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노동조합과 페미니즘

진재연 | 정책편집부장
<일시> 2005년 8월 4일 저녁 7시 30분
<장소>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사회 : 진재연 | 사회진보연대 정책편집부장
토론 : 유나경 | 민주노총 공공연맹 정책부장
정지현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

정리 : 진재연 | 사회진보연대 정책편집부장

진재연(이하 재연) :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회원쟁점토론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회원쟁점토론은 노동조합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현재 노동자운동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는데요,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페미니즘은 노동자운동이 스스로를 개조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사회진보연대는 노동권과 여성권의 결합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오늘 토론은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왜 사고해야 하며 노동조합 내에서의 페미니즘의 수용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으면 합니다.

왜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사고해야 하는가

나경 :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가사와 육아까지 해내는 여성의 독자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가장 급진적이고 계급적인 요구
지현 : 여성의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아래 노동의 분할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보편화된 여성에 대한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시급한 과제


유나경(이하 나경) : 사실 노동조합 안에 있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 스스로 반문하지 않습니다. (웃음) 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노조 내 페미니즘의 필요성에 대해 반문하지 않는 이유는 여성문제는 여성단체나 여성전담부서 혹은 외부사회단체에서 해야 한다는 인식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에요.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노조 내 단결을 해친다는 일종의 선입견도 있고요.
노조 내에서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해보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서는 여성들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게 관건이잖아요. 예를 들면 소위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면서 빈곤탈출과 고용정책의 일환으로서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그런데 그 일자리들은 대부분 간병, 보육처럼 보살핌노동이거나 공공근로부문으로 소위 여성에게 일임된 노동이고, 대부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불안정노동층을 대거 양산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참 많아요. 이런 일자리가 거의 여성으로 채워지고 있는데다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 때문에 노동인력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는 여성노동인력을 활용하지 않고는 노동력 부족현상을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죠. 정부에게 현재 여성인력은 일종의 사회안전망인거죠. 얼마 전 신문의 기사를 보니까 여성경제활동인구가 1,000만 명 돌파했다고 하는데 여성의 경제 진출이 늘어났다기 보다는 그만큼 불안정 노동층이 여성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진출한 여성인력들이 각종 공간에서 노동을 하면서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이 상당히 많을 텐데요.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가사와 육아까지 해내야 하고, 게다가 사업장내 성차별적 구조와 성별분업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런 상황에서 소위 여성독자적인 권리-여성권·노동권-를 주장하는 것이 가장 급진적이고 계급적인 요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노조 대부분은 임노동 혹은 계급논리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본의 세련된 분할·통제방식에 비해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측면이 있죠. 남성중심·정규직 중심의 노조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노동권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노조내부의 메커니즘을 여성주의적으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지현(이하 지현) : 노동조합에서 처음에 ‘노조란 무엇인가’ ‘노동자란 무엇인가’ 이런 교육을 하잖아요. 그런 교육에서는 노동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노동자로서 세상을 본다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의 모순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페미니즘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주변의 사람들은 페미니즘하면 왜곡된 시각으로 많이 보잖아요. 여성들이 이익을 보려는 게 아니라 ‘노동자란 무엇인가’라는 교육에서 세계관을 갖고 인식하는 것처럼, 우리가 페미니즘을 생각하는 것도 여성의 문제에 관한 모순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이라 생각해요.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생각한다는 것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죠.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신자유주의 하에서 여성을 향한 공격이 보편화되고 있잖아요. 비정규직에서도 여성이 더 많고 빈곤층도 여성이 더 많아요. 많다는 것도 심각하지만,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양상이 모든 사람에게 직면해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 안에서도 이걸 고민해야 돼요. 요 몇 년 사이 급속화된 비정규직 문제만을 보더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들은 그런 노동의 형태에 직면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게 전 노동의 문제로 퍼지고 있잖아요. 물론 그 안에서도 여성은 더욱 고통을 받고 있지만요. 기업에서도 여성들 먼저 비정규직화하고 그 이후에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비정규직을 확대하잖아요.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공격은 노동계급내의 다양한 분할선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진행되는데 그 분할을 방관하면 우리 모두의 기본선이 무너지게 되요. 그래서 노동조합 안에서도 여성 문제는 더 이상 방치돼서도 왜곡시켜서도 안 될 시급한 문제인 거죠.

재연 : 노조 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셨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또한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토론해보았으면 합니다.

나경: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철도여승무원집회에 갔었는데 남성 간부가 발언하면서 ‘얼굴 되지, 몸매 되지 그런데 뭐가 모자란다고 해고합니까’ 라고 말하더라구요. 그 전부터 남성동지들이 철도여승무원 투쟁을 보고, ‘꽃 같다, 예쁘다’등 성애적 표현이 들어간 발언들을 많이 했었어요. 여성들이 투쟁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남성적 시각 혹은 섹시즘적 시각이 많이 가미된 것이지요. ‘여성이 투쟁하기 때문에 아릅답다’가 아니라 ‘투쟁하는 여성이 아름답다’가 아닐까요. 이러저러한 성애적 표현들은 여성들 또한 전투적으로 투쟁할 수 있다는 상상력조차 막아버리지만, 여성 투쟁주체 스스로를 수동적인 존재로 대상화하거든요.

