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1999.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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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망원경2한겨레.HWP

[망원경] 보수언론과의 동침

지하철 파업 보도를 통해 본 한겨레 신문의 보수성

출판편집팀 | 사회진보연대
얼마전 교회신도들에 의한 방송사 점거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전 국민의 알 권리를 담당하는 국가시설’에 난입, 기물을 훼손하고 유린하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비난은 연일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한 시론의 언급은 우리에게 다른 무엇을 시사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곱씹어 볼 일은 언론의 역할이 미숙하고 못마땅하더라도 여전히 언론의 자유와 역할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회의 목탁이요 파수꾼이어야 할 언론은 그 본연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언로, 즉 말길이 막히면 그 조직이나 사회는 부패하고 마는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막힘이 없이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그것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 조선 5.13 <시론>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막힘이 없이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그것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보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의 언론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마저 부정하는 상황을 목도했다. 생존권을 걸고 마지막 권리인 파업을 행사한 지하철 노동자에 대한 언론의 보도작태는 가히 상상을 뛰어넘는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그렇다고 치자.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DJ 출범 이후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한겨레 신문의 보도행태는 보수언론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바야흐로 한겨레가 보수의 대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준법투쟁을 진행할 때부터 지하철 노조에 대한 한겨레의 논조는 몇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지하철 파업배경과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는 공사와 노조측의 주장만을 사실대로 보도한다는 미명하에 아무런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과 맞물린다. 파업초기에는 단지 사회면에서 '보도‘만을 할 뿐, 여하한 입장표명을 유보하다가 파업이 철회된 이후 몇번의 사설을 통하여 자신의 논지를 밝히는 식이다. 이에 대한 4월 29일자 한 독자의 투고를 보자.
‘지하철 파업뒤에 남은 일’(28일치 5면)이란 사설을 읽었다. 나는 <한겨레>가 이 사설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모르겠다. 사설 내용의 대부분은 현재 정보와 노조 양쪽 견해에 대한 해설이다. 그리고 결론은 정부가 파업 뒷수습에서 강경책을 세울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노사 현안타결을 큰 들에서 찾자는 ‘우리 모두 잘 하자’식으로 끝맺고 있다. 나는 한겨레의 보도행태가 좀더 확실한 목소리를 찾기를 바란다.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을 말을 늘어놓는 것 이상의 보도를 보고 싶다.
문제는 사설 뿐만 아니라 기타의 보도행태가 양쪽의 주장만을 싣는다는 것과 함께 그 옆에는 ‘시민의 불편’, ‘파업으로 인한 안전의 문제’ 등이 아주 선정적인 문구로 장식된다는 것에도 있다. 사건에 대한 추측성 보도와 한편에서의 선정적 문구가 가지는 효과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보수언론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파업 철회 이후 한겨레신문 사설의 논조가 노조를 정부가 잘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혹은 교섭정도의 대상으로만 치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서 어디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인가. 어디까지나 교섭과 협상에서 찾는 것이 정도이다. 정부가 파업의 불법성만을 강조하면서 협상과 타협을 거부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노동계도 파업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여러 차원의 교섭과 협의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제기하고 그것의 관철을 위한 방법들을 동원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현재의 노동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노사정 특별대책기구를 설치하여 타결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4.26 사설
“…노조는 ‘직권면직과 징계의 규모, 수위를 지켜본 뒤 강경책이 계속될 경우 5월 안에 재파업할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어 서울시와 공사가 자칫 노조를 ‘잘못 다룰’ 경우 새로운 불씨를 지필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4.27 서울지하철 노조 최대고비
“넓은 의미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전제로 협상과 교섭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도이다. 노사현안 타결도 큰 틀에서 찾아야 하며, 노동개혁은 노동관계의 기본원리와 사회 통합의 목표를 추구하는데서부터 방향을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4.28

굳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지난 날 노․사․정 협상은 재계의 일방적인 주장과 정부의 동조, 그리고 노동계에 대한 배제의 과정이었다. 노동계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 과정에서의 협상결렬과 탈퇴는 노동계의 잘못으로 치부되는 과정에 다름아니었다. 한겨레신문의 이번 보도는 지난 과정에 대한 아무런 언급없이 또다시 노사정위원회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는 정부와 재계의 논리와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의 최후의 수단인 파업과 거리투쟁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는 파업철회 이후 그 배경에 대한 추측에서도 드러난다.
“…조합원들의 결속력 미흡과 시민들의 차가운 반응, 정부와 언론의 여론몰이 등을 충부히 헤아리지 못한 것이 파업실패로 귀결됐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고 대처할 것이냐 하는 점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이번 성과를 전기로 삼아 힘에 바탕한 엄정한 노동정책을 확립하려 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세력을 협력 상대로 껴안는 여유를 보이며 기득권층의 개혁을 강제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29 사설 지하철 파업 이후의 정국

교회신도의 방송사 점거를 통하여 언론의 공적기능에 대한 회자를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노동자투쟁에 대한 언론의 편파보도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파업철회 이후 언론 스스로 ‘너무 심했다’라는 뉘앙스의 글을 보며 묘한 배신감에 젖지 않을 수 없다.
89년 보수언론의 바다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고자 창간하였던 한겨레 신문이 이제 11돌을 맞이하면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진보를 가장한 또다른 보수’가 아닐까? ‘국화 뒤에 숨겨진 칼’과도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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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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