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1-2.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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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반빈곤운동의 과제

최예륜 |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2012년 가난의 풍경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줄 알았던 2012년이 왔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가난의 풍경이다. 산골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진학도 못 한 채, 중국집 배달부를 거쳐 봉제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신용불량자가 되어 떠돌다 거리에서 사망한 삼십대 홍 씨. 부도직전 사장이 만들라는 카드 만들어 빌려줬다가 2,000만원 빚을 떠안게 된 후 일용직 일을 전전하며 쪽방-고시원-노숙을 반복하다 병을 얻었다. 죽기 직전 늙은 아버지를 찾아가 같이 지냈지만 아들의 존재가 아버지의 기초생활 수급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걸 염려해 거리로 돌아간 그는 죽어가는 몸으로 국립의료원을 찾았지만 의료비 미납기록 때문에 진료를 거부당한 채 거리에서 서른여덟의 생을 마감했다. 언론에도 숱하게 보도된 바 있는 실제 이야기다. 작년 보건복지부의 부양의무자 재조사 이후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노인들이 잇따라 자살했다. 그 중 남해의 노인요양시설에서 지내던 70대 노인은 수급 탈락 결정이 통보되었다는 사실을 딸로부터 전화통화로 전해들은 며칠 후 요양시설 난간에 목을 맸다. 시설거주 수급자는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탈락하면 80만원의 시설이용비를 내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을 다니다 결혼 후 아이 낳고 식당 일 등을 하며 살아온 사십대 중반의 정 씨는 서울의 큰 기차역 근처에 집을 얻어 살았다. 기차역 바로 옆 시끄럽고 낙후된 판잣집들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1,000만 원 전세로 살 수 있는 서울에 몇 안 남은 동네였다. 하지만 어느새 이명박-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뉴타운 개발-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등에서 중심이 되는 지역들에 인접한 고급 주거지역으로 각광받는 지역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싶더니, D산업이 달려들어 개발사업이 착수되었다. 개발구역으로 지정하고자 하니 주민들의 의견을 달라는 벽보를 붙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래도 무슨 수가 나겠지 생각했지만 2008년 살던 집이 그대로 철거되었다. 그때부터 천막생활이 시작되었다.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그녀는 1,000만 원 보증금으로 갈 곳이 없어 천막생활과 매일 반복되는 나홀로 집회를 근 4년간 이어온 끝에 매입임대주택으로 입주할 수 있었다.
60대 초반의 김 씨는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 줄곧 노점상을 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정착한 곳이 청계천이었다. (청계천 복원 이전 노점상 규모는 3,000명으로 추정되고 당시 전국노점상총연합 회원이 1,000명이었다고 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청계천 복원 사업은 2002년 본격화되었고 박봉규 열사의 분신, 노점상 조직의 투쟁 끝에, 동대문 운동장 내 풍물시장 이전이 합의되었다. 그러나 동대문 운동장은 2008년 철거되었다. 노점상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김 씨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라는 이름도 괴상한 역전에서 장사를 다시 시작한지 이제 3년이 조금 넘었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디자인파크플라자 완공을 앞두고 또 퇴거가 예상되고 있다. 1.5m 길이의 노점박스에서 악세사리를 파는 그녀는 지금 나이에 노점을 그만두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다.
기초생활 수급 가정의 맏이로 자란 20대 초반 이 씨는 지금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하고 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이 씨는 부모님과 같이 살면 가족들 모두 수급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30만 원 월세방을 얻어 100만 원이 넘지 않는 아르바이트들을 해왔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한 ‘간주부양비’가 무조건적으로 부과되므로, 이 씨의 수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부모의 급여는 줄어든다. 이 씨는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 할까? 줄줄이 딸려 있는 이 씨의 동생들의 미래는 또한?

