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1-2.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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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여성사업 진단과 과제

여성노동자를 민주노총 혁신의 주체로 세우자

정지영 | 여성위원장
민주노총은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여성의 요구와 권리의 실현을 자신의 과제로 삼고 있는가? 1997년 여성위원회가 출범하고 할당제, 반성폭력 규약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온 12년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조금씩이나마 페미니즘적으로 개조되고 있는가? 여성사업은 확대 강화되고 있는가?
지난해 발생한 민주노총 임원 성폭력 사건과 그 처리 과정은 여성 문제에 관해서 민주노총이 여전히도 답보상태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노동조합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논란이 될 때마다 민주노총과 노동조합이 페미니즘에 입각해 혁신되어야 한다는 주문이 잇달았지만, 지금까지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성폭력 사건이 아니더라도 여성노동자 조직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에 대한 태도, 민주노총의 여성관련 요구 등 여러 지표들에서 민주노총의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과 활동이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논란이 되어야 여성 문제에 대한 주의가 환기되고 그마저도 늘 흐지부지되는 현실은 민주노총이 여전히 여성노동자의 요구와 권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조합에서 여성 배제와 차별이라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제안된 할당제나 반성폭력 규약은 여성사업과 운동의 강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제도만 남아있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여성조합원들이 여성위원회를 자신의 운동조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여성사업이 자신의 요구와 문제를 담아서 해결하는 사업이라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사업의 부문화, 부차화는 당연한 결과다.
여성사업 강화라는 과제는 단지 부문으로서 여성사업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민주노총에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확산하고 민주노총 운동을 페미니즘적으로 개조하려는 노력을 전면적으로 강화하는 것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민주노총 여성사업의 현황을 진단하고 이후 과제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민주노총 여성사업 현황과 진단

여성위원회 구성과 사업 현황
민주노총의 여성사업은 흔히 여성위원회의 사업으로 이해된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여성 담당 부위원장(여성위원장), 사무총국의 여성사업 담당자, 산별연맹 또는 산별노조와 지역본부의 여성위원장이나 여성사업 담당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산별연맹과 산별노조, 지역본부의 여성위원장과 여성사업 담당자가 공석이거나 겸직인 경우가 많아 실제 여성위원회 결합도는 그리 높지 않다.
최근 여성위원회 사업은 대체로 조직사업, 정책사업, 교육사업, 연대사업 등 기본 사업과 정기적인 대중사업인 ‘3ㆍ8 세계 여성의 날’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직사업은 주로 여성위원회 골간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사업으로, 지역조직과 가맹산하조직과의 간담회를 통해 여성사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사업주체를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를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간담회에서는 인력을 확충하기 어려운 재정 구조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항상 제기되곤 한다. 이는 여성사업의 중요성이 당위적인 수준에서 인정되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위상을 획득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객관적으로 재정의 어려움도 존재하지만, 여성사업이 노조 전체의 사업이고 남녀 조합원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과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부문으로 축소되는 상황에서 여성위원회와 여성사업의 확대 강화에 대한 적극적인 동의와 결의가 나오기는 상당히 어렵다.
정책사업은 여성의 고용과 임금 차별, 보육과 모성권, 적극적 차별시정 조치, 할당제, 성폭력과 성희롱, 건강권 등 여성에 관한 다양한 의제를 포괄하고 있다. 언급된 의제들은 물론 여성조합원들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들이지만, 실제 사업은 주로 연구프로젝트, 토론회, 설명회로 진행된다. 여성위원회의 정책이란 여성조합원들의 요구, 민주노총의 여성 문제에 대한 요구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외부의 전문가나 연구자들의 작업을 통해 정리되고 있으며, 실제 사업계획과 맞물리지 못하면서 민주노총의 입장, 여론전을 위한 정책에 그치고 있다. 여성조합원들의 요구로 자리 잡고 운동으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과 요구가 민주노총의 노선, 투쟁방향에 적합한지, 여성조합원들의 현실과 요구에 부합하는지 확인할 수 없게 된다.
