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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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딛고 일어서 이제는 열 발을 내딛기 위해

멀티데이터시스템 노동조합 |
●벤처기업 최초의 노동조합

'벤처기업 최초 노조결성', '벤처기업 최초 노조 해체위기 몰려', '벤처기업 최초 노조 단체협상 극적 타결' 등의 타이틀과 함께 언론의 작은 부분을 잠시 도배하며 진행되었던 기간의 단체협상 투쟁이 일단락 되었다.
항상 붙어다녔던 '벤처기업 최초 노조'라는 말답게, 지극히 당연한 노조결성과 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조는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게 사실이고 여전히 그 관심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진행중이다. 신생노조라는 점과 조합원들 평균 나이 26살인 젊음을 무기로 삼아 누구 못지않은 열의로 투쟁해왔던 과정을, 이제는 차분하고 치열하게 평가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글을 통해 우리의 투쟁이 남긴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도출하고자 한다. 아울러,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지난 4월호 '자본의 어드벤처, 노동의 길 찾기'라는 제목의 기고가 바로 멀티데이타시스템 노동조합이었음을 밝히는 바이다.


●5개의 산을 넘어

우리 사업장에 대한 소개나 노조의 설립준비부터 창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은 지난 기고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었기에 생략하겠다.
2월 21일 1차 단체교섭을 시작으로 약 80여일에 걸친 결코 쉽지않은 산행을 하여, 마침내 5월 6일(토)에 11차 단체교섭을 끝냈다. 노측의 의견이 거의 반영된 결과로 일괄타결이라는 승리를 일구어내고 그 고지에 노조 깃발을 꽂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는 아주 넘기 힘든 험난한 산들이 여러 개 있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 일으켜 세워주며 넘어왔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그 산들 중에는 가장 험난한 5개의 산이 있었으니 그것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한 고비 한 고비를 다시금 거슬러 가보고자 한다.


첫 번째 고비, 급여체계의 논란

우리 사업장의 정확한 급여체계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병역특례원과 일반사원의 차별이 존재했던 터라, 따로 설명을 하자면 일반사원은 대략 1년 임금총액 900만원이 조금 안되었고, 병역특례원은 800만원을 넘지 못했다. 더 심각한 건 신규채용시 약속한 임금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어긴다는 것이었다. 하기에 급여의 체계를 오히려 노조가 제시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그 와중에 어떠한 급여체계를 만들 것인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핵심논점은 첫째 학력·경력·군 경력에 따라 차등지급을 할 것이냐? 둘째 그에 따른 연봉제냐 월급제냐의 문제였다.
두 번째 문제의 경우에는, 차등지급의 찬반론자 모두가 연봉제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쉽게 월급제로 정리되었다. 연봉제의 경우 각자의 능력에 따라 차등지급을 한다는 것인데, 그 평가의 주체가 노동자가 아니라 철저히 사측에 있다는 것과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협상이 문제라는 것을 모두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 평가과정에 노동조합이 참여를 하고 연봉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임단협에서 정하는 것도, 안으로서 검토가 되었지만 어떤 형태의 수정안이더라도, 노조와해의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동의되었다.

급여 차등지급의 문제는 참으로 진통이 커서 밤새 토론을 해도 결정이 되지 않았다.
차등지급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근속년수나 직책, 가족 등의 반영은 있어야겠으나 직무나 능력별 차등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었고, 차등을 둔다면 차라리 학력별 차등없는 연봉제를 채택하는 것이 더 낫겠다며 그것이 정보통신 벤처의 추세라는 의견도 나왔다.
차등지급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경력을 인정한다는 것이 곧 능력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며, 학력 또한 능력차이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객관적 기준이라는 것이었다. 군 경력도 남녀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식으로건 군복무기간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국가에 의해서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자본가가 그 보상의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국에는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민노총 서울본부 상담부장님께 상의를 드린 결과, 정리가 되었다. 월급제를 기본으로 하고 기존의 호봉체계에서 학력별 차등을 3호봉, 군 경력을 1호봉 인정하여 학력, 군 경력별 차등을 줄이는 안으로 정리가 되었으며, 이것이 우리의 타결된 단협안의 내용이다.

