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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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국민의 기초생활은 과연 보장될 것인가?

심재억 | 실업정책생산모임
국민기초생활법 도입, 무엇이 바뀌었는가

1999년 9월 7일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대체하여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소위 "생산적 복지"라는 화려한 수사학을 동반하면서, 김대중 정권 2년 동안의 치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제도가 10월 1일부로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생활자금 지원희망자 86만여가구, 187만여명에 대해 소득, 재산 등 전면재조사를 거쳐, 오는 9월 28∼30일경에 최종 수급자 선정여부를 통보할 예정이다. 이제 9월말이면 국가가 책임지고 기초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국민'이 누구이며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어떠한' 보장을 제도적으로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윤곽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임박한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특기할 만한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당시와 같은 활발한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과잉복지를 초래하여 복지병을 유발하고, 근로의욕을 감퇴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던 자본측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가? 자본이 우려하던 과도한 예산 소요의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단 말인가?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의 공로자로 자신을 추켜세우던 시민단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들이 문제삼던 졸속적인 제도의 시행으로 인한 수급권자의 축소와 권리의 침해는 기우였던가? 나아가 수급권 확대를 위한 예산확보 운동은 충분히 성과를 거두었단 말인가?

그러나 현실에서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화되었다면, 경제위기 극복을 선언한 정권과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에게 "구조조정-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공식은 1-2년 전만큼 절박한 과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다가올 또 한번의 경제위기를 비켜가는 것에 있다는 사실이 달라졌을 뿐이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자가 되기 위해, 개별적인 청원과 복종을 강요당하고 있는 노동대중의 처절한 몸부림이 새롭다면, 새로운 풍경일 따름이다.

이러한 현실은 필자가 보기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세력들이 공유하고 있는 관점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이다. 즉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당시 형성되었던 일종의 합의와 이에 기초한 전략과 전술에 내재한 구조적인 한계, 그리고 이로 인한 노동대중의 체계적인 배제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둘러싼 현 정세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둘러싼 합의의 본질

사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전후한 논쟁 국면 속에서, 자본을 제외한 정권과 학계, 시민단체 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추진하였던 세력치고, 이 제도의 진보성과 개혁성을 부정하는 목소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권은 이 법이 생산적 복지 이념과 시민단체, 정당, 정부 등 전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제정되었다는 측면을, 그리고 시민단체는 자신들의 끈질긴 활동이 있었기에 법 제정이 가능하였다는 측면을 앞다투어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보기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가책임 하에 전국민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일 뿐만 아니라, 제공되는 급여와 서비스 또한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권리로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현실적으로 이러한 주장이 과연 실현가능한가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둘러싼 합의의 본질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들은 "생산적 복지"를 이념으로서 수용한다. 추진세력들 사이에, 정권이 내세운 "생산적 복지"에 대한 입장의 스펙트럼은, 선진국형 복지모델이라는 찬사에서부터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고스란히 우리나라에 이식시킬 뿐인 단순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입장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공식이 형성되었던 정세적 맥락과의 관련 속에서 "생산적 복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시각은 이들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즉, 비판적 입장을 개진하였던 이들에게 있어서, "생산적 복지"를 반대하는 입장과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은 양립가능한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태도는,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경제정책과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하는 사회정책이 맺고있는 구조적 관계를 간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에 다름 아닌 현재의 경제위기 국면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승인하에서만 사회적 안전망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회정책의 존립근거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한 불안정노동자의 확대와 협조적 노사관계의 구축 및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라는, 암울한 노동의 미래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체계의 구축에서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한 사회정책을 사회적 안전망이라 규정하든, 사회복지제도라 규정하든간에, 결과적으로 추진세력들이 "생산적 복지"를 사회적 보호의 이념으로 승인하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둘째, 이들은 노동운동 및 실업운동을 위시한 계급대중운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한다. IMF 관리체제를 거치는 동안 노동자민중은 절박한 생존의 권리에 대한 국가책임의 확대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그러해 왔다. 이러한 투쟁은 노동대중으로 하여금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속에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게 만드는 구조조정 자체에 대한 반대의 성격을 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승인한 세력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계급대중운동을 관리하는 것은 주요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이러한 인식하에서 시민단체의 입법청원과 정권의 승인이라는 형식을 빌어, 정치적으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 중 당근의 역할로!

