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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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와 에너지 사회공공성

사유화 저지 투쟁과 에너지 체제 전환의 과제

송유나 |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사무처장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와 에너지 사회공공성1)

들어가며

에너지 노동사회 네트워크는 기존의 노동운동 혹은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독특한(?) 구조일 수 있다.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마주하게 된 것도 그러하고 노동조합 운동과 사회운동이 중장기적 정책 과제를 모색하는 상설적 운동단위를 꾸린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분명 투쟁의 과정 속에서 투쟁의 구체적 쟁점이 변화, 발전해온 운동의 성과물이다. 물론 이 성과물은 운동의 새로운 출발선일 뿐이다. 1999년부터 사유화 저지 투쟁이 본격화되고, 2002년 발전·가스·철도 노조 파업이 이어졌으며, 그 결과 분할 사유화 정책은 어느 정도 고립되었다. 그러나 사유화의 변종인 실질적인 경쟁체제 도입과 시장화를 위한 자본의 요구는 현재 진행형이며 더욱 큰 압박으로 성장하고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사유화를 반대하는 에너지산업 노동자들은 사유화 저지의 실내용인 에너지산업의 공공성이라는 과제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공공성의 실내용이 에너지 체제 재편이라는 장기적이고 심오한 정책적 깊이를 요구하며, 나아가 사고의 전면적 전환까지 요구하는 것임을 피상적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창립한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당면한 현안에 대한 시급한 대응과 중장기적 대안 모색을 요구받고 있다.

사회공공성의 실내용이 무엇인가

1999년과 2000년 투쟁을 경유하면서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이 본격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정책 뿐 아니라 교육, 의료, 문화 등 제반 영역에서 시장화·개방화 정책이 급격하게 추진되면서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노동조합 운동은 물론 제반 운동의 영역이 결합하였고 이는 또한 운동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것의 실내용에 대한 현실적 고민 역시 깊어지게 되었다. 사유화 및 시장화·개방화에 대한 ‘저지’ 혹은 ‘반대’의 의미를 넘어서는 적극적인 투쟁의 요구가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속되는 가운데 현장의 생존권이 걸린 요구와 투쟁은 이데올로기 공세에 의해 고립되고 공격당하였다. 노동조합 단위 현장에서의 생존권 쟁취 투쟁은 많은 부분 위축되었고, 고통 분담 등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의 출발은 생존권 쟁취, 고용안정, 매각 반대 투쟁이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꾸미는 겉치장의 형태를 띠기도 하였다. 또한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의 실내용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에 감성적으로만 공감하는, 소위 무늬만 사회공공성 투쟁 형태를 띠기도 하였다. 즉 소극적인 의미의 사회공공성 쟁취의 모양새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계는 사회공공성이 무엇인가라는 논쟁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켰고, 여전히 노동운동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대우자동차 매각 반대 투쟁을 기억해 보자. 