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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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9-10.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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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공개가 농촌 교육에 몰고 올 파장

우상숙 | 전교조 경북지부 봉화지회장
성적공개 왜 할까?

우리나라 대통령의 취임 6개월을 맞아 곳곳에서 성적표를 내놓았는데 중간성적표가 ‘양’ 아니면 ‘가’라고 한다. 듣는 대통령 각하, 기분이 좋으실 리가 없다. 이것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적용해 보면, 마찬가지다. 자신의 좋지 않은 성적을 굳이 공개해서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기분도 나쁘지만 공부할 의욕도 떨어진다. 게다가 나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경고까지.
새 정부 들어서 발표된 4.25 사이비 교육자율화 조치는 결국은 학교 성적공개와 그것을 바탕으로 학교 간 줄 세우기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 같다. 각종 규제가 사라지면서 시.도 교육청과 학교장의 권한이 강화되고 학력을 끌어올리려는 학교 간, 지역 간 경쟁이 불붙을 것이다.
참 어이없는 노릇이다. 학교 안에서 교육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다. 학교 교육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비한 문제풀이 위주 수업으로 급속하게 변질될 것이 우려되는 한편 그동안 대통령 권한으로 남아 있던 교장 임명권,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장관의 권한으로 돼 있던 시.도 교육청 국장급 이상 장학관, 교육장, 교육연수원장에 대한 임용권도 교육감에게 넘어가게 됨으로써 교사들이 교원에 대한 인사권을 지닌 교육감의 눈치를 보게 될 형편이다. 자율화 조치의 결과는 학생들 성적을 올리기 위해 보충수업, 모의고사의 변칙적 운용은 물론이고 0교시 수업, 초등학교의 방과 후 교과 보충수업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교육의 본질, 아이들의 꿈과 적성, 교사의 역할’ 등을 소리 높여 강조한다. 그런데 똑같은 말이라도 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른 것 같다. 진짜로 전인교육을 말하려고 하는 교사들은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기 일쑤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부모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위기의 학교’, ‘공교육 붕괴’라는 말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되는 지금, 무기력한 교무실의 분위기는 이 시대 교육현장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사라질 학교, 위기의 학교

영국 공교육의 현실을 다룬 『위기의 학교』(우리교육, 2007)라는 책이 있다. 저자인 닉 데이비스는 영국의 공교육이 왜 실패했는가에 대해서 한마디로 얘기했다. 저자는 ‘학교의 학력은 학교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학교에 어떤 계층의 학생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닉 데이비스는 환경이 학생의 학력에 미칠 영향을 90%로 추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얼마 전 서울시 교육감은 ‘성적이 낮은 학교는 퇴출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교육관련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안’이 발표되어 학교는 의무적으로 성적을 공시하게 되었다. 앞으로 펼쳐질 한편의 생생한 드라마가 보이지 않는가!
퇴출되지 않으려면 그 학교 교장과 교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게다가 시험은 매년 치고 단기간에 성적은 올려야 하는데, 학생들의 실력은 금방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나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답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맞기겠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 하에서 우대받는 사람은 사교육을 잘 받아 성적이 좋은 중산층 이상의 학생들과 성적을 올리는데 귀신같은 교사들이고, 우대 받지 못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이들 때문에 학교가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거나, 심지어 문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공교육은 이미 무너지고 학교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쟁터의 사각지대에 있는 학교들 중에 농촌지역의 학교들이 있다. 어느 군(郡) 단위나 거의 비슷하겠지만 봉화군은 좁은 지역이다. 인구도 물론 적다. 학교라고 해봐야 기껏 초등학교 10여개, 중학교 10여개, 고등학교가 서너 개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면 단위의 경우에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 아이들이 학교를 같이 다닌다. 이곳 역시 각 학생들 가정의 경제적 형편과 학력과의 관계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형편이 조금 나은 가정의 경우, 인근 읍내의 학원을 다니거나 사교육을 받으므로 날로 개인 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추세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 농촌뿐이겠는가? 도시의 경우에도 경제적인 차이가 학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분석과 올바른 대책을 수립하기는커녕 성적을 공개해서 학교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교과부 관계자의 발언은 이들이 과연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교과부의 조치로 의무적으로 공개되는 정보는 표와 같다.

