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9.77호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의미와 과제

김혜진ㆍ박준도ㆍ안보영ㆍ오상훈ㆍ정영섭 |
<일시> 8월 27일 월요일 8시반
<장소>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사회> 정영섭 노동국장
<토론> 김혜진 여성부장, 박준도 인천지부 집행위원, 안보영 회원, 오상훈 회원, 민주노총 서울본부
<속기·정리> 이승운 편집부장·정지영 편집국장




정영섭 지난 두 달 동안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전사회적인 주목을 받으며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점거투쟁과 활발한 지역연대 투쟁을 통해서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지지를 받는 투쟁으로 발전했습니다. 향후 이 투쟁의 발전과 승리, 나아가 비정규 악법 폐기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할 때, 현재 이 투쟁을 되짚어 보고, 이후 과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의 자리는 그런 논의를 해보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우선 투쟁의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특징과 투쟁의 의미에 대해 논의해보죠. 7월 1일 비정규법안 시행령이 실시되면서 많은 비정규직 투쟁이 나타날 것이라 예측되었고,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투쟁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오상훈 동지가 이런 지점들을 포함하여 노조운동 내에서의 인식과 판단은 어떠한지를 우선 말씀해 주시지요.

'여성',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투쟁으로서 이랜드-뉴코아 투쟁

오상훈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7월 비정규직법안 시행 이후 벌어진 비정규직 투쟁 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것과 민간서비스 부문, 그 중에서도 특히 유통 부문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투쟁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투쟁이 이렇게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단지 이런 특징 때문만은 아닌 듯해요.
지난 7~8년 간 계속되어온 비정규직 투쟁이 작년 11월 30일 비정규직법안 통과 이후에는 상당히 무기력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법안 통과라는 결과로 보면 비정규직 투쟁은 실패한 것이었지만, 그 때 열심히 투쟁했던 성과들이 이번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단지 비정규직 투쟁뿐만 아니라 1996~97년 총파업 이후, 가까이는 2002년 발전노조 파업 이후 매년 패배하며 침체되었던 민주노조 운동이 이 투쟁이라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몸담고 있는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유통과 공공 부문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전략적으로 사고하며 사업을 펼쳐왔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조직화는 공공노조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함께 했고, 유통부문은 기존의 노조, 즉 이랜드, 까르푸, 뉴코아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가 작년에 구성되었는데 여기에 집중적으로 결합, 지원하는 것을 통해서 했었죠. 이전에는 투쟁사업장 결합방식이 당면 투쟁의 승리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 사업은 각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1~2년 이상 결합했던 거죠. 이러한 과정이 나름의 성과를 가져온 것이라 생각해요.

김혜진
김혜진 말씀하신 것처럼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상당히 고무적인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적인 연대와 운동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 투쟁을 통해서, 그리고 비정규악법을 계기로 터져 나온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지금 이런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아직 끝을 보지 않은 이 투쟁의 이런 의의들을 어떻게 살려내고 확대시킬 수 있을까하는 것일 겁니다. 특히 여성 노동권의 부분에 있어서도 현실에 존재하는 이런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어떻게 여성권과 노동권의 결합이라는 실천적인 운동 형태로 발굴해낼 수 있을지가 정말 고민이 되는데,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들도 많이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안보영 저는 7월 8일부터 투쟁에 결합했어요. 결합했던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서 두 분이 말씀하셨던 투쟁의 의미들을 공유할 수 있었는데, 저에게는 투쟁 결합의 계기가 되는 부분에서 약간 다른 지점도 있었어요. 이랜드 조합원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느낀 부분들인데, 이 분들은 말 그대로 열악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죠.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대부분 기혼이라 육아와 가사도 맡고 있는 노동자들이에요. 이들이 점거라고 하는 높은 수준의 전술을 취한 데에는 단지 지도부의 말만을 열심히 따랐다기보다는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투쟁에 결합했을 때마다 느꼈던 주체의 역동성이라는 부분이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이 투쟁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영섭 이야기 한 것처럼 이 투쟁은 지역 차원의 조직화, 지역 차원의 연대가 매우 두드러졌죠. 유통사업장의 성격상 전국의 여러 지역에 매장이 흩어져 있고, 그래서 매장 점거 투쟁이든, 불매운동이든, 각 지역의 점포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죠. 그렇다보니 당, 노조, 학생, 사회단체 등 각 지역의 여러 단위들이 지역적으로 결집되는 효과를 낳기도 했죠. 이런 지역적 차원의 조직화, 연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죠.

지역 차원의 연대운동으로서 이랜드-뉴코아 투쟁

박준도 2006년 까르프·뉴코아·이랜드 3사 노조가 공동투쟁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투쟁의 성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가 까르푸 노조와 이랜드 노조의 통합, 즉 비정규직 모두를 포괄하는 이랜드 일반노조의 탄생이고, 다른 하나가 이 투쟁에 결합했던 단위들을 중심으로 지역 연대와 노동조합 조직화를 어떻게 동시적으로 전개할 것인가라는 문제였죠. 이 중 지역연대의 문제의식만 돌아보죠.
대표적인 곳이 서울 북부, 서울 상암, 그리고 인천입니다. 우선 서울 북부는 서울본부가 전략조직화라는 차원에서 주도한 곳이기도 하고, 지역사회단체들이 이런 조직화 사업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서 선전사업들을 진행한 곳입니다. 지역사회단체들과 함께하는 전략조직화 사업이 고민의 축이었던 셈이죠.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은 민주노동당 마포, 서대문, 은평, 용산 등 지역노동위원회가 주도한 점이 큽니다. 이곳은 전략조직화 사업이라는 맥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이 이 과정에서 활동 변화를 모색하려 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이 선거정당을 넘어 좀 더 운동적으로 접근하려 했던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인천은 사회단체들이 주도했습니다. 지역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단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조직화사업이다 보니 유통노동자들을 조직한다는 것의 의미, 지역운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둘러싼 공동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토론이 오랜 기간 진행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의 지역운동은 10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조합에 가입하는, 대대적인 조직화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의 역할은 결정적이었습니다. 국가시설이라는 이유로 노조활동에 제약을 두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하던데, 지역위원회의 지속적인 실천이 이를 깨뜨린 것입니다. 인천지역은 조직화라는 차원에서 성과는 뚜렷하지 않지만, 한데 모이기 힘들었단 다양한 정당·지역사회단체들 사이에 반신자유주의 운동으로서,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운동으로서 지역운동이라는 공통의 합의점을 찾고, 정파 간 벽을 뛰어넘는 신뢰와 호흡을 맞추었다는 점이 성과라 하겠습니다. 이 덕에 뉴코아·이랜드 공동투쟁이 지역차원에서도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양쪽 모두 가장 큰 성과는 두 지역 모두 비정규법안의 시행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논의 긴장이 먼저 형성되었다는 점이겠죠.

