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11-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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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의 정치지형과 우리의 태세

공성식 | 정책부장
이명박을 비롯하여 한나라당 출신 대선 후보의 지지율의 합이 60% 가까이 되는 현상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 한 이후 계속되는 형세다. 이명박이 온갖 비리와 부패 사건 의혹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선두를 달리고 있고 이회창이 기습적으로 정계로 복귀하여 순식간에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고용 없는 성장, 비정규직의 확산과 빈곤의 심화 등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효과가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동일한 정책을 더욱 노골적으로 주문하고 있는 세력에게 민생고 해결의 환상을 걸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07년 대선은 그 어느 대선보다 이념이나 정책의 대결보다는 후보의 자질과 품성을 중심으로 한 네거티브 공세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내년 총선을 겨냥한 각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이 혼란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부동층의 규모도 크고 각 후보에 대한 충성도도 예년에 비해 떨어져 누가 당선되어도 당분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난관을 겪을 것이다. 분명한 것 하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환멸과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일자리와 소득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경제성장에 대한 요구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무현의 무능과 대립되는 보다 전문적이고 권위적인 지도자에 대한 요구로 드러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의 진실

노무현 정부는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경제성장률이 회복됐다며 경제정책의 성과를 자랑하지만 정부가 내세우는 지표와 달리 실제 한국 노동자·민중의 삶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03년 신용카드 거품의 붕괴에 이은 경기침체 이후 한국경제는 수출의 두자리 수 성장에 힘입어 2004년 이후 4~5% 대의 경제성장을 이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체감 경기는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실질적인 국민들의 소득 수준을 반영하는 국민총소득은 0.5~3.9%의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더구나 정부가 호언장담한 일자리 창출도 부진했다. 한국은행이 2003년 산업연관표를 통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억 원어치를 수출했을 때 늘어나는 일자리 수를 뜻하는 수출의 취업 유발 계수는 1995년 26.2명에서 2000년 16.6명, 2003년 12.7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수출의 고용 창출 능력이 8년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한 경제성장의 고용 유발 효과도 점차 낮아졌다. 1% 경제성장을 할 때 늘어나는 취업자 수는 95년 13만 5천명에서 2000년 12만 3천명, 2003년 12만 2천명으로 줄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투자의 둔화가 주요하게 지목되었다. 매출액 1000대 기업의 사내유보율(자본금 대비 잉여금)이 2002년 232%에서 지난해 616%로, 매출액 100대 기업의 유보율은 지난해 722%로 2002년(230%)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기업에는 돈이 쌓여 가는데 생산적 투자는 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반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경우는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는데, 특히 재계나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싱크탱크는 이를 반기업적 정서나 강성노조의 탓이라며 법인세 인하, 규제 철폐, 노조의 파업권 제약들을 요구했다.
하지만 설비투자가 둔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생산성의 저하와 이윤율 하락에 있다. 한국경제의 이윤율은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여 왔는데 그 요인은 자본생산성이 하락한 데 있다. 즉 투자된 자본당 부가가치의 생산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개별 기업들의 이윤극대화 행위가 장기적으로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위해서 더욱 많은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방향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를 결국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가 기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투자기피요인은 노동시장의 문제보다는 경기요인과 함께 경영요인(새로운 사업기회의 부재, 자본조달 비용 상승, 경영의 보수화)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임금상승을 억제함으로써 단기적으로 이윤율을 높이는데 혈안이 되어 왔다. 6대 산업(광업, 제조업, 전기가스 및 수도사업, 건설업, 운수업, 통신업)의 국내요소소득에서 피용자보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급격히 하락하여 2000년에는 1987년 수준(59.6%)으로까지 후퇴하였고 이후 소폭 개선되기는 하였지만 199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더구나 임금 노동자 내부에서 일부 상층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하락하였다.

