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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7-8.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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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연구실 “현대경제학 비판” 강연

최윤정 | 정책위원
지난 5월 서울대 총학생회 주최로 과천연구실의 현대경제학 비판 강연이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올해 1월 『현대경제학 비판』(윤소영, 2011)이 출간된 이후 처음 개최되는 공개 강연이다. 제1강(윤소영 교수)에서는 현대경제학의 역사를 다뤘고, 2강(박상현 연구원)은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을, 3강(이태훈 연구원)은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을 다뤘다. 4강(윤소영 교수)은 신고전파 경제성장론과 현대경제학 비판을 다뤘다. 5월의 매주 일요일 연인원 400여 명이 참석한 이 강연들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어갈 수 있었을까. 여기서는 『현대경제학 비판』 교과서를 참조하면서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전달하고자 한다.


현대경제학 비판의 맥락과 의미

먼저, 현대경제학 비판을 시도하는 배경을 볼 필요가 있다. 윤소영 교수는 현재 경제위기가 얼마나 진전되었는가 하는 물음으로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대답은 경제위기가 다소 진전되긴 했지만 아직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연준 의장 버냉키도 최초로 기자회견을 통해 경제위기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며 출구전략이 예상되는 상황은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다(이번 호 특집 “미국 경제위기에 대한 전망” 참조). 윤소영은 2007년 이후 경제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경제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나 전망을 내놓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거의 없고,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나 대안도 부재한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설사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나 대안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전 세계 노동자운동이 심각한 쇠퇴를 겪고 있기 때문에 대안의 실현이라는 것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았다. 이론이 실천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재 노동자운동의 쇠퇴는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쇠퇴에 기인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론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스미스-리카도의 고전경제학을 비판하면서 19세기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면 20세기 이후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현대경제학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의 분석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윤소영 교수는 강조했다.


현대경제학과 현대경제학 비판

1) 현대경제학의 역사와 변모

그렇다면 현대경제학이란 무엇인가. 1강에서 윤소영 교수는 현대경제학의 역사와 그 변모과정을 소개하였다. 현대경제학은 미시와 거시라는 두 원리로 구성된다. 미시경제학은 신고전파 전통을 따르며 거시경제학은 케인즈주의적 전통을 따른다. 거시경제학은 다시 경기순환론과 경제성장론으로 나누어지는데 국민소득의 변동을 설명하는 경기순환론은 주로 케인즈주의적 전통을 따르는 반면, 국민소득의 증가를 설명하는 경제성장론은 주로 신고전파적 전통을 따른다. 새뮤얼슨은 신고전파 미시경제학과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을 종합함으로써 현대경제학을 정리했다. 이를 신고전파 종합이라고 한다. 신고전파 종합이란 미시와 거시의 종합뿐 아니라 거시경제학 내에서 경기순환론과 경제성장론의 종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경제학은 지난 60여 년간 내용의 변모를 겪지만 신고전파 미시경제학만은 거의 불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거시경제학은 논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케인즈주의 경기순환론이었는데 여기서 재정정책을 우위에 두는 케인즈주의 대 통화주의 논쟁이 제기된다. 통화주의 학파인 프리드만은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뮤얼슨은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각자의 미세조정과 경우에 따라 양자의 혼합도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에 따라 신고전파 종합이라는 말에는 거시경제학 내부에서 케인즈주의와 통화주의를 종합한다는 의미도 추가 된다.
그런데 1967년에 애로우라는 경제학자가 새뮤얼슨이 결합하고자 했던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과 신고전파 미시경제학 사이의 비일관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거시경제학에 적합한 미시경제학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쟁을 둘러싸고 1970년대 논쟁이 전개되는데 프리드먼의 제자인 루커스는 애로우와 정 반대 방향에서 미시경제학에 적합한 거시경제학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새뮤얼슨을 필두로 한 케인즈주의의 전성기를 지나 1980년대에는 케인즈주의가 쇠퇴하면서 프리드먼이나 루커스의 입장이 다수파를 형성한다.
한편 신고전파 미시경제학과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이라는 범주를 넘어서서 부르주아 경제학 내 논쟁이 진행되었는데 그것이 1960년대 로빈슨이 새뮤얼슨을 비판하면서 시작된 케임브리지 논쟁이다. 이 논쟁에서 로빈슨은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이 케인즈주의 경기순환론과 일관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로빈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의 대안으로 포스트케인즈주의 경제성장론을 제시했다. 나아가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의 비일관성이라는 쟁점을 제기하면서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에 대한 대안으로 스라파가 재구성한 고전파 미시경제학을 채택한다. 그러나 이 논쟁을 통해 미국 케인즈주의 뿐 아니라 영국 케인즈주의의 결함도 분명해지면서 부르주아 경제학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 역설적 결과로 영국과 미국의 소장파 경제학 교수들과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을 제시한 사람은 알튀세르에서 뒤메닐, 폴리로 이어지는데, 알튀세르의 철학적 개념을 현대경제학 비판에 적합한 형태로 재구성 한 경제학자가 브뤼노프였고, 뒤메닐, 폴리는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에 대한 비판으로서 마르크스적 경제성장론을 제시한다.

