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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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10.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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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_쟁점토론.hwp

노사관계로드맵 합의의 문제점과 대응방향

김철희, 이승철 | 회원
노사관계로드맵 합의의 문제점과 대응방향

일시 장소 : 2006년 9월 20일 오후 8시, 갈월동 사무실

사회
정영섭(노동국장)

토론자
김철희(회원, 노무법인 참터)
이승철(회원, 단병호 의원실)

정리
권태훈(노동부장), 공성식(노동부장)

사회자 : 정부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약 3년 간 진행되어 온 노사관계로드맵 논의가 숱한 논란과 갈등, 투쟁 속에 결국 9월 11일 한국노총, 경총과 정부의 야합으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그 동안의 진행과정을 돌아보고 이번 야합의 의미와 향후 대응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오늘의 토론을 준비하였습니다. 다소 급하게 준비되어 많은 회원 분들이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노사관계로드맵, 추진에서 합의까지
: 노동권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린 9·11 야합

사회자 : 먼저 노사관계로드맵이 추진되어 온 경과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철희 :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러 분야에 대해 개혁과제가 제출되는데 노사관계와 관련해서는 업종별 노사정 협의회 설치 또는 네덜란드 모델의 사회적 합의 등을 중심으로 노사관계 전반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그러다가 2003년 5월경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취합하여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를 하고 정부는 <한국노동연구원>(이하 노동연구원)에 관련 용역사업을 발주합니다. <노동연구원>은 전문가 15인으로 노사관계 선진화 연구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여기에서 2003년 12월에 노동조합 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관련 18개, 노동위원회법 관련 1개, 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관한법률(이하 근참법) 관련 10개,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 관련 5개를 포함하여 세부적으로 총 45개의 제도개혁안을 연구결과로 제출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데 총선을 거치며 잠시 중단되었다가 2004년 8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논의가 중단됩니다. 그러다가 2005년 4월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노사관계로드맵의 입법화 논의가 재개되었고 결국 얼마 전 2006년 9월 11일에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져 9월 14일 노동부는 이를 바탕으로 노조법, 근참법, 근기법에 대한 입법예고안을 발표한 상황입니다.

사회자 : 노사관계로드맵을 3년이나 끌다가 겨우 노사정대표자회의 합의라는 모양새를 취하며 결론을 맺었지만, 이번 합의는 사실상 이에 참여한 주체들이 서로 정치적 명분과 실리를 택하는 야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8월 말부터 물밑 대화가 계속되어 9월 2일 최대 쟁점이었던 복수노조허용 및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5년 유예안에 한국노총과 경총이 합의하였지만 이후 다시 노동부와 줄다리기 끝에 최종적으로 3년 유예안에 한국노총과 경총, 노동부가 합의하였습니다. 이번 노사관계로드맵 야합의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토론하기 이전에 이번 노사정대표자위원회에서 합의된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넘어가죠.

이승철 : 일단 6월부터 시작된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실무회의와 운영위를 포함해서 모두 32차례 열렸습니다. 그동안의 회의에서 정부가 내놓은 안에 민주노총과 경총, 한국노총이 제안한 의제를 더해 대략 42개의 과제가 논의의제로 결정되어 다루어져 왔습니다. 이 중 이번에 입법예고 된 것은 14개 과제입니다. 이 중에는 민주노총이 참여한 회의에서 합의가 된 과제가 8개입니다. 물론 민주노총은 일괄타결을 주장해 왔기 때문에 이 8개 과제 역시도 완전히 합의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민주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합의된 나머지 6개 과제에 비판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를 빼면 총 28개의 과제가 남아 있게 되는데 그 중 14개는 현행유지의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입법예고에서 제외되었다고 볼 수 있고 나머지 14개 과제는 이후 논의에 따라 향방이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14개 과제 대부분이 민주노총이 핵심적으로 주장했던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손배가압류 문제, 산별교섭의 제도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 공무원, 교수, 교사의 노동권 문제 등입니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각종 의결기구를 통해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들어가서 쟁점화하고 해결하겠다고 했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의 근거가 되었던 과제들이 이번 입법예고에서는 전부 빠져 있습니다.
한편, 입법예고 된 6개 과제는 첫째 복수노조 3년 유예, 둘째 전임자임금지급금지 3년 유예, 셋째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공익사업장 대체근로 허용, 넷째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 확대, 다섯째 부당해고와 관련된 법조항 변경, 마지막으로 흔히 정리해고라고 불리는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에 대한 규제 완화 등입니다. 민주노조운동 뿐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비판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이 여섯 개 과제입니다.