이 과정을 되짚어보면 결국 능력=경력=학력별로 임금이 차등지급되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능력별 차등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개인화, 파편화, 경쟁심화를 받아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이를 수용하지 않기 위한 우리의 논의는 소중했었지만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급여체계를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몇몇 벤처에서 도입하고 있는 학력 차등없는 연봉제라는 것을 살펴볼 때, (우리 노조가 그것에 혹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신규채용시의 학력 차등을 없앤 이유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이고, 능력이라는 미명하에 철저히 개별화하려는 자본의 논리이지 결코 노동의 논리는 아니라는 점에서 정리가 되는 듯하다.


두 번째 고비, 임금협상이 마무리되고

임금문제를 가장 먼저 부분타결지어 실행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4차 단체협상에서 대졸 군필 1년차의 경우 1년 총액기준(퇴직금 미포함) 1500만원, 법정수당지급 등의 내용으로 대부분 합의되었다.
이것은 노측이 얘기하던 고통분담이 안되는 상황, 투자받은 자본이 많다는 점, 동종업계 표준급여수준은 되어야 된다는 주장을 사측에서 반박할 논거가 충분히 없었기에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기간의 준법투쟁 등으로 한껏 달아올랐던 투쟁의 열기가 점점 식어가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노조설립의 취지와 배경을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저히 낮은 임금에 대한 인상이 과연 우리 목표의 전부였냐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한 조합원은 노조 설립당시 자신의 바램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제일 바라는 것은 사장이 우리를 동등한 인격체로 봐주는 거예요."
단지 임금만 오르고 다른 부분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면 진정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실질적인 노조 인정, 이것이 곧 노동자가 회사의 사장뿐만 아니라 동등한 주인이라는 것이고 그에 따라 조합활동, 인사, 징계, 해고, 고용안정, 복지 등에 노조가 참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점점 노동자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투쟁의 의지들을 모아내어 우리 노측의 안대로 거의 대부분의 요구를 타결지었다.

주요한 성과로는 노동조합 활동 인정, 비정규직 채용에 대한 제어, 회사 분할, 합병, 양도, 정리해산, 이전, 업종전환시 노측의 참여라는 점이었다. 성과 중 두번째와 세번째 문제는 벤처의 미래에 대한 위기를 노동자의 시각으로 바라보아 반영된 것이었다.
아쉬웠던 점은 직업병 인정 등과 관련된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 번째 고비, 공든 탑 무너지는가

임금협상이 마무리되고 난 후, 대표이사는 회사의 임원진들에게 교섭에 대한 전체위임을 하고 교섭위원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성으로 교섭이 계속되어 8차 교섭을 마지막으로 단협이 타결되었고 마지막으로 도장찍는 일만 남았다. 서로 수고했다며 교섭위원으로 참여했던 임원진들과 함께 회식까지 한 상태였다. 그러나 서초동에서 테헤란밸리로 회사의 이전을 거치면서, 점점 도장찍는 일이 미뤄지더니 급기야 사장이 수정안을 갖고 나왔다. 그 내용은 거의 교섭을 원점으로 돌리는 수준이었다.
우선 사측에 항의하고, 노조전원 대책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이견이 생겼다. 사장의 기만적 행동에는 분노하지만 그 대응방식에서, 결국은 협상을 결렬하고 파업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다시 사장을 자리에 앉혀놓고 처음부터 다시 협상에 임할 것이냐가 문제였다.

