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5-6.82호

자본주의 농업과 곡물가격 폭등

구준모 | 정책위원
심각한 현실, 대증적 대안

물가 상승이 심각한 지경이다. 기름값 폭등에 이어 연일 식품가격 상승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라면 값이 100~200원 오르고, 자장면 가격이 500원 오른 것이 우리가 체감하는 정도이라면, 나라밖 소식은 더 어지럽다. 생계비 중 식품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이집트, 카메론, 멕시코, 필리핀 등지에서 식량 봉기가 발생했다. 아이티에서는 식량 문제로 격화된 시위가 정권교체로 이어졌다고 한다. 식품가격 상승으로 악화된 고통스러운 현실은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한국의 빈곤층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8년 3월을 기준으로 1년 만에 옥수수 가격이 30%, 대두 가격이 93%, 밀 가격은 146% 인상되었다. 또 4월에 들어서는 세계 인구 절반의 주식인 쌀 가격이 폭등하여 올해만 100% 이상 인상되었다. 쌀, 밀, 옥수수 등 주곡을 중심으로 한 가격 폭등은 매일 급변해서 정확한 상승률을 계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배세력의 움직임은 부산하다.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 13일에 끝난 연차회의에서 긴급구호 자금 출연과 새로운 농업 개발프로그램을 포함하는 ‘세계 식량 뉴딜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유엔 반기문 총장도 4월 20일 유엔무역개발협의회 개회식에서 식량폭등이 세계안보를 위협한다며 긴급구호를 요청하고, “국제무역을 왜곡하고 식량부족 사태를 심화”시키는 수출제한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4월 15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하는 자리에서 해외 식량기지 확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LG, 현대의 경제연구원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곡물가격 폭등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제언한 정책보고서를 발간했다. 하지만 개연성 있는 요소들을 나열하는 원인 진단은 천편일률적일 뿐만 아니라, 문제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여러 보고서가 결론에서 주장하는 대안도 거의 똑같다. 첫째, 식량자급률 제고방안으로 식량안보를 확보해야 한다. 둘째, 국제 선물시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셋째, 해외 곡물기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대응은 현상에 주목한 임기응변으로 매우 편협하고,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곡물가격 폭등의 구조적 원인을 자본주의 농업과 농식품 체계로 분석한다. 그럴 때 세계적인 곡물 가격 폭등을 자본주의에서 농업의 위기가 발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에 맞서는 대안을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농업으로의 전환과 심화

영농과 농식품 체계
농업은 에너지, 기초 자원과 함께 인류의 문명에 필수적인 요소로 인류가 정착생활을 한 이래 모든 사회의 근간이다. 그런데 농업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자본주의와 함께 획기적으로 변했다. 먼저 자본주의에서 농업의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서 영농(farming)과 농식품 체계(agro-food system)를 구별해보자. 영농은 종자, 비료, 물, 농약과 같은 투입물을 토지, 농기계, 농민의 노동력 등을 이용하여 일차 농업생산물로 전환하는 자연의 물리적 과정이자 농민의 노동과정이다.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농업생산에 있어서도 자본-임노동 관계가 형성된다고 분석했다. 소생산자로서의 농민층이 농업부르주아지와 농업프롤레타리아로 분화되고,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농민이 비농업부문 임금노동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농민층 분해론은 분해의 구체적인 경로와 소농의 존속 여부, 또 노농 동맹의 정치적실천적 문제와 결부되면서 광범위한 논쟁거리였다(이른바 농업문제).
하지만 영농에 자본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지금도 상대적으로 많은 소농이 가족농이라는 형태로 농업 생산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본이 영농을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이유는 ①현금 유동성이 작은 농지를 직접 소유할 유인이 없고, ②분산되고, 일률화하기 어려운 영농 과정을 통제하기 어렵고, ③일정 규모 이상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고, ④기후나 해충과 같은 자연 재해로 인한 위험을 예측하고 관리하기 어렵고, ⑤자연의 주기에 맞춰져있는 농작물과 가축의 생산주기를 단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화에 따라 자본이 농업 생산과 소비 과정의 다른 부분을 통제함으로써 농업에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형성된다. 이것을 이해하는데 농식품 체계 개념이 유용하다.
