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3-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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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세와 노동자운동

김승호, 박하순, 이경수, 조희만 |
□ 일시: 2009년 2월 27일(금)
□ 장소: 사회진보연대
□ 참가: 김승호(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박하순(사회진보연대 공동운영위원장)
이경수(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자전선 대표)
조희만(평등사회로전진하는활동가연대 의장)
□ 사회: 임필수(정책위원장)
□ 정리: 정영찬(노동위원), 구준모(정책위원)


사회자: 이번 대담은 세계경제위기가 전개되는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현황과 과제를 점검하고자 마련하였습니다. 먼저 간략히 정세와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조건을 진단하겠습니다. 현재 노동조합의 대응방향이 대략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데 어떤 점들을 주목해야 할지 토론하겠습니다. 또한 민주노총 성폭력사태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중연대와 진보정당을 비롯한 민중운동 전반의 공동대응 방향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겠습니다.

경제위기의 원인과 전망

사회자: 현재 경제위기의 전개양상을 두고 정부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경제연구소들 중 일부는 U자형일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는 것이지요. 반면 민중운동 진영 일부에서는 세계 자본주의가 파국적인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망합니다. 먼저 현재 위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 그 전망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김승호: 우선 용어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부르주아 언론은 다들 ‘금융쓰나미’, ‘금융위기’라면서 현재 상황이 마치 금융에 제한된 것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금융과 실물을 망라해서 서로 맞물려서 진행되는 경제위기라고 봅니다. 그런데 경제위기라는 표현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위기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날 수 있도록 ‘자본축적의 위기’라든가, 좀 더 개념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공황’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경제위기라는 표현을 자꾸 사용하다보면 위기의 부담을 노동자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자꾸 쟁점이 됩니다. 우리의 담론이 자본의 의도에 끌려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경제위기보다는 공황이라는 용어가 사태를 바라보는 데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표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단지 미국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다른 지역으로 전염된 게 아니라, 자본주의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따라서 현 정세를 세계경제공황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음으로 지금의 위기가 어느 규모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1930년대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은 고유명사입니다. 즉 사상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이번 사태를 1930년대 대공황과 비교해본다면 자본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위기의 규모가 더 크고 골이 더 깊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로 전환 이후 30년 가까이 소규모 공황은 있었지만 대공황은 없었습니다. 실업문제도 전 지구적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30% 이상의 실업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순들로 인해서 세계 도처에서 계급투쟁과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박하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으로 봐야 합니다. 짧게 보면 1997년 이후 이윤율이 하락했고 길게 보면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윤율이 하락했습니다. 이윤율 하락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에 현재 위기는 본래부터 실물경제와 깊은 연관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된 미국 주택위기에서 미국의 주택이 금융과 깊숙이 연관될 수밖에 없어서 금융위기 성격이 아주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엄밀하게 따져 봤을 때 김승호 대표처럼 볼 수 있는데 위기의 촉발에서 금융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금융위기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이 대공황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대공황 시기에는 4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그중 3년은 매년 -10%내외의 급격한 마이너스 성장을 했습니다. 일부 부르주아 연구소는 2009년이나 2010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끝내고 그 이후에는 지표상으로 플러스 성장을 한다고 예측합니다. 반면 최근에 크루그먼은 대공황보다 마이너스 성장이 더 오래갈 수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1870년대 위기처럼 5~6년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 위기가 대공황처럼 급격한 마이너스 성장이 장기간 지속되는 양상으로 진행될지는 불확실합니다. 다만 대공황에 비해 회복과정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심각한 위험요소입니다. 대공황의 극복에는 2차 세계대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또 당시 미국자본주의는 장기적으로 상승 추세에 있었습니다.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고 미국자본주의 이윤율이 상승하던 추세였습니다. 현재 위기는 대공황 이후보다 회복과정이 더 더디고 지지부진할 것이고, 이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경수: 경제규모가 훨씬 커졌고 자본운동이 더욱 활발해졌기 때문에 이번 경제위기가 규모가 더 거대할 것이고 근본적인 모순이 더욱 심각하게 표출될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당장 위기를 돌파할 새로운 축적의 기회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자본주의 중심에서 일했던 자들도 이제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방향전환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본운동이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조희만: 경제위기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누구의 위기입니까. 골드만삭스나 AIG의 자본가와 경영자들은 수천수백만 달러의 상여금과 성과급을 챙겼습니다. 파산에 책임져야할 자본가들은 도리어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서 요트를 사가지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자본가에게는 위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위기라는 용어를 쓰면 우리가 같이 책임져야하는 형국으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현 사태가 자본가들의 과잉착취, 과잉축적의 필연적 결과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제기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자본가들은 경기가 바닥을 칠 때마다 위기론을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좀 더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새로운 착취구조를 바탕으로 또 다시 자본주의를 유지시켜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방법이 보이지 않기에 자본가들도 답답할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실제적으로 우리의 고통은 상당히 길어질 것입니다. 이제는 자본가들이 전쟁이란 카드를 사용하기도 매우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래서 위기는 깊어지고 길어질 것이며 방향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민중들은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자: 지금까지 의견을 종합하면 두 가지 요점으로 집약됩니다. 하나는 경제위기가 모두의 책임이고 노동자도 그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현 위기의 계급적 성격과 영향에 대해서 정확히 제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본주의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고 장기화될 전망이 있고 정권과 자본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파국적인 위험이 뒤따른다는 예측입니다.