오상훈 민주노총의 지구협의회 차원에서 보자면, 이미 투쟁 전부터 조직화 과정에 개입했던 경험들이 있었고 노조와 연대의 틀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초기부터 활발하게 투쟁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북부지구협의회의 경우 북부 유통 조직화에 결합했었기 때문에 북부 이랜드 사업장을 중심으로 투쟁에 결합했고, 상암 월드컵지역은 이미 지역대책위가 있었죠. 남부는 애초 유통에 결합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투쟁이 일어나자 시흥점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어요. 다만 아쉬운 것은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민주노총 차원에서 이 투쟁을 받아 안았지만, 실제로 이 투쟁이 단위 노조나 지역 차원에서 일상적이고 안정적으로 진행되지는 못하였다는 거죠.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연대하고 그 성과가 향후 지역 연대의 흐름으로 남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은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남아야겠죠. 이런 연대 투쟁의 경험이 노조, 당, 단체를 망라한 지역 연대 운동의 흐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상암 월드컵지역의 경우 현재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지역 연대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에 서부 지구협의회와 지역의 다른 노조가 적극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지요. 북부의 경우 지금까지 많은 것을 해왔는데, 이제는 어떻게 아래로부터의 흐름을 만들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안보영 저는 지역에 거점이 있다기보다는 지금 마포구에 살고 있기도 해서 사회진보연대 회원으로서 참가했어요. 요즘 이 투쟁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전 영상들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 영상에서 민주노동당 용산, 서대문, 마포, 은평 지역위원회 활동가들이 아무래도 지역에 뿌리박고 활동하는 사람들인 만큼 상암점에 긴밀하게 결합하고 투쟁을 지역의 의제로 풀어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학생 시절 여름 선봉대, 겨울 투쟁단 같은 식은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이 있었고, 지역 정당·사회단체의 결합은 훨씬 일상적이고 더 긴밀했었던 것입니다. 이 투쟁은 그런 저의 고민이 실천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저 말고도 사회진보연대 회원들 중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결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물론 사회진보연대가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처럼 지역에 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투쟁의 중요성이나 내용이 많이 알려져서 회원들이 결합할 요인들이 많았는데도 회원들의 결합은 그리 많지 않더라는 거죠. 상암점 근처에 살고 있는 회원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이번 투쟁에서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이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활동을 조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혜진 백번 동감하는 말입니다. 이랜드-뉴코아는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의도하지 않아도 위치 자체로 투쟁이 선전이 되고, 이슈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그 투쟁에 관심있는 친구들이 저에게 연락해서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지역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내기에 좋은 기회인 것 같고, 실제로 이 투쟁의 의의에서 이런 부분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데 사회진보연대는 이런 지역적 운동을 만들어내는데 다소 취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서울 상암이나 강남만 해도 상당수의 회원들이 있는데 그 회원들은 그 투쟁하는 공간을 지나치면서 분명히 관심이 많이 있었을 것으로 아는데 자신의 역할과 자신의 자리는 무엇인지 애매했을 것 같아요. 제가 아는 한 회원은 노동자들이 나누어주는 유인물을 열심히 챙겨보는 것밖에 일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회원 조직화뿐만이 아니라 조금 더 역동적인 투쟁 계획을 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도 고민이 많이 되네요.

박준도
박준도 인천에서 처음 투쟁을 벌일 때는 이랜드 노동조합이 자신을 조직하고 뉴코아 노동조합과 공투를 성사시키고 단체가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파업전야제를 기점으로 단체·정당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산별노조들과 개별 노조들도 동참하였죠. 자발적으로 연대를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기반을 두어 독자적으로 봉쇄투쟁을 하기도 했죠. 물론 뉴코아·이랜드 노조가 활동의 중심에 서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전국동시다발 투쟁이후 사태가 조금 이상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국동시다발 투쟁은 인천지역에서 다른 지역 단체들, 개인들의 참가를 확산시켰지만 민주노총 인천본부가 조직적으로 참여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역으로 지침에 의거한 활동풍토를 되살려 놓았던 거죠. 지역단체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적극적인 활동을 '단체들이 설친다'는 표현을 써가며 인천본부는 불편해했고, 개별적으로 참가했던 노동조합들 역시 지역본부 체계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역본부가 투쟁 기조를 낮추거나 왜곡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면 그나마 문제가 덜 했을 텐데, 지역본부가 뉴코아·이랜드 노동조합의 투쟁기조는 물론 총연맹의 투쟁기조조차도 부담스러워하면서부터는 봉쇄투쟁이 아주 힘들어졌죠. 이를 강제하려고 '총연맹의 지침'이라는 식으로 설득했는데 이는 논의 중심을 기존 노조체계로 되려 더 끌고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 이후 자발적인 투쟁계획 수립은 더더욱 어려웠죠. 투쟁주체들과 일체의 협의도 없이 지역본부가 일방적으로 투쟁전술을 바꿔 버리는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속수무책인 상황이 되고, 그러다 보니 자발적인 활동에 근거한 연대의 실현보다는 지도부 비판, 지도부 프락션과 같은 과거 정파활동 행태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독인 줄 알면서 현실의 투쟁일정상 어쩔 수 없이 먹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거죠.
이 경험을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연대운동에서건 사회진보연대의 회원활동에서건 말이죠. 지역연대운동이 체질을 바꾸려면 연대운동의 원리를 바꾸어야 하듯이 사회진보연대도 체질을 바꾸려면, 회원활동의 전개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공지와 집회 참가 방식보다는 토론과 교류에 기반을 둔 공통의 합의점 형성, 자기 결의에 기반을 둔 다층적인 실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형태들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거죠.