논점이 파업이냐 아니냐로 흐르다보니 다들 극단의 경우를 상정해놓고 이야기했다. 파업을 한다는 것이 아주 극단적으로 회사문을 닫게 해버리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파업결의를 하고, 그 과정에서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조정신청을 하고, 조정위원회가 열리고, 쟁의신고를 하는 것 그렇게 파업에 임하는 것이 우리 노동자들의 하나뿐인 무기인 단결된 힘을 보임으로써 사측을 무릎꿇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회사규모에서의 파업= 문을 닫는 것이다'라는 우려가 있었고 특히나 병역특례자가 조합원의 대부분이라는 점이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또다시 아주 쉽게 풀렸다. 민주노총 상담부장님과의 노조집행부 회의를 파업진행중인 서울대 시설노조 파업장에서 하기로 하고 지지방문을 겸하게 되었다. 처음 대면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목이 다 쉬어버리고 힘이 너무도 빠져버린 모습이었지만, 결의에 찬 모습과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에 우리는 아무 말할 수가 없었다.

그 후에 나타나신 민주노총 최고령 노조위원장님은 너무도 당당한 모습으로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해오셨다. 주 84시간 노동에 시급 1000원이 웬말이냐는 구호가 적힌 스티커를 보고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당신도 노동자임을 당당하게 얘기하며 파업투쟁을 하고 계신데, 젊디젊은 것들이 집안싸움이나 하고 앉아있다는 게 모두에게 뼈아픈 반성으로 다가왔다. 결국 8차의 원래 단협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협상결렬을 선언하기로 하고 두차례 정도 다시 단협에 임하기로 했다. 다시 한 번 그때의 적확한 판단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민주노총 서울본부 강 용범 상담부장님께 감사드린다.


네 번째 고비, 병역특례업체 취소신청

9, 10차의 단협에서는 사장뿐만 아니라, 믿었던 사측 교섭위원들마저도 발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당연히 우리는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언론공개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4월 27일 조정신청을 내고 그 다음날 28일(금) 퇴근무렵 사장은 급기야, 경악을 금치 못할 발표를 했다. "병역특례업체 취소 신청공문을 오늘 냈다.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 아마 군대에 가지 않으려면 다른 회사로 옮겨야 될테니, 나갈 때까지 열심히 일해달라는 말은 못하겠고 그냥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라는 말이었다.

결국은 위원장이나 부위원장의 집행부해고도 아니라, 특례원 9명과 특례대기자 1명, 총10명이나 되는 노조원에 대해 해고 아닌 해고를 해버린 것이었다. 우리의 가장 약한 고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사장이 마침내 그 카드를 꺼내놓은 것이다.
노조원들은 분노할 겨를도 없이, 익히 알고있는 병무행정의 비합리성과 특히 병역특례자의 보호장치가 너무도 미흡한 점을 걱정했다. 집행부는 각종 사회단체들을 포함하여 모든 언론에 이 사실을 전면적으로 공개해나가고, 사측의 병역특례업체취소신청은 명백히 부당노동행위임을 규정하여 법적 대응과 함께 파업준비에 돌입했다.

그 당시, 조정신청기간이 얼마나 노동자들에게 악법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때가 노조원들뿐만 아니라 집행부, 임원진조차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우려했던 바가 당장 현실로 나타나자 여러 각도로 다들 힘들어했지만, 각종 사회단체, 노동자들의 지지와 언론의 압박, 이러한 연대에 힘을 받은 우리 노조의 흔들림 없는 결연한 투쟁에 사장은 쉽게 손을 들었다.
결국 5월 4일 병역특례업체취소신청을 철회하였고 5월 6일(토) 11차 단협을 마지막으로 진정 단체교섭이 타결되었다. 물론, 우리의 안이 거의 다 받아들여졌고 당연히 노측도 조정신청을 취소하였다.


다섯 번째 고비, 주주들의 비난

단협이 체결되기까지의 과정 중에는 변수가 하나 발생했다. 다름 아닌 주주들이었다. 언론을 통해 알게된 주주들이 일제히 홈페이지의 주주게시판과 전화를 통해 빗발치게 항의했다. 처음에는 노조원들에게서 상황설명을 듣고 사측의 병역특례업체 취소신청을 비난하며 주주 위임장을 써주는 등 노조 편에 선 중재자를 자처하더니, 사장과 대화하고 난 후에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구체적으로는 주식수 3위의 대주주와 '멀티사랑'이라는 소액주주대표가 찾아와서, 사측은 병역특례업체취소를 철회하는 대신 노측은 조정신청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강하게 해왔다.

