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3-4.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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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 각 정당의 재벌개혁안에 대한 비판적 검토

류주형 | 정책위원장
총선대선을 앞두고 모든 정당이 개혁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후 인적 쇄신에 이어 새 정강정책에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명시하면서 기존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시민운동·한국노총과 정당 통합 뒤 경제민주화·보편복지·부자증세를 3대 핵심공약으로 선전하며 진보적 색채를 가미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앞세우며 민주통합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당들의 정책에서 공통적인 핵심 이슈는 비정규직 대책과 재벌개혁으로, 그 밑바탕에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담론이 자리잡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진보정당과 민중운동의 의제를 일부 흡수하고, 또 새누리당이 이러한 개혁 의제를 일부 수용하면서 전체 지형은 사뭇 좌경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총대선의 전초전 격으로 치러진 작년 하반기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일정하게 변화한 이데올로기 지형을 반영한다.
이처럼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개혁정책이 봇물 터지듯 제출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선심성 공약 또는 ‘포퓰리즘’을 적극 제어하려는 모양새다. 기획재정부는 중기 재정건전화 기조 속에 ‘선심성 복지공약’에 맞서 복지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였고, 한국은행은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주체가 정치인이 아닌 관료이므로 ‘정치적 경기순환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대로 진보진영은 지배 정당들의 변화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하면서도, 그것을 일종의 성과이자 기회로 인식하고 지형을 좀 더 왼쪽으로 끌고 가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2011년이 복지동맹이었다면 2012년은 재벌개혁동맹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하는 ‘재벌개혁’ 문제는, 선거에서 일회성으로 제시되는 정책 대안이나 일부 법·제도 개혁 차원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문제다. 다시 말해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전략, 즉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와 노동신축화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 글에서는 각 정당의 총선 정책 중에서 특히 재벌개혁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입장과 태세에 관해 제언하고자 한다.


각 정당의 총선 공약과 재벌개혁안

총선 공약
현재 각 정당의 총선 공약에서 가장 부각되는 담론은 복지와 경제민주화다.
새누리당은 새로운 정강·정책 1조에 복지국가라는 표현을 넣고 기존의 선별주의 복지 대신 평생맞춤형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모두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는데, 민주통합당은 사회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합진보당은 무상의료·교육·보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의 세원을 마련하기 위한 조세정책에서도 각 정당은 ‘부자 증세’ 정책들을 제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작년 9월 감세 정책을 철회한 데 이어 연말 국회에서 과세표준 3억 원 구간에 대해 38% 세율을 매기는 소득세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민주통합당은 당 안팎에서 ‘재벌세’ 논란이 불거지자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경제력 집중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발표한 상태다. 최근에는 부유층과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두 정당의 과세표준을 강화하여 세원과 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표 1] 참고).
가장 큰 차별성이 드러나는 분야는 아무래도 노동정책이다. 새누리당은 새 정강·정책에 별도의 노동 관련 조항이 없이 일자리 창출을 우선으로 내세웠다. 민주통합당은 차별시정, 비정규직사내하도급 문제 해결, 유럽식 정리해고제도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통합진보당은 △2017년까지 노동조합 조직율 20%, 단체협상 적용율 50%로 확대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용사유제한 법제화 및 고용안정세 도입 등 비정규직 25% 감축 △평균임금의 50%로 순차적으로 개선하는 최저임금 현실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표 1]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정책 비교

복지 정책과 함께 경제민주화라는 담론이 부활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새누리당은 1987년 현행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일컬어지는 헌법 119조 2항을 삽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김종인을 비대위원으로 임명한 뒤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과 ‘강한 정부’라는 개념을 강조하며 재벌의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부터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가동한 뒤 최근 보편복지·부자증세와 함께 재벌개혁을 총선 3대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가 바로 복지국가이자 경제민주화’라고 규정한다.