이 모두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 사람들은 서로 같은 가족 내 속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웃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사람들 가족, 친지, 이웃 중 최저임금만을 받거나 최저임금을 벌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몇몇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대단히 극단적인 사례로 보이는 홍 씨의 비참한 죽음은 몇 가지 삶의 고비만 넘겼어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다. 화전금지정책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홍 씨 가족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주어졌더라면, 홍 씨가 열세 살부터 스무 살이 되도록 일했던 중국집 사장이 월급을 떼어먹지 않았더라면, 봉제공장 사장이 홍 씨의 카드를 도용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아버지에게 찾아갔을 때 일할 수 없는 정도인 홍 씨의 건강 상태를 보고 주변 사람들과 복지 공무원이 기초생활수급신청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왔더라면,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 문을 두드렸을 때 병원에서 약이라도 타 갈 수 있었더라면. 이 모두가 얽혀 현재의 절망적인 가난의 풍경을 낳는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매년 겨울, ‘전기장판 합선으로 인한 노인 화재사’, ‘촛불 켜놓고 자던 가족 사망’, ‘가스 버너로 몸 녹이던 장애 청소년 사망’과 같은 뉴스들이 이어진다. 그 때마다 ‘에너지 빈곤층’(가구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비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십분의 일에 육박한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떠들썩해지면, 몇 가지 한시적인 지원대책이 나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대기업들은 앞 다투어 빈곤층 에너지 상품권 지급, 연탄 후원 행사 같은 것을 하기도 한다. 빈곤에 대한 대처방식이 이렇다. 단편적이고 표면적, 일시적인 대응들이 이어지다 예산 효율성 등을 이유로 중단된다. 중단 후에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폭이 한결 좁아지거나, 진입장벽이 한층 쌓인다.

소득불평등 심화의 원인은 일하는 이들의 빈곤화와 소득상위층의 부의 독식

2000년대 이후 빈곤과 소득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빈곤율, 소득분배율 모두 조사할 때마다 최고치를 경신한다. 빈곤의 기준선이 되고 있는 최저생계비 수준이 평균소득에 비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빈곤율은 2007년 10.2%, 2008년 10.4%, 2009년 11.1%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부가 고소득층에 몰리는 한편, 중간 이하 계층의 상당수가 절대빈곤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그림1] 빈곤율 전망 (가계조사자료 기준)

상대빈곤율은 관련 통계가 나온 1999년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져 2010년 14.9%를 기록했다. 이는 개인소득에서 비소비지출(세금, 사회보험료 등)을 빼고 이전소득(사회보장금, 연금 등)을 더한 가처분소득이 그렇다는 것이지, 개인소득만을 비교해보면 상대빈곤율은 2010년 18.1%로 전체 국민 6명 중 한 명이 빈곤한 상태다. 상대빈곤율은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하는데, 중위소득의 50%는 2009년 기준 118만 원으로 이에 못 미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것이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2008년 8.68로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는 1인가구를 포함했을 때의 수치이며, 이 당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85만 5천 원, 상위 20%의 소득은 742만5천 원이라는 엄청난 격차를 보였다. 절대빈곤인구 및 독거노인세대가 대거 포함된 1인가구를 제외하고 소득 5분위배율을 따지면 훨씬 격차가 줄어든다. 1인가구를 제외하였을 때의 소득5분위배율은 2008년 5.71을 기록하였고, 2010년 5.66으로 소폭 완화되었으나, 이는 한시적 고용대책 및 지원대책의 효과이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인한 고소득층의 자산 감소 등으로 인한 일시적 효과이다. 물론 이 역시도 가처분소득을 따졌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정부로부터의 지원금, 복지급여 등 공적이전소득을 더하기 전의 소득격차는 훨씬 커진다. 복지정책이 작용하기 전 단계인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5분위 배율은 2010년 7.74로 전년보다 늘었다.