농식품 체계는 영농뿐만 아니라 농업과 관련된 생산과 가공, 판매의 전 체계이다. 여기에는 종자, 비료, 농약, 농기계와 같은 농업 투입물의 생산판매와 농업 산출물의 가공운송판매가 포함된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종자와 농기구의 개량이나 개간과 관개의 발전 등 농업 생산 도구와 시설에 대한 인간 사회의 개입이 지속적으로 증진되어왔다. 그러나 이 역시 근본적으로 자연의 생산 능력과 주기(또는 변덕)에 종속되고, 투입물의 양과 집약정도에 절대적인 한계가 있었다. 자본주의는 농가와 지역 공동체 내에서 수행되던 전체 농식품 체계의 대부분을 외부 자본의 생산 활동으로 대체하고, 양과 집약도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또 최근에는 (식당과 식품가공 등) 소규모 자영업, 소매점과 지역 시장에서 이루어지던 농산물의 수송, 가공, 판매까지 초민족자본에 장악되면서 자본에 종속된 농식품 체계가 생산 영역을 넘어 유통, 소비 부문으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이 개념은 농업 생산과 먹거리 소비 전반에 상품화가 도입된 계기와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농업 상품화와 녹색혁명
자본주의에서 농업의 조직화 방식을 19세기 영국 헤게모니의 농업 식민주의와 20세기 미국 헤게모니의 농업 산업주의로 구별할 수 있다. 19세기에는 공업과 농업의 세계적 분업이 체계화되어, 영국이 ‘세계의 공장’을 자임하고 식민지에서 곡물과 원료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한다. 반면 20세기 미국은 공업과 농업을 국내에서 통합하는 새로운 발전 모델을 추구한다. 농업 투입물을 공업적으로 생산하는 것에 바탕을 둔 이러한 통합으로 농민은 고유한 영농 지식과 노동과정 통제력을 상실한다(농민의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전환). 역사적 계기 마다 자본은 농업의 종자, 농기계, 비료, 농약, 저장, 판매 등을 요소요소로 분해하고 각각에 개입하여 산업화했다. 농기계, 비료, 농약은 12차 세계대전 후 화학, 군수 산업의 재구조화 과정의 산물이다. 특히 녹색혁명을 가능하게 한 핵심요소인 질소비료의 생산은 폭탄의 원료인 질산을 합성하는 설비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독가스 제조 설비는 농약 설비 등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포섭은 농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자 부문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종자는 씨앗(원료)이자 수확물(상품)로 수확한 먹거리의 질과 양을 결정하는데 핵심적이다. 그러나 수확물을 다음번 재배 때 씨앗으로 그대로 이용할 수 있고, 종자의 관리와 개량은 전통적인 농민의 지식과 자원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자본이 개입하고 상품화하기 어려웠다. 자본은 20세기 전반을 거치면서 미국에서 종자를 산업화할 수 있었는데, 이는 과학기술과 제도 변화를 통해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자본의 노력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19세기 말 멘델 유전학의 발달로 식물 육종의 주도권이 농민에서 과학자로 넘어갔다. 가장 탁월한 사례는 교배종 옥수수 종자의 개발이다. 동일 계열의 종자를 교차 교배해 생산한 교배종 옥수수 종자는 다음 세대에는 고유한 특성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동일한 생산량과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농민은 매년 교배종 옥수수 종자를 구입해야만 한다. 교배종자로 자연의 장벽을 부수었지만, 정부가 종자를 자유재이자 공공재로 취급하여 무상 종자를 배포하고 식물 품종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자 기업은 로비를 통해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장벽을 제거해나갔다. 1920년 미국정부는 무상 종자보급을 중단하고 1930년 최초로 식물품종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기술인 집단개량을 통한 방임수분 품종은 상품화가 용이하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된다.
