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9-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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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활성화 전략 평가

임필수 | 정책위원장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3년 임기의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해 11월에 직선제 임원선거를 치러야 하나 8월 26일 중앙집행위원회는 전반적인 준비부족을 근거로 ‘임원 직선제 3년 유예안’을 결정했고 이 안은 9월 10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최종 결정될 것이다. 직선제를 차차기 임원선거인 2013년에 도입하고 차기 임원선거는 내년 1월에 연다는 안이 확정될 게 거의 확실하다. 아마도 직선제 선거 절차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선거를 치를 경우 심각한 정파 간 갈등구도 속에서 2008년 말 민주노총 경남본부 부정선거 사태처럼 심각한 파행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가뜩이나 도덕성 위기에 몰려있는 민주노총에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여러 정파가 함께 활동을 펼치는 민중운동 조직에서 대표자를 뽑는 선거가 민주주의 이상대로 충실한 대의과정으로서 작동하고 능동적 리더십을 형성하는지 현재 시점에서 상당한 의문이 제기된다. 가장 흔히 나오는 문제제기들은 어찌 보면 역설적이다. 한편에서는 선거가 정파 간 담합에 의해 좌우되면서 정파 간 분열이 민주노총 활동의 분열로 확대 재생산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즉 승자독식 구조에서 이긴 측은 조직을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진 측은 당선된 지도부의 활동을 사실상 보이코트함으로써 민주노총이 식물상태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실제 활동에서는 차별성이 없다는 자조도 나온다. 즉 말과 달리 행동에서는 뚜렷한 차별성도 없으면서 권력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네거티브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현재 한국사회 정치체제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비판이 민중운동 내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나 자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민주노총이나 여기에서 활동하는 여러 단체들이 노동자운동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단체는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민주노총은 공식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안들을 검토하고 조직 내로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왜 이런 긍정적인 노력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만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가?
이 글은 여러 단체가 제시한 노동자운동 활성화, 혁신, 발전에 관한 입장이 현 시점에서 얼마나 적절한지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입장이 실행가능성을 지녀야만 실천적 유효성을 발휘할 수 있고 현실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이념,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쳐온 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노사연)의 입장을 평가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한노사연은 서구의 노동운동 입론을 검토하여 자신의 이념적 이론적 노선에 알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노동운동 혁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설정한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 또한 최근 민주노총 지도부가 제시하고 있는 ‘사회연대전략’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모든 운동단체들이 문제의식과 실천계획을 내놓아야 할 공동의 과제를 제시한다.

한노사연의 노동운동 재활성화 전략: 사회협약과 유연안정성

한노사연의 『노동운동의 재활성화 전략』(2007)은 주로 프레게와 켈리가 편집한 『노동조합운동의 다양성: 비교 시각에서 본 노동운동 재활성화 전략』(2004)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이론 틀에 의존한다. 여기서 노동운동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나 부활(renewal)이라는 표현은 현재 서구의 노동자운동이 위기나 침체에 빠져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먼저 프레게와 켈리가 요약한 세계 노동조합들의 재활성화 전략을 살펴본 후 한노사연이 어떻게 이러한 틀에 따라 한국 노동조합운동을 평가하는지를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한노사연의 입장을 평가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노사연은 ‘새로운 사회협약’(고용주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단체교섭의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물질적 자원을 획득한다는 독일식 파트너십 모델을 주창한다. 나아가 한노사연이 제시하는 산별노조의 임금, 고용 의제도 자연스럽게 ‘유연안정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독일식 노동조합 정책으로 수렴되고 있다. 즉 노동조합이 대량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임금삭감을 동반하는 노동시간 단축이나 노동시간 계좌제(변형근로제의 완성판), 임금피크제와 같은 노동신축화을 수용하되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도록 기업과 합의를 이룬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쌍용차 사태를 거치면서 독일식 모델이 마치 정리해고의 대안인 것처럼 다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는 가히 ‘신자유주의의 재발견’이라 칭할 만하다. 이에 따라 한노사연은 미국을 시발점으로 하여 영미권과 동아시아로 급속하게 전파된 ‘조직화모델’을 상대화하거나 파트너십 모델 내로 흡수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사회협약을 통해 유연안정성을 수용한다는 것은 1998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 합의한 후 조합원으로부터 일어난 반란에서 드러난 것처럼 공공연하게 실현되기 힘들다. 따라서 한노사연의 대안은 매우 은폐된 형태로 노동조합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노사연의 노동운동 재활성화 전략 개념화>

프레게와 켈리는 노조 재활성화 전략이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영역에서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또한 각국 노조마다 강조점이 다르다고 말한다.
① 조직화: 조합가입 확대와 작업장 대표성 강화
② 조직 재구조화: 통합, 내부적 재조직(조직개편, 조직합병, 내부개편)
③ 사회운동과 연합 형성: 지역 내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하는 개인(대표)
과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
④ 고용주와의 파트너십: 단체교섭 제도의 보호와 발전, 노조에 대한 부정
적 이미지 축소
⑤ 정치행동: 권력자원 접근성 제고
⑥ 국제연대: 다국적 기업 정보 교환, 국제노동단체와 국제노동조합에 대
한 로비

또한 기존 노조의 권력과 자원을 재분배하는 방식 중에서 특히 조합원을 유지, 충원하는 방식에서 ‘서비스모델’과 ‘조직화모델’이 분기하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한노사연은 노조 조직화 모델이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사회운동과 연합형성)는 노동조합의 재활성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일 뿐이지 유일한 방안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표 1] 서비스모델과 조직화모델
(표는 첨부파일을 참조하세요.)