교육사업으로는 민주노총 내 여성사업 현황, 여성노동 관련 법률과 쟁점, 여성학 기본 등을 다루는 내용으로 여성노동교실이나 성평등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참여자를 확대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그때그때 외부 강사들을 섭외하는 일회성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교육내용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참여자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은 여전히 여성사업 담당자나 여성 간부들로 한정된다. 현 시기 총연맹 여성위원회가 교육사업을 진행하는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텐데, 전 조직적인 교육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체계적인 교육 내용 선정과 그에 따른 교안 마련, 강사단 구축을 통해 지역본부, 산별연맹과 산별노조에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할당제, 여성의 대표성을 강화했는가
노조 내 여성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민주노총은 2004년부터 임원과 대의원, 중앙위원에 대한 30% 여성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할당제 시행으로 2002년 10%에 그치던 여성임원 비율이 2007년 33.3%로 증가하면서 의사결정기구에 여성 참여 비율의 양적 증가를 낳았다. 그러나 할당제를 통해 하려고 했던 여성사업의 강화나 여성노동자의 조직률 제고, 조직 내 여성의 요구 반영과 같은 과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실에서 많은 조직이 할당 수만큼 여성위원을 선출하지 못하여 미선출(공석)로 처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할당제가 여성조합원들을 활동가 간부로 육성하는 것에 기여하고 있는가, 할당제를 통해 선출된 여성간부가 여성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할당제를 둘러싼 여러 평가의 지점 중에 가장 우선적인 것은 과연 할당제가 제고하려 했던 여성 대표성의 실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여성임원이나 간부 비율이 증가한 것만으로 여성 대표성이 강화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여성할당제를 통해 여성대표를 선출하는 근거는 바로 여성조합원의 존재와 요구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주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집단적인 요구도 분명하게 조직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할당제를 통해 선출된 여성 간부는 여성조합원들을 대표한다기보다는 개인으로 인식될 뿐이다. 여성대표로 선출되었으나 대표할 여성의 요구와 집단적 주체성이 부재한 현실은 한편에서는 여성위원회, 여성대표의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대표들의 활동이 개인의 성향, 정파 등을 근거로 진행되는 것을 제어할 수 없게 한다.
결국 여성들이 민주노총 운동과 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 여성들이 노조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처해있는 현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를 통해 집단적인 요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여성 의제, 어떻게 다뤄지는가
민주노총이 다루고 있는 여성 의제는 여성의 고용과 임금에서부터 여성 노동 관련 법, 출산 및 육아와 같은 모성권과 재생산 노동, 직장 내 성희롱, 여성의 건강권 등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의제들이 어떤 기조로, 또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는가를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여성 의제가 여성만의 사항으로 국한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전체 노동자의 조건과 민주노총의 운동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여성들의 일자리를 특징짓는 비정규직, 최저임금과 같은 사안은 민주노총 전체의 과제로 다뤄지기는 하지만 여성을 저임금, 유연한 일자리에 집중시키는 고유한 성별분업의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여성의 고용과 임금에 관한 고유한 쟁점은 주로 차별시정이나 적극적 조치의 문제로 인식된다. 여성의 고용과 임금의 일반적 조건인 저임금, 비정규직에 맞서는 투쟁이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을 쟁취하고 성별분업에 맞서는 투쟁임과 동시에 민주노총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조건을 방어하는 투쟁으로 제기되어야 하며 여성의 요구가 보편적인 요구로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여성 의제에 관한 일관된 기조를 세우지 못하고, 여성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실용적이고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부의 일 가정 양립 정책에 대한 태도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 가정 양립 정책은 여성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것으로, 여성의 일자리 확대를 통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제고와 출산 및 보육 지원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정책의 목표는 저출산을 위시한 재생산의 위기를 관리하고 저임금 여성 노동력을 창출하는 것이다. 