금융세계화의 진전과 그 효과

한국경제가 계속 금융세계화에 편입되면서, 초민족적 자본에 의한 금융적 형태의 유출이 증가했을 뿐 아니라 국내 기업의 금융적 팽창과 함께 상위 계층으로의 부의 집중이 더욱 가속화된다. 노무현 정부가 자랑할 만한 것은 주식시장의 급격한 팽창인데 2007년 코스피지수는 세계 증시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지수 중 하나로서 40% 이상 상승했다. 기업들은 잉여자본으로 자사주를 매입하여 주식가치의 증대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금융산업의 선진화, 연기금에 의한 주식투자의 확대, 각종 금융상품의 활성화 등으로 한국 주식시장은 신흥시장의 입지를 굳혔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금융시장·금융업을 발전시키고 국내 기업들의 금융화를 지원할 수 있는 방향의 제도개선 및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정책을 주되게 펼쳤다. 노무현 정부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제정(2003.10)으로 사모펀드와 같은 금융상품을 활성화시켰고 퇴직연금제 시행(2005.12)으로 자본시장의 덩치를 키웠다. 또한 연기금, 외환보유액 등 공공부문의 여유자금을 운용하여 국내 자산운용사를 활성화하고 해외 자산운용사를 국내에 유치할 목적으로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하여 2006년 11월 투자 개시 이후 90억불을 투자 완료(채권 73억불, 주식 17억불)하고 08년 상반기까지 200억불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본시장통합법을 마련하여 국내 금융산업의 대형화와 겸업화를 추진하고 각종 투자상품에 대한 규제를 철폐시켜 모든 자원과 자산이 투자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는 금융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해외의 자본을 유치하는 한편 국내의 자본을 집중시켜 한국의 금융시장과 금융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2009년 외환거래 자유화를 목표로 2005년 12월, 자본거래 허가제를 폐지하는 등 각종 규제 역시 대폭 폐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은 금융세계화의 능동적 행위자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권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하여 기존 재벌들의 활동의 자유를 더욱 확대하는 한편 지주회사 전환 요건을 완화하여 기업들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쉽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주회사는 2004년 22개에서 2007년 8월까지 40개로 늘어났고 SK, 금호산업, 두산, CJ 등이 지주회사로 전환을 하거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주회사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고 M&A를 확대하여 이윤의 집중을 용이하게 하는 등 금융적 축적에 적합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재벌개혁론자들이 주장하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효과는 미비한데, LG나 CJ와 같은 재벌의 경우를 보면 총수일가의 지배력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그 결과 생산적 투자는 감소되고 금융적 팽창과 M&A를 통한 자본의 집중은 강화되었다. 대기업 이윤의 상당 부분은 배당의 형태로 자본 소유자들에게 이전되었고 각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단기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의 유연성을 더욱 강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재벌의 이윤은 증가해 쌓이는데 투자는 부진하고 증권시장에서 부동산시장으로, 다시 금융시장으로 투기가 만연하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계 금융자본을 비롯한 초민족자본들은 엄청난 배당과 투기이득을 얻고 있다. 외국인은 2005년 한해에만 한국 주식시장에서 87.3조의 평가이익을 올렸다(2006년 국내총생산은 810조).
한편 한국경제의 금융불안정성은 더욱 심각하게 확대되었다. 최근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세계적인 금융 불안이 야기한 신용경색과 달러 약세에 따른 외환시장의 달러화 품귀현상으로 장·단기 금리와 채권 수익률이 일제히 치솟으며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금융투자자들로 하여금 잠재적 손실에 직면할 때면 언제든 일괄적인 투자철회를 허용할 뿐 아니라 자본의 배분은 금융기관들과 고객의 이익의 기대에 극도로 좌우된다.

신자유주의 지배연합

재벌 소유주들은 지배구조개선을 대가로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기존 지배력을 다른 방식으로 행사하고 있다. 상층관리자들은 스톡옵션 등의 형태로 주주로서의 이득을 누릴 뿐 아니라 임금의 형태로 잉여에 대한 특권적 접근을 누린다. 한국의 시간당 보수(직원이 아닌 임원이 받는 임금) 연평균 상승률은 2000~2005년 간 11.1%이다(미국 노동통계국). 2007년 대기업의 임원 보수는 약 20% 가량 오를 전망인데(10대 그룹 계열사, 임원 보수한도 기준) 1인당 이사 보수 한도가 가장 높은 기업은 단연 삼성전자로 84억 6000만원이고 케이피케미칼(20억원), 에스원(18억 7000만원), 삼성SDI(17억 1000만원), BNG스틸(16억 7000만원), 삼성엔지니어링(15억 7000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또한 주식시장이 활성화되고 배당성향이 증가하면서 주식소유를 매개로 한 배당은 보다 광범위하게 상위 계층에게 분배된다. 2004년 기준으로 한국 10대 기업의 평균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액)은 20.2%로 일본(17.3%)보다 높았고 매출액 대비 배당금은 1.7%로 미국과 맞먹는다. 대의제 정치의 쇠퇴 및 행정부를 중심으로 한 기술관료의 영향력 증대, NGO로 대표되는 전문가들의 발언권 확대는 이러한 이윤분배의 메카니즘에 여러 가지 형태로 참여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자본소유자와 상층관리자들은 이러한 연관 속에 정부의 정책결정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폭로된 삼성의 비자금 형성과 정·관·사법부에 대한 광범위한 로비는 이러한 공식적인 연계망의 이면이다.
한편 금융시장의 팽창과 함께 자산소유 계층으로의 소득집중 경향도 확대되고 있다(가계의 금융화). 한국의 가계의 금융자산 비율은 20.4%로 낮은 수준인데 이는 실물자산인 부동산의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실물자산의 96.6%). 하지만 2000년 이후 주식 등 이른바 고수익·고위험 자산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데 주식 및 수익증권의 비중은 2002년 말 각각 14.6%, 4.8%에서 19.4%, 7.3%로 증가했다(가계소비의 자산효과 분석과 시사점, 한국은행 조사국 최요철, 김은영, 2007). 이러한 가계의 금융화 경향은 상위 계층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2006년도 우리나라 상위 1.0% 가구들이 우리나라 전체 개인주식의 59.8%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평균보유금액은 1억 5,645만원이라고 한다(이한구 의원실). 이는 자본소유자-상층관리자-정부고위관료 등을 아우르는 새로운 지배연합 형성을 의미한다.