사회자 : 한국노총의 보도자료나 '노사정 야합'의 주체들이 내놓은 대타협 선언문은 사회적 갈등을 회피하고 합의정신에 기반하여 타협을 이루어낸 것을 가장 커다란 성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정부측에서야 각종 정치일정을 앞두고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고 했고 한국노총은 조직보존을 최우선으로 사고했고 사용자 측에서는 갈등을 최소화하거나 복수노조의 도입 등이 불러 올 골치 아픈 문제를 회피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번 야합은 이러한 각 주체들의 실리적 판단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이번 합의의 의미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김철희 : 합의의 당사자가 아닌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그 사람이 경영계 중심의 입장을 가지고 있든지 노동계 중심의 입장을 가지고 있든지 상관없이 모두 이번 합의를 타협이나 야합으로 비난하거나 폄하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ILO에서 복수노조 허용을 권고하자 당시 정부는 97년 노동법개정 과정에서 형식적으로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조직대상이 중복되는 복수노조의 설립을 막아 사실상 기업단위에서의 복수노조 설립을 금지합니다. 이후 10년 동안 계속해서 노동계나 국제사회에서 법개정 요구를 받아 왔고 정부는 그 때마다 현실적인 준비부족을 이유로 유예를 해 왔습니다. 사실 그렇게 두 번이나 5년 씩 유예를 했으면 사실상 준비부족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봐야 할 텐데 다시 준비부족이라는 같은 이유로 3년을 유예한다는 것은 노사당사자가 지금까지 유예를 하면서 스스로 게을렀다고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문제가 서로 교환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환대상인 것처럼 패키지로 처리했다는 것 자체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번 야합은 한국 노사관계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헌법상에 보장된 단결권을 하위 법제도가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거니와 이를 개선해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노총은 현재 노동조합의 핵심 인물들 즉 전임자들의 임금을 받기 위해, 경영계는 복수노조가 생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노동조합 통제비용의 증가 때문에 악법 유지를 합의했다는 것은 역사의 정방향을 거스르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번 타협이 최소한 지난 두 번의 유예결정과 다르기 위해서는 최소한 앞으로 3년 동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당사자들이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해야 함에도 이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헌법 개정보다 어려운 노사관계를 합의했다."며 자화자찬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이번 타협에 '타협'의 어떠한 상징적 의미도 부여하기 어려운 객관적 조건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승철 : 소위 9·11 야합이라고 불리는 사실관계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이야기 된 듯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번 합의과정 또는 논의과정에서 노동계 내부와 자본 내부의 이견들이 극명하게 표출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 자본 내에서도 자기 기업 내의 노사관계에 따라 이견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이것이 내적으로 합의되기보다는 각자의 입을 통해 표출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노동계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또한 경총과 한국노총이 합의한 내용을 노동부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노동부의 입장이 수차례 바뀌게 되는데 그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흔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번에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노사정 모두의 입장들이 각기 합의되고 조정되지 않은 채 외부로 표출되었습니다.

사회자 : 그 문제를 좀 더 들어가 보면 언론에서는 현대가 파워게임에서 삼성에 밀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한편으로 노동계에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물밑으로 다 알고 있었고 용인해 줬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어떤 대의원은 집행부가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승철 : 마지막 공식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가 9월 5일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9월 8일에 조준호 위원장과 노동부장관이 만났고 11일에 합의문이 발표가 되었습니다. 조준호 위원장은 노동부장관과의 독대 자리에서 3년 유예할 수밖에 없다는 노동부장관의 입장에 반발하자 노동부장관이 "그만 서운해하고 한판 붙어봅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며칠 전 조준호 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브리핑한 내용입니다.
9·11 야합 이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서 각각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에 공통으로 참석한 조직이 민주노총, 한국노총, 경총 그리고 현대자동차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차라리 이럴 바에야 2007년부터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현행법을 유지하자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경총과 한국노총은 모두 각기 자신대로 불만이 있지만 차선을 내준 차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민주노총은 계속 반발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처음 경총과 한국노총이 5년 유예를 합의했을 때 노동부에서 이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했습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정부가 노사관계와 관련해서 성과라고 내놓을 게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노사관계로드맵은 오랫동안 준비를 했고 이것만큼은 자신의 정권이 할 수 있다."며 성과를 내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현재 이상수 장관은 3선 의원이고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선본의 대선자금을 총괄할 정도로 당내에서 가진 입지 역시 상당합니다. 뿐만아니라 국회에서 환노위를 구성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의원이 초선 의원 중심이라 이상수 장관이 의지가 있었다면 노동부의 본래 의도대로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이 바뀐 데에는 세간의 풍문처럼 청와대의 의사가 크게 반영되었으리라 추측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합의가 단순히 복수노조 3년 유예의 의미를 넘어 스스로 개혁과제로 설정했던 것도 추진하지 못하는 현 정권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 =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권의 3년 유예