종자와 농업 투입물의 상품화를 토대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비료와 농약 생산시설을 대규모로 확충한 농업 자본은, 전후 자본주의 세계를 안정화하기 위해 식량 뉴딜 정책을 펼친 미 정부와 합작하여 30년간 획기적인 농업 생산량의 증대를 이룬다. 이 녹색혁명으로 자본의 생산성이 자연의 생산성을 대체한다. 또 단일종자 경작이 세계적으로 확대된다. 미국 자본주의의 헤게모니와 궤를 같이하는 녹색혁명은 화학투입물과 개량된 종자를 핵심적인 생산수단으로 하여 농민의 노동을 통제하기 때문에 농업노동을 실질적으로 포섭한다. 농민은 투입산출물과 관련된 외부의 자원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어 영농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고, 사실상 산업 프롤레타리아와 동일한 위치로 전락한다.
최근에는 종자 부문, 농화학 부문, 곡물무역 부문 각각에서 수평적으로 통합되던 농업 자본의 수직적 통합과 제휴가 늘고 있다. 농화학기업과 종자기업이 통합하고(몬산토, 신젠타, 듀퐁 등), 가공무역기업까지 연합했다(몬산토와 카길의 제휴). 농업과 먹거리 전반에 대한 초민족 자본의 일괄적 지배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농업자본 외에도 가공과 유통, 판매 부문이 대자본(월마트, 네슬레, 맥도날드 등)에 장악되어 ‘양질의, 표준적인 상품’ 생산이 강요되고, 농민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는 더 강해진다. 그러나 자본이 장악한 전체 체계 속에서 위험이 높은 영농을 담당하는 농민의 수입과 지위는 더 악화된다. 우리가 농산물에 지불하는 돈 1달러 중에 농민의 몫을 뜻하는 ‘푸드 달러’는 미국에서 1910년에 40센트 이상이던 것이 현재 7센트밖에 안 된다. 반면 농업 투입물 자본의 몫이 20센트, 포장유통 및 판매 부문의 몫이 70센트를 상회한다.

식량정치와 농업무역의 자유화
자본주의 농업이 확산되자, 농업은 더 이상 먹거리 생산이 아니라 이윤 생산이라는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따라서 세계적 농식품 체계가 확대, 심화되고 농업도 가격의 비교우위에 따라 국제적인 분업 체계 속에서 재배치된다. (반)주변부는 녹색혁명으로 주곡을 자급하지만, 나머지 곡물(한국은 특히 사료와 밀)과 과일, 육류 등은 미국, 호주 등 일부국가에서 공급한다. 한편 일부 주변부는 커피와 카카오 같은 선진국의 기호식품을 재배한다. 특히 사하라이남 아프리카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에 의해 70년대 이후 환금작물 재배가 확대되어 만성적인 기아와 폭력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기후와 역사에 따라 지역에 고유한 먹거리 문화와 농경은 (자본주의) 경제발전이라는 목표에 따라 파괴되고, 식량의 자급도 불가능해진다. 이제 대부분의 농업이 생산과정에서 석유, 화학비료, 농약, 농기계에 의존하고 판매 과정에서는 세계시장에 의존한다.
미국은 대공황 때 농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한 1935년 농업조정법으로 국내 농산품 가격을 지지하였는데, 이것이 미국 농산물의 과잉생산을 야기했다. 따라서 전후 처리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은 1954년 농산물무역개발원조법으로 잉여 농산물을 해외원조로 처분했다. 농산물 원조는 무상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상업 가격으로 유통시켰다. 그 와중에 카길 같은 곡물기업이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미국의 농업 무역 정책은 197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계기로 전환된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서 원조 대신 농산물 수출을 장려한 것이다. 1973년 농업법으로 생산제한 조항이 철폐되었다. 수출 지향적으로 탈바꿈한 미국농업은 수출 시장을 겨냥한 농산물(밀, 옥수수, 대두)을 전체 경지의 1/3이상에서 재배했다. 당시 수확량이 감소했던 동구권을 중심으로 수출시장이 확장되었다(1972년 소련의 흉작으로 세계 곡물가격이 폭등하자 미국은 소련에 긴급구호 농산물을 제공했다). 유럽도 미국의 수출농업 모델을 따르고 미국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밀 총수입량에서 제3세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1950년대 약10%에서 1980년대 57%로 상승한다.
