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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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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 국가, 반인종주의 대응: '문화'와 '인권'의 허점

앨러나 렌틴 |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주: 이번 호 <책 속의 책>에서는 인종주의에 대한 통상적 접근을 비판하는 한편, 이 같은 ‘상식’을 형성하는 데 주류적 반인종주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논증하는 앨러나 렌틴의 글을 싣는다. 한국에서 인종주의는 흔히 우리와는 무관한 문제로 여겨지기 일쑤다. 하지만 최근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에서 보듯, 이주노동자에 대한 구조적 착취와 억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위험 수위에 이른 상태였다. 그리고 이 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하려면 인종주의에 대한 반성을 우회할 도리가 없다.
인종주의는 가장 간단히 말하자면 피부색이나 성, 문화 등과 같은 특정한 인간적 차이를 근거로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고, 이 같은 위계에 기초한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저자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인종주의가 어떤 초역사적이고 자연적인 인간 ‘본성’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 제국주의․식민주의 기획 그리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로서 유럽에서 발명되어 세계 전역으로 ‘수출’된 근대 민족 국가와 분리될 수 없는 철저히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즉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영향 하에 형성된 모든 민족 국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종주의를 구조적 요소로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인종주의에 대한 반성을 통해 국가 장치 안에서 변형된 채 재생산되고 있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따라서 근본적 반(反)민주주의 경향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예컨대 지난 2005년 프랑스에서 이주 2~3세대 청년들이 항쟁을 벌였을 때 그들을 향해 선포된 비상사태령은 1955년 프랑스 식민지이던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며,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방대한 행정․경찰 장치들은 조선총독부와 미군정에서 직접 상속받은 것이다. 즉 인종주의는 단순히 ‘이방인’에게만 적용되는 예외적 조치가 아니라, 시민과 ‘신민(臣民)’을 가르는 기준 그리고 후자를 대상으로 하는 근본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인 논리와 제도가 사회 안에 존속하고 있고 그것이 대중들을 끊임없이 호명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종주의 역시 역사적으로 변화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이 글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전후(戰後)의 주류적 반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오늘의 인종주의가 행정적인 ‘반차별’ 담론, 문화(상대)주의, 일방적 보편주의 등과 결합되어 있으며 역으로 이들 논리가 근본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일 수밖에 없음을 논증한다는 것이다. 주류적 반인종주의를 비롯한 행정적인 ‘반차별’ 담론은 차별의 문제에 접근할 때 제도나 국가 등 구조의 문제를 무시하고, 개인적인 편견이나 태도를 중심에 두는 심리주의를 채택한다. 예컨대 주류적 반인종주의는 인종주의를 흔히 개인들에게 내재한 외국인혐오증이나 인종차별‘의식’으로 간주하며,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작년 11월 27일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과 차별은 법이나 제도, 정부정책에 기인된 것이라기보다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신은 다르다는 차별의식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보듯 지배 계급들은 차별의 원인을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시도가 국가나 제도를 향하지 않도록 하면서 이를 개인의 ‘본성’에서 비롯하는 편견의 문제로 호도한다. 따라서 차별에 대한 해법도 구조적 불의의 변혁이 아니라, 주로 문제 있는 개인들에 대한 ‘재교육’이 된다. 이 외로 문화(상대)주의나 일방적 보편주의 역시 각각 특정 문화를 공유한다고 간주되는 집단 내부의 차이를 억압한다거나, 특정한 동일성을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것으로 격상시켜 이 표준에 따라 직간접적 차별을 가하고 정당화하는 문제점을 갖는다.
이렇듯 인종주의에 대한 분석은 인종적 차별은 물론, 그로 한정되지 않는 여러 가지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담론들의 기본 논리와 그 모순을 꿰뚫어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인종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그에 입각해 위계적 공동체를 재생산하려는 여러 이데올로기들이 마주치는 ‘실험실’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종주의를 둘러싼 논의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글의 출처는 Alana Lentin, Racial States, Anti-Racist Responses - Picking Holes in 'Culture' and 'Human Rights', <i>European Journal of Social Theory</i>, 2004이다. 이와 함께 이주노동자의 등장을 계기로 기존 정치의 논리를 반성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제안하려는 시도로는, 최원, 「탈민족적 공간의 데모스」, 월간 『사회진보연대』 42호(2004. 1~2)를 참고하라. 한편 출판물에는 분량 문제 때문에 누락시킨 참고 문헌을 마지막에 실었다.]


