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11.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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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A에 대한 민중의 저항

[기획연재]FTA에 맞선 세계의 사회운동①

구스타보 코다스* | 브라질노총 국제국장 | <번역>류미경 | 정책편집국장
*브라질노총(CUT, Central Unica de los Trabajadores) 국제국장으로, 2002년~2005년에는 미주사회동맹(Hemispherical Social Alliance) 사무국에서 활동했다.


1990년대 초반 협상이 시작된 자유무역협정(FTA)인 ‘전미자유무역지대’(FTAA, Free Trade Area of the Americas)는 수 년 전만해도 2005년에 발효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2005년 1월까지도 이 협정이 발효되었음을 감지할 수 있는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글에서는 미국 정부가 미주지역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굳건히 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제안한 이 협정이 실패에 이르게 된 정치적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덧붙여 미 제국주의가 자신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언급하려고 한다.

제국주의의 “뒷마당”

1920년대 미국의 먼로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딴 ‘먼로독트린’을 주창했다.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아메리카는 아메리카인을 위한 것”이고 미국이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들을 “방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선언의 영향으로 라틴아메리카는 점차 미 제국주의의 헤게모니와 지배력아래 놓인 지역으로 탈바꿈하였다.
아버지 부시 정부는 1991년 이른바 ‘미주대륙을 위한 구상’(Enterprise for the Americas Initiative)이라는 계획을 주창했고, 이는 1994년 클린턴 정부 하에서 (쿠바를 제외하고) 미주대륙 전체 34개국을 아우르는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하자는 제안으로 구체화된다. 이는 1994년 1월, 캐나다, 미국, 멕시코 3개국 간에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에 뒤이은 것이다.
미국의 분명한 목적은 미주 대륙 전체를 미국 소재 초국적기업의 경제적 무대로 탈바꿈시키는 것과 나머지 나라의 경제를 자신의 부속품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FTAA는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쓰인 용어들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으며, 몇몇 부분은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더욱 심각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 협정을 이른바 “나프타 플러스”라고 한다.)