이중 눈여겨 볼 부분이 학업성취도 결과(3개 등급 비율 및 전년 대비 향상도) 공개이다. 교과부의 시행령(안)을 보면, 모든 초.중.고교는 매년 10월 초6, 중3, 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 등 다섯 과목에 대해 실시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2010년부터 ‘보통학력 이상’,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세 등급으로 나눠, 각 등급에 해당하는 학생 비율을 공시해야 한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교육과정에 대한 학생의 이해 정도를 기준으로 ‘우수학력’(80% 이상), ‘보통학력’(80% 미만~50% 이상), ‘기초학력’(50% 미만~20% 이상), ‘기초학력 미달’(20% 미만) 등 네 등급으로 학생들에게 통지되지만, 학교 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해 외부에 공시할 때는 세 등급으로만 분류한다. 이러한 시행령에 대해 교원단체나 시민단체에서는 학교를 문제풀이의 장으로 만들고 대학당국들이 고교등급제를 강하게 요구할 근거로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교육권력 집중, 도시화 가속도, 위기의 농촌

학력경쟁은 교육을 파괴한다. 경쟁이 올바르게 작동하면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학연, 지연, 뇌물, 청탁 등의 그릇된 방법들이 힘을 발휘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주로 후자의 경쟁이 판을 친다. 이 뿐만이 아니라 특정지역의 성적이 좋아 언론에 공개되면 다른 지역의 학생들이 유학을 가고, 특정한 한 지역 안에서도 학력의 쏠림현상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원리로 도시와 농촌의 사이에서는 도시로 시도 단위에서는 서울로 집중된다.
농어촌 교육이 위기라고 이곳저곳에서 떠드니 정부에서도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8월 27일, 교과부는 농촌 지역 교육을 살리겠다며 ‘기숙형 공립학교’ 82개교를 선정한 것이다. 82개교 중에는 우리 지역의 봉화고등학교도 포함되어 있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해당 지역민의 15% 내외가 자녀를 기숙형 공립학교에 진학시키려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학부모가 희망할 것이다. 기숙형 공립학교에 지정된 학교와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무슨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처럼 이곳저곳에 플래카드를 붙인다. 그리고 마치 이 조치가 농어촌 교육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인 것처럼 선전한다. 하지만 농어촌 교육의 위기가 ‘학교’ 자체의 위기가 아니듯, 이른바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는 공립학교를 세운다고 농어촌 교육이 살아날 수는 없다. 보통 사람이 ‘스테로이드 주사’ 한 방을 맞는다고 수퍼맨, 수퍼우먼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서열화의 하위에서 ‘약자’가 되어 있는 농어촌 학교가 기숙형 공립학교로 기사회생하기는 어렵다.
사실 지역 사람들 중 일부는 기숙형 공립학교로 농어촌 학교가 이른 바 ‘명문고’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갖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인재유출로 위기에 처한 농어촌 교육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과잉경쟁을 통한 줄 세우기가 커질 뿐, 농어촌 학교와 도시 학교의 교육편차를 줄이지는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지역 내에서도 선택된 학생과 배제된 학생 간의 위화감이 조성되는 등 보이지 않는 갈등도 커질 전망이다. 여기에 성적공개라는 처방은 번져가는 불씨를 거대한 불덩어리로 만드는 ‘기름을 붓는 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해본다.
지금도 농촌은 노인들만이 다수를 차지하는 ‘잊혀진 곳’이다. 성적공개가 몰고 올 또 다른 결과로 맞이하게 될 ‘짙고 우울한 회색빛 농촌’을 그리는 것이 기우가 되기를 바란다.

* 필자는 명호중학교 교사이고, 전교조 경북지부 봉화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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