김승호: 위기의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나라는 경제의 금융화를 고도로 추진한 나라입니다. 서유럽의 아이슬란드, 동유럽의 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 중동의 두바이 등 미국식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나라들이 제일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은 금융시장 전면 개방으로 인해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환율폭등으로 보면 이미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또 한국은 글로벌 체계가 영원하다는 생각으로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형성했지만 세계시장 규모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4/4분기 한국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5.6%였는데, 이를 연율로 따지면 -20%가 넘습니다. 이미 엄청난 불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IMF 시절에는 세계시장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을 낮춰 수출을 확대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위기를 과장해서는 안 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 입장에서는 이윤율이 저하되어서 부도, 파산위기에 내몰리고 시장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고용축소, 임금삭감 등 비상수단을 총 동원해서 살아남으려 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대량실업이 지속되고 실질임금이 대폭 감소되면서 절대 다수의 서민들이 생활의 위협을 받을 것입니다. 앞으로 노동기본권을 박탈하고 최저임금을 삭감하는 등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심각한 반동이 추진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위기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사회자: 세계적 경제위기이기 때문에 금융개방 수준이나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데 한국은 이러한 두 조건에 모두 해당되기 때문에 아주 강력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지난 해 3/4분기까지도 제조업 대기업들의 수출호조세가 유지되었고, 한국 노동조합이 대체로 대기업 제조업과 공기업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위기를 체감하는 수준이나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재 현장에서 나타나는 노동자의 상태나 정서를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지, 향후 위기가 장기화된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의견을 나누겠습니다.
이경수: 거대하게 밀려올 해일에 비하면 아직 전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자동차나 제조업의 경우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임금이 30~40%씩 삭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제조업을 제외하고는 경제상황이 잠시 나빠진 것으로 인식하지, 앞으로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어 거리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가 지나면서 경제위기 파급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구조조정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박하순: 한국의 경기하강 속도가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이러한 현상이 과연 장기화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노사가 모두 반신반의하는 것 같습니다. 당장은 다소간의 제도적인 방패막이 작동해서 고용보험, 고용안정기금 등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위기가 아주 심각한 수준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6개월 내지 1년 이상 지속된다면 사업주들도 해고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장 쌍용차 구조조정을 시발로 해서 올해 5, 6월부터 대량해고가 본격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희만: 저는 위기의 양상이 단계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조업의 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 아직 여유로운 부문도 조금 남아 있습니다. 공공부문에서는 정부방침에 따라 정년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사무직이나 공공부문 정규직의 경우에는 여유가 있을 것이고 경제위기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용이나 임금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나타나려면 적어도 2, 3년 정도 걸릴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전망

사회자: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명박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30% 내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정부는 일본은 10% 영국은 20%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다면서 자신감을 갖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정부 지지율은 실상 낮은 편이지만 다른 정당에 대한 지지율도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고, 용산참사와 같이 민중운동에 대한 참여도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견고하게 느껴집니다. 현재 정치지형과 이명박정부의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누겠습니다.
김승호: 미국에서 국유화가 의제로 오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의 IMF 사태 때와는 다릅니다. IMF 때에는 국유화 없이 자금지원만 한 것으로,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지분을 국가가 인수하고 경영을 정상화한 다음에 이것을 초국적 금융자본에 넘겨주는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드디어 국유화가 의제에 오르고 있는 것은 사태가 그 정도로 심각함을, 즉 ‘공황’ 상태임을 말해줍니다.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 대해서도 단기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조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향후 금융공황을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때 이명박 정권도 일부 은행을 국유화해서 금융을 시장원리 하에서 작동하는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으로 분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기각되고 국가자본주의적 요소가 도입되는 것이지요. 통치형태에 있어서도 경제위기에 비상하게 대처한다고 하면서 자본에게는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노동자 민중들에게는 가혹하게 착취, 수탈하면서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형태로 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요컨대 권위주의 내지 파시즘이 우려됩니다.
