폭력적인 관계라는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냐는 거죠.

<b>인경</b> : 저는 경제적이거나 심리적이거나 성적인 종속의 측면에서 가정주부와 성매매 여성을 비교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가 더 의존적인가, 만약 가부장제라는 표현을 쓴다면 누가 더 가부장제의 유지에 공모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성매매의 남성 구매자만을 문제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족형태의 문제라는 것을 계속 한 편으로 안 보이게 만들죠. 물론 억압적 현실이 똑같을 수는 없고 그 형태가 당연히 다르겠죠. 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성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를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b>운동의 역할은 무엇인가?</b>

<b>원정</b> :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운동을 할 것이냐, 굉장히 많은 여성 단체들에서 현장 활동을 하고 있는데, 방향도 천차만별이죠. 성매매 여성들을 도덕적으로 구제해야 할 여성으로 보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실제 현장 활동하는 활동가들 내에는 여연(한국여성단체연합-편집자)과 같은 단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죠. 성매매 여성들이 탈성매매 하는 것도 자기 선택이나 자기 판단의 문제고 자기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문제인데, 탈성매매 의지가 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으로 무 자르듯 나누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나 활동방식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현장 단체들이 어떤 의지를 갖고 어떤 활동을 지향하는지, 또 사회진보연대와 같이 성노동이라는 측면에서 자기 조직화를 옹호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런 현장단체들과 어떻게 연대를 하고 활동을 해야 할 것인지가 사실은 제일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거든요. 그렇지 않는다면, '너희가 조직화되면 우리가 지지해준다.'는 식의 입장 표명 밖에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논의를 확산하는 것이 중요"(인경)
"활동가들과 운동 단체들이 함께 논의하고, 움직일 수 있는 틀이 필요"(원정)


<b>인경</b> : 지금까지 사회진보연대의 활동을 보면 현실의 쟁점에 대해 입장을 가지고 논의를 주도해가는 방식의 자기규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지난번에 사회진보연대 기관지에 실렸던 성매매 여성의 인터뷰 글 같은 경우에, 사람들이 실제로 성매매 여성들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논의를 주도한 것 같아요.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지지·지원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 한 축으로는 입장의 표명을 통해 논쟁에 개입하는 것이죠. 지난번에 민주노동당 당사로 찾아온 여성들도 있었죠. 현재로서는 그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가, 그 목소리가 단일하지 않다고 해도 현재 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싸고 발언하는 주체들이 대부분 연구자들이나 아니면 성매매방지법을 주도해왔던 여성운동계, 그것에 반대하는 남성들이었다고 한다면 하나의 묻혔던 목소리로 그런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운동의 방향으로 제기되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리고 입장의 표명이 선차적이라고 한다면 이후의 과정에서 새로운 조직이 모색될 수 있는 거겠죠. 코스와스<a href="#footnote3"><font color="blue">3)</font></a><a name="home3"></a>와 같은 형태를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 이런 형태의 조직적 결합 말이죠.

<b>원정</b> : 저도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단체들 사이에서 어떻게 논쟁을 하고, 동일한 생각을 가진 단체들이나 활동가들하고 어떻게 같이 움직이거나 논의를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갈 것이냐 하는 부분이 고민이죠. 그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b>인경</b> : 분명한 건 시각의 변화라는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건데, 예를 들어 탈성매매를 위해 정부에 자활금을 요청할 수도 있고 생존권 문제와 관련해서 일정하게 대책을 요구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위로부터 주어지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공창제 폐지 이후 대만의 성노동자 조직은 심지어 '정부의 자활금 필요없다, 우리를 그냥 놔두면 우리가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죠.
성매매방지법 중심의 논의가 갖는 한계는 또 있어요. 그게 법 논리잖아요. 윤락행위방지법에서의 윤락행위라는 것이 성매매라는 가치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다든지, 어떤 규정상의 변화를 통해 남성구매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든지, 여성들 같은 경우에 피해에 의해서 성매매에 유입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든지 이런 식의 법 논리로 계속 가다보면 이 여성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국가에 의한 법, 제도적인 논리에 함몰되면 전문가주의에 빠진다는 거죠. 그런 법, 정책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죠. 물론 그 분야의 지식인들이나 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것도 있긴 한데, 지금 성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를 지지·지원해야한다는 얘기는 오히려 무게 중심을 바꾸자는 얘기인 것 같아요. 스스로 요구할 수 있게끔 하고, 그게 어떤 방식이 되었든 법에 대해서 이 목소리를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죠. 필요하다면 연구자나 전문가가 법, 제도적인 논리나 이론적 차원에서 지원할 수는 있는데, 현재와 같이 성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피해자라고 규정하는 방식은 그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는데도 그 목소리를 은폐하는 효과를 낳고 있죠.

