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7-8.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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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_지역과현장_한재영.pdf

<지역과 현장> 인종차별과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파업 베트남 이주노동자 10인 구속사건

고용허가제와 외국인 범죄자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투쟁하자!

한재영 | 인천지부 집행위원
고용 허가를 받고 인천 신항만 공사현장에서 태흥건설 소속으로 일하던 180여명의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2010년 7월에 4일간, 2011년 1월에 2일간 강제출국의 위험을 무릅쓰고 단체로 근로제공을 거부하며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월급에서 하루 두 끼씩 한 달 분 식대 24만원을 공제하고, 12시간으로 인정해주던 근로시간을 11시간으로 삭감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아니고서는 건설현장에서 최저임금을 주며 12시간 주야맞교대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회사는 별다른 충돌 없이 요구조건을 수용했다. 베트남 노동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 후 별 탈 없이 공사현장은 분주히 돌아갔다.
그런데 최초 사건 발생 8개월이 지나고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10명의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주동자로 지목되어 업무방해, 공동폭행·상해, 강요죄로 3월 말과 4월 말에 전격 체포·구속되었고, 검찰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1년에서 3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구속된 이주노동자들 모두 직장과 주거가 안정적이었고, 단 한 차례도 소환장을 받아보지 못한 점, 파업이 주동자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났고 회사와 원만히 해결되어 고소가 없었다는 점, 사건이 발생한지 8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대거 10명이나 구속당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사건은 매우 이례적이고 의아한 사건이다.


고용허가제 정당화와 외국인 범죄자화의 희생양

경찰과 검찰이 회사 측의 고소 없이 자체적으로 첩보를 수집해 무리하게 수사를 강행한 주요원인은 노동시장 최하층에 고착되어 있어야 할 아시아계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집단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외국인 범죄자화’를 통해, 늘어가는 이주민들을 규율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의 인종차별적 정책이 사건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7월을 시작으로 2011년 3만 4천여 명, 2012년 6만 2천여 명 이주노동자들의 비자만료가 시작되면서 고용허가제는 한 순환의 마감과 함께 실효성을 평가받는 시점에 다다랐다. 정부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유엔(UN) 공공행정상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대상(大賞)을 유치하는 등 고용허가제 정당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을 강요하는 고용허가제의 폐해를 드러내는 이주노동자들의 파업은 애초에 뿌리 뽑아야 할 심각한 위협이고, 일벌백계로 다스려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어야 하는 사례였던 것이다.
구속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은 외국인 범죄자화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정부는2009년 10월 설치한 '외국인 조직범죄 합동수사본부', 2010년 G20을 앞두고 시행한 ‘외국인 밀집지역 특별단속’ 등을 통해 범죄사실과 무관하게 아시아계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억압의 정당성을 만들어 왔다. 2011년 4월 경찰은 ‘외국인 조직폭력의 불법행위’를 중점적으로 단속하고 “외국인 범죄의 폭력화, 세력화를 적극 차단하겠다”며 ‘외국인 범죄 집중단속기간(2011.4.5-7.4)’을 발표했다. 발표 시점을 전후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구속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경찰은 재판과정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인정하지도 않았고, 유죄판결이 나지 않았음에도 6월 1일 “불법파업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동료들을 흉기로 집단폭행한 외국인들을 검거”했다며 왜곡된 정보를 마치 사실인 양 언론에 흘렸다. 노골적인 외국인 범죄자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또한 주거와 직장이 안정적임에도 내국인처럼 소환장을 발부하지 않고 곧바로 구속한 이유를 오로지 이들이 외국인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경찰의 해명을 통해서도 뿌리 깊은 정부의 제도적 인종차별을 재확인할 수 있다.


경찰, 검찰의 수사와 재판과정 전반에서 확인되는 반인권, 반노동적 작태

4월 18일 시작한 재판은 총 7회에 걸쳐 진행됐고 선고만 남은 상황이다. 일반적인 사건보다 재판의 횟수가 많은 것은 통역 문제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알고 대책위가 꾸려졌을 당시 재판은 국선변호인과 법원에서 고용한 통역사를 통해 다섯 차례의 심리가 진행되었고, 검사가 구형을 마친 상태였다. 5월 30일 사건을 인계받은 대책위 변호인단은 여섯 번째 재판에서 주동자를 지목한 사측 관리자를 증인으로 신청하였고, 일곱 번째 재판에서야 제대로 된 심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재판을 방청하며 대책위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언어의 장벽이었다. 검찰 조사와 마지막 재판까지 베트남 통역사는 변호사, 검사, 판사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통역해온 것 같았다. 재판을 함께 방청했던 대책위 원옥금 활동가는 통역의 50% 이상에서 오역과 내용의 불충분함을 지적했고, 재판 내내 통역사가 막히는 부분에서 보충하는 역할을 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경찰이 피의자들에게 조서를 정확히 숙지시키지 않은 채 사인을 강요했다는 점이다. 이날 재판에서 변호인단은 A 피의자의 조서 내용을 B 피의자에게 그대로 갖다 붙여놓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인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동안 이런 문제제기 없이 조사와 재판이 얼렁뚱땅 진행됐으니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3개월 동안 경찰서, 구치소에 갇혀 느꼈을 고충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를 옥죄는 한국만의 악법, 업무방해의 죄

