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1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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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희망으로 만드는 민주노조운동이길

이종탁 | 민주노동자연대 선전위원장
강승규라는 한 사람이 구속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한 개인이 아니었다. 전노협 때부터 민주노조운동을 한 사람이었고, 민주택시연맹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민주노총 현 지도부의 핵심이었고, 특정한 정파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개인 비리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고, 또 구속된 것이다. 사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퇴 공방 - 진심은 무엇인가?

민주노총 중집회의가 긴급하게 열렸고, 논란(?)을 벌인 끝에 '하반기 투쟁 뒤 조기 선거' 방침이 발표되었다. 그게 10월 11일 일이다. 이수호 집행부는 당연히 사퇴해야 할 상황에서 하반기 투쟁을 핑계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 당시 중집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수호 집행부의 행동과 결정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직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분노를 드러낸 동지들은 민주노총 사무처 동지들이었다. 일부이긴 하지만 어쨌든 사무처 동지들은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며 집단 사직서를 내는 과감한 결단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결과적이긴 하지만 이들 동지들이 눈물로 쓴 사직서는 이수호 집행부 사퇴를 이끌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본 한 사람으로써 나는 사퇴를 하지 않겠다고 버틴 쪽이나 사퇴를 요구한 쪽 모두에게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지도부의 모습은 상식 이하의 것이었다. 하반기 투쟁을 책임지고 내려가겠다? 민주노조운동에서 '당면한 투쟁에 대한 책임'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미 투쟁을 책임질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권위마저도 상실한 지도부가 투쟁을 명분으로 버티기를 한다는 건 억지스러울 뿐이었고,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만 비춰졌다. 투쟁하고 있는 노조와 노동자들에게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도덕성에 결정적 타격을 입은 집행부가 투쟁을 지도하겠다는 발상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깨끗하게 비대위를 구성하고, 비대위를 중심으로 투쟁하자고 호소하는 것이 훨씬 깔끔했고, 또 옳은 모습이었다.
또 한편으로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한 일부 동지들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지도부 사퇴를 이야기했던 대부분의 동지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이 일부 세력으로 인해 왜곡되고 덧칠되는 것이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강승규 비리 사건을 근거로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는 그 모습 뒤편으로 과거의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왔기 때문이다.
작년 이후 올 해 초까지 금속연맹 완성차 대공장에서 비리 문제가 연속으로 터져 나왔을 때, 그래서 기아자동차 노조 집행부가 총사퇴하고 완성차 자동차 노조 집행부들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가 난무할 때, 좌파를 자처하는 세력의 일부는 당시 정부의 비리 수사 및 노동자 구속에 대해 "노동운동 탄압을 위한 기획수사"라고 진단했다. 비리는 개인적 수준의 일로 치부해버리면서 정권의 기획 수사를 집중적으로 문제삼은 것이다. 실제로 그런 주장에 고무된 일부 동지들은 노동운동 탄압 분쇄 투쟁을 해야 한다는 과감한(!) 입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럼, 이번 강승규 사건도 정권의 기획수사로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노사정위원회 참가가 무산된 이후 민주노총은 김대환 장관 퇴진을 내걸면서 내년 상반기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기획하는 한편, 하반기 비정규직 권리 입법 쟁취와 노사관계 로드맵 분쇄를 위한 투쟁을 앞두고 있었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흐름과 기조를 파탄내기 위해 정권이 이수호 집행부를 비리로 엮고 있다고 말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강승규라는 개인은 비리를 저질렀으니 어쩔 수 없지만 투쟁을 앞두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켜내고, 개인 비리를 가지고 민주노총 전체를 뒤흔들며 하반기 투쟁을 파탄 내려는 정권의 음모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좌파식 어법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좌파의 일부 동지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왜? 그 이유가 궁금하다. 혹시 완성차 대공장 비리 때에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고, 이번 강승규 비리 사건에서는 그럴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상상의 비약이길 바란다. 어쨌든 남의 눈에 티를 빼내려면 먼저 내 눈 안에 있는 들보부터 빼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비판이자 운동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키는 모습 아닐까 싶다.