1980년대 이후 GATT와 WTO, 최근에는 FTA를 통해서 각국의 농업시장이 무차별적으로 개방되었다. 비교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지역의 농업은 몰락했지만, 세계적인 농업시장은 확대된 것이다. 따라서 세계 농산물 공급과 소비의 불안정은 더 커졌다. 핵심적인 곡물 생산 지역 한두 곳에서 작황이 나쁘거나, 해당 국가의 정책이 변할 경우 그 영향이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집약적인 단종경작과 사육은 특히 기후나 지역생태계의 변화에 민감하고, 해충이나 질병에 취약하다(예를 들어 최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제역과 조류독감). 기후변화나 생태적 질병 창궐로 위험은 더 높아지고 있다. 수입국은 곡물을 시카고선물시장과 같은 국제시장이나 카길 등의 초민족 자본을 통해서 구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곡물거래 자체가 고수익을 기대하는 투기의 대상이 된다. 세계 곡물 시장의 양대 메이저로 꼽히는 카길과 ADM(아처 데니엘스 미들랜드)의 시장점유율은 75%로 추산되며 콘아르라, 루이 드레퓌스, 분게를 포함한 5대 곡물 메이저의 시장점유율은 90%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곡물 투기에 상품지수에 연계된 투자신탁인 인덱스펀드 등을 통하여 기관투자가나 연기금도 유입된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농업은 농식품 체계를 통해서 농업 생산과 먹거리 소비의 전 과정을 자본이 장악한 것이다. 이 구조 속에서는 석유화학 에너지를 원료로 하는 농업 투입물이 막대하게 소모되고, 소비를 위한 세계시장이 필요하다. 농업에 세계적인 무역망이 필수적인 것이다. 지역이나 공동체에 바탕을 둔 농업 생산과 소비 구조를 대체한 이러한 체계는 자본이나 세계 무역망의 한 부분에서 발생하는 조건 변화와 자연 재해에 취약하다. 따라서 전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가능성을 항상 내포한다. 또 금융화의 진전으로 곡물 ‘상품’ 자체가 금융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곡물가격 폭등의 정세적 원인 : 수요증가, 바이오 연료, 투기

자본에 의한 농업의 지배와 세계시장에 의존하는 식량 수급이 곡물가격 폭등의 구조적인 원인이라면, 최근의 수요 증가, 바이오 연료 개발, 곡물 투기는 그 구조 속에서 발생한 정세적인 원인이다. 중국과 인도로 대표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으로 육식과 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 곡물 사료의 수요가 증가했다는 진단이 있다. 우리는 현상과 원인을 구별해야한다. 중국과 인도가 지목되는 수요 증가는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인구나 인구 성장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산업화된 가축 사육은 풀이 아니라 곡물을 먹여서 고기를 생산한다. 돼지고기 1kg을 위해서는 3kg의 곡물이 필요하고, 쇠고기 1kg을 위해서는 8kg의 곡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경제 발전으로 곡류와 채소 중심의 고유한 먹거리 문화가 파괴되고, 육식을 선호하는 서구형 자본주의 먹거리 문화가 확산되자 육식의 소비가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서 중국과 인도의 육식 소비 증가를 우려하는 것은 자동차로 발생하는 환경 문제가 심각하여서 중국에 자동차가 보급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과 같은 사고이다. 개발도상국의 자동차 보급을 막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이동수송 체계를 전 세계 인민이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생태적인 체계로 변혁하는 것이 과제이다. 육식의 문제도 마찬가지의 지평에서 생각해야한다. 자본주의 농업의 모순을 변혁하는 과정에서, 식품을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할지,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에 대한 문제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 실제로 중국의 1인당 육류 소비는 20년 전 20kg에서 현재 50kg 수준으로 증가했지만, 미국은 1인당 육류 소비가 120kg이 넘는다(참고로 한국은 34kg).