<b>성희</b> : 성매매방지법을 추진했던 여성단체의 현재적인 입장에서는 이 논의를 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성매매 여성들이 집회에서 여성단체를 강하게 규탄한 이유가 그녀들이 단식농성이라는 극단적인 투쟁을 했는데 여기에 지지하러 오거나 혹은 지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으러 오는 단체도 없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이런 목소리들이 확산이 되면, 그것을 운동으로 만들 수 있는 지원단체나 혹은 그런 운동을 지지할 수 있는 단체들 간의 연대 틀이나 특별위원회 형식도 가능할 것입니다. 일단 처음에는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조직화를 옹호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주장하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하고 그것 역시 중요한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작년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여성위원회 같은 경우도 함부로 나서서 행동을 하기보다는 좀 두고 지켜보자는 입장이 있었어요. 당시에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자체도 쟁점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밤의 요정들 이야기<a href="#footnote4"><font color="blue">4)</font></a><a name="home4"></a>'를 보면서 성매매 여성들도 기존 체제나 이데올로기 내에 있고, 그렇다 보니 성매매 여성들이 왜 그런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인식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도 한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성매매 여성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 중에 가족부양의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잖아요. 그리고 이 가족부양부담이 청소가 아니라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한 것이고.
인도 성노동자들이 이곳의 상황이 개선된다면 대학에 간 여성들도 이곳에 와서 일을 할 것이라는 얘기도 했는데요.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가 성노동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성노동을 인정하고 그들의 요구에 따라 성노동의 조건을 개선해서 실제 대학에 간 여성들도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자신도 잠재적으로 성노동자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성 상품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성노동자를 대하는 시선이 자신에게도 오지 않을까 하는 공포 같은 것이 있을 듯 해요.

<b>인경</b> : 비범죄화 요구는 기존의 정숙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 결혼 가족 내에 있는 여성과 그밖에 있는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깨자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분법으로 인해 성매매가 전업화되고 성매매 여성들의 모성권이 부인되었던 것 같아요. 한번 성매매 여성으로 낙인찍히면 그런 사회적 낙인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거죠. 비범죄화는 그런 사회적 낙인을 탈각시키는 문제를 주요하게 사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범죄화를 통해 성노동의 노동조건이 개선된다면 대학 나온 여성들도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한 인도 사례를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여성의 노동이 제약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죠. 여성 노동의 대부분이 비정규 노동이고 또 성애화된 형태의 서비스 직종이 여성의 노동으로 되어 있는 현실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동시에 성노동자의 현실적 조건이 개선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문제는 현재의 법·제도가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완전하게 탈성매매 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직업을 모색한다고 했을 때 그런 직업이 이 여성들의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비범죄화나 성노동의 문제를 얘기한다는 것은 일단 현실에 존재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문제도 있지만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고, 이 성매매를 전반적인 여성억압의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로 제기해보자는 겁니다.

<b>성희</b> : 그런 질문들도 있어요. 성매매 문제를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성노동이란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성매매를 인정하는 한에서 어떻게 성의 상품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성의 상품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어떤 방식의 운동으로 가능한가 하는 질문들이 있죠.

<b>인경</b> : 성의 상품화는 일반적인 문제잖아요. 여성의 육체나 이미지라는 것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너무나 일반적인 현상이고. 저는 여성이 '교환'되는 사회 전반을 바꾸는 문제로 성의 상품화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포르노그래피를 반대하는 논리도 그와 비슷한 것 같은데, 포르노그래피를 반대하고 법으로 규제했을 때, 그것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성의 상품화라든지 여성의 육체에 대한 상업적 이용이라는 것을 근절시킬 수 있는 방안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죠. 다시 말해 포르노 잡지에서 포즈를 취하고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모두 인신매매나 극단적인 강압에 의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거죠.