고용 없는 성장, 투자 부진, 누구의 책임인가?

이처럼 고용 없는 성장과 대다수 노동대중의 빈곤심화는 자본주의 내적 모순의 폭발에서 기인하며 금융세계화의 진전과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으로 부가 집중된 결과이다. 하지만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요구들이 방어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거나 개량적 요구에 머무르고 있고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파괴적인 효과에 대한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비판과 대안적인 요구를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이 취약한 상황에서 자본의 공세적이고 노골적인 요구가 대중들의 성장에 대한 환상을 자극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더구나 노동의 유연성 확대에 따른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경쟁의 심화, 이러한 변화된 조건에서 노동자 계급의 통일성을 형성하는데 실패한 기존 노동자 운동과 조직의 위기는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대한민국의 7% 성장을 약속하며 법질서의 확립과 노사관계의 안정화, 공공부문의 혁신 등 국가 시스템의 정비와 국토 인프라 확충, 과도한 규제와 높은 세율을 정비하고 기술개발투자 촉진 등을 통해 3%의 추가 성장을 이끌어 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계와 주요 언론들도 이에 가세하여 하나같이 규제완화, 법인세 경감, 파업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 공공부문 구조조정 강화, 수도권 규제 철폐를 외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억울하다며 경제정책의 성과를 내세우기에 급급하고 있고 정동영의 경우 ‘좋은 성장’이라며 성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사회통합과 사회안전망 강화 등 기존 정부의 정책 틀을 거의 답습하는 수준의 대응에 머무르고 있다. 더욱 노골적인 시장자유주의와 허구적 수사에 그칠 뿐인 사회자유주의의 대립 속에 고용 없는 성장과 투자의 부진의 진정한 원인이 은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의 경우 지지층은 노무현만큼이나 이질적이다. 따라서 이명박의 지지계층을 특정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집단으로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한국의 대자본가들의 실리적 지지는 분명하다. 최근 전경련은 한국경제연구원과 함께 ‘미래한국비전’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에서 제안하고 있는 정책개혁 제안들은 상당수 이명박 캠프의 공약이 되고 있다. 금산분리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이러한 요구들이 참여정부의 재벌개혁과 대립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재벌개혁에 있어 유일한 쟁점은 개혁의 속도이고 이 과정에서 자본분파들 사이의 이윤 분배의 조정이기 때문이다. 이들 대자본가들은 이명박 지지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할 것이다. 또한 지배세력 이외의 주요한 지지층으로 수도권/40대/화이트칼라의 지지를 들 수 있는데 이는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실리를 얻고 있는 계층, 혹은 실리 획득을 노려 볼 수 있는 계층의 지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지지층은 경제위기 지속으로 인해 성장의 환상이라는 막연한 정체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이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대중들에 대한 행동의 호소를 통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형성해 왔다면 이명박은 CEO 출신답게 과단성 있는 실행력과 구체적 서비스의 제공을 통해 지지기반을 형성해 왔다(교통체계 개편, 청계천 개발 등).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환상은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이러한 구체적 결과에 대한 막연한 기대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의 인민주의 이후 정치 위기의 심화 양상