<한노사연의 한국 노동운동 활성화 전략 평가>

한노사연은 한국 노조의 발전전략이 크게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고 지적한다. ① 조직화(특히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대변능력 확충). ② 산별노조 건설(산별교섭을 통한 노동시장에서의 교섭력 증진). ③ 정치세력화(정치사회적 영향력 확대). 이 외의 영역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① 사회적 파트너십(고용주와의 파트너십)의 경우 1998년 사회협약에 참가한 후 안정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② 사회운동과의 연합형성의 경우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타 계급계층과의 연대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신사회운동과의 제휴와 연대는 크게 발전되었다고 볼 수 없다. (즉 전국민중연대-한국진보연대에는 역량을 투여하지만 시민운동과 연대는 소홀하다.) ③ 국제연대의 경우, 과거에 비해 크게 신장되고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한노사연은 한국 노조운동의 전략적 방향성은 적실성을 지니지만 구체화를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항목을 제시한다.
첫째, 조직화 전략의 상대적 위상, 타 전략과의 상호보완성, 조직 확대의 제도적 방안, 제도를 활용한 조직화 추진 방안 등이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 특히 한노사연은 고용주와의 파트너십이 노동조합 활성화와 조직화 확대에 성공적으로 기여한 사례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UNISON의 ‘평생교육’ 파트너십이 대표적 사례다. 사용자와의 협력을 통해 노동자 교육훈련,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조합원에게 구체적인 혜택을 주는 동시에 조직화 사업과 긴밀히 결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둘째, 산별교섭에 있어서 비노조원에게 단체협약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진보정당 활성화를 위한 지원은 앞으로도 중요한 과제지만 집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제 정당에 대한 로비와 의견개진을 수행해야 한다. 사회협약 정치를 통해 노동사회경제정책에 대한 방어와 공세를 취해야 한다. 사회협약 전략의 불안정성은 ① 제도적 접근 가능성을 상당히 봉쇄함으로써 적대적인 환경을 개선할 여지를 협소하게 만들 수 있다, ② 중앙조직에 고유한 전략적 역할의 수행을 상당히 협소하게 만든다, ③ 절차적 민주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화된 대화의 거부는 사회적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
넷째, 중앙조직들은 지역조직을 정치, 조직화, 연대활동의 센터로 육성해야 한다. 특히 현재 상당규모의 권력자원과 물적 자원이 지역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지역 차원의 민주적 거버넌스 논의는 지역이 새로운 정치경제적 각축장이 될 것임을 함축한다.
다섯째, ILO 등 국제기구를 통로로 한국의 노동권을 개선하고, 한국 기업 진출국의 노동조합과 연대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약평>

한노사연의 입장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운동노조의 의미를 협소하게 파악하여 ‘사회운동과의 연합 형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간주하고 있는데다가 여기에 대한 의미 부여도 기존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자원 확보, 사회적 영향력 확장 경로 정도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한노사연의 노동운동 재활성화 전략이 담고 있는 가장 결정적 문제점은 현재 파트너십 모델의 실현 경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청사진이지만 객관적 제약으로 인해 그 실행가능성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셈이다. 나아가 한노사연의 최근 입장은 목표와 수단이 전도되어 파트너십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먼저 신자유주의적 ‘유연안전성’(노동신축화)를 제기해야 한다는 함정에 빠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한노사연의 노선은 기존 유럽 노동조합 전략의 연장선 상에 있다. 특히 고용주와의 파트너십을 매우 강조한다. (한노사연은 여기에 정부/정당의 역할을 추가하면서 이를 사회적 파트너십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파트너십 모델은 조직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자원배분에 우선순위를 두더라도, 노조 인정을 위해 고용주의 지지을 얻고 물질적 자원을 끌어내어 미조직 노동자를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개별적 서비스(직업소개와 직업훈련)를 제공하는 활동을 강조한다. 한노사연이 긍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추구하는 조직화 방안은 파트너십 모델 내로 조직화 사업을 흡수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도 한노사연 소장이었던 김금수씨가 2003~2006년 노사정위원장을 맡으며 사회적 파트너십을 추진하였으나 사실상 중도 좌초되었다. 집단적 노사관계와 개별적 노사관계의 맞교환, 즉 민주노총 합법화를 허용하되 노동신축화를 위한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를 도입한다는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전략이 노동조합 기층의 반발에 직면한 후 사회적 파트너십에 대한 불신이 만연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고용안정과 노동신축화를 맞바꾼다는 전략이 이른바 ‘유연안정성’이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노사정협의가 (민주노총이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간에)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 노동신축화라는 정부와 기업의 전략이 관철되는 도구로 작동했다.
혹자는 이러한 노사정협의를 ‘경쟁력를 위한 코퍼러티즘’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코퍼러티즘 개념은 대체로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은 생산성 향상에 협력한다는 것을 뼈대로 한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경쟁력을 위한’이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대체로 국가 간 경쟁의 심화나 자본주의 위기에 따라 자국 수출품의 ‘국제경쟁력’을 위해 사실상 임금인상 억제나 노동신축화를 노동조합이 수용하되 이에 대해 제공되는 반대급부는 기업이 고용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모호한 합의나 사회적 대화체계 유지라는 매우 비대칭적 구도로 나타난다. (이는 허구적 코퍼라티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결국 한노사연의 노선을 따르다보면 민주당의 재집권→친노동적 정치환경 조성→제도 개선→사회적 파트너십 형성, 산별교섭력 확보, 조직화 자원 확보라는 전략이 유일한 경로가 된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에 들어서 노사정위원회가 무력화된 상태고, 설사 민주당이 재집권하더라도 과거 노무현정부의 경험처럼 결코 민주노총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을 펼 수 없는 상황이므로 문제해결의 경로가 소실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노사연의 산별교섭의 발전 전략이 지닌 문제점>

한편 한노사연이 민주노총의 연구위탁을 받아 펴낸 『산별노조시대 고용, 임금, 복지의 연대전략』(2007)은 산별교섭의 기본 발전방향과 초기업적 수준의 대안적 임금, 고용의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제시된 내용에는 신자유주의적 ‘유연안정성’에 해당하는 정책제안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노사연은 이 책을 펴낼 당시인 2007년 시점에 산별교섭의 가장 큰 한계점으로 산별협약 기본틀이 불안정하여 사용자단체가 구성되지 않거나 구성된 단체에 사용자가 가입을 꺼리고, 산별협약이 전체 산업노동자에게 적용되지 못하고 노동자간 격차 해소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고용안정과 임금격차 축소를 위한 산별노조 의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산별고용안정체제의 구축이라는 장기적 과제를 추구하면서 우선 고용의 질(특히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고용의 양적 확충을 중단기적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한다. 특히 고용의 양적 확충을 위한 방안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실노동시간 상한제, 교대제 개편, 연장근로 활용에 대한 벌금 부과, 고령자 직무순환제 등을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한다. 또한 기업단위에서 실행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생산입지와 고용보장을 위한 단체협약과 노동시간 계좌제를 제안한다. 이는 대체로 독일 금속노조가 과거에 실행한 방안이다.
또한 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독일 금속산업을 모범사례로 삼아서 직무급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산별노조에 걸맞은 임금정책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함으로써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균등한 대우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노사연은 이는 임금체계의 커다란 변화를 필요로 하고 직무평가 기준이라는 기본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이 어려울 수 있으며, 기존 연공제에서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조합원들의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는 난점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가장 어려운 문제는 북유럽의 사례처럼 직무급에 따른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도입되고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될 경우 한계기업의 도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노사연은 궁극적으로는 한계기업 도산이 산업고도화를 이룰 수 있고, 일부 기업의 도산으로 인한 일시적 실업 문제는 사회안전망을 통해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표 2] 독일 금속노조와 공공서비스노조의 임금(숙련)등급 모델
(표는 첨부파일을 참조하세요.)