<b>여성들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원인은 무엇인가?</b>

<b>성희</b> : 성매매의 원인에 대해서 토론을 할 때, 아까 얘기했던 성매매가 노동이냐 아니냐 하는 쟁점도 있지만, 성매매의 가장 큰 원인을 성의 상품화로 보면서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폭력의 형태고 그것을 지양하거나 근절해야 한다고 말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 입장에선 성매매가 성노동이라면 성의 상품화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하죠. 저는 '빈곤의 여성화'가 성매매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빈곤의 여성화는 여성들이 저임금 구조나 지금 노동시장에서 가지게 되는 낮은 지위나 이런 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칭하는 것인데, 빈곤의 여성화가 여성들이 경험하는 극도의 빈곤정도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성매매의 원인으로 제기한 빈곤의 여성화가 절대적인 빈곤 상태가 아닌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성매매 원인을 인격화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가장 큰 문제"(인경)


<b>인경</b> : 성매매의 형태가 다양화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전업이 아니더라도 일시적이고 단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으로 성매매에 유입되는 여성들 같은 경우는 절대적인 빈곤 때문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빈곤 또는 여타의 욕망의 실현을 위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유입되는 거죠. 제가 '동의냐 강제냐'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이 때문이죠. 물론 극단적인 인신매매나 감금의 문제를 예외로 하고 말하는 건데요. 지금의 사회가 엄청나게 소비의 욕망을 자극하는 사회라는 거죠. 게다가 여성의 성공이나 자기실현이라는 게 외모로 압축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여성이 더 예쁜 옷을 입고 싶고 더 화려하게 꾸미고 싶고, 이런 소비욕망의 문제를 고려하면 자발은 아닌 거죠.
성매매의 원인을 얘기할 때 인격화시켜서 설명하는 방식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물론 남성이 대부분 구매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남성 성욕의 문제로 제기하면, 현재 남성 성욕이라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제기하는 것이 되는 거고 오히려 변화의 가능성이나 남녀 관계의 새로운 전망들을 모색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의 문제적인 성욕을 법으로 처벌하고 제재를 가함으로써 변화시킬 수 있다는 발상인데 이에 대한 반격이 만만치 않음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죠. 또 그러다 보면 여성의 도덕성 우월성이라는 것을 내세워야 하기 때문에 여성의 성욕의 문제를 억압할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성매매를 일부 초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일부일처제가 낳는 문제와 관련지어 성욕의 해방의 문제로 접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b>성희</b> :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등을 주장하면서 집회를 했을 때, 실제 노동조합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경우 이러다가 저 여성들이 노조를 결성하면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거 아니냐, 그럼 어느 연맹이냐 등의 얘기를 한다고 들었어요. 물론 지나가는 얘기로 하는 것이지만, 성노동자 운동의 조직형태에 대한 고민은 필요한 문제죠. 실제로 이 여성들이 조직화된다면, 특히 자신들을 성노동자로 호명한다면 딱 떠오르는 모델이라는 것이 노조 모델인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기존의 노동자운동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혹은 노조가 아니면 어떤 형태의 조직화가 가능한가 이런 부분들은 계속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인도에선 법적으로 노동조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잖아요. 어쨌든 제도적인 장치가 성노동조합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이니까, 법·제도적인 차원에서 노동조합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거죠. 한국에서도 그런 요구가 드러난다면 우선 그것을 지지·지원해야겠죠.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는 대만의 코스와스 같은 경우가 있을 것 같아요. 코스와스는 노동조합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운동 단체들이 단체를 만들어서 똑같은 회원으로 활동하는 형태죠. 코스와스 대표도 성노동자는 아니고. 어쨌든 기존의 노동조합의 조합원 자격보다는 더 열린 구조로 성노동자 조합은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b>성희</b> : 토론이 막바지로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토론에서 제시한 입장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에 열린 논의 공간, 성매매방지법의 보완/수정 논의를 넘어서 다양한 입장에 열린 공간을 만들어야"(인경)
"현장단체들, 활동가들과 함께 논의를 할 수 있어야"(원정)