실제 정부 여성 정책은 여성이 재생산 노동에 대한 일차적 책임자라는 성별분업의 구조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여성에 대한 출산과 보육에 대한 지원이 다른 여성의 열악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로 나타나는 것은 이 정책이 초래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정부 정책의 목표와 문제점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제기하지 못한 채,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는 것은 좋다는 식으로 정책을 수용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우선 민주노총이 가사와 재생산 노동에 대한 여성의 의무를 강화하는 정책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문제다. 양육을 비롯한 재생산 노동은 여성이 가족 안에서 책임질 것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두 번째로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여성 관련 단체협약안의 대부분이 정부가 제시하는 출산, 육아 지원정책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어쨌든 정부는 여성의 재생산 노동 관련 지원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를 무비판적으로 단체협약안에 그대로 넣다보니 민주노총 차원의 여성 단체협약안에 대한 별도의 고민이 필요 없게 된다. 결국 이는 여성조합원들의 정확한 현실을 반영할 수 없는데, 특히 최근 대다수 여성노동자가 고용상의 지위로 출산, 육아 휴직은커녕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반성폭력 운동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반성폭력 운동은 규약에 따른 사건 처리와 성폭력 예방교육이라는 두 축에서 진행되었다. 2003년 <성폭력 폭언 폭행 금지 및 처벌 규정>이 제정되었다. 이는 운동사회 내 반성폭력 운동이 제기해 온 문제의식을 수용한 것이었다. 물리적, 신체적 성폭력뿐만 아니라 여성억압 구조와 문화에서 기인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성폭력 규정으로 포괄하였고,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와 같은 개념을 받아들였다. 규약 제정은 성폭력 사건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며, 공동체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동반하면서 조직이 성폭력 사건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러나 규약이 제정되면서 오히려 민주노총 내 여성 배제와 차별을 비판하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논의도 일단락되었고, 이후에는 발생한 사건의 처리가 반성폭력 운동의 주요 활동이 되었다. 발생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논란에 대응하면서 성폭력 규정과 처리의 원칙, 피해자의 권리를 조직 내에서 인식시키는 것이 반성폭력 운동의 주요 과제였다.
지난해 발생한 민주노총 임원의 성폭력 사건과 그 처리 과정은 민주노총 내 반성폭력 운동을 심각하게 평가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성폭력 사건은 그동안 펼쳐진 반성폭력 운동을 통해 성폭력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고 자율성을 제약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민주노총 내에서 생겨났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주었다. 이후 사건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은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처리를 중심으로 펼쳐져 왔던 반성폭력 운동이 최소한 사건 처리 원칙과 방식조차 조직에 안착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낳았다.
현재는 성평등미래위원회 내 반성폭력팀을 중심으로 그동안 펼쳐진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평가와 이후 대안적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대체로 사건 처리 중심의 반성폭력 운동이 한계에 부딪혔고 이를 넘어서 민주노총의 활동과 문화의 혁신을 실현하는 반성폭력 운동이 필요하다는 합의는 존재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규약 상의 성폭력 규정, 처리 과정, 피해자 중심주의나 2차 가해와 같은 개념 등을 좀 더 명확히 명문화하여 사건 처리의 원칙과 매뉴얼을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는 방식 이전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대안 모색의 기본 전제는 민주노총 내에 성폭력과 그 바탕에 놓인 여성 차별, 억압, 배제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고 이를 바꿔야 한다는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과 합의를 만들기 위한 일상적인 여성사업, 여성위원회의 역할이 포괄적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성평등미래위원회와 여성위원회
여성위원회의 구성도 매우 취약하고 여성조합원들의 힘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위원회가 민주노총 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 개조를 선도하지 못하고 여성사업이 계속 부차화, 부문화되는 상황에서 여성위원회의 역할과 위상도 매우 모호하고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성폭력 사건은 여성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회의를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였다. 실제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꾸리기까지 여성위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전교조 내 2차 가해자들의 징계 불복과 재심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사건 처리에 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여성위원회는 페미니즘, 여성의 권리에 입각하여 사태를 평가하고 입장을 정리할 수도 없었다. 여성위원회가 정파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관점이 명확하지도 못하며, 제대로 사업을 진행하기도 어렵다는 회의가 제기되었다.
