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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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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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게임인줄 알고....

고지훈 |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
한국 배경의 비행 시뮬레이션, F-16 Aggressor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놀이를 꼽자면 단연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PC게임일 것이다. 스타크래프트가 응용하고 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애초에 군사적 목적을 위해 개발되고 이용되었다고 하는데, PC가 광범하게 보급되면서 이제 주로 게임의 형태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군사용으로 개발되었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여전히 컴퓨터 게임에는 군사전략적 요소가 많다.

전투(혹은 전쟁)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형태인 전략 시뮬레이션은 고전적인 게임형태인 액션-슈팅 장르를 차츰 압도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戰場의 전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개별 전투행위의 사실성보다는 전체적인 전략의 구상 및 기획이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스타크래프트의 등장과 함께 게임시장의 주류로 떠오른 전략 시뮬레이션은 이제 컴퓨터 성능의 진전과 게임 제조회사의 대규모 투자로, 점차 野戰에서 벌어지는 전투행위가 보여주는 사실성까지 더해가고 있다.

머지않아 전쟁 전체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게임이 개발되리라고 한다. 한편, 사실성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임장르를 든다면 단연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게임매니아들 사이에서도 하드코어 장르로 불리우는 비행 시뮬레이션은 파일럿이 되기 힘든만큼의 인내와 노력을 게임매니아에게 요구한다. 이 가운데에서도 미국의 한 비행 시뮬레이션 회사가 개발했다는 'F-16 Aggressor'라는 게임은 단연 우리의 시선을 끈다. 그 이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즉 한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인터페이스(interface)의 사실성은 물론, 비행 時 조종사가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상황들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는 고성능그래픽엔진의 효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미 공군에서는 이 게임을 파일럿을 위한 공식 교육프로그램에 도입했다고 한다. 개발과정에서 전투기 제조회사와 공군의 협조를 얻었음은 물론이다. 한데, 1999년 초에 출시된 이 게임은 한국에서는 판매가 금지되었다. 게임의 배경에는 대표적 분쟁지역으로 이라크 등과 함께 한국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뉴스에 의하면 한국 공군 역시 이 게임을 파일럿 훈련용으로 도입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처럼 훌륭한 교재가 다시 있을까?

어쨌건 상업용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을 토대로 남한과 북한의 지형을 재현해낸 이 게임을, 멋모르는 남한의 청소년들이 즐길 생각을 했다면, 수입금지 조치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 게임의 전작으로 스토리라인에서는 유사했던 'iF-16'이 1997년에 수입허가 되었던 점과 비교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역사는 진보하나 보다. 그러나....


게임은 계속되어야 한다?

걸프전 당시, 미군의 오폭 문제는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었다. 공식적인 결과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지만(아마도 이와 관련한 서류가 공개되려면 앞으로 20~3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오폭에 관한 한, 미국의 주장에 손들어줄 이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폭은 미군이 참전하거나 혹은 교전행위는 없었지만, 미군이 주둔했던 모든 지역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고 또 사실로 증명되어 왔기 때문이다. 걸프전 이전에도 이후에도 미국은 자신이 참여한 전쟁에서, 정글로 인해 폭격이 별 효력을 보지 못했던 베트남전을 제외한다면 압도적인 공군력을 바탕으로 승리했었다. 유럽 전장에서의 승기도 독일 공군을 제압하면서부터였고, 태평양 전쟁 역시 B-29라는 거대한 장거리 폭격기의 개발에 힘입은 것이었다.

일본 역시 원자폭탄 두 방에 항복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동경을 비롯한 일본의 대도시는 원폭 투하 이전에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원폭 희생자보다 훨씬 더 많은 민간인이 재래식 폭탄으로 희생당한 상태였다. 어쨌든 참전한 모든 전쟁이 본질상 '聖戰'-그것이 파쇼를 분쇄하기 위해서이든, 공산주의라는 인류 공통의 적을 소탕하기 위해서이든 혹은 인종청소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든-이라는 도덕적 정당성을 갖고있던 미군에게 '오폭'이란 그야말로 해프닝이거나 장 담그는데 끼어드는 구더기같은 존재였다. 누구 말마따나 그래도 '게임'은 계속되어야 했다.


'독도오폭사건'을 기억하십니까?

1950년의 한국전쟁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전 당시 북한이 유엔에 제소한 대부분의 내용은 바로 미군의 민간인 혹은 중립기구(병원이나 민간시설들)에 대한 폭격의 부당성을 호소한 것이었다. 물론 화학무기사용에 관한 것도 있었지만. 그러나 미 공군의 이 빛나는 오폭의 역사는 이제는 끝나버린 냉전시대의 산물만은 아니다. 또 戰時라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그리고 전쟁 중이 아닌 평시에도 오폭은 미군의 상징처럼 되었다.
1999년 5월 7일, 코소보의 인종청소 종식을 위해서 개입한 NATO의 폭격기가 중국대사관을 오폭한 사건이 발생했다. 3명이 사망한 이 사건으로 한동안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냉각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5월 중순,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하지만 지난 50년간 지속되어왔던 문제가 다시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매향리 미 공군 폭격연습장의 오폭사건으로 새삼 SOFA개정문제와 주한미군의 지위가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특히 총선 이후 약진하고 있는 시민단체를 필두로 제기된 많은 비판은 1980년대 대학가로 되돌아간 듯 과격하기도 하다. 민감한 이 소재에 대해서 우리 정부라고 가만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먼저 정부는 그처럼 '국가간의 동등한 관계를 위한' 시민의 소청운동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긋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반대 분위기가 급격히 형성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한미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가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 회견, 5월 18일)

