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1-2.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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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노동자운동의 전망과 과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연대와 혁신, 투쟁으로!

노동국 |
2005년 노동자운동의 쟁점

1) 위기와 혁신
2005년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역동적인 성장, 1995년 민주노총 건설로 상징되는 민주노조운동의 제도화가 한 순환을 마무리한 해다. 민주노조운동은 외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본과 국가권력의 가혹한 구조조정과 억압조치에 대한 불철저한 대응, 그리고 안으로는 노동자 간 분할과 격차를 극복하는 새로운 연대성,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조운동의 방향 정립 등 전반적인 운동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결국은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충돌과 비리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들로 위기의 폭발을 맞게 되었다.

사회적 교섭 논란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 논란이었다. 이는 노동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공격과 노무현 정부의 허구적인 타협체제 구축 시도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는 경제위기 하 신자유주의 정권에서 노동자운동이 위기관리 사회협약의 파트너가 될 것인지 새로운 변혁적 전망을 지향하는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운동으로 혁신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그런데 이것이 노동자 운동의 방향에 대한 실천적 논쟁으로 드러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노사정 교섭체제에 참여할 것이냐 이를 저지할 것이냐 하는 방식으로 드러났고 대의원대회를 둘러싼 충돌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그 이후에는 대의원대회 사태 자체가 여타의 쟁점을 압도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제한된 논쟁구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새로운 혁신의 논의와 흐름으로 논쟁을 가져가고자 하는 세력들은 실천적으로 개입하기 힘든 위치가 되었다.
이는 세력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사회적 교섭 찬성/반대 세력이 현실적으로 주도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구도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집단이나 활동가들은 논의를 뒤바꿀 힘을 형성하지 못했다. 특히 사회적 교섭에는 반대하지만 물리력을 집중하여 대의원대회를 무산시키는 방식에는 찬성하지 않은 이들은 대의원대회 저지냐 아니냐의 구도 속에서 스스로의 논의를 확산시키지 못하였다.
한편 사회적 교섭 논란은 노동자 민주주의의 실태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조합원 대중들은 사실 사회적 교섭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익이 우선시되고 그렇지 않으면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된 상황에서 상층의 논쟁이 잘 와 닿지 않았던 것이고, 원래 노조가 투쟁과 교섭을 하는 것이니 교섭을 할 수도 있는데 왜 저리 난리냐고 여기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은 현장에서 제대로 토론될 수 없었고 대의원대회 사태 이후에는 냉소와 환멸마저 생겨나게 되었다. 대의원대회 역시 토론과 논쟁을 통해 합의를 구성해가는 장이라기보다는 상정된 안을 관철시키는 형식적 통과의례로 변질되었다.
사회적 교섭 논란 과정에서 우리는 노동자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쟁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적 교섭을 통한 위로부터의 타협인가 지속적인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확장인가, 실리적인 성과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단결과 연대를 통한 계급주체 형성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그것은 노동자 민주주의 실현과 보편적이고 해방적인 노동자운동의 복원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위기의 형태는 비리로도 드러났다. 기아자동차에서 노조간부들이 채용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사건이 터지고 급기야는 입사비리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책임자이자 조직혁신위원장이었던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사용자단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노동조합의 활동가, 조합원 대중 할 것 없이 허탈감과 지독한 냉소에 빠지기도 했다. 운동의 기본이라 여겨졌던 도덕성에 치명타가 가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사태를 개인비리로 치부하고 넘어가려 하였지만 이는 분명히 구조적인 문제다. 개별 단위노조에서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사측의 매수와 공작 시도, 일부 노조들에서 노골화된 노사협조주의, 관행으로 정당화되는 각종 이권, 자주성과 독립성의 원칙이 모호해지면서 생길 수 있는 노사담합, 총연맹과 대다수 지역본부에서 받고 있는 정부 지원금 등 얽혀 있는 문제들의 일부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민주노총 내외부의 끈질긴 비판과 문제제기, 총연맹 상근활동가 14인의 사직 등이 이어지자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퇴하게 되었다. 애초 지도부는 하반기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투쟁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투쟁을 마무리하고 사퇴하겠다고 했으나, 근본적인 혁신 없이는 투쟁도 제대로 될 수 없는 상황이므로 그러한 이유는 애초 성립될 수 없었다.

