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2.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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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전국적 총파업 투쟁을 가로막는가?

홍석만 | 편집실장
총파업투쟁을 통한 전국적 연대투쟁은 가능한가?
최근 3년 동안 10여차례 가까운 총파업 투쟁이 선언되었지만, 총파업을 목전에 두고 파업이 철회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진행된 총파업도 몇몇 해당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파업 참여가 높지 않거나, 일부 연맹의 총파업 정도로 정리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1990년대 들어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투쟁, 한국통신,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의 투쟁 등 단위사업장의 투쟁은 전국적인 연대전선을 형성하여 총파업을 유지, 확대해나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IMF 이후 상황에서 총파업투쟁이란, 해당 사업장의 고립적인 투쟁을 넘어서지 못한 채 정치적 수사로서 총파업 선언(!)투쟁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구조조정 대응은 크게 보아 정리해고제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및 해외매각 반대, 그리고 퇴출기업의 고용 및 생존권 보장 투쟁이 줄기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지난 3년간 노동자의 지속적인 투쟁이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강력한 총파업전선이 형성되지 못하는가에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에서 노동주체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구조조정 일정에 쫓아가는 투쟁 계획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은 상당히 주도면밀했다.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입각하여 치밀한 계산 속에서 사업장별로 적절히 배치시켜 나갔다. 먼저 정부는 구조조정 시행에 앞서 구조조정 일정과 계획을 둘러싼 논란을 진행시켰다. 빅딜론을 통한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들먹이며 기업구조조정을 압박하고, 금융부실 문제를 지적하면서 금융구조조정 논의를 진행시킨다. 그러다가 다시 공공부문의 민영화 방침을 공개하는 등, 시차를 두고 구조조정 일정과 계획에 대한 논란을 진행하였다. 동시에 순차적으로 각 사업장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6월 18일 55개 퇴출기업 명단을 발표하여 대공장을 제외한 중소규모 사업장의 퇴출을 강행하는 한편, 6월 29일 제1차 은행 퇴출을 단행한다. 그러면서 재벌기업들의 빅딜논의는 강제퇴출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여유를 부리며 시간을 끌어갔고, 공기업의 경우, 담배인삼공사를 제외하고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는 선에서 일정조율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1차 금융구조조정으로 금융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가 진행되었고 그 이후 퇴출명단을 발표한 제조업부문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그리고, 제조업의 구조조정이 어느정도 순항을 거듭할 즈음 다시 공공부문사업장 민영화를 확대시켰다. 그리고 다시 금융부문-> 제조업 부문-> 공공부문 식으로 순차적인 구조조정 일정을 밟아나갔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명백하게 노동진영의 반발을 고려하여 구조조정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고, 여기에다 해당사업장의 노조규모와 조직력까지 계산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각 연맹별 총파업 참가계획도 제도권의 구조조정 일정에 맞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빚어졌다. 국회나 정부에서 구조조정 일정을 변경하면 투쟁일정까지 변경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심지어 자본측의 일정조정에 따라 투쟁일정이 변경되었다. 가령, 1999년 3월의 철도차량 3사 투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1999년 2월 27일 현대-기아 공대위를 중심으로 한 금속연맹의 투쟁전선이 무너지면서 벌써부터 총력투쟁의 기운들은 시들해져 갔다. 이어 3월 말, 투쟁전선 구축의 관건이었던 철도차량 3사 등 구조조정 대상사업장 노조가 자본의 일정변경으로 인해,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투쟁을 배치하고자 했던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이에 따라 투쟁역량도 분산되었다. 금융-제조업-공공부문의 구조조정 순서대로 노동자들의 투쟁도 금융-제조업-공공부문으로 분산되어, 집중적이고 집약적인 총파업 투쟁은 계획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 경우 다소 불가피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기업별 노조로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민주노총의 상황에서, 구조조정 일정에 따라 개별기업과 업종 연맹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반되어 있거나 정부의 대노동 정책이 이러한 분할을 적절히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상황이 연속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에 있고 이런 측면에서 정부주도하에 이끌리는 구조조정 대응이라는 것은 원천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런식의 대응에 따라 정부의 의도대로 구조조정은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다.