전국적인 봉쇄 투쟁 전술, 열린 논의 공간, 그리고 연대의 확장

박준도 지역차원의 운동, 그것도 비정규직 운동이 활성화 된 데에는 전국적인 봉쇄투쟁 전술이 매우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평택 투쟁이 대추리, 도두리로의 집결을 강조했다면 이랜드 투쟁은 전국적인 매장봉쇄투쟁을 요청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조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겠지만 분명한 것은 대추리, 도두리로의 집결방식의 투쟁보다는 지역별 매장 타격 투쟁이 훨씬 많은 주체들의 참여를 가능케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당장 전술 주체만 놓고 보더라도 더 많은 주체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매출 0 투쟁, 봉쇄 투쟁 전술은 지역사회에 투쟁의 공간을 열어놓았습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그것도 거리 한복판에서 열린 투쟁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 것이죠. 지역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이를 능동적으로 기획하려는 주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매우 다양한 의견들과 투쟁의 경험들이 이 공간에서 교차했을 것입니다. 문화적 교류는 말할 것도 없구요. 이를 어떻게 가꿀 것이며 이런 발상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교훈점이 될 것입니다.
한편 저는 이랜드-뉴코아 노동조합이 연대 단체의 결합에 매우 열려있다는 점도 이런 투쟁이 가능하게 하는데 매우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노조가 파업 투쟁을 할 때 노동조합 쟁의대책위원회(이하 쟁대위) 회의에 연대온 모든 단체의 결합과 의견을 요청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랜드 노동조합은 이 점과 관련해서 특히 개방적이었습니다. 점거를 지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시점에서 지도부가 대의원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과거 일면식도 없던 연대 단위의 의견을 경청하더라는 거죠. 이런 과정이 이 투쟁에 결합한 모든 연대단체들을 고무시킨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사회단체들로 하여금 책임 있고 힘 있게 결합할 수 있게 한 동력이 된 것이죠. 이는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지금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을 조직하는 데도 상당한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지도부의 판단력, 조합원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인데, 이 점 역시 최근 노동조합 투쟁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죠. 뉴코아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외주화 저지 투쟁을 준비하려 할 때, 잠시 정규직,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어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위원장이 직접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는 삭발을 함으로써 갈등을 투쟁의 힘으로 모아냈죠. 이랜드 노동조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합원들의 투쟁조직화가 늦어 6월 공동파업결의를 주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 이랜드 노동조합 지도부는 파업할 수 있을 때 파업 못하는 조직이, 조직하고 나서 나중에 파업 할 리가 없고 파업을 통해 열리는 교육토론 공간이 오히려 결의를 높일 수 있다며 조합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내면서 파업을 결의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동파업이 조직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랜드 노조의 월드컵점 점거 역시 원래는 하루, 이틀 계획이었는데 조합원들의 요구가 빗발치면서 무기한으로 간 것이라던가, 점거 계획이 없던 뉴코아 노동조합이 강남점 점거 투쟁으로 이어간 것 역시 마찬가지였죠.

오상훈 보통 여론이나 언론에서 이랜드 홈에버가 높게 평가를 받는데, 저는 뉴코아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홈에버는 정규직, 비정규직 비율이 반반이고, 연봉 차이도 그리 크지 않고, 항상 같은 공간에서 일했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이 그리 크지 않아요. 게다가 까르푸 시절부터 정규직이 직접 비정규직을 조직하면서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욱 그랬죠. 하지만 뉴코아의 경우에는 조합원 1,500명 중 비정규직이 없었어요. 이 투쟁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년부터 비정규직을 조직한 거예요. 사측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정규직은 강제 전환 배치, 비정규직은 외주화된다는 것을 파악하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힘의 측면에서나 상징적인 측면에서나 비정규직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처음 조직할 때만해도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못 믿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비정규직과 함께 하고 있잖아요.
실제 뉴코아 노조는 유니언숍으로 지금까지 쟁의에서 패배한 적도 없었고, 뉴코아에서 이랜드로 넘어올 때도 해고 없이 넘어올 정도로 상당히 강한 노조였어요. 이런 노조가 현재 파업참가율이 절반에 불과한 데도 계속하고 있어요. 1,500명 조합원 중 15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끝까지 가고 있는 것이죠. 현장은 투쟁 이후 다시 조직할 수 있지만, 이 투쟁에서 패배하면 조직할 수 있는 현장 자체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이에요. 이런 점들을 봤을 때 이 투쟁에서 뉴코아 노조의 결의와 마음가짐, 노력, 실천을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쟁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들의 투쟁 vs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불러오는 투쟁

김혜진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지켜보면서 신기한 점이 있어요. 지금까지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운동진영은 물론이거니와 여론상으로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죠. 이런 경우도 흔치 않은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욕 안 먹는 투쟁이 있었나 싶기도 해요. 그렇다면 이 투쟁이 이렇게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어떻게 분석하고 판단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오상훈
오상훈 80만원 받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대변되고 있죠. 그 동안의 노동자 투쟁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대공장 남성 중심의 투쟁이었다가 그 다음은 대공장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이었죠. 사실 이들은 이미 집단화 되어있거나 나름대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경우에요. 하지만 유통노동자의 경우 조직되기 힘들다고 여겨졌고, 실제로 지금도 조직이 잘 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유통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약 120만 명이고 그 중 대다수가 비정규직입니다. 이들 중에 조직된 인원이 지금 이랜드-뉴코아 2,700여 명 뿐인 거예요. 게다가 유통은 간접고용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조직화하기 힘든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조직하기 쉬운 부문에서 조직해서 투쟁을 만들고, 그 투쟁을 엄호하는 방식이 주였죠.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투쟁이 우리에게 운동의 원칙을 다시 상기시킨 것이 아닌가 해요. 가장 힘들고, 가장 열악한 단위부터 조직하고, 그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엄호하는 것, 그것이 운동의 원칙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향후의 운동도 그런 원칙 하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박준도 물론 이 투쟁의 의미를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지만, 저는 좀 더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노동자, 저임금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라서 이 투쟁이 호소력을 가졌다는 것은 절반만 맞는 해석이라는 거죠. 이전에도 최저임금투쟁과 같이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이번과 같은 관심은 없었어요.
저는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이 6월 30일에 점거를 들어가서 비정규직법안 시행령이 실시되는 7월 1일에 무기한 점거를 선언한 것이 이 투쟁을 폭발적으로 만든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외주화를 통한 간접고용의 확산, 이를 위한 0개월 계약, 2년 이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계약해지라는 듣도 보도 못한 고용불안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것이 알량한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이더라는 것입니다. 비정규직법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엄청난 균열이 불거진 것이죠. 지배세력들은 비정규직 관련 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선전을 했는데, 6월 30일과 7월 1일 이틀사이 이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거죠. 이렇게 대중의 인식과 이데올로기에 균열이 형성되면서 이 투쟁이 폭발력을 띤 것이죠. 이 과정에서 투쟁의 보편성이 획득된 것이라는 겁니다.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게 된 것이죠.