사회자 : 먼저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3년 유예를 맞교환 한 부분이 가장 커다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노동자운동과 노동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김철희 : 정규직 노당자들 중심으로 전통적인 노동조합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기업체 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교섭권과 쟁의권을 사용하며 주체로 서기 위해서, 지금까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지원, 노조가입을 하게 해 주는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필요했고 기존의 노동조합 체계에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수노조 허용은 노사관계 상의 일주체로, 독자적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복수노조 허용이 불발되면서 이러한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권이 3년 유예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전임자임금 지급은 큰 영향은 없다고 보여 집니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비정규 관련 법개정이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집니다.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의 삭제 : 제도의 현실화인가, 무한해고의 허용인가?

이승철 : 현재 복수노조 유예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는 야합의 당사자들과 여기에서 소외된 세력의 입장이 대립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야합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부당해고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언론보도 역시 복수노조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양대노총 사이의 세력확장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대부분인데 이로 인해 쟁점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부당해고 부분은 한국노총 스스로도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번 부당해고 관련 법개정은 형사처벌 조항의 삭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형사정책상 형사처벌이 갖는 효과는 크게 징벌적 효력과 예방적 효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위사업장의 실제 상황을 보면 노사관계가 정말 극단으로 흐르는 경우를 제외하면 많은 사업장들이 이 조항 때문에 해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의 예방적 효력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조항이 삭제되면 사업주는 부당해고를 하고도 이행강제금만 몇 차례 내며 시간을 끌면 별다른 제제를 받지 않게 됩니다. 사실상 해고의 길을 무한하게 열어준 것입니다. 사업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행강제금이 얼마나 나올지는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비용보다 노사관계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많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에게도 마찬가지로 이 조항이 커다란 영향이 있을 것이라 보여집니다.

사회자 : 한국노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합의의 성과를 제시하면서 특히 근로조건을 임금 이외의 근로시간, 휴가 등에 대해서도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한 부분이나 해고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한 점을 강조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혜택이 돌아 갈 것 인양 선전하던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철희 : 지금까지 판례는 비정규직에 대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나가라고 한 것은 해고지만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나가라고 하면 해고가 아니라 계약기간 종료로 보고 있습니다. 해고사유 서면명시 의무가 도입된다고 해도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죠.

이승철 : 해고사유를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의무화하도록 했지만 이는 기존에 논의되던 것 보다 후퇴한 수준입니다. 애초에는 서면명시를 하지 않을 경우 해고의 효력을 무효화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실제 어떻게 합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4일에 발표된 입법예고안에는 해고사유 서면명시 미준수 시 해고를 무효화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사회자 : 그래도 서면통보를 한다는 것 자체는 괜찮은 것 아닌가요?

이승철 : 이전에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하는 등의 관행이 사라지긴 하겠지만 절차를 강화한다고 해서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강제성이 없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효력을 가질지 의문입니다.
김철희