대우자동차 현장의 생존권 쟁취 투쟁은 대우자동차의 국유화라는 높은 수준의 요구 투쟁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마찬가지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생존권 쟁취 투쟁도 공공부문이 공공성을 담지할 수 있는 소유·지배·운영 구조를 확립할 때만이 양립할 수 있다는, 현장 자체를 넘어서는 투쟁 과제로 발전한 것이다. 또한 민중의 사회적 삶을 담보하는 공공성이 노동자의 생존권과 적확히 일치한다는 점 역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은 현재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중요하고 일상적인, 나아가 변혁적 전망을 함축한 과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사회공공성의 실내용은 무엇인가? 발전과 가스 산업 사유화 저지, 배전 분할 저지, 에너지 관련 민간위탁 등을 반대하는 투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철도의 경우도 공사체제로 전환된 상황에서 외주하청, 민간위탁 등 시장화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WTO 서비스 협상 등 시장화·개방화 저지 투쟁 역시 사회공공성 쟁취 등 제반의 과제와 맞물려 다방면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이를 관철하기에는 역부족이나 교육이나 의료의 경우, 무상교육·무상의료라는 높은 수준의 요구가 현실 운동의 과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렇듯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은 지난 4-5년 간 빠른 속도로 발전해오며, 사회적 의제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럼에도 여전히 매각과 개방화 저지 등 현장의 이슈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사유화 정책, 혹은 공공부문에 대한 시장화·개방화가 요금을 인상시키고 노동자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하면서, 노동권을 심각히 위협할 것이라는 것 이상의 내용으로 구체화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공공성의 실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발전과 가스 혹은 전력산업 전반의 매각을 철회시키고 사유화를 성공적으로 저지하는 것, 즉 소유·지배 구조를 공공적으로 남기는 것만으로 과연 사회공공성이 실현될 것인가? 에너지 산업이 공기업 체제로 존속되고 저렴한 요금에 보편적으로 공급되기만 한다면, 에너지 산업의 공공성을 사수한 것이라 간주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국가부문의 민주적 소유·지배·운영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즉 사회화 혹은 국유화에 대한 이론적 쟁점을 지상의 것으로 끌어내려야 한다.2) 이럴 때 에너지 산업의 공공성 문제는 소유와 지배 구조를 방어하는 투쟁을 넘어서, 민주적 운영과 민중적 구현의 문제로 돌입하게 된다. 환경운동 진영에서 제기하는 친환경적 에너지 체제 전환과 에너지 기본권 등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둘러싼 투쟁을 새로이 조직하는 일이 바로 적극적인 의미의 에너지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일 수 있다. 우리는 에너지 노동사회 네트워크 창립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물 사유화 저지 투쟁과 결합하게 되었다. ‘물과 에너지는 인권이다!’라는 슬로건은 물과 에너지를 사적자본으로부터 방어하는 투쟁, 나아가 물과 에너지라는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 물론 시작이지만, 물과 에너지뿐만 아니라 이동권 등 제반 공공의 영역을 확장하는 투쟁이 노동조합 현장을 넘어서는 투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이렇듯 사회공공성 쟁취의 적극적인 의미, 그 실내용을 둘러싼 투쟁을 단위 현장에서 그리고 제반의 공간에서 준비하고 만들어나가야만 한다.