도입

민족 국가가 인종적으로 구성된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1933년 독일 철학자 에릭 뵈겔린(Eric Voegelin)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주목할 만한 저자 집단(Voegelin, 1922; Arendt, 1966; Mosse, 1978; Balibar, 1991b; Traverso, 1996; Foucault, 1997; Goldberg, 2002)이 성공적으로 이론화한 개념이다. 그러나 ‘인종’과 민족 사이의 ‘상호 결정’의 관계(Balibar, 1991b)가 근대성의 역사에서 특정 시기에 (가장 분명하게는 19세기 중반 이래) 서방 국가들에 의해 도입되었다는 점은 주류 학계의 설명에서, 그 결과 이른바 상식에서 거의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더욱이 유대인 대학살(Holocaust)의 여파 때문에, 유럽과 서방에서는 대개 인종주의를 사회악으로 논한다. 그러나 서방 유럽의 민주적인 공적 영역에서 인종주의가 어떻게든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하는 문제를 상징한다는 일반적 합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담론에서 인종주의는 유럽 국가들 자체의 역사적․당대적 행동들과 좀처럼 관련되지 않는다. 반대로 통상 인종주의는 주로 심리학적 용어에 따라 ‘무지’에 근거한다고들 하는 ‘편견’과 ‘태도’ 사이를 연결하는 개인적 문제로 묘사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인종주의는 ‘문화적’이거나 ‘종족적’(ethnic)인 차이와 관련된 긍정적 특성들을 거의 접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이 같은 ‘차이’에 따른다고들 하는 주로 경제적인 불이익을 너무 많이 접하는 사람들의 문제로 묘사된다. 인종주의가 전후(戰後) 유럽 사회에서 존속하는 것에 대한 해법은, 타자(Other)에 대한 지식과 너무 많은 숫자의 타자가 도착하는 것에 대한 제한 사이의 균형을 획득하는 문제로 여겨지곤 했다. 이 지배적인 진단과 치유의 묶음에서, 인종주의가 엘리트들의 문제로 여겨지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그리고 내가 앞서 인용한 저자들의 작업이 있긴 하지만, 인종주의가 민족 국가의 구조 자체 안에 배태(embedded)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이 글은 인종주의가 계속 그런 식으로 다뤄지는 이유를 해명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나는 이를 위해 1950년대 이래 많은 주류 단체와 제도가 실행하는 ‘지배적인 반인종주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분석하고, 그것이 일상 언어와 사회 과학 모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는 인종주의에 대한 설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할 것이다. 본넷(Alastair Bonnett)(2000)이 상기시켜 주듯, 인종주의가 때로 갈등을 빚기도 하는 다양한 분과적․정치적 관점에서 널리 연구된 반면, 반인종주의는 연구의 대상이 된 적이 거의 없다. 1930년대 이래 사회 과학자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인종주의에 대한 개념화의 대다수가 반인종주의적 시각에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여기서 나의 의도는 반인종주의를 단순하고 문제의식 없이 인종주의의 대립물로 보는 것에 거리를 두는 사회학적 분석에 반인종주의, 또는 반인종주의 담론의 적어도 한 가지 지배적 경향을 대질시키는 것이다. 국가 수준에서 인종주의가 존속함에도 불구하고, 반인종주의 관점을 견지하는 사회 과학자들은 지배적․제도적 반인종주의 담론이 공모하여 국가를 중립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을 지탱한 것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진지하게 주목하지 못했다.
반인종주의 자체가 ‘인종’-국가 고리와 문제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전반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논증을 재구축하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나의 주장인즉슨, 오늘날 유럽 반인종주의에서 계속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반인종주의적 사고의 지배적 흐름이, 예컨대 식민주의 조건 하에서, 노동자 계급을 다루고 근대의 정치적 반유대주의를 전개하며, 유럽권(圈) 이주를 규제하는 등에서 국가가 활용하는 정치적 이념(idea)으로서의 인종주의의 성장을 역사화하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반인종주의가 자신의 담론 안에서 다루거나 설명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정확히 보여주기 위해, 첫 번째 절에서는 ‘인종’ 관념과 근대 국가의 정치적 필요 사이에서 맺어진 정치적 관계의 주된 역사적․이론적 결과 중 일부를 다룰 것이다. 특히, 나는 유럽 사회들에서 이전까지 유례가 없을 정도로 평등이 성장한 것과 평행하여, 얼핏 보기에는 역설적으로 근대 인종주의가 발전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뒤에서 주장하겠지만 발리바르(Étienne Balibar)(1991a, 1991b)를 따라 말하자면, 근대 인종주의는 일반적인 ‘인간의 관념’을 고안하려는 기획과 보편주의의 통념이 전개되는 역사를 함께 살피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좀 더 조야한 ‘자연주의적’ 변종을 계승하거나, 때에 따라 그것과 공존하는 역사주의적(historicist) 또는 진보주의적 인종주의(Goldberg, 2002)는 일정한 조건을 확립하는데, 여기서 인종주의는 포스트식민적 대도시에 적용될 때 그 인종주의적 기원이 더욱 쉽게 은폐되는 문명(화)적 사명과 서로 분리할 수 없게 된다.
사회적 다윈주의의 출현 이래 대중화된 ‘적자생존’의 견지에서 인종주의를 차별을 향한 ‘자연적’인 인간적 성향의 일부로 보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이해방식은, 부분적으로 인종주의에 대응하려는 초기의 제도적 노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1950년대 이래, 반인종주의적 논증이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따위의 제도에 의해 전개되고, 일상적 어법뿐만 아니라 국가와 비정부 담론 내부로 침투한 것을 역사화함으로써 논거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절에서 나는 반인종주의의 유네스코 전통에서 두 가지 정초적 원리를 추적할 것인데, 나는 이것이 유럽 정부와 초민족적(supranational) 기구들, 주류 반인종주의 조직들에 의해 제안된 많은 반인종주의 수사에서 여전히 중심적이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는 첫째로 인종주의를 그 자신의 용어법에 따라, 즉 과학으로서 논박할 필요이며, 둘째로 ‘인종’의 차이에 따라 인간적 차이를 설명하는 것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제안하는 것이다. 두 요소 모두 반인종주의의 일차적 역할 곧 인종주의에 대한 설명에 있어 중심적이다. 그러나 둘 다 민족 국가와 인종주의의 역사적 마주침, 따라서 정치적 이념 곧 ‘정치적 공동체들을 산출하는 요소 중 하나’(Vögelin, 1933:1)로서의 ‘인종’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 같은 반인종주의의 지배적 전통은, 당대 사회들의 착취와 지배의 조건을 구조화하는 것으로서의 인종주의에 대한 국가중심적인 비판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충실과 타자에 대한 개방의 화해’를 장려하는데, 그 결과는 마지막 절에서 예증될 것이다. ‘유럽적 보편성’(Hesse, 1999: 211)의 유산에 뿌리를 둔, 권리와 법치(rule of law)의 언어에 대한 당대의 집착, 그리고 인종주의에 맞선 싸움에 대한 그것의 적용은, 근대 인종주의의 원천을 자연화하고 탈정치화하는 지배적 합의와 한층 뒤섞인다.

‘인종’, 근대성 그리고 국가

두 번째 절에서 나는, 인종주의에 대응하는 작금의 시도들 대다수를 기초 짓는 전후 시기 주류적 반인종주의가 인종주의를 효과적으로 반박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인종’과 국가 사이의 관계의 역사를 살피는 데 소홀하기 때문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 같은 논증을 구축할 수 있으려면 우선 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글에서 이 역사적 관계를 상세하게 해명할 만한 여유는 없지만, 나는 이 절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관점에 따라 ‘인종’과 국가의 간극(interstice)을 다룰 것이다.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인종’과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인종주의’를 전적으로 근대적인 현상으로 이해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은, 왜 인종주의가 19세기 이후, 곧 유럽 역사에서 유례없는 평등의 시기에 출현했는가 하는 점이다. 인종주의와 평등 ― 또는 민주주의 ―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는 데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인종주의와 보편주의의 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즉, 인류/인간성(humanity)에 대한 일반적 개념화라는 관념과, 여기에 동반되는 인종주의를 기초 짓는 인간 존재들의 범주화의 필요성은 어떻게 교차하는가?