김철희 : 문헌상으로만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할 듯합니다. 근기법 입법예고안 30조 4항에 보면 "1항의 규정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할 경우에는 해고사유 및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보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를 해고의 효력규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법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선언문에 서면통보를 하지 않을 경우 해고를 무효화한다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합의자의 취지가 반영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편 이 문제를 약간 다른 시각에서 볼 필요도 있습니다. 해고제도의 개선에 대해 작년 단병호 의원실과 민주노동당에서 집중적으로 연구 한 바 있습니다. 당시 형사처벌을 기본 축으로 하는 현행 제도가 예방적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존재하는 한국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었습니다. 실제 부당해고가 발생할 경우 사용주가 구속되는 일은 전혀 없었고, 징역 5년에 벌금 3천 만원까지 부과될 수 있지만 3백 만원 이상 벌금이 부과된 경우가 없었습니다. 또한 해고당한 본인이 복직된다고 해도 노동조합이 튼튼하거나 현장에 지지자들이 많지 않으면 사용자로부터의 정신적 스트레스, 압박, 주변으로부터의 왕따가 예상되는데 그동안의 제도에서는 원직복직과 해고기간의 임금을 지급하는 정도밖에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해고 당사자들이 복직을 포기하고 손해보상청구를 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제도의 도입이 개별 해고자들의 입장에서 불리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부당해고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외국의 사례가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이러한 제도의 도입이 잠정적으로 노동조합의 단결권 약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분명히 문제로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승철 : 네 저도 방금 지적하신 내용에 동의합니다. 이는 의원실에서도 계속 검토해 온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번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도 처음에는 형사처벌을 존치하되 근로자 본인이 동의할 경우에 금전보상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가 된 것으로 압니다.
중층적인 현실의 노사관계 속에서 이 조항이 가지고 있는 효력을 구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노동부 역시 이 조항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은 사용자가 많지도 않고 검사도 기소를 안하는 등 이미 사문화된 법 조항이므로 현실을 반영해 없애자는 주장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교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조항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감독관이 사용자에게 이 조항을 근거로 압박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러한 선마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사회자 : 그런데 금전보상제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예전에 현대중공업에서 노조 차원에서 결의해 해고자를 정리하고 대신 금전적으로 보상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와 유사하게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부당해고를 둘러싼 소송은 길어지기 마련인데 생계가 어려워진 노동자에게 금전을 미끼로 투쟁을 그만 두도록 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것 같습니다.

김철희 : 저는 약간 실무자적 입장에서 금전보상제는 현행 법체계 안에서 해고당한 사람에 대한 구제에 대해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노동부가 주장한 금전보상제는 담당 노동위원회나 재판부가 임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입법예고 된 제도는 본인의 신청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의 발생의 여지는 적다고 봅니다. 더구나 제가 경험한 한에서는 특히 중소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의 경우 오히려 원직복직이 요원한 상태에서 금전적으로 보장받을 길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중간에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노동부는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부가 부당해고를 한 사업주에게 입건하겠다며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해도 소용이 없다는 문제제기를 해 왔습니다. 사용자가 노무사나 변호사 등 전문가의 자문을 얻고 나면 "버티면 별로 비용도 안 든다."는 사실을 금방 터득하게 되죠. 이미 우리 사회 노사관계 제도에서는 이것이 정석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차라리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 사용자를 행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노동부의 희망사항이 이번 제도의 도입에 녹아 있기도 합니다. 물론 검사가 아닌 노동부가 부당해고를 관리한다고 부당해고가 줄어든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승철 : 현행 법 상에서 실제 집행되는 벌금이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강조하듯이 사용자가 형사처벌의 위험 때문에 그나마 현실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인정율이 극히 미미한 현실에서 조합원에 대한 악의적인 해고나 인사처분의 문제도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부당해고 형사처벌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는데 형사처벌이 삭제되면 위헌소송을 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밝힌 합헌의 근거는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안전망이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당해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예방적 조치가 요구되며 또한 재취직이 어려운 조건을 고려할 때 5년 이하의 형량이 무거운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철희 : 형사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헌법재판소의 지적이나 이승철 동지의 지적이 맞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소영세사업장의 사업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재산상의 손실임을 고려할 때 만약 새롭게 도입될 손해배상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되느냐에 따라서 제도의 효과가 달라 질 수 있다고 봅니다. 영국에서는 연령에 따라 손해배상금으로 최대 30년 치 임금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선례가 나오게 된다면 부당해고를 형사적으로 제어하는 것보다 사업주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회자 : 해고와 관련된 합의안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형사처벌의 삭제가 이 제도의 징벌적, 예방적 의미를 후퇴시킨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물론 일부 상황이 어려운 해고자들의 차원에서 보면 현실적인 개선안 일 수도 있지만 이후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가 사법부의 태도가 어떤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만적 직권중재제도 폐지와 필수공익사업장 확대, 대체근로 도입 : 파업권의 박탈

사회자 :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권 제한 문제로 넘어 가겠습니다.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된 대신 대체근로가 허용이 되었고 최소업무유지가 신설되었고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에 혈액공급, 항공운수, 폐·하수처리, 증기, 온수공급업 등이 추가로 포함되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되면 어떤 사업장들이 필수공익사업장에 포함이 될까요?