무덤덤하고 싸늘한 현장 분위기

투쟁에 온 힘을 싣지 않던 사람들이 하반기 투쟁을 핑계삼으며 즉각 사퇴를 거부하고, 한 때는 비리 사건 수사에 대해 기획수사라며 열변을 토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집행부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며 맞붙었던 10여 일의 과정. 거기에는 조합원이 없었다. 민주노총 내부에 존재하는 정파들의 힘 겨루기와 차기 권력을 둘러싼 엄청난 계산만이 난무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비대위가 구성되었다. 하지만 그 비대위가 솔직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큰 믿음이 가지 않는 형국이다.
비리 사건이 터지고 사퇴 공방이 벌어지면서 현장에 있는 동지들을 만나거나 통화하면서 현장 분위기를 물어보았다. 과연 현장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있었을까? 예상대로 현장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 민주노총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호통을 치는 조합원도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기아자동차 입사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현장의 반응이 왜 이럴까? 한 두 건 터진 것도 아니니 "또 터졌구나"는 식의 반응, 아니면 "터질 것이 터진 것이야"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물론 우려를 표하는 조합원이 전혀 없지는 않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민주노총 건물 안에서 사퇴를 둘러싸고 이 세력과 저 세력, 요 정파와 그 정파가 치열하게 다투었지만 정작 조합원들은 무관심하고 무덤덤하게 현장에서 조용히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리는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산물

이수호 지도부가 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된 지금, 우리는 '강승규'라는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끊이지 않는 비리의 문제를 보아야 한다. 현장의 조합원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비리가 민주노총 상층, 혹은 특정 정파, 혹은 질이 안 좋은 몇몇 간부의 문제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비리를 총체적으로 볼 것인가 부분적으로 볼 것인가는 향후 선택의 큰 갈림길이 될 것이다.
중소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 노동자들의 경우 조금 거리가 먼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대공장 대기업 사업장의 경우 이미 자본으로부터 돈을 받는 일이나 향응을 제공받는 일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민주노총이 정부로부터 국고보조금을 지급 받고 있으며, 각 지역본부들도 지자체로부터 유사한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개별 단위사업장 대의원들이 회사 간부와 거나하게 술 한잔 대접받는 일이 새로울 것도 없다. 하다 못해 사업장 안에 있는 자판기 하나도 노조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조건에서 수많은 이권업체들이 노조 집행부를 찾아오고 해당 업무 담당 조합 간부를 만나서 뭐라도 하나 얻어가려고 하는 그런 과정에서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하는 일이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지금 단위 사업장의 현실이다.
이쯤이면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고 했던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렇다. 강승규 개인의 비리 사건에 대해 과감하게 '나는 올곧게 깨끗하다'며 돌멩이를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주소요 현실이다 (이 부분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 괜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주저하다 '우리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당당한 반론을 듣고 싶어 그냥 이 부분을 그대로 두기로 마음먹었다.)
민주노조운동 내의 비리는 개인적이거나 일시적인, 부분적인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전반에 걸쳐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노동조합이 합법화되면서 단체협약과 임금협상 구조가 안착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산별연맹들은 모든 자원을 중앙으로 집중시키는 산별노조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왔다. 정권과 자본에 맞서기 위해서, 투쟁의 힘을 배가시키기 위해서 산별노조를 만드는 데 권력 자원을 중앙집중화하는 유럽식 모델을 그대로 베껴왔다. 그러면서 개별 단위사업장의 임단협 구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산별중앙교섭과 단사 단체협약으로 이중화된 민주노조운동의 교섭 구조는 (총)연맹과 단위사업장의 간극을 만들었다.
게다가 민주노총은 입으로 총파업을 외쳤지만 단 한번도 의미 있는 행동과 투쟁을 조직해내지 못했다. 이제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모든 연맹과 그 소속 사업장들이 공장과 사업장을 멈추는 투쟁이 아니라 해당 시기 투쟁을 하고 있는 대기업/대공장 노조와 장기투쟁 사업장,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회에 결합하는 것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이러한 투쟁의 양상과 1998년 이후 몰아친 세계화와 구조조정의 광풍은 단위사업장 차원의 노동조합 투쟁을 꺾었고, 노동자의 대응을 후퇴시켰다. 물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은 사회를 양극화했다. 하지만 양극화에 대한 수세적, 방어적 대응은 자기 살길부터 찾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어느 새 자기 고용과 자기 임금을 우선시하는 경제주의와 실리주의가 만연해지고 있다는 걱정과 우려의 소리를 듣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총)연맹이 정세적 쟁점을 제기하고 있다지만 단위 사업장 노조와 조합원들은 자기 고용과 임금 문제에서 거의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노조 간부, 활동가와 조합원, 노동자 대중의 관계도 달라지고 있다. 민주노조가 합법화되고 안정화된 이후 단위사업장 집행부와 대의원들은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반영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정규직 조합원을 챙기는 일에 집중하였고, 조합원들은 그런 노동조합과 활동가, 간부들을 통해 자신이 얻고자 하는 이익을 챙겨 가는 도구주의와 대리주의로 대응하였다. 노조가 권력화되면서 대의원들과 활동가들은 조직(정파) 밑으로 줄서기 바빴고, 노조 권력을 유지하거나 탈환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대의원회를 도구를 이용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한편 조합원의 직접행동과 자기 참여를 통해 스스로 쟁취하는 일은 점차로 사라져간 결과 노조와 조합원, 활동가와 노동자 대중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운동이 아닌 이권으로 맺어진 관계로 점차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권과 자본은 노조 간부와 정파들에게는 권력을 가지고, 단위 노조 대의원과 활동가들에게는 현안 해결과 이권을 가지고 관리하는 모양새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정권과 자본의 관리 대상과 포섭 대상은 정파의 우두머리들이었고, 이는 단위사업장의 주요 세력을 집중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의원 하나하나를 관리하고, 현장의 모든 세력을 관장한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정권과 자본에 맞선 투쟁에서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관리와 포섭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는 것으로 이제 운동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완성차 대공장 비리가 특정 정파에 제한된 문제가 아니듯이 (총)연맹 상층의 비리 역시 강승규 개인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완성차 대공장 비리가 좌파 혹은 중앙파의 비리가 아니듯이 강승규 개인 비리 역시 국민파의 비리는 아니다. 다시 말해 비리는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문제다.