1) ‘인종’의 근대성

‘인종’ 및 인종주의의 이론가가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는 이것들이 근대적 현상이라는 점을 청중들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인종주의가 개인적 편견의 문제라는 관념―나중에 볼 것처럼 이는 주류적 반인종주의 담론에서 주로 기인하는 통념이다―이 너무나 뿌리깊이 박혀 있어서, 인종주의가 광범위하게 수용된 시기가 아무리 길게 잡더라도 기껏해야 19세기 중반 정도부터라는 점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인류를 ‘인종들’로 분할할 것을 제안하는 이론들은 17세기 후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는 하지만,1) 인종주의가 근대적 형태로 완연히 전개된 것은 19세기 중반이나 후반 이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종주의의 황금기로 알려진 시기(1870~1914)는, ‘인종 국가’의 출현, 근대적 반(反)유대주의와 사나운 제국주의, 그리고 ‘인종이 전부다. 그 밖의 진리는 없다’(Hannaford, 1996: 352)는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로 대표되는 정치권 내부의 신념이 탄생한 것 등의 특징을 갖는다.
인종주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등장하는 데 토대를 제공한 정치적 이념인 ‘인종’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전적으로 근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인류/인간성을 다원발생(多元發生)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해 주는 방법론적 전환―이는 계몽주의가 합리성과 진보에 대해 가진 관심에 의해 창출된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창조 따라서 일원발생설에 대한 이전까지의 압도적 믿음에서 발본적으로 전환했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유일신이 모든 사람들을 직접 창조했다는 통념의 논박은 계몽주의 직후에 나온 것은 아니었고,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비-유럽, 비-백인 타자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해 준 여행의 증가 역시 필요했다.
인종주의가 근대적인 두 번째 이유는, 인종주의가 민족주의와의 ‘상호적 결정’(Balibar, 1991b) 관계에 진입하게 된다는 점에 근거를 두는데, 이는 그 자체로 19세기에 들어 우세하게 된 근대적 현상으로, 그것이 없었다면 인종주의는 사이비 과학 이론의 지위를 넘어서 승격될 수 없었다. 발리바르는 민족과 민족주의 사이의 구별을 문제삼으면서, 후자가 어떻게 전자를 발명했는지, 더욱이 그것이 원리와 목표를 지탱해 줄 정치적 도구로서 인종주의를 창조했는지를 보여준다. ‘인종’과 민족은, 인과 관계라기보다는, 제휴 작용을 하여, 훗날 인종주의의 목표와 점차적으로 융합되게 된 민족주의의 목표들을 낳는다. 니콜슨(Philip Yale Nicholson)(1999: 7)이 상기시켜 주듯, 인종주의의 근대성을 이해하는 것은 근대적이고 경쟁적이며 무엇보다 팽창적인 민족 국가의 특수한 야망과 분리할 수 없다.

인종은 단순히 특정 민족의 특이성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을 정의하고 구성하는 법에 따라 설정된 감정적 경계선이자 팽창적 민족의 현상이다. 민족이 정복과 수탈을 통해 정치적 헤게모니를 정의하고 확대할 때, 인민은 인종으로 전환되었다. 인종과 민족은 함께 태어나고 길러졌다. 그들은 근대성의 샴쌍둥이다.

인종주의가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정당화와 민족주의의 틀 둘 다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인종주의가 승격된 것은 합리성과 정치적 낭만주의의 이상들의 결합을 통해서인데, 후자는 민족들을 (개인들처럼)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서로서로에 대해 본유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이론화하기를 선호했다.
특정한 정치적 근거가 인종주의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발전시키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음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리바르(1991c)와 푸코(Michel Foucault)(1997), 그리고 맥매스터(Neil MacMaster)(2001)가 모두 일깨워주듯, ‘인종’ 담론은 노동자 계급에게 처음 적용되는데 19세기 유럽에서 이들은 그 새로운 국제주의적 정치 의식 때문에, 약화된 귀족 또는 지배 계급에게 위협으로 지각된다.2) 이 같은 개념화에서 자연적 조건으로 제시되는 노동자 계급의 빈곤은 ‘인종’의 강화에 동참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더욱이 국제주의적 반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지지는 ‘인종’이 번성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인 민족 국가의 토대를 위협했다. 초창기 우생학 운동은 애초 ‘퇴화된’(degenerate) 노동자 계급을 포착하고는, 그들의 점진적 멸망으로 이어질 공적․사적 자선을 중단하자고 제안했다.(MacMaster, 2001) 그러나 20세기 초엽에 들어 인종주의의 표적이 전환되어 외부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이는 ‘인종’과 민족의 균일함이라는 관념이 통합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제 인종주의적 이상의 지지자들은 ‘통일된 인종-민족의 기술지배적이고 생물학적인 공학’(MacMaster, 2001: 56)을 목표로 복지 민족주의를 확대함으로써 모든 계급들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이 같은 전환은 전적으로 근대적인 시대적 압박 곧 그 이해관계가 사나운 제국주의 시기 동안 최고조에 달한 민족간 경쟁 압력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1 차 세계대전 및 대중 징병이 시작된 시기보다 더 국력―점점 인종적 순수성의 용어로 번역되는―이 필요했던 때는 없었다. 인종주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가소적(可塑的)이고 카멜레온 같은 현상’(MacMaster, 2001: 2)으로, 한층 경쟁을 더해가는 근대 민족 국가들에 의해 창출된 점증하는 압력에 스스로를 완전히 적응시켰다.

2) 인종주의와 평등의 역설들

데이빗 골드버그(David Goldberg)(2002)는 인종주의를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본다. 하나는 자연주의적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주의적․진보주의적이다. 평등과 인종주의 관계의 핵심에 있는 것은, 훨씬 양면적이고 완전히 정치적인 후자 형태 인종주의의 전개다. 간단히 말해 자연주의와 역사주의는 다음과 같이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17세기부터 대략 19세기 중반까지 존속했는데, 인종적 열등함은 타고난 것이며 과학적으로 증명가능한 것이라는 관념으로 정의되었다. 역사주의적 인종주의는, 전체적으로 훨씬 복잡한 것으로, 19세기 중반부터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이는 ‘색(色)맹목’(colour blindness)이나 골드버그의 용어법으로 하자면 ‘무인종(raceless) 국가들’3) 따위의 신보수주의적 관념들을 지속적으로 고취한다. 식민 통치, 그리고 훗날에는 이주 통치의 조건 아래서 주로 출현한 이 같은 인종주의는, ‘인종적 현실주의’(Goldberg, 2002: 82)의 필요성에 대한 가정에 기초하는데, 내용인즉슨 ‘열등한’ 타자들이 동화 과정을 통해 ‘문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나운 민족주의의 과잉에 비하자면 겉보기에는 진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골드버그가 일깨우듯 역사주의적 관점들은 인종주의의 종말을 동반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인종주의가 오늘날 국가 합리성 안에서 영속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아마도 다름 아닌 역사주의의 정교함일 것이다.
자연주의-역사주의라는 구별은, 19세기 이래 서방의 유럽 민족 국가의 주민들 사이에서 평등이 확장되는 시점에 어떻게 인종주의가 정치적으로 표명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식민지 ‘신민들’에 대한 유럽 통치의 자기 규제를 보장하기 위해 점차 역사주의적 전망에 의지하게 된 식민 통치를 제외한다면, 유대인 해방의 사례보다 유럽 영토에서 나타난 평등의 ‘역설’을 더 잘 예증해 주는 것은 없다. 전(前)근대적인 유대인에 대한 증오(Arendt, 1966; Bauman, 1989)와 반대로 근대적 반유대주의는 유럽 전역으로 유대인 해방이 확산되는 것에 동반하여 19세기 말엽에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했다.4) 게토(ghetto,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에서 벗어나 기독교도인 동료 국민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허용되면서, 유대인혐오는 변형되었다. 유대인들이 분리․고립되어 살 때 유대인의 특이함이 자연스럽게 보였던 데 반해, 이들이 주류 사회로 동화되면서 이제 유대인들의 차이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결과가 초래된다.(Bauman, 1989) 유대인들은 이제 모든 ‘인종’들 사이에 있는 위험 ‘인종’으로 간주됐는데(Foucault, 1997), 이들은 합리적으로 보존된 근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제거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평등의 조건 하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점점 더 구별하기 어려워지면서, 인종주의 이론, 고대 종교 신화 및 음모적 소문 모두가 유대인의 본래적 이방성을 증명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작되어야만 했다.
사회적 반유대주의의 핵심에 있는 유대인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매혹―‘국외자’(局外者, pariah)나 ‘졸부’ 같은―을 초래한 것은 이 같은 동화의 조건이다.(Arendt, 1966) 동화는 일종의 덫으로 기능했다. 한 편으로, 특수한 공동체적 생활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낯섦의 종신형’을 의미했다.(Bauman, 1991: 112) 다른 한 편으로, 유대교를 민족적(기독교적) 문화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았던 국가에 의해 강제된 문화적 위계를 받아들일 경우, 유대인과 다른 추방자들이 그 문화의 우월성과 보편타당성의 입증을 돕는 것이 되었다. 유대인 해방으로 생겨난 동화가 실제로 의미했던 것은, 민족에 완전히 소속되기 위해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특수주의를 포기할 것을 강제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솔기 없이 융합하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무능력과 함께, 유대주의에 공개적으로 등을 돌림으로써 융합하고자 했던 또 다른 이들의 압도적인 욕망은, 유대인들의 부인할 수 없는 타자성의 신호로 간주되었다. 유대인에게 해방을 강요하는 것은 사회적․정치적 반유대주의를 창출하는 데 조력했는데, 이는 오늘날 이주자들에 대한 동화 요구가, 외양상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차별적 분개로 이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트라베르소(Traverso)(1996)는 프랑스 혁명 이후 이어진 유대인 해방에 동반된 것이, 종교성(religiosity)을 공적으로 표명하는 것을 불법화하자는 자코뱅의 완강한 주장이었음을 언급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해방을 ‘위로부터의 혁명’(1996: 24)으로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동화의 요구가, 유대인들의 의도에 대한 사회적 불신의 정치적 조작을 동반했다는 점은 근대 인종주의를 정의하는 문제를 상징한다. 더 많은 평등의 확산에 대한 중화제가 그것이다.