또 하나 평가해야 할 지점은 연말 두 농민열사와 관련된 노무현 정권 심판/퇴진 투쟁 과정에서 드러난 노동자운동의 대응 문제다. 살농정책과 대책 없는 개방정책, 쌀개방 협상 비준 등 농민들의 목숨에 칼을 들이대는 신자유주의 정권에 맞서서 저항하다 농민대회 과정에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때려 맞아 故전용철·홍덕표 농민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따라서 이는 농민들만의 사안, 농민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무현 정권이 강제하는 민중생존권 유린, 폭력살인에 대한 전체 민중의 심판투쟁이요 정권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정치투쟁인 것이다. 또한 민중운동 내적으로 보아도 IMF 이후 갈갈이 찢기고 부문화되는 경향을 극복하고 반신자유주의, 반노무현 정권 기치 하에 민중 연대투쟁을 강화하고 정치적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은 비정규직 법 개악 저지투쟁에 집중하여 여력이 없었고 그나마도 투쟁동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권 심판투쟁을 전면화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법 개악을 강행하고 농민을 죽이는 공동의 적에 대한 광범위한 연대투쟁을 발동시키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우리에게 있어 전 민중의 단결과 연대는 어느 때보다 진실하고 가장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대안이다.

결과적으로 2005년에 발생한 이러한 사건들은 노동자운동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또한 노동자운동이 보편적인 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모든 집단과 개인들로 하여금 문제제기를 넘어 현실운동에서 실천적으로 혁신의 계기를 만들어 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혁신의 문제의식과 논의를 확산시키는 것과 함께 가능한 지역, 현장, 투쟁에서 운동의 새로운 기운을 만들고 혁신의 흐름을 이어나가도록 매진해야 할 것이다.

2) 비정규직 투쟁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느 해보다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덤프노동자, 화물노동자, 학습지교사,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노동자들과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 이들의 운동이 전체 비정규운동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한편 울산플랜트, 하이닉스 매그나칩, 현대 하이스코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키며 주목받았고, 전국노동자대회로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비정규직노조의 연대체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결성되었던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이 2년여 만에 본조직으로 출범했다. 여러모로 비정규직 운동의 양적/질적 성장을 체감케 하는 사건이었다. 전비연의 이후 행보는 향후 비정규직 운동이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정형을 창출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시금석이 된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비정규직 운동이 노정하는 한계들도 점차 그 윤곽이 분명해지고 있다. 여전히 각 단사별 투쟁들을 비롯해 고용형태별로 분화되어 있는 각 영역의 투쟁이 통합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점, 지난 해 원·하청 연대회의 등의 실험에서 확인되었듯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연대가 아직 소원하다는 점, 정규직 노조와 크게 변별점을 가지지 않는 비정규직 노조들의 실리적 경향 등은 비정규직 운동의 도약을 늦추고 있는 장애요소들이다. 또한 새롭게 등장한 비정규직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활동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 역시 현실적 제약조건이 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비정규직 투쟁이 단발성에 그치고 활동가의 재생산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비정규직 투쟁에서 드러난 이 같은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획들이 시급히 요구된다. 더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과 안정적인 노조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투쟁이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비정규노동법 개악은 IMF 경제위기 이후 급속히 진행된, 비정규직 확대 및 비정규직의 기간노동력화로 표현되는 광범위한 노동의 불안정화를 정당화하고 이를 더욱 촉진시키려는 지배계급의 시도다. 이는 98년 정리해고와 파견제 법제화, 주5일제 근기법 개악,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등 신자유주의의 직접적인 공세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는 것으로서 향후 이러한 시도는 반복해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급속한 노동의 불안정화 과정에서 대중들의 불만과 저항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쟁취투쟁과 작년 한 해 잇단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정부의 비정규법안과 비정규직 확대에 반대하는 대중들의 여론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무현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 ‘사회양극화 심화’, ‘사회적 불안요소 증가’ 등을 핵심 화두로 다루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과 ‘사회통합’을 주요한 정책과제로 삼는 것, 비정규직 부문에 대한 국가차원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 등은 이 같은 대중들의 불만과 저항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노동법 