지현 : 2001년 한통계약직 노조에서 517일 동안 투쟁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을 새로 뽑는데, 초반에는 대부분 남성들이 간부를 했어요. 그러면서 투쟁하는 동안 여성동지들에 대해 ‘여성동지들이 파업 동안 힘들어 남성 동지들이 잘 해주고 이것저것 다 해주니까 그것에 익숙해져서 스스로 할 줄 모른다’고 보는 시선들이 있었어요. 그 얘길 듣고 참 불편했는데, 꼭 그렇게 이야기해야 하나 싶었던 거죠. 그러다가 투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마지막 기수 간부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결국 한 여성동지가 간부를 했는데 그 여성동지가 발언도 잘하고 간부로서의 역할도 다 잘 하더라구요. 그러자 그제서야 ‘그렇게 잘 할 줄 몰랐다. 진작에 간부 시키는 건데’ 라고 하더라구요. 눈에 보이는 대로 쉽게 여성들이 손 하나 까닥 안하고 비주체적이라고 이야기 할 게 아니라, 그 여성들에게 기회나 자리를 안 주는 문제인 거 같아요. 여성은 투쟁하면서도 보호해 줘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걸 드러내는 거잖아요. 이런 게 아직도 비일비재한데 노동운동 내에서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나경: 재작년 노동절 주요무대 걸개그림은 남성노동자가 혼자 주먹 쥐고 있는 모습이었죠. 또한 올해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 포스터도 있었고요. 99년에는 파업현장에 머리띠 묶고 나가는 남성노동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를 안고 배웅하는 여성의 모습을 배경으로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민주노총 포스터가 있었죠. 이런 포스터나 걸개그림 등의 상징적 매체를 보면 노조 내 여성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나죠. 그리고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섣불리 덤비면 욕 먹는다’,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라는 분위기가 다수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죠. 이건 남성 동지들도 인정한 사실인데, 자신들이 성인지적 관점이 없다보니까 함부로 발언하지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자유롭게 이야기되면 좋은데 서로 껄끄러워하니까 쉬쉬하게 되는 거고요. 성희롱, 성폭력 해결 과정을 보면 노조 내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의 현주소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결국엔 끊임없이 대화하고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잘못된 부분은 서로 받아들이고 반성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4되더군요.
사실 여러 연구결과에도 나와 있지만 구속, 해고, 수배, 단식, 삭발, 파업투쟁, 노숙농성 등 노조활동의 방식이 강력한 힘이 필요한 가부장적 모델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일부 남성 동지들은 여성 활동가 주체형성을 얘기하면, ‘여성들이 수동적이다’, ‘여성간부도 없는데 여성할당제를 어떻게 채우느냐’고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가사와 육아를 돌봐야 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활동을 수행하는 데 제약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노조에서 성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투쟁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 투쟁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삭발이나, 단식, 밤샘을 결의하지 못한다면 투쟁의지가 떨어진다고 여겨지거나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구조를 말하는 것이죠. 노조의 현재 활동이 여성에게 억압적이지 않은지 생각해야죠. 그리고 여성들 스스로가 수동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 동안의 경험이나 참여가 제한적이다 보니까 필연적, 경험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죠. 과감히 깨야 하는 조건입니다.

노조 내 여성의제에 대한 교육시간은 확보되고 있는가

나경 :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지는 교육보다도 여성할당제 간담회, 여성관련 단체협상 조항, 모성보호에 대한 교육에 치중
지현 : 보통은 임단투 시기, 비정규직 사업장의 경우는 임단투가 안 이루어지니까 투쟁 돌입했을 때 투쟁프로그램으로 배치


재연 :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해결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노조 내에서 자체적으로 여성의제에 대한 교육시간을 확보하고 교육과 토론을 해 나가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교육시간이 얼마나 확보되고 있으며 어떻게 이루어지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나경 : 일단 연맹에서 평균 교육시간에 대한 통계는 없어요. 산별 산업 관련된 간담회가 있지만 별도 교육은 없고 중집 회의나 중앙위원회를 할 때 1시간 정도 할애하거나 공공노동자학교도 진행하고, 단위노조에서 요청된 교육을 수행하죠. 연맹 중앙은 여성 관련 교육으로 1년에 한번 정도 성희롱 예방교육이 있는데, 단위노조까지 해당되는 권고사항이라지만 사실 거의 안 지켜지고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지닌 교육보다도 여성할당제 간담회, 여성 관련 단체협상 조항, 모성보호에 대한 교육에 치중된 편이에요. 그것도 일부 여성간부들만 대상으로 진행되는 수준이죠. 민주노총에서도 여성 관련 교육이 거의 없다고 봐야죠.