최근 10년 사이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OECD 국가 중 최고의 악화 속도를 보인다. 2010년 10월 OECD가 26개 회원국의 9분위 소득배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소득불평등도는 미국 다음 순위를 차지했다.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08년 0.314에서 2010년 0.310으로 소폭 하락한 것도 일시적인 복지지원의 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한시적 복지지원 사업들은 2011년 들어 대부분 종료되거나 지원액이 삭감되었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은 점점 감소추세이며 부채는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다. 엥겔계수(소비에서 먹거리로 지출하는 비율)는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먹을 것 이외에는 다른 소비를 할 여력이 점점 없어진다는 의미다.
이렇듯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와 불평등 심화는 노동을 통해 먹고 사는 이들의 소득이 점점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노동소득분배율)은 점점 하락하고 있으며, 저임금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1,700만 여명 임금 노동자 중 410만 명이 저임금 노동자이며, 이중 절반 이상은 최저임금 이하만을 벌며 살아간다. 저임금노동자 비중은 OECD 최고 수준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70%는 여성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구 사이의 소득 격차 역시 확대되고 있다. 정규직이 5.8% 상승할 때 비정규직 가구는 단 1% 상승에 그치고, 비정규직 가구 부채는 1년 새 8.9%나 증가하였다.

[표2] 빈곤율 추이 비교표

이러한 상황에서, 빈곤한 이들의 최저생활 수준을 가늠하는 최저생계비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기준선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은 점점 바닥으로만 향하고 있다. 한국에서 최저생계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의 생계비 기준선인 동시에, 빈곤기준선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저생계비는 정부가 3년에 한번 계측조사를 실시하여 결정하고 있으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전물량방식을 택하고 있어 문제가 많다. 최저임금 역시 노-사-공익위원 합의 방식으로 매년 결정되지만,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재계와 정부의 편에 서 있으므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합의방식이며, 이명박 정부 들어 인상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노동자평균임금의 30%수준) 게다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받는 노동자 수가 200만 명에 육박한다. 2012년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553,354원, 4인가구 1,495,550원이며,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실제로 현급으로 지급되는 급여는 최대치가 그보다 10에서 20만 원 가량 낮다. 2012년 최저임금은 시급 4,580원, 주 40시간 노동했을 때 월 957,220원이다.
2000년 이후 고용의 불안정성, 임금 격차 분배구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도입한 정책(비정규보호법)이나 기존의 제도들(최저임금, 최저생계비 등)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저지하는 방지책으로서의 기능조차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문제의 경우, 비정규보호법안 시행 이후 기간제근로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고 기간제 계약을 호출근로, 시간제 근로로 전환하거나,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으로 대체하는 것이 추세인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자본은 비정규직보호법 등을 계기로 기존 기간제 비정규직을 간접고용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경우도 법정 최저임금이 미미하나마 꾸준히 상승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수는 그 이상으로 확대되어 왔다.