개악은 비정규직 확대와 비정규직의 기간노동력화라는 기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그동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불법-탈법적 비정규직 사용과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라는 불안요소를 관련 법제도 정비를 통해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악 시도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국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 전반에 제동을 거는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노무현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이 가지는 허구성을 폭로한다는 측면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나 지난해 비정규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은 이 같은 의의를 적극 살리지 못하고, 시종일관 국회일정과 노사정 교섭이라는 제한된 틀을 깨지 못한 채 악전고투를 반복했다. 이는 국회일정과 노사정 교섭을 벗어난 운동적 기획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지적과 동일하다. 노동자운동 진영은 국회 안 법안 처리과정에 따라 투쟁을 배치하고, 이를 통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투쟁이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 되는, 일종의 정형화된 대국회투쟁을 반복 수행했다. 이것은 현실에서 투쟁동력의 유실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낳았고 다른 운동적 기획들을 질식시켰다. 이미 여러 차례 여론에서의 우위가 확인되었고, 특히 상반기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이라는 유리한 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대중투쟁을 조직하지 못한 채 수세적 상황을 고수한 것은 노동자운동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반기 투쟁에서는 비정규주체들을 중심으로 ‘권리보장입법 쟁취’라는 슬로건과 이에 따른 투쟁전술이 주장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하는 4대 원칙(기간제에 대한 엄격한 사유제한, 파견법 철폐 및 불법파견 근절,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을 천명하고 공세적으로 권리입법을 쟁취하자는 취지였다. 이는 노사정 절충의 출발선이 되었던 정부원안 자체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기존 교섭중심의 투쟁전술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권리보장입법을 즉각적으로 쟁취할 수 있는 어떠한 주체적 계획이나 정세적 계기가 존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권리보장입법은 현실에서 노동법 개악을 저지한 뒤의 문제일 수밖에 없었고, 사실상 전술로서의 실효성을 거의 가지지 못했다. 연말에 다가서면서 정부-여당의 ‘연내 입법’이라는 강수가 노동자운동 전체를 강하게 압박했다. 궁지에 몰린 민주노총, 한국노총, 민주노동당 등 상층 교섭단위들은 교섭상의 유연성을 가지고자 노력했고, 결국 한국노총의 노동계 ‘수정안’ 발표, 주요 시민단체들의 ‘수정안’ 발표, 민주노동당의 기간제 수정안 제출 등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층 대중들의 혼란은 가중되었는데, 이미 대중투쟁이 형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혼란을 해소하고 다시금 대중동력을 결집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민주노총의 하반기 총파업 역시 대중동력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위력을 가지기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비정규법 연내입법 계획은 한나라당의 사학법 국회 통과를 빌미로 한 등원 거부와 국회의 파행적 운영이라는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으로 인해 무산된 상황이다. 올해 4월 내지는 6월경 다시금 개악 시도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을 때, 노동자운동은 몇 달 간의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해 투쟁의 과정에서 드러난 노동자운동의 수세적 입지는 이후 투쟁에 대한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비정규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은 노동자운동의 혁신이라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노동자운동 내 관료주의와 실리주의를 청산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운동 기풍을 세운다는 관점에서 교섭을 우선시하고 투쟁을 부차화했던 지난 시기 과오에 대한 단호한 비판이 필요하다. 또한 불안정노동 철폐라는 기조를 명확히 한 가운데 기층 대중들의 투쟁을 조직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정규직-정규직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전체 노동자운동의 주체들이 불안정노동에 맞선 단호한 실천을 벌일 때, 비로소 정부의 비정규노동법 개악 시도는 분쇄될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전망