3) 인종주의와 보편주의

근대 인종주의가 팽창적이고 근대화적이며 경쟁이 강화되는 유럽 민족 국가의 논리 내부에서 기능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것은, 근대성 기획의 압도적 가치에 대한 일반화된 믿음에서 기인한다. 즉,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초로 떠받들어지는 근대성 기획의 현세적이고 보편주의적이며 해방적인 요소들은, 대개 그것들이 역사적으로 취한 경로에 대한 문제화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현실적으로 볼 때, 동화의 궁극적 불가능성이 보여주듯, 인종주의의 힘은 개인들이 그것에 들어맞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이상적 인류/인간성의 경계선’(Balibar, 1991b: 61)을 정의하는 능력에 있다. 발리바르는 인종주의가, 개인들이나 심지어 개별적인 ‘인종 민족’의 영역을 넘어서는 보편적 수준에서 의미를 얻는 ‘초민족주의’(supra-nationalism)의 지위를 떠맡는다고 주장한다. 인종주의가 포스트식민적인 시대로의 이행을 떠받치는 것은 ‘인종적 기표’의 보편적 호소 때문인데, 이는 개별 민족보다는 유럽을 지배적이고 따라서 이상적인 인간 유형으로 구축한다. 이는 ‘인간’을 ‘야만인’과 분리하는 차이의 정도들을 강조함으로써 얻어졌으며, 이로써 ‘모든 민족주의는 동일한 은박(銀箔, foil), 동일한 “무국적 타자”를 배경으로 정의되었고, 이는 “근대적” 민족 국가, 즉 문명의 땅으로서 유럽이라는 관념 자체의 구성요소가 되었다.’(Balibar, 1991b: 62)
인종주의와 보편주의는 서로 환원될 수 없긴 하지만, 발리바르는 이들을 ‘내부로부터 다른 쪽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는’ ‘규정적 대립물’로 간주한다.(Balibar, 1994: 198) 보편주의 철학은 도덕적 평등이 ‘인간 형제애’의 천부적 권리라는 전제에 기초하기 때문에, 인종주의는 (성차별주의처럼) 그것을 통해 보편주의적 이상에 관한 논의 가능성 자체를 이해하게 되는 프리즘이 된다. 즉,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모두 보편적 인류/인간성 안에 포함되는 것에 대한 공제(控除)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당화하는 데 봉사한다. 따라서 인종주의는 ‘인간의 일반 관념’을 창출하는 일과 분리할 수 없는데, 이는 인종주의가 우월함과 열등함을 암묵적으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을 구축하려면 타자와의 관련 속에서 내려지는 정의가 필요한데, 이는 또한 보편적 이상과의 관련 속에서 정렬되는 인간 존재의 위계화를 요청한다. 그러나 인종주의는 보편자의 수준에서도 기능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균질화하려는 보편주의의 운동력에 맞서 투쟁하기 때문이다. 인류를 조직하기 위한 보편적 체계로 ‘인종’을 주장함으로써,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열망하는 유일성의 공간이 보장된다. ‘인종’ 관념이 정치 내부로 통합되면서, 각각의 개인이 반드시 속해야 하는 ‘인종들’의 보편화된 체계가 동반된다. ‘인종’이라는 관념이 유럽인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각각 다양한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는 우월함이 타자들에게는 열등함이 적용되면서, 인종주의에 수반되는 폭력은 사물의 위계적 질서를 보존할 부대적인 필요성에 근거를 두었다. 이 질서는 인류/인간성의 인종적 분류를 발명했던 자들 곧 유럽인들에게만 유익한 것이었다.
인종주의의 보편주의는 역사주의를 동반하는 인본주의(humanism, 휴머니즘)가 포스트식민적 시대로 힘들이지 않고 확장되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더 많은 민족들을 인류라는 일반 관념 안으로 포함시키면 인종주의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생각―인권의 중심에 있는―은 인류의 보편화된 전망이 인종주의가 제공한 비인간화된 타자―이를 배경으로 인류 자체가 정의될 수 있다―에 의존해 왔던 한에서 부정된다. 이 같은 관념을 세제르(Césaire)는 ‘사이비 인본주의’로 기각하는데, 그에 따르면 이는 ‘편협하고 파편적이고, 불완전하고 편향되며, 모든 점을 고려할 때 탐욕스럽게 인종주의적인’ ‘인권’에 대한 편파적 해석에 기초해 있다.(Césaire, 1972, Gilroy, 2000: 62에서 재인용) 인권 담론의 당대적 헤게모니 내부에서 인종주의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역사주의적 인종주의와 팽창하는 근대 민족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요구를, 인류적 이상을 위한 탐험을,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의 지속적인 우세를 가능케 하는 ‘인종’의 거부를 연결하는 역사에 대한 추적을 요청한다. 이 겉치레의 이면에서 인종화(racialization)와 인종 차별이 계속되지만, 이는 인종주의의 황금기 시절에 처음으로 설립된 평등의 출현으로 촉진된다. 다음 절에서는 주류적이고 제도적으로 인정된 반인종주의의 전후 초기 담론이 권리 체제와 역사주의적 인종주의가 지속적으로 공존할 수 있게 만드는 데서 수행해야 했던 몫을 해명할 것이다.