한노사연의 제안의 핵심은 ‘유연안정성’의 대표적 사례와 수렴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유연안정성이란 임금삭감이나 노동조건 신축화를 현실로서 수용하되 고용안정을 최대한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한노사연이 모델로 삼는 독일금속노조야말로 유연안정성을 수용한 대표적 사례다. ‘생산입지와 고용안전을 위한 기업협약’은 독일 금속노조가 정리해고의 대안으로 임금삭감을 동반한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한 것이다. 또한 노동시간 계좌제는 연간 단위의 변형근로제라고 볼 수 있고, 초과근무 수당을 사실상 폐지하는 결과를 낳는다. 고령자 직무순환제도 임금피크제의 일종이다. 한노사연은 독일과 같이 서구 노동조합이 채택한 정책을 모델로 삼기 때문에 이 정책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불황기에 노동조합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최대한 질서 있는 퇴각을 실행하자는 제안 즉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의 대안인가, 아니면 장기적인 양보교섭 행진의 일부분인가? 이는 불행히도 서구에서 거듭되는 양보교섭의 일부가 되었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노동조합 재활성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한노사연의 제안은 어차피 노동조합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면 선제적 양보교섭을 통해 최악의 사태를 막고 나아가 노동조합이 노사대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궤변으로 발전될 수 있다. 물론 노동신축화나 유연안정성이 대량해고와 실업에 대한 (대안이라면 대안인) 신자유주의적 대안인 것은 사실이다. 레이건이나 대처가 착수한 신보수주의의 핵심이 대량 정리해고와 이를 통한 노동조합의 파괴였다면 다음 단계에 나타난 신자유주의는 노동조합의 양보교섭을 유도하며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동신축화를 도입하여 어느 정도 정리해고를 완화하고 실업 문제에 대처한다는 것이었다(신자유주의적 ‘실업의 조직화’). 현재 이명박정부의 정책목표가 신보수주의와 동일하게 정리해고의 관철과 노동조합의 파괴, 특히 눈엣가시 같은 자동차산업 노동조합의 파괴이기 때문에 한노사연의 입장을 따르다보면 결국 신자유주의라는 ‘차악’을 선택해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신자유주의와 대결하고자 했던 노동조합 운동의 심리적 저지선을 붕괴시키고 이념적 대혼란을 낳으며 결국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황폐화를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지극히 경계해야 할 입장이다. (한국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 효과가 서구에 비해 훨씬 더 파괴적일 것이다. 장시간의 잔업, 특근을 통해 부족한 임금을 보충했던 상황에서 잔업, 특근만 줄어도 노동시간 감소율에 비해 임금 감소율이 훨씬 더 클 것이고 노동자는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독일을 모델로 하는 양보교섭의 여지조차 그리 많지 않은 셈이다.)
최소한 현재 시점에서 민주노총이 양보교섭을 먼저 제안해서 치고 나간다는 것은 1998년 학습효과 때문이든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이든 현실에서 상상하기 힘들다. 따라서 한노사연의 대안은 공공연하게 실현될 수 없고 누군가 이를 추구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매우 은폐된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물론 최근에 드러난 것처럼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총연맹을 필두로 한 상급단체에서 먼저 양보교섭을 제안할 수는 없어도 일부 개별 노동조합 차원에서 양보교섭이 진행되는 사례는 다수 발견된다. 이러한 괴리는 총연맹과 상급단체의 리더십이 유실되는 경로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한다.
또한 직무급으로의 임금제 전환은 임금삭감이라는 자본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한국에서 연공제가 도입된 것은 상대적으로 청년층 노동자가 많아서 기업의 임금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면 최근 직무급 전환이 고려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고령층 노동자가 많아서 연공제에 따른 기업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물론 한노사연은 직무제 도입과 함께 노동조합이 노사공동이나 노조 주도로 직업알선이나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일자리의 수평이동이나 상향이동을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노사연이 강조하는 노동조합의 ‘교육훈련 모델’은 오히려 독일과 유럽에 한정된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례로 보아야 한다. 현재 한국 실정에서 직무급 전환과 노동조합의 교육훈련 프로그램 운영이라는 구상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정착될 수 있는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산별노조 발전전략 그 자체가 상당히 벽에 막혀 있는 상태다. 가장 원형에 가까운 산별교섭 기틀을 세웠다고 평가를 받던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중에서 최근 보건의료산업 사용자단체협의회가 지난 8월 말에 해산을 선언했다. 이처럼 교섭 기본 틀이 단지 발전도상에서 아직 확립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가까스로 세운 틀도 해체되는 형국이다. 따라서 산별교섭 의제를 이렇게 저렇게 짜보자는 구상 자체가 큰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정부가 산별교섭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든가 사용자에게 유인을 제공하든가 하지 않는다면 산별교섭 기본 틀 확보는 매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다. 게다가 조직화 사업에도 실천적으로 힘이 실리지 않는다면 노동조합 발전전략은 오리무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혁신과 전략조직화 사업: 조직화모델과 사회운동노조

사회진보연대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으로 인해 산별노조로의 발전과 코퍼러티즘 체제 구축을 위한 정치환경 조성이나 법제도 개선이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계급형성적 노동자운동’, ‘사회운동노조’를 강조했다. 특히 광범위한 노동신축화에 의한 노동자 대중의 분할, 해체에 주목하며 노동자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재구축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는 현실적으로 ‘조직화모델’과 유사할 수 있고, 이에 사회진보연대는 직간접적으로 전략조직화 사업에 참여했다. 여기서는 총연맹 차원에서 진행된 전략조직화 사업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에 대한 평가 쟁점을 검토한다. (사회진보연대의 전략조직화 사업 참여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은 한국에서 ‘조직화전략/조직화모델’을 실현하고자 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하지만 2009년 7월을 기점으로 (1차) 전략조직화 사업이 종료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향후 어떤 방향을 잡느냐의 문제는 민주노총의 운동 전략에서 상당히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2기 전략조직화 사업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지만 9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까지 안이 마련되기는 힘들고 추후에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2003년~2004년 전략조직화 사업계획을 검토하여 2005년 대의원대회에서 미조직ㆍ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을 결의하고, 50억 기금 조성(현재 약 22억 모금)과 함께 조직 활동가 양성 및 교육, 현장배치를 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3년간 조직 활동가 24명을 배치했으며, 현재는 15명의 조직활동가가 해당 산별연맹에서 조직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은 소속 노조에도 예산 30%를 배정하여 전략조직화 사업을 전개할 것을 권고했다. 민주노총의 1기 전략조직화 사업(2006~2009.7) 완료를 앞둔 상황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토론이 전개되었다. 다수의 노조 간부나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면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기서 몇 가지 쟁점을 추려본다.