조희만: 이 위기를 돌파를 하려고 마음먹는 정권이라면 자본의 지원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이명박정부에 들어와서 오히려 자본가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확고부동한 20%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후 전망에서 독재나 파시즘으로 가게 될 우려가 있느나 실제로 녹녹치 않을 것입니다.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중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독재형태로 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경수: 이명박정부가 지지세력을 확실히 묶기 위해서 강압적 통치스타일을 강화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명박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지가 중요합니다. 일부 운동진영에서 강조하는 반MB 전선은 계급적 본질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반MB 구조로 정치지형을 형성하려는 시도는 굉장히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박하순: 경제살리기를 내세우고 집권한 이명박정부가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확고한 지지기반을 다지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60~70%가 반대하는 정권은 그렇게 튼튼한 정권은 아닙니다. 또 이명박정부는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 계속 지지부진한 지지율로 통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배세력의 이익도 챙기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명박정부 내내 정치불안이 심화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반이명박 정치세력도 여전히 취약합니다. 노동자, 민중을 중심으로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서 현 정세에 대응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노동자운동의 상태와 대응방향

사회자: 이명박정부가 가만히 있어도 문제인데 경제, 노동, 정치, 사회 관련 각종 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의 대응력이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의회 내에서 민주당에 의존해서 한나라당의 입법을 막거나 대안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민생민주국민회의가 바로 그런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노동자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가닥을 잡느냐가 이명박정부 집권 시기동안 정치지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럼 이제 노동자운동의 대응방향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현재 노동자운동의 상태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조희만: 운동이 다 망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그 주범 중에 하나가 제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조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반성에서부터 시작해야지만 새로운 투쟁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와 임원 총사퇴에는 진정한 반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를 하나의 정파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얼마 전 민주노총 중앙위원회는 임원 보궐선거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8개월짜리 보궐집행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곳에 참석했던 중앙위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위기국면에서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위기라고 생각한다면 규약에 얽매여서 중요한 판단을 미루는 것은 잘못입니다. 8개월 임기로는 투쟁도 할 수 없고 직선제 준비도 할 수 없습니다. 또 1년 동안 민주노총을 식물로 만들겠다는 결정입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보궐선거로 등장할 새로운 집행부가 구체적 투쟁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민주노총 지도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대공장 노조라든가 핵심 노동조합이 앞장서고 나머지 노동조합이 뒤따라가는 식으로 투쟁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위기가 몰아치고 있는 제조업에서 현대와 기아, 공공부문에서 가장 큰 투쟁을 벌일 수 있는 화물연대를 설득해야 합니다. 금속과 공공이 앞장서고 모든 사람들이 협력하여 일차적 투쟁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투쟁할 수 있는 체제로 집행부를 구축해야 합니다.
김승호: 현 사태에 대해서 누구도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조희만 동지의 의견에 전폭적으로 동의하고 모두가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현재 민주노조운동, 민중운동 전체가 처해 있는 어려움은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닙니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증폭된 것입니다. 민주노총은 작년 촛불 정세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고, 지금과 같은 파국적 상태까지 왔습니다. 따라서 이제 어떤 ‘정책’을 구사할 것이냐를 둘러싼 정파적 차이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노동운동이 어떠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은 한마디로 비즈니스 노조, 실리주의 노선이며 실제 활동내용을 보면 미국 AFL-CIO와 다른 것을 별로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1980~90년대 계급적 노동운동의 이론을 학습할 때는 실리추구를 중심으로 하는 노조활동은 타락한 노동운동이고, 운동도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 시대에 들어아서 우리 자신이 그렇게 실리주의 노조활동을 해왔습니다. 1995년 출범 당시 민주노총이 실리적 노조주의를 표방한 것이 아니었고 사회개혁적 노동운동을 내세웠습니다. 노동해방을 표방하는 것이 정세적으로 부적절하다는 판단으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책무를 방기하면서 대안으로서 톤을 낮춰서 사회개혁을 이야기했던 것인데, 그것조차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변혁성을 버리면서 사회운동성까지 총체적으로 무너진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비상투쟁체계로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 그것에 대해 재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변혁성과 사회운동 정체성을 회복하고 살려내야 합니다. 개인이나 조직의 도덕성에 대한 반성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우리 운동이 이렇게 타락한 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이경수: 민주노조운동이 망가졌다는 진단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이 망가진 것이 정파 때문이라는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김금수 씨가 노동운동의 전략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만들고 민주노총 전략을 실제로 좌지우지한 분이 지금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민주노총은 우리의 전략이 이거다 하고 내놓지 않았더라도 나름대로 전략을 가지고 왔습니다. 전략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전략이 문제입니다.
자본은 노동운동을 계속 공장안에 묶어두려고 했고, 현장 조합원들은 실리적 노동조합에 갇혔습니다. 노동운동이 공장 담벼락과 지역을 넘기 위해서는 사회개혁적이든 사회변혁적이든 한 사회의 정치적 문제를 걸고 나와야 합니다. 이 측면에서 민주노총을 주도했던 세력이 이에 대해 얼마나 복무했는지 의심이 듭니다. 대중추수적 운동을 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민주노총은 10년 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운동이 전체 계급에 복무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조희만 동지 이야기에 일부분 동의하지만, 8개월 집행부는 싸움을 잘 못하고 임기를 늘린 집행부는 싸움을 잘 할 수 있나요. 또 운동을 망가뜨린 사람들 말고 조금 더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이 투쟁 계획을 잘 내놓으면 투쟁이 잘될까요. 운동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무너졌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모두 잘못했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책임이 막중한 세력과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세력이 있는데 다 같이 묶어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해서 우선 철저히 운동을 평가해야 합니다. 둘째 민주노총이 자본에 대응하기 위해서 올바른 조직형식과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산별중심으로 조직이 개편되고 지역본부가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조가 올바른지 평가해야 합니다. 셋째 주체적 측면에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 안이 제출되어야 합니다. 넷째 민주노총을 건설하면서 사회개혁운동을 표방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회변혁과 급진적 운동이 통제된 측면이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민주노총이 지난 10년간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노선과 내부 투쟁이 필요합니다.
김승호: 민주노총이 전노협을 계승한다고 했지만 급진적인 부분을 탈각한 면도 많습니다. 수세적으로 노동해방 기치를 버리고 사회개혁 기치로 가자고 했는데 그냥 실리주의로 눌러 앉아 버렸습니다. 노동해방이라는 변혁적 성격을 전체 노선으로 세우고 계급의 힘으로 형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큰 방향이 그렇게 잡히면 그 다음에 전략과 전술을 창조적으로 개발하면 될 것입니다.