지현 : 단위사업장에서는 여성교육이 배치되는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대개는 임단투 시기에 교육 배치하고, 비정규직 사업장의 경우는 임단투가 안 이루어지니까 투쟁 돌입했을 때 투쟁프로그램으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여성 문제에 대한 교육은 다른 프로그램 진행하다 할 게 없을 때, 아니면 투쟁하는 과정에서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하게 되죠. 그러다 보니까 교육이 끼워 맞추기식으로 될 수밖에요. 간부수련회에서도 교육이 있긴 한 데 사업장문제에 대해서 교육하지만 여성 관련한 주제로는 잘 못하는 실정이에요. 가끔 의식 있는 지도부가 있으면 교육으로 배치하는 것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죠.
그런데 교육을 하다보면 더 고민이 되는 것은 여성들이 여성의 문제를 인식하는데 힘든 지점이 있어요. 여성들이 여성의 문제를 거부하려거나 인식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가끔 보이는데, 그게 생각이 없어서라기보다 여성으로써 자각하고 인식한다는 게 여성들에게 괴로운 과정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에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죠. 여성문제를 고민하고 알게 되면 더 힘드니까요. 그래서 여성으로 자각하는 것에 대한 표상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경 : 여성문제는 자각하는 사람 스스로도 괴롭습니다. 여성의제를 제기하는 과정 자체가 괴롭고 고통스럽죠. 다시 교육 얘기를 하자면, 여성교육이라는 게 여성이라는 주제를 따로 잡을 게 아니라 임단투나 비정규직 교육할 때 거의 여성문제와 연결해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교육을 하면 된다고 봐요. 그런데 교육을 하는 주체도 여성주의적 마인드가 부족하다 보니까 기존의 임노동 관계 이야기를 넘어서지 못하죠. 최저임금 사업장도 거의 여성사업장이고, 노동의 불안정화, 세계화 속에서 비정규직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단지 ‘여성’의제에 대한 교육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봐요.

노조 내 여성국, 여성위원회에 대한 평가
나경 : 노조 내 패러다임 전반을 바꾸지 못하고 노조에서는 여성문제의 ‘전담’부서로 사고
지현 : 여성 개별적 복지 혜택이 아니라 모두가 수용해야 하는 방식으로 전반적인 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재연 : 최근 노동조합 안에서 여성국, 여성위원회 등의 가시적인 흐름이 있잖아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죠.

나경: 여성사업의 분리가 여성운동의 분리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성주류화 전략이나 개인출세전략에 치중해 있다는 비판을 받긴 하기만 주류 여성운동세력의 제도개선이나 여성의제 이슈화의 여파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노조 내로도 흡수되면서-물론 주류 페미니스트만의 노력은 아니지만 - 노조 안에 모성권, 건강권, 산전산후 휴가, 성차별적 해고에 대한 문제의식을 여성동지들이 받아 안은 것이고, 여성위원회 여성국 등의 전임자를 두게 되는 성과를 낳았죠. 그러나 여성전담부서만의 노력으로는 전체 노동조합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인데다 제도화에 머물러 있어요.
여성전담부서는 가끔 성폭력 사건이 터지면 그 해결의 전담부서가 되어버립니다. 여성위원회-여성국에서는 노조의 여성주의적 의제화나 패러다임 전변과 관련한 고민을 할 여건이 못 되는 현실이죠. 노조에서 그런 일들을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그냥 전담부서로 떠넘기는 경향이 있어요. 여성위원회-여성국이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지현 : 노조 내에서 여성문제를 사고할 때 모성보호 문제, 산전산후 휴가 같이 여성 개인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전반적인 인식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도적으로 하더라도, 예를 들어 직장 내 탁아시설 설치 같은 문제도 여성이 많은 사업장에 설치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여성·남성 모두가 있는 사업장이나 남성만 있는 사업장이라도 설치할 수 있게 해야죠. 그저 개별 여성의 복지를 따내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문제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여성국이나 여성위원회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여성국에서는 보편적 쟁점으로 문제를 던지기 보다는 여성이 여성의 문제를 끌어안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봐요. 재생산노동의 사회화의 쟁점을 던지지도 못하고, 심각한 비율로 나타나는 여성 비정규직이나 빈곤의 문제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죠. 그게 여성국이나 여성위 만의 문제는 아니고 노동조합 전반이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지 못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당장은 안 되더라도 앞으로 여성국이나 여성위가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연 : 노동조합에서 여성의제를 사고하고 실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노동조합 안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주체화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겠죠.

지현 : 같은 얘기인데 일단은 교육일 수도 있고, 개별 인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방식을 넘어서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도 의무적으로 교육의 시간을 확보 할 수 있어야 하구요, 개별의 복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삶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게 필요해요. 예를 들어 최저임금투쟁 할 때를 보면, 최저임금의 문제를 더 폭 넓게 고민하지 못하고 단지 최저임금 얼마 올려달라는 방식으로 나타나잖아요. 게다가 최저임금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동원되는 방식이구요.
모든 게 임금으로 풀릴 것이 아니라 재생산 노동의 영역을 사회공공성 쟁취의 문제로도 풀어야 할 거 같아요. 사회 공공성 쟁취의 내용을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방식이 아니라 취약계층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구조를 재편하자는 목적으로 구성하면서 그 안에서 재생산 노동의 문제 역시 담보해 나가야겠죠. 개별 노동자에게 복지가 주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남녀 노동자 모두가 삶을 구축할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역시 필요해요.