각 정당의 재벌개혁 정책
이처럼 총대선 국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와 경제민주화 담론을 표방하는 것은 과거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성장과 선진화를 앞세워 압승을 거둔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따른 광범한 민심 이반에 대한 반응이자 미국 반-월스트리트 시위에서 얻은 일종의 학습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집권 여당의 경우 작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와 대통령 측근 및 여당 주요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로 대대적인 위기에 봉착한 이후 이명박 정부와의 이미지 차별화를 위한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혁정책 중에서 최대 이슈로 부상한 것은 재벌개혁론이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 분배와 사회 정의 실현,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개혁적 지식인과 언론들로부터 쏟아져 나왔고, 지배정당도 이를 수용하는 양상이다. 새누리당 이주영 정책위 의장은 “국민의 불만이 높아질수록 대기업 집단의 탐욕을 규제하기 위한 여러 제도 및 조치,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재벌개혁의 불가피성을 토로한다. 민주당 유종일 경제민주화 특위 위원장은 “재벌의 성장 과실이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재벌의 과도한 지배력이 민주주의 위협 등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강조한다.
각기 편차는 있지만 지식인과 언론의 재벌개혁론은 대체로 이명박 정부의 ‘적하효과’론, 즉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중소기업이나 소비자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 전반적인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는 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을 공유한다. 재벌개혁론은 이명박 정부의 재벌 특혜 정책이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낳았고, 이것이 재벌을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정부의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수출-대기업에게 유리한 반면 내수-중소기업과 서민물가에 악영향을 미쳤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침해와 재벌의 금융기관 사금고화 경향을 낳았으며, 법인세 인하로 대기업들의 세금이 감면되어 복지 재원이 감소했고, 기업인들의 비리 사면으로 사법 형평성을 깨트리고 부의 편법적 세습이 고착화됐다고 지적한다.

[표 2]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재벌개혁안 (빈칸은 미정)

이에 따라 각 정당은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나 골목상권 진출 등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방안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완화하는 방안 △재벌에 과세하는 방안 △재벌의 연결고리를 끊어 총수 일가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는 방안 △재벌총수에 대한 사법처리를 엄정화하는 방안을 공통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정책기조와 각론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새누리당의 재벌개혁론이 ‘재벌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수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경쟁과 동반성장’을 강조한다면, 민주통합당은 ‘재벌 규제를 대폭 강화한다’는 수준에서 10대 재벌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도에 정책적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재벌 중심 경제를 해체한다’는 수준에서 ‘맞춤형 재벌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표 2] 참고).


각 재벌개혁안에 대한 법제도적 검토

그럼 이제 각 정당의 주요 재벌개혁안을 법제도적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자.

출자총액제한제도
출총제는 1987년 계열사 간 과도한 출자로 대규모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편중을 억제하고 계열사 간 동반부실화 위험 등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외국인들에 대한 기업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폐지됐다가, 2001년 출자총액 상한을 낮춰 재도입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출총제는 계속 완화되어 사실상 유명무실화되다가 2009년 이명박 정부 들어 완전히 폐지되었다([표 3] 참고).