[표 3] 민주노총의 전략 조직화 사업을 위한 5대 핵심 방침
(표는 첨부파일을 참조하세요.)

<전략조직화 사업 또는 조직화모델에 대한 의미 부여>

한편에서는 미국의 조직화모델이 사회운동노조의 현실태라고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조직화 모델의 확산과 침체 과정에 대해서는 보론을 참조하라.)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주체 발굴, 교육과 투쟁에 대한 강조, 지역 사회운동과 연대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조직화모델이 ‘조직 확대를 통한 교섭력 확대’를 주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 노선의 연장선일 뿐 사회운동노조와는 출발점이 다르다고 비판한다. 즉 조합원이 다소 증가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운동의 질적인 측면에서 뚜렷한 발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한노사연이나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임영일 교수는 조직화 전략이 민주노조 운동의 재활성화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지 그 전부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임영일 교수는 서비스모델, 파트너십모델, 조직화모델이 서로 결합될 수 있고 노동조합 현실 활동에서는 모두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조직화모델과 사회운동노조를 동일시하는 입장은 미국의 조직화 모델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들을 이상화하는 것일 수 있다. 반면 조직화모델이 단지 서비스모델의 연장선 위에 있다는 평가는 가장 나쁜 사례들을 일반화하는 것일 수 있다. 어찌 보면 조직화는 노조의 일상적 활동인데, 조직화모델이라고까지 격상하는 것은 오히려 노조 이념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운동노조가 곧 조직화모델과 동일시될 수는 없지만 사회운동노조라는 관점에서 조직화 사업에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1기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평가>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 평가보고서 역시 한노사연 연구원들을 주축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평가 내용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한노사연은 위에서 언급한 책에 실린 히어리와 애들러의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Heery & Adler, 「Organizing the Unorganized」)라는 논문에서 제시한 평가 기준에 따라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평가한다. 히어리와 애들러의 논문은 노조 조직화 사업을 평가하기 위한 세 가지 구성요소와 아홉 가지 차원을 제시한다.

[표 4] 노조 조직화의 구성요소와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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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사연의 평가는 이러한 아홉 가지 차원에서 볼 때 어떤 측면은 잘했으나 어떤 측면은 잘못했다는 식으로 다소 평면적이다. 한노사연의 전통적 입장은 조직화모델보다는 차라리 ‘산별노조 단체협약 적용대상 확대’에 더 주목한다. 이는 산별노조의 사회적 대표성, 영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으로 간주된다. 임영일 교수도 노동조합의 힘을 드러내는 기본 지표는 노동조합 조직률과 함께 협약 적용대상 범위라고 지적한다. 물론 협약 적용대상 확대는 산별노조가 추구해야 할 기본목표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문제로 남아 있다.
이제 1기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구체적 평가를 살펴보자. 임영일 교수는 특별기금을 거둬서 각 산별노조/연맹에 활동가를 배치하는 방식의 전략조직화 사업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고 따라서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즉 ‘차상위조직’(민주노총 지역본부, 산별노조/연맹 지역본부)이 조직개편, 조직문화 혁신을 통해서 조직화 사업의 핵심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이러한 차상위조직이 일상적으로 조직화 사업을 전개해야 하고, 민주노총 차원의 전략조직화 사업은 지양하거나 아주 특수한 경우에 한정하여 ‘특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대표는 임영일 교수의 주장이 실질적으로 전략조직화 사업의 중단을 의미한다고 비판한다. 김혜진 대표는 1차 전략조직화 사업이 조직화 대상, 조직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개별 활동가들을 산별노조/연맹에 분산시켜놓고 활동을 강요한 게 실패의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그녀는 2차 전략조직화 사업이 필요하고, 특히 제조업 공단 지역이나 사회서비스 부문에 대한 전략조직화 사업을 특화하고 민주노총 차원의 면밀한 연구와 사업관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혜진 대표는 한국에서 삼성과 같은 일부 재벌을 제외하고는 대기업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률이 이미 매우 높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전략조직화사업을 지속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냐는 쟁점이나 조직화 사업이 전담기구의 몫이냐 아니면 노조 전체의 몫이냐를 둘러싼 쟁점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 주목해야 할 문제는 민주노총이 기금모금을 통한 전략조직화 사업으로 만족하고 정규직-비정규직의 격차축소나 갈등해결을 위해 한층 더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무엇을 위해서 조직화할 것이냐, 조직화를 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의 경우 조직화의 목표가 교섭력과 서비스의 강화라고 생각하는 경향(비즈니스노조주의)이나 노동자 내부의 이질성 예를 들어 인종적 이질성의 극복이라는 경향(사회운동노조, 시민권노조)이 동시에 존재한다. 한국에서 조직화 사업도 목표가 무엇이냐는 문제는 아직 실천적으로 확립되지 않았다.

<조직화모델이 처한 근본적 난점은 무엇인가?>

세계 각국에서 조직화모델이 반드시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조직화모델이 처한 근본적 난점이 무엇이냐는 것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이에 관해 한편에서는 주체적 요인을 강조한다. 영미권의 경우 기존 조합원이 노동조합 자원배분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거나, 새로운 조직화 경향이 성공할 수 있냐는 회의적인 조직문화가 작동하거나, 신규 노동조합의 관할권을 둘러싼 노동조합 간 경쟁이 벌어지거나, 사용자측의 저항을 이겨낼 힘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조직화 의지의 부족, 조직화 대상과 방법에 대한 연구 부족 등이 1기 사업의 실패를 낳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평가에 따르면 조직화의 필요성에 대한 조합원 교육 확대, 조직문화의 혁신이 조직화 사업의 일차 과제가 될 것이다.
반면 법제도적 장벽, 정부의 반노조 정책, 노동신축화 전략 등 객관적 요인이 노조의 조직 확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라는 주장도 있다. 비교적 성공적인 조직화의 경험이 축적된 미국이나 캐나다의 조직화 사업도 노조 조직률 하락을 반전시킬 정도에는 이르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신규 노동조합을 건설하더라도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조건 등 노동권을 보호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적은 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 신규 건설이 어렵고, 건설되더라도 활동을 유지할 유인이 적다. 따라서 제도개선 투쟁, 정치투쟁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결국 법제도 개선이 먼저냐, 노동자운동의 대중적 토대의 재건이 먼저냐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어떤 확정적인 탈출구는 없지만, 단절을 위한 출발점을 어디로, 어떻게 잡은 것이냐는 것은 당분간 중요한 쟁점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조직화모델로 전환하게 된 배경을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결정적인 인식은 노동법을 비롯한 제도적 환경이나 세력관계가 노동조합에 매우 불리한 조건이지만 노동조합 내부의 조직력, 투쟁력, 정치력이 복원되지 않고서는 이러한 제도적 환경과 세력관계를 역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노동조합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노동조합 내부 개혁 즉 조합원의 동원,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노조의 조직구조와 조직문화의 개혁, 사회운동 조직과 연대가 우선적 목표로 설정되어야 하고, 이러한 변화가 있어야만 제도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세력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략조직화 사업이 단지 일부 전담 조직가들의 활동만이 아니라 기존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을 이끌어내는 문제나, 신규 조직된 노동자들을 적극적인 운동가로 발전시키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조직화모델은 기존 노동조합이 자신의 임금이나 고용조건과 관련된 고충 해결(내부조직화)보다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외부조직화)에 헌신함으로써 노동조합운동의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저항에 부딪히기도 하고, 조직화사업에 대해 조합원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논리가 ‘조직화를 통해 노동시장 통제력를 강화함으로써 조합원을 보호하고 단협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것에 머무르기도 한다. 즉 노동자운동의 사명은 무엇이냐는 본질적 문제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연대노조와 사회연대운동