고소득자와 중간소득자의 격차가 나날이 확대되는 것은 고소득자들로 부가 집중되면서 분배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임금 격차의 확대 뿐 아니라 비임금, 특히 주식투자, 각종 사보험 등 금융적 수단을 통한 확보되는 소득의 규모와 비중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해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또한 노동자 민중, 빈민들의 삶은 금융화된 세계경제와 긴밀히 결합되면서 더욱 불안정해진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뇌관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안정된 소득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중산층 이하 빈곤인구마저도 금융투기에 활용한 ‘빈곤 비즈니스’의 대표적 사례다. 보다 많은 투자자와 몸집 큰 시장을 원하는 투기 자본의 술수는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은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여하면서 금융자본의 손실을 보전해 주고, 그 부담을 임금삭감, 복지축소, 민영화 확대를 통해 노동자와 민중에게 전가해 왔다. 이로 인해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빈곤율은 15%를 넘어 전후 사상 최대에 이르고 있다. 실물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장기적인 침체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기 때문에 민중들의 고통과 불만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은 경제위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해왔다’고 자화자찬하지만 한국경제의 화려함과 빛은 소수 재벌대기업과 부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삼성, 현대를 비롯한 재벌은 이명박 정부 시기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순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자본은 2011년에만 20조에 달하는 순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감세로 인한 직접적 혜택으로 기업과 소수 부자가 얻은 이익만 해도 수십조에 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노동자민중, 특히 빈민의 고통은 더 심화되고 있다. 물가폭등, 전세값 폭탄, 천문학적인 가계부채 증가라는 이른바 ‘트리플 폭탄’이 민중의 삶 속에서 터지고 있다. 정치권이 퍼뜨리는 복지담론은 확산되지만, 노동자, 빈민을 위한 구체적인 복지대책은 개선되지 않고 현실의 고통도 덜어지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 규모가 1,000조원을 돌파하였다. 부양의무자 일제조사라는 명목으로 3만여 명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고, 14만 여 명의 수급혜택이 감소하였으며, 수급탈락을 비관한 수급자의 자살도 있었다. 강제이주 당한 포이동에서는 화재에 따른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기는 커녕 자발적으로 마련한 임시주택마저 철거하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의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뉴타운개발로 인해 고통 받는 주민의 죽음도 줄을 잇고 있다.

빈곤을 심화하는 도시 재개발의 광풍과 빈민 양산 정책

2000년 이후 도심광역개발방식의 ‘뉴타운’개발이 시작되면서, 다시금 도심내부의 광범위한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36년간 진행된 서울 개발면적의 2배) 지속된 부동산경기 침체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진행되던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들이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이러한 사업들도 조정기를 거쳐 변형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 전세대란이라 할 만큼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이는 동시다발로 급속하고 광범위한 개발, 세입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임대차구조 등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부동산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와 빚 내서 집 사라는 주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위기로 주춤한 건설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나선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12월 남아있는 모든 투기의 빗장을 풀었다. 수차례 걸쳐 진행된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완화의 마지막 단계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를 완전히 폐지하였고 강남3구 투기과열지구까지 해제했으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조치를 실시하겠다고 해놓고선 이는 유예하였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개발 관련 부실금융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이들을 서민 혈세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정작 살고 있는 원주민을 내모는 개발사업은 그동안 주거환경 개선 등을 명분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엎어지고 어그러지는 개발사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들이 떠받쳐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각 개발지역에서의 공고한 동맹은 건설재벌-지방정부-투기세력-용역깡패의 공공연한 조합을 통해 유지되며 지역을 초토화시킨다. 그러나, 이는 비단 이들 ‘개발동맹의 공고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이익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원주민 특히 세입자에게까지 부추겨 지역 자체를 투기개발의 바람에 종속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업비만 2조원 규모라 예상되었던 용산4구역 개발이 강행되었다. 철거민을 떼잡이로 매도하는 구청장 - 삼성, 대림, 포스코 등 굴지의 건설재벌 - 투기세력들이 좌지우지하는 재개발조합 - 용역깡패조직의 외피인 철거정비업체, 그리고 정권과 자본이 부르면 달려가는 경찰, 이들 개발동맹은 사업시행인가 2년 만에 철거행위를 몰아쳐 상가세입자를 망루에 오르게 했고 망루농성 단 하루 만에 무참히 이들을 살해하고 생존자들을 3년째 감옥에 가둬두고 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개발과정에 대한 정보는 평범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숱한 죽음을 낳았던 철거민들의 수십 년에 걸친 투쟁으로 주거세입자에 대한 보상은 어느 정도 마련이 되었으나, 이 역시 개발동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개발사업의 시기에 들어맞는 자격조건이 없으면 주어지지 않고, 왕십리뉴타운의 사례에서 보듯이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 입주 동시 보장이라는 세입자 권리는 수년에 걸친 철거민들의 투쟁 없이 평화롭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뉴타운 개발’이라는 광폭한 개발방식은 이명박 정부가 서울시장 시절 법적 근거도 없이 밀어부쳤던 사업이다. 일단 밀고 갈아엎은 후, 도심재정비촉진사업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되었지만 개발사업의 갈등을 사인(私人)간의 분쟁 정도로 여기게끔 하는 이 개발사업은 원주민 재정착률 10%대에 그치는 가난한 시민 몰아내기 사업의 전형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 추진 중이다.