양보교섭의 문제

현재 총파업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보다도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노동진영의 태도로부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노동진영의 양보와 수세의 연원을 따져 보면, 1998년 2월 6일 1기 노사정위의 정리해고제 수용합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록 직후에 있었던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이 합의가 부결되기는 했지만, 상징적인 차원으로는 이미 정리해고를 수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후 지속적인 양보교섭의 기원으로 형상된다. 어찌되었건 노동진영은 정리해고를 철폐하기 위해서 지난한 투쟁을 벌여나가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양보교섭은 일반화되어 간다.

정리해고제도를 둘러싼 최초의 격돌은 1998년 5월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로 나타났다. 정리해고의 최초 격돌이었던 만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투쟁은 향후 정리해고제 철폐는 물론, 1기 노사정위에서 합의된 정리해고 제도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된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끔 하는 의미를 지녔다. 때문에 노동진영은 총력대응의 준비를 하였고 현대자동차 노조 또한, 조직 내부를 가다듬고 투쟁의 고삐들을 죄어나가고자 나름의 노력을 다하였다. 민주노총은 현대자동차 노조의 지지엄호와 정리해고 철폐 투쟁을 확산하고자 5월 27~28일 총파업을 진행하고 6월 10일과 다시 7월 23일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세워낸다. 게다가 IMF반대 범국민운동본부까지 이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정권과 자본의 대응은 이를 능가하였다. 노동부와 사측 그리고 민주당으로 이어진 삼각편대의 압박전술을 구사하며 끊임없이 현자 노조와 민주노총을 상대로 물밑 교섭을 시도하였다.

결국 민주노총의 지도력이 담보된,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외부의 지원세력도 제대로 대응해내지 못했다. 결국, 6월 5일의 노사정 합의, 7월 23일의 노사정 합의를 거치면서 총파업 투쟁은 무산되었고, 8월 24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정리해고제를 수용하는 노정합의를 진행하여 싸움은 노동진영의 패배로 끝나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정리해고 수용과정에서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들의 이해를 분열시켜 나갔다. 애초 9000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한 사측은, 정리해고자 선별을 통해 조합원을 분열시키고 희망퇴직자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노조에 대한 공세를 취했다. 이 공방을 통해 노조가 최후에 수용한 277명의 정리해고자 대부분은 식당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자본은 조합원들 내부를 끊임없이 분열시키도록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되었던 것이다.

현대자동차에 이어 진행된 만도기계노동조합의 투쟁은 이미 전국적인 연대투쟁을 형성할 계기를 놓쳐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용보장을 주축으로 이루어졌던 만도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투쟁까지 벌였으나 상황은 이미 역부족이었다. 현대자동차가 무너진 상황하에서 노조의 강경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연대투쟁도 벌여지지 못한 채, 정부는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하여 노동조합을 무너뜨리고 만다.
만도 노동자들의 투쟁 이후 총파업선언-양보교섭-총파업철회의 상황은 매번 반복되었다. 1999년 4월, 공공연맹을 중심으로 한 총파업 투쟁이 전개되고, 서울지하철 파업이 주요한 투쟁전선을 형성하지만 결국, 구조조정시 정부와 사전협의나 면담을 쟁취하는 합의를 끝으로 파업을 정리하게 된다. 2000년 7월 금융노련의 총파업투쟁도 투명한 금융개혁과 강제합병 불가를 조건으로 총파업 하루만에 이를 철회하게 된다.

이제까지 노사정 합의 또는 노정 직접합의는 수차례 진행되었다. 대부분 총파업을 앞두고 총파업의 철회를 조건으로 이루어진 합의여서, 그 내용 또한 상당히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노동측에 대한 요구내용은 구체적이었던 반면, 자본과 정권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선언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교섭전술과 투쟁전술을 배치하는데 있어서, 노동진영의 대응은 지속적인 양보교섭을 통한 투쟁의 철회라는 양상으로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양보교섭의 결과로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방어해 왔으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는 계속해서 축소되어 왔다. 결론적으로 볼 때, 노동진영의 양보교섭은 총파업 투쟁의 걸림돌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가로막고 자본과 정권의 노동분할전략에 이용당하는 결과로 작용하고 있다.