에너지 사회공공성의 주요 쟁점: 친환경적 체제 전환의 문제

1999-2000년 에너지 산업 노동조합은 사유화 저지 투쟁을 시작하면서 환경운동 진영과 반목(?)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 환경운동 진영이 사유화 정책을 인정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처음에 이 광경은 충격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열심히 현장에서 노동조합 운동을 일구고 전력산업 구조조정이 갖는 사회적 폐해를 실감하였던 노동조합 주체들은 일부 환경운동 진영이 사유화 정책을 찬성하고 오히려 노동조합의 생존권 쟁취 투쟁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고, 극심한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또한 일부는 환경운동 진영의 주장 자체를 정부나 자본의 논리와 궁극적으로 같다고 치부하며,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비난하며 선을 긋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환경운동 진영에서 제기했던 쟁점은 전력산업 전반이 갖는 반환경적 폐해와 원자력 발전의 문제였다.
개발 독재 체제 하에서 급속히 자본축적을 강행한 한국사회 에너지 산업 전반은 축적 기반 형성을 위해 대규모 집중화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수도권과 산업단지로 집중되는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거대 화력발전 단지가 조성되고, 대규모 전력공급을 위해 원자력 발전이 기저부하를 담당하게 되며, 765 kv와 같은 거대 장치 산업이 조성되었다. 자동차·금속·조선 등 수출 위주의 제조업 발전 전략과 이에 종속되는 에너지 정책에 친환경 문제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문제의식은 아예 설 곳이 없었다. 저소비 혹은 에너지의 효율적 관리와 운영에 대한 고민은 사장된 채 공급 위주 정책을 중심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98% 이상의 에너지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원자력 중심의 전력수급 정책이 자리잡게 되었다. 미래를 지향하는 에너지 전원 구성 다변화 정책-재생가능한 에너지 확대 및 전원 구성에서의 천연가스 등을 확장해나가는 에너지 믹스 정책 등-과 수요관리 강화를 통한 에너지 효율화 정책 등은 아주 쉽게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렇듯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자본의 산업 발전 논리에 종속된, 관료화된 “에너지 행정”이었다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력 산업의 발전은 친환경적·미래지향적 이슈와 역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환경운동 진영과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투쟁을 통해 친환경적 이슈가 끊임없이 쟁점화 되었고, 여전히 방폐장 건설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들은 투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원자력 중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화력 발전을 넘어 전원 구성을 다변화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확장하기 위한 정책은 선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물론 에너지원을 철저히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급격한 에너지 정책 선회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3) 재생 가능한 에너지 확장 정책 역시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적어도 자본주의적 습성의 에너지 과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수요 관리에 효율화를 기하는 정책은 현실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며,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자본의 성장 논리에 종속된 공급 위주 에너지 정책이 중심일 뿐이다.
노동조합 운동 역시 어느 정도는 자본의 발전주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문제는 노동조합 운동 자체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한계와 연동되어 있다. 노동조합의 주요 투쟁 과제이자, 노동자계급 운동의 일반적인 투쟁은 고용안정 등 생존권 보장과 노동조건의 향상이다. 물론 노동조합에서의 일상적 현장 투쟁이 계급적 투쟁으로 전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산업 자체의 불황 혹은 자본의 위기 국면에서 번번이 노동조합 운동이 위축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통분담을 받아들이고, 정규직이 비정규직 확산을 묵인하는 일련의 징후는 몇몇 개량화된 노동조합을 비난하고, 정규직 노동조합 일반을 구시대 운동으로 치부한다고 해서 해명되지 않는다. 현실의 노동자 투쟁은 자본의 위기를 변혁적 전망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이행의 기획과 모색을 제출해야 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에너지 공급의 주체로서 에너지산업 노동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이 고민해야 할 바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전망 속에서 어떠한 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물론 그 동안 에너지산업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운동 전반에서 친환경·지속가능한 미래의 문제가 자본주의 변혁의 관점과 결합하여 깊이 있게 사고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환경운동 진영 역시 에너지 체제 전환을 고민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득하고 함께 해야 할 주체로 여기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환경운동 진영은 공룡화된 한전, 원자력 발전과 거대 화력 발전에 대해 심각한 반감을 가졌다. 이로 인해 사유화를 막연히 찬성하거나 노동자들의 투쟁을 집단 이기주의로 여긴 바 없지 않았다. 특히 전력이 쪼개져서 팔리면 관료화된 거대 질서가 깨질 수 있으며, 심지어 원자력이 사유화된다면 막대한 투자비용을 회피할 사적 자본에 의해 원자력 발전이 서서히 쇠퇴할 것이라 희망하기도 하였다. 거대 장치 산업이 분할되고 조각나면 재생 가능한 에너지 등 소자본이 들어설 입지가 늘어날 것이라고 가상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희망일 뿐이라는 것을 환경운동은 이제 이해하고 있다. 조각나고 쪼개어진 에너지 산업은 결국 사적 독점화의 길, 초국적 자본의 지배로 귀결될 것이고 재생가능한 에너지도 자본의 입장에서는 매력 있는 상품이다. 자동차 산업 등에서 앞다투어 새로운 동력 자동차 개발에 주력하고, 대자본이 에너지원 개발에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렇듯 에너지의 사회공공성은 소유·지배 구조의 방어, 보편적 권리 쟁취, 민중적 운영의 문제와 더불어 에너지 산업 구조 자체가 가질 수 있는 자본의 폭력성에 맞서는 투쟁, 폭력성을 거세한 민중적 에너지 체제 전환이라는 과제가 결합되어 있는 문제다. 에너지 사회공공성을 중심으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결합한 것은 양 진영이 투쟁해왔던 과제의 단순 합이거나 과제를 죽 열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제 노동운동은 친환경적 체제 전환이라는 변혁적 미래의 상을 고민하기 시작하였으며, 환경운동 역시 반자본·민중 투쟁의 의미를 새로이 받아 안게 된 것이다.