미 제국주의의 황금기

이 모든 것은 미주대륙에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 절정에 이르던 중에 일어났다. 그러므로 FTAA는 각 나라마다 선거를 통해 등장한 보수주의 정부가 초국적인 차원으로 연계를 굳건히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지역적 차원에서,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좌파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퇴조를 겪고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는 단지 관료적·교조적 공산주의와 관련된 정치적 경향의 심각한 위험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는 모든 좌파와 사회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는 (신자유주의의에 대한) “대안은 없다”, 그리고 “역사적 목표”(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인류 발전의 종착지)라는 담론의 조건을 창출했다.
라틴아메리카 각국에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우리의 사회에는 심각한 변화가 촉발되었다. 국가는 시장 앞에서 더욱 약화되었고, [투쟁을 통해] 쟁취한 사회적 권리는 파괴되었으며, 노동자 중 많은 부분은 비정규직, 혹은 실업 상태로 내몰렸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는 공격을 받았고, 점차 많은 사회 부문(여성, 청년)은 장시간·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며 노동권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좌파의 전통적인 조직의 사회적 기반이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이 지구상의 어떤 장소에도 무장 개입을 할 수 있음을 선언하고, 첫 번째로 대 이라크 전쟁을 개시함으로써 “단극(unipolar)”의 세계가 수립되었던 것도 바로 그 때다.
말하자면, FTAA는 전 세계에서 (그 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우선적으로) 미 제국주의 헤게모니의 통제 불가능한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저항의 시작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세 당사국의 사회운동 및 노동조합은 1990년대 초반 이 협정 체결 위협에 반대하여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첫째,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회의 모든 부문이 결집하여 전국적이고 광범위한 연합을 형성한다. 둘째, 세 나라 운동들의 활동을 접합하여 이 협정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인민들 사이의 연대를 모색한다. 이는 남반구(멕시코)와 북반구(미국, 캐나다)의 사회운동들 간의 동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FTAA 체결을 위한 협상이 개시될 당시에도 사회운동들을 고무하는 역할을 했고, 협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나라의 사회운동과 노동조합 연맹들은 진행 중인 협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광범위한 연대조직을 건설할 것을 결정했다.
34개국 정상들이 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해 정상회의를 개최했을 때, 이를 비판하는 첫 번째 대중적인 성명서를 발표했고, 모든 나라의 사회운동, 농민조직, 노동조합, 여성운동, 공동체조직, 청년조직, 교회 내의 진보적 분파가 결집하여 <미주사회동맹>(Hemispherical Social Alliance)이라는 연대조직을 건설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많은 나라에서 FTAA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광범위한 사회·정치 세력의 재 결집이 있었는데, 1492년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라틴아메리카를 침략·정복한 이후, 이에 맞선 원주민과 인민들이 투쟁해온 지 500년이 된 1992년에 열린 ‘저항의 500년’ 캠페인이 그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500년’동안의 투쟁이 그 이후에도 지속될 투쟁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두 번째는 1994년 1월 멕시코 남부 치아빠스 주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반대하여 발발했던 원주민들의 봉기였다. 이 협정은 전 대륙에 걸쳐 영향을 미쳤지만, 이 “신자유주의적 근대성”의 주요한 상징에 대한 저항은 사회적·정치적으로 가장 주변화되어 가장 많은 공격을 받는 세력인 원주민들이 앞장섰다. 1990년대 초반의 이러한 투쟁은 다음과 같은 정치적 교훈을 남겼다. 첫째, 신자유주가 정점을 이루는 역사적 순간에, 대중들의 저항은 더욱 다양한 부문이 결집하는 광범위한 연대조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특히 종종 자기중심적 특성을 갖는 노동조합운동이 중요하게 사고해야 할 원칙이다.) 둘째, 더욱 주변화된 사회 부문(원주민, 빈농, 흑인, 농촌 정착민 등)이 이러한 정치적 연합의 핵심적 요소로 결합되어야 한다. 또한 이들의 요구는 좌파들이 “사회 변혁의 주체”로 여겼던 전통적인 사회부문의 요구만큼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2001년 정상회의

2001년 4월 캐나다 퀘벡에서 미주지역 각국의 정상들이 FTAA 건설을 논의하기 위해 정상회의를 진행하는 것에 즈음하여 2차 민중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민중 정상회의에서는 FTAA에 맞선 투쟁을 강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을 결의했다. 첫째,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한다는 점에 합의한다. 즉, 이 협정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FTAA는 우리 민중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협정이 아니며, 일부 조항이 문제가 아니라 협정 전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FTAA에 대한 “대중적 의견”을 모아내는 전 대륙적 캠페인을 개시한다(민중이 FTAA에 대한 찬반여부를 밝히는 투표(plebiscite)의 형식으로). 또한 각국의 정부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협상내용에 대한 시민사회의 동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협상을 지속해왔다는 점에 문제제기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시민사회, “대중”은 협상 내용에 전혀 접근할 수 없었는데, 기업들은 이에 접근하여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정부와 의견을 조율할 수 있었다. 즉, 정부는 각 국의 국민들에게 이 협정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고, 협상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의견수렴을 전혀 거치지 않은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의회조차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 국에서 전 대륙차원의 대중적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자는 호소는 진행되고 있는 협상에 대해 대중적인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고,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각국 정부의 태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었다.