나경 : 여성의제는 노조운동의 의제 중에서 일부분으로 치부되어 자꾸 뒤로 밀리거나 고민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문제는 사회변혁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여성과 관련된 문제가 뒤로 밀리는 경우로 예를 하나 들자면, 임단투 할 때 마지막에 남은 쟁점은 거의 모든 노조가 생리휴가 무급화였어요. 거의 다 무급화 시켰거든요. 주5일제 하니까 노동자의 삶의 질이 신장된 거 같지만 사실상 이미 쟁취한 복지도 맞바꾸기 하는 바람에 후퇴된 측면이 많죠. 생리휴가 무급화 때문에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를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노동자와 갈등관계에 놓였던 예도 있었어요.
어느 노조는 막판 협상에서 생리휴가 무급화만 남았는데 이거 때문에 파업을 할지 말지 이야기하다가 남성조합원 반발 때문에 결국 무급화로 양보하게 됐죠. 남성들의 요구가 기준이 되는 거죠. 의식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여성의제에 대한 인식은 여성노동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 전반의 노동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속의 노동 불안정화속에서 여성의제는 가장 급진적이고 계급적일 수 있다는 거죠.

할당제 평가
나경 : 보편주의적 시각에서 불균등을 해소하자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지현 : 자리만 상징적으로 줄 것이 아니라 실제 권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


재연 : 노조 내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의제로 여겨지는 할당제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해보죠. 할당제가 여성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현재 노동조건들을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한 측면에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경 : 여성할당제의 의의는 할당제를 통해서 여성의 요구를 의제로 형성한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소위 여성이 지구의 절반이라고 하는데 왜 노조의 의결기구는 하나의 성(남성)이 독점하고 있냐는 것이죠.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중요해요. 소수자에 대한 배려 문제가 아니라 보편주의적 시각에서 불균등을 해소하자는 거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저는 할당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사실 할당제는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른 측면이 많아요. 민주노총과 공공연맹에서만 할당제를 제대로 실시하고 있지, 실질 단위노조까지 제대로 하는 데는 한 군데도 없어요. 총연맹과 연맹의 중앙위원회까지죠. 특히 공공연맹은 중앙집행위원회까지 실시하는데, 상대적으로 굉장히 진보적인 거죠. 단위노조까지 확대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고요. 그야말로 반에 반쪽짜리 할당제에요. 근데 오래 지나지 않는 할당제에 대한 섣부른 평가는 문제라는 겁니다. 우리가 소위 양이 계속 늘어나면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임계질량의 의미에서 30%를 이야기한 건데, 할당제 시행 수준이 아직 그 수준의 평가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에요.

할당제를 제기했던 과정을 보면 단순히 한 성이 독점한 의결구조의 권력을 깨기가 힘들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남성들이 같이 요구한 게 하니라 여성들이 요구해서 쟁취한 게 할당제죠.
‘왜 무임승차하려고 하느냐‘는 문제제기도 많았어요. 사석에서 이야기해보면 ‘나 그거 반대해요’라고 말하는 활동가들도 있어요. 여성들이 들어오는 걸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실력으로, 노조에서 커서 들어오라고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심하게 말하면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낙후된’ 활동가라고 봐요.

할당제는 중심부로 치고 들어가는 전술이에요. 대부분의 남성들은 권력을 여성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권력을 내놓기 싫어하죠. 할당제는 지금 긍정적인 점을 강조하면서 단위노조까지 시행을 확대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주체들을 키워내고 여성들이 노조활동을 할 때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계속 이야기되어야 하지, 이 상태에서는 많이 힘들어요. 2003년 2월 공공연맹 여성위원장님이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자유노련 세계여성대회에서 민주노총의 여성할당제 쟁취에 대해 보고하고 기립박수를 받았었다고 하더군요. 유럽에서 소위 잘 나가는 어떤 노조도 이렇게 하는 데가 없다는 얘기죠. 그만큼 할당제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조 내에서 ‘얼마나 여성의제 확산에 도움이 되느냐’ 판단하기 이전에 그 실현 자체도 얼마나 힘든지 증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할당제 평가의 관점을 여성들의 의제를 얼마나 해결했는지, 여성할당의원들이 여성의식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독점적 구조를 바꾸는 것, 여성도 같은 의결구조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상황인식 자체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죠.
제 사례를 이야기하면 제가 조직실에 있을 때 단위노조 중앙회의에 결합하면 거의 다 남자밖에 없어요. 저 혼자 여자인 경우가 허다하죠. 그것에 대해 명예 남성적으로 내가 잘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의 경우 일을 하기 싫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나의 노동조건을 제약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활동 초반엔 남자들만 있는 조합에 간다는 것 자체가 제게 스트레스가 되더라구요. 남성들만 있다는 것 자체가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다는 걸 느꼈죠. 가기 싫은 장소, 어색한 장소가 아니라 여성들이 많이 그 자리를 채우고, 양성이 동등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인지하는 것 자체도 중요합니다.