에너지 산업의 실질적인 사유화 전개 양상

1998년 이후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급물살을 타는 과정에서 전력과 철도 등 거대기간산업은 분할 매각 방식의 사유화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특히 전력과 철도의 분할 매각은 영국과 호주의 사유화 방식을 그대로 모방했다. 그런데 당시 김대중 정권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그대로 옮겨 쓰기에 바빠 그 정책의 실패 여부에 대해서는 검토할 겨를(?)이 없었다. 전국적 네트워크로 묶여 있는 단일 공기업 형태인 전력·가스·철도 산업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수평적·수직적 분할 방식을 채택하였다. 미국을 위시한 초국적 자본과 IMF, IBRD 등 국제기구들은 한국의 공기업 매각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부채 상환의 담보, 외국 자본에 대한 시장 개방의 중심에 이들 공기업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듯 급속한 매각의 요구에 가장 용이한 방식으로 채택된 것이 분할 매각 방식이었다. 그러나 분할 매각이 중단된 것은 네트워크 산업의 분할이 결코 경쟁체제로 나아갈 수 없으며, 산업이 지니는 자연 독점적 성격 때문에 사적독점으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었다. 네트워크 산업의 사적독점 체제가 가져오는 폐해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드러나 있다.
가스 산업의 경우 분할 방식을 택할 경우 전력, 철도와 달리 장기도입계약 승계방안, 수송선 디폴트 문제, 수급 조절 등 복잡한 문제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따라서 결국 7-8 여 년의 논란 끝에 분할 방식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가스 산업에서의 직도입 문제는 이미 자가용 LNG 직도입 문제로 불거진 바 있으며 김대중 정권은 사유화 정책을 실질화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을 충분히 갖추어 놓았다. 1998년 9월 석유사업법을 개정하여 LNG 직도입은 종전의 사전승인제가 신고제로 바뀐 바 있다. 현행법 상 ‘10만 kl급 탱크 1기 보유 또는 임차’라는 일정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직도입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2004년 7월 <포스코>가 55만 톤을, 가 60만 톤의 발전용 LNG 도입계약을 체결했다. 도 2008년부터 연간 150만 톤의 직도입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19998년 석유사업법 개정이 당시 <포철>의 에너지 사업 다각화 정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최근 직도입 확대가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 속에 진행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포스코>, , 의 행보는 에너지 산업의 실질적 사유화가 얼마나 진척되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민자발전 현황을 살펴보면, 외국인의 국내 에너지 시장에 대한 지배 양상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대표적인 에너지 자본은 이미 거의 50% 이상이 외국인 소유이며 사실상 초국적 자본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민자발전의 확대에 있어 LNG 직도입은 발전연료 직도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직도입이 확장될 경우 이들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된다.
2004년 11월 산자부는 발전 사업자에게도 LNG 직도입을 허용하여 가스공사와 함께 도입 경쟁을 시작하게 하였다. 산자부는 2008년까지 필요한 500만 톤 정도의 물량을 발전 자회사와 가스공사가 경쟁적으로 도입하게 하여 우위에 있는 계약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즉 LNG 도입에서 가스공사와 5개 발전 자회사들 간의 실질적 경쟁 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발전 자회사 입장에서 보면, 5개 발전사로 분할된 상황에서 분할을 통한 경쟁의 효과, 즉 비용절감을 가시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방법은 연료비 절감 밖에 없다. 