박하순: 민주노총 주류노선에 대해 비판적 세력도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 문제를 제대로 비판하고 극복하려 했는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내가 1998년 민주노총 정책실에서 활동했을 때 기존 성원들이 김대중정권이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패배한 측면이 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상실했고 노동자 내부의 분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이런 문제는 지도부 의지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조합원 수준에서 후퇴가 심각합니다.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문제, 여성노동자 문제,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 민중적 방식의 대응을 모색하지만 현장에서는 우선 자기라도 살아야 한다는 일반 직장인 수준의 인식이 팽배합니다. 이는 우리 운동전반의 패배와 후퇴 과정이 낳은 결과입니다. 따라서 바로 현 시점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운동을 통해 민주노총 운동을 다시 소생시켜야 합니다.
사회자: 지금까지 의견에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이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출발해야 한다거나, 단순히 정책이나 조직전략을 넘어서 정체성의 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물론 약간의 이견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견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에 대해서 의견을 좀 더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김승호: 여기 있는 분들은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만, 다만 민주노조운동 전반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면 의견 차이가 상당히 날카로울 수 있습니다.
조희만: 노동자전선과 현장노동자회 사이에는 의견차이가 상당히 존재합니다. 사실 좌파라고 하면서 서로 의견 차이를 비난의 화살로 사용하는데 급급했습니다. 어떤 단위공장에 가면 <노동자의힘>과 <전진>이 원수지간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면한 위기에서 노동자운동의 주요 투쟁요구는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돈을 늘리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실업급여 기간을 늘린다든지 기초소득을 높인다든지 해서 노동자 민중들에게 현금이 많이 돌아가기 위한 요구를 내거는 것이 광범위한 대중을 결집시킬 수도 있고 투쟁효과도 높을 것입니다. 당면 투쟁요구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내세워야 합니다.
민주노총의 중장기적 방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복수노조 문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 문제가 있고, 최근에는 제3노총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직선제 문제도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파도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임시 집행부로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나아가 투쟁까지 조직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정말 중지를 모아서 민주노총만으로 다 할 수 없다면 관련된 사회운동 단위에서 폭넓게 토론하면서 방침을 마련해야 합니다. 직선제 문제도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재 직선제를 준비 과정을 들으면 분열, 혼란이 불을 보듯이 훤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열어놓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복수노조 문제도 큽니다. 복수노조에 관한 정권과 자본의 전략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투쟁을 해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성과 없이 누가 복수노조에서 산별로 가겠습니까. 현재 공공이 처한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김승호: 우리가 성과를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경제공황 속에서 단기적 성과를 쟁취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공황 속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수많은 실업자와 반실업자입니다. 또 그렇게 굶주림에 내몰리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실질임금이 저하되는 조건 속에서 노동력의 재생산, 즉 인간적인 생활이 전면적으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조직된 노동자가 선두에 서서 그동안 제기했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공임대주택 체계 등을 요구하고 투쟁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자기 이해도 해결하고 광범위한 대중의 이해도 해결하면서 조직을 확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하순: 케인즈주의 정책을 우리사회에서 펼치는 것은 녹녹치 않습니다. 환율불안 속에서 정부가 지출을 막대하게 늘리고 사회보장을 확충하고 노동자 고용과 임금을 온전히 보전하는 것은 현재의 생산관계나 소유관계를 유지하면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회보장확대,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자본주의 질서를 일정하게 돌파하는 운동이 불가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이것이 가능하려면 노동자의 힘이 엄청나게 강해야 합니다. 미국의 사례처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일정하게 침식해야만 이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노동자내부의 단결입니다. 노동자 내의 정규직 비정규직의 단결, 혹은 산업별 노동조합 수준을 뛰어넘는 총연맹 수준의 단결을 확보해야 합니다. 저는 정파적 대립도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패배하고 후퇴하는 과정을 거치며 오류를 범하는데 문제는 내가 하는 행위는 대충 용인하고 다른 세력이 하는 경우에는 비판의 날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중적 평가도 있어야 합니다. 민주노총에서 공식문서로 통과되는 것이 상당히 어렵지만 조합원 사이에서 노선에 대한 잘잘못을 평가하고 어떻게 민주노총 운동을 발전시킬 것인가 논의해야 합니다. 사업장에서 투쟁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조합원 내부의 단결을 확보할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총연맹 수준 혹은 전 노동자 수준에서 강령적 요구를 통한 단결이 필요합니다. 개별투쟁을 성실히 수행하고 전투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묶어내고 전 노동자 투쟁을 구축하기 위한 요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경수: 지금까지 민주노총 총단결을 외치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결에 동의하지만 단결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느냐 문제에서 견해차이가 있습니다. 아까 직선제가 쟁점이 되었는데, 현실적 조건이 어렵다면 그 조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현재 직선제의 가장 큰 문제는 산별연맹에서 총연맹에 내는 의무금을 중간에서 잘라먹는 것입니다. 직선제를 실시를 위해 조합원 명부를 제출하라고 하지만 제출을 안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무금을 산별에 내던지 총연맹에 내든지 상관없이 단위 사업장에서 조합원이라고 인정하면 투표권을 주면 됩니다. 남는 문제는 선거관리가 어려운 것인데, 그건 실무적 차원으로 검토하면 됩니다. 따라서 중앙위원회 수준이나 산별연맹 수준에서 마치 굉장한 어려움이 있은 것처럼 유포시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에 대한 진단

사회자: 조희만 대표는 중앙위원회 결정이 정세에 비추어볼 때 너무 관성적이었다는 입장을 제기했습니다. 이미 중앙위원회에서 결정이 난 조건에서 어떤 대응이 필요할 것인가도 검토해야겠습니다. 그에 앞서 이번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김승호: 성폭력 사태만 보더라도 우리가 민주노총의 현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남성노동조합총연맹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 중 여성조합원이 20%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비정규직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화되었는데 냉정하게 말해서 민주노총은 그것을 돌파하지 못하고 오히려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모여서 활동하는 것이 필요한데 성별비율만 봐도 반성의 지점이 드러납니다. 조합원 일반의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활동문화 역시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후퇴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물론 가해자를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비단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제이고 운동 전체의 문제입니다.