2006년에도 신자유주의의 결과인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일반화, 차별과 배제의 확산 등 이른바 사회적 양극화로 지칭되는 문제가 대중들의 최소한의 삶의 기반마저 파괴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향이 역전되고 체제가 심각하게 변화되지 않는 한 실질적인 해법은 물론이거니와 단기적 처방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배계급은 사회통합의 당위성을 내세워, 마치 대중들의 저항이 통합을 저해하는 주범인양 공격하면서 불만과 저항을 관리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하려 한다. 특히 노동문제에 대해서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관련 입법,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등을 통해 마치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듯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나 동시에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와 경직성 등을 사태의 원인으로 호도하고 오히려 노동의 유연화를 확대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 지배세력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파괴적 효과가 분명해지면서 이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적절히 관리하여 신자유주의 개혁의 실행 조건을 정비하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그 동안 누적되어 온 변화된 대중운동의 현실과 조직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전면적인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필연적 모순이 체제 타협적으로 봉합될 것인가 아니면 운동의 혁신 속에서 대중운동의 급진화로 귀결될 것인가, 이것이 바로 2006년 우리가 서 있는 갈림길이다. 노동자운동이 맞이하고 있는 구체적인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자.

1) 사회양극화와 사회통합
사회양극화 해소가 신년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정권은 복지서비스의 확대와 이를 위한 증세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자체 선거를 앞둔 부담감 때문에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작년 말 양극화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틀로 정부가 제안한 국민통합연석회의도 일차적으로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책을 합의하는 기구로 축소되어 1월 26일 공식 출범했다. 26일 첫 회의에는 재경, 보건, 교육, 노동, 여성 등 관련부처 장관급 9명과 노동계, 종교계, 학계 시민단체, 여성계 등 사회 각계각층 대표 3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노총이 저출산과 고령화, 성장잠재력 확충 등 각 분야에 대한 논의 의제를 제시하며 적극적인 참가의지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실무협의는 참석하고 있지만 연석회의 대표자회의 참석은 지도부 선거 이후로 결정을 유보한 상태이다. 민주노총 2006년 사업계획서에는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과 연계되는 논의틀인 만큼 노사정 동수 구성과 합의원칙이 관철된다면 참여하여 의제를 쟁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판단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은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단계적인 무상의료, 무상교육 실현을 위한 2007년 정부예산 편성 및 법제도 개선을 요구로 하여 4월말 5월초에 총파업 투쟁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사회통합이라는 방향 속에서 제시되는 정책과제들이 과연 사회양극화에 대한 민중적 대안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사회통합 개념이 유럽에서 출현한 맥락을 영국을 중심으로 잠시 살펴보자. 1997년 집권한 신노동당은 사회적 배제/통합이라는 범주 위에서 사회정책들을 개발한다. 여기서 사회적 배제란 실업, 저기술, 저소득, 열악한 주택, 높은 범죄율, 질병, 가족해체 등 상호 연계되어 있는 조건들로 인해 개인이나 지역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며 사회통합정책은 개인이 배제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요구에 대응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노동연계복지, 뉴딜프로그램 등의 구체적인 정책이 시행되는데, 이는 복지의 제공을 개인들의 노동의무, 직업훈련의 의무 등과 연계함으로써 개인들의 기회와 책임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결국 이러한 사회통합 정책은 자본주의의 위기의 지속과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효과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확산에 따라 개인들이 체제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노동시장을 관리하되, 개인의 기회와 책임을 강조하여 이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구조적 원인에 대한 공격으로 향하는 것을 막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회양극화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이다. 금융을 중심으로 부를 수탈하고 노동유연화를 통해 착취를 강화하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없이 몇 가지 개량적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환자의 목숨을 연명할 수 있을지언정 질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가 주장하는 사회통합에 대한 근본적 비판 없이 이를 수용하고 개입하려는 시도는 자칫 신자유주의로 인한 문제들을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에 휘말릴 우려가 크다. 교섭틀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연석회의에 대한 판단 기준은 그러한 사회통합의 시도가 어떤 정치적 운동적 의미를 가지는가여야 한다. 민주노총의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 투쟁이 진정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면 정부의 사회양극화 해소-사회통합 논리를 비판하면서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문제를 체제의 문제로 바라보고 이를 운동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사회양극화의 구조적 원인을 폭로하고 이를 비판하는 정치적 방향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협상을 위한 연대가 아니라 대중운동의 성장을 위한 연대운동의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2)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비정규노동법 개악