미국은 실수에 대해 미안하다는, 약간은 서먹한 미소와 실수를 만회해줄 것이라고 믿는 약간의 달러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공동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소파 개정협상을 준비한다지만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5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문제인데 새삼스러우랴. 전통적 우호관계를 강조했으니, 얼마나 우호적인 전통을 가졌는지 과거로 한번 돌아가 보자.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1948년 6월 8일자 경향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6월 8일 오전 12시경 울릉도 부근 독도에서 미역을 따고 있던 어선 15척이 난데없는 비행기의 폭격을 받었다. 정체모를 비행기 9대가 날아들어 투탄과 기총사격을 감행하여 발동선 등 11척이 침몰하고 사망 9명에 행방불명 5명, 중상자 2명, 경상자 8명을 내었으며 손해는 약 5백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최초의 기사가 나간 이후, 사건 처리과정에서 보이는 미군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가 사건 자체보다 더 격렬하게 비판되었던 소위 '독도오폭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태평양 미 항공대 소속 B-29 폭격기가 한가로이 조업 중이던 남한 어선을 향해 폭격연습을 하였다는 것이다. 애초엔 '정체모를 모국의 비행기'로 알려졌으나, 곧 미군의 공군기였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폭격 뿐 아니라 비행기에서 기총소사까지 있었다고 주장하였지만, 끝내 이 미군의 비행기가 고공폭격을 전문으로 하는 B-29 뿐이었는지는 알져지지 않았다.

설사 B-29 뿐만 아니라 소형전투기들이 기총소사를 했다고 치자. 그리고 암초가 아니라 어선임을 알면서도 그랬다고 치자. 그래도 우린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아직 항복하지 않은 일본 해군의 잔당들이 독도로 숨어들어 저항하는 것으로 판단했었다고. 어쨌건 희생자를 내서야 비로소 대중에 알려진 독도에 대한 오폭사건은 비단 47년 6월 8일뿐 아니라 46년 4월에도 한차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보고 배웠는지, 김종필이 한일회담때 일본 외상에게 양국 수교에 걸림돌이 되고 있던 독도를 폭파시켜 버리자고 제안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어쨌건 기구한 팔자를 타고 태어난 섬인가 보다. 태생부터 화산섬이었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컴퓨터 게임의 배경화면이 되었나

다시 오폭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독도 오폭사건 당시 미군의 변명은 폭격훈련 30분전 정찰기가 이미 독도 상공을 선회하면서 정찰보고를 한 바 있는데, 당시 미역을 따고있던 15척의 어선에 대해 '해상에 돌출한 회색암'으로 오인했다고 한다. 오폭을 했던 B-29 편대는 오키나와에 주둔해 있던 미 극동항공대 소속으로 밝혀졌는데, 남한을 점령하고 있던 미 제24군단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한의 주한미군정으로서는 통제권 밖에 있는 부대였다. 동경의 태평양 사령부에서는 관련 조종사들을 군법회의에 넘기고, 피해자 처리문제는 당시 군사점령에서 발생하는 민간인 피해를 처리하던 '소청위원회'의 조사와 간단한 피해보상으로 해결되었다.

오폭사건의 발생과 처리과정에서 당시 남한 정치세력들의 가장 큰 불만은 바로 '무성의한' 군정당국의 태도였다. 당시 군정당국은 통제권 밖에 있는 부대에 의한 피해였으므로, 사건의 진상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다. 극동사령부에서 전해오는 결과만을 통보할 뿐이었는데, 사과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당시의 신문을 아무리 뒤져봐도 군정 당국자가 진심으로 오폭에 대해 사과하거나, 유감을 표하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정치인들은 고사하고 오죽했으면 친일-친미적 성향의 인물이었던 李弘鍾조차 미군에 대해 '섭섭하다'고 토로할 정도였을까.

이처럼 섭섭하다, 혹은 때려쥑일 늠들이란 비난에 대해 군정 책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 암만 애써도 죽은 사람이 살아오지 않으니, 미군에 대한 증오감을 도발시키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고 오히려 은근히 경고까지 한다. 결국 사건은 한국인이 참여한 공동 조사위원회의 구성없이 일방적인 미군의 발표와 사망자 1인당 평균 30만원 정도의 보상이 이루어지는 선에서 해결되고 말았다.

이후로도 주한미군이 관련된 허다한 오폭 혹은 오인사살 등으로 한국인들이 희생되었지만, 범인을 한국법정에 세운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었으며, 아직도 미 정부는 공식적인 사과 혹은 성명조차 없다. 소국의 서러움인가. 중국대사관에 대한 오폭은 비록 전시였지만 클린턴이 나서서 해명했는데, 평시에 그것도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이 희생당하는 데도 미국무부나, 백악관은 고사하고 주한미군 사령관의 공식사과같은 것조차 없다.

따지고 보면 폭격훈련같은 걸 하기에는 남한보다 더 좋은 나라가 없겠다. 한판의 컴퓨터게임과 다를게 뭐 있을까? 비행 도중 이상한 건물이나 정체불명의 어선을 폭격했더라도,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확인불명의 무리에게 기총소사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게임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오폭이었는지 아니면 조심성이 약간만 있었더라면 피할 수 있는 '어쩔 수 있었던' 오폭이었는지 알 길이란 없다. 첨단기술 덕택에 후세인이 벙커에서 숙변을 보는지 혈변을 보는지도 알 수 있다는 미군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이 파일럿들이, 주한미군이, 아니 한국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 미 정부가 남한의 주민이나 남한의 국토를 컴퓨터 게임에 나오는 배경화면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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