2) 신고전파 미시경제학

2강에서 박상현 연구원은 신고전파 미시경제학과 그 결함에 대해 설명했다.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은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장가격을 통해 희소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라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은 시장가격을 설명하기 위해 몇 단계를 거쳐 설명을 전개하는데 먼저 소비자이론은 개별가계의 선택, 즉 효용최대화에 따라 개별수요를 도출하는 것이고, 생산자이론은 개별기업의 선택, 즉 생산최대화와 이윤최대화에 따라 개별공급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 둘을 전제한 후 시장이론은 개별수요의 총계(즉 시장수요)와 개별공급의 총계(즉, 시장공급)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시장가격이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이를 시장균형이라고 한다. 시장균형에서 소비자잉여와 생산자잉여가 최대화되기 때문에 시장가격이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고 설명된다. 이러한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의 핵심 내용은 현대경제학의 변모에도 불구하고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런데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의 가장 심각한 결함은 그것이 절대가격이 아니라 상대가격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왈라스는 상품시장 뿐 아니라 노동시장 및 자본시장에서도 균형을 찾아서 그것을 통해 일반균형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수학적으로 푸는 과정에서 변수의 수에 비해 방정식의 수가 부족하다. 이는 곧 가격의 비율 밖에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가격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결국 교환비율밖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왈라스는 상대가격을 계산하기 위해 상대가격의 계산단위가 되는 상품이나 생산요소로 뉘메레르라는 개념을 도입하지만 그것은 화폐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박상현 연구원은 왈라스 경제학의 결론은 결국 ‘화폐가 없는 물물교환 경제’라고 언급한다.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에는 화폐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고전파 미시경제학 뿐 아니라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을 포함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에는 화폐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격을 설명하려면 필연적으로 화폐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마르크스는 특수한 상품으로서 화폐의 본질을 설명하지만 고전파나 신고전파 모두 그러한 개념이 공백이다.

3)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

3강에서 이태훈 연구원은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을 소개하고 그 결함을 설명했다.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은 1강에서 설명했듯이 여러 차례 변모한다. 새뮤얼슨이 케인즈의 총공급-총수요모형을 소득-지출모형으로 변형하는데 이 둘은 모두 재정정책을 특권화하는 것이다. 소득-지출모형이 설명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수요가 증가하면 국민소득이 증가한다(케인즈의 교차). 케인즈는 수요가 공급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수요는 소비와 투자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투자는 기업가의 본능적 충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독립투자로 설명된다. 2)저축이 많을수록 국민소득은 감소한다(저축의 역설). 3)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수요를 높이면 국민소득이 증가한다. 그러나 개방경제에서는 재정정책의 효과가 축소될 수 있다.
그런데 소득-지출 모형 이후 새뮤얼슨은 프리드먼과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IS-LM 모형을 수용한다. 국채누적이나 인플레이션조세와 같은 재정정책의 한계로 인해 통화정책이 복귀하는데 소득-지출 모형으로는 통화정책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도입하는 동시에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 IS-LM 모형을 도입한 것이다. 이후 케인즈주의가 쇠퇴하면서 새뮤얼슨은 IS-LM 모형을 확장하는 AD-AS모형(즉 총수요-총공급 모형) 수용하는데 여기서는 물가수준을 추가로 고려하게 된다.
국민총생산이 일정한 기간 중에 측정되는 플로우 개념이라면 국부는 일정한 시점에서 측정되는 스톡 개념이다. 폐쇄경제에서 국부는 실물자산, 즉 고정자본일 수밖에 없다. 왜냐면 폐쇄경제에서 예금은 가계와 기업의 자산인 반면, 은행의 부채이기도 하기 때문에 예금이라는 금융자산은 국부에 포함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가계, 기업, 은행의 자산인 화폐와 국채는 각각 중앙은행과 정부의 부채이기 때문에 역시 상쇄된다. 반면 개방경제의 국부에는 순해외자산(주로 금융자산)이 포함된다. 개방경제에서 민간이 해외에서 소유하는 금융자산과 외국계 민간이 국내에서 소유하는 자산 사이에는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가 순해외자산인데, 순해외이윤은 순해외자산을 원천으로 하는 것이다. 순해외이윤이 감소해서 국민총생산이 감소할 수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순해외자산 감소로 인한 국부의 감소이다.
그런데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은 플로우만 다루고 스톡을 다루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경제성장은 자본축적과 기술진보로 가능한데, 이중 자본축적은 결국 고정자본의 성장에 의해 설명할 수밖에 없고 플로우 개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저축의 역설 또한 고정자본 축적과 관련이 있는데, 이것이 단기적으로는 성립할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저축 없이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는 신고전파도 비판한 것이다. 단기는 통상 1년 이내로 정의되는데 이 때 고정자본이 불변임을 가정한다. 단기 국민소득 변화는 경기순환을 설명하는 것으로 고정자본의 변화를 사상하는 것이다. 케인즈주의는 단기 균형만 설명하며 고정자본이 변화하는 장기(1년 이상) 균형은 설명하지 않는다. 결국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은 고정자본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으며 따라서 장기 경제성장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다. 신고전파는 이러한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의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을 제시한다. 그런데 고정자본의 변화를 고려하기는 하나 이 경우 고정자본이 계속 성장한다는 잘못된 가정을 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강의에서 설명된다.