김철희 : 항공운수나 폐·하수처리 업종이 무엇인지는 다들 아실 듯합니다. 증기, 온수공급업에는 지역난방공사나 산업단지 내에 있는 열병합발전소 등이 포함됩니다. '산업단지사건'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업장의 파업이 유죄냐 무죄냐를 두고 대법원까지 사건이 올라가서 결국 무죄판결이 났었습니다. 그러한 사업장이 이번에 필수공익사업장에 포함이 된 것이지요. 이 외에도 혈액원노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번 야합안의 핵심적 문제는 직권중재제도 폐지를 전제로 여러 개악된 조치들이 포함이 되었는데 여전히 노동부장관에 의한 긴급조정제도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직권중재제도의 폐지 자체가 커다란 의미가 없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현대중공업이 파업을 할 때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던 이인제가 긴급조정명령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직권중재가 필수공익사업장에 한하여 조정기간을 두고 조정이 되지 않는 경우 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정위에 회부할 수 있는 제도라면 긴급조정은 필수공익사업장이 아니더라도 국가 경제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자의적인 판단 하에 파업을 중지시키고 조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악법입니다. 지금까지 세 번 정도 긴급조정이 발동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최근 LG정유와 아시아나조종사파업에 대해 1년에 2회나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는 등 최근 긴급조정권이 더욱 빈번하게 남용되고 있습니다.

이승철 : 지난 2002년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한국의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권고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필수공익사업장에서 제외할 것을 요청한 부분이 철도, 도시철도, 석유부문입니다.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필수 서비스로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국제적 기준에 맞추겠다는 노사관계로드맵이 2002년 발표된 ILO의 보고서에도 미달하는데다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대체근로 문제에 대해 보자면 헌법이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고 쟁의행위라는 것은 사용자의 생산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목적인데 상위법이 정한 것을 하위 법인 노동법에서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신규채용을 통한 대체근로가 허용되는 등 대체근로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이전의 제도에 비해서도 확대가 되었는데 이는 파업참가자의 원직복직을 보장해야 한다는 ILO의 기준에도 어긋날 뿐더러 파업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 것입니다. 더구나 파업 이후 사업장 내에서 엄청난 갈등과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합니다.

김철희 : 미국의 경우 대체근로가 허용되고 있습니다. 레이건 정부 시절 관제사 노조의 파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대체근로로 인한 단결권의 약화의 결과가 무엇인지 미국 노동운동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대체근로의 허용은 필연적으로 필수공익사업장에 포함되는 사업장에서 파업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수 없도록 만들고 파업 사업장 전원이 해고되는 상황이 벌어 질 수 있습니다.

사회자 : 이번 개악의 이면에는 갈수록 공공부문의 비중이 커지고 공공부문의 노동운동이 성장하자 이를 탄압하고 억누르려는 정부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민간부문에 비해 그나마 공공부문의 노동운동은 조직력이나 파업의 파괴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몇 년만 보더라도 철도, 발전, 병원, 항공 등에서 굵직한 투쟁들이 많았습니다.

김철희 : 공공부문에 대한 파업권의 축소, 공무원노조, 전교조에 대한 노동 3권의 불인정 혹은 전국적 대규모 파업에 대한 정부와 자본가들의 대대적인 탄압 등 최근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보면 한국에서 정부나 지배세력의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천박한지 여실히 드러납니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경제적 파업만이 아니라 정부나 국가를 상대로 한 정치파업에까지 허용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정치파업의 과정에서 정부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공공부분의 파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여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관련한 사업장의 공공적 성격에 대한 자각 때문에 이러한 사업들이 우경화되거나 친자본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제어하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번 개악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제약하여 국가 스스로 정치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의 문제점과 정리해고 요건의 완화

사회자 : 주요 쟁점 중에 아직 살펴보지 않은 것이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입니다. 처음에는 사업장 규모 별로 차등을 두는 방안, 1년 유예하고 준비를 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다가 결국 3년 유예안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한국노총은 중소규모 사업장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면 조직이 무너질 정도의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유예를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경우 그 동안 이 문제와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하여 산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합원을 설득해 왔는데 야합으로 두 가지 모두 유예된 상황에서 조합원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승철 : 이미 전임자 임금 지급 허용이 한시적 조항이었고 각 노조들이 나름대로 준비를 해 왔습니다. 과연 얼마나 준비했느냐를 떠나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고민한 집단은 민주노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나 한국노총은 이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손 놓고 있다가 3년을 또 유예했습니다.
그런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있는 현행법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전임자 임금지급은 입법적 관여사항이 아니라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ILO의 권고안에 정면으로 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행법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그 시행만 유보하고 있습니다. 전임자 임금 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한 사례는 일본의 전시노동법을 제외하고는 전무합니다. 외국의 입법례에서 노조 전임자의 수나 유급근로 면제시간의 하한을 정하는 경우는 존재하나 최소한의 기준일 뿐 그 이상에 대해서는 단체협상을 통해 노사자율로 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반면, 이번 야합안은 이것마저 봉쇄하고 있습니다.

