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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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예방 기제 도입의 위험성

강화된 형벌과 감시는 여성의 시민권을 보장하는가?

이진숙 | 인천지부 집행위원
성폭력에 대한 법의 개입과 여성의 현실

작년 말부터 여러 건의 성폭력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성범죄자 처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주로 용산초등학생 사건, 속칭 발바리 사건 등 아동에 대한 강간 살해, 성범죄 재범, 연쇄성폭력 등 '잔혹한' 사건이 집중적으로 공개되었다. 이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듯 논의의 방향은 처벌과 사후제재의 강화에 맞추어져 있다. 구체적으로는 성폭력 특별법 개정, 아동성폭력 관련 법 별도 제정, 성범죄자 전자 팔찌 착용, 외출제한, 주거지역 내에 범죄사실 공표 등의 방안들이 제안되어 검토되고 있다.
우리는 성폭력에 대한 많은 역사적 문헌을 통해 두 가지 주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성폭력이 범죄로 정의되고, 그것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판결하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성폭력 희생자(여성)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시선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성폭력이 범죄로 인식되고 공적 처벌의 대상이 된 이후 다른 어떤 대상에 대한 성폭력보다 아동성폭력은 '극악무도한 범죄행위'로 인식되고 집단적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연관된다. 근대적 가족 개념이 생겨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아동에 대한 보호와 관리 방식이 변한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인식을 전제한다면, 성폭력에 대한 법의 개입은 여성의 시민권이 최소한 법적으로 보증되고 성폭력이 권리의 침해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확대에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성폭력이 범죄로 인식되고 법적인 범죄성립요건도 완화되어 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도 처벌 대상이 되었지만, 현실에서 성폭력에 대한 고소, 유죄 판결의 비중은 이에 상응할 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성폭력을 다루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은 폭력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나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같은 사회적 변화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성폭력을 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때로 '공적 강간'의 효과를 내거나, 피해자와 잠재적 가해자로 추정되는 집단에 대한 통제장치,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해 왔기 때문이다.

매건법을 통해 50만 이상의 성범죄자의 신상을 인터넷에 등록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미 의회 보수파들이 최근 성범죄 전과자에게 평생 전자 족쇄를 채우는 법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성)범죄예방이라는 관념의 이면

최근 사회적으로 논쟁 중인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제재의 강화는 비단 한국에서 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 이중 특히 영국과 미국의 법, 제도는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감시 방안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다기관공공보호연합(MAPPA)이라는 체계를 설치하여 성범죄자를 포함한 살인, 강도, 방화 등 이른바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광범하고 체계적인 관리와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정부와 모든 주 정부는 1994년에서 1996년 사이, 공개된 명부에 성범죄자의 이름과 각종 신상 정보를 등록하고 범죄사실을 지역사회에 공표하도록 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한 메건법(Megan's law)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강화 뿐만 아니라, 사후통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변화가 범죄의 예방이라는 관념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관념은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후 처리를 넘어서 적극적인 사전개입과 관리를 지향하는 형태로 사회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그 수혜로부터 배제된 집단을 관리하기 위해 시장기능을 사후적으로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온 사회정책을 적극적 관리․통제정책으로 변모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확대되었다. 이 같은 정책기조 하에서 이른바 사회적 위험 요인인 범죄에 대한 규정은 사회통제 정책에 의해 역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성범죄자에 대한 감시의 강화는 다양한 범죄행위, 나아가 신자유주의가 제안하는 사회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사회적 부적응 행위에 대한 통제-감시의 한 형태로서 나타난다.
여기서 제기되는 쟁점은 범죄를 예측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와 같은 관념이 낳는 효과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이런 목적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의 경험과 그 방법에서 역으로 추론될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영국 MAPPA나 미국 메건법의 사례가 보여주듯, 범죄예방은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각종 정보의 해석, 평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범죄자의 잠재성을 의심하는 동시에, 잠재정의 근거로 규정된 사회경제적 요소들을 가진 개인들을 사회와 집단에 대한 위협으로 암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범죄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체계 안에 경찰, 보호관찰관 등 치안과 법률을 담당하는 전문가 외에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등이 포함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범죄예방은 사실상 법적 처벌을 이미 마친 범죄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강화라 할 수 있다. 전자감시 장치, 체계적 관리시스템의 도입과 같은 조치의 확대는 법적 처벌이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로서의 형벌이 아닌, 일종의 중화장치로 변모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범죄자들에 대한 재활이나 치료의 명목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속에서 시민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다뤄지고, 형벌은 일반화된다.
그런데 이 같은 형벌제도의 변화, 시민의 잠재적 범죄자화는 역설적이게도 시민들을 잠재적 피해자, 감시자로 호명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범죄자에 대한 사후제재는 범죄자의 정보에 대한 시민의 접근도를 높이는 형태의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데, 이로써 시민은 범죄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은 성범죄자, 나아가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제반 정보를 구축하고 있는 홈페이지와 같은 공개적 장치를 주요한 기제로 삼고 있으며, 영국의 과 같이 시민들이 감시시스템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함께 운영되고 있다. 이는 시민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발적인 주체로 나서고 운동을 통한 해결을 모색하는 가능성을 억압하면서 국가 관리 시스템의 일부분으로 역할을 하도록 관리․통제하는 신자유주의 사회통제정책의 지배적 경향이다. 시민들이 범죄자,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수행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국가가 강제하는 사회적 규범,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화된다.