4) 신고전파 경제성장론과 경제학 비판

(1) 지속상태와 정상상태
4강에서 윤소영 교수는 신고전파 경제성장론과 경제학비판을 설명했다. 그는 먼저 균형개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장기 경제성장을 분석하기 위해 시간이 무한대로 갔을 때 고정자본은 어떻게 변하는가, 즉 고정자본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균형개념에는 지속상태와 정상상태라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지속상태는 성장은 하되 그 성장률이 불변인 상태로 지수성장으로 표현된다. 반면 정상상태는 성장률이 0으로 수렴하는 상태로 고정자본과 국민소득 성장의 정지를 의미한다. 즉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수성장과 대비해 로지스틱 성장으로 표현된다.
현대 경제학은 균형을 지속상태로 가정하는 반면, 고전파와 마르크스는 균형을 정상상태라고 본다는 차이가 있다. 고전파와 마르크스는 정상상태라는 균형개념을 공유하지만 성장에 한계가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스미스는 자본간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가격이 인하되어 이윤율이 하락한다고 설명하고 리카도는 토지 생산성의 하락이 이윤율 하락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둘은 모두 이윤율 하락의 원인을 자본주의 체계 외부에서 찾는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계의 내재적 원인, 즉 자본생산성의 하락으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한다고 설명한다.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균형 개념이 정상상태에서 지속상태로 변화하게 된 것은 밀이 정상상태가 반드시 붕괴가 아니라 풍요를 의미한다고 재해석한 것에서 유래한다. 즉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이 정지한다 해도 풍요 속에서 노자간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마셜과 케인즈로 계승되며 유럽 사민주의자들에게 정책적 근거를 제공했다.

(2) 중립적 기술진보와 편향적 기술진보
결국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은 지속상태를 가정하고 자본축적을 설명한다. 이 경우 기술진보를 고려하고 도출한 자본축적에 대한 수학식과 기술진보가 없다고 가정하고 도출한 수학식이 그 형태가 같게 된다. 그 이유는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이 기술진보가 중립적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윤소영 교수는 “중립적 기술진보를 가정하는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은 기술진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의 수학적 연습”이라고 표현했다.
기술진보가 중립적이라는 의미는 고정자본을 소비하지 않고서도 노동을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마르크스 경제학의 비판은 노동을 절약하는 데는 고정자본의 소비라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이를 편향적 기술진보라고 한다. 노동을 절약하고 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는 고정자본과 노동(노동자 수)의 비율인 기술적 구성(K/N)의 상승이 노동생산성(PN=Y/N)의 상승을 초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자본생산성 하락을 의미한다. 또 자본생산성 하락은 곧 이윤율 하락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기술진보가 중립적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자본생산성은 불변이라고 본다. 그러나 1930년대 대불황이나 2007-09년 금융위기는 중립적 기술진보와 지속상태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3) 순환적 위기론과 구조적 위기론
앞에서와 같이 균형개념의 차이와 기술진보의 속성의 차이로 인해 현대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경제위기를 분석하는 방식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현대경제학에서 경제위기론은 순환적 위기론으로서 장기적 추세는 불변임을 가정한다. 즉 지속상태를 전제로 한다. 이윤율이 불변일 때 순환적 위기론은 사인(sin)곡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sin곡선에 의하면 경기호황은 경기침체와 대칭적인 것이 된다. 즉, 위기는 자동적으로 극복되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위기론은 구조적 위기론으로서, 지속상태를 가정하지 않으며 이윤율은 장기적으로 하락한다고 본다. 따라서 sin곡선과는 달리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에서 등락이 있는 곡선으로 표현된다. 이 경우 상승국면과 침체국면은 대칭적이 아니라 상승국면은 짧고 침체국면은 길게 된다. 위기가 자동적으로 극복되는 것으로 설명하는 순환적 위기론과 차이점을 드러낸다. 고정자본 소비적, 노동 절약적인 편향적 기술진보에 따라 불황기에 자본생산성이 하락하고 이에 따라 이윤율도 추세적으로 하락한다.
대불황과 같은 구조적 위기를 부르주아 경제학은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경제위기를 분석할 이론적 틀이 없다. 예컨대 2007-2009년 금융위기를 설명하려면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 하락 추세와, 그에 대한 반작용인 금융세계화에 주목해야 한다. 그 효과로 1990-2000년대 자본생산성과 이윤율은 어느 정도 회복된다. 그런데 2007-2009년 금융위기는 금융세계화의 한계를 예고한다.