물론 발전 분할 이후 경쟁 효과를 내기 위해 해당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 및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를 통해 발전 비용을 감소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발전 산업과 같은 거대 장치 산업에서 노동비용이 차지하는 부문은 미약하다. 결국 모든 것이 연료비 절감인데, 결국 경쟁의 효과가 오히려 공급자의 권한을 강화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상승시키는 폐해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LNG 도입권 확보는 발전 5개 사간 가격경쟁을 부추기고, 발전사간 경쟁은 사적 자본의 경쟁과 결합하여 에너지 전반의 시장화 강화의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LNG 도입의 경우 20-30년 장기계약에, 수송선 디폴트 문제 등 다양한 사안이 결합되기 때문에 경쟁이 도입가격의 하락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7월 체결된 계약에서도 발전 5개사와 가스공사 간 도입 경쟁이 공급자 우위권을 확보해주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전 회사에 LNG 직도입이 허용되는 것은 아직까지 사적 자본에게 허용되지는 않은 제한 조건, 즉 ‘자가 소비용 혹은 발전용’이라는 제약이 풀려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전 자회사의 LNG 직도입은 연료를 직접 도입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생산된 전력이 가정용 전기로 공급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발전 자회사에 직도입을 허용하면, 이를 근거로 들어 사적-초국적 자본은 ‘자가 소비용 혹은 발전용’이라는 제약에 대해 차별과 불공정임을 근거로 들어 제약을 풀 것을 주장할 것이다. 결국 정부는 공정 거래와 시장 경쟁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시장을 열 것이다. 결국 직도입 확장은 비단 가스 산업에 완전 경쟁이 시작되는 것을 넘어, 가스를 통한 전기생산, 전기생산에 따른 전기 소매 판매를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전력과 가스 등 에너지 시장의 완전 경쟁, 완전 개방으로 직결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직도입이 허용된 <포스코>와 , 등은 그 동안 주로 활동해왔던 석유류 시장을 넘어 에너지 전반을 포괄하는 다각화 기업으로의 전환을 꾸준히 준비해 온 에너지 메이저들이다. 이들 기업은 이미 50% 이상이 이미 외국인 주주이거나 경영권이 넘어가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들 초국적 자본은 전력산업과 가스 산업 사유화 정책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고, 실질적으로 개입해 왔다. LNG 직도입은 실제로 발전 산업과 전력 산업 전반에서의 에너지원 도입권 확보를 의미하며, 이미 자유 경쟁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민자발전의 확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민자발전 확대는 결국 발전회사와 민자발전사간 경쟁, 경쟁을 통해 사적 독점 자본으로의 통폐합 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굳이 발전소를 매각, 매입하지 않더라도 전력 생산, 공급, 유통 전반의 시장이 급격히 열리게 된다. 또한 도시가스 등 가스 산업 소매시장과의 연계가 이들 자본 내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 편에서는 신규 발전 시장에 LNG 도입권을 가지고 진출할 수 있으며, 다른 한 편에서는 기존의 소매 도시가스 시장과의 수직계열화를 공고히 하게 된다는 크나큰 이점을 누리게 된다. 이미 는 도시가스 회사를 과점하고 있다. 송유관 역시 국내 에너지 수급을 좌지우지 하는 관건적 요소인데, 외국계 자본이 50%가 넘는 정유업계가 송유관 공사 지분을 나누어 갖고 있는 상황에서 LNG 도입권이 넘어가면 에너지 정보와 전략이 국내외 자본에 고스란히 누출되게 된다.
결국 직도입은 가스 산업뿐만 아니라 에너지 산업 전반을 경쟁 시장 체제로의 재편하는 데 촉매제가 될 것이다. 이 경쟁적 시장 체계는 국내외 자본 간, 다양한 에너지 사업 영역 간 통폐합과 수직 계열화 양상을 심화해나갈 것이다. 즉 직도입은 가스의 도매와 판매, 소매부문으로의 진출의 입직구일 뿐만이 아니라, 전력에서의 생산과 판매 시장을 아우르는 연결 구조를 확립시켜주게 되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과 방폐장 건설 문제에 대한 이해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입장>