육식을 강요하고 확산하는 것은 서구 자본주의의 문화임과 동시에 해당 산업과 국가가 광고와 무역을 통해 강제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한국 전쟁 후 분식과 육식을 조장한 원조와 미 공보원의 ‘근대화 사업’. 또 최근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쇠고기 수입 시장을 재개방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과, 그에 동반되는 여론전이었던 쇠고기 가격 논쟁이나 쇠고기 먹을 권리 논쟁을 누가 주도했는지 생각해보라). 실제로 육식 문화의 확산은 비단 인도와 중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인구 및 육식 소비 통계로 한두 국가를 특정하여 ‘걱정과 두려움’을 쏟아내는 것은 이데올로기 공세다. 또 다른 차원에서 육식을 문화나 문명의 문제로 등치하고, 개인의 반성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관계를 ‘자연적인 인구의 문제’로 오도하는 맬서스주의의 오류가 중국(과 인도)에 대한 공포로 반복되는 것이다.
2006년부터 세계 곡물의 생산보다 소비가 많았고, 올해에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곡물 비축량이 있기 때문에 그해 생산되는 양보다 소비되는 양이 많을 수 있다). 올해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은 약 20억8천만 톤으로 예상되는데, 그중 사람이 먹는 것은 절반인 10억 톤밖에 안 된다. 나머지 10억8천만 톤 중에 7억6천만 톤이 동물 사료로 사용되고, 2억2천만 톤이 공업용, 나머지 1억 톤이 바이오 연료용이다. 올해 곡물 부족분이 약 5천만 톤인데 사료와 공업용연료용으로 소비되는 것이 20배가 넘는다. 곡물의 소비 구조가 인간의 필요보다는 이윤 획득에 종속되니, 사람이 먹는 양보다 가축과 기계가 소비하는 양이 더 많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식량이 부족하다는 아우성이 난무한다.
세계 곡물 소비 중 5%를 차지하는 바이오 연료 생산이 증가하는 것도 곡물 부족을 부채질한다. 바이오 연료가 지구온난화의 대책으로 제시되면서 미국과 브라질을 필두로 바이오 연료 연구와 생산이 각광받고 있다. 2007년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20%가 바이오 연료의 원료로 소비되었고, 2008년에는 25%에 이를 것이다. 2007년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10년 내에 350억 갤런의 바이오 연료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70억 갤런보다 다섯 배 많은 것이다(그러나 미국 옥수수 수확량의 전부를 연료로 전환해도 휘발유 수요의 12%밖에 충족하지 못한다). 미국이 이렇게 바이오 연료에 주목하는 데는 초민족자본의 로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80년대부터 바이오 연료 사업에 착수한 ADM(세계 2위의 곡물자본)은 바이오 연료 정책의 가장 큰 후원자이다.
그러나 연료 작물을 생산하기 위한 토지 개간과 영농에 석유와 화학비료가 다량 투입되기 때문에 실제로 탄소 배출 감소 효과가 있는지 논란이다. 소량 감소를 예상하는 연구가 있으나, 오히려 탄소 배출이 대폭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결국 석유로 농사를 짓고, 농작물로 다시 석유를 만드는 꼴인데 그 과정에서 수익을 얻는 것은 바이오 연료를 가공하고 판매하는 소수의 자본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과 빈민에게 돌아간다. 자동차에 바이오 연료 100리터를 채우기 위해서 250kg가량의 옥수수가 필요한데, 이것은 한 사람 1년 동안 옥수수만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다. 자동차가 옥수수를 먹고, 가난한 사람은 굶고, 이윤은 자본이 챙긴다. 상황이 이러니 OECD와 FAO(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같은 기구도 바이오 연료가 기대효과는 미미하고 세계 식량공급에 악영향만 끼친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동산과 금융 자산에 대한 투기가 불안하자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품 투기에 자본이 몰리는 것도 곡물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이다. 전통적으로는 곡물상들이 가격 변동에 따른 차액을 노리고 투기를 했다면, 지금은 금융 기법의 발달로 기관투자자나 연기금이 유입되고 있다. 따라서 곡물뿐만 아니라 원유, 구리, 철, 금 등 국제 상품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한편 농업에 필요한 석유와 화학비료가 엄청나기 때문에 원유 등 다른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농업 생산비도 상승한다. 또 곡물은 생산량 조절이 어렵고, 다른 상품으로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요나 공급의 작은 변동도 가격에 큰 영향을 준다. 카자흐스탄 농무부 장관이 수출하는 밀에 관세를 부과할 것을 검토하자 하루 만에 국제 밀 가격이 22%나 급등했다.