오상훈 자세히 따져보면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어요. 이 투쟁이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6월 30일 이전이고, 언론에서는 실제 뉴코아를 먼저 주목했죠. 그리고 비정규직법안으로 인해 해고가 일어날 것이라 했던 사업장은 뉴코아 말고도 부지기수였어요. 그렇다면 왜 언론이 뉴코아의 0개월 계약 등을 주목했겠어요? 그것은 단지 비정규직 법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거죠. 비정규법안 때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한 달에 200만원 받는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였다면 과연 이만큼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겠어요? 저는 유통 부문이 전국에 퍼져있다 보니 할인마트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만한 사람들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더욱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박준도 그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상훈 동지처럼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민주노총이 그나마 이거 해서 욕 안 먹는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이런 식으로까지 평가가 나아간다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파업 초기 집회발언석상에서 금속노조의 FTA파업과 뉴코아·이랜드 파업을 언급하면서 금속노조의 파업은 욕먹지만 뉴코아·이랜드 파업은 욕 안 먹는다는 식으로 맞비교하는 식의 발언이 꽤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분위기가 있다 보니 심지어는 80만원보다 조금 더 받는 금속 노동자들조차 자신의 저임금을 딱히 호소도 못하더라는 것이죠.

김혜진 이 투쟁을 향후 대중운동으로 더욱 확산하려면 박준도 동지의 말처럼 대중의 균열을 끌어내는 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는 해요. 그런데 오상훈 동지의 말처럼, 사람들이 감정적 동일성으로 인해 어떤 충격을 받아서 그것이 정치적 각성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주변에서 많이 나타나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사는 동네에 대형 유통업체가 생기면서 지역 전체의 화제가 되고, 지역은 청년층 대다수가 나중에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그 유통업체에 취직을 했어요. 그런데 이랜드-뉴코아 투쟁 이후로는 사람들이 그 투쟁의 내용을 자신의 일상과 떨어질 수 없는 이야기로 인식하면서 자주 대화의 소재에 오르죠. 그렇지만 비정규법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대중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낼 수 있도록 지속적인 계획이 필요하죠.

안보영
안보영 저는 오히려 이데올로기적 균열이 비정규직법안을 둘러싸고는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는 의견에 동의해요. 이제 사람들이 비정규직법안이 보호법이 아니라는 정도까지는 인식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래서 이 투쟁이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의 양보를 통해 해결 가능하다는 식의 이데올로기까지 균열을 내고 있는가라는 점에서는 의문이 들어요. 투쟁 주체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함께 투쟁하고, 많은 활동가들이 이 공동투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대중적인 인식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김혜진 중요한 것은 아직 이것은 안됐고, 이것은 이루어졌고 등의 평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균열을 계속 확장시켜내는 것과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분할을 깨는 연대 투쟁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여전히 남겨진 과제인데 다만 중간 평가 수준에서 향후 방향을 찾기 위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죠.

박준도 한편에서 우리 어머니 같은, 우리 누이 같은, 저 분들이 쫓겨나게 생겼다, 도와 달라, 이로 인해서 대중들이 감정적으로 동화되어 움직였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면이 있죠. 하지만 이 보다는 이 사람들은 평소 내 하인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되든 내가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저들도 나와 똑같은 시민이고 노동자더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좀 더 깊게 파고들어가야만, 실제 지배 이데올로기에 파열을 내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상훈 향후 투쟁에 있어서 그런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욕을 그나마 안하는 것은 이들이 매우 열악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란 점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냉정히 평가할 것은 평가해야죠. 자기가 상대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다시 인식한다는 것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노동자 의식이에요. 자신의 노동권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남한 사회에서 상대방의 노동권을 인식한다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인데, 단지 인식의 균열의 수준이라도 과연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냐는 거죠.

박준도 물론 오상훈 동지의 말이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운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려 한다면, 다른 면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초기에 점거할 때 많이 나온 이야기가 "고객님, 다음에 더 큰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였어요. 이런 방식은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 대중의 통념에 묻어가는 거죠. 이런 방식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노동자로서 같은 시민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주장해야 이후 운동의 전망을 밝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보영 그와 관련해서 유의미하게 평가할 지점이 있는데, 최근 들어 조합원들이 "고객님, 다음에 더 좋은 서비스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발언을 거의 안 해요. 오히려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나는 노동자로서 주체고, 여기서 투쟁하는 것이 정당한 나의 정당한 권리이며, 이 문제에 있어서 당신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랜드 노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런 지점을 더 확대하고 강화해야 합니다.

정영섭 그렇다면 이번에는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서 의미를 살펴봤으면 합니다. 임금 80만원 받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라고 상징화되어 있죠.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시혜적인 연대를 넘어 여성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로

박준도 이 점에 관한한 뉴코아·이랜드 투쟁에 대해 조금 야박한 평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뉴코아·이랜드 투쟁에서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들의 성별 편중이 있어요. 남성들이 앞으로 나오고 여성들은 뒤로 빠지는 식 말입니다. 뉴코아 노동조합이 이런 현상은 조금 더 심한 편인데, 조직 체계상 대표들의 성별만 보아도 그렇죠. 지도부는 별도로 치더라도 이랜드 노동조합은 분회장은 대부분 여성이지만 뉴코아 노동조합은 지부장조차도 대부분 남성이잖아요.

오상훈 뉴코아는 특성을 잘 봐야 돼요. 지부장이 다 관리자, 과장이에요. 회사 직제가 그대로 옮겨온 것이죠. 조합원들은 지부장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데, 회사에서 엄마, 아빠 역할을 하던 사람이에요. 직장에서 일할 때의 구조가 똑같이 옮겨 온 거죠.
그리고 현 단계에서 이제 막 조직된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받아 안아서 싸우고 있는 모양새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박준도 지금 현재 이랜드, 뉴코아 투쟁에서 여성노동권 쟁취라는 차원에서 평가했을 때 문제가 있다면 무엇 때문인가라는 점을 봐야 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을 호명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요. 여성노동자라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 우리 누이라는 식이라는 거예요. 지나치게 동정심에 호소한다는 거죠. 물론 그거 필요 없다, 그런 식은 반동이다, 이렇게까지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의 호명이 너무 잦고 이런 식의 호명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을 주체화할 수 있는 호명 방식, 조직 체계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이 점에 관한한 너무 둔감하다는 거죠.
민주노총이 이 투쟁을 받아 안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체화방식은 더 문제고요. '우리 불쌍한 주부들, 가정에서 엄마 역할 해야 하는데, 여기 와서 싸우고 있다, 집에서 엄마 역할을 하도록 돌려보내줘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상급단체 간부들이라는 사람들이 이야기해댑니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엄마의 규정, 가정을 지키는 주부로서의 규정에 근거해서 일자리가 아니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은연중에 하는데 이건 말이 안 되죠.