하지만 법원에서 중요한 것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노동권이 아니라 검사가 이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한 ‘업무방해 성립여부’였다. 이주노동자들의 무죄를 위해 재판에서는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근로제공을 거부한 것이 자본의 소유권을 침해할 줄 알았느냐 몰랐느냐를 중심에 두고 검찰과 변호인 간 공방이 오고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 세계에서 업무방해로 파업노동자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국제노동기구(ILO)와 UN사회권위원회는 수차례에 걸쳐 이 업무방해의 죄 조항에 대한 우려를 표했지만, 한국정부는 결코 업무방해 조항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번 재판을 맡은 판사 역시 국제사회의 권고를 감안해야 한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추상적이라며 거부하고, 올해 나온 2006년 철도파업의 업무방해에 대한 대법원판례에 이번 사건이 얼마나 부합하는지만을 보겠다고 발언하며 한국정부의 반노동성을 재확인해줬다.


갈수록 고조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

이 사건은 4월 25일 남양주에 있는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 ‘엑소더스’에 구속된 이주노동자의 여자 친구가 상담을 의뢰하면서 우연히 사회운동진영에 알려졌다. 6월 2일 건설산업연맹, 민주노총인천지역본부, 인천지역이주운동연대, 이주공동행동 등이 주축이 되어 ‘검·경의 인종차별적 수사 중단!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 베트남 이주노동자 10인의 무죄석방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참가 단위가 늘어가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역시도 초기부터 적극 결합하여 활동하고 있다.
대응이 다소 늦었지만 사안의 중요성과 대책위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연대와 지지의 기운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책위는 인종차별적 끼워 맞추기 기획수사를 해온 검찰과 경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현재까지 세 차례 진행했다. 특히 6월 15일 이번 사건의 원흉인 경기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규탄집회는 이주사안으로는 이례적(?)으로 서울인천경기충청권 활동가들 50명 이상이 모여 경찰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2,000여 명의 탄원서 조직, 국제건설목공노련(BWI) 홈페이지에서 지지서명을 받는 국제연대사업, 대규모 집회 장소에서의 선전전, 면회, 영치금 모금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이번 대책위 활동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건설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연대이다. 건설연맹은 대책위 결성부터 함께 하며 기자회견과 집회에 꾸준히 조합원들을 조직하고, 태흥건설과 접촉해 사건의 전말을 파악했으며 법원에 이주노동자들의 선처를 호소하는 회사측 탄원서를 받아내는 등 이번 투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재판이 열리기 전날인 6월 14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밤을 새워가며 건설연맹 활동가 두 명과 원옥금 활동가가 태흥건설 숙소에서 지난 파업이 주도자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났음을 증명하는 사실 확인서를 파업 당시부터 현재까지 태흥건설에서 일하고 있는 인원의 대부분인 68명에게 받아 재판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건설현장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채용하면서 상황이 매우 열악해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임금격차로 인해 내국인과 이주노동자와의 갈등도 존재한다. 건설연맹의 적극적인 활동은 현장의 갈등을 극복하고 향후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가능성을 높여가는 계기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대책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구속된 친구들의 재판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매번 재판을 방청한 10여 명의 베트남 이주노동자들도 이번 투쟁의 빼놓을 수 없는 주역 중 하나이다.


구속된 이주노동자의 삶과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위한 투쟁으로

이번 투쟁의 과제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10명의 삶을 지키는 것부터 자본과 정부의 분할전략을 넘어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방어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2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즉시 출국해야 하고, 항소를 하더라도 구치소와 다름없는 외국인 보호소에서 지내야 한다. 또한 대부분 입국과정에서 미화 1만 달러에 가까운 큰 빚을 지고 한국에 왔기 때문에 이대로 다시 돌아가면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은 삶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10명의 소중한 인생을 지키기 위해서 우선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판결과 항소 여부와 무관하게 고용허가제와 ‘외국인 범죄자화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수사권을 남용한 검찰, 경찰과 통역도 제대로 되지 않는 엉터리 재판을 진행한 사법부에 대한 규탄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또한 본격적인 평가의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폐기하고, 노동허가제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투쟁을 국적과 민족을 뛰어넘는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발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자본과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활용하여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하락시키고 노동자를 분열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조직화와 노동권 쟁취 운동으로 지배계급의 분할전략을 무력화 할 때만이 전체 노동자의 온전한 권리 신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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