벤처 농업과 해외 곡물기지의 허구성

곡물 자급률이 25~30%로 세계 최하위 수준인 한국은 곡물가격 폭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농산물은 그냥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던 정부도 다급했는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짐짓 심각한 척하는 립서비스 말고 뛰는 가격을 잡을 마땅한 방안이 없다. 다급해진 정부는 우선 수입 곡물 관세를 인하했다. 하지만 관세는 이미 시장 개방으로 내릴 만큼 내려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두는 관세가 없고 옥수수와 밀은 0.5%에 불과한데, 이정도로는 1년에 30~150% 상승한 가격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료 구매 자금을 저리도 대출해 주겠다는 정부의 대책도 20~40%씩 오르고 있는 사료가격 부담을 경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돼지 1,000두를 사육하는 평균적인 농가의 한 달 사료비용이 2,000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인상되었다. 궁여지책으로 대출을 선택하더라도 시장개방으로 가격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고, 금융 부담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애써 기른 가축을 일괄 처분하는 농민이나 누적된 빚으로 파산하는 농민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의 선결조건으로 재개되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이번에는 한-미 FTA비준 촉구라는 미명 아래 아예 부위와 연령 제한까지 풀고 확대되었다. 어떤 농가가 정부의 정책을 믿고 농업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한편 이명박 정부는 벤처 농업으로 유명한 ‘신지식인 농업인’ 정운천 씨를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한국 농업의 나아갈 길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는 삼성경제연구원의 “희망 있는 한국농업을 위한 제언”(2005.12.14)에서 우수 사례로 소개한 ‘해남 참다래 유통 사업단’ 회장이었다. 또 같은 보고서에서 제안한 농업과 2, 3차 산업을 결합하는 농업의 1.5차 산업화는 새 정부의 정책 기조로 채택되었다. 대규모 농식품복합체를 육성해서 농업을 고도화하겠다는 방안도 주요 정책이 되었다. 이는 당연한 것인데 이 보고서 작성자로 삼성경제연구원에서 농업 연구를 전담하던 ‘벤처농업의 전도사’ 민승규 씨가 청와대 농수산식품담당 비서관으로 이직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카길의 대니얼 암스터츠 전부회장이 GATT 농업협상에 제출됐던 미국의 ‘예외 없는 관세화’ 방안의 초안을 작성하고, 어네스트 마이섹 전사장은 클린턴 대통령의 수출 자문단으로 활동한 사례가 있다(이른바 미국 정부와 초민족농업자본 사이에 있는 ‘회전문’).