안보영 제가 보기에는, 조합원들이 내가 엄마고, 자식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는 얘기를 하긴 하지만, 사실 조합원들은 스스로를 주체로 호명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라면, 민주노총이나 연대하시는 분들이 오히려 정서에 기대고, 동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너무 안 된 사람들을 도와 달라는 식으로 발언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주체인 여성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나는 노동자라고 어느 정도 주체화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연대 단위들은 이런 주체의 의지나 스스로의 규정을 무시할까라는 생각을 투쟁에 결합하는 초반부터 했어요.

오상훈 민주노총이 맨 날 10점, 20점 받던 애였는데, 이번에 50점 받았어요. 그런데 왜 80점 90점 못 받느냐고 하면 좀 갑갑한 면이 있습니다. KTX 투쟁하고 비교해보자구요. KTX 투쟁은 정말 말 그대로 시혜적인 투쟁이었어요. 우리 어여쁜 여승무원들이 해고당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냐, 연대하는 단위들이 거의 다 그랬어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투쟁은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가장 결정적으로 '80만원 받는'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규정에서 이 각각의 주체성이 각각 강조됐던 부분이 있다는 거죠. 반면에 KTX 투쟁은 시혜의 대상으로서 '여성'승무원만 강조되었다는 거죠.

김혜진 지금 상징화되어 있는 이랜드-뉴코아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한 달에 80만원 받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에요. 그런데 현실을 폭로하고 상징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저임금 여성노동자'라는 호명과 그것을 폭로하는 방식이 어떤 사실의 어떤 면을 강조하느냐, 대중들의 어떤 정서에 호소하려 하는 것이냐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나 아내의 위치를 전제하는 '여성'이라는 호명이 사회적으로 시혜적 대상, 약한 대상, 신사적인 정신으로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와 맞물리는 게 된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 봐야 해요. 그리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운동의 효과를 낳을지도 고려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 투쟁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투쟁한다.'는 그 노동자들의 발언처럼 역사적인 자신들의 임무를 인식하고 투쟁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합니다. 바로 스스로의 주체성과 역동성으로 깨어나는 여성 노동자들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자의 학교라고 하는 파업 과정이 그러할 수 있도록 하는 연대단위들의 역할도 있을 것이고요. 특수하게 불쌍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니라 바로 그 여성들이 이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이 시대 노동자들의 모습이라는 보편성을 획득해나가는 운동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 이것은 애초부터 우리뿐만이 아니라 여러 단위에서도 고민이 있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대단위들의 발언이나 최근 조금씩 줄어드는 연대단위들의 대오를 보면서 이 투쟁에 대한 의미 부여나 입장만큼 실제로는 잘 받아 안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개인적으로도 이후 계획과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저런 고민 중에 있습니다.

정영섭 모두가 이 여성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서 주체화하고 노동권을 제기하는 부분을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외부에서 연대하는 단위나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이런 제기와 요구를 못 받아 안고 있다는 평가도 어느 정도 공통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주체화할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평가에 기초해보면 외부 연대단위가 막고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문제의식을 가진 연대단위로서 고민해야 할 지점도 있겠지요.

가족의 문제

안보영 조합원들과 만나다보면, 여성노동자들이 왜 이런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가는 많이 아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개입하고 싶은 점이 그 지점인데, 조합원들과 같이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가족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족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고 자신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가 이런 것들 말이죠. 그런데 이건 여기서도 개인사로 치부됩니다. 이랜드 노동조합과 뉴코아 노동조합이 총회했을 때 제가 조합원들 토론 자리에 낀 적이 있는데, 그 때 조합원들이 '지금은 그래 이판사판, 갈 데도 없고 계속 해야 하는데, 남편은 뭐 어떻게든 해야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가족은 각자 알아서 정리하자는 거죠. 장기 투쟁이 되면서 가족과의 문제가 다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가족이라는 공간이 사적이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까 이런 얘기가 공개적으로 되기보다는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 감내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워낙 상황이 힘들기 때문에 그런 얘기까지 못하는 거예요. 당장에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사항이, 일주일에 두세 번 보이던 조합원이 한 번도 안 보이는데 이 사람 어떻게 할 거냐, 그런 건데. 그래서 이게 논의의 대상이 안 되는 거죠. 저도 얘기를 하고 싶고 한데, 절실하게 필요한데, 어떻게 할 지, 우리들의 경험도 일천해서 얘기를 꺼내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박준도 7월 말 일부 조합원들이 사업장 복귀하면서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한 달만 투쟁하겠다는 남편과의 약속 때문이에요. 가족, 특히 남편의 불편한 시선으로 인한 동요가 컸던 거죠. 상황이 이렇다면 1차 소속 집단에서 동의를 구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조직적인 대안이 없으면 결국에는 여성노동자들 중 일부 소수만이 남아서 끝까지 가는 방식이 되고 말 겁니다. 가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조직적인 대안이 있어야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서 현실에서의 지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이론적인 논의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오상훈 가족들에게 7월 31일까지다, 8월 1일 자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온 것은 맞는데, 7월 말에 복귀를 많이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1, 2차 점거 농성이 침탈된 이후 지도부 공백 상태가 발생하면서 혼란스러웠던 것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7월 31일까지라는 남편과의 약속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설득도 못 한 거죠. 물론 저도 답이 안 나오거든요.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했을 때, 그냥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투쟁을 기획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투쟁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어떻게 주체로 거듭 나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서 사적인 영역이라는 가족의 문제를 어떻게 제기할 것이냐라고 했을 때 가족대책위 같은 방식으로 사적인 영역을 공식적인 영역으로 끄집어낼 것인지, 그렇지 않아도 조합원들은 그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하는 이 판국에 그 얘기를 공식적으로 끄집어내서 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얘기를 해보자고 해야 하는 건지, 답이 잘 안 나와요.

박준도 미국의 서비스 노동조합(SEIU)의 히스패닉 노동자 조직과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유의미한 것이 있다면 인종차별문제를 제기했던 사회정의운동과 결합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유비를 해보면 여성노동자 투쟁이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서 의미를 띄려면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죠. 가족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차원의 운동 여성 억압에 비판을 제기하는 운동과 결합을 해야 해요.