이경수: 민주노총이 다른 문제는 잘하는데 성인지적 관점은 낮은 조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의 전반적 운동수준을 반영한 것입니다. 문제에 대한 토론이 성평등 교육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논하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고, 할당제도 형식적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서는 민주노총이 성 불평등에 관한 자각이 낮은 점도 드러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내부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이를 해결하는 것이 전혀 훈련되지 않은 조직이라는 점도 드러났습니다. 그러다보니 무리하게 조직보위를 내세워서 문제를 덮으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폭발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구성해나가는 수순이 필요합니다.
박하순: 노조운동 내에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전과 다른 특별한 조치가 없다면 비슷한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해결 과정에서 법에 의존하고 사법당국으로 끌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전 조직적인 차원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성폭력 사건 하나 제대로 처리하면 비슷한 문제가 또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문제가 중요합니다.

보궐선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자: 중앙위 결정에 따라 주어진 임기를 위한 보궐선거가 진행될 것입니다. 새로운 지도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각 단체는 어떤 판단이나 계획이 있는지 의견을 나누겠습니다.
이경수: 보궐 집행부는 임기가 7-8개월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분명히 한계가 존재합니다만 그 때문에 모든 것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면과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사태뿐만 아니라 구조조정 투쟁, 노동자운동에 대한 자본의 전반적 공세에 대항해서 투쟁전선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 문제 등. 투쟁동력을 형성하는 것이든 이데올로기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든 보궐 집행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보궐 집행부가 어떠한 성격을 띨지, 의견그룹 사이에서 어떤 모습의 집행부가 등장할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노동전선은 아직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김승호: 비대위나 보궐선거에 관해서 직접적인 발언은 하지 않고 직선제 문제에 국한해서 언급하겠습니다. 현재의 산별노조는 계급적인 산별이 아닙니다. 지역에서 수평적 연대도 잘 안 되고 총연맹으로 집중되는 체계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별로 나간다고 하지만 개개 산업별노조의 투쟁만으로는 총노동 차원의 힘을 결집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참여를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산별 연합단체 중심의 조직체계에 대한 혁신이 시급합니다. 당장 전면적 조직혁신은 어렵겠지만 일정한 당면요구는 수용해야 하고 그 중에서 하나가 직선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민주노총은 규약상 최고의결기구를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총회로 변경했습니다. 그러면 파견대의원도 현장에서 바로 선출하는 것이 맞습니다. 조합원의 의사가 연맹을 통해 걸러지면서 관료화되는 것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야만 조합원과 총연맹 지도부 사이에 직접적인 상호 책임관계가 형성되면서 총연맹에서 총파업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하더라도 지도부와 대중 사이의 거리감이 축소되고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됩니다. 민주노총위원장 직선제는 이러한 의미를 살리는 방향으로 해야 합니다. 정파 간의 역학관계에 어떤 작용을 미칠 것인가와 무관하게 직선제를 산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하는데, 기술적적인 어려움을 때문에 이를 늦추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 아예 단위사업장에서 대위원을 직접 민주노총에 파견하는 방식도 적극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선거과정에서 민주노총 정체성의 문제를 집중적인 의제로 다루고, 노동해방의 기치 아래 변혁적 노동운동으로 가자는 것인지 기존의 실리적 노동운동 패러다임을 유지하면서 그의 연장선 속에서 활동하자는 것인지 좌우의 여러 정파들이 진검승부를 하면서 민주노총 혁신 방향을 대중에게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하순: 시기로 보면 보궐 집행부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폭력이나 직선제 같이 현안 문제를 잘 처리하는 것도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길이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경제상황을 볼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돌발적인 사건들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집행부에게 다 맡겨놓을 수 없기 때문에 일반조합원을 포함해 민주노총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이 보궐 집행부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아주 건설적으로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분투해야 합니다.