하지만 농업은 기본적으로 민중에게 먹거리를 공급하는 식량산업이다. 벤처농업은 일부 농가를 제외하고 성공할 수 없다. 또 벤처농업으로 식량 생산과 공급이 원활할 수도 없다. 고부가가치 농업이라는 발상 자체가 저가 농산물의 대량공급을 전제한 후에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인데, 현재와 같은 주식 곡물의 가격 상승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오히려 농업을 말살할 한-미FTA 비준을 종용하고, 한-중FTA 등 다수의 FTA 채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의 장기적인 농업 구상은 쌀 자급을 유지하고, 일부 과채류와 기능성 작물을 벤처농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그 와중에서 고령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농민은 이러한 농업 구조조정 계획의 좋은 여건이다. 결국 벤처농업이나 농업을 식품가공업과 서비스업 중심으로 고도화하자는 발상은 농업을 대부분 포기하겠다는 오래된 주장을 빛 좋게 포장한 것일 뿐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자원 민족주의에 더해 곡물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의 대책 중에는 해외 농장을 개발하자는 이른바 ‘해외 곡물기지’ 건설 방안도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해외 농업개발포럼을 출범시켰다. 이명박 대통령도 해외 식량기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현재의 곡물가격 폭등과 농업 위기는 농업이 자본에 포섭된 상황에서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에 따라 식량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발생했다. 에너지와 자본을 고투입하는 해외 농장 개발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식량 자급률에 대한 수많은 경고를 무시하던 자본과 정권이 해외 농장 개발이라는 방식으로 위기를 우회하려는 것은 여전히 문제를 잘못 파악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연해주에 대규모 농장을 개발하여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자는 사고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노선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드러낸다. 또 해외 곡물기지를 동남아나 몽골 등에서 공적개발원조(ODA)와 결합하여 추진하고, 정부는 기반 마련 및 알선을 담당하되 실제 사업은 민간에게 맡기자는 안도 있다. 자본주의 농업의 구조적 문제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세적 조건으로 이러한 임기응변은 더 이상 작동하기 힘들다.
결국 남은 것은 공허한 파퓰리즘 언행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5일 청와대 참모들에게 “밀가루 값이 비싸다면 설렁탕에서 사리를 빼든지, 아니면 사리의 재료인 밀가루를 쌀로 바꿀 정도의 고정관념 파괴가 있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물가가 불안하자 현실과 동떨어진 쌀국수, 쌀라면 발언도 계속되고 있다. 임기응변도 못되는 어이없는 말장난이다.

식량주권과 먹거리농민 운동의 활성화가 대안

곡물가격 폭등의 최대 피해자는 여전히 굶주리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에 여전히 8억 5천만 명 이상이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1~2달러 이하로 살고 있는 극빈층은 가계 수입의 50~80%를 식료품 구입에 사용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물가격 상승은 생존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비용 상승으로 국제 구호기구의 활동도 제한될 수밖에 없어 문제가 심각해진다.
가격 상승의 혜택이 농민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예상치 못한 가격 인상으로 2007년 미국 농가의 수입이 증가했지만, 장기적인 수익 구조는 악화될 것이다. 영농에 필요한 트랙터와 경운기는 석유로 움직이고, 비료와 농약도 석유가 주원료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런 비용이 덩달아 오르니 대출을 통해 비용을 충당하던 농민들의 금융 부담이 가중된다. 사료 가격 때문에 파산하거나, 사육을 포기하는 돼지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는 농업과 먹거리 위기의 대안이 대안세계화 농민운동과 식량주권에 있음을 강조해왔다. 식량주권을 FAO나 정부의 ‘식량안보’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한국에서는 식량안보가 민족주의와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와 결합된다. 이러한 식량안보는 식량 자급률을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한 상태에서 다각적인 수입통로를 확보하고 해외 농업기지를 육성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식량 자급률 목표는 쌀 자급을 방어하는 수준이고, 중심축은 안정적인 수입선 확보에 있다. 그리고 최근 추가된 방안이 해외 식량기지다. 따라서 ‘식량안보론’에서는 안정적인 자유무역이 핵심적이다(국제무역을 왜곡하는 수출제한 조치를 해제하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 또 농업시장 자유화가 불충분 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 있다).