교섭전술에 대해서는 더욱 구체적인 분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위사업장의 고립과 자본과 정권의 노동분할 정책을 평가하는 것과 더불어, 노동운동 지도부의 노선에 따른 양보교섭의 수용흐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동안 경제위기하에서 노동운동의 위기와 역할에 대한 논의가 상당정도 진행된 바 있지만, 노동진영은 교섭전술로만 파악될 수 없는 사회적 합의주의 흐름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제도개선투쟁의 압박수단으로 전락한 총파업 투쟁

양보교섭의 확산과 함께 내셔널센터로서 민주노총의 투쟁은, 다른 한편에서 제도개선을 중심으로 한 투쟁으로 나타났다. 이는 민주노총 3기 지도부가 노동시간단축과 사회개혁투쟁을 전면에 걸면서 확산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 3기 지도부가 들어설 즈음, 노동자 민중 투쟁의 양상은 점차 격화되었다. 정부의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강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진형구 파업유도사건과 옷로비 사건 등 정권의 부정부패가 폭로되면서 민중투쟁의 양상도 점점 격화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3기 지도부는 전국투쟁의 지휘본부를 자임하고 나섰지만 한라중공업투쟁, 이상관열사투쟁, 그리고 1, 2차 민중대회 등 주요한 계기에 전체 민주노조의 투쟁의지와 동력을 끌어올리지 못하였다.

급기야 1999년 12월, 2차 민중대회는 수입개방에 따른 농민생존의 파탄에 반발한 농민들의 거센 투쟁으로 그러나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피로 물든 민중대회가 치루어졌다. 상황은 2000년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중반기까지 롯데호텔 노동조합과 사회보험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이 전선을 이끌어 갔으나 민주노총 중심의 강력한 연대파업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들 노조의 고난의 행군으로 점철되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민주노총 3기 지도부는 주40시간 노동제 쟁취를 전면에 내걸었고 이것은 다시 주5일제근무로 나타났다. 주40시간 노동제는 이전부터 일자리 나누기의 방편으로, 그리고 법정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고유한 노동진영의 과제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투쟁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민주노총을 위시한 노동진영의 투쟁방향이 '노동대중의 투쟁을 통한 구조조정의 중단'보다도 '제도개선을 통한 권리회복'이라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을 의미한다. 당시 상황에서 단위노조의 투쟁을 적극 옹호하고 이끌어가야 할 민주노총은, 단위노조의 투쟁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전개하기보다 주 40시간 노동제쟁취를 내걸고 구조조정 반대투쟁과 사회개혁 투쟁을 분리하고 말았다. 이는 전선을 확대시키고 풍부하게 하기보다는 분할, 약화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2000년 총선과정에서도,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은 총선국면이라는 정치적인 압박수단으로 나타났고 국회나 정부의 주요일정에 맞춘 투쟁들로 나타났다. 제도개선은 대중투쟁의 성과로서 쟁취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목표로 투쟁을 전개하면서, 노동대중의 총파업 투쟁은 제도개선요구의 압박용 전술에 불과한 수단으로 사고되었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철폐 투쟁과 관련해서도 민주노총의 태도는 비슷한 양상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엄호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방어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는데 앞장서야 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지역단위에서 고립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앙차원에서 제출되는 계획이란, 주로 근로기준법의 개정을 통한 노동조건의 개선이라는 형태였으며,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사고하는 것도 이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역할의 모호함과 책임의 방기

정부의 교섭전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대공장 특히 정세적으로 중요한 대공장의 경우, 상급연맹이나 민주노총을 교섭당사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단위사업장 노동조합과의 교섭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특히 대공장의 경우, 연맹이나 민주노총의 간섭을 덜 받으려고 하는 단위노조의 독자성이 강할수록 기업별 교섭형태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중요한 대공장 투쟁의 경우, 교섭권을 중앙에 위임하더라도 독자교섭을 진행하여 정리해고의 수용에 이르게 되고 총력투쟁은 전선은 그만큼 약화되어 간다.

민주노총의 조직상태에 기초해 볼 때, 현재 기업별 노조의 교섭을 제어할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그에 따라 중앙과 연맹의 활동범위는 그만큼 위축되고 단위사업장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총파업 전선은 상당한 교란을 받아 왔다. 예를 들어 1999년 공공연맹 파업의 경우, 파업의 주동력을 형성한 서울지하철 노동조합에서 연맹보다 단위사업장 중심의 독자성이 과도하게 규정되었고, 연맹의 장악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결국 한국통신 노동조합의 파업무산과 이탈로 인해 총파업전선은 무너지고 만다. 또한, 연속적으로 진행된 1999년 5월 12일부터 15일까지 총력투쟁은 금속연맹을 중심으로 파상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각기 단위사업장의 현안문제가 걸려있는 사업장들이 주축이 되었고, 그나마 사업장별 투쟁결의를 모아내는 결의대회 수준이상을 넘지 못했다.