반인종주의의 역할

정치적 담론이자 집단 행동의 형태로서 반인종주의가 수행한 역할을 조사해 보면, 왜 ‘인종’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역사화하는 데 실패했는가 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그러나 반인종주의를 역사적인 관점이나 사회학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것은 논쟁과 처방의 우세 때문에 가로막혀 왔는데, 이는 단순한 인종주의의 전도로서의 반인종주의라는 상식적 묘사를 동원하는 경향에서 생겨난다. 본넷이 주목하듯(2002: 2), ‘인종주의와 종족적 차별은 지속적인 역사적․사회학적 조사 아래 있다. 그러나 반인종주의는 “대의”의 지위에 놓이기 때문에, 상투적인 지지나 고발에나 쓸모가 있다.’
사실 반인종주의는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현상으로, 그 변종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충성들이나 정치적 목적들, 그리고 대표적 기능들을 드러낸다. 유럽의 반인종주의 담론과 실천의 정치적 사회학에 대한 나의 조사에 기초하여(Lentin, 2004), 나는 하나의 특수하고 중심적인 반인종주의의 변종을 조사함으로써 ‘인종’과 국가 사이의 역사적 관계의 기만과 이 담론 사이의 공모를 증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반인종주의 담론은 유네스코 같은 제도의 전후 기획에서 출현하였고, 서방 정부들의 지원을 받아 대학살 직후에 인종주의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치료법을 제안하고자 했다. 이 주류적 형태의 반인종주의는 자결적(自決的) 반인종주의를 고취한 반식민주의 운동에서 발전했던 국가중심적 비판과 반대되는 것이다.5) 그것은 대신 인종주의가 개인적 편견의 결과라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정치적 설명을 심리적인 것으로 대체하며, 인종주의에 대한 정치화된 대응보다는 문화적인 대응을 옹호한다. 더욱이 이 같은 형태의 반인종주의의 헤게모니는, 인종주의를 일방적으로 차별로 보는 보편적 인권 담론의 우세를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네스코 ‘전통’의 반인종주의의 전개에 초점을 맞추면(Barker, 1983), 그것이 승인했던 주류 반인종주의 실천이 유럽 국가들의 인종적 본성의 이론화를 어떻게 회피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이 전통의 두 가지 주요 구성요소들이 ‘인종’의 정치화된 기원과 함의들을 이렇게 무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첫째, 유네스코는 ‘인종과 인종적 편견에 관한 선언’을 1950년에 최초로 발표하면서, 인종주의를 그 자신의 용어법으로 여겨졌던 것을 근거로, 즉 증명되지 않은 과학으로 물리치려고 시도한다. 둘째, 이들은 ‘인종’이 부적합한 용어라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유인즉슨 인종이 인간 존재들을 범주화하는 비과학적 방식이며 문화로 대체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작업에 힘을 불어넣은 사고가 ‘인종’의 정치적 본성을 부인하면서, 그것을 순전히 사이비 과학적인 기원을 지닌 것으로 간주하기를 택했기 때문에, 문화라는 대안은 인종주의의 진정한 해로움을 체현하는 인류의 위계적 조직화를 근절하는 데 실패했다. ‘인종’이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종주의는 조직화를 할 수 없다는, 대중적 담론과 학문적 담론 모두에서 나타나는 착각이 오해하는 사실은, 인종주의가 항상 ‘인종적’(예컨대 표현형적(phenotypical))이고 문화적(예컨대 종족적/종교적)인 차이 양자를 그 자신을 표현하는 데 동원해 왔다는 점이다.6) ‘인종’과 자신들이 ‘인종적 편견’이라고 불렀던 것을 이런 식으로 분리하면서 유네스코는 지배 집단과 종속 집단들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인종화의 힘을 무시했다.
인종주의를 논박하고 그 극복 수단을 제안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유네스코의 기획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가? 이 기구가 1950년에 처음으로 묶어낸 ‘세계 전문가 위원회’의 작업에 강한 영향을 미친 것은 인류학과 유전학이었고, 심리학과 사회학은 그 정도가 비교적 약했다. 유전학자들이 인종주의를 설명하려고 노력하면서 인종주의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는 과학으로 접근하는 추론에 주로 영향을 미친 반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인류학자들은 인종주의에 대한 해법을 정식화했던 문화주의적 시각을 확립하는 데 주로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인종주의를 과학으로 취급하는 것은 인종주의를 그 자신의 용어법으로 여겨졌던 것을 근거로, 즉 과학적 분과―이는 인종적 과학으로 알려진 유전학과 체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에 근거를 둔다―로서 인종주의를 물리칠 필요성의 감지에 기초한 것이었다. 과학적이고 자세한 조사를 인내하지 못하는 ‘인종’의 실패는 다음과 같은 단언으로 요약되었다.

인류를 ‘인종들’로 분할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관습적이며 부분적으로 자의적인 것이며, 어떤 종류의 위계도 함축하지 않는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인간 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인종적’ 분할이 과학적 관심을 제한해 왔으며 심지어 남용적인 일반화를 도입하는 위험을 불러들였다고 믿는다.(UNESCO, 1968: 270)

이 같은 선언의 구성요소는 초안의 비정치적 본성을 상징한다. 이는 ‘관습’과 ‘자의성’에 대한 호소가 어떻게 인종주의를 자연화하는지, 그리고 역사적 분석에 의해 인종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이 드러난 정치적 과정들에서 어떻게 그것을 절연하는지 보여 준다. 과학이나 단순한 상식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이자 정치적 발명인 ‘인종’에 대한 이 같은 기만은, 선언을 기초하는 과정에서 유전학자들과 체질인류학자들이 수행한 역할에서 주로 기인했다. 물론 선언의 최초 형태는 접근법이 너무 사회학적이라고 간주되어, 추가적인 ‘인종적 차이와 인종의 본성에 관한 선언’(1951)으로 보충되었는데 이는 훗날 유네스코의 입장을 특징짓는 것이었다. 이 선언의 저자들은 인종주의라는 사회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유용한 개념으로 간주되는 생물학적 ‘사실’로서의 ‘인종’과 구별할 것을 요청했다.(Comas, 1961) 그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인류학적 의미에서 ‘인종’이라는 단어는 잘 발달되고 다른 집단들과 구별되는 주로 유전적인 신체적 차이들을 가진 인류 집단을 지시하기 위해 보존되어야 한다. … 민족적, 종교적,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집단들은 반드시 인종적 집단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UNESCO, 1951; 코마스, 1961: 304에서 재인용)