한편, 노점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 민원, 가로정비, 도시 디자인, 재래시장 현대화 등 갖은 이유로 노점 단속이 자행되고 있으며,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노점관리대책은 노점상의 지위와 조건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노점관리대책은 노점합법화로 포장을 하고 있지만 실상, 노점상을 선별하여 퇴출시키고, 외진 곳에 노점상을 밀어 넣고 고사시키는 정책이다. 특히 서울 중구, 중랑구, 노원구, 강서구, 강북구, 송파 가락시장 및 경기 부천, 화성,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노점단속과 기만적인 노점관리대책 시행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노점상은 과태료 인상, 도로점용료 인상 등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노점상 조직은 곳곳에서 전쟁 중이다. 한편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이후, 디자인파크플라자 건립이 추진됨에 따라 동대문 주변 노점상은 다시 한 번 싹쓸이의 위기에 놓여 있으며,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을 빌미로 가락시장의 영세상인과 노점상은 생존권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이명박-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해온 노점관리대책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노점상들은 생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했지만 이미 지자체에서 발주한 용역들은 서초, 강남, 종로 시내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몰락한 자영업자들과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또한,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인한 집 값 상승으로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많아졌다. 노숙인 규모는 정부 차원에서 정확히 파악조차 되지 않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작년에 들어서야 겨우 ‘노숙인지원법’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노숙과 불안정 주거상태를 오가는 홈리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설 위주의 정책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노숙인 일자리 사업을 진행하지만, 저임금 단기적 일자리로 안정적인 생계 대책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공공역사를 전전하는 노숙인에 대한 지원대책보다는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등 청소 정책만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해 8월부터 철도공사는 서울역 노숙행위를 금지하며 역사 내 노숙인을 몰아냈다. 서울역 주변에는 300여명 안팎의 노숙인들이 있다. 서울역 등 공공역사는 최소한의 복지 접근권 및 일자리 접근 가능성, 가난한 이들의 최소한의 네트워크 형성에 용이한 공간이며, 오랜 세월 노숙인들이 머물러온 공간이다. 이들이 긴급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진료를 받거나 필요한 복지,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안내 및 상담, 지원 역할이 공공역사를 중심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노숙인 관련 단체들의 오래된 요구였다. 그러나, 테러가능성 등을 명분으로 ‘노숙인처럼 생긴 사람’을 선별해 공적 공간에서 강제로 추방하고 있는 행태는 공공기관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노숙인들은 낮에도 살벌하게 돌아다니는 특수경비용역과 철도공안을 피해 아예 역사 내 출입을 포기하고 있으며 엄동설한의 추위에 간신히 삶을 유지하고 있다.