결국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권고를 따라 성평등미래위원회를 한시적 기구로 설치하여 민주노총 혁신방안을 마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의 주체가 기존에 민주노총 내에서 여성을 대표하고 여성사업을 추진한다는 여성위원회가 아니라 성평등미래위원회로 결정된 것이다. 현재 성평등미래위원회는 민주노총의 성평등 혁신 방안을 내기 위한 중장기사업팀, 그간 민주노총의 반성폭력 운동을 평가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반성폭력팀으로 구성되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민주노총 성평등 강사단 양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임원 성폭력 사건이 민주노총 여성사업을 가장 크게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조건이나, 산하가맹조직의 임원들과 외부 전문가를 포괄한 위원장 직속 위원회로서 성평등미래위원회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성평등미래위원회의 권한과 영향력은 여성위원회에 비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평등미래위원회와 여성위원회를 둘러싼 논의가 촉발되고 있다. 여성위원회를 성평등미래위원회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있고, 양자를 같이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여성위원회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조건 상 성평등미래위원회가 여성위원회를 대체하는 것이 손쉬운 해법처럼 보일 수 있다. 성평등미래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유지한다고 했을 때 그 역할과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새롭게 논의될 문제겠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즉 민주노총을 페미니즘적으로 개조하고 혁신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민주노총에 여성 문제를 제기하고, 여성의 요구를 보편적인 운동의 과제로 제기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여성조합원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요구를 집단적으로 묶어내고 대표하는 단위가 여성위원회다. 이런 기층의 힘이 없다면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개조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평등 의제를 민주노총의 외부에서 아무리 많이 들여오고 강제할 조항이나 구조를 만든다고 해도 조직 내에서 이를 추동할 주체와 힘이 없다면 성과를 보기 힘들다. 임원 성폭력 사건이라는 정세적 조건이 사라졌을 때, 기층의 주체 없이 성평등미래위원회의 권한과 위상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민주노총 운동
얼마 전 여성부는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와 근무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여건에 따라 근무 시간과 형태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일명 퍼플잡) 도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내년 초 시간제 근무 공무원 제도를 시범 도입하고, 민간 기업의 유연근무제 도입 촉진을 위해 법령 정비와 인사노무 관리 매뉴얼 개발에 나선다고 한다. 이를 받아 정부는 유연근무제도를 공공 부문으로 확대 시행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유연근무제도뿐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여성의 일자리를 둘러싼 여러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
그런데 분리직군제나 무기계약, 사회서비스 일자리, 유연근무제도 등 여성의 일자리를 제도화하는 기본 전제는 노동신축화다. 그 일차적 대상은 가장 조직이 안 되어 있고 힘이 없는 여성노동자들이지만, 결국 전체 노동자가 대상이다. 비정규직 확대, 노동자 집단간 격차의 확대라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은 노동신축화에 맞서고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여성들을 유연한 저임금 노동에 고착시키는 여러 정책과 제도에 대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라는 논리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이라는 과제로 환원되지 않는 가족의 문제가 놓여있다. 여성들이 가사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풀타임 근무보다는 파트타임이 적합하다는 논리는 많은 노동자들도 공유하고 있는 남성생계부양자-여성가사담당자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가족임금을 매개로 한 남성생계부양자-여성가사담당자 모델은 완전히 실현된 적도 없거니와, 최근 현실에 적합하지도 않다.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필요하다는 여성들의 요구는 가계 소득을 보전하려는 노동자 가족의 요구다. 정권과 자본은 이러한 요구를 바탕으로 오히려 여성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여성의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확대하고, 노동신축화를 달성하려는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운동의 과제로 사고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가족을 매개로 한 성별분업과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대한 책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여성노동자의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조건은 여성노동권이 제약되는 고유한 구조로 파악하기보다는 비정규직 일반의 문제로 사고한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개조와 혁신이 필수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의 노동을 부차화하고 현재 가족의 성별분업 구조와 여성억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한 여성들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맞서는 투쟁은 민주노총의 중심 과제가 될 수도 없고 여성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운동의 일주체로 설 수도 없다. 