지현 : 현재 노조가 지니는 남성 중심적인 구조 안에서 할당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과도기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할당제가 지금 노조의 구조에서는 필요하고 나름대로 선진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여성들을 길들이거나 내가 실력으로 쟁취하여 이 자리를 받은 게 아니라 할당제니까 남성들도 낮게 보고 그냥 올라온 거라 생각하게 되죠. 똑같은 업무를 주지도 않고요. 그런 우려가 있어서 저는 조심스러운 편이에요. 과도기적으로 필요할지 모르지만,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아요. 자리만 상징적으로 줄 것이 아니라 실제 권한을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과연 할당제로 풀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구요. 여성들의 의결구조가 마련된다면 할당제가 필요 없겠죠. 더 문제는 노조 내 여성 전반의 문제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여성의 문제로 풀리게 되는 부분도 있잖아요. 성주류화 전락의 일환인 거죠.

나경 : 단위노조 상근간부, 지부장들까지 할당제가 되어야 그나마 할당제가 잘 되었는지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총연맹이나 연맹 몇 군데 하는 것 가지고 평가할 수 없고 섣불리 평가하면 할당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거든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지금은 할당제의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부각시키고 싶어요.
주류 여성단체에서 제도권 내 진입문제를 주로 이야기하고 민주노동당에서 많이 이야기를 하니까 민주노총에도 제도화가 많이 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요. 할당제가 총연맹에서부터 연맹에 통과되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과정이 오래 걸려서 안착화되었다고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데 단위노조에서는 할당제가 거의 실시되지 않고 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투쟁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투쟁
나경 : 불안정한 노동, 저임금 노동에 여성들만이 종사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지현 :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부차화·위계화 된 여성노동의 문제를 제기해야


재연 : 투쟁과정에서 가족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남녀노동자들 사이에 조금 다를 거 같은데요. 비정규직 노동자투쟁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은 어떻게 다른지, 여러 단위사업장들과 연대투쟁하면서 느꼈던 점을 얘기해 주세요.

지현 :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대부분 투쟁하는 사람이 남성이잖아요. 요 몇 년 사이 달라지긴 했지만. 비정규직 투쟁이 한참이던 초반 ‘비정규직 70%가 여성이라는데, 왜 비정규 투쟁하는 사람은 다 남성이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하는 얘기가 있었어요. 이 말은 비정규직 문제가 곧 여성의 문제인데 노동의 여성화에 대해 잘 얘기되지 못하고 있는 걸 비판한 거죠. 그런 말에 많이 동감해요.
우리가 여성 사업장이라고 할 때는 여성이 많은 사업장을 말하는데, 숫자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업장에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여성문제가 있는 사업장이냐의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어야 해요. ‘여성 사업장’이 단지 수적으로 여성이 많다는 의미만을 뜻한다면 여성이 많은 사업장에서도 투쟁할 때 여성으로서의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여성이 처한 상황에 대해 말하지 못하면서 여성들이 투쟁하는 의미도 살리기 어렵다고 봐요. 예전 현대자동차 식당 아주머니 투쟁에서 여성들의 낮은 지위나 철도 새마을호 여승무원에서 여성 직제가 전부 비정규직으로 되어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잖아요. 여성노동을 어떤 노동의 하위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위계화 된 문제를 봐야 해요. 이런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은 다른 부분이 있죠.
그런데 노동조합 내에서 여성문제라고 하면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성차별, 성폭력 문제로만 바라보죠.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실제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전반적으로 보지 않는 거죠. 여성문제를 전술적 차원에서만 고려하는 것이죠. 요사이 비정규직 여성사업장에서 투쟁을 많이 하는데 여성의 이미지를 희생자화 하면서 선전할 때 눈물로 호소하고 꽃같이 연약한 여성노동자로 부각되죠. 실제 하나의 존재로서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2000년도에 롯데호텔 파업할 때 여성에 대한 성희롱 문제가 부각될 때 회사 측이 교섭과정에서 다른 거 다 받아줄 수 있는데 성희롱만은 못 받아들인다고 농간을 부렸어요. 어떤 지역본부의 간부가 저에게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더라구요. 당시 상황에서 활동가들은 이 문제를 결국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된 것이죠. 여성문제는 맞바꿔도 되는 문제, 큰 대의를 위해 버려도 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 함정을 파는 겁니다. 그런 예외를 허용하는 순간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성과를 버리는 거예요. 자본이 노동자를 분열시키기 위해 가장 쉬워 보이는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것인데요. 이걸 잘못 판단하면 노동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되요.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한 사고는 기본선을 지키는 것이죠.