대부분의 진보적 운동 진영은 반핵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물론 반미-민족자주 혹은 핵주권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간혹 핵 보유를 긍정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으나, 이러한 정서도 반핵 투쟁이 활성화되고 반전의 정서가 보편화되면서 사라지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 문제로 들어가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반핵에 동의해도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지 않기도 하며, 원자력 발전 문제를 경제적 차원 즉 전력 공급만의 문제로 나누어 놓고 보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전체 전력 공급의 40%를 넘게 차지하는 원자력 발전을 당장 중단하기는 힘든 일이며, 전력의 안정적 공급은 국민 생활의 기본 권리와 직결되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은 그 폐기물이 지니는 위험성 -길게는 만년이 넘게 살아 숨쉬는 위험성이다- 과 폐기물 재처리를 통한 핵무기로의 전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종국에는 폐지되어야 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자력 발전은 그 탄생 자체가 에너지원으로서가 아닌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한다. 핵을 에너지로 사용하게 되었던 출발점은 1953년 미국의 ‘평화를 위한 원자’라는 제안이었다. 2차 대전 이후 1949년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했고, 1952년 영국이 보유하게 되었다. 이에 미국은 핵무기 개발과 보유 경향을 제어하고, 미국 스스로가 핵에 대한 주도권과 조절권을 갖기 위해, ‘원자력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다른 나라의 원자력 산업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가능한 한 다른 나라의 핵무기 제조를 막겠다’는 의도로 ‘평화를 위한 원자’라는 제안을 하였다. 또한 원자력 관련 초국적 자본인 제너럴일렉트릭과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경수로도 원자력 잠수함에서 사용되던 원자로를 개량하여 탄생된 것이다. 결국 원자력 발전은 핵무기 제조 과정의 부산물이며, 미국의 군사적·정치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거래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원자력 발전은 종국에는 폐기되고 다른 평화적·비정치적·친환경적 에너지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자력 산업 노동자들의 입장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4) 원자력 산업 노동자들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이 대단히 높으며, 위험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노동이 인정되어야 하며, 또한 원자력 발전과 원자력 관련 노동자들에 의해 안정적이고 보편적으로 전력이 공급되고 있다는 점 역시 주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역할에 대해 인정하는 것과 원자력 발전에 대한 원칙적이고 근본적인 입장을 정리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물론 원자력 발전의 종국적 폐기에 대해 원자력 관련 노동자들이 당장에 갖게 되는 자괴감과 상실감, 나아가 고용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사실 ‘종국적 폐기’라고 표현한 것은 설령 국가나 자본이 원자력 폐기를 결정한다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폐기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폐기를 위한 시기와 과정, 경로는 전력 공급과 에너지원 전환을 위한 장기적 계획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력 산업 노동자들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현재의 ‘애착’을 ‘원자력 발전이라는 산업의 고수’가 아닌 ‘일하는 현장에 대한 긍지’와 구분하고 확인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 체제 전환, 혹은 친환경적 에너지 재편이라는 중요한 운동 과제를 다시 이해하고, 오히려 이 엄청난 운동 과제를 실현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고용보장 혹은 생존권 문제 역시 오히려 에너지 산업을 점진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노동의 현장을 새로이 재편하는 것으로 바라보며, 노동운동 전반의 과제로 함께 투쟁해 나가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원자력뿐만 아니라 화력발전 노동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다. 방폐장 문제가 첨예해지면서 원자력에 대한 비난이 집중되었지만, 향후 기후협약 등의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되면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화력 발전에 대한 공격 역시 시작될 것이다. 또한 에너지 재편 과정에서 화력 발전의 양과 규모를 줄여나가야 하는 고민 역시 사회화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운동 진영에서 먼저 제기해 나가야 한다.
노동운동 진영에서 고민해야 할 바가 이러하다면, 환경운동의 경우 어떠해야 하는가. 환경운동 진영의 원자력 노동자들에 대한 이해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자. 지난 십 여 년 간 반핵 투쟁, 방폐장 건설 저지 투쟁을 하면서 실제 지역 현장에서 부딪히고 반목한 것은 환경운동가들과 원자력 관련 노동자들이었다. 특히 한수원 노동자들의 경우 번번이 방폐장 건설 관련 지역 투쟁 현장에 사측과 정권에 의해 불려나갔다. 결국 불려나온 노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은 현장 투쟁에서 항상 적대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방폐장 관련 대립 전선은 정권과 한전 사측과 형성되어야 할 터인데, 결국 현장 투쟁은 역설적이게도 현장의 노동자들과의 대립 전선을 부각시킨 바 없지 않다. 원자력 노동자들에 대한 환경운동가들의 공격에 결국 노동자 역시 환경운동에 대한 일종의 섭섭함 같은 반감을 품기도 하였다. 이러한 감정적 불신의 골, 원자력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 등으로 인해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실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 어떠한 논의로 시작해도 결국에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곤 하였다. 그러나 논의의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하고, 오히려 사소한 오해가 얼마나 많이 가로막고 있는지를 폐부로 느끼게 되었다. 원자력 발전 중단 혹은 폐기가 적어도 50여 년이 걸리는 장기 계획 하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방폐장 문제에서도 건설만을 놓고 보면 우리가 만든 쓰레기를 우리가 처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전제한다면, 충분히 논의 가능하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현재 네트워크 내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점이 아직까지 환경운동 진영, 노동운동 진영 전반으로 포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특히 원자력 관련 노동조합의 경우 조합원을 궁극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어렵지만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네트워크 내적으로 원자력 발전의 궁극적 중단이라는 대전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방사능폐기물처분장 건설>