안보영 이 문제는 인종차별 문제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인종차별 문제는 보편적인 정의로 동조할 수 있는데, 이것은 내 공간이라는 거죠. 당장 남편과 적대적인 전선을 그을 수가 없어요. 훨씬 조심스러운 거고, 사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이 투쟁을 두고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못하냐고 접근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하는데, 그것을 못 찾는 거고, 그것을 못 찾게 하는 조건이 상당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또 누군가에 의해 교육받고 조직되지 않아도 여성조합원들 스스로가 주체화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변화가 보이기도 해요. 엊그제 상암 월드컵에서 투쟁을 할 때, 상암 직무대행 홍선영 동지가 발언을 하시는데, '사람들이 집에 가서 밥 하라고 그런다, 여기 나와서 뭐 하는 거냐고 하는데, 물론 나도 오늘 나오면서 자식한테 따뜻한 밥 한 끼 못해줬다. 그렇지만 밥 한 끼 못해준다고 해서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자식이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어머니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이 발언 들으면서 견고하게 구성된 모성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데, 이건 그런 이데올로기에서 비껴난 얘기구나 생각했어요. 엄마로서 역할이, 자신의 모성이 밥 해주고, 챙겨주고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고 모순에 맞서 싸우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이라고 조합원들 스스로 규정하시는 거죠. 당장에 활동가들이 안으로 들어가서 파열구를 내고, 그런 건 당연한 것인데, 그렇지 않은 지금 현재의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변화의 조짐이 없거나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오상훈 분리해서 볼 것이 있는데, 스스로 주체로 형성되고 있는 측면이 있죠. 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에 대해 저는 답을 못 내놓겠다는 것이죠. 투쟁의 계획은 낼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당장의 이혼 위기에 처해있는 일들, 애들이 비뚤어져 나가는 일들 이런 것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는 거죠. 극단적으로 질문을 던져요. '우리 남편이 낼 모레까지 투쟁 안 접으면 이혼하자고 그랬다, 실제로 그 갈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이혼하는 것은 좋은데,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하냐.' 연대단위에게 질문을 던져요.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이혼하세요, 그럴 거예요? 이건 그냥 사적인 대화로 오고 가는 것인데, 지금은 다 이렇게 풀고 있는 거예요. 대책을 못 내놓고 있는 거죠.

김혜진 투쟁에 결합하면서 여성노동권에 대해서 질문이 나오거나 뭘 해야 한다고 할 때 딱 부딪히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에요. 실제로 입장 외에 연대하는 단위가 뭘 할 것이냐가 굉장히 어려운 지점이라는 것이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있어서 이러한 여성 노동자들의 고유한 문제를 파악하고, 여성권의 맥락에서 현실의 뚜렷한 요구 사항을 찾아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박준도 사실 이런 문제는 남성 사업장도 마찬가지로 제기된 것입니다. 투쟁하다보면 남성들도 역시 이혼 당하고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기도 하죠. 남성 사업장에서 그것을 흔히 해결하는 방식은 가족대책위를 구성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방식은 여성억압이라는 가족의 문제와 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의 해법입니다.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 이 방식을 답습할 수도 없고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가족, 여성억압 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에서 가족을 민주화시키는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여성해방운동차원에서 함께 고민되어야 할 문제죠.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이 1980년대 어려움을 겪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가족 문제였습니다.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조금씩 주체화되고 있는데,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겪었던 그 질곡과 장애를 지금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운동이 안 겪을 거라는 보장이 없거든요. 그때 이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못 내렸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내렸다면, 지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운동이 맞부딪히게 될, 지금 이랜드 투쟁에서 확인되고 있는 가족과의 쟁점, 이걸 어떻게 여성 노동자들이 해결할 것이냐, 구체적으로 접근할 것이냐가 중요하죠.

김혜진 저도 공감하는데, 발언이나 유인물로 선동하는 것 외에, 그 여성들을 주체화하는 데 있어서 장애나 한계로 작용하는 지점들에 있어서는 어떤 식의 계획이 필요한가 하는 거죠. 그것이 19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현실 운동의 과제인데, 지금까지는 입장은 있는데 과제로 남겨두자고 했다면, 지금은 과제로 남겨두자고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필요한 시기예요. 거기에 대해서 다양한 층위의 계획들이 나올 수 있는데, 어떤 계획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나 주체가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KTX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는 여성노동 네트워크 같은 것이 생겨서, 우리가 보기에는 왜곡된 해결방식을 제기했지만, 어쨌든 결합을 했었죠. 그런데 소위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쪽의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니, 자신은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여성문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대요. 그냥 노동자들의 투쟁이라 생각했다는 거죠. KTX 젊은 여성들은 여성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주류 여성운동이 그런 식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렇다면 진짜 현실운동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거기서 사회진보연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 우선 짚어져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운동포럼이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을 고민하는 주체 형성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사회운동포럼 여성대회를 준비하면서 여성운동전략기획단이 꾸려졌는데, 거기에서 남한에서 주류 여성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여성운동이 필요한데, 이것을 위한 초동 주체들이 모일 수 있는 네트워크를 꾸려보자는 것까지는 합의가 됐어요.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진전이고, 이것을 잘 유지시키는 것이 향후 과제라고 남겨둔 것을 실제로 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영섭 이제 논의 주제를 바꿔서, 향후 투쟁계획이나 전술에 관해 얘기를 해보죠. 지금 동력이나 연대 단위의 축소, 사회적인 여론 악화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래서 나온 계획이 9월 추석을 앞두고 집중 타격 투쟁 등을 통해서 뭔가 계기를 만든다는 거죠. 이런 구체적인 계획을 염두에 두고 얘기를 해봅시다.