나경 : 저는 여성 투쟁 사업장에 가면 오히려 힘을 받고 가능성을 더 많이 보고 와요. 투쟁사업장에서의 여성동지들은 굉장히 자발적인 측면이 있어요. 경찰청 고용직 노조를 보면 애 엄마도 많은데 집에 안가고 붙어 있잖아요. 더 많은 결의와 뼈아픈 투쟁의지가 필요한 거죠. 가사나 육아의 문제로 가족 간의 갈등이 어느 정도 인지 모르겠지만 남성들이 투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 있을 텐데 극복하는 거죠. 서울대병원 지부나 한국통신 114 투쟁 때 여성 노동자들 악착같이 투쟁하는 것을 보면 놀라워요.
다만 남성적인 노조문화를 따라하는 것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투쟁의 의지를 굳이 삭발 같은 의식으로 표현해야 하나 싶은데 결국 주요 임원임에도 삭발투쟁에 참여 못하는 동지가 생기고 그럼, 투쟁의지를 의심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이죠. 기존 노조문화의 틀에서 사고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저는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나 서울대 병원지부 노조를 보면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들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가사육아문제에서도 생존을 했고 투쟁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으니까요. 투쟁전반에 어려움들이 많았어요.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는 좁은 시설노조에서 먹고 자면서 견뎌냈고, 경찰청에서 연탄불 갈고, 잔심부름하고, 김치나 담배심부름 등 별의별 일을 다 하면서 지금까지 왔으니 생존자죠. 이처럼 여성들이 스스로 주체로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재연 :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들은 경찰청에서 일을 보조하는 역할이고요, 기아차판매지부 노동자들도 판매사원들의 사무를 보조하는 일을 하는 것에서 나타나듯 이미 성별 분화된 노동시장에 여성들이 있잖아요. 이러한 구조가 노조 안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지현 : 여성들이 경찰청에서 속옷 빨래까지 했다는데 그런 일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새마을 여승무원도 그런 직제가 있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 봐야죠. 예를 들어 여승무원, 경찰청 여성노동자, 캐디, 학습지 같은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여성노동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제조업사업장에서는 잘 못 느껴요. 남성들이 많은데다, 그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같은 라인에서 일하고, 다른 서비스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돈을 많이 받으니까요. 그렇지만 사실 성별 분업이 겉으로 드러나는가 아닌가의 문제일 뿐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이 문제를 단지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여성노동의 문제로서 전반적으로 제기하지 못하는 한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특수고용직 노동은 대부분 서비스업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여성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으로 감내하게 하는 것이 있다고 봐요. 특수고용직 투쟁이 여성노동자들 투쟁이고 여성들이 접하기 쉬운 직업이 대부분 특수고용직에 속하는데 그 여성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여성노동자들 대다수가 특수고용 노동자인 만큼 그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그만큼 이직률도 높은데 노동이 고되기 때문이죠. 취업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한번쯤은 거쳐 갈 만큼 여성노동자들을 값싸고 쉽게 사용한다는 얘기에요.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실제 특수고용 투쟁에서 눈에 보이는 대다수 사람들이 남성이니까 안 드러나는 건데 그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나경: 경찰청고용직이나 한원 CC 경기보조원 투쟁 사례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어요. 직종 내 성별분업이 있고 여성들이 부차적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여성노동자 대부분은 3차 산업이나 서비스 부문, 비공식 부문 현장에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와 저임금으로 착취당해 왔는데 노동조합도 전술이나 슬로건을 고민할 때 ‘비정규직 정규직화’만 이야기하죠. 불안정한 노동, 저임금 노동에 여성들만이 종사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정규직이 되어서도 여성들은 그 일을 하게 될 거잖아요?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대한 평가
나경 : 노동의 직종간의 위계,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서열화, 성별분업 등을 제기할 수 있어야
지현 : 오히려 자본에게 역이용되어 여성들에게 성차별적 구조를 고착화하는 결과 불러올 수도


재연 :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의 주요한 요구로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내걸고 있는데 지금의 조건에서 이 요구가 타당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나경 : “동일노동-동일임금”이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말하는 것인데요. 동일가치라는 말에서 누가 가치를 매기냐가 중요해요. 극단적으로 가치평가를 못 받는 노동이 가사노동이고 거의 모든 여성단체들이나 여성활동가들의 문제제기가 가사노동의 비가시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노동가치의 서열화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죠. 그런데 현재의 위계서열화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그냥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고만 하면 노동의 직종간의 위계,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서열화를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려요. 자본이 만들어놓은 경영학적 순서에 의해 노동가치가 서열화되는 구조를 받아들이는 결과가 됩니다. 물론 동일가치 동일노동이 무조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동일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같은 직종 안에 남녀가 같이 일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은행에 가면 여성들은 창구 앞에 앉아있고 남성들은 관리직으로 더 빨리 승진하잖아요. 여성들과 남성들이 채용부터 배치까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누누이 얘기했듯이 오늘날 늘어나는 불안정한 일자리에 채워지는 노동력은 거의 여성인데 이런 상황에서 동일노동에 동일임금 지급하라고 하면 성별분업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더욱 빈곤하게 되는 거죠. 같은 직종에서 남녀가 일을 하는 곳은 제조업 사업장 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실상 지금 여성들이 많이 있는 직종에서는 동일임금-동일노동이라는 요구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 있어요.
또한 비정규직으로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인 임금을 받는 경우도 많죠. 이런 부분에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라는 제기를 한 건데요. 비정규직 70%가 여성 노동자로서 서비스 산업, 식품업, 보살핌 노동, 비공식 부문 등 노동조합조차 인정 안 되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유효한지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성별 분업 상황에 대해 은폐하는 효과를 낳게 되니 말이죠.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돌봄 노동, 육아의 문제를 직장과 가사를 양립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전가하는 상황에서 여성노동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성의 노동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상황에서 동일가치-동일임금이라고 하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비켜가는 것이 되어 버려요.