진정한 과학으로서 ‘인종’을 논박한 후에도 명백히 존속하는 인종주의 문제에 대한 해법은 어떻게 되는가? 이는 또 역사적으로, 그리고 인종주의와 대학살 직후에 국가들이 ‘인종’에서 만들어낸 정치적 용법과 분리하여 인종주의의 문제를 틀 짓는 것으로 이어졌다. 유네스코의 작업에 유전학자들보다는 인류학자들이 더 강한 영향을 미치면서, 인간 차이들을 설명하는 수단으로서의 ‘인종’에 대한 대안을 찾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 같은 설명에 대한 필요성은 전후 시기 더 많은 사람들이 유럽권으로 이주하기 시작하고 서로 다른 주민들이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한층 커졌다. 문화나 종족성 같은 용어가 인간 차이의 표지로서 ‘인종’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는 그 같은 용어들이 ‘인종’ 관념의 중핵을 이루는 우월함이나 열등함 따위의 함의를 벗어던졌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 서로 다른 문화들은 이제 서로서로 관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세계적으로 집단을 가로지르는 진보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이들은 역사 과정 동안 문화 집단들이 상호작용해 온 정도에서 기인한 것이 된다.(Lévi-Strauss, 1975) 유네스코가 최초로 출판한 열쇠 문헌인 ‘인종과 역사’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에 따르면, 문화는 고립되기만 해서는 거의 발전할 수 없다. 인종주의, 또는 제안에 따르자면 ‘종족중심주의’(ethnocentrism)라고 해야 하는 것의 극복은, 유네스코가 이해하기에, 더 많은 간문화적(intercultural) 지식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충실과 타자에 대한 개방의 화해’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이 같은 접근은 인종주의에 대한 특수한 시각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즉 인종주의는 우리와 다른 것들에 대한 관용을 증대시킴으로써 극복될 수 있는 ‘편견’이라는 개인적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종’에 대한 대안으로서 문화라는 제안과, 인종주의가 존속하는 것은 간문화적 지식을 결여하고 있는 개인들의 문제라는 관념이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편견을 가진 개인들에 대한 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인종이 전부’라는 정치의 우세를 통해 인종주의를 상식으로 구축한 역사적 책임에서 국가를 면제시켜 줌으로써, 국가 수준에서 존속하는 인종주의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종주의의 문제에 대한 이 같은 개별화․심리화는, 골드버그(2002)가 보여준 것처럼, 그 자연주의적 선조들과 나란히 존재하며, 결국에는 더욱 강력해지는 역사주의적 인종주의와 완전히 일치한다. 전후 국가들의 정책에 반영된 유네스코의 관점에 따르면, 서방 사회들이 향유하는 진보에 참여하는 것에서 이전까지 배제되었던 서로 다른 문화 집단들이, 국제 공동체와 서방권 이주 등을 통해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점진적으로 허용된다. 국내 정책에서 이 같은 관점은 동화라는 용어로 번역된다. 민족적 전체의 솔기 없는 일부가 되기 위해 이주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종별성들을 포기할 필요성이 그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침으로써만 서로 다른 이른바 문화적 집단들의 구성원들이 발전하고 진보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식민주의적 역사주의와 아주 일치한다. 그러나 유네스코 입장의 주요 이론가로 활용됨에도 불구하고, 레비-스트로스 본인은 동화라는 목적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접근은 전반적으로 훨씬 양면적인데, 이 접근 역시 그가 유네스코 전통의 실패라고 본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1971년에 개정되거니와,7) 그가 느끼기에 민족들이 서로 한층 근접함으로써 생겨나게 될 문화적 종별성의 희석에 저항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착상은 많은 서방 국가들에서 동화주의 정책을 대체하게 되는 다문화주의와 일정한 수준까지는 일치한다. 이 같은 전환은 차이를 한층 문화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인종주의의 제도화가 진행되는 것과 공존한다. 특히 다문화주의 정치는, 유네스코 기획을 가장 중요한 선구자로 볼 수 있을 텐데, 문화적으로 규정되고 내적으로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비유럽적 기원의 집단들을 물상화하는 것에 주된 책임이 있다. 눈에 보이는 지도부들―이들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요구 때문에 정부와의 연락을 요청받았을 수 있다―과 공동체를 동일시하면서 공동체의 요구가 잘못 대표되어 왔는데, 이 요구가 지도자들이 속한 집단의 이익보다는 이들 자신의 이익에 더 많이 기초하곤 했기 때문이다. 종종 문화적 ‘모자이크’라고 말하는 이 같은 체계는, 인종주의적이고 계급에 토대를 둔 배제의 연속성을 허용하는 정치적․행정적 권력의 불균형을 다루지 않으면서도, 국가들이 그들 사회의 다양한 구성의 풍부함을 긍정적으로 전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인종주의에 대한 공식적이고 국가적으로 공인된 대응이 취한 접근―그것이 암흑 시대의 나쁜 과학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른바 ‘인종’ 없는 인종주의의 효과에 맞서는 데 실패하는데, 인종주의의 기원을 오진하고 그 증상을 잘못 처치하기 때문이다. 인종주의는 문화적 오해의 문제, ‘차이’에 대한 적합한 표상을 통해 조정가능한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결론: 인권의 문제

내가 반인종주의 사고의 주류적 요소라고 부르는 것들이, 오늘날 우리가 인종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수행한 역할을 재분석하는 것은 인종주의와 반인종주의의 이론화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있어 결정적이다. 정치적 담론으로서 반인종주의가 모두 적합하게 역사화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류적 반인종주의 사고가 진화해 온 방식이 오늘날 ‘인종’과 인종주의의 이해가능성에 관해 주로 책임이 있다는 점이 통상 명시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일부 반인종주의 사상가와 활동가들이 제시한 인종주의에 대한 설명이 오늘날 상식적 이해의 구성요소가 된 것이다. 나는 일부 사상가와 활동가라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스스로 조직화된 반인종주의자들이 예를 들어 제도적 인종주의 현상을 공적․제도적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인종주의를 개인의 편견적 태도와 교육 부족의 문제로 여기는 보다 흔한 이해방식과 자주 혼동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이 보다 상식적인 시각이 된 이유는, 이를 주로 유네스코와 같은 제도들이 장려하고 정부들이 채택했으며 인종주의에 대한 능동적인 국가중심적 비판을 진행하지 않았던 반인종주의가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국가들이 민족으로 진화하는 것 ― 이는 보다 제국주의적인 이상과 생명정치적 통제의 요구를 동반했다 ― 과 ‘인종’의 정치 이념 사이의 관계를 역사화하지 못한 이 같은 실패를 확고히 하는 데 국가들이 관여해 왔음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골드버그(2002)가 보여주듯, 전후 시기에 인종주의가 존속한 것은 어떤 합의된 정책의 결과라기보다는, 대학살의 잔학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남은 인종적 역사주의의 논리가 지속된 결과다. 이 같은 사건들 때문에 ‘그것이 추악한 고개를 드는 모든 곳에서’ 자연주의적 인종주의를 근절하려는 전투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는 보다 미묘하고 양면적인 변종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자연주의를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기각할 채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종주의는 그 전통적 의미에서 인종주의적 표현에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스스로를 내세우는 역사주의 외양 뒤에 존속한다.’(Goldberg, 2002: 210) 이 같은 형세를 보고 골드버그는 전후 서방 국가들의 조건을 ‘무인종성’의 조건이라고 묘사한다. ‘인종’이 존재하지 않고, 또 이와 함께, 인종주의가 정치적 주의를 요하는 문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골드버그에 따르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역사주의적 전망의 핵심에 있는 것이다.