2009년 상반기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이석행 위원장이 물러나고 임성규 위원장이 새로이 등장하면서 민주노총의 발전노선을 사회연대전략(사회연대운동, 사회운동노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연대운동 안은 중앙집행위 수련회, 중앙위원회 토론을 거쳐 9월 임시대의원대회에 상정될 것이다.

[표 5] 2009년 민주노총 세부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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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운동 계획은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고 사회적 연대를 실현한다는 이중의 목표를 설정하고 총연맹, 산별노조, 지역본부, 현장의 실천방향을 제시한다. 가장 최신 판본이라고 할 수 있는 2009년 8월 중앙위원회 안에서는 총연맹이 자임하는 제도개선사업, 조직화사업, 연대사업 과제가 [표 5]와 같이 제시된다.
또한 민주노총 지역본부, 산별노조 지부, 지역노조도 지역의 여러 운동단체와 결합하여 대지자체 요구 투쟁을 전개하며, 노동자의 자주적 복지활동 기반(공단 내 의료생협, 보육시설, 방과 후 대안학교)을 구축하여 생활연대를 실현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총연맹은 하반기에 사회연대헌장 제정을 추진하여 민생민주국민회의를 포함한 전체 사회운동과 공동실천서약을 체결하면서 비정규 중소영세 노동자 권리보장, 일자리 창출과 실업안전망 확보, 부자감세 중단과 민생예산 확보라는 민주노총의 주요 제도개선 과제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하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의제별로도 조중동 OUT/언론악법 원천무효와 헌재의 바른 판결을 위한 천만서명, 4대강 죽이기 사업 저지, 의료민영화 및 시장화 저지/건강보험보장성 강화를 중심으로 공동실천서약을 체결하고 운동을 펼쳐나가는 데 총연맹이 앞장선다는 계획도 있다.

<사회연대운동, 무엇이 쟁점인가?>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사회연대운동이 집행부의 특징과 임기에 따른 일시적 사업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 과제로 추진”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총연맹과 각 산별, 지역본부, 단위사업장까지 자성과 결의가 있어야 하며 각 정파의 소통과 합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어떤 특정 정파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되며, 우선 대다수가 합의하는 정책과 실천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지난 10년간의 격했던 정파갈등을 치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민주노총 공식조직체계를 통한 논의와 정파간 소통과 합의를 통해 민주노총의 공식적 운동 목표와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정파 간 권력교체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자는 문제의식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과거 단병호 집행부에서도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했으나, 일부 활동가들은 ‘단병호 위원장 재집권 프로젝트’라는 식으로 인식하여 보이코트했고, 공식적인 조직체계를 통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용두사미로 종결되었다. 이러한 보이코트가 결코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의 경우 논의 준비와 토론에 소요되는 시간을 2년으로 설정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아무리 문제의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현재 사회연대운동과 관련된 논의가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 제출되어 있는 사회연대운동 안에는 여러 쟁점이 존재하다. 사회연대운동을 둘러싼 여러 세부 쟁점이 이번 제안을 통해서 처음 등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연대운동의 고유한 쟁점이 있다면 그것은 민주노총의 전략을 ‘사회연대전략’이라고 표현하는 것 그 자체일 것이다. 이는 분명히 진보신당에서 주장하는 사회연대전략과 공명하고, 그 핵심 문제는 현재 노동자 간 격차확대(양극화)의 원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그에 따른 정규직 양보론일 것이다.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안은 사회연대전략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각종 해설을 모두 생략했다. 따라서 이 대목은 중앙위원회 이전에 제출된 문건들에 기초하여 평가한다.)

<노동자 간 양극화의 원인에 대한 인식과 정규직 양보론>

사회연대운동 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사회연대의 주된 책임자는 당연히 양극화의 주된 수혜자인 고수익 대기업과 부유층이 되어야 하며, 국가로 하여금 관련 제도를 통한 사회연대 실현을 주되게 요구해 나가야 한다. 이를 전제로 하여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재원 마련의 문제에서 감당하게 될 비용의 문제는 우리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에게 사회보험료를 감면하고 고임금 노동자가 누진적으로 보다 많은 부담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사회연대의 가치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제기되는 첫 번째 문제는 노동자 간 격차 확대가 정규직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몫을 가져가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과연 현실과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표6]의 1997년과 1998년 사이의 지니계수 상승(소득분배 불평등 심화)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 내부 격차 심화나 분배 악화는 경제위기가 결정적 원인이다. 1997년과 1998년 사이에 노동자운동의 실천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1998-99년과 2003-6년 사이에 지니계수 하락(소득분배 불평등 완화)이 노조운동의 사회연대 실천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가 사회복지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사회복지 확충이라는 전략이 과연 실행 가능하냐는 것이다.
우리가 20세기 자본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임금 문제에 관한 더 정확한 상을 얻을 수 있다. 미국 자본주의 사례를 분석하면 국민소득에서 전체 노동자 임금이 차지하는 임금분배율은 대체로 일정했다. 하지만 이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현상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임금분배율을 떨어뜨리려는 힘이 항상 존재한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하락에 저항했기 때문이 임금분배율이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제도화된 것이 생산성 임금이다. 특정 산업부문 생산성 향상에 비례하여 산업부문 노동자 전체의 임금이 인상된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매개로 하여 임금 하락에 도전하는 것은 항상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내부 격차 축소를 위한 주체적 노력이 배가될 수 있다.