김철희 : 노사자율 원칙이 원론적으로 들리지만 이것이 이 사안에 대한 대답의 전부라고 봅니다. 어느 나라도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규정하고 있지 않고 심지어 노사자율이라는 원칙도 없습니다. 이는 당연하게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노동조합에게 컴퓨터와 프린터를 줄 것인가 아니면 스캐너까지 줄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임자 임금 지급에 관련한 법원의 판례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원래 전임자에 대한 임금은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산물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노동조합의 단결권,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통적인 판례였습니다. 그런데 사용자가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면 이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갑자기 튀어 나왔습니다. 이 문제를 잘 보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기업별 노조가 중심이 되거나 산별노조라 하더라도 기업별 단위의 분회나 지회가 활성화되어 있는 체계에서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생활의 안정을 확보하고 노동조합 활동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자주권을 보장하는지, 임금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조합원에게 조합비를 더 내도록 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단결권과 자주권을 확보하는 것인지 현실을 정확하게 봐야 합니다. 이런 현실적 고려 없이 형식적으로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면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침해한다고 단정하고 마치 이것이 노동조합을 위한 정책인양 포장하는 태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노사 자율로 결정할 문제입니다.

이승철
이승철 : 한편 이번 야합안에는 정리해고에 대한 규제 완화가 포함되었습니다. 정리해고에 대한 사전통보 기간을 차등화하여 5,000인 이상 사업장에서 500인 이상 해고할 경우에만 현행 60일을 유지하고, 1,000∼5,000명의 사업장에서 10% 이상 해고하거나 1,000명 미만 사업장에서 100명 이상 해고할 경우에는 45일로, 이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으면 30일로 기간을 단축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 5,000명 이상 사업장에서 500명 이상 해고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면 차등안은 결국 현행 60일의 사전통보기간을 단축하는 안입니다. 2004년 기준으로 1,00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96.6%인데 이들 사업장이 100명 이상 해고를 할 경우에도 나눠서 해고를 할 수도 있으므로 사실상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정리해고에 대해 노동자들이 대응할 시간이 60일에서 30일로 절반이나 줄어들게 됩니다. 3년 이내 동일업무 재고용 의무가 부과되었지만 과연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미지수이고 사실상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철희 : 현행 제도에도 정리해고 시 2년 동안 우선고용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 규정이 훈시적 규정이어서 강제력이 없었는데 이번 입법안에서 강제력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사실 경영 측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노동자를 채용하는 것보다 기존의 노동자를 채용하는 것이 유리할 뿐더러 신규채용의 근로조건이 예전과 동일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더 열악한 조건으로, 예를 들면 같은 숙련노동자를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결과만 낳게 되는 것이죠.

이승철 : 더구나 정리해고가 실시되면 회사가 관련 사업을 외주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신규채용의 의무를 동일업무로 한정하고 있어 그 실효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 이번 입법안이 정리해고에 대한 사용자의 고용유지의 의무를 강화한다면 동일업무라는 문구를 삭제해야 마땅하겠죠.

김철희 : 또한 정리해고 사전통보 기간은 노사가 최소한 협의를 하거나 숙고하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사용자의 정리해고를 규제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용자는 경영상의 위기가 무엇인지 투명하게 밝혀야 하고 정리해고 계획이 합리적인지 밝혀야 하며 해고 대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해고 대상자의 기준은 무엇인지 노사가 합의를 해야 합니다. 이중에서 단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해고의 정당성이 부인됩니다. 정리해고 자체가 일 잘하는 사람을 경영자가 자신의 문제, 즉 경양상의 이유로 해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자가 더 많은 부담과 책임을 져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전통보 기간이 줄면 해고를 방지하기 위한 노사간의 충분한 논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고 결국 사용자의 해고계획이 그대로 관철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어떤 회사가 업종을 변경하며 정리해고를 할 때 그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가 기존 노동자들의 전직 가능성 여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입법예고 된 안은 재고용의 의무를 동일업무일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회사가 업종을 변경할 경우 당연히 재고용의 의무가 없는 것이고 결국 사용자의 업종전환 가능성만 높아집니다. 결국 정리해고에 대한 이번 야합안에는 구조조정의 탄력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민주노조운동의 대응 평가 : 제도화전략의 예고된 파산

