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4.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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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땅의 속빛깔

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포크레인이 파헤친 대추리 땅의 속빛깔은 회색이었다고 한다. 회색 갯벌을 갈색의 옥토로 만든 주민들의 평생 세월을 미군과 정부는 한 나절 만에 파괴하려 든 것이다. 검찰은 박래군·조백기 활동가에게 청구한 구속 영장에서, 평택 투쟁이 외지인들의 부추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물론 이간질을 통해 투쟁을 잠재우려는 저들의 책략이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에 순종할 것만 같았던 늙은 농민들이 ‘특수공무집행방해’자로 나서는 장면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지배계급들의 무능력과 깊은 당혹감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국가의 폭력은 그들이 미국의 앞잡이라는 점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니다. 흙빛깔에 담긴 주민들의 피땀과 역사를 읽지 못하는 맹목. 대중들이 사적 ‘이해관계’와 ‘집단이기주의’를 훌쩍 뛰어넘어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이념을 체현하는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공포. 국가공동체의 행정 명령과 불의한 법질서에 불복종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대항공동체의 설립을 인내하지 못하는 독단. 이는 비단 평택 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저 잘난 ‘민주화’ 세력이 앞장서 자행하는 반민주적 폭거의 근본 원인이다. 민주주의를 타락시키는 이 같은 불의에 맞섬과 동시에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기도로 위협받는 평화를 지키려는 시민들을, ‘외지인’이라는 이름과 포크레인·용역깡패라는 물리력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배제하려는 저 ‘참여정부’에게, 시민은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에 대해 참여와 결정권을 갖는 당사자이자 주권자라는 자명한 진리를 투쟁으로 가르치는 것. 오늘날 민주주의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이번 호 특집은 라틴아메리카 정치현황과 대안세계화운동이다. 지난 3월 16일 성황리에 개최된 2006년 1차 사회운동워크샵의 토론 성과를 담았다. 류주형은 차베스가 주창하는 볼리바리안 혁명에 유물론자의 태도로 접근하고자 노력한다. 또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말에 일희일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시도들 속에서 그들이 대면하고 또 우리 역시 대면하게 될 저 ‘이행’의 난문들을 사고하려는 노력을 재개하기 위해서다.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 사무국에서 활동한 바 있는 디에고 아지와 데이빗 해리스는 알바(ALBA)와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 간의 양면적 관계를 서술한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부는 좌파 바람을 계기로 그곳의 현황을 상세히 개괄하는 배준범의 글과 함께 읽는다면 라틴아메리카의 상황과 그곳 사회운동들의 입장을 가늠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이번 호 노동자운동 꼭지에서는 철도노조 인터뷰와 KTX 파업투쟁을 다뤘다. 파업을 전후한 상황, 파업철회 후 진행되고 있는 현장투쟁, 그리고 재파업 결의에 이르는 과정까지, 파업이라는 가시적 사건 이면에서 끈질기게 진행되는 투쟁 상황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파업투쟁 이후 한달 째 상황실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인터뷰에 응해 주신 김정민, 박성수, 송호준 동지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김정은은 KTX 노동자들의 투쟁을 철도 투쟁의 전위로 정당하게 평가하면서, 여성노동권을 평가의 준거 중 하나로 삼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문문주는 ‘차별없는 서울 만들기’ 계획에 관한 글을, 정영섭은 프랑스 CPE 반대 투쟁에 관한 글을 각각 기고했다.
여성운동 꼭지에서는 최근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모순을 분석하는 한편, 이것이 결국 보육노동자와 간병인노동자들에게 부담과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임을 노동자들의 입을 빌어 생생히 폭로한다. 여성들을 서로 분열시키고 그녀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킴으로써 여성들 전체의 처지를 악화시킬 현재의 흐름을 역전시키는 것이 새로운 여성운동의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옳다에서 김병수는 최근 칼 아이칸의 KT&G 인수합병 시도와 론스타의 외환은행매각 등으로 인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초민족적 투기자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참여연대와 대안연대로 대표되는 입장들의 대립을 넘어서 금융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제기된다.

이번 호 이론 코너에는 귀한 글이 많이 실렸다. 최근 ‘뉴라이트’ 진영에서 출간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출판을 즈음하여, 배성준은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한국판 수정주의로 규정하고 그것의 전사 및 일본과 유럽 사례를 분석하면서 수정주의의 노림수를 드러낸다. 민족주의에 대한 우익적 비판을 통해 근대화론으로 귀결되는 이 같은 흐름에 맞서, 민족주의에 대한 좌익적 비판을 통해 식민지 근대화를 거친 한국 사회의 종별성을 해명하자는 그의 주장은 새벽처럼 신선하다. 또 김덕민은 최근 마르크스주의 이론 안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뒤메닐과 레비의 『자본의 반격』 출판을 계기로, 그들 작업의 의의와 독창성을 풍부하게 소개하는 서평을 보내 주었다. 특히 번역서와 관련하여 일차적인 권위를 가지게 마련인 역자후기에 어떤 부적합한 해석이 있는지를, 뒤메닐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그들의 작업에 진입하는 데 중요한 지침을 주고 있다. 여느 학술지에 기고하는 논문 못지않은 정성과 수고를 기울인 이 글들을 『사회운동』 독자들께 전해 드릴 수 있다는 점에 편집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쁨을 느낀다. 한편 스크린쿼터와 한미FTA, 그리고 문화운동을 주제로 회원쟁점토론에도 많은 회원들께서 참여해 주셨다. 각 분야에서 고민을 심화해 온 회원들과의 토론을 통해 우리의 고민을 한층 다듬을 수 있었다. 긴 시간 토론해 준 회원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사회운동』이 너무 두껍다는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번에 『사회운동』 발간 후 처음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양에 값하는 질이 있음을 보장한다. 이번에 보듯 『사회운동』이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워크샵을 비롯한 내외의 토론, 현장에서 활동하는 노동대중들의 적극적 발언, 연구자를 비롯한 여러 지식인들의 발언, 그리고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정책편집국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도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번 책을 낼 수 있었다. 부디 즐겁게 읽어 주시길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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