[표 6] 도시근로자가가구 소득분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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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규직 양보론은 문제가 있지만 ‘정규직 책임론’은 제기될 수 있다. 즉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축소해서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해야 할 정규직의 책임성이라는 문제는 제기되어야 한다. 사실 임금격차 축소, 정액임금 인상, 최저임금 상승 등은 모두 정규직을 비롯한 기존 노동자운동의 책임이거나 총연맹의 책임이다. 이는 경제의 금융화나 한국재벌의 하청착취구조 등에 대한 비판, 규제의 문제와도 연결될 것이다.

<좋은 일자리>

사회연대운동 안은 이렇게 말한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작년부터 좋은 일자리(decent work)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세계적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도 고용평등, 차별해소, 장시간 노동의 철폐와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서 좋은 일자리를 모든 노동자에게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즉 노동신축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은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좋은’(decent)의 사전적 의미는 수용 가능한(acceptable) 표준이나 질을 지녔다는 뜻이고 상당히 소극적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또한 좋은 일자리는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노총의 핵심 슬로건인데 현재 국제노동기구를 통한 국제노동개혁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 대안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좋은 일자리 계획이 드디어 국제노동기구와 세계노총이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비공식 노동자 등 주변화된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쏟기 시작한 계기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ILO의 기본성격이 삼자주의이고 노동자 대표가 항상 약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정적인 쟁점에서는 항상 정부와 자본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과거부터 존재했다. 국제노동기구는 총회와 이사회 구성은 항상 정부대표2, 사용자대표1, 노동자대표1의 비율이기 때문에 결정적 시점에서는 항상 자본과 노동의 3:1 구조인 셈이다. 또한 국제노동기구를 통한 정부 압박이 정부에게 어느 정도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노동기구의 정부 개입력은 점점 더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국제노동기구는 협약안을 마련하여 각국 정부에게 비준을 요구하며 비준될 경우 실행을 감독하는 협약-비준 모델에 따라 활동을 전개했다. 과거에는 사회주의 국가와의 체제 경쟁이 작동하여 협약 비준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면(국제노동기구를 반공주의의 보루로 작동시키고자 했던 미국은 막상 협약 비준에는 가장 소극적이었다), 체제 경쟁이 종식되고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는 과정에서 각국 정부가 협약 비준을 점점 외면하면서 이 모델은 점점 더 힘을 잃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노동기구는 여러 의제들 중에서 핵심적이라고 여겨지는 몇 가지를 추려서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고용에서 차별금지 등 네 가지에 관한 핵심노동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다른 방안을 모색했다. 그 중 가장 유력하게 생각한 방안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무역과 사회조항(노동표준, 환경표준)을 연계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조차 좌초되자 국제노동기구가 정책을 강제할 수단을 잃게 되었다. 현재 국제노동기구가 제시하는 좋은 일자리 계획도 국제캠페인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쟁점 외에도 비정규직 사업에 대한 인식이나 사회연대헌장 추진 사업의 문제점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쟁점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문제가 확대 재생산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사회연대헌장 추진 사업의 경우도 조합원 스스로 사회운동의 주체가 된다는 관점이 취약하고(이는 조합원들이 사회운동과 괴리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현존 시민운동에 대해 의존적이다. 즉 사회운동 주체 간의 연대라기보다는 시민운동의 명망성에 대한 의존하려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민생민주국민회의가 현실에서는 시민운동을 매개로 민주당으로 통하는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연대운동 안이 ‘특정 정파의 노선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달리 정치적 편향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 특히 올해 6ㆍ10 대회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듯이 민주노총이 동원은 하되 그 성과는 민주당이 가져가는 결과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투쟁의 성과가 실제 민주노총 강화로 되돌아올 수 있는 하반기 대정부 투쟁을 계획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의 노동자운동 혁신과 재건을 위한 제안

사회진보연대는 1998년 출범 시점부터 사회운동론연구팀, 불안정노동연구팀, 실업정책생산모임 등을 운영하면서 ‘사회운동 노조주의’ 또는 ‘계급형성을 위한 노동자운동’이라는 관점을 정립하고 노동신축화나 실업 문제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대안과 실천을 조직하기 위해 활동을 펼쳤다. 2003년 이후로는 산별노조, 지역노동자운동에 대한 기본 입장을 정립하고 금속노조, 공공노조, 서울지역 노동자운동의 발전방향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으며 2008년 경제위기가 고조되는 과정에서는 총연맹 차원의 경제위기 대응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여기서는 2003년 이후 사회진보연대의 주요 입장을 살펴본다.

<산별노조, 지역노동자운동의 발전 전망>

사회진보연대는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논의가 궤도에 오르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정립하고자 했다. 한편으로 노동조합의 이념 재건과 이를 위한 노동자교육 활동에 주목했고, 또 한편으로 조직화와 이를 위한 노동조합 구조의 재편(예를 들어 대산별 지향과 산별노조 지역조직 강화)을 강조했다. 그리고 지역수준에서 노동조합, 사회운동, 정당을 망라하는 운동망을 형성하고 일상적 지역사업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에서 사용자의 저항으로 인해 산별교섭이 안착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산별노조가 산별교섭의 기본 틀 쟁취 그 자체보다는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운동성 강화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2006년 말을 기점으로 산별노조 출범이 본격화되면서 주요 산별노조의 운동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금속노조는 핵심과제로서 ① 기업별 노조의 임단협을 뛰어넘는 임단협 요구와 투쟁의 조직화, ② 지역수준에서 원하청불공정 거래의 근절을 목표로 1차 밴드, 2차 밴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그린필드 대공장 조직화, ③ 안전보건, 성, 보육, 교육, 환경, 주거 등을 쟁점으로 하는 지역사안에 대한 투쟁 조직화를 꼽았다. 또한 공공노조의 핵심과제로는 ① 산별노조 지역지부를 강화, 지역별로 광범위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②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섭과 투쟁 조직화, ③ 지역수준에서 (지자체가 직접 사용자가 아닌 노동조합도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 투쟁 조직화를 제시했다. 서울지역 노동자운동의 핵심과제로는 ① 전략조직화 사업의 발전적 강화, ②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산별노조 지역조직 간 연계성 강화, ③ 저임금, 주거권, 기초생활권 등을 매개로 한 노동자운동과 도시빈민 운동의 연계성 강화를 강조했다.
총연맹 위상 강화, 경제위기 대응방안 모색
산별노조를 노조운동의 중핵으로 보는 관점에 따르면 산별노조가 안착되고 위상이 올라갈수록 총연맹의 위상도 동반 상승해야 한다. 산별노조가 상당한 힘을 갖게 되면서 총연맹도 대정부교섭을 강제하고 정책참가를 통해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 증대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금속노조, 공공노조, 운수노조 등 산별노조 전환이 이루어졌지만 산별 교섭이 안정화되지 않고 총연맹의 전략적 위상도 모호해지는 이중적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조건에서 총연맹의 역할을 강화하고, 특히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노동자 간 격차 축소와 노동자 단결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주요 제안은 다음과 같다. ① 산별노조 시대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대정부 정치투쟁의 지도부로서의 역할과 대정부 교섭전략의 수립이라는 두 차원에서 동시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정부나 자본이 노조 요구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투쟁 동력을 현실적으로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점검을 해야 하며, 노조 투쟁동력 집중을 전제로 하면서 대정부 교섭 역량도 강화시켜야 한다. ② 산업간 혹은 산업 내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총연맹 차원의 교섭 정책이 필요하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산별교섭도 임금을 다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차원의 방안을 마련하고 투쟁과 교섭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③ 총연맹 지역본부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 총연맹 지역본부가 산하조직에 대해 충실한 사업을 전개하고 산별연맹 지역조직과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며, 단순한 수평적 협의체를 넘어서 더욱 강화된 통솔, 조정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2008년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서 해고나 노동조건 악화, 노동자 간 격차확대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경제위기에 대한 투쟁이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한 계기가 되도록 투쟁목표를 수립할 것을 제안했다. 재벌의 초민족화, 초민족적자본의 수탈 메커니즘과 이명박 정권의 구조조정, 일자리 정책을 폭로, 비판하면서 ‘한시적 해고중단과 고용안정’ 요구를 전면화하고 최저임금 현실화를 필두로 임금을 매개로 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 강화를 제안했다.