[표 3] 출자총액제한제도 연혁

새누리당은 현 정부에서 출총제가 폐지된 탓에 제도 부활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는 대신 제도 폐지에 따라 총수일가의 사익추구 행위가 늘어나는 등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자는 입장이다. 민주통합당은 상위 10대 재벌에 한해 자산규모에 관계없이 출총제를 적용하고 출자총액을 순자산의 40%로 제한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출자총액규제 한도를 40%로 한 민주통합당의 대책도 재벌 규제의 실효성이 낮다며 상위 10대 재벌그룹별 맞춤형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의 공약과 관련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부터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공약이 출총제를 부활하자는 것도 아니지만, 출총제와 이른바 ‘골목상권’ 문제는 본디 그 정책목표가 다르다는 것이다. 출총제는 재벌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총량적으로 막는 데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소상공인의 주력 업종 등 특정 분야 진출을 직접적으로 막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벌의 자산이 수십조, 수백조에 달하는 현실에서 출총제를 통해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을 막는다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다음으로 민주통합당 방안의 경우, 10대 재벌 중 이미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SK, LG, GS, 두산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나머지 6개 재벌에게만 적용되는 방안이다. 그런데 이중 4개 재벌은 출자비율이 낮아 추가 출자여력이 많으므로, 한 마디로 민주당의 방안은 현대중공업과 한화 단 2개만 적용되는 방안이다. 따라서 민주당 방안대로 출총제가 부활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실적인 한계 외에도 출총제의 이론적 한계도 명확하다. 출총제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소유지배괴리(기업집단 총수일가의 소유지분율과 의결지분율간 차)를 축소할 수 있는 것은 출자비율과 내부지분율 그리고 소유지분율 사이에 함수적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출자비율을 낮추려면 내부지분율을 낮추거나 소유지분율을 높여야 하며, 이는 곧 지배주주의 경제력 약화와 기업의 소유지배괴리 축소를 의미한다. 기업집단의 내부지분율 하락은 지배주주의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의 약화를 의미하고, 지배주주의 소유지분율 상승은 지배주주가 기업집단을 통해 지배하는 자본의 상대적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총제의 이러한 원리는 그 한계이기도 하다. 지배주주의 소유지분율과 기업집단의 내부지분율을 함께 낮추거나 높임으로써도 기업집단의 출자비율을 낮출 수 있으므로 기업집단의 출자비율 하락이 반드시 경제력집중의 완화나 소유지배괴리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소유지분율 상승은 지배주주가 투입한 자본 대비 지배하는 자본의 비율 하락을 의미할 뿐이며, 출자비율 하락이 소유지분율 상승으로 이어지더라도 경제력집중 완화를 동반하지 않을 수 있다.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관련하여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재벌총수들이 소수의 지분으로 순환출자하여 모기업, 자기업, 손자기업을 모두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출총제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이므로 이런 행태를 간접적으로만 규제할 수 있고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는 없는 방안이다. 이런 맥락에서 거론되는 방안 중 하나가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다. 민주통합당은 현재 대기업이 순환출자를 통해 마련한 기업지배권(의결권)을 10~20년에 걸쳐서 매년 10% 정도씩 줄여가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규제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맞춤형 재벌개혁 로드맵’에 따르면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이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대상이 된다. 삼성의 경우 최다법인 출자자인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됨으로써 삼성그룹은 삼성금융그룹과 삼성전자그룹으로 분할될 것이다.
현재 55개 대기업 집단 중 16개가 모기업→자기업→손자기업→모기업 방식의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핵심계열사 A가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소액주주로부터 조달한 자금이 계열사 B를 거쳐 계열사 C에 출자된다. 기업인수 등을 통한 사업 확장(또는 구조조정)의 과정인데, 이때 핵심계열사 A의 지배주주는 지배권의 일정 부분을 시장의 투자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다. 지배권이 희석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계열사 C가 출자받은 자금으로 소액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A의 주식을 시장에서 취득한다고 하자. 계열사A에 자금을 출자한 소액주주 입장에서 보면 이는 출자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이다. 기업집단 내부로 출자된 자금이 최종적으로는 기업집단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그 결과에서 나타난다. 소액주주가 가지고 있던 핵심 계열사 A에 대한 의결권이 계열사 C로 넘어가게 되고, 결과적으로 처음의 지배권 희석 과정은 없던 일로 되는 것이다. 이는 아무런 비용없이 계열사 간 의결권을 창출하는 것이며, 계열사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인위적으로 축소시켜 지분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와 같은 환상형 순환출자의 효과는 아무런 비용없이 이뤄지는 총수의 경영권 방어인 것이다. 이로 인해 잠재적 피해를 입는 그룹은 인위적으로 지분비율이 축소된 소액주주들이고, 궁극적으로는 기업경영권 시장의 위축을 불러올 것이다.