투쟁의 새로운 국면

퀘벡이서 이루어진 두 가지 사항에 대한 결의로 운동은 도약했다. 2001년 9월에는 <미주사회동맹>의 대륙위원회는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에서 회합을 가졌다. 이를 통해 퀘벡 민중정상회의의 결의사항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수립하고자 했다. 2002년 1월에는 2차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이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 모였던 당시, ‘FTAA에 반대하는 전 대륙적 투쟁(Campa?a Continental de Lucha contra ALCA)’으로 알려진 연대조직의 첫 번째 회합이 열렸다.
기본적인 입장은 34개 각 국마다 하나의 연대조직을 결성하여 민중들이 FTAA에 대한 찬반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인 “대중적 의견수렴”을 조직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의 입장을 둘러싸고 다양한 난제들이 제기되었다.
첫째, 이러한 의견수렴을 위해 사회운동들은 FTAA라는 문제를 기존의 전통적인 사회부문을 뛰어넘는 더욱 다양한 부문들과 토론해야 했다. 각 단체의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전체 민중과 이 문제를 두고 토론해야 했다.
둘째, 대중적 의견수렴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FTAA에 관한 정보를 대중에게 제공해야 했는데, 각 국 정부는 이 당시까지도 이를 거부했다.
셋째,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광범위한 캠페인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투사, 정교한 정보 자료, 정치적 태세를 갖추어야 하며, 대중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세미나를 개최해야 하고, 선전 도구(팜플렛, 라디오 프로그램 등)를 개발해야 한다.
즉, 퀘벡 결의를 바탕으로 FTAA에 대항하는 정치적 행동과 결집의 과정에서 큰 정치적 도약이 있었다. 퀘벡, 플로리아폴리스, 포르투알레그레의 결의는 전 대륙에 걸쳐 새로운 정치적 형세를 촉발시켰다. FTAA라는 문제를 놓고 광범위한 부문이 참여하는 가운데 우파 세력( FTAA에 대해 하나같이 찬성하는 기업들, 매스미디어, 정부)과 대중적인 논쟁을 벌였다.
뒤이어 대륙차원에서 펼쳐진 캠페인의 결합을 위해, ‘FTAA에 반대하는 투쟁의 대륙적 회합’을 쿠바 아바나에서 매년 개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각 국에서 약 1,000명 정도가 참석하는 가운데, 공동의 전략을 평가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 상황의 변화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정치 상황 속에서 FTAA에 반대하는 사회적 결집의 새로운 국면이 형성되었다. 2001년 4월, 미주정상회의에서는 베네수엘라 정상이 FTAA를 문제 삼으며 수줍고 고립된 형태로 “불협화음”을 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1998년 대통령선거에서 우고 차베스가 승리하고서부터 오늘날 “볼리바르 혁명”으로 널리 알려진 과정을 발전시켜왔고, 이는 제국주의 정치에 저항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나라에서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정치적 배경이 형성되었다.
(1) 민중들의 투쟁이 부패한 신자유주의 정권을 권좌에서 몰아냈다.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에콰도르.)
(2) 토지개혁을 촉구하고 사유화에 반대하며, 원주민들의 권리를 방어하고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의 기운이 상승했다.(볼리비아, 파라과이, 에콰도르, 멕시코, 엘살바도르, 페루, 우루과이 등.)
(3)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세력이 당선되었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이들은 다양한 수준으로 쿠바와 동맹을 형성했다.)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위기

2002년~2003년에 진행된 FTAA 반대 투쟁은 이 협정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확장했고, 각국 정부에 대한 대중적·정치적 압력을 강화했다.
몇몇 나라(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새로운 협상가들이 등장했다. 베네수엘라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결국, 각국 정부는 이 협상의 “초안”을 공개했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사회운동들의 이러한 각 국 정부의 입장을 직접 받아 공식적인 회합에서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지를 협상가들과 논의했다.
거리에서의 민중들의 투쟁 및 대중적인 의견(대륙차원의 캠페인)과 미국이 강요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각국 정부의 협상가들의 결합으로, 결국 협상은 마비되었다.
미주대륙에 대한 “미국의 계획”은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해외 투자자를 보호”(일련의 “민중의 권리에 반하는 자본의 권리”)하기 위해, (에이즈 감염인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차단하는) 기업의 특허권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과 대규모 농업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무역을 위해(이를 위해 미국의 초국적 농기업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남반구 각국의 농산물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분쟁해결” 절차를 확립하기 위해 (이는 민중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한 나라의 정책이 초국적 기업의 이윤 창출을 “방해”할 경우, 기업이 정부를 초국적 법정에 제소하는 것을 허용한다.), “자유무역”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는 미국식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마르델플라타 정상회의

