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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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7-8.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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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_여성으로살아_쿤.hwp

그녀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

쿤 | 회원
E가 있다. 그녀에게는 3살 난 딸아이가 있다. 너무나도 영리한 그리고 그토록 애증하는 남편을 쏙 빼 닮은 아이. 그녀는 3일전에 이혼했다. 재판을 받으러 가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아마 그녀의 삶에서 이렇게 당당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당차고 당차게 그녀는 법정으로 들어갔고, 친권과 양육권만을 손에 쥔 채 법정에서 나왔다. 또각또각 그녀의 구두 소리는 당당한 그녀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남편과 어린 딸을 두고 5개월이나 떨어져 지내면서 두 달 전 아이를 훔치다시피 데려온 그녀였는데, 그녀의 남편은 법정에서조차 아니 법정에서 나오는 순간까지 딸아이에 대한 소식 한마디 묻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어떤 의지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무사히 양육권과 친권을 자신의 이름으로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대단히 자애로운 사람이다. 허!
그녀에게 남은 건 지저분해진 호적과 딸 아이 하나.
그렇게 당당했던 그녀가, 그렇게 자애로운 모습으로 일관했던 전 남편이 뒤에서 아주 소심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시하고 또각 또각 예의 그 당당한 소리를 내며 법원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내친김에 택시를 타고 호적을 정리하기 위해 그녀의 서류상 주소지인 xx시 시청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그 자애로운 전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녀는 상기된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전 남편이 만나자고 한다.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녀는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그러자고 했다고 한다. 그 멍청하디 멍청한 여자, E.
시청에 한달음으로 달려온 그녀는 고통스럽고 처절했던 3년의 시간을 어떻게 해야 서류더미 속에 처박아 둘 수 있는지 몇 가지 절차들에 대해 알아보고는 전 남편을 만나러 나갔다. 나가면서 그녀는 일말의 기대를 내비치지 않기 위해

" 놈이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수를 쓰려는 게 일거야. 어떻게든 이혼판결문을 시청에 접수시키지 않으려고 말이야."

라며 모진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곤 예의 그 당당한 소리를 시청 안에 울리며 나갔다. 또각또각.
시청에 들어온 그녀는 울상이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얼굴을 하고 아까 알아본 절차대로 그간 3년의 시간을 폐기처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곤 아주 당당하게 시청에서 나왔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여기 누가 본다고, 그리고 보면 좀 어때, 세상사람 사는 거 다 똑 같아. 그저 너하고 싶은 대로 해."

난 무얼 안다고 그런 시답잖은 말을 내뱉었을까하고 후회하기도 전에 그녀는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오늘 참 당당했었다. 오늘은 그녀의 생에 있어 아주 특별히 당당한 날이었다.
그 자애로운 전남편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얼마 후에 2차 공판-그 자애로운 남편, 손버릇이 좋아 그녀를 3일이 멀다하고 잡아 족치는데, 그 멍청하디 멍청한 그녀는 도저히 그 자애로움 견디지 못해 경찰을 불렀고, 그녀는 그를 고소했다. 1차 공판장엔 그녀가 연락이 닿지 않아 어찌어찌 들어간 듯 했고, 이제 2번째 공판이 남은 것인데, 여기서 고소한 이가 선처를 요구하면 별문제 없이 그 고소는 해결될 것이라 했다-이 있는데, 그거 취하해주면 안될까?" 였단다.