조희만: 그것은 너무 원론적인 주장입니다. 현재 그러할 조건이 안 됩니다. 11월에 직선제 선거를 마치도록 되어있는데 그러면 9월부터 선거등록에 들어갑니다. 4월에 선출되어서 인수인계 받는데 4월 보내면 5~8월뿐이니까 실제 4개월짜리 집행부입니다. 그나마 7~8월은 휴가철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 9월부터 선거에 돌입할 텐데, 3년 임기의 선거니까 경선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선거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다 손 놓게 됩니다. 올해 판을 형성하기 위한 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8개월 집행부가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논의를 해보고자 합니다. 현실은 주어진 것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논의하면 어떻게 집행부를 꾸릴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보궐선거에서 제발 이번 사태와 연루되었던 사람과 조직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가능하면 그 외에는 다 통합해서 집행부를 꾸렸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비리사건이나 이번 사건에 관련된 측은 이번에는 한번이라도 빠져서 도와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나머지 정파들은 가능하면 통합해서 이끌어나가자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 수준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민주노총의 한국진보연대 가입 유예와 민중연대

사회자: 민주노총의 <한국진보연대> 가입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여러 차례 쟁점이 되었던 문제였습니다.
김승호: 이 문제도 우선 원칙을 정립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현실에 접목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는 공황정세입니다. 1930년대 공황시기의 노동운동 역사를 보면 미국 산별노조운동과 유럽에서 프랑스의 인민전선을 통한 사회개혁이 전개되었습니다. 이 중 인민전선의 경험이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연대전선 문제와 관련하여 참고가 됩니다. 공산당과 사회당 계열로 나뉘어져 있던 프랑스 노동자계급은 대공황 시기 자본의 반동적 총공격에 맞서 1934년 함께 총파업을 선언했으나 역관계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 후 총파업만으로는 안 되고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아겠다고 생각하고 1936년 급진당과 함께 인민전선 정부를 세웁니다. 말하자면 급진당은 소부르주아를 대표하는 당이고 공산당과 사회당은 노동자계급의 좌우파를 대표하는 당이었습니다. 이처럼 인민전선 성사에는 노동자계급운동 내부의 통일전선과 소부르주아들과의 연합전선이 문제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이때 노동자계급 안에서 통일전선을 확고하게 하는 것이 선차적인데, 이것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민전선을 시도하니까 머지않아 취약점을 드러내어 소부르주아가 이탈하면서 인민전선 전체가 무너지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노동자 통일전선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확고하게 한 연후에 이를 기반으로 인민전선을 형성해서 정권을 잡고, 함께 사회개혁을 추진하고, 이후 자본파업이 들어오더라도 후퇴하지 말고 국유화를 비롯한 사회개혁을 계속 밀고 나감으로써 동요하는 소부르주아를 포섭, 견인했어야 하는데 이런 원칙을 충실하게 견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원칙을 기계적으로 우리 현실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교훈으로 삼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 민중연대전선 형성에 있어서도 노동자 통일전선을 세우는 것을 선차적으로 하고 그 다음에 시민단체를 포함하여 소부르주아 제 계층과 함께 연대 연합 전선을 세워내야 합니다. 그런데 노동운동 내 우파는 노동자계급의 통일전선이 아니라 소부르주아와의 연합전선을 선차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선체에 계속 ‘국민’이라는 이름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접근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노동운동 내의 좌파 또한 노동자계급 안에서 통일 단결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노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소부르주아 계급과 연대 연합하는 데 부정적입니다. 그런 연합은 노자간의 계급적인 대립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성사되지 않아도 좋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계급역량이 충분하면 그럴 수도 있으나, 현재 우리 노동운동이 전체 민중에 대한 헤게모니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소부르주아를 이끌어 나갈 방안도 필요합니다. 이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전선 문제를 둘러싸고 좌우로 갈라져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제3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한국진보연대 가입이 유예된 것은 잘된 일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좌파들도 우경적인 흐름이 옳지 않다는 비판만 하고 있지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하순: 예전 대공황 시기, 구식민지 시기의 소부르주아와 현재의 소부르주아가 동일한 정치적 역할을 하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김대중 노무현과 연합해서 신자유주의를 관철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이 세력과 연합해야 할지 의문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이후에 한국 노동자 민중운동이 지리멸렬하게 패퇴하게 되는데 이들의 영향이 컸고, 이들과 연합하려는 운동사회 내 우파의 시도가 문제를 키웠습니다. 에피소드이지만 시민단체측이 용산범대위가 이명박정권 퇴진을 걸면 못 들어온다고 말했습니다. 향후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서 싸우는 공동투쟁본부>(공투본)와 한국진보연대가 전술적으로 제휴를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시민단체나 민주당까지 같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경수: 민생민주국민회의의 집회에는 민주당이 꼭 주요발언자로 나옵니다. 민생민주국민회의 안에서 민주당의 지위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장외집회를 통해서 민주당이 민생민주국민회의에서 주요 리더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됩니다. 민주당과 함께 하면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입니다. 이것은 전선을 왜곡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실력을 높이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분명히 비판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민중연대가 한국진보연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운동조직의 통일성을 저해했고 대중조직인 민주노총 내에서도 가입이 유예되고 있습니다. 민중연대 전선의 각 부문운동이 활성화되고 이것을 기반으로 연합체가 형성되어야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민주노총이 민중연대 운동체의 내용과 조직 측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민주노총 가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진보연대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공투본이 투쟁전선을 넓히는 데 역할을 하고 있고, 현재 정세에 걸맞은 투쟁요구를 내걸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확장시켜야 하고, 한국진보연대 중심으로 가는 방향을 수정하게 해야 합니다. 또 민중연대가 현 시기에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대중이 평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동을 진전시켜야 합니다.