2005년 11월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에서 미주정상회의가 열리던 당시, 민중 정상회의가 동시에 개최되었다. 부시는 당시 두 가지의 패배를 겪었다. 하나는 공식정상회의에서 FTAA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 거부된 것이다. 즉, 준비 과정에서부터 자신의 의제를 안건에 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를 통해 협상을 재개하자는 압력을 행사했지만, 남미공동시장(MercoSur) 회원국(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와 베네수엘라 정부의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정상회의 자체는 이도저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미국의 지배 전략과 관련된 각국의 분열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치·경제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이러한 전략 외부에 남아있는 나라들은 미국의 전략을 회복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회담장 “외부”에서 열린 민중 정상회의에서는 승리를 축하했고, 제국주의 프로젝트와는 다른 지역적 통합의 필요성이라는 다른 의제를 제기했다.

제국주의의 지름길

사실, 미국 정부는 자신의 세계 지배 전략이 여러 나라에서 발생한 저항으로 더 이상 진척될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전술을 바꾸었다. 즉, 양자간, 소지역별 FTA를 체결하도록 각국을 강제한다는 것이다. 최근 칠레와의 FTA가 발효했고, 도미니카공화국을 포함하는 중미FTA가 발효를 앞두고 있다. (지난 10월 23~24일에 이 협정의 비준에 반대하는 시위가 코스타리카에서 열렸으나, 나머지 나라에서는 이미 비준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콜롬비아, 페루와도 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 “저항이 적은” 지역에서의 협상 진척을 모색하여, FTAA에 반대하는 나라들을 고립시키려고 하고 있다.
동시에 또 다른 두 전선이 형성되었다. 유럽연합은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개시했는데, 그 내용은 미국이 시도하는 협정과 유사하다. 이들은 이 지역 내에서 미국에 반대하는 나라에 유럽의 영향력을 부과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최근 형성된 “이빨 없는 제국주의”로서의 유럽의 이미지를 활용하고자 하는데, 이는 제 3세계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왜곡된 이미지이며, 이러한 왜곡은 협상과정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전선의 또 다른 측면은 WTO협상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FTAA만큼이나 중요하다.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대중적 저항은 FTAA, 유럽과의 FTA, WTO 등 다양한 전선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

대중의 응답과 새로운 국면: 지역 통합, 인민무역협정(TCP), ‘미주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 남미공동시장(MercoSur), 안데스국가공동체(CSN)

제국주의 프로젝트를 저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를 대체하는 대안적인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비어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변경된 전략에 맞서, 대중적인 응답을 계획해야 한다.
<미주사회동맹>은 1990년대 말부터 FTAA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과 더불어 대안적인 계획을 마련해왔다. 기나긴 시간동안 모든 나라의 사회운동들이 함께 토론하여, 그 성과를 모아 “미주대륙을 위한 대안"이라는 문서를 작성했다. 이 문서에는 무역과 아메리카 대륙 각
국간의 경제관계에 대한 부시 정부의 의제에 반대하는 우리의 견해가 표명되어 있다.
그러나 각 국의 좌파정부들도 각자의 전망을 제출하고 있다. 한 편에서는,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정부가 새로운 형태의 협정의 기초를 발표했는데, 이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필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 및 인민무역협정(TCP)에 담긴 정신이다. 또한 여러 정부들이 이미 발효된 협정(남미 5개국간에 체결된 남미공동시장-MercoSur)의 개혁, 또는 발전과 사회통합이라는 필요에 따른 새로운 의제를 바탕으로 한 진보적인 내용을 도입한 협력(남미 12개국이 결합한 남미국가공동체_CSN)을 주장하고 있다. 2006년 12월 8일~9일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열릴 남미정상회의에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한 남미 각국의 정상들에게 새로운 의제를 제안할 예정이다.
우리는 제국주의적 계획에 맞선 저항을 진행 중이며 유력하고도 구체적인, 대안적이고 대항-헤게모니적 기획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기획은 민중들에 의해 그 정당성이 입증되어야 하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적 야욕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는 12월 6일~9일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열릴 ‘지역통합을 위한 민중정상회의’는 민중적 전략을 수립하고 구체화할 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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