2006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 및 노동조건 개선, 정규직화를 위한 힘겨운 투쟁이 계속될 것이다. 노동3권 쟁취를 위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집중투쟁이 상반기 중에 예정되어 있고, 불법파견 판정을 매개로 정규직화를 요구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법 개악을 통한 적법파견의 확대 시도, 도급화로 위장한 간접고용의 지속이라는 또 다른 조건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공공부문, 민간부문 서비스업의 계약직 노동자,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가 확대되면서 투쟁도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비정규노동법 개악이 상반기 중으로 다시 시도될 것이고, 이에 따라 개악저지 및 권리입법 쟁취 투쟁이 재개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년의 법 개정 논의에서 제외되었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원청기업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 등이 추가적 쟁점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 번의 파업 혹은 단체행동이 일방적 계약해지와 손해배상청구, 물리적 폭력의 동원 등 사측의 가혹한 탄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비정규사업장이 장기간의 영웅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요구안 쟁취는 물론 노동조합과 주체들의 존속조차도 보장받기 힘든 실정이다. 이 같은 현실은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폭로하는 데 집중했던 지난 몇 년간의 투쟁의 성과를 갈무리하고 비정규직 주체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데 운동적 역량을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보호라는 미명 아래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는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사회적 연대전선의 구축이 절실하다.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전 사회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비정규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운동의 사활적 과제다.
이를 위해 2006년에는 비정규직 투쟁을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 속에서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 파괴에 맞서는 투쟁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러한 투쟁도 계속되어야 하지만 여기에 전체 노동자운동의 초점이 집중될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대리하거나 도와주는 위치에 설 수밖에 없고 정규직-비정규직의 갈등이 지속될 것이다. 또한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존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이 전 조직적으로 꾸준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비정규직과 연대하자”는 식의 당위적 주장보다는 일상적인 정치활동, 교육활동의 강화를 통해 조합원들의 인식을 바꾸고 운동적 경험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성과들이 축적될 때 지금의 노동조합운동이 사회 전체를 변혁하기 위한 노동조합운동으로 변화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것이다.

3)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정부와 여당은 지난 해 발표한 34개 노사관계 로드맵 과제 가운데 올 해 24개 과제를 입법 추진할 계획을 밝히고 4월 정기국회에 이를 상정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핵심 과제는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단체 교섭창구 단일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직권중재제도 폐지, 쟁의행위에 대한 민·형사 책임의 문제, 직장폐쇄와 대체근로, 공익사업장 규모와 단체행동권 제한 문제 등이다.
민주노총은 이를 복수노조·산별노조 시대의 노동기본권 약화와 사용자 대항권 강화 시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기업별 복수노조 교섭창구 및 전임자 임금 지급을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라는 것을 주된 요구로 하되 직권중재, 손배·가압류, 공무원·교사·교수 노동3권 금지 등의 노동악법 철폐투쟁과 연계하는 한편 산별 교섭틀과 산별협약 쟁취 투쟁을 통해 ‘노사관계민주화방안 - 산별체제에 걸 맞는 노동법 전면 개정안’ 쟁취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골자로 하는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 개악 시도와 함께 노사관계에서의 노동기본권의 약화를 도모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이 산별체제의 제도적 보장 자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곤란하다. 산별체제가 자동적으로 노동자운동의 진전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현장에서 노동조합운동의 활성화와 노동기본권의 강화에 대응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특히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권, 노동자들의 일상적 조합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자본의 현장통제에 맞선 투쟁과 로드맵에 대한 대응을 긴밀히 결합시켜 실질적인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산별체제로의 전환과 조직혁신
민주노총 차원에서 조직혁신과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는 흐름은 크게 비리근절 등에 대한 제도적 정비 및 의사결정구조의 민주화, 산별체제로의 전환, 비정규직을 포함한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사업 등이 있다.