지현 : 1980년대 말 여성노동자들이 동일노동-동일임금이란 요구를 내걸고 투쟁했던 사례가 있었어요. 당시 경공업 현장의 사례였는데 당시에는 그 요구가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조건이 많이 달라지고 있죠. 산업이 공동화되면서 제조업이 많이 줄어들고 있잖아요. 여성노동자들의 일이 다른 상황에서 1980년대와 똑같이 요구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가치가 다르잖아요. 청소를 하더라도 청소관리반장은 남자가 하고 시설 관리는 남성, 여성은 청소를 하죠. 가치가 잘못 매겨지면 여성들에게 성차별적 구조를 고착화하는 결과가 돼버려요.
「가사노동 가치 법안」을 한나라당이 법제화한다는 데 이것은 오히려 여성들을 묶어 놓게 될 거에요.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라는 요구가 처음에는 노동자들이 임금차별에 반대하면서 의미 있게 출발했지만 현재에는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역이용될 소지도 있으니까요. 여성 의제를 떠나서 보았을 때도 노동법이 개악되었을 때 정부 법안에는 차별금지 구제책, 동일노동-동일임금이 포함되었거든요. 그렇지만 실제 정규직은 관리직인 경우가 많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이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얘기하는 이른바 차별구제책은 불필요한, 실효성 없는 법안이었어요. 오히려 정부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이라는 조항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 문제를 해결했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이는 여성노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경: 굳이 여성주의적 관점을 들이대지 않아도 비정규직을 채용할 때를 보면 될 것 같아요. 한 산업에서 프로젝트 전체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쓴다던가, 한 직종 자체를 외주·용역으로 전환한다든가, 민간위탁을 하잖아요. 동일노동-동일임금은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에게 동일임금을 지급하라는 고유한 의미가 있는 건 사실인데 지금 그것이 그렇게 적절한 요구인지 의문이 들긴 하네요.

여성독자노조에 대한 평가
나경 : 독자여성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기존 노조의 문제점이 지금은 해결되었는지를 제대로 평가해야
지현 : 실리적으로 성과를 안겨주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제를 고민해야 하고, 남성 중심적인 노동운동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해야


재연 : 이번에는 여성독자노조에 대한 평가를 해봤으면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98-99년 당시 노동조합운동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진 여성독자노조들이 생겨났는데요, 벌써 꽤 시간이 흘렀네요. 노조 내 페미니즘을 사고하기 위해 여성독자노조에 대한 평가는 우회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현 : 언젠가는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여성들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운동인데, 분리적으로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게 문제인 거 같아요. 여성노동자라는 주체가 있고 주체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합체는 있어야 하는 거니까 개별로 하나하나 보면 필요한 거죠. 그런데 5~6년간 여성독자 노조가 보였던 모습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봐요. 여성 문제를 구조적으로 건드리며 나간다기 보다 상층에서 교섭하고 조합원들에게 실리적인 부분을 안겨다 주는 방식이 많아요. 이게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모르겠지만, 여성 독자노조가 궁극적으로 나아갈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남성 중심적인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이 안 이루어집니다. 그냥 우리끼리 우리 조합원에게 잘해주면 된다는 방식이라면 한계가 있는 것이죠.
여성들의 자율적인 집합은 의미가 있으니 현실운동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혼자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성 중심적인 노동운동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 하면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나경 : 독자노조를 어떤 고민으로 출발했으며, 현재 그 고민에 맞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안 된다면 어떻게 해소할 건지에 대해 평가를 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만들 때 진지한 고민들이 있었던 거잖아요. 물론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서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요. 하지만 지금은 나름의 독자성을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고 제대로 못하면 비판을 많이 받을 상황이죠.
여성독자노조를 평가하기 이전에 독자노조를 만들었던 배경, 즉, 독자여성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기존노조의 문제점이 지금은 해결되었는지를 평가해 봐야 할 거 같아요. 냉정히 말해서 별로 해결된 거나 달라진 거 없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 평가하고 반성해야 해요.
여성의제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있거나 최저임금 투쟁을 할 때 보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발언하거나 여성의제를 부각시키면서 근본적으로 문제제기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일반 노조하고 투쟁하는 게 똑같아요. 내용, 전술, 슬로건, 정책 거의 비슷해요. 모성보호, 생리휴가에 대한 투쟁도 일반 노조에서 하는 것 이상 안 되는 거 같아요.
평가의 결과가 독자노조에 대해 유지냐 폐지냐의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독자여성노조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의 요구를 어느 조직에서 잘 반영할 수 있느냐에 대한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선택이기 때문이죠. 기존노조가 조금 변하고 잘하는 것 같으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겠죠.