투쟁을 확산하기 위하여: 연대 파업의 조직과 전선의 확대

박준도 여기서 민주노총의, 기존 노동운동의 한계가 슬슬 나타난다고 할 수 있어요. 그 기세 높던 평택투쟁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던 시점이 바로 경찰폭력이 가시화 됐던 때였거든요. 인천지역의 특별한 경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투쟁 역시 직원과 점주들이 구사대로 조직되고 경찰 탄압이 가시화하면서 확실히 위축되고 있어요. 인천본부가 투쟁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문제는 다른 노조들조차도 인천본부 핑계를 대면서 뒤로 빠지고 있다는 거죠. 경찰과 점주의 폭력이 가시화하면서 당신이 나서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거든요. 내가 나서가겠다는 분위기가 아니라 말이죠.
어찌보면 이를 민주노총의 최대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럴 때 솔직히 답답한 측면이 있어요. 롯데호텔과 같이 가장 유사한 쟁점을 가지고 있는 노조가 연대파업을 하는 식으로 투쟁의 확산이 필요한데 그게 답보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랜드-뉴코아 노조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걸고 전선의 확대를 꾀하는 투쟁 말입니다.
이랜드, 뉴코아 노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뉴코아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로 파업을 결의한 것이나 이랜드 노조가 평소에 친하게 지내본 적도 없는 뉴코아 노조와 공동 호흡을 맞추고 비정규직 법안의 시행에 맞춰서 파업을 조직한 것처럼 그런 노조들이 두세 개만 더 나와도 지금 상황은 확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연대파업이 실제로 필요한데, 그것이 지금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민주노총의 한계구나 싶기도 해요.

오상훈 투쟁의 흐름을 볼 필요가 있어요. 6월 30일 이후에, 7월 8일, 7월 21일을 정점으로 쭉 치고 올라갔죠. 그런데 누가 이끌었냐는 거예요. 민주노총이냐, 민주노총 중앙이 한 거 아니거든요. 그러면 단체가 했냐, 그러면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가 했냐 아니라는 거죠. 당에 있는 활동가들, 민주노총 활동가들, 단체 활동가들이 이끈 거예요. 그 상황이 현재 그대로에요. 연대파업 조직해야 한다고 하는데, 아주 현실적으로 말하면 활동가들이 연대파업 조직하려 하지 말고, 활동가들이 그냥 나오면 된다고 생각해요. 연대파업 얘기를 하는데, 실제로 어느 단위, 어느 사업장이 지금 연대파업을 할 수 있냐는 거예요. 정말 냉철히 봤을 때, 민주노총에서 지침 내려서 현대자동차 연대파업하면 그 3만의 조합원들이 투쟁에 나오겠어요. 그냥 다 퇴근하지, 안 나와요 절대. 그런데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활동가들은 결합을 시작해서 지금 움직이고 있어요.
저는 정말 현실적으로 보면, 관성적이고 선언적으로 연대파업 지침 내서 되도 않는 조합원들 이끌려는 생각 말고, 실제로 결의된 활동가들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라는 계획을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민주노총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이석행 위원장 정말 잘 지르고, 만들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그걸 실천하지 않았다는 거죠. '1000인 선봉대' 정말 잘 지른 건데, 1,0열린 공간이라는 점은 지하철도 마찬가지인데, 지하철 파업은 이랜드-뉴코아의 현재 투쟁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죠. 항상 시민들의 발을 볼모로 한다는 공세가 동반됐어요. 하지만 이 투쟁의 경우에는 주부들의 일상 공간을 묶어 놓는다는 공세는 찾아보기 힘들죠. 물론 파장이 지하철만큼 크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00인이 안 모이니까 문제인 거죠. 7월 21일 침탈되고 나서 민주노총이 뭐라고 했냐면, 7월 21일 서울지역에서 8개 매장을 봉쇄했는데, 앞으로 매일 이렇게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봉쇄하겠다, 그거 누가 봐도 안 될 것이었는데… 그게 그냥 안 되는 걸로 끝난 게 아니에요. 이랜드 조합원들의 집단 복귀를 불러왔어요. 왜? 민주노총 투쟁한다고 하니까 이랜드가 그 투쟁 일정 맞추느라 투쟁 계획을 못 잡고 우왕좌왕 한 거예요. 게다가 투쟁하러 갔더니 연대 대오가 없는 거예요. 여성연맹 열댓 명, 금속 한두 명 이렇게 다 합쳐서 50명도 안 온 거 조합원들이 보고는, 다음날 쟁대위 회의 때 연대하러 온다고 해놓고 그게 연대냐, 차라리 우리끼리 점거 들어가자, 그런 얘기가 나온 거죠. 괜히 되도 않는 거짓말로 조합원들 사기 떨어뜨리지 말고, 정말 제대로 된 계획이나 잡는 게 중요해요. 7월 21일 이후에 서울지역에서 한 개 매장이라도 제대로 막았으면, 그 투쟁이 꺾이는 기세는 없었을 거예요.
연대파업이든 총파업이든, 그게 연대파업해서 뭘 하겠다는 게 있는 거잖아요. 연대파업 해서 전국적으로 공장을 멈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홈에버, 뉴코아 매출을 타격하는 게 목적이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일각에서 얘기되고 있는, 이것이 비정규적 전면 폐기 투쟁으로 가야한다, 그래서 매장 앞에서만의 투쟁이 아니라 거리에서의 투쟁, 대정부 투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이 투쟁은 기본적으로 매장봉쇄 투쟁을 해서 매출을 다운시켜서 실질적으로 이랜드 자본을 굴복시킴으로써, 그 승리가 실질적으로 향후 비정규법 폐기 투쟁의 초석이 될 수 있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연대파업을 하든 뭘 하든, 실제적으로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의 투쟁 계획은 일상적으로 어떻게 매출을 0으로 만들어 갈 거냐, 각 지역본부 별로, 그래서 서울 같은 경우는 하루에 두 개 이상, 세 개 이상, 각 지역본부는 한 개 이상 반드시 매출을 0으로 만들어라,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상근 간부들은 4시 이후에 반드시 그곳으로 퇴근하고, 연대파업을 할 수 있는 단위는 연대파업을 하고, 총회 투쟁을 할 수 있는 단위는 총회 투쟁을 하고, 조합원 교육을 박을 수 있는 단위는 그렇게 박고, 연맹은 연맹 단위대로, 지역본부는 지역본부 단위 별로 각 단위 조정해서 배치한다는 계획이 제출됐어야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연대파업이 있어야지, 연대파업을 선언해놓고, 연대파업 자체가 목적인 양 가서는 안 된다는 거죠.

