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7/8.56호
첨부파일
56_갈월동기행_김정훈.hwp

사회진보연대에 대한 소회

김정훈 | 인천지부 운영위원장
요즈음의 만남

너 : 회사생활은 어때?
나 : 월급쟁이가 다 그렇지 뭐!~
너 : 얼굴 좋아졌네?
나 : 햇빛을 못 봐서 그래~
너 : 언제까지 다닐 거야?
나 : 글쎄...

요즈음 한동안 못 만났던 동료들을 만나는 날에는 꼭 이런 무미건조한 대화를 나누곤 한다. 하긴 운동하던 놈이 운동 바닥을 떠나 평소 익숙지 않은 말쑥한 모습으로 나타난 상황이 그 동지에게는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겠지만, 왠지 어정쩡한 대화를 나누는 내 심사도 그리 좋지는 않다. 회사 밥을 먹은 지 이제 반년이 지났다. 짧은 시간이고,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뀐 것 이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낀 나였지만, 그/녀들의 눈에 비친 지금의 내 모습은 분명 이질적인가 보다. 이런 상황에서 '난 지금도 그대로야!'라고 항변한들 무엇하겠는가! 이미 멈춰버린 '운동'은 더 이상 '운동'이 아닌 것을...

월간 사회운동의 가장 인기 있는 코너에 이름 석자를 올릴 수 있는 영광(^^)을 얻었음에도 이런 우울한 말로 시작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갈월동 기행'을 쓰고 싶어서 며칠 간 고민 고민했지만, 결국 마감을 훌쩍 넘겨, 있는 말 없는 말 갖다 붙이며 꾸역꾸역 글을 쓰고 있는 나의 한심함이란... 일상을 살아가는 내 모습을 그저 편안하게 그려내는 일 조차 버거운 것이 요즈음 나의 현실인가 보다.
막상 글을 쓰자니 진보운동 진영 내 유력한(^^;) 의견 매체중 하나인 월간 사회운동이 내리누르는 무게가 사뭇 만만치 않다. 읽는 입장에서라면 여러 회원들의 삶의 소소한 얘기들, 일상에서 들었던 생각의 편린들을 느낄 수 있었던 관계로 읽는 행위 자체로 만족했던 나였지만, 그렇고 그런 나의 삶의 푸념들로 채우기엔 너무 아까운 공간이니 말이다.
어쨌든 오늘은 꼭 끝장을 보리라 마음먹고 일찌감치 바닥에 배 깔고 누워 펜을 들었다.

인연

나의 갈월동 기행은 코너의 취지에 맞게 사회진보연대(정확히 하자면 인천지부)와의 인연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처음 기관지를 받아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명색이 회원이랍시고 덜렁 받아본 기관지는 내 얼굴을 붉히기에 충분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거시기'는 민중들의 삶을 '머시기'하기에 우리의 대응방향은 '거시기'이어야 한다나...?" 과연 중간 중간에 '거시기'와 '머시기'들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 고민하다가, 이럴 때는 정신집중 밖에 없다 생각하고 자세를 바로 한 채 정독하다 보면 어느새 같은 페이지를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또 절망하고... 결국 당시 편집부장이셨던 현 사무처장님이 연재하던 '이 한 장의 앨범''만'읽고 책을 덮고 말던 우스운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쨌든 먼지를 소복이 얹은 채 집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기관지가 증명해 주듯이 회원 구력 으로만 보자면 나 역시 중견회원정도로 불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사회진보연대와의 나의 본격적인 인연은 고작 2003년 이후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인천지부는 이후 조직 발전전망을 놓고 치열한 내부 논쟁 중이었는데, 이러한 와중에 조직의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도 없이 운동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 마냥 인천지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지부의 문제의식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한 나였지만 어려운 지부운영을 정상화하는 것이 지역운동을 위해서도 유의미할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에 그저 무던히 참여하게 된 것이 내 사회진보연대 생활의 사실상 시작이었다. 물론 집행위원 동지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약 2년여 정도 생활의 많은 부분을 인천지부 활동에 투여하며 지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만남과 관계들은 그 깊이에 따라 서로에 대한 책임감 역시 꼭 동일한 만큼 커지는 것 같다. 어쩌면 시기 시기마다 다소 편의적으로 생각하며 시작되었던 사회진보연대와의 인연이, 어느 때부턴가 암호 투성이던 기관지가 대중교통 이용 시 유익한 동반자가 되어감에 따라 어느새 내 일상 속에서 크나큰 비중으로 다가와 있으니 말이다. 초반에는 회원으로서 그저 조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힘 안들이고 참여하면 되겠지 했던 태도가, 어떻게 하면 나의 주중의 삶과는 너무도 상이한 (주로 주말의)사회진보연대 활동을 잘해볼 수 있을까하는 데까지 나아갔을 정도라면 많은 발전 아닌가 한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지금에 있어서는 사회진보연대 운동의 유의미성보다도 운동의 끈을 놓쳐버리고 싶지 않은 나의 바람으로 애처롭게 부여잡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언제까지 다닐 거야?'라는 동지의 물음에 '응, 내 계획은 이래~'라고 기꺼이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지만 말이다.