<평가와 과제>

지금까지 한노사연의 노동운동 활성화 전략과 산별노조 발전 전략, 민주노총의 주요 혁신계획의 하나였던 전략조직화 사업, 현 집행부의 사회연대전략을 검토했다. 또 사회진보연대가 노동자운동의 혁신, 재건을 위해 제시했던 입장들을 살펴보았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민주노총에 존재하는 모든 정파들은 노동자운동의 발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했으며, 민주노총 공식조직도 이러한 토론 결과물을 흡수하여 계속 변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필자는 대안의 완성도 못지않게 객관적 조건에 따른 대안의 실천 가능성을 고려하여 전략이 수립되지 않는다면 노조운동이 공회전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제기하고자 했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노동자운동 단체가 제시해야 할 핵심 문제의식과 실천방향을 정리해보자.
우선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전략에 대한 공론화를 확대해야 한다.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사회연대운동 안을 조직혁신 방안으로 확립하고 전 조직적 토론에 부치려고 했으나 현실적으로는 하반기 사업에 사회연대헌장 제정이 포함되는 수준에서 마무리될 수도 있다. 조직혁신 방안을 전 조직적 차원에서 논의한다는 것은 단기 계획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게 객관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말에는 민주노총 임원서거라는 계기도 있다. 여러 운동집단들이 현실 쟁점의 공론화를 주도하자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둘째,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는 조건에서 민주노총 차원의 공동요구와 공동투쟁을 어떻게 제안하고 조직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최근 경기회복론이 고개를 들고 있고 실제로 내년 2010년에는 실제 회복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2011~12년 더블딥(2차 경기하강)이 나타나고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경기회복에 비해 고용사정 변화는 더디게 나타나므로 고용조건 악화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용없는 회복’). 또한 이번 쌍용자동차 투쟁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고용안정 문제에 대한 민주노총 차원의 총괄적 문제제기와 공동투쟁이 취약한 현실이 잉태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경제위기에 대한 총체적 대응이 대량해고가 자행되는 단위사업장의 투쟁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한노사연이 제기한 양보교섭을 전제로 한 파트너십모델이나 유연안정성 정책이 정리해고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안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나아가 쌍용차와 같이 부도가 난 한계기업은 해고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되 실업대책을 비롯한 사회안전망 강화로 해고의 충격을 완충하자는 입장이 은연중 확대될 수도 있다. 서구에서는 노동조합 투쟁의 패배의 결과로 관철된 기업 측의 계획을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먼저 제기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차원에서 공동요구와 공동투쟁을 조직한다는 관점이 없다면 사업장별로 양보교섭이나 패배주의가 만연해질 수도 있고, 자본 측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셋째, 경제위기 대응의 정치적 구심이라는 의미에서 총연맹의 위상 강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통적인 산별노조 노선이 제기하는 정책참가, 대정부교섭의 중심이라는 총연맹의 역할은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고 있지만 기존에 총연맹이 수행하던 역할은 각 산별노조의 역할과 중첩되면서 총연맹의 위상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총연맹은 주요 국면마다 요구안을 정리해서 제출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상실한 상태다. 나아가 이러한 상태를 반영하여 총연맹 차원의 구체적 계획에 대한 진지한 토론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이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대정부 투쟁의 구심 역할을 하고, 산별노조들이 수행하는 임단협 투쟁에 대해 정책적 지도력을 행사하며, 조직화 사업의 구심으로 기능하기 위한 방안을 시급하게 수립해야 한다.
넷째, 전략조직화 사업의 전후방을 연결하기 위한 활동 프로그램을 풍부히 발전시켜야 한다. 전략조직화가 전담부서나 담당자의 업무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조합원이 이러한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확장해야 하며(원하청공동투쟁, 지역공동투쟁, 산업공동투쟁 등), 신규 조직에서 활동가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매우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제안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노조 결성에도 허덕이게 될 뿐만 아니라 무엇을 위한 조직화냐라는 근본적 문제의식이 실종될 수 있다. 총연맹은 산별노조와 다른 차원의 전략조직화 사업을 구상, 실행해야 한다. 최근 이주노동자 조직화 프로그램이 검토되고 있다. 모든 운동단체는 이외에도 총연맹이 집중해야 할 사업안을 모색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서구 노동조합이 직면한 위기를 그대로 반복하게 될 정책요구안을 대체하는 대안을 시급히 수립하고, 주로 독일을 모델로 하는 전통적 산별노조론이 상정했던 총연맹-산별노조-지역/현장조직의 위상을 한국 현실에 부합하게 재구성하며, 주로 미국을 모델로 하여 전개되었던 전략조직화 사업 프로그램을 한국 노조운동의 근본적 발전방향에 부합하게 재구축해야 한다는 과제에 대해 모든 운동세력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보론] 미국 노조운동에서 서비스 모델의 위기와 조직화 모델의 등장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의 모형이 되는 미국 노조운동의 조직화모델은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는지, 어떤 난관에 봉착했는지를 간략히 살펴본다.


