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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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판 피의 입법, 죽음을 강요하는 생산적 복지정책

한진 | 민중복지연대 교육정책국장
"15세기말과 16세기의 전체 기간을 통하여 서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부랑(인과 가난한 자-글쓴이주)에 대한 피의 입법이 실시되었다.… 입법은 그들을 '자발적인' 범죄자로 취급하였으며… 에드워드 6세의 통치 제1년인 1547년에 제정된 법령에 의하면, 노동하는 것을 거절하는 자는 그를 게으름뱅이라고 고발하는 자의 노예로 선포된다. 주인은 빵과 물, 멀건 죽과 그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고기 부스러기로써 자기의 노예를 부양하여야 한다. 그는 채찍과 쇠사슬로써 노예가 아무리 싫어하는 일이라도 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만약 노예들이 무엇이든 주인을 반대하는 기도를 하면 그들은 사형을 당한다."
(K.Marx, 자본론Ⅰ의 下권 중에서)


<b>생계급여 중단대상 6천여명, 19명에 의결된 구상권 행사</b>

너무나 끔찍해서 미처 다 서술할 수 없는 피의 입법은 신흥메뉴팩처에 의해 흡수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그들은 폭력적 토지수탈에 의해 추방되었으나 대부분 절대적인 일자리 부족으로 취업을 하지 못했다. 이들은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적 범죄자로 취급받고 어떠한 사회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였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그로부터 500~600년이 지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IT, 3D업종 인력부족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소위 3D업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정당한 이유없이 2회 이상 취업알선을 거부할 경우 실업급여 지급을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에 의해 자활지원을 받고 있는 대상자들이 정당한 사유없이 자활사업에 불참할 경우에는 생계급여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미 그 대상은 6,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자활대상자 뿐만 아니라 실제로 노동능력이 없는 수급자의 경우도 '엄정한 수급자관리'를 이야기하며, 수급자 및 부양의무자의 금융자산 조회를 실시하는 등 생계보장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양의무자가 있는데 미처 밝혀내지 못해 생계비 지원을 받은 경우 이를 환수하겠다고 밝혔고, 이미 19명에 대해서 구상권 행사를 의결한 바 있다.


<b>죽음에 이르는 노동인가, 가난으로 죽음에 이를 것인가</b>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을 하면서 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노동하지 않으면서 빈곤의 나락 속에서 죽어갈 것인가?
현재와 같은 한국 상황에서 일단 실직을 하게 되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즉, 실업급여액이나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비가 기본적인 생존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데다가 그 외에는 생계를 연명할 수단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정부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자신의 국정이념을 드디어 현실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현재의 일자리라는 것은 3D업종 등 노동과정 자체가 실업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고, 실제로 이들은 더 이상 무서워서 일하러 가기가 두렵다고 말한다. 이제 김대중 정부는 실업노동자·민중들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을 하면서 죽어갈 것인지, 아니면 노동하지 않으면서 빈곤의 나락 속에서 죽어갈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B>생산적 복지 = Workfare?</B>

과연 노동과 복지는 연계가능한가? 생산적 복지가 김대중 정부의 국정철학에서 한 축으로 제시되고 대대적으로 천명되면서 우리나라의 복지가 한층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모으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생산적 복지의 제도적 구현태라고 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보면, 생활보호법 시행시 공적부조 대상자를 지칭하던 '생활보호대상자'를, 사회복지에 대한 권리개념이 들어가 있는 '수급권자'라는 용어로 바꾸어 썼다. 그리고, 생활보호법 상에 존재했던 연령제한 등의 대상자 구분을 폐기하여, 누구라도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입일 경우 수급권자가 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어 이전보다는 인간의 권리향상이라는 점에서 진보적이라는 각계의 평가가 잇따랐다.
그러나 생산적 복지의 핵심은 인간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측면보다 영국의 제3의 길을 모티브로 한 노동연계복지에 있다. 그렇다고 할 때, 보다 주요하게 보아야 할 점은 이러한 확대된 것 같은 권리의 이면에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이 노동을 하지 않을 경우, 이러한 법에 제시되어 있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게끔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생산적'이라는 의미를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즉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통해 사용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는 노동과 그로 인해 누릴 수 있는 복지는 연계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적 생산은 단순한 가치생산이 아니라 잉여가치(이윤)의 생산에 의해 특징지워지며, 이제 여기서 '생산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윤을 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생산적인 것이 된다.
이 상황에서 노동과 복지를 연계시키려고 하는 시도는, 강화되는 지구화경향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본의 논리, 즉 경제적 논리를 복지에까지 확대하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로 통하는 복지정책'을 통하여 효율적으로 노동인력을 관리하고 그들로 하여금 수준이하의 근로조건을 감수하더라도 '일'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부의 창조에 순기능'하는 체제를 성립하고자 하는 의도인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따라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그 결과 실업과 빈곤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해내며 그 인력을 자본의 입맛에 맞는 노동현장에 재배치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IT, 3D업종 인력부족 종합대책'은 그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b>'엄정'해야 할 것은 제멋대로 춤추는 자본의 횡포</b>

이처럼 자본의 의도대로 노동과 복지를 연계시키고자 하는 시도 앞에서 자활대상자들에 가해지는 압박도 그러하지만, 실제로 노동능력이 없는 수급자의 경우에도 사회복지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앞서 서술했듯이, 실업과 빈곤의 문제가 비단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태를 유발한 책임은 국가와 자본이 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은 '엄정한' 수급자관리 운운하며 '부모 부양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어린 아이도 코웃음을 칠 부양자기준을 들어 수급자 본인 및 가족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
현재도 부양능력이 있는 자식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각 지방자치단체가 벌여내고 있는 중이며, 수급자의 수급자격 및 급여의 적정확인을 위한 정기적 확인조사를 벌여내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생계급여 환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과정 속에서 형평성의 문제나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부분도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복지의 문제는 법에 제시된대로 지금의 수급자에게 얼마나 정확한 급여를 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고용보험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제시된 급여 가 인간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내는데 충분치 못한 수준일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계층의 규모가 크고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 예로서 현재 전체실업자 가운데 고용보험수급자가 12%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공공근로참여자 중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 선정률이 20%에도 못 미친다는 점, 전체실업자 가운데 60%가 전직이 임시·일용직이라는 통계, 그리고 전체실업자 가운데 장기실업자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그 사각지대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엄정한' 수급자 관리 운운하며 현실성 없는 부양의무자 기준 등을 들어 급여를 환수해야 할 때가 아니다. 실질적인 혜택과는 거리가 먼 부양의무자 기준을 즉각 철폐하고,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에게 더욱 실질적인 복지가 실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엄정'하게 관리(!)해야 할 것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통해 이러한 고통을 지속적으로 양산해내며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잔인한 폭력조차도 서슴지 않는 더욱 제멋대로 춤추고 있는 자본의 횡포인 것이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태그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노동자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