[표 4] 주요 환상형 순환출자 현황

이러한 재벌그룹의 순환출자는 대부분 1998년 이후에 이루어졌다. 이는 대규모 유상증자와 기업인수로 지배주주의 지분이 줄어들 때 소속회사 사이의 순환출자가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삼성그룹의 순환출자는 지배주주가 회사의 재산을 빼돌리고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주식거래의 결과인데, 그러한 주식거래의 목적은 지배력의 승계였다. 현대자동차그룹과 두산그룹의 순환출자도 지배주주의 지분감소에 대한 대응인 동시에 지배력 승계를 위한 선택이었다.
사실 환상형 순환출자는 상호출자금지제도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다. 현행법에서는 계열사 간 상호출자(A↔B)는 금지하고 있지만,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현재 대기업들의 순환출자는 상호출자 금지로 생겨난 편법적인 방식이지만, 위법은 아니다. 순환출자 규제는 이러한 상호출자금지제도의 공백을 메우는 방안으로서, 기존에 공정거래법 학계에서도 도입에 큰 이견이 없었다. 다만 이것이 규제될 경우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주요 재벌들의 지배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에 이들의 로비로 아직 제도화되지 못했던 것이다.

지주회사 요건 강화
이러한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지주회사 설립·전환이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지배구조의 단순․투명화, 기업경영 책임소재의 명확화, 원활한 구조조정을 통한 대기업집단의 경영효율성 제고 등의 필요성에 따라 1999년부터 지주회사의 설립․전환을 허용했다.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는 출자고리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이 부실화될 경우 계열사의 부당지원 및 이로 인한 부실기업의 퇴출 경직성 등으로 시장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반면, 지주회사 체제는 복잡한 순환출자를 단선화하여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이 가능하고 대기업집단의 분사화 촉진 및 기업구조조정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2003.3), 「대규모기업집단시책 개편안」(2006.11) 등을 통해 지주회사 설립·전환을 촉진했다. 이어서 이명박 정부는 지주회사 전환을 원하는 회사가 전환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시장규율로 대체가능한 규제는 폐지 또는 완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주요 재벌들의 경우 지주회사 설립·전환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동일인의 지배가 지속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1인 지배가 더욱 강화되었다. 지배주주가 지주회사의 지분만 충분히 확보하면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할 수 있고, 특히 지주회사 전환방식이 인적분할인 경우 분할받은 자회사 주식의 매각 등을 통해 지주회사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 전환 후 소유지배괴리도가 오히려 높아지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대표적으로 SK그룹은 1999년 SK엔론 설립을 통해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하기 시작한 뒤 2007년 SK(주)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지주회사체제로 확대 개편했는데, 지주회사체제가 본격 도입된 이후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소유권과 경영권의 동반 강화 및 총수(최태원)에 의한 완전 장악’이었다. 지주회사체제의 도입으로 이전의 중층적인 출자관계가 정리되어 단선적인 구조로 변화하였지만 ‘SK C&C→SK(주)→SK텔레콤→SK C&C’의 순환구조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소유권과 경영권의 동반 강화 및 최대주주에 의한 완전 장악’은 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한 다른 그룹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LG그룹에서는 구본무가, GS그룹에서는 허창수가, CJ에서는 이재현이, 한진중공업에서는 조남호가, STX에서는 강덕수가 확고한 1인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지배주주들은 공식적으로는 지주회사의 대표이사회장이지만 지주회사체제 이전처럼 여전히 비공식적이고 비합법적인 그룹회장으로 불리고 있다. 재벌총수의 황제경영체제를 대신해서 지배구조의 투명화를 명목으로 도입된 지주회사체제가 집중성을 제어하지 못한 셈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현재 총수 있는 기업집단(38개) 중 SK 등 지주회사 체제인 13개 집단의 내부지분율은 58.52%로, 여타 25개 일반 기업집단(52.18%)보다 높다. 이들 13개 집단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5.53%, 계열회사 지분율은 49.62%로 모두 일반 기업집단(각 3.97%, 46.30%)보다 높다.