2012년 반빈곤운동의 과제

1월 20일은 용산참사 당시 이상림, 양회성, 이성수, 한대성, 윤용헌 다섯 철거민 열사가 망루에서 죽임 당한지 3년째 되는 날이다. 다가오는 1월 19일 추모제가 열린다. 3월 26일은 중증장애인이자 여성이자 노점상이자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최옥란 열사의 10주기 기일이다. 최옥란 열사는 청계천에서 노점을 하다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었으나, 수급자가 되려면 일을 할 수도 없고, 의료급여와 임대아파트를 보장받으려면 수급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벌이며, 김대중 정부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을 온몸으로 폭로하였다. 빈곤사회연대는 바로 그 곳에서 출발했다. 올해 9월이면 청계천 노점 철거에 맞서 싸우다 분신한 박봉규 열사의 10주기가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복원한 청계천에는 수천에 달하는 노점상의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다. 김영삼 정권 말기 광폭한 시기, 수지의 철거민 열사 신연숙, 전농동 박순덕 열사가 망루에서 사망하였고, 서초구청의 노점 단속에 분신으로 항거한 최정환 열사가 있었고, 인천 아암도에서 농성 중이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열사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노태우 정권의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한 이재식 열사 죽음 10여년이 지나, 노무현 정부는 임기가 두 달여 남은 즈음 폭력적인 노점 단속으로 인해 붕어빵 노점 이근재 열사가 목숨을 끊었다. 이들 빈민 열사들을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가난한 이들이 자기 권리를 단 한 번도 주장하지 못한 채 쓸쓸히 죽음을 맞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
2012년 정치의 격랑기에 각종 이합집산이 횡행하고 있다. 범야권은 큰 틀에서 이명박 정부-한나라당 심판으로 공동행보를 강화할 것으로 보이며, 진보대통합 흐름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의 통합으로 일단락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가장 앞장서 가난한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며, 의료급여 개악에 앞장서고 사회서비스를 투자상품으로 둔갑시킨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이와 손잡은 것이 진보대통합이라고 선전되는 상황이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자리에 오른 박용진 전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노무현의 반성처럼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고, 김대중의 이름을 걸고 보편적 복지를 실천”할 사람임을 자임했는데, 건설노동자가 파업한다고 머리를 깨부수는 등 숱한 노동자들을 살해한 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한미 FTA 체결, 400만 명이 넘는 사각지대를 안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비정규직 3분의 2에 달하는 사회보험 사각지대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분명히 보았고, 하중근 열사의 머리를 깨부순 곤봉에 본인 자신도 얻어맞았던 기억을 지운 모양이다. 소위 ‘정치한다’는 사람들의 정신분열적 언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5년간 민주노조와 가난한 이들이 갈망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한 흐름은 이렇게 사그라들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행보가 대중운동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심판하기 위한 선거전략과 투표방침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격랑기에 대중조직 스스로가 변덕스러운 물살을 쫓기만 하다간 스스로를 해치게 될 것이다. 물살을 유연하게 헤치고 나가되 지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반빈곤운동은 빈민조직들과 함께 기억하고 요구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가난한 이들의 삶의 권리를 요구할 것이다. 우리의 긴급한 과제는 선거 공학에 경도된 진보정당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반대보다 대중의 요구를 조직하는 일일 것이다. 작년 한해 ‘희망’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졌다. 그 ‘희망’이라는 건 스스로의 권리를 나서서 외치는 주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해고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이 ‘희망’버스의 기적을 만들었고, 그 ‘희망’을 위해 엄동설한에 ‘희망’텐트를 치고 싸움을 이어가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있다. 그 ‘희망’이 찍 소리 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숱한 가난한 민중들도 품을 수 있는 것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빈곤사회연대는 빈민대중조직, 사회운동단체 등이 참여하는 연대체로서 대중운동이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의 권리를 발언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 속도만큼이나, 빈민대중운동의 토대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보다 세련된 도시미화 명분이 내걸어지면서 시민들과의 갈등도 쟁점화될 것이다. 노점상 운동의 경우, 대중동원투쟁 이상의 자기계획이 필요하다. 