보수세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의 또 다른 축은 보다 전문적이고 권위있는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요구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현대 정치의 조건으로서 민족국가를 해체한다. 자본의 초민족화가 가속되면서 개별 민족국가는 경제정책의 자율성을 상실한다. 의회가 더 이상 계급적 타협을 위한 안정적 합의를 담보하지 못하는 반면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초민족화된 기술관료의 영향력이 강화된다. 그 결과 정치와 대중의 분리는 심환된다. 다른 한편 NGO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더 적은 비용으로 국가를 관리하기 위한 ‘거버넌스’의 구축이 중요해진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은 이러한 정치위기가 한국적 맥락에서 급격하게 진행되어 온 과정이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중적 불만을 호도하고 정책개혁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민주의의 시대였다. 이러한 인민주의는 정치위기를 표현하는 동시에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었다.
특히 노무현은 기존의 정치세력·정치제도와 반정립하며 정당정치를 우회하여 대중들을 동원하는 정치스타일로 자신의 통치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 과정은 본격정당을 자임하며 탄생했던 열린우리당의 허구적 레토릭과는 달리 정부 운영에 있어 야당 뿐 아니라 여당 역시 주변화되는 효과를 더욱 가속화시켰고 청와대와 정부 고위 관료를 중심으로 한 통치를 더욱 강화시킬 따름이었다. 더구나 지배분파간의 갈등/대립에서 누구도 헤게모니를 얻거나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현상이 상시화 되고 그 종국적인 해결을 물리적·권위적 힘을 갖는 사법부에 의지하는 경향도 더욱 강화되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의 변화가 발생했다. 첫째, 대중의 국가기구의 행정적, 사법적 권력에 대한 수동적 종속이 오히려 심화되었다. 허구적인 레토릭만 구사할 뿐 실제 대중들의 최소한의 삶도 책임지지 못하는 노무현의 무능은 권위주의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둘째, 기존 정치이념의 퇴행이 더욱 심화되어 실용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셋째, 정치적 불안정성이 심화되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지형을 특징지었던 보수-개혁의 구도는 사실 1987년 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가 왜곡되고 자유주의 세력이 정치적 성과를 독식한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무능력과 기만은 스스로 참칭한 민주와 진보가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개혁이라는 정치지형은 약화되고 정치분파들의 다양한 각개약진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과 이회창이 주요하게 내세우고 있는 강한 나라/법과 기초질서의 확립은 민족국가의 후퇴의 퇴행적 산물로서 대중들의 권위주의에 대한 요구에 부응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많은 나라의 우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바 대중들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이러한 공격이 집중되는 집단에 대한 강력한 법집행으로 초민족적 자본에 대한 무능, 사회적 통합에 대한 무능을 은폐한다. 이는 결국 경찰적 통제의 강화와 민주주의의 심각한 파괴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은 정부와 공공부문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장하고 있다. 대중들이 공공부문 노동자나 공무원들에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등에 업고,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동운동을 이기주의 세력으로 밀어 붙이고, 이후 노동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는 교두보를 만들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보편적 연대지향성이 쇠퇴하고 자기중심적 실리주의가 강화되어 온 노동운동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개혁세력의 몰락과 이로 인한 정치위기의 가속화는 대중의 사기저하와 수동적 경향의 증대와 맞물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지배정치의 위기에 대한 외부적인 비판, 즉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를 조직하거나 외면하는 전략과 지배정치의 위기에 대한 실용적 대응, 예를 들어 객관적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제도정치내의 활동으로 매몰되는 경향이나 현존하는 정치세력들의 구도를 활용하여 틈새를 파고들겠다는 식의 대응은 오히려 대중의 탈정치화를 가속화 시킬 뿐이다. 이미 지배 정치의 위기가 쉽게 민중운동의 성과로 수렴되기가 더더욱 어려운 조건임이 확인되고 있다.

급진적 정치 전망의 전면화와 대중운동의 토대 구축을 향해

차기 정부의 집권 시기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같은 시기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수년간 더욱 심화되어 온 금융세계화의 누적된 모순이 폭발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실물경제에서 이윤율의 장기적 추세의 하락과 맞물리면서 구조적 위기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파괴적 효과는 더 이상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상식이 되었다. ‘고용없는 성장’, ‘비정규직의 확산’, ‘사회불평등의 심화’, ‘성장의 둔화’, ‘금융불안정성의 확대’는 더 이상 운동세력의 문건에 등장하는 용어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이 곧바로 계급투쟁의 활성화, 대중운동의 급진화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위기는 심화되는 반면 대중들의 사기저하와 급진적인 진출은 봉쇄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오히려 지배세력은 노동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더욱 노골적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상대적인 역관계의 열세 속에서 더욱 처절해 지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한·미 FTA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 반감도 높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지배세력이 유포하는 현실론에 번번이 저항의 열기가 꺾이곤 했다. 사회운동 내에서 변혁전략과 대안사회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현 정세에서의 대중적 행동 지침이 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의 사회변혁운동의 한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사회변혁의 상을 운동 속에서 만들어 갈 수 있겠는가? 새로운 대중운동들의 성장을 북돋고 이러한 운동이 기존 대중조직의 한계적 대표성을 넘어 설 수 있겠는가? 여기에 야만인가? 아니면 대안세계화인가? 라는 질문의 갈림길이 있다. 관건은 누구도 대답을 갖지 못한 구조적 위기를 그 자체로 발본적으로 드러내어 대중 스스로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형성하는 봉기적 관점의 정치를 만들어 가는데 있다.

주제어
정치 경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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