그럼 이러한 결과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가. 사실 지주회사제는 그 규제를 엄격히 적용할 경우 순환형 출자구조를 상당히 제약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현행 지주회사제는 적용예외와 유예기간이 많아 실효성 없는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정의 취지를 살려 지주회사의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통합진보당의 방안은 헌법과의 관계나 당초 법 제정 취지에 위배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한 재벌의 경우 자회사 지분율 요건과 부채비율 제한 등 지주회사 요건이 강화될 경우, 이를 충족하기 위해 자금 부담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주가 하락을 야기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타: 일감 몰아주기 근절, 중소기업 적합 업종 부활
그밖에도 재벌들은 각종 편법으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데, 그 폐해로는 다음이 지적되고 있다. 첫째, 재벌이 기업소모성자재·기업운영자재(MRO, 유지·보수·운영)를 납품하는 계열사들에게 일감을 몰아줌으로써 계열 외부에 있는 동종 중소기업들이 납품할 판로가 막힌다. 둘째, 일감 몰아주기는 편법 상속의 수단이 되므로 세수 상실과 경제력 분산 기회의 망실로 이어진다. 셋째, 총수일가가 자신이 소유한 시스템통합서비스(SI)나 컨설팅서비스와 같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상장회사(conduit, 도관)를 통해 상장회사의 이익을 ‘합법적으로’ 전유함으로써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상품․용역 거래를 통한 부당한 지원으로써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하여 상품 또는 용역을 현저히 낮거나 높은 대가로 제공하거나 현저한 규모로 제공하여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부당한 지원행위’로 규정하여 이를 규제하고 있다. 또한 사안에 따라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자기의 계열회사를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가격 또는 거래조건에 관하여 현저하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하는 행위’를 ‘계열회사를 위한 차별행위’로 규정하여 규제하기도 한다. 아울러 현행 법체계에서는 공정거래법 외에도 법인세법상 부당행위계산부인, 형사상 업무상 배임(금액 특정시 액수에 따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등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현저히 낮거나 높은 대가’의 기준, 즉 정상가격을 입증해야 하나 이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규제가 실효를 갖기 어려웠다. 그래서 최근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정상가격을 입증 못해도 ‘현저한 규모’로 일감을 몰아주면 규제할 있도록 했는데, 이 경우에도 역시 ‘현저하다’는 내용을 규명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방안으로 새누리당은 공정거래법상 부당 지원 행위 요건 중 ‘현저성’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민주통합당은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경쟁제한성에 대한 입증” 없이 중소기업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방안을, 통합진보당은 일감을 몰아준 총수일가에 증여세 또는 상속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거래 확립을 위한 법 개정안들은 현실에서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닌다. 첫째, 실제로 ‘부당지원’ 사건에서 경쟁제한성 입증이 되지 않아서 처벌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고 모두 ‘정상가격’ 입증 실패로 처벌되지 않은 것이므로 핵심을 잘못 짚은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상속세및증여세법상 포괄주의를 적용한다 한들 결국 정상가격 입증 문제로 귀결될 것이므로 재벌들이 제재를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그밖에도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에서 검토 중인 중소기업 적합 업종(구 중소기업 고유 업종) 부활의 경우, 한미 FTA와 정면 충돌하므로 실제로 입법화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벌개혁론 비판