또한 출산, 양육에 대한 지원으로 여성에게 모성과 재생산 노동을 강요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여성을 착취하는 공세에 대응할 수 없다. 나아가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해야 하는 민주노총의 과제를 이룰 수도 없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과 여성사업 강화를 위한 과제

여성노동자 조직화
민주노총을 페미니즘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주체로서 여성노동자의 조직화는 언제나 중요한 과제다. 무엇보다 여성의 조직률이 워낙 낮은 상황에서 이를 높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더불어 미조직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라는 측면에서도 여성노동자 조직화의 중요성은 배가된다.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 대다수는 노동조건과 임금이 매우 열악하고, 해고나 여타의 권리 침해에 대응조차 할 수 없거나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무권리 상태에 놓여있다. 민주노총이 이런 무권리 상태의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방어함으로써,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자신의 노동과 삶에 의미를 가지는 조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과정은 남성생계부양자-여성가사담당자라는 이데올로기와 현실이 여성을 어떻게 노동시장에서 배제하거나 활용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여성권과 페미니즘을 민주노총의 과제로 받아들일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제기한다는 의미가 있다.
더불어 이미 조직된 여성조합원과 새롭게 조직되는 여성노동자들을 민주노총 운동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조직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활동의 주체로서 자신의 이념을 정립할 수 있는 교육과 학습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여성해방운동의 역사, 페미니즘 이론, 여성의 권리와 같은 페미니즘 관련 교육뿐만 아니라 노동자운동의 역사, 노동자의 권리, 노동조합 활동, 정세를 포괄하는 교육사업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활동과 정치적 실천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과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의 여성요구: 여성의 노동권 쟁취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민주노총은 여성조합원의 요구에 기초해 사회적인 여성억압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에서 여성관련 요구가 강제성을 가지는 조항으로 사업화되는 경우는 기업별, 산별 수준의 여성 관련 단체협약이다. 그러나 많은 사업장에서 여성 관련 단체협약은 가장 먼저 양보할 수 있는 사항으로 치부된다. 또한 실제 여성노동자 대다수는 해고 위협과 같은 고용상의 실제조건 때문에 단체협약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업장 수준의 요구를 넘어서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일반적 현실을 반영한 요구안을 민주노총 차원에서 제시하고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안은 정부가 제시하는 여성관련 정책들을 사안별로 유불리를 따져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노동권 쟁취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라는 일관된 방향에서, 남녀 모든 조합원의 작업장, 가족, 노조의 활동과 구조, 그 안에서 여성들의 현실에 기초하여 구성되어야 한다.

여성들로부터 나오는 여성의 힘: 여성위원회
현재 여성사업 담당 부문, 여성 간부들의 사업 단위로 인식되고 있는 여성위원회를 여성조합원의 힘을 바탕으로 한 여성들의 자율적인 조직으로 강화해야 한다. 여성위원회는 사회적인 여성억압의 문제가 제기될 때, 또 이러한 문제가 노조 내에서 표출됐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과 방안을 모색하고 이를 전체 민주노총 운동의 과제로 제시하는 기구로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위원회는 여성조합원과 접촉면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배제, 차별을 감축시키기 위한 문화 혁신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처리를 넘어서 여성 차별적, 억압적 구조와 문화를 개조하기 위한 다차원적 노력이 모색되어야 한다. 여성의 권리, 페미니즘에 대한 전 조직적인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진행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하가맹조직에 여성억압적 문화를 점검할 수 있는 정기적인 토론을 안착시킴으로써 여성 문제를 일상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사업이 마련되어야 한다.
주제어
노동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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