<b>인경</b> : 성매매방지법의 효과가 뭐냐고 얘기하면 제가 보기에는 역설적으로 성매매 여성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어쨌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는 것이고 이 문제에 대해서 공론화 해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지금 상황에서 여성부를 비난하는 남성들의 주장이 다소 문제가 있고, 또 현재의 논의 구도를 계속해서 여성단체와 그것에 반대하는 여성이라는 대립구도로 가져가는 것도 불편하지만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열린 공간에서 열어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다수 여성들 같은 경우에 성매매방지법과 관련해서는 그 효과가 어떨 것인가를 예측하기 이전에 '잘 되면 좋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복 시위라든지 시위들을 보면서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던 과정이 있었고, 지금은 성매매방지법에 대해서 나름대로 비판적인 입장들이 여성운동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잖아요. 이렇게 공간이 열린 것이고, 이런 공간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논의를 더 확대해서 가져갈 수 있어야 해요. 단순히 이 법을 살아있는 법으로 만들기 위해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나 법과 현실의 괴리라는 문제로 축소해서 얘기할 것이 아니라, 일단은 다양한 입장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b>원정</b> : 성매매나 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싼 논의들이 촉발되고 있다고 했는데, 저는 사실 별로 촉발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던 것처럼 현장단체들이나 활동가들과 함께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조건들을 많이 들어보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크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일을 하는지도 그렇고, 실제로 만나 봤을 때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들을 만드는 것이 제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에요.

<b>성희</b> : 토론회나 평가 토론회 같은 경우도 주로 성매매방지법을 추진했던 단위들의 기획을 가지고 진행하잖아요. 그런 것을 벗어나서, 1년 평가와 같은 계기를 잡아서 사회운동 단체들의 공동의 목소리나 주장들을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기획들을 모색해보는 프로그램도 필요한 것 같아요. 주구장창 각자의 조직에서 각자의 입장을 내는 방식으로는 논쟁을 활성화하기나 입장을 확산시키기에 부족하죠.

<b>원정</b> : 당(민주노동당-편집자)에서 성매매방지법 1년을 맞이해서 무엇을 할까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현실적으로 지금 풀어야 하는 문제는 이것인 것 같아요. 성매매 운동 어떻게 할 것이냐. 현장단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실무적인 요구와 국가의 요구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단체들 간에 운동 방향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이런 부분이 어느 정도 공론화 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a name="footnote1"><b></a>1)</b> [편집자주] 성매매 기획팀, 「성매매, 새로운 담론을 위해(1)-인천 옐로하우스 여성 상조회와의 인터뷰」,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4년 12월호, 통권 51호<a href="#home1"><font color=blue> 본문으로 </font></a>

<a name="footnote2"><b></a>2)</b> [편집자주] 고정갑희, 「성매매방지법과 여성주의자들의 방향감각」, 『여/성이론』, 통권 12호<a href="#home2"><font color=blue> 본문으로 </font></a>

<a name="footnote3"><b></a>3)</b> [편집자주] COSWAS(Collective of Sex Works and Supports): COSWAS는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후원하는 사람들과 성산업에 대한 정책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타이페이 공창연합(TALP)에 의해 결성되었다. COSWAS의 결성은 1년 7개월 전부터 시작된 타이페이 공창연합의 적극적인 투쟁의 연장선상이다. COSWAS는 공창 제도와 공창들의 현주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성노동자들의 권리와 그들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것 역시 COSWAS가 하려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성산업에 대한 정책토론을 활성화시킴으로써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성매매정책과 성관련 산업시스템이 확립되도록 노력하고 있다.<a href="#home3"><font color=blue> 본문으로 </font></a>

<a name="footnote4"><b></a>4)</b> [편집자주] 제7회 서울여성영화제에 상영된 영화로, 인도 캘커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인도 두바르 여성협력위원회에 조직된 수천 명의 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열망을 담고 있다.<a href="#home4"><font color=blue> 본문으로 </fo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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