10.18 비리 근절 대책의 답답함과 안일함

따라서 비리에 대한 접근은 개인 비리 척결 수준에서 안이하게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총연맹에서 10월 18일 발표한 대책은 그런 점에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규율위원회를 설치하여 비리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처하고, 회계 투명성을 위해 선거자금 공개하는 등을 대책이랍시고 내놓았다. 또한 사용자와 정부 등에게 제공받은 5만원 이상의 기부금품, 사용자와의 대차·대월 등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할 계획이며, 윤리강령도 채택할 계획이라고 한다. 참 답답하다.
기아차 입사 비리가 터졌을 때,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 적이 있다. 과연 거기에서 어떤 추가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또 처리한 사안이 있었는가? 좀 심하게 말하면 오히려 사건과 사안을 추스르고 정리하는 일을 하기에 더 급급했었다. 규율위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의 규율이 실제로 형성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 그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과 기운이 복원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정신무장 없이 비리로부터 의연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정신무장은 '세뇌 반복 교육'이 아니라 현장의 투쟁과 삶에서 자본과 정권에 맞선 의연한 태도와 자세 속에서 나온다. 노동과 자본(정권) 사이의 전선을 희석하지 않고 명확하게 전선의 날 위에 서 있을 때에만 정신은 올곧게 세워질 것이다.
나머지 대책들은 대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저 대책들을 거꾸로 하면 5만원 이하의 기부금품은 받을 수 있고, 사용자와의 대차·대월은 보고만 제대로 되면 있을 수 있는 일로 둔갑해버리고 있다. 사용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을 아예 노골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와 자잘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허용하고서 도대체 무슨 비리 근절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차기 지도부 선거, 무기한 연기해야