박하순: 시민단체 중에서도 특히 참여연대의 활동은 자기비판이 있어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을 거치면서 한국경제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데 참여연대의 역할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참여연대의 주주자본주의 이론은 사회적으로 평가가 전혀 안 되었지만 단지 언론에 많이 나왔다는 이유로 대단하게 여겨졌습니다. 대부분은 참여연대가 재벌을 문제 삼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재벌을 문제 삼는 것은 주주의 권리에 근거해서 그러할 수 있고 노동자 민중의 견지에서 그럴 수 있는데 참여연대는 주주의 입장이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적으로 바꾸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최소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자기비판이 있어야 민중운동 세력이 경우에 따라 연대도 할 수 있습니다.
김승호: 시민단체 중 참여연대가 대표성이 있다고 하는데, 시민단체들을 참여연대로 국한시켜 사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건전한 성향을 가진 시민단체가 소외될 수도 있습니다. 친노동적이고 민중성을 지닌 시민단체들도 여럿 있습니다. 물론 시민운동 전반이 아무래도 노동계급보다는 체제 측과 많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성격을 일률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면서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조희만: 한국진보연대가 2007년에 결성된 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때마다 민주노총 가입 건이 빠짐없이 올라왔습니다. 올라올 때 마다 유예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이 안건 처리할 때 유예됐습니다. 어떤 때는 한국진보연대 가입 건이 앞에 배치되어 사업계획 논의를 방해하고 정말 결의해야 할 부분들을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집요하게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안 되면 한국진보연대를 평가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민주노총에서도 더 이상 안건이 올라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시도를 해서 안 됐으면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중조직에서 하나의 정파적 색깔이 강한 안건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앞길을 방해하고 분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때가 왔습니다. 민중연대 운동에서 좌파들이 계속 분열했는데 공투본으로 한번 모여보자는 것은 오랜만에 있는 일입니다. 좌파 단체들이 모여서 위기국면에서 이러저러한 모색을 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각 조직마다 조금 더 힘을 모아서 공투본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박하순 : 공투본에 민주노총의 현장조직들이 들어와 있지만 대중조직 자체가 가입해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공투본은 대중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독자활동 방식으로 대중운동과 별개로 전투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선 안 됩니다. 제일의 목표는 민주노총 운동이 잘되도록 복무하는 것입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평가와 최근 정당운동

사회자: 현재 민주노총의 한국진보연대 가입은 유예되었고, 공투본은 아직 시작단계에 있습니다. 나아가 공투본의 출범 자체가 민중연대 운동이 좌우분할구도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흐름이 발전적, 통합적인 지향을 가질 수 있도록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지역구 조정을 통해서 반이명박-범진보개혁 세력의 공조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울산북구 보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통합권고안을 내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정당운동의 분화상태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있고, 또 진보정당 흐름 전반에 대해서 비판적이면서 새로운 정당운동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매우 첨예한 쟁점일 수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겠습니다.
김승호: 제가 금년에 부득이 사이버노동대학에서 정치운동 관련한 강좌의 운영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이러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전에는 대표성을 가진 민주노동당이 있으니까 여기에 힘을 집중해보서 개량이라도 해보자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였고, 저희 노동대학에서도 그런 흐름에 맞춰서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흐름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날로 깊어지는 상황에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두들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돌파구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주의 정치, 혁명의 정치를 추구하기 어려우니까 체제내적인 사회민주적인 정치, 의회주의 정치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서유럽의 경우 사민주의 정당은 대중민주주의 정치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선거기제로 퇴화되었습니다. 그 공간을 사회운동이 파고들면서 선거주의 정치와 사회운동으로 이원화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운동을 강조하는 동지들은 탈정치적이거나 정치에 대해 냉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 반면에 정당운동은 날이 갈수록 선거기제로 퇴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노동당도 처음에는 운동성을 표방하다가 이후 이를 버리고 선거에 매몰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거주의 정치와 사회운동이라는 이원화된 구조는 노동자계급을 정치세력화하고 변혁을 담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대안이 무엇인지 딱 부러지게 답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이런 구도는 답이 아닙니다. 정치영역을 지배계급에게 맡겨놓고 사회운동만 강조한다고 해서 변혁으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권력을 잡는 것이 곧 사회주의를 실현시켜 주는 첩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국가권력 획득을 아주 기각할 수도 없습니다. 사회운동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노동자대중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능동적인 주체가 되도록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정치와 사회운동이 결합하는 노동자 정치운동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인데, 구체적인 상에 대해서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할 것입니다.
조희만: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는지를 따지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를 선거도구로 전락시켰고, 패권주의나 종북문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으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분당했습니다. 민주노동당처럼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한울타리에 있었던 사례는 별로 없었습니다. 1987년 남한이라는 특수한 상황, 독재타도의 구도 속에서 공동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같이 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지만 필연적으로 둘은 갈라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동일한 정치적 이념을 실현시킬 수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는 근본에서 모순이 축적되었고, 양자가 갈라설 여러 요소들이 쌓였고, 그것이 어떤 계기로 폭발한 것입니다. 이제는 진보진영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시각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민주의 우파냐 자유주의 좌파냐가 아니라 과연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진보신당은 과연 노동자계급이 바라는 역할을 하고 있느냐. 현재로서는 전혀 아닙니다. 진보신당에는 오히려 자유주의 좌파세력이 훨씬 더 많습니다. 현재 여기서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구조입니다.