(4) 국내경제와 민족경제
신고전파와 포스트케인즈주의를 망라하는 부르주아 경제성장론의 문제점은 경제성장을 추계하는 데 쓰이는 국민회계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외국인을 비거주자로 정의하는 것이다. 국내에 1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국적을 불문하고 국민으로 정의하고 또, 외국인이 자신의 이윤을 본국으로 송금하지 않는 이상 순해외이윤의 추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국민경제와 국내경제를 제대로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국내총생산(GDP)은 국내에서 발생한 모든 생산을 의미하지만, 국민총생산(GNP)은 국내 외국인을 제외한 내국인과 국외 내국인의 경제에서 발생한 생산을 의미한다. 폐쇄경제에서는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이 일치하겠지만, 개방경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민총생산은 국내총생산에다가 국내 민간이 해외에서 취득한 것과 외국계 민간이 국내에서 취득한 이윤의 차이, 즉 순해외이윤을 추가로 반영한 것이다. 순해외이윤은 대부분 금융부문에서 발생한다. 만약 국내에서 외국계 민간이 차지한 이윤이 국내 민간이 해외에서 취득한 것보다 많다면 순해외이윤은 마이너스가 되고 따라서 국민총생산이 국내총생산보다 작아지게 된다. 이는 GDP만을 경제성장의 지표로 삼을 경우 실제 한국 국적의 자본이 생산한 것보다 경제성장이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스미디어에서 “경기가 회복되고 경제도 성장하는데 왜 체감경기는 차갑고 국민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이런 GDP와 GNP의 차이와 관련이 있다.
한편 남한경제가 정상상태로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는데, 사실 그 마저도 과대평가된 것이다. 국부유출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의 차이가 문제가 될 뿐 아니라, 국부가 유출되는 메커니즘에 주목해야 한다고 윤소영 교수는 강조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주도하는데 재벌개혁의 한계로 인해 정책개혁의 무게중심이 금융개혁으로 이동하면서 국부유출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국부유출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주식시장의 시가 총액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인데 1997년 12%에서 2004년 42%로 급상승한 외국인 비중은 2007-09년 금융위기를 전후로 해서 30%로 안정화된다. 2010년 말 시가총액은 1.100조원으로 국내총생산과 거의 동일한 규모인데, 재벌에 국한할 경우 외국인 보유 비중은 훨씬 더 높다고 한다. 시가총액의 13%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비중이 50%에 달하고 시가총액의 8%를 차지하는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우 외국인 비중이 40% 정도 된다. 국부가 유출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외국인이 주식시장을 통해 재벌을 지배하는 데 있다. 나아가 7대 은행 중 6대 은행은 아예 외국인이 소유하는데 우리은행도 곧 사유화될 전망이다. 시가총액의 9%를 차지하는 은행에 대한 외국인의 소유도 역시 국부유출의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게다가 외국인 소유의 은행은 수익성을 위해 아파트 건설에 대한 프로젝트파이낸싱과 소비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에 치중하면서 건전성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총 정리하면, 현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에 있어 현대경제학이 한계를 노정하는 상황에서 대안적인 이론적 틀로서 마르크스적 비판과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마르크스적 비판과 대안이 단순히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로 회귀한다거나 혹은 비경제학 또는 반경제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학 비판이라는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을 계승해서 현대경제학이 가지는 내재적 모순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신고전파 미시경제학과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으로 대표되는 현대경제학이 상호 비판을 통해 변모하고 발전해왔지만 여전히 그 개념적 부실함으로 인해 현 시기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가격을 설명하는 이론이 부재하거나 경제가 계속 성장한다는 지속상태와 중립적인 기술발전과 같은 부당전제들이 그러하다. 이번 현대경제학 비판 강연은 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필요한가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였다. 특히 지배계급의 경제학적 논리와 그것에 기반한 정치 이념에 대한 비판이 윤리적 당위성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 측면에 머물기 쉬운 상황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을 내재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론적 차원에서 매우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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