주주들은 당장의 코스닥 등록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여 자신의 이익에 철저히 기반해 상식을 넘는 말을 마구 쏟아냈다. 서열 3위의 주주는 술과 식사대접으로 노조를 회유하려는가 하면, 조정신청을 철회하지 않으려면 밤길 조심하라고 자기가 밤무대 운영하는 사람이라며 겁주기까지 했다.
형식적으로는 주주가 중재한 모습이 되어 단체교섭을 승리적으로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감에 도취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남아있었던 게 사실이다. 단협이 타결되고 난 후에도 주주들의 비난은 그칠 줄 몰랐다. 주주게시판을 통해 올려지는 글들은 노조측에 대한 비난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위원장이나 부위원장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여 해고하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특례원들 전원 군대 보내버리라는 등 장외시장에서의 주식값이 떨어지자 화살을 전부 노측에 돌렸다.
우리는 적극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회사가 원래 5월중 코스닥 예비심사를 받기로 되어있었으나, 형식상 착오가 생겨 등록이 물 건너가자 지금은 다시 사측에게로 화살이 돌려진 상태이다.
소액주주건 대주주건 상관없이 그들은 진정 회사의 발전을 위해 투자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단기적 시세차익만을 올리기 위한 투기성 자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오히려 사장보다도 더 악랄한 그 모습에, 반노동자적 존재임을 명확히 하고 그들과의 또다른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더 높은 산들이

이제껏 거쳐온 5개의 산을 얼마나 힘겹게 넘어왔는지 다시금 돌아다보았다. 산을 넘고나니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평원이 아닌, 여전히 더 높고 험난한 산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 높거나 험난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감이 붙었고 팔과 다리가 단단해졌기에 이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벤처업체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직면해 있던 현실과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은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평가해보면 우리의 진의가 그다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했다고 생각되기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려 한다.


좋은 벤처, 나쁜 벤처?

언론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우리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현실은 그대로 공개되었다. 하지만 반응은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한 사업장의 특수한 열악함, 파렴치한 악덕기업주, 진정한 벤처가 아니라는 등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정부, 언론, 벤처전도사들이 떠들어대는 벤처이데올로기는 참으로 변화무쌍해 보인다.
1998년 12월 30일 개정된「벤처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에서 벤처기업의 개념을 벤처캐피탈 투자기업, 연구개발 투자기업, 특허기술(또는 신기술)개발기업, 기술평가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2000년 3월말 벤처기업의 숫자는 6000개를 넘어섰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벤처 = IT 전반이라는 등식이 한국사회에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999년 10월 중소기업청에서 발간한 '벤처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톡옵션제를 도입하고 있는 벤처기업은 전체 벤처기업의 8.3%에 지나지 않는다. 벤처기업의 평균임금은 일반중소기업의 평균임금보다 낮은 대기업의 60%에 해당하고, 이직률은 대기업의 17배에 달한다는 보고가 나온 바 있다. 결코 우리 업체의 급여수준이 특수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가?

IT 업계를 업종별로 나누어보면 대략 SI, Application, Internet Contents Service & EC, Multimedia & Game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이 중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SI 와 인터넷 컨텐츠 서비스 & 전자상거래인데, 인터넷 컨텐츠 서비스와 전자상거래를 구축해주는 것이 IT 장밋빛 미래의 핵심인 e-business에서 '청바지 장사'로 한창 주목받는 웹 SI라는 것이다. SI는 쉽게 얘기해서 용역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것이 전통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경쟁이 심하다보니 짧은 시간과 낮은 가격이 관행이 되어 노동자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초과노동을 강요한다. 게다가 부실시공이라는 문제는 SI 도 당연히 벗어날 수가 없이, 계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다. 특히나 이것은 지극히 노동집약적이고 숙련도 필요없는 생노가다이다.