[무인종성은] 문명화된 사회 생활의 목적론적 규범이자 바람직한 표준(화)인 백인성(whiteness)을 추정에 기초하여 격상시킴으로써만 은밀하게 획득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을 획득하는 데 필수적인 배제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우려 노력해야 하지만 말이다.(2002: 206)

백인성의 무인종성8) 및 규범으로의 표준화는, 현실적 경험으로서 인종주의의 부인을 가능케 하면서도 사실상 백인화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차별을 실질적으로 존속시키는 체계인 이른바 색맹목의 설치로 이어졌다. 골드버그의 정의에 따르면

인종 문제에서 색맹목이란, 전통적으로 ‘피부색의 문제’로 여겨졌으나 실은 피부색의 문제가 아닌 문제를 본다고 주장하면서도, 거의 모든 것을 백인적인 것으로 보면서 보지 못하는(seeing and not seeing) 것이다,(2002: 223)

주류적 반인종주의 담론과 실천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데 수행한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앞 절에서 증명했듯,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유네스코 전통의 반인종주의는 인종주의를 사이비 과학의 문제로 개별화하면서, 문화나 종족성 등 차이에 대한 대안적 정의를 제안한다. 따라서 이는 인종주의의 기원과 지속에서 국가가 수행한 역할을 부인하거나, 또는 골드버그의 용어로 하자면, 의문시되지 않는 보편주의, 무인종성과 색맹목 등 역사주의적 관점의 점증하는 헤게모니에 대한 인정을 거부함으로써, 인종주의의 문제를 기만하는 데 성공한다. 이 같은 실패는 유네스코 선언의 저자들에 국한되지 않으며, 인종주의에 맞서는 국가 행동과 한 가지 ― 그리고 맥락에 따라서는 지배적인 ― 유형의 반인종주의 활동을 떠받치는 지배적 관점이 되었다. 인종화된 이들의 체험에 행동의 근거를 두는 것의 중요성을 부인하고, 인종주의가 어떻게 비백인․비유럽인들의 개인성 나아가 인간성을 부정하는지를 보지 않으면서 인류를 개별화하는 보편화된 평등의 전망을 내세우는 것이 그것이다.
행동의 토대가 되는 반인종주의 담론의 이런 문제를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뤄보고 싶다. 이것은 골치 아픈 주제인데, 잘못 읽게 되면 피에르-앙드레 타귀에프(Pierre-André Taguieff)(1989, 1991, 1995)와 같은 저자들이 취하는 반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적 태도와 혼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체로, 개인적 권리들의 우선성을 강조함으로써 인종화의 중요성을 부인하고 ‘인종’과 국가의 관계를 무시하는 일부 반인종주의의 실패는, ‘좋은’ 일을 하고 변화를 가져오려는 의지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강조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야말로 많은 연대주의 운동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다. 정의를 이룩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인종주의에 일차적인 영향을 받는 이들의 의견을 반드시 구하지 않더라도 차별의 뿌리에 관한 지식에 접근할 수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종주의를 비롯한 차별에 맞선 권리 중심적 해법의 헤게모니는 아주 강해서, 점점 더 많은 흑인과 ‘소수자’ 집단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발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오늘날 진지하고 자세한 조사 아래 놓여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반인종주의 의제를 내세우는 조직을 비롯한 광범위한 조직들의 행동주의를 통해 진척된 ‘인권’의 패러다임이다.
인권 담론은 비백인과 비유럽인들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실천을 지배하는 인종적 역사주의 체제와 분리될 수 없다. 비록 많은 경우 모르고 그러는 것이 분명하지만, 인권 담론은 궁극적으로 이 체계에 순종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무인종성의 통념을 수용할뿐더러, 인류/인간성과 인종의 관계를 문제삼지 않는 보편주의적 인류관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Balibar, 1991a, 1991b)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인권 담론은 맥락에서 분리된 개인의 우선성을 강조함으로써 무인종성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어떻게 인종주의가 역사주의적 진보의 외양 아래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지, 역으로 ‘인종’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믿음을 조장하는 데 어떻게 의지하는지를 밝혀내기보다는, ‘인종’을 [차별의] 원인으로 고려하는 것이 곧 인종적 차별 자체라고 등치시킨다. 따라서 그것은 역사주의가 무인종성의 외피를 쓰고 조장하는 관점, 즉 ‘인종적 역사들’과 그것이 불러오는 불의들(Goldberg, 2002)은 기회에 대한 개인적 접근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시대로의 도정에서 극복될 수 있다는 관점에 굴복하고 만다.
이 문제는 두 번째 연관된 문제 때문에 악화되는데, 내용인즉슨 인권이 보편화된 개인주의를 촉진하면서 발리바르가 증명한 바 있는 보편주의와 인종주의 사이의 관계(1991a, 1991b)를 다루는 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골드버그가 보여주듯, 무인종성의 이상은 백인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지 않는데, 이들은 탈(脫)인종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색맹목적인 정책의 목표는 예컨대 피부색이 눈에 보이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며, ‘유색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백인이 아닌 한에서, 그들의 피부색 때문에 문제가 생겨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Goldberg, 2002: 223) 무인종성과 마찬가지로 보편주의적 인권 역시 그것과 관련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즉 ‘백인들’이나 서방인들이 세운 표준을 문제삼지 못한다. 그들이 표준을 세우는 까닭은 그들의 헤게모니가 보장되기 때문이며, 그들의 헤게모니가 보장되는 것은 이 표준이 자기네들의 이미지에 맞춰 세워지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와 보편주의가 각각 다른 쪽을 자신 내부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묘사할 때 발리바르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인류에 대한 보편주의적 시각은 그것이 배제하는 것에 준거하지 않고서는 구축될 수 없으며, 따라서 유럽인들의 보편주의는 장차 규범이 될 자기네들의 이미지로 구축되었다.