재연 : 여성친화적인 방식으로 조직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면밀히 봐야 할 거 같은데요.

나경 : 여성들이 많으니까 당연히 여성 친화적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여성의제를 가진 요구나 자기 전망이 없다는 게 문제인거 같아요.

지현: 여성 친화적 조직화모델이라거나 단체협상에 적용할 여성모델협약을 제시하는 등의 활동은 의미가 있죠. 문제는 그런 것을 민주노총 같은 곳에서 현실화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나경 : 여성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은 대화, 소통을 확대하고 차이의 인정하는 가운데 다(多)중심적 사고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인데요, 기존노조에서는 ‘대동단결’을 중시하면서 여성의제가 억압되었던 부분이 존재했죠. 여성문제는 남녀적대를 양산하고 조직을 분리시킨다고 생각해온 것이 사실이니까요. 독자노조의 경우, 여성들이 많으니까 여성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를 뛰어넘어 여성의제에 대한 심층적인 고민이 있어야 하는 데 그렇게 보이진 않더라고요.

지현 : 서울여성노조 등 여성 독자노조에서는 여성 친화적 모델로서 여성들이 모여 수다를 떤다거나 여성들이 모이면 담배도 피지 말아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맞지 않는 여성들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여성적’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노조 안과 밖의 여성 활동가들이 함께 하기 위해

나경 :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지현 : 서로에 대한 개입으로 차이를 좁혀가야


재연 : 노동조합에서 페미니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노조 안에서의 실천 뿐 아니라 외부에서의 개입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조 안에서는 폐쇄적이지 않아야 할 것이고, 노조 외부의 여성 활동가들도 현장의 문제들에 대해 긴장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조합 여성 활동가들과 노조 외부의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죠.

나경 : 노동조합이 사회 운동적 의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할당제, 복지제도, 모성보호에 아직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아요. 노조 내 여성정책이나 여성의제에 대한 고민이 사회단체의 고민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해요. 여성의제가 사회적으로 확장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거죠.

지현: 기반이 다르고 조건이 달라서 힘든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개입으로 차이를 좁혀가야죠. 그래서 끊임없이 의제들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노조 내에서 일회성으로 이슈 파이팅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단체에서도 임단협 요구안을 같이 만들어 본다던가, 같이 교육을 고민해 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나경 : 만날 계기가 있어야 해요. 간병인 노조나 고대 시설관리노조 등 현장에 연대했던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도 노조 내에 정세적인 여성의제가 있다는 것을 주목했으면 해요. 경찰청고용직의 경우도 여성들만 집중되어 있는 직종 자체를 없앤 것이고, 학교 비정규직도 젊은 여성 고용한다고 나이 든 여성들을 해고시킨 사례인데, 현장에서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한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여성노동권을 제약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현장의 쟁점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하겠죠.

나아가며
나경 : 여성운동은 부문운동이 아니라 변혁운동의 하나
지현 : 여성노동자들의 의미 있는 투쟁의 역사를 복원해야


재연 : 마지막으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한발 더 나아가고 노조 내에서 페미니즘을 구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리하는 의미에서 이야기해주세요.

지현 : 과거를 잘 복원해야죠. 20-30년부터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어왔는데요. 노동운동사 내에서도 그러한 역사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 하는 측면이 있어요. 7-80년대도 노동자투쟁의 많은 부분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었는데,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단지 과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연결되는 의미로서 과거를 잘 복원하고 현재에도 그 문제의식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20-30년대나 7-80년대나 또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보거든요. 여성들은 항상 싸워왔는데, 그게 의미 있게 평가되지 못합니다. 여성의제를 고민하고 그것을 아래로부터 제기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 두 가지가 접목될 때 노조 내에서도 페미니즘 구현이 현실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나경 : 여성의제에 대해 고민하려면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급진적인 문제니까요. 계급관계는 보편적이고, 여성문제는 특수한 것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여성이라는 주체가 처한 조건, 여성의제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구조 전체를 변화시킬 수 없어요. 가사노동, 불안정노동, 성적억압, 육아 등 모든 면에서 4중 이상의 고통을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데 여성주체를 조직하지 않고 대체 누구를 조직하겠다는 말이죠?
우리는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요구만으로는 자본주의의 총체적인 공격에 대해 대응할 수 없어요. 노조가 여성문제를 사회적 요구로 채택해야 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성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연대세력이에요. 여성들이 노조활동까지 하면 5중고인데, 힘들지만 생존자로서의 길을 과감히 선택할 필요가 있어요. 주체적으로 나서서 남성들을 조직하고, 여성 활동가 스스로 변혁적 전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해요. 여성운동은 부문운동이 아니라 변혁운동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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