사노준, 노건추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의회전술을 쓰든 쓰지 않든 간에 노동자대중의 다수가 둘로 갈라져있다면 각각 전술적으로 따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리하게 사업을 같이 하는 것은 지금 시기에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정당운동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로 논하는데 지역문제가 반드시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면서 지역문제 다루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는데, 이제는 지역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지역운동 속에서 생태 등에 대한 고민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또 현재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데 한계가 있는 조건에서 지역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지역에 있는 당, 산별노조 산하기구들이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비정규직 문제, 노동자 정치세력화 문제, 지역현안들을 고민해야 합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실패했다면 앞으로는 지역과 현장에 더 천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는 정치운동의 분열, 분화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잘 가자고 생각해야 합니다. 1~2년, 나아가 10년이 됐든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개척하는 모습을 보일 때 진보정당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하순: 진보정당은 사회운동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위정당은 군사조직을 모델로 했고, 집권 후 권력구조가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반면 현재 대중정당은 선거나 의회로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경향이 너무 강합니다. 진보정당이 학생운동과 노동조합 간부들로 채워지면서 입신양명이라는 측면도 작동하고 있고, 의원 중심의 운영구조도 문제입니다. 정당운동이 필요하지만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현존 자본주의사회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는 운동을 펼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당운동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사회운동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하고, 노동자 대중이 변혁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지지 보족하는 역할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이경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인가, 부르주아 지반에서 일정정도 지분을 확보하는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 자기통치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세력을 형성하는 것인가부터 논의가 출발해야 합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대안세력을 형성하는 것이라면 전위정당인지 대중정당인지 사회운동정당인지는 내부 논의를 통해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기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부르주아 권력의 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급격히 수렴되었기 때문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당이 우리의 역할을 대리해주는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정확한 의미에서의 노동자운동으로 진전되는 것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의회전술의 승인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채택하더라도 거기에 전부 쏟는 방식으로 운동이 진행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 10년의 실험이 실패했다고 하지만, 다른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똑같이 선거에서 의석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머물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진보 대 보수의 담론을 사용하고 있는데, 진보라는 용어의 함의에도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현재 공황상황에서 어떤 기치를 걸고 어떤 당운동을 할 것인지를 다시 인식해야 합니다. 이제 계급이나 사회주의를 걸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자기통치, 대안세력 형성을 목표로 하는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비상한 시기에 걸맞은 인식과 실천이 필요

사회자: 이제 토론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상당히 넓은 범위의 주제를 다뤘습니다만 중요하지만 미처 짚지 못한 주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의견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박하순: 우리 운동은 마르크스주의와 일정한 연관이 있습니다. 현재 거대한 위기를 맞이한 만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학습이나 연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운동이 마르크스주의를 많이 잊고 지냈고 사실 등한시했습니다. 대중운동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게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나 반성의 지점도 있을 것이고 혁신의 지점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사상이나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이기 때문에 활동가, 노조간부 수준에서 다시 사상과 이념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킬 때입니다.
이경수: 운동이 힘에 부치다 보니까, 계속 투쟁해도 계속 패배해왔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국면에서 과거와 같이 대응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수세적 대응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모여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운동을 할지 토론을 해야 합니다. 이런 합의가 있어야지 현장에서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현재가 어떤 국면인지 같이 토론하고 투쟁을 전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희만: 지역과 현장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진은 2006년에 지역전략 정치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5년 이내에 1,000개 정도의 학습모임을 지역에 만들어보자고 결의했습니다. 지역비정규직 실태조사 등으로 지역문제에 대한 관심을 축적시키고 있습니다.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앙 상층단위의 논의보다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과제입니다. 각 조직과 개인이 자기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이 무엇인지 임무를 부여받아서 활동을 해야 합니다.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활동한다면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또 전진에서는 대안학습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제의식은 국가사회주의를 오류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럼 어떤 사회주의인지, 이것이면 해볼만 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재정립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론을 학습한다고 해도 운동이 과거의 쟁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사노준과 노건추의 토론회에 갔더니 20년 전 토론내용과 똑같았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좌절하게 만드는 일입니까. 변하는 것이 운동인데, 여전히 운동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전의 반목과 질시는 털어버리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운동의 발전과 서로의 발전이 함께 가는 운동의 기풍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승호: 오늘 좌담에서 정형화된 틀이 있습니다. 격관적인 정세를 이야기하고, 자본의 공세를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여기에 대응해 잘 단결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등. 이런 이야기 틀은 몇 년 전부터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틀 속에는 자본은 극복될 수 없는 것, 영구불변한 것처럼 전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황을 맞고 보니까 그런 전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자본은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붕괴 과정이 곧 사회주의로의 이행 과정은 아니고, 이행을 위해서는 주체의 실천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의 붕괴 자체는 필연적입니다. 우리는 이번 공황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국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회생불가능하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잘못된 전제를 버리고 질문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질문을 공세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고 있습니다. 자본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수세적 접근을 넘어서 수명이 다한 자본주의를 어떻게 타파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할 것인지로 바꿔야 합니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패배주의가 만연했는데, 이번 공황을 계기로 패배주의를 떨치고 자본에 대해서 주동성을 가지고 마주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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