이상에서 검토하였듯이, 각각의 재벌개혁안들은 법·제도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고유한 한계를 갖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의 기본 이념·노선이나 과거 행적을 감안할 때 정치적 실행가능성에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특히 한미 FTA에 대한 당론은 재벌개혁안과 직결되는 문제다). 재벌의 저항과 압력, 관료집단의 보수성, 예산 문제 등 현실적 장벽도 많을 것이다. 실현되더라도 대개 과거에 법제화되었다가 폐지·완화되었거나 검토되었지만 법제화되지 못한 방안을 (재)도입·강화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실제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방안은 상대적으로 과감한 개혁조치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 역시 기존 법·제도의 틀 안에서 정책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양당과 근본적인 차별성을 갖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현재의 각 정당의 재벌개혁론은 공히 문제의 초점을 재벌그룹과 총수일가의 경제력 독점이나 탐욕에 맞추고 있고, 따라서 그 대안도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이나 공정거래와 같은 ‘공정한 시장 경쟁의 법칙’을 정립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환언하면, 현재의 재벌개혁론은 이념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지향하고 이론적으로 주주가치 최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재벌개혁 의제와 흡사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최근 총선 요구안으로 ‘재벌체제의 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제시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경제민주화와 금융화 측면에서 현재의 재벌개혁론을 비판한 뒤, 노동자운동이 재벌 문제와 관련해서 지녀야 할 관점을 차례로 제시한다.

경제민주화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 재벌개혁 정책을 입안함에 있어서 근거로 삼는 것은 흔히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일컬어지는 헌법 119조 2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기하자 재벌과 보수진영에서 숫제 경제민주화 조항을 폐지하자는 역공세를 펼쳤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불과 수년 만에 상황이 반전된 셈이다. 그러나 1987년 개헌이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에 대한 군사 정권의 유화조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민주화 조항의 의미를 그리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시 국회개헌특위 경제분과장으로 119조 2항을 주도했던 김종인 현 새누리당 비대위원의 회고를 보더라도 이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이 사회조화를 위해 지나치게 강해진 경제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상식과 달리 당시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이 경제자유화 조항으로 불리는 1항을 입안했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경제민주화 조항과 관련하여 헌법학계 다수설과 헌법재판소 판례는 우리 헌법이 자유와 평등의 조화라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수정자본주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으며 사회적 시장경제질서(Soziale Marktwirtschaft)를 지향한다고 해석한다.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는 “경제재의 생산과 분배가 원칙적으로 자유경쟁원칙 아래서 행하여지되,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와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한 한도에서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정당한 권리일 뿐 아니라 국가의 의무로 되어있는 경제헌법체제” 또는 “사유재산제의 보장과 자유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사회복지·사회정의·경제민주화 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가미한 경제질서”로 풀이된다.
헌법이 준거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가 전후 서독의 아데나워 정부 하 재건 정책의 기반이 되었던 오이켄과 뮐러-아르막 등의 경제이론을 지칭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사회적 시장경제론’이 헌법 해석과는 다른 차원에서 문민화 이후 일부 진보학계와 경실련 등 시민운동에 의해 진보적 대안으로 수용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민주적 시장경제’로 번안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 시장경제론’은 김영삼 정부의 실패의 원인을 민주주의 또는 사회개혁 없는 시장경제에서 찾으면서 노사정협약을 대안으로 호도했다. 그러나 노사정협약은 정치세력화 또는 경영참여의 대가로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신축화를 관철하는 기제일 뿐이었다. 이러한 노동개혁에 동반하는 재벌개혁도 실상 초민족적 자본에 의한 재벌의 인수합병이나 재벌의 지주회사 설립 허용을 통한 소유·지배구조 개편을 의미했다.