세 가지 소원

특정한 주제도 없이 하고픈 말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산만한 내용을 담은 것 같다. 그냥 맺기는 너무 아까운지라 평소 갖고 있던 사회진보연대에 대한 몇 가지 바람을 밝히는 것으로 산만한 내 갈월동 기행을 마치고자 한다.
평소 현실이 너무 불만족스럽다고 느껴질 때면 램프의 요정 '지니'가 실제로 존재해서 나에게 나타나 주면 좋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만약 사회진보연대의 요정 '진보(?)'가 펑~하고 튀어나와 사회진보연대의 발전을 위해 내게 세 가지 소원을 물어온다면 난 어떤 바람을 선택하게 될까?

"내 첫 번째 소원은 우리가 '모이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마찬가지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의식화 조직화 활동을 벌이는 집단은 기독교인일 것이다.(오죽하면 그들이 믿는 신께서 몸소 "너희는 모이기에 힘써라", "너희 속에 계시가 있을 것이다"라는 조직화의 철학을 제시하셨을까?)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사회진보연대는 전업 활동을 하지 않는 회원의 경우 그 활동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은 조직이다. 물론 운동하려고 만든 조직이 운동의 의제를 중심으로 활동 속에서 만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사회진보연대는 활동조직임과 동시에 다양한 의식적, 활동적 스펙트럼을 가진 회원을 근간으로 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자칫 의도하지 않게 회원들이 대표 선수들 링 위에 올려 보내 놓고 열심히 관전하는 '관객'이 되어버린다면 사회진보연대는 지극히 관료적인 조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직에 있어서 민주적 운영원리를 바로 세우는 것과 사회진보연대의 활동 노선과 입장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기에 회원참여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계획이 월간 사회운동이나 사회화와노동을 제작하는 작업 못지 않게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두 번째 바람은 각 영역의 활동이 균형 있게 성장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사회진보연대를 만난 초반에 들었던 느낌은 참 저 조직은 여기저기 끼지 않는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사회운동이라는 잘 정리되지 않는 개념을 쓰는 것부터가 폭넓은 영역을 전제한 것일 텐데, 최근에는 기관지의 정기 꼭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나마 활동의 폭을 짐작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러한 사회진보연대가 천착한 운동의 포트폴리오는 각 영역이 잘 조화되었을 때는 조직 활동의 과제와 실천을 꾸준히 제공하고 폭발력 있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기 관심분야가 상이한 활동가들이 현존하는 현실에서 각 영역에서의 입장들 간의 충돌이 발생할 경우 자칫 조직적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일은 쉽게 발생할 것이 아니라 생각되지만, 하나의 사안에 대해 하나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관심분야에 대한 투자 못지 않게 사회진보연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제들에 대해 공통의 입장과 발언을 조직해 나가는 실천들이 좀더 강화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세 번째 소원은 사회진보연대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기적 전망이 전 조직적으로 구체화되어 수행되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운동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먹고살 궁리를 최우선적으로 하고 사는 나로서는 사회진보연대 사람들의 앞으로의 먹고사는 문제가 한편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현재 집행위원들의 연령 대 분포를 보면 이십대 중 후반에서 삼십대 초 중반이 대다수 일 텐데, 우리 모두가 느끼듯이 세월은 화살과 같은지라 최소 10년의 활동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진보연대가 되기 위해서는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생각 같아서는 사회진보연대 구조조정T/Fteam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 난 우리 운동이 미래를 위해서는 조직의 핵심적인 활동과제들이 정선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인원이 판단되어진 후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적 결의가 조속히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각 집행위원들의 영역별 나름의 활동 계획 역시 여기에 부합될 수 있도록 재구성되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집행위원들의 이중노동과 뼈를 깎는 근검절약의 생활화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운동의 지속성을 이 땅에서 사라져야 마땅할 사교육 시장의 전망에 맡길 수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

쓰다보니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아마 이러저러한 바람들까지 다 이루기 위해서는 소원이 한 12개쯤은 허락되어야 할 것 같은데, 글쎄... 내일을 위해 나머지 소원은 아껴두어야 할 것 같다.

조직은 운동의 요구에 의해 명멸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사회진보연대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조직이라는 물질성 보다는 그 안의 운동적 요구에 의해 우리는 냉정하게 판단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바람은 가능한 사회진보연대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사회진보연대 안에서 **** 단위에서 활동하는 ***로 호명 받는 날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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