1986년부터 1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정부는 6차례에 걸쳐 방폐장 건설을 추진해 왔고, 지역주민들과 환경운동 진영의 투쟁 속에서 방폐장 건설은 무산되었다.5) 여전히 상흔으로 남겨져있는 부안투쟁 뿐만 아니라 안면도, 굴업도 등 방폐장 건설이 추진된 모든 곳에서 지역 주민들의 투쟁이 거세게 일었고, 해당 정권은 이에 경찰력 동원 등 무력 진압으로 일관하였지만, 결국 방폐장 건설에 실패했다. 현재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은 2005년 8월 31일까지 유치 신청을 받고, 11월 22일 주민투표를 실시한다는 일정을 밟고 있다. 방폐장 문제에 대해 진보운동 진영, 구체적으로 말하면 노동운동 진영도 적극적인 입장을 개진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운동 진영이 방폐장 건설 저지 투쟁 혹은 반핵 투쟁에 기여한 바는 많지 않다. 최근 부안사태를 필두로 노동운동 진영 내 관심과 이해가 높아졌으며, 특히 올해 방폐장 부지 선정 관련하여 지역 투쟁이 활성화되면서 민주노총 지역본부 등이 결합하고 있다는 점은 바람직한 경향이다.
일단 방폐장 건설에 관한 정부 정책의 수정과 현재 진행 양상이 어떠한가에 대해 살펴보자. 정부는 방폐장 처리 문제에 대해 1998년 9월 제 249차 원자력위원회를 통해 ‘중앙 집중식으로 중저준위 방폐장과 고준위 방폐장을 동일부지에 설치하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2008년부터, 사용 후 핵연료를 위한 중앙집중식 중간저장 시설은 2016년에 건설 추진한다’는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을 확정한 바 있다. 그런데 부안 사태 이후 노무현 정권은 지난 해 12월 17일 제 253차 원자력 위원회를 통해 ‘2008년까지 중저준위 폐기장을 우선 건립하여 중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분리한다’고 방침을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올 3월 252회 임시국회에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의유치지역지원에관한특별법”(방폐장지원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즉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중저준위 방폐장을 우선 건립하여, 지역 주민의 우려를 무마시키고, 이후 중저준위 처분장을 따로 건설하겠다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하지만 방폐장 관련 정부 정책의 변화에 대해 우리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은 20년간 방폐장이 건설되지 못한 근본적 이유에 대한 성찰 없이 현재 일단 고준위를 분리시켜 주민 불안을 무마하고, 2008년 중저준위 폐기물이 포화된다고 주장하며 중저준위 우선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리고 3000억원 지역 지원금, 폐기물 반입 수수료, 한수원 본사 이전 등의 떡고물을 내놓고 있다. 전라북도 등을 위시한 지자체의 경우 지역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앞다투어 유치 신청을 하고 있으며, 지자체 공무원들을 동원하여 불법적인 사전 투표 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방폐장 건설과 관련하여서는 네트워크 차원에서 내부적으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대전제와 결국 연결되는 문제지만 방폐장과 관련한 대응으로 좁혀서 접근해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당장 원자력 노동자들과 환경운동 진영 및 지역 주민들이 반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장 차이를 좁히고, 최소한의 합의점이 가능한지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문제는 방폐장이 어떻게, 어디에, 얼마나 안전하게 건설되어야 하는가다. 이에 대해 근거 있고, 책임 있는 논의를 통해 올바른 입장을 제출하고 가능하다면 사회적 논란에 개입할 여지를 찾고자 한다.
우리가 주요하게 검토해야 할 바는 크게 세 가지 쟁점이다. 첫째, 건설의 필요성 여부에 대한 문제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포화시점과 환경운동이 주장하는 포화시점이 다르며 이에 따른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포화시점과 다양한 기술적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적확한 수치 등을 확인하는 일도 선행되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건설의 필요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만약 동의지점이 있다면 시기와 경로, 과정 등에 대한 올바른 내용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부지선정 과정 및 정부 정책 추진 과정의 비민주성과 졸속성 문제다. 주민투표 운운하지만, 결국 사회적 동의와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 없이 돈으로 매수하고 졸속으로 부지를 선정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독일의 경우 처분장 건설을 위해 최소한 30여 년의 시간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경우도 유사하다. 정부 정책 추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가 성립되어 있다. 셋째, 부지의 안정성 문제이다. 이와 결합하여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과 관련한 논의 역시 필요한 상황이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이상의 쟁점에 대해 8-9월 집중적으로 내부 논의를 거칠 계획이다. ‘원자력 발전’과 ‘에너지 체제 전환’에 관한 사회운동의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1) 이 글은 에너지 노동사회 네트워크의 공식적 입장이라기보다 개인의 고민을 담은 것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특히 원자력 발전, 방사능폐기물처분장(이하 방폐장)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둘러싸고는 내부적으로 논의를 모아가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이에 대해서는 김성구 편저 『사회화와 이행의 경제전략』, 이후 2000년, 김성구, 『신자유주의와 공공부문 구조조정』, 문화과학사 2002년 등을 참조. 본문으로