그 결과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여 실업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실업수당의 도입을 통해 국가가 책임지고 실업자의 생존을 보장하라는 노동대중의 요구는 정치적 의제로 등장하지 못한 채 관리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듯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을 두고 추진세력들 내에 일정한 합의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노동력 재생산 관리체계를 마련하고자 하는 현 정권의 전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IMF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고용의 질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열악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권이 "고용없는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한에서, 이러한 고용의 질 저하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권은 노동대중으로 하여금 고용불안을 감내하면서도 최소한의 노동력 재생산을 가능케 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곤선 이하에 위치한 취약계층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겠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러한 노동력 재생산 관리체계의 구축으로 나아가는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즉, 현재 정권은 정규직에게는 일자리 유지를, 비정규직과 실업자에게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미래를 제시함으로써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대중의 불만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하고(이른바 생산적 복지), 구체적으로 시민단체와 각종 사회복지관련 기관, 실업단체, 그리고 노동조합을 포괄하는 노동력 재생산 관리 시스템을 "서비스 전달체계"라는 이름으로 구축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추진 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내재한 구조적인 한계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둘러싼 합의의 본질을, 생산적 복지를 이념으로 한 효율적인 노동력 재생산 관리시스템의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맥락이 현재 추진 중에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구조적인 한계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측면은 이 제도의 수급권자로 선정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실업자를 비롯한 극빈층 노동대중의 주요관심사인 "자활사업" 및 "재정확보와 적정한 급여수준" 등과 같은 현실적인 이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먼저 자활사업과 관련한 것이다. 정권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입법취지로 "단순한 생계지원이 아닌, 수급자의 자립자활을 촉진하는 생산적 복지 지향의 종합적 빈곤대책의 필요성"을 명시하고 있을 정도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내에서 자활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이러한 자활사업에 있어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것이 이른바 "조건부 수급"의 문제이다. 이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9조 5항에 의거하여,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된 수급권자는 취업대상 수급권자로 분류되어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의미한다. 이 규정을 두고 자활에 필요한 사업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모호한 규정이다.

뿐만 아니라, 생계급여의 조건으로 노동을 의무적으로 강제한다는 측면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이라는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난다는 비판이, 이 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세력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에 대한 대안적인 해석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있다. "자활급여는 인간으로 하여금 노동행위를 통해 사회적 자아를 완성하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사회적 권리로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러한데, 이 또한 표현의 수려함에 비해 공허함을 감출 수 없다. 그것은 자활급여 자체가 안정적인 일자리로의 진입이 가로막힌 채, 단기 고용과 실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노동대중에게 주어지는 급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자활급여를 계기로 노동행위를 통한 성취감과 생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자활사업을 통해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제3섹터형 고용창출 논의가 붐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은 논의만 무성할 뿐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해 보인다. 왜냐하면 논의의 대부분이 외국 사례를 수입하는 것에 그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경향은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가 책임을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족적인 공동체주의로 고립될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예산확보와 급여수준의 문제이다. 사실상 복잡하기 그지없는 자활사업보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대상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적정수준의 급여를 보장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급권자들의 절박한 요구에 비해 정권이 책정하고 있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적정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기 위해, 예산이 대폭 확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추진세력 내부로부터 강하게 제기되어 왔다. 그렇지만 예산확충을 위한 구체적 전술의 측면에서는 "상층협상을 통한 조정 일변도"의 한계를 여실히 보이고 있다.

지금처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경제정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국면하에서 국회에 대한 청원과 같은 방식으로 사회보장 예산을 확충하고자 하는 전술의 한계는 너무도 명확하다. 또한 국방비 삭감과 같이 예산의 새로운 출처를 정책적으로 제언하는 것 또한 지극히 소극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보장이 정치적 의제로 등장한 이래, 이러한 전술은 과거에도 빈번히 시도되었지만 적정한 급여수준을 충당할 만한 예산을 확보한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두자.

이러한 구조적인 한계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져올 미래는 정권의 대대적 선전이나 시민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추진세력들의 자화자찬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수급권자의 수와 급여수준은 기존 생활보호법 하에서와 크게 다를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소득 및 자산조사와 노동의무와 연계된 조건부 수급으로 인해 노동대중의 삶에 대한 관리와 통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겉으로는 사회적 권리로서 급여가 제공된다고 선전되지만, 실제로는 노동대중이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에서 일할 권리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는 암울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전의 오류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본격적인 제도의 시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이 제도가 추진되고 있는 현재적 맥락을 살펴보건데, 향후 불거질 각종 문제점들에 대한 각 사회세력의 대응방향 또한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즉 "어렵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의 안착화"라는 명분으로 정권은 효율적인 노동력 재생산 관리시스템의 구축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 시민단체와 실업단체, 사회복지관련 기관들은 급여 및 서비스 전달체계의 하위파트너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일정한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도 크다. 이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듯 일관된 정권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앞서와 같은 과오를 다시금 범하지 않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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