반면 식량주권은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에 좋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을 누릴 민중의 권리이다. 식량주권에는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권리가 포함되지만, 이러한 권리는 자유무역이나 국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중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식량주권은 농민 주도의 지역적이고 생태적인 영농과 그 생산물에 대한 민중의 통제를 의미한다. 소비의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를 먹거리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으로 대표되는 농민운동은 농가 소득 보장과 농업 개방 반대를 축으로 투쟁해왔다. 농업 구조의 변화와 정책 실패로 농사에 필요한 돈은 늘어나지만 농민의 수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농산물 개방을 막고 민족적인 식량자급 체계를 지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국내 농업도 자본과 에너지를 고투입하는 자본주의 농업에 깊숙이 편입해있다. 또 이미 대부분의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어 쌀과 일부 과채류를 제외하고는 자급 수준이 매우 낮다. 따라서 농업 개방 반대에 초점을 맞춘 투쟁이나, 정부에게 식량 자급률 법제화를 요구하는 투쟁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 한국 농업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해서는 식량주권을 운동의 노선으로 체계화하고, 농민운동의 발전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남미의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와 무토지 농민 운동(MST)은 농민의 문제가 자본의 농업 지배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고, 대중적이고 지역적인 차원에서 상품화하지 않는 방법으로 생태적인 농업을 재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시혜적인 정부정책이 아니라 토지, 종자, 물, 숲, 식량에 대한 민중의 직접 통제를 주장한다. 또 국제주의와 페미니즘 등을 수용하여 농민운동에 한정되지 않는 광범위한 시각에서 보편적인 해방을 위한 운동을 지향한다. 이러한 조류를 ‘대안세계화 농민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비아 캄페시나의 사례를 한국의 농민운동이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자본에 종속된 농업 구조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농민을 보편적인 해방과 변혁 운동의 주체로 만드는데 더 천착해야한다. 농민운동이 협소한 자기이해 방어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운동과 국제적전국적지역적으로 연대한다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변혁의 전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운동 속에서 생태적이고 지역적인 농업 체계를 구축하고, 농민운동으로 농촌사회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유기농, 생협 운동이나 2000년 이후의 급식조례 운동은 주로 소비 측면에서 농업과 먹거리 문제를 제기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운동을 아우르고 발전시킨 지역 먹거리(Local Food)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지역 먹거리 운동은 세계적인 농식품 체계의 문제에 주목하여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와 사회적인 거리를 줄이자는 운동이다. 지역적인 먹거리 생산과 소비 체계를 구축해 농민은 적절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소비자는 안전하고 생태적인 식품을 얻을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좋은 먹거리를 집단적으로 공급하는 급식조례 운동도 지역 먹거리 운동의 한 사례다. 또 지역 먹거리 운동은 ‘웰빙’과 유기농이 유행하면서 유기농 제품마저 수입되어 지역적인 생산과정과 괴리된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지역 먹거리 운동의 일각은 정부나 지자체를 통한 제도화를 운동의 주요 의제로 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따라 ‘지역 먹거리 정책협의회’를 설치하고 광역단위에서 지역 먹거리 체계를 구성하자는 것이 주요 안이다. 물론 ‘지역 먹거리 정책협의회’는 정부에 의해서 주도될 수도 있고, 민간에 의해서 주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든지 지금 농업과 먹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권력 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이 정책대안으로 수용되더라도 변혁적 농민운동이나 다른 사회운동과 결합하지 못할 경우 자본주의 농식품 체계를 유지한 채 보조적으로 활용되는 수단에 머물 위험이 크다. 그렇게 될 경우 지역 먹거리도 새로운 ‘상품’에 머물고 말 것이다, 새로운 소비 양식으로 자본에 종속된 농식품 체계를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10여년의 실험을 거친 생협과 유기농이 기업화, 제도화되어 소수의 색다른 ‘라이프 스타일’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 농업생산 구조를 농민 주도로 변혁하고, 유통과 소비 전반에 대한 민중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은 소비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운동의 역동성을 상실하고 자본주의의 동학에 대한 맹목을 공유한다면 지역 먹거리 운동도 유사한 길을 걷게 될 위험이 있다. 생협이나 지역 먹거리 운동을 대안적인 미래 사회의 가치를 지금 미리 보여주는 ‘예시적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예시적 실천은 그것을 보편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의 한 과정이다. 따라서 생협과 지역 먹거리 운동의 가능성이 실현되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한 면밀한 인식 속에서, 여러 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환으로 자신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곡물가격 폭등은 식량에 대한 민중의 권리 쟁취와 생태적지역적 농업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자본주의 농업의 위기를 연기할 수 있는 자본과 정권의 대안은 한계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운동의 조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대안세계화와 식량주권을 이념으로 농민운동과 먹거리 운동이 발전할 때 현재의 농식품 체계를 변혁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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