사회자 : 마지막으로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대응에 대해 평가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민주노조운동 진영 역시 이번 야합에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올 해 6월에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가하는 안건이 제출되었을 때 거대 연맹들이 반대를 해서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가 다시 안건이 제출되어 투쟁력의 부족을 이유로 결국 참가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그 와중에 제 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승철 :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현명한지를 가르는 기준의 하나는 자신이 저지른 오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지금의 상황이 지난 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도 민주노총이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참여해서 논의하다가 중간에 나오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노동법 개악을 추진했었습니다. 다만 일방적인 추진의 주체에 한국노총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 당시와 다른 점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대응과 지금의 대응을 보면 많은 차이가 있고 대응의 수위에 있어서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민주노총이 진지한 반성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자 : 지난 8월부터 하중근 열사 투쟁이 계속되어 왔는데 ILO 아·태총회 대응집회, 8·15대회와 함께 한 집회를 제외하고는 포항건설노동자 3천명과 다른 지역의 건설플랜트 노동자 2천명을 합친 5천 명을 넘는 수가 모인 적이 없었습니다. 포항 건설노동자들의 상경투쟁에도 연대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한편 지난 8월 대의원대회가 유례없는 수준의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었고 최근 야합이후 첫 집회였던 노동자대회에서도 3천 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민주노조운동의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철 : 민주노총 내에서 이번 야합에 대한 대응을 철저히 평가해야겠지만 어떤 세력이 잘했고 누가 못했는가라는 식의 잘잘못을 따지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번 대의원대회의 결론은 앞으로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틀에 참가할 경우 대의원대회의 결정으로 한다는 것인데 이는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던 원칙을 반복해서 확인한 데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이 민주노총이 창립된 이후 계속 걸어왔던 제도화전략의 파탄을 예고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의 제도화전략은 강력한 대중투쟁을 통해서 정부의 의사결정구조 안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 내부를 추동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전략의 궁극적인 한계는 그 목표가 실현 될수록 목표를 실현하는 근거인 대중투쟁이 계속해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95년 창립 이후 제도화전략의 길을 끊임없이 달려 결국 합법화를 이루어내었고, 이후 노사정협의틀의 일익을 담당하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이외에 다른 모든 노사쟁점을 자신이 속해 있는 테이블로 끌고 오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대응에서 분명히 드러났듯이 정작 중요한 쟁점에 대해서는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이처럼 제도화전략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해서 민주노총이 내부적으로 분명히 평가하고 노선을 재정립하기 위한 내적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철희 : 올 해 현대자동차를 위시로 한 대형사업장들이 산별노조 전환 투표에서 2/3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산별전환이 결정되었습니다. 저번의 부결과 달리 왜 이번에는 통과되었느냐에 대해 많은 평가가 있겠지만 저는 대형 사업장에서의 의견을 형성하는 지도부들이 과거와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대응 체제, 즉 우리의 진지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노사관계로드맵의 입법 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확산되었고 그 결과 산별전환투표가 성공했다고 봅니다.
또한 복수노조 허용 요구는 민주노총의 탄생의 배경이 되었고 따라서 현재 복수노조의 허용의 요구와 노사관계로드맵 저지는 민주노총에 있어 존립과 함께 하는 상당히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민주노총 스스로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며 따라서 총파업 전술을 포함하여 노사관계로드맵을 진정 막아내기 위한 현실적인 전술에 앞으로의 논의가 집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사태를 낳게 된 민주노총의 제 세력들과 집행부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의 문제제기는 지금 상황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최근 일각에서 그러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 보이는데 이는 너무 패배적인 대응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이승철 :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보니 강조가 되지 않는 듯해서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한국노총에 대한 가능한 가장 강력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누가 보아도 한국노총의 이번 합의는 자조직 이기주의 때문에 천만 노동자를 버린 행태임이 분명하며 이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을 해야 합니다.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투쟁로드맵이 필요한 시점