진짜 문제는 비리 발생의 원인, 구조적 본질에 대해서는 아예 눈감고 있다는 점이다. 비리는 민주노조운동의 권력화 및 관료화의 부산물이다. 그리고 비리는 노조 도구주의와 대리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것을 해결, 극복하지 않고서 비리를 척결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기아차 입사 비리 사건 이후 완성차 대공장 곳곳에서 비리 문제가 연이어 포착되고 있으며, 이것이 드디어 (총)연맹 차원으로까지 확산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듭 말하건대 개인 비리, 특정 정파의 비리로 볼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10월 21일 구성된 민주노총 비대위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한편으로 하반기 투쟁을 책임져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비리의 구조를 파괴하고 봉쇄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혹자는 그 임무가 차기 집행부의 몫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문제를 덮어두려는 얄팍한 술책이 아닐 수 없다. 민주노총 규약을 들먹이는데 선거와 관련된 문제에서만 꼭 규약대로 하려는 간교함은 이제 버려야 한다. 탁 터놓고 말하자. 민주노총 위원장만 바꾸면, 임원들을 새로 뽑아놓으면 비리 문제가 근절되고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집행부를 뽑았는데 비리 문제가 연타로 터져 나온다면 민주노총은 아예 운신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물론 정권과 자본 앞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면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 길을 갈 수는 없다!) 길게 말할 것 없다. 민주노총 차기 지도부를 뽑는 선거는 확실하고 분명한 대책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
비대위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10월 21일 꾸려진 비대위는 그런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각 연맹 위원장과 지역본부장들이라면 지도력이야 있는 분들일 테고, 민주노총 3대 정파가 세력에 맞게 골고루 포진해 있으니 '통합력'을 발휘하는데 금상첨화이다. 15명 사무처 동지들의 빈자리가 크겠지만 연맹과 단사로부터 인력을 지원 받는다면 못할 것도 없다. 비대위 체제를 빨리 해소하고 싶다면 비대위원들이 결연한 자세로 근본대책을 세우려는 칼날 같은 자세를 가지면 될 일이다.