1980년대 서비스모델이 봉착한 한계


1980년대 이후 미국 노조는 서비스모델의 한계로 인해 노동신축화, 노조회피 전략에 대응할 수 없었다. 첫째, 노조가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사용자의 고유 권리로 인정했기 때문에 투자이동, 공장이전, 하청, 임시직 활용에 속수무책이었다. 둘째, 노조의 관료화에 따라 노조 활동에 대한 조합원의 참여가 심각하게 약화되었기 때문에 사용자 전략에 대한 조합원의 전투적 대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셋째, 서비스모델은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산업구조의 변화(서비스산업 확대)와 노동신축화에 따라 대규모로 등장한 신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할 수 없었다. 넷째, 서비스모델은 사회개혁이나 사회운동과 연대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미조직 노동자는 노조가 노동자를 위한 진보적 운동조직이라기보다는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특권적 요새라는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다섯째, 양보교섭으로 인한 노조의 서비스 제공 약화는 조합원들에게 차별적 서비스를 ‘판매’하는 전략에 심각한 타격을 준 반면, 사용자는 인적자원관리를 통해 조합원이 제공받는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함으로써 노조의 존립기반을 약화시켰다.


조직화모델의 등장 이전 서비스모델에 대한 다른 대안들


1980년대 서비스모델이 위기에 빠지자 조직화 모델이 등장하기 전까지 다른 대안들도 제시되었다. 첫 번째는 미시적 파트너십 모델이다. 적대적 노사관계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기업이 노조를 회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강조하면서 노조가 주도하는 종업원 참여와 협력을 통해 품질 향상의 길을 고용주에게 확신시키고 노조를 인정받자는 노선이다. 두 번째는 총체적 서비스 모델이다. 노동조합을 직종별, 지역별로 재편하여 조합원에게 매력을 주는 총체적 서비스를 제공하자, 즉 노조가 직업훈련, 직업소개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여 높은 이직률에 시달리는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에게 숙련을 제공하고 사용자에게 매력을 주어 노동조합을 인정받자는 노선이다. 세 번째는 민주당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노동법 개혁이다. 와그너법을 복원하자는 것인데 이는 클린턴정부 출범 이후 던롭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졌으나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와그너법은 1935년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제정된 미국의 노동조합보호법으로 노동자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당노동행위제도와 교섭단위제도를 설정했다.)
하지만 이처럼 고용주나 민주당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모델들은 노동조합의 조직력, 투쟁력, 정치력 등을 복원하기 전에는 실현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불리한 정치적 세력관계에서 노동법 개혁이 어려운 조건을 인식하고 오히려 위기의 해법을 노조 내부에 초점를 맞추었다. 즉 조합원의 동원,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노조의 조직구조와 조직문화의 개혁, 사회운동 조직과 연대 형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조직화 모델의 등장과정


조직화 모델의 등장과정에는 시민권 운동이 큰 영향을 끼쳤다. ①노동조합과 시민권운동(사회운동)의 연계는 시민권운동의 전투적 정체성을 노동조합에 이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②특히 시민권운동이 사용한 불복종, 시위, 캠페인 등 전투적 전술이나 주민조직화 방식은 노동조합의 전투적 전술과 현장위원회 설립 등 조직화와 동원 기법을 위한 모델이 되었다. ③시민권운동, 여성운동과 연대했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흑인과 여성의 노동조합 대표성을 강화하였고, 이는 미조직 흑인,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노동조합과 시민권운동(사회운동)의 연계는 노동조합과 사회운동 조직과의 공식적/비공식적 채널의 형성, 시민권운동과 노조를 연결하는 흑인 노조간부의 가교 역할, 또는 노동조합에서 시민권 활동가를 간부로 채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히 지역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 자신의 요구를 ‘공적 요구’로 의제화하여 사회운동 조직이나 지역주민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보았다.
1989년 미국노총 내 <조직화 연수원>이 창립되었다. 창립목적은 ①조합원뿐만 아니라 여성과 소수인종에서도 조직가를 선발, 배치한다, ②노동운동이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회운동으로 복원되도록 한다, ③조직화문화를 촉진시킨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1995년 선출된 스위니 집행부는 조직화 모델로 전환을 촉구했다. 미국노총 예산의 30%를 조직화 사업에 투여할 것을 약속하고, 동시에 산하 연맹에 30%를 조직화사업에 투자할 것을 권고했다. 미국노총 내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전담하는 조직국도 신설되었다.


조직화 모델의 침체와 발전 전망


미국노총 새 집행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2000년 시점에 미국노총에 가입한 66개 연맹 중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을 쏟는 연맹은 10개에 불과했다. 또한 1995년부터 2002년 사이에도 노조 조직률은 10.7% 하락했다. 미국노총과 가입연맹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스위니 집행부의 위상도 하락했다. 이로 인해 미국노총 내 심각한 분열 양상이 나타날 위험성이 커졌다.
그렇다면 조직화 모델이 강한 저항에 부딪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①조합원과 간부 양자 모두 지닌 서비스 모델의 관성. (간부는 조직화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고, 조합원은 노조의 서비스 약화에 불만을 지닐 위험성.) ②조직화 모델을 가입 연맹에게 이식하려는 노력이 연맹들의 반발을 낳았다. (보수파는 노총의 개입시도가 자신의 권력이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조직화를 지지하는 좌파들도 위로부터 개입이 분권적 자율성과 주도성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③조직화 모델의 전령사 역할을 했던 연수원도 권력 갈등에 얽히고 자율성과 운동성 약화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외부조직화로 전환하지 못하고 내부 조직화(기존 조합원의 전투성과 동원 강화, 민주주의 활성화)에 초점을 둔 모델도 여러 문제점이 존재했다. ①단체교섭 시기에는 조합원들이 어느 정도 활동력을 발휘하지만 일상적인 시기에는 투쟁에 대한 참여를 꺼려했다. ②내부 활성화를 위해 간부들이 현장에서 불만을 찾아 이슈를 제기하고 수많은 고충처리, 중재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스트레스와 역량소진을 겪었다. ③미조직조직화에 성과를 남기지 못했고 외부환경의 악화 속에서 조합원 감소가 이루어지거나 단체협약도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반면 외부조직화에 성과를 거둔 경우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었다. ①조합원과 상근간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재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조직문화를 혁신했다. (조합원들이 특별기금이나 조직화활동에 대한 참여를 서약했다.) ②조합원들이 현장에서 불만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촉진하고 이를 통해 상근간부의 스트레스와 역량소진을 감축했다. 그러나 외부조직화의 경우도 조합원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논리가 “조직화를 통해 노동시장 통제력를 강화함으로써 조합원을 보호하고 단협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것에 머무르기도 했다. 즉 노동운동의 사명은 무엇이냐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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