비리근절 및 의사결정구조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2월 선거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입장들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규율위원회의 강화를 통한 비리 근절, 직선제 등의 선거제도 개혁, 비정규직할당제 등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또한 정파구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현재 존재하는 민주노조운동 내 정파들이 분명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인맥 중심의 연계에 기반을 두고 있고, 상당히 폐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주로 비판이 되고 있다. 이를 지양하는 방향은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노선에 대한 진지한 모색과 소통의 활성화가 되어야지 정파적 대결을 근절한다는 명목 하에 이념과 노선에 대한 고민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한다거나 실용적 방안으로 정치적 입장을 대체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제도 혁신을 넘어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기운을 고양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운동 혁신을 끈질기게 지향해야 할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지자체 선거 이후 6월 임단투와 산별노조 전환 총투표를 병행 실시하여 산별노조 전환사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실적으로 대기업 노조의 산별전환이 가능할 지가 주목이 되는데, 단계적 전환 등의 해법, 예컨대 금속연맹의 경우 조합원수 3000명 이상, 3개 광역시·도에 걸쳐있는 노조의 경우 기업지부를 3년의 유예기간 동안 허용하는 방안을 통해 단계적으로 산별로 전환하는 식으로 계획이 추진될 것이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결의에 의한 산별전환 투표를 통해 형식적으로 산별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운동의 확장,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주체 확대, 노조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 강화 등 노동자운동의 광범위한 혁신을 추동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연대와 혁신, 투쟁으로

2006년을 맞이하는 노동자운동은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비정규 노동법 개악, 노사관계 로드맵 등 향후 노동자운동의 조건을 규정지을 중대한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과거의 운동이 쇠퇴하였지만 새로운 운동이 아직 본격적으로 출현하지 않은 상황을 위기 혹은 과도기라고 볼 때, 2006년의 노동자운동은 무엇보다 혁신의 흐름을 강화하는 속에서 아래로부터 투쟁주체를 형성하여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의 지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사회적 교섭이나 최근의 국민통합연석회의와 같은 사회적 타협체제에 대한 미망,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2006년에는 노동자운동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더 이상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의 파트너가 되고자 해서는 안 되며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의 중심축에 서야 한다. 여론화, 발언력 확대 등을 빌미로 NGO와의 연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투쟁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둘째, 노동자운동 혁신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민주노총 선거를 계기로 저마다의 조직혁신 방안이 제출될 것이고 조직 내적인 재편이 객관적으로 강제될 조건이므로 제도적 변화는 도입될 것이다. 물론 비리근절, 비정규 대표성 문제 등에 대한 제도적 방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상층 차원뿐 아니라 각급 단위와 지역, 현장에 걸쳐 실제로 활동가들이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통해 실천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셋째, 비정규직 투쟁과 노사관계 로드맵 투쟁을 중심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연대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비정규 노동법개악 저지 투쟁,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쟁취투쟁 등을 비롯하여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될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연대는 2006년에도 핵심적인 과제이다. 이는 분할과 격차가 심화된 노동계급 내 연대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또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로 표현되는 비정규직 주체들의 강화와 확장 역시 강조되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신과 운동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에 기초하여 조직과 투쟁, 조직운영과 사업기풍 전반에 걸친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기업과 업종의 울타리에 갇힌 채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임단협을 뛰어넘어야 한다. 실리주의와 사회적 타협에 중심을 두는 제도화된 운동 방식에서 확 벗어나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권리에 바탕을 두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계급적이고 사회운동적인 투쟁으로 거듭나야 한다. 원칙과 당위로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조직운영과 활동,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서울실천단, ‘민주노조운동을 아래로부터 혁신하기 위한 노동자선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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