많은 점에서 인권은 순진한 담론이지만, 몇 가지 의심스러운 반향을 지니고 있다. 백인성을 문제삼지 못할뿐더러 그것이 더 많은 평등과 자유를 위하여 우리 모두가 획득할 것을 장려 받는 인류/인간성의 이상적 전망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묶여 있다고 보는 데서 생겨나는 문제를 인권 담론은 회피하는 동시에 악화시킨다. 이 규범이 말하자면 ‘앵글로-유럽의 도덕 전통’(Goldberd, 2002: 224)의 지배를 확립했던 인종주의의 역사적 실천을 통해서 어떻게 제도화되었는지에 대한 토론을 회피함으로써, 인권은 인종적 역사주의의 논리를 강화시키는 데 참여한다. 그것은 또한 보편주의적 전망으로 소중히 보호받는 인류/인간성을 획득하는 기회를 어느 개인 하나 빠짐없이 갖는다는 가정을 전제한 평등의 불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한다. 간단히 말해서, 인류/인간성에 대한 보편주의적 이상이 유럽적, 백인적 모형 위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인권이 보호하고자 하는 타자들이 저 개인들의 공동체에 입장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개인적 자유와 권리의 평등이 고귀한 대의가 아니라거나, 차라리 이른바 문화들 내부의 이질성과 내적 갈등들을 마찬가지로 무시하는 문화적 상대주의로 후퇴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내가 주장하는 바는, 인권과 문화 상대주의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완전히 인위적이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양자 모두 차별화된 진보의 수준에 따라 조직된 인류/인간성이라는 관점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상대주의자들은 이 다양성의 상황이 변함없이 영속할 것임을 문제없이 받아들이는 반면, 인권의 옹호자들은 평등한 권리의 이상에 입각한 인류/인간성의 동질성을 이룩하고자 한다. 양 입장 모두 보지 못하는 것은, 양자 모두 인간성의 (우월한) 모형의 실존을 암묵적으로 전제한다는 점인데, 이 모형을 배경으로 문화적으로 다르거나 근본적으로 종속된 것으로 파악되는 것들이 지각되고, 이 모형을 향해 그들이 시간 속에서 진보한다고 가정된다.
서방이 이주의 ‘유령’에 대한 강박―테러리즘의 차원이 피난망에 추가되는 데서 동력을 얻는―의 또 다른 국면에 돌입하면서, 여기서 제기된 쟁점들은 더 많은 중요성을 띠게 된다. 전후 시기에 제안된 인종주의에 대한 해법들은 동화에서 인종주의, 통합에서 다양성 관리에 이르는 수많은 정책들을 낳았는데, 어느 것도 인종주의의 집요함을 정의하는 문제, 즉 역사주의에 의해 영구화된 국가와 ‘인종’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 심지어 영국에서 벌어진 스티븐 로렌스(Stephen Lawrence) 살인사건에 대한 맥퍼슨 보고서로 밝혀진 제도적 인종주의에 대한 인정조차, 분명한 이유들 때문에, 실천과 조직적 문화들의 수준에서 실패를 마지못해 인정하는 데 그쳤다. 이 문제들을 영국의 인종적 역사들과 분리하는 것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은데, 그도 그럴 것이, 골드버그가 솜씨 좋게 증명한 것처럼 무인종성은 인종주의에 대한 비난과 ‘인종’에 함축된 인간 능력이나 바람직함에 관한 가정들이 양립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서방 전체를 가로지르는 국가 및 사회의 수준에서 인종주의가 심각해지는 시기에, 만인의 평등한 권리를 향해 실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같은 권리가 역사적 짐이 없는 상태로 오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주류 반인종주의가 차이의 언어를 문화화․종족화하고 이로써 인종주의와 근대 민족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상호성을 숨기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드러낸다면, 인종주의에 맞선 운동 자체가 이 필수적일뿐더러 전혀 완결되지 않은 반성에서 왜 제외될 수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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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포드(Ivan Hannaford)(1996)는 ‘인종’ 관념이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프랑수아 베르니에(François Bernier)가 Nouvelle division de la terre par des espèces ou races qui l'habitent를 (1684년에) 출판하면서였다고 주장한다.본문으로
2) 이 시기에 인종주의의 옹호자 중에서 가장 소란스러웠던 사람 중 하나가 고비노(Joseph-Arthur comte de Gobineau)였는데, 그는 ‘꽁뜨’라는 작위를 사용하긴 했지만, 진정한 귀족이라기보다는 귀족 지망생이었다는 점을 기록해 두자. 고비노나 그 같은 부류들은 태생이 왕족이라기보다는 그 정치적 의제 면에서 왕당파였다.본문으로
3) 골드버그는 역사주의적 관점이 노예제폐지운동(나는 여기에 주로 반인종주의 관념들을 추가하고 싶다)을 고취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운동들은 ‘무인종성’(racelessness)을 인종주의에 대한 자명한 대응으로 단정했는데, 이 같은 관점은 전후의 국가 합리성에서 상식이 된다. 그러나 역사주의가 인종주의를 근절하기보다는, 자연주의를 ‘법적으로 고안된 인종적 질서의 격분을 일으키는 미묘함’(Goldberg, 2002: 203)으로 대체하는 등 실패한 것은, 많은 낡은 인종주의들이 본성(nature)보다 양육(nurture)을 선호하는 외양상 진보적인 태도로 윤색된 채 그대로 남아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본문으로
4)프랑스에서는 1790년과 1791년에 유대인들이 해방되었고, 나폴레옹의 군대가 정복한 많은 나라들에서 유대인들을 해방시킨 데 반해(Traverso, 1996),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가 권력으로 부상한 1869년까지 유대인들이 완전한 해방을 부여받지 못했다.(Meyer and Brenner, 1996)본문으로
5)나는 인종주의의 실질적/잠재적 피해자들 자신이 다른 이들과 협력하여 전개하는 인종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로 자결적 반인종주의를 사용하는데, 그 뿌리는 미국 민권 운동의 유산에 있으며 다양한 민족적 맥락에서 적용되면서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한다.(예컨대 프랑스 마그렙 운동(Mouvement beur)이나 영국 감시 그룹(monitoring group) 등.)본문으로
6) 이 주장은 새로운 문화주의적 또는 차별주의적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저자들(Taguieff, 1991; Stolcke, 1995 참조)의 주장에 반하는 것이다. 이 저자들은 당대 곧 전후 인종주의는 더 이상 차이에 대한 표현형적이거나 생물학적인 설명에 의존하지 않으며, ‘인종’의 타당성에 대한 과학적 반박을 전적으로 수용했다고 주장한다. 타귀에프는 프랑스 국민전선의 사례를 인용하는데, 이들은 이주자의 확산에 직면하여 자기네 문화를 보존할 프랑스인의 권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주자들은 양립할 수 없는 문화적 집단들에 속하고 그들 역시 자기네 ‘본토’ 환경에서 역량을 훨씬 잘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발리바르(1991a)가 보여주었듯, ‘차별주의적’ 인종주의 또는 ‘인종’ 없는 인종주의는 근대적 반유대주의라는 외양으로 이른바 신인종주의가 도래하기 훨씬 전에 실존했다. 반인종주의는 탁월한 차별주의적 인종주의 형태로서, 모든 형태의 당대적 신인종주의 특히 유럽성과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으로서 이슬람이라는 지각에 근거를 두는 이슬람혐오증을 묘사할 수 있다.본문으로
7)레비-스트로스가 유네스코 기획에 대한 그의 입장을 조정한 것은, 유네스코의 초청으로 선언 20주년 전야에 그가 발표한 논쟁적 연설의 맥락에서였다. 이는 Le Regard éloigné (1983)에 ‘인종과 문화’로 재수록된다.본문으로
8) 골드버그나 다른 이들이 흑인성에 대비되는 백인성을 미국의 맥락에서 사용하는 데 반해, 유럽에서는 이것이 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점을 당대에 지적하는 것은 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예컨대 동유럽의 백인 이주자와 피난민들에 반대하는 인종주의가 증가하면서 인종주의에 대한 저작에서 자주 사용된 흑-백 이분법을 문제삼는 것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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