사회자 : 이후 대응방향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를 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는 노무현 정권 퇴진을 기조로 11월 15일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의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운동주체들의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철희 : 노사관계로드맵처럼 법제도를 일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시도는 한국 노동법의 근본적인 태생의 한계로 인해 앞으로 계속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한국의 노동법은 1952∼3년 전쟁 중에 미군 대령이 미국법과 일본법을 적절히 섞어 만들었고 노동계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자본가나 정부가 보아도 현실사회를 적절히 관장할 수 있는 법체계가 아닙니다. 근대화되지 못한 법체계이다 보니 일괄적으로 법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로드맵의 방식으로 노동법체계를 바꾸려는 시도는 크게 세 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근로시간의 부분인데 이는 얼마 전 주 5일제 도입으로 추진되며 일단락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노사관계 부분이고 남은 하나는 임금체계 문제입니다. 노사관계로드맵이 일단락 된 이후에는 임금체계에 대한 재편이 시도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행 법체계는 연봉제, 성과급제, 직능급제 등 글로벌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미국식의 임금체계를 도입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는 연봉제는 아직은 반쪽자리 연봉제에 불과합니다.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 사이의 역할관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부와 사용자는 노동자들의 단결권, 파업권, 교섭권을 제약하려는 시도와 유예된 과제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는 한편 현재의 임금체계를 대대적으로 변화시키려 할 것입니다. 이 과정이 노동자들에게는 엄청난 노동권의 약화를 불러 올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노동관련 법제도는 자본주의적 합리성을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을 받을 것이고 이에 대해 노동운동이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이번 투쟁은 앞으로 계속될 자본과 정부의 노동관계에 대한 법제도 변경 시도에 대한 민주노조운동의 대응의 첫 번째 관문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입장 표명과 효과적인 전술 운용이 요구됩니다. 9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처럼 조합원의 정서, 투쟁동력 등을 포함하여 투쟁계획이 세심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국회를 어떻게 막느냐 등의 단발적인 투쟁 계획이나 전술만 되풀이 될 경우 이번 투쟁에서 승리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정영섭
사회자 : 입법단계로 넘어간 상황에서 국회에서의 입법 저지 투쟁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투쟁이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승철 : 현대자동차가 경총에 내는 분담금이 월 3억이고 전체 예산의 1/10이라고 합니다. 삼성은 이번 로드맵 논의를 앞두고 경총에 급하게 가입해서 수십억원을 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현대자동차 쪽에서는 상대적으로 불만이 큽니다. 이처럼 사용자 쪽에서도 이견이 많고 이러한 견해차가 갈수록 강화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편 한나라당 안에서 배일도의 경우 이번 합의를 비판하며 배타적 다수대표제를 전제로 복수노조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안을 제출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나라당 당론으로 채택될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이처럼 보수정치권 내에서도 이번 입법안을 둘러싼 여러 가지 행보가 시작되었고 따라서 이번 국회에서 쟁점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고 단병호 의원을 통해서 입법발의를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안은 노사정 합의라는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국민적 설득력을 얻기가 상당히 쉽습니다. 내용 역시 현행 유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혼란을 줄이자는 것이 국회 내에 주요한 분위기로 형성되면 광범한 동의를 얻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년 비정규 법안 관련한 투쟁이 12월 통과 저지라는 단기 처방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번 노사관계로드맵 저지 투쟁은 좀 더 근본적인 투쟁의 상을 가져야 합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민주노총 내에서도 대중적인 투쟁동력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를 더욱 확대해서 국회 밖에서 강력한 대중투쟁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전처럼 의원 9명이 회의실을 잠그고 이번 회기 내 처리를 막는 소극적인 투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로드맵 투쟁에 대한 진보진영의 로드맵이 짜여져야 합니다. 실제 이 투쟁의 주요 주체들이 다 같이 어떤 형태로든 모여서 총체적 계획을 수립하고 공동으로 일정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동안 공세적 투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되었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무언가 되게는 못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는 정도의 힘만 가지고 있는 진보진영의 현실 때문이기도 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총체적 계획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항하기 위한 투쟁로드맵을 수립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사회자 : 지금까지 노사관계로드맵 야합안의 법적 내용과 논리의 문제점과 노동자운동에 미칠 효과, 그리고 이후 대응방향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토론 준비가 미약하여 현실 운동의 복잡다단한 문제들과 현장의 분위기 등을 충분히 고려한 채 보다 구체적인 투쟁방향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올바른 정치적 방향과 세밀한 투쟁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기 위한 민주노조운동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토론에 참여해 주신 두 분 회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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