분화/갈등 상태에 놓여 있는 노점상 조직이 상호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최소한의 공동행보를 취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도시빈민운동의 핵심 대중운동으로서 반빈곤운동 의제에 대한 보다 다각적인 접근과 실천계획을 추진해야 할 것이며, 지난 해 김밥노점 단속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서울 남부지역 노동자들의 결합, 서울 북부지역 노점상의 지역연대 운동 참여 및 송파, 서부지역, 대구/경산 등의 활발한 지역연대운동 참여와 같은 각 지역 회원들의 직접적인 연대운동 경험들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철거민 운동의 경우 개발 초기 단계부터 대응할 수 있는 상시적인 주거권 운동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주거권운동네트워크 등으로부터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일상적 운동의 주체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도심광역개발 방식은 대규모의 상가세입자철거민을 양산하는데, 상가세입자에 대한 제도적 권리보장이 대단히 미미하지만 주거 문제와 같이 동일한 이해관계 하에서의 대중운동이 쉽지만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까페 마리를 중심으로 한 명동 세입자들의 싸움은 연대세력들의 노력과 지리적 특성 탓에 널리 알려지며 하나의 공동체와 같은 기능을 했고 공동의 성과를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싸움 이후 뿔뿔이 흩어지고 그 공동체는 해체된다는 취약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개발단계가 늦은 명동 2,4구역 세입자들은 공동대책위를 구성해 대응 중이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철거민 조직들이 빈민운동으로서의 지속성을 갖고자 한다면 장기적인 운동계획의 실마리를 찾아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성공사례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2-30년 전 철거민 투쟁의 한 축은 임대주택 공동 입주와 투쟁 이후에 이어지는 주민운동의 여러 실험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주거세입자를 위한 보상대책은 일정하게 제도화되었으므로, 철거민운동으로 조직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철거민 운동이 개발에 대응하는 지역운동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운동전략에 대한 논의와 모색이 시급하다.
현재 빈민운동이 빈곤에 대항하는 대중운동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빈민주체의 조직이 필요하다. 거리 노숙뿐만 아니라 쪽방, 고시원 등 불안정 주거계층의 주거문제, 소득보장 등 복지문제, 일자리 문제에 포괄적으로 대응하는 홈리스대중운동이 본궤도에 오르려 하는 시점이다. 이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연대가 요구된다.
한편, 복지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검토되어야 한다. 사회복지는 사회구성원의 평등과 삶의 개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전제는 부가 일부에 집중되고 대다수가 가난해지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현존하는 ‘복지제도’의 확대, 강화만으로는 달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불평등한 상황을 개선(소득 재분배 및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권)하기 위한 방향성을 띄는 것이 복지라면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권리 보장이라는 관점에 입각해야 한다.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는 선별이냐 보편이냐의 쟁점은 그런 점에서 허구적이다. 한국사회의 복지는 그 절대적인 질과 양이 열악하므로 무조건적으로 증대되어야 한다. ‘무상’이라는 쟁점은 ‘권리’라는 개념으로 옮겨가야 한다.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고 건강할 권리, 생활 유지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에 접근할 권리,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안정한 집에 살 권리, 일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고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해치지 않으며 건강하게 일하며 노동을 통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권리 등, 권리의 목록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 중 불평등한 조건에 처한 이들에 대한 집중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인, 아동, 장애인 및 빈곤층에 대한 복지가 필요한데, 이는 근본적으로 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종합적 권리 실현에 방향성을 기초해야 할 것이다. 사회투자국가론자들이 주창하는 소위 ‘예방적 복지’란 저소득 가구 아이들에게 아동발달지원계좌를 통해 일시적인 지원금을 쥐어주겠다는 방식인데, 진정한 의미의 예방적 복지란 이들의 권리가 제반 사회 분야에서 실현될 수 있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가난한 이들에게마저 복지지원은 인색하다. 절대빈곤인구 600만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50만 명에 불과하며 부양의무자 기준, 소득 기준 엄격 적용 및 근로소득자 걸러내기 행태가 이어져 수급자들은 더욱 깊은 좌절과 불안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민중의 삶의 불안과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분노는 세계 각지에서의 저항운동을 낳고 있다. 빈곤에 맞선 우리의 투쟁은 그 저항과 만나야 할 것이다. 2012년이라는 격랑기에서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폐해로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고 잊혀져간 이름들을 불러내야 한다. 지금도 숨죽인 채 죽어나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그 어떤 정치메시아의 목소리보다도 크게 터져나올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기반이 대중적 힘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자.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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