더 많은 형벌과 감시를 불러올 성범죄 예방 정책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범죄자들에 대한 언론보도나 정부의 접근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연일 계속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와 집단적 분노의 분위기 속에서 범죄자 개인이 가진 특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증대했다. 빈곤, 여성혐오, 해체된 가족 등 (사실 한국 사회에 이미 충분히 일반화되어 있는) 그들이 가진 사회적-경제적 배경과 조건은 범죄의 원인을 설명하는 주요한 근거로 제시되며, 이로써 범죄자의 잠재성의 조건이 출현한다. 이러한 잠재성을 제거하고 예방하기 위해 전자 팔찌 착용, 직업 및 활동시간 제한 등 범죄자에 대한 각종 통제 장치의 도입이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범죄자의 조건에 대한 탐색은 특히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가장)의 역할 붕괴 등 가족과 관련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인다. '모성결핍이 성범죄 부른다'는 언론보도 제목으로 상징화된 이러한 접근은 이른바 비정상적 가족에서 성장하거나 현재 그런 조건 속에 있는 상황이 여성혐오, 성범죄로 이어진다는 관념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최근 드러난 다수의 성폭력이 (정상적인 가족에서 일차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인) 아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합되어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성폭력의 법적 처리 강화, 성범죄 예방 기제의 도입은 시민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접근은 성폭력이 범죄로 규정되고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성폭력과 그 희생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수정하고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과도 거리가 멀다. 여성의 시민권을 법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여성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확대하려면 더 많은 형벌과 감시를 요구하게 하는 상황을 낳을 뿐이다. 성범죄 예방이라는 관념이 초래할 위험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참고자료-성범죄 예방 제도들>

1990년대를 거치며 많은 국가들에서 성범죄자 처벌과 제재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주요 국가들의 제도변화는 다음과 같다.

- 스위스: 국민투표를 통해 2004년 성범죄자를 영구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했다.

- 프랑스: 성범죄자가 아동,청소년과 접촉하는 곳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관리하며, 유죄판결 받은 사람은 물론, 기소되지 않은 성범죄자도 5년까지 관리 명단에 포함된다.

- 영국: 2005년 13세 이하 어린이 성범죄를 무기징역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섹스법(sex law) 초안을 작성했다. 영국은 이에 앞서 상습적 성폭행, 살인, 방화, 무장 강도, 유괴 등의 이른바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관리 공조체제인 다기관공공보호연합(MAPPA) 설치, 운영해 왔다. 2003년 당시 총 52,800 여명이 관리대상이었으며, 이중 성범죄자는 21,400여명에 이른다. 범죄자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위해 직원, 경찰, 보호관찰관, 사회복지사, 정신과 의사, 교도관 등이 공조하여 범죄자에 대한 위험성을 분석하고 재범 예측 평가를 수행한다.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관리 데이터베이스(ViSOR)로 정보를 공유하고, 자동위치 추적 장치를 통해 일상적 감시가 이루어진다.

- 미국: 메건법(Megan's law) 제정 과정은 최근 용산 초등학생 강간살해 사건과 매우 흡사하다. 1994년 뉴저지주에서 메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7살 소녀가 성범죄 전력을 가진 이웃에게 강간,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메건의 어머니와 지역주민들이 나서서 메건법 제정을 촉구했다. 뉴저지주에서 제정된 메건법은 법집행기금 지원을 조건으로 한 연방정부의 지침에 의해, 1996년까지 미국으로 모든 주로 확대, 제정되었다. 각 주마다 구체적인 법안의 내용은 차이가 있지만, 메건법은 성범죄자 등록과 지역사회에 범죄사실을 통지하는 것에 대한 규정을 필수 조항으로 한다. 또한 미국은 2000년 7월 아동성범죄 재범 이상인 자를 무기징역에 처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투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였다. 다양한 감시체제가 각 주마다 설치되어 있는데, 켈리포니아의 경우 전자족쇄 법안이 발의, 11월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며, 상원에서는 성범죄자에게 25년형을 선고하는 법안이, 하원에서는 3범 이상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는 법안이 준비 중이다.

주제어
여성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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