박준도 이 투쟁이 비정규법안에 대한 대중들의 태도, 이데올로기적 균열이 발생하면서 확산되었다고 본다면 비정규직 법안의 시행에 맞서 싸우는 투쟁으로써 전선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측이나 지배세력이 철저하게 이랜드 개별 노사로 몰아가면서 제 3자가 끼지 말라고 하는 점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쟁점을 철저히 이랜드 개별 노사 문제로 축소하려하는 거죠. 더 이상 법안 얘기하지 말라는 거죠.
이 상황에서 문제는 이 투쟁이 제기한 중요한 쟁점 중 한 가지, 비정규직 법안·악법 폐기 문제가 잊힌다는 거죠. 지금 수준에서는 비정규직 법안을 전면 재개정을 하든지, 민주노총이 망하든지 둘 중 하나 해보자는 식으로 민주노총이 선언해야 하는데, 이석행 위원장은 이랜드가 망하든지 우리가 망하든지 둘 중에 하나여야겠다는 식이에요. 기세가 대단하긴 하지만 이는 말리는 것입니다.
연대파업 얘기할 때 중요한 것은 롯데호텔이나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등 유사한 쟁점을 가진 투쟁 당사자들이 다 같이 들고 일어나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거예요. 뉴코아, 이랜드 노동조합의 파업투쟁 돌입시점을 여러 활동가들이 함께 준비하고 설득했던 것처럼 말이죠.

오상훈 그건 민주노총이 결의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민주노총이 연대파업을 선언한다는 의미는 몇몇 단체가 롯데호텔과 공공부문 비정규직만 파업을 조직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건 파급력도 없어요. 롯데호텔 비정규직 이미 다 알려졌어요. 파업을 하든, 안 하든, 파업할 수 있는 대오가 10명도 안 되고, 파업해봐야 불법 파업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할 수 있는 데가 어디 있어요? 오히려 지금 연대파업을 할 단위는 정규직 노조죠. 이 투쟁의 후속타가 필요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런데 그것은 이번에 있었던 대의원대회에서 제기된 연대파업하고는 다른 의미잖아요. 이랜드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연대 파업과 자기 투쟁을 승리로 가져가고 비정규직법안 폐기 투쟁의 후속타로서 롯데호텔이나 공공부문이나 서울대 병원이나 코스콤이나 이런 단위의 파업은 의미가 다른 거죠.

박준도 뉴코아가 결의를 할 때 이랜드가 뉴코아 투쟁을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파업을 결의했죠. 뉴코아가 혼자 총파업을 하게 놔둘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1일 총파업이라도 한다, 그렇게 결의했던 거죠. 지도부의 결의도 결의였지만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서울본부 활동가들, 단체 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이 굉장히 역동적이었고, 이것이 또 다른 역동성을 불러온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를 상기해야 합니다. 여기에 비추어본다면 활동가들이 온 노력을 기울일 때 연대파업, 동조파업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매장봉쇄 투쟁은 지속돼야 하고 확산돼야 해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투쟁의 공간을 넓히고 전선을 확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랜드 단사 투쟁으로 좁히고, 이랜드 연대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도로 고민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이랜드 투쟁이 이랜드 단사 차원의 투쟁으로만 사고되는 것은 무척 아쉬운 것입니다.

정영섭
정영섭 현재 상황에서 이후 투쟁의 방향에 대해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주체들의 결의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대가 확대되어야 하는 측면이 있고, 그것이 첫 번째고, 그를 위해서는 매장봉쇄의 지속, 확대가 가장 기본적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총파업이든 연대파업이든 좀 더 수위 높은 후속타가 필요하다, 그것이 이랜드 단사 문제의 해결 만에 갇힌 방식이 아니라 어쨌든 현재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어쨌든 실물적으로는 지금 연대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를 고양시킬 수 있는 계획도 필요하죠. 이 정도로 정리를 하면서 마지막 발언들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확산과 연대의 확장, 이후 성과를 남기기 위한 과제

박준도 이 투쟁은 운동적인 의미에서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을 해요. 이 투쟁 자체를 어떻게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에서 실질적으로 세워낼 것인가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까지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비정규직 투쟁하면 생각나는 것은 다리 위, 공장 위에 올라가서 처절하게 외치다가 산화하는 방식인데, 이것은 그런 방식으로 가지 않았어요. 투쟁을 전국화하고 공간을 넓혔습니다. 지역 차원의 비정규직 운동이라는 엄청난 성과와 동시에 질문을 던진 투쟁이었다는 것이죠. 어떤 면에서 보면 이 투쟁은 성과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던진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후 평가 지점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후 이랜드 투쟁을 고민한다면 전혀 다른 투쟁 계획이 나올 수도 있겠죠. 이 투쟁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 투쟁을 조직하는 방식 말입니다. 여성노동권 투쟁,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라는 차원에서 말이죠.

오상훈 민주노총을 대변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저는 민주노총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가 문제인데, 1000인 선봉대도 1000인은 아니었지만 대오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연맹 단위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측면도 있고. 민주노총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여타의 단위들이 그동안의 모습과는 획기적으로 달라졌다는 생각을 해요. 향후가 중요한데, 어떻게 이 투쟁을 더 확산시켜내고, 제대로 된 투쟁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추석 이전에 어떻게 투쟁 계획을 낼 것인가가 고민이고, 그것이 선언적인 수준의 총파업, 연대파업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본에 타격을 주고 그 투쟁의 과정에서 주체들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투쟁이 향후에 과제로 남긴 것이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가 지역 차원에서 이 성과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주체적인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 차원에서 이 투쟁을 엄호하고 향후에 자신의 성과로 남길 수 있도록 주체적인 계획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그 계획 하에서 추석 투쟁을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이건 정말 향후의 과제인데, 이 투쟁이 연대가 확산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현장을 멈춘 것이 아니라 다른 단위들과 함께 현장을 멈췄다는 점이에요. 그동안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투쟁, 거기에 일부의 연대를 가지고 투쟁을 해왔던 방식이라면, 이것은 하나의 사안을 가지고 제 세력들이 모두가 결합을 하면서 운동을 만들어왔던 경험이라는 거죠. 이 경험이 향후 운동의 전략을 짜는 데 있어서 교훈으로 남기고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안보영 저는 결합해 오면서,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부분인데, 이제야 조합원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어떻게든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 어떤 의미고, 어떤 것을 해야 하는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자기의 지역은 자기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의 이랜드 투쟁에 적극 결합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김혜진 이 투쟁에 계속 동력을 붙여 갈 필요가 있는데, 제가 사회운동포럼에 주되게 결합을 하다보니까 그 고민과 연결을 시켜보면, 거기에서 생겨나는 유의미한 네트워크나 연대에 대한 고민을 지속시켜 나가고 결합시켜 나갈 방안이 있어야겠다는 고민이 들고, 여성운동전략기획단 내에서 고민하는 네트워크가 얘기하는 것이 그냥 단지 모여보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 투쟁과 결합하는 가운데 향후 여성운동의 방향을 만들어 가보자는 건데,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투쟁을 시작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후 진정으로 보편적인 여성노동자의 투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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