IMF 이후 실업정책의 일환으로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신규인력들이 바로 이 SI 인력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서비스를 하는, 앞다퉈 골드러시라는 이름하에 우후죽순 창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넷 컨텐츠 서비스와 전자상거래를 보자.
이쪽은 훨씬 더 심각하다. 전자의 경우 광고만으로 수익을 올릴 수가 없기에, 안정된 수익구조 마련을 위해 전자상거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는 올해 안에 B2C 업체 80%가 정리될 것이라고 한다. 아마존도 올해 망할 기업의 순위에 올랐다. 인원을 대폭 감소하였다고 한다.
흑자 보는 기업이 있긴 한 건가?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1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정리되는 기업의 노동자들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고용불안만이 증폭될 따름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벤처거품론을 들고나와 진정한 벤처는 무엇인가 라는 벤처의 진의를 가려보자고 한다. '가치있는 신기술을 갖고 있는 벤처가 진짜'라며 이제는 그 곳으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재숙련에 의해서,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노동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인가? 어찌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환경이 있단 말인가? 시간이 생명인 이 곳에서 위와 같은 환경은 꿈에 불과하다. 자유 출퇴근이라는 것도 역시나 더 많은 착취를 위한 그럴싸한 제도에 불과하다.

이곳의 기술생명은 너무도 짧다. 하기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 매진해야 되고 미래를 위한 기술이 아닌, 당장의 실무를 위한 기술학습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야근을 즐기며 개인에 대한 투자를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실리콘밸리에는 흰머리가 없다고 한다.연봉제를 많이 채택하는 이 곳에서는 3년차 정도의 대리가 가장 대우가 좋고, 연봉은 오히려 그 이상의 직급보다 높은 것이 당연하다. 이곳에서의 노동자의 생명은 너무도 짧다.
다시 한 번 묻겠다. "과연 착취받고 학대받는 21세기의 전태일인가, 아니면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노동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인가?"


정보통신의 상업화에 대한 견제


인터넷이 처음에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정보 공유'라는 것에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들 각기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공개해 놓는다. 내가 하나 얻었으면, 그만큼 또 내놓는다. 이러한 초기 인터넷의 장점과 가능성들은 점차 자본주의의 상업화에 무기력하게 잠식당하고 있다. 마치 신대륙을 발견하여 토착민들을 다 내쫓았듯이 인터넷이라는 꿈과 가능성이 꿈틀대던 영토는 고사하여 피폐해져가고 있다.
인터넷 도메인에서는 유명등록상표를 들고 깃발을 꽂고 내 땅이라 우기고 있다. BM(Business Model) 특허라는 깃발을 꽂고 내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GNU & Linux 의 Copyleft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정부주도하에 Linux를 외쳐댄다. Linux 열풍은 불지만 소스공개하는 업체는 한군데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보통신부 주관하에 GNU의 리처드 스톨만씨가 초청되어 Copyleft에 대해서 강연을 한단다.

한쪽에서는 운동권출신 인사들이 벤처업체 사장이 되었다고 하여 우리를 당혹케 한다. 그들의 이야기들은 벤처전도사들이 말하는, 노자간의 대립 따위는 없다는 이야기와 틀린 것이 없다. 수익의 상당부분을 다른 운동단체들에 기부하는 것과, 일반벤처기업이 사회에 얼마 기부하는 것과 무엇이 그토록 다른가? 예전 어느 운동단체들이 조직자금 마련을 위해 피라미드에 조직적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나, 주식에 투자를 했다는 것과 무엇이 그토록 다르단 말인가?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보면 벤처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 실태조사나 연구가 중요한 반면, 정보 독점과 상업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동안 간과되어왔고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졌다. 정보운동이 담당해 왔던 영역에 대해서, 실제 생산을 책임지는 노동자들이 나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시기인 듯 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식이 착취당하는 것을 방어하고 투쟁해야한다.


●평원이 보이지 않더라도

결국 벤처이데올로기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지배와 착취의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며 분쇄해야 될 명확한 대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투쟁을 통해 확인하였다. 벤처 최초 노동조합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우리들은 계속해서 산을 넘을 것이며 '정보통신 벤처노동자의 새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체 노동자들과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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