한편, 민주노총의 조직상태와는 별개로 투쟁에 대한 정치적 책임방기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연맹과 중앙이 단위노조의 투쟁에 대해서 정치적인 책임을 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위노조 또한 연맹과 중앙의 총파업 일정을 피해나가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주요 사업장의 투쟁을 전국적인 연대전선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총파업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총파업 후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상호간에 회피하는 양상들을 보여왔던 것이다. 총파업에 앞서서 먼저 파업을 해버린다던가 총파업일정에 뒤이어 파업에 들어가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중앙과 연맹에서도 동일한 문제로 나타났다. 총파업을 통해 부담해야 하는 중앙단위의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총력투쟁과 총파업투쟁을 선언할 뿐 끊임없는 물밑교섭을 시도하면서 파업철회 또는 결의대회 수준의 파업집회를 진행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스스로 혁신을 얘기하고 시간엄수와 사업의 책임성 강화를 전 간부에게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간부의 성실한 자세를 요구하는데 있기보다는, 중앙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어떻게 다 할 것인가하는 점에 있다.


구조조정 반대를 넘어 전국적 정치총파업을 위하여

노동진영은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자본의 일정에 쫓아가는 총파업 투쟁계획과 양보교섭의 수용으로 인해 투쟁의 집중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번번히 고비마다 투쟁을 접게 되었다. 또한, 민주노총은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것으로, 그에 따라 중앙으로서의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개별 단위사업장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고립되는 경향을 자초해 왔다고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자본과 정권은 대공장과 중소사업장간의 이해를 상호대립시키고, 동일사업장내에 비정규직의 희생을 담보로 한 구조조정 계획을 강요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간의 갈등을 확산시켜 왔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전국적 정치총파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첫째, 생존권 사수와 구조조정 반대투쟁에서 정치적인 요구들을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노동대중의 투쟁은 생존권 사수에 기반해 있지만 이들의 정치적 전망을 더 높여나가면서, 투쟁의 폭과 수위를 높여나가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자본과 정권이 구조조정 문제를 단위사업장의 문제로 개별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단위사업장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그 출발은 될 수 있지만 해결전망을 갖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구조조정 반대투쟁의 정치적 성격들을 더 높여나갈 때만이 중앙차원의 집중과 공동대응이 가능해 질 것이다. 따라서, 민중 전체를 도탄에 빠뜨린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책임을 물어, 노동대중의 기본권을 압살하는 반민중적인 정권의 본질을 규탄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김대중 반대'의 주장들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주체형성에 있어서 분명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퇴출기업 노동자 또는 정리해고 사업장 중심으로 투쟁동력을 가져간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대공장 중심으로 형성된 투쟁전선은 상징적이고 일시적인 파괴력은 있을지언정, 전선을 사수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자본과 정권의 노동분할전략으로 인해 지금 상황에서는, 쉽게 타협할 가능성마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선을 사수할 투쟁주체를 어떻게 세워내고 또 확장시켜낼 것인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는 구조조정에 당면한 사업장 노동자에 한정되지 않는,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연대를 확장시켜내기 위한 고민을 함께 제기하고 있다. 결국 문제해결의 출발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가장 집중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와 실업노동자, 여성노동자의 생존권적 요구를 전체 노동대중의 투쟁으로서 받아안고 더욱더 확산시켜내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대중의 투쟁의 요구를 보다 급진화시켜내고, 아래로부터 노동자·민중연대를 강화시켜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과제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노동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셋째,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확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자 뿐만아니라 농민, 빈민 등 민중의 생존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악화되어 있다. 또한, 의료, 교육 등 민중의 삶과 생활에 관련된 영역들의 신자유주의적인 재편으로 인해, 민중생존에 기반한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확장 역시 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진영의 총파업 투쟁은 이러한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확대심화를 위해서도 요구되며, 동시에 총파업 투쟁의 전개과정은 민중들의 이러한 요구를 함께 받아안음으로써 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은 노동운동 지도부의 정치적 책임을 보다 상승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내부혁신의 목소리도 작지 않지만 노동대중의 지도부에 대한 불신은 투쟁의 과정에서는 물론, 일상적인 시기에도 꾸준하게 확인되고 있다. 단순한 생활혁신을 넘어서 노동대중의 투쟁을 끝까지 엄호하고 정치적인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의와 풍토가 아쉬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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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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