31) 석탄·석유·천연가스 등을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정책을 전화하기 위해서는 1차 에너지 공급의 문제 역시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 네트워크를 보면 1차 에너지 관련 사업장은 실질적으로 가스공사 뿐이다. 천연가스는 대부분 20-30년 장기계약 체계를 가지며, 탐사-발굴-도입(수송) 등 복잡한 질서를 띤다. 석유의 경우 석유공사의 역할은 저장-관리에 머물고 있으며, 석유 시장은 이미 50% 이상이 초국적 자본의 손에 넘어간 상황이다. 화력발전에 공급하는 석탄은 발전회사가 5개로 분할되어 경쟁체제가 이루어지면서 오히려 저탄을 비싼 값에 매입하는, 경쟁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우리가 에너지 전원 구성 다변화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1차 에너지 산업 구조를 이해하고, 1차 에너지 공급에서부터 공공적 관리와 통제를 통해 에너지 전환의 과제를 구체화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네트워크의 주요한 사업 과제이다. 본문으로

4) 원자력 관련 노동자들은 원자력 발전 중단에 대해 종종 오해를 하곤 한다. 현재 전체 발전용량의 60%, 발전량의 40% 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을 일시에 중단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즉각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대략적 입장은 어느 정도의 시점 -중장기적 전망에서- 을 바라보며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고, 점진적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확장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중장기적 과정에서 화력과 원자력 비중을 줄이며 천연가스나 열병합 등 에너지 전원 구성을 다변화하는 에너지 믹스 정책을 병행하자는 것이다. 다만 원자력 발전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에 대한 동의를 전제하고, 이에 따라 전환의 과정을 관련 노동자와 운동진영이 함께 모색해나가자는 것이다. 본문으로

5) 여기서 간략히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로 하자. 현재 한국의 원자력 발전은,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하여 15기의 경수로와 4기의 중수로(월성 1-4호기) 등 총 19기가 가동 중이다. 이 원자력 발전과 원자력과 관련한 산업 전반에서 나오는 것이 폐기물이다. 이 방사성 폐기물은 크게 중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로 나뉜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장갑, 의복, 필터 등 원전 가동 중에 방사성에 오염된 물질을 의미하며, 핵연료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또한 장기간 가동되는 원전의 증기 발생기에서 발생하며, 원자료 구조물이 손상될 시 교체에 따라 발생한다. 고준위 폐기물은 우리와 같이 재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용 후 핵연료만을 의미한다. 사용 후 핵연료는 경수로와 중수로 핵연료 두 가지 형태인데, 우리와 같이 재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 원자로에서 사용된 연료가 원자로 보조 건물 내 사용 후 핵연료 저장소에 임시로 저장되어 있는 상황이다. 영국 등과 같이 재처리를 할 경우에는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저준위 폐기물과 더불어 고준위 폐기물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듯 한국의 경우 방폐장이 없는 상황에서 원전에서 발생한 모든 폐기물은 원자력 발전소 내에 보관되고 있으며, 원자력 발전소가 아닌 병원이나 일반 산업체에서 발생하는 중저준위 폐기물의 경우 원자력연구소 내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환경관리센터가 수거하여 보관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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