언제로 돌아가야 할까? 그녀의 역사, 그 멍청하디 멍청한 그녀의 역사 어디서부터 이야길 시작해야 할까?
그녀는 이른 나이에 그녀의 남편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녀는 그때 아주 힘든 시기를 보냈었고 무언가 그녀를 해방시켜주길 무척이나 원했었다고 했다. 그렇게 결혼이란 것을 했다. 그녀는 진실로 믿고 있었다. 결혼이 그녀를 해방시켜 줄 거라고, 다른 삶을 살수도 있을 거라고, 자기도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아마 2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전 남편의 좋은 손버릇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2년 전 처음 아이를 들쳐업고 나왔다. 그녀를 때린 그는 그녀의 돈 씀씀이를 문제삼았고, 그녀는 그래 살다보면 한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자신을 타일러 그녀의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그가 그녀에게 살림하라며 갖다 준 돈은 고작 30만원이었다. 그때 그녀는 한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었다. 남자가 생에 한번 저지를 수 있다던 그 손버릇이 다시 나온 건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때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녀가 그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건방지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의 손버릇은 활기를 뛰며 활동하기 시작했고 손버릇 하나로 부족했던지 화려한 발 버릇에, 터진 입이라고 마구 쏟아내는 육두문자는 옵션이었다. 그녀는 집을 나왔다. 눈물자국이 선연히 새겨져있는 얼굴을 하고 아이를 들쳐업고 그녀는 나왔다. 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며칠 전에 받은 생활비에서 남은 30만원도 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그녀는 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동거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녀와의 동거가 15일 정도 지나자 살길이 막막했던 그녀는 나올 때 그 모습 그대로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에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고 목소리엔 불안과 공포가 가득 배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다시 집을 나왔다. 그녀의 남편, 지 버릇 개줄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집을 나오고 들어가기를 수 차례 반복했던 삶. 그렇게 오늘에 이르렀다. 그녀는 결국 다시 집을 뛰쳐나왔고, 탄생을 위해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개체 안에서 태아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듯이 그녀는 다른 삶을 만들어내기 위한 산고의 고통을 인내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아마도 한 달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아니 두 달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그렇게 당당하게 이혼을 했던 그녀였는데.
그렇게 관할 시청에 이혼서류를 제출하고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녀는 갑자기 예전 살던 집에서 아이 옷가지를 가지고 와야겠다며 나를 혼자 낯선 버스에 남겨두고 서둘러 내려버렸다. 서울에 도착해서 그녀를 기다렸다. 밤이 늦도록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맞아 죽은 건 아닌지 갑자기 겁이 났다. 온갖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시계추처럼 규칙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다행히 늦게 그녀와 통화를 했다. 그녀는 그녀의 전남편과 함께 있다고, 함께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새벽에 가까워서야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알았다. 그녀가 전부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 전남편에게 미련이 남아있다는 것을, 그런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난 무슨 말인가를 했었던 것도 같아, 아마 독하게 마음먹고 이젠 아이와 어떻게 살지만 걱정하자고, 그런 사람 이젠 잊어버리라고. 아, 이런 이야기도 했다. 전남편에게 양육비 청구하라고.

그리고 며칠은 잘 지내는 듯 했다. 양육비 청구에 대해서도 슬슬 남편에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같고, 일도 열심히 하고, 주말마다 아이를 보기 위해 친정 집에 내려가기도 하고.
그때 난 너무 바빴다. 너무 바빴고 그리고 너무 피하고 싶었다. 이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도 마음도 너무나 피로에 쩔어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밤늦게나 퇴근해야만 하는 생활이 이어지는 바람에 그녀를 볼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자신의 덩치보다 큰 가방을 끌고 나오는 그녀를 봤다. 친청집에 들어갈 거라고 말했다. 난 그때 참 당혹스러워 했었다. 친정집에 들어갈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나 이렇게는 아니었다. 인사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보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완강했다. 그리고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서 들었다. 그녀가 다시 그 전남편에게로 갔다는 사실, 다시 살림을 차리고 산다는 사실.

그녀를 만나면서 참 많은 고민이 들었다.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삶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여성주의를 어떻게 하면 그녀와 함께 지금의 이 생에서 풀어낼 수 있을까? 학교 다니던 시절 그 또래의 여성들과 치열하게 나누었던 고민들, 그리고 계획들, 실천들. 그것과는 아주 거리감 있게 느껴졌던 그녀의 삶과 멍청하게만 보이는 그녀의 선택.
그녀의 남편이었고 전남편이었다가 이제는 동거인이 된 그 사람은 그저 쓰레기라고 욕하고 나면 그만인데, 사실 그런 쓰레기와 삶을 꾸려 가는 E는 단순 명쾌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E의 선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사실은 지금도 혼란스럽다.

비로소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그녀들의 목소리. 이제 조금씩 기록되기 시작한 그녀들의 삶.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생에 대해 입술조차 떼지 못한, 입술을 봉인 당해 버린 그녀들의 무수히, 많은 목소리. 삶.
그래도 내가 지금 그녀의 삶을 읊조리며 절망스럽지 않은 까닭은 그녀가 마지막에 내게 뱉어둔 말에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언니야. 나 이제, 예전처럼은 살 수 없어."

그녀는 아마 예전처럼은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삶은 내게 예전과 다르지 않은 답답함을 선사해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녀는 열심히 목하 투쟁중인 것을.
내 곁에 있지 않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으로부터 저항하기 위해, 그 자애로운 남편 앞에서 자신이 온전한 하나의 인간임을 천명하기 위해.

한 사람의 삶이 전변하는 것이 이토록이나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러나 천천히 스물스물 그러나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밤에도 그녀들은 깨어 있을 것이다.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순간들을 온몸에 기록하면서.

아무것도 가릴 것 없는 뜨거운 거리 위에 그녀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 이것이 바로 내 삶의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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