비리 근절 근본 대책 - 권력을 하방으로

앞에서 비리가 생겨나는 원인에 대해 구조를 들먹이며 이야기했다. 기본적으로 비리는 민주노조운동이 성장한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 성장을 새로운 운동의 전진으로 사용하지 않은 탓이다. 그 중심에는 임단협 교섭 체제와 산별노조가 자리잡고 있다. 이 시스템 속에서 노조 도구주의와 대리주의는 성과주의와 실리주의를 낳는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교섭이 있는 곳에 권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교섭의 단위를 최소화하여 권력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대안인 양 말한다. 산별중앙교섭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 관료화와 중앙집권화를 통해 '제왕적 권력'을 만들어내게 된다. 민주노조운동은 정보화시대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서 교섭을 훨씬 다원화, 다층화하면서 권력의 크기를 일단 작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금속노조의 일부에서는 지회 교섭을 없애고 지부와 중앙교섭으로 교섭을 집중하자고 하고, 일부 연맹은 아직도 산별중앙교섭에 목을 매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권력을 비대하게 만들어 비리가 싹틀 수 있는 그늘을 훨씬 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기능이 '000위원회'가 아니라 조합원에게로 전격 이동되어야 한다. 조합원이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조합원들 사이에 만연한 대리주의와 도구주의도 극복할 수 있다. 감시와 통제에는 참여와 결정이라는 의무가 반드시 수반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권력을 교섭구조를 다원화, 다층화해야 한다. 지금 대부분의 노조에서는 임금협상을 연 1회, 단협 협상을 격년 1회, 그리고 분기별 노사협의회와 필요시 개최되는 각종 노사(공동)위원회가 있다. 이 모든 교섭은 집행부가 관할하고 본조직-지부-지회 체계를 통해 수행되고 있다. 권력의 다원화, 다층화란 이 하나하나의 교섭 단위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주체를 다원화하는 일이다. 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사협의회만 예로 들자면, 부서(지회)별 협의를 거쳐 지부 노사협의회, 그리고 중앙노사협의회가 열리는데 각 단위별로 다루어야 할 안건의 영역을 규정하되, 중복되거나 애매한 경우에는 일단 부서에서 우선 협약을 하도록 만들면 되는 일이다. 당연하게도 부서, 지회, 지부 단위 교섭권자는 해당 조합원의 직접투표에 의한 인준을 받아 체결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져야 한다. (산별중앙교섭을 해야 노조의 단결이 실현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5-6년을 뒤돌아보자. 산별중앙교섭을 해서 민주노조운동의 단결과 연대가 강화되었다고 자신 있게 과연 말할 수 있는지...)
두 번째, 민주노총과 연맹의 임원과 대의원에 대한 조합원 직선제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도입되어야 한다. 직선제가 만능이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고, 직선제가 비리 척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2중, 3중의 간선제는 조합원과 민주노총 지도부와의 거리를 멀게 하는 하나의 원인임은 인정해야 한다. 자기 손으로 뽑아야 관심과 애정을 더 가질 수 있다는 건 기본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직선제는 민주노총과 연맹의 임원에 한정되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민주노총과 연맹의 대의원도 조합원들의 직선으로 뽑아야 한다.
민주노총과 연맹의 대의원들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의원들이 모든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대의원 대부분은 단사에서 간선제로 선임된다. 대공장·대기업의 경우 집행부 몫으로 일정부분 할당되고, 나머지는 사업장 대의원들 내부에서 선출되어진다. 그러니 상급단체 대의원이 누구인지 노조 소식지를 보고 아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민주노총과 연맹 대의원 대회에서 어떤 결정이 있었고, 어떤 논의를 했는지 조합원들은 전해들을 수가 없다. 그러니 민주노총과 연맹 대의원들의 일상 활동은 없고 대의원 대회가 있는 날 와서 투표하고 돌아가는 일 말고는 하는 게 없다. 민주노총과 연맹의 의사를 결정하는 주체가 허공에 붕 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일을 시급히 시정해야 한다. (직선제를 하자면 반드시 비용이 많이 든다는 헛소리와 직선제에 따르는 문제점을 나열하는 소심증이 발동되는데 그런 부차적인 문제를 가지고 본질을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 번째, 현장 조합원들이 상급단체 임원과 대의원을 직접 소환하고 자기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발의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뽑아놓고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리는 시스템으로는 조합원들의 참여와 결정을 이끌어낼 수 없다. 조합원을 주체로 세우는 여러 가지 방안 중에 소환제도와 발의제도는 반드시 이번 기회에 도입되어야 한다.

조합원을 주체로 세우는 아래의 혁신도 동반되어야

위기의 기(機)와 기회의 기(機)는 같은 글자라고 한다. 위기의 끝에서 기회는 시작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그런데 그런 극적인 반전이 있으려면 민주노조운동, 나아가 한국 노동운동에 한 터럭이라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의 뼈를 깎는 자성과 책임 있는 태도와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비리 사건을 그저 있음직한 한 사건, 특정 정파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다며 말이다.
이번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운동이 필수적이다. 비대위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하는 위에서의 '논란과 공방'만 가열된다면 이는 자칫 정파간 갈등과 권력다툼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당장 보궐선거가 맞는가, 조기 선거가 맞는가 하는 논란이 표면 위로 올라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장의 운동으로 이 같은 상층 권력다툼을 제어하고, 정파간 갈등을 통제해야 한다. 그 힘은 현장에서만 나올 수 있다(현장을 특정 정파 밑으로 줄 세우려는 시도 또한 경계할 일이지만).
그런데 과연 현장이 움직일까? 이렇게 저렇게 의견을 나누어 본 많은 동지들의 한결같은 우려는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87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과 함께 해 온, 그리고 90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 낸 노동자들이 적지 않고, 그 형제들은 꿋꿋이 민주노조운동의 전통과 정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한 선배의 말씀에 힘이 생겼다. 그렇지. 우리가 지난 십 수년간 해왔던 민주노조운동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면 새롭게 시작할 힘은 분명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현장에서 조합원 대중들에게도 당차게 할 말을 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의 일단은 현장의 조합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노동조합 집행부를 뽑아놓고서는 가져오는 성과와 실리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였던 조합원의 모습, 현장의 모습도 혁신의 대상일 수밖에 없음을 일갈해야 한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이제 새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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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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