재벌의 금융화와 초민족화
1997년 위기는 1990년대 재벌의 과잉 중복 투자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1998-1999년 재벌은 ‘빅딜’을 통해 과잉자본을 처리하는 동시에 자동차, 전기전자, 정보통신, 금융을 중심으로 재편을 시도한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출자총액제한 완화 또는 ‘순수’지주회사 허용 같은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재벌의 지주회사 설립·전환을 추진했다. 이러한 재벌 구조조정의 핵심은 과거 재벌을 지원하던 산업정책을 폐기하고 금융개혁을 통해 재벌을 금융화하는 데 있었다. 공기업 민영화도 소유형태의 변화보다는 주식시장을 육성하는 데 주요 목표가 있었다.
참여연대를 필두로 한 시민운동과 재벌개혁론자들은 이러한 정부의 재벌개혁을 지지하면서 ‘소액주주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선진화(미국화)함으로써 ‘재벌 해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식 법인자본의 특징은 소유자와 관리자가 분리되는 데 있는데, 그러나 법인자본이 금융화되면서 관리자는 소유자에게 종속된다. 그런 종속을 상징하는 것이 이른바 ‘주주가치의 최대화’를 주장하는 기관투자가의 주주행동주의다. 본래 ‘소액주주’란 연금기금과 투자신탁기금(mutual fund) 등 기관투자가를 의미하고 ‘소액주주 운동’은 주주가치의 최대화를 주장하는 기관투자가의 주주행동주의를 의미한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기관투자가들의 목적이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서 지주회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가 변동에 따른 차익 실현이나 배당금 분배에 있기 때문이다.
주가의 상승은 기업 인수합병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우선 주가가 상승하면, 다른 회사에 의한 인수합병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주주행동주의가 주가에 무관심한 관리자를 회유·협박하는 수단이 바로 인수합병인 것이다. 반면 유보금을 적립한 축적기금을 이용하여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할 수도 있다. 주주행동주의로 인해 유보금과 축적기금이 감소하는 것이 금융화의 특징 중 하나인데, 그나마 실물적 축적이 아니라 금융적 축적에 투자하는 것이다. 인수합병에 성공하면 이윤과 이자의 차액인 기업가이득이 증가하는데, 그 결과 주가도 상승한다.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금융화가 진척됨에 따라 금융법인의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고 비금융법인 내에서도 금융투자와 금융적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는 등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적 축적의 규모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화의 발전은 기업경영 활동에서 금융적 수익 원리를 강제하여 기업의 시장가치 극대화와 배당수익의 극대화를 강조한다. 이러한 금융화의 발전과 그것이 금융행태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결국 실물부문에서 설비투자를 저하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융시장 개방에 따라 국부 유출 문제도 심화되는데,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외국인이 주식시장을 통해 재벌을 지배하는 것이다. 1997년 이후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급증하였는데, 2003-2004년 40%를 상회하면서 정점에 달한 이후 최근에는 30% 내외에서 유지되고 있다. 재벌에 국한할 경우 그 비중은 더욱 높은데, 도합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경우 외국인이 각각 40-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시가총액의 10%를 차지하는 주요 은행들도 사실상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이 증가할수록 배당액과 배당성향이 증가한다는 실증 연구 결과도 다수 있다.
더불어, 생산시설 국외이전 또는 해외직접투자가 낳는 문제점도 심각하다. 일단 생산시설의 국외 이전은 그 자체로 국내 투자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 규모에 따른 양극화도 두드러지는데, 재벌의 해외직접투자가 국외 수요 창출이 주목적이라면 중소기업의 경우 국내 수요 충족용이 주목적이다. 국외 진출 중소기업들의 절반가량이 비용절감을, 또 20% 가량이 인력난을 그 이유로 꼽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국민경제 외부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동원하여 경영상의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외직접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한계상황에 몰려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들이 퇴장하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현지화가 진척됨에 따라 현지법인의 제3국으로의 수출이 증가하여 본국으로부터의 제3국 수출규모는 축소되는 반면(수출대체효과), 부품의 조달비용 절감을 위해 현지기업의 부품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원부자재의 본국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지는 효과(수출유발효과의 저하)도 파생된다. 국내의 생산시설을 폐쇄하고 생산기지를 이전한 경우에는 국내로의 역수입을 유발하기도 한다.

재벌개혁동맹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자. 1997년 이후 한국 경제가 만성적인 저성장 상태에 머무르는 원인은 생산적 투자의 지표인 자본축적률이 매우 낮은 수준에서 정체된 것에 있다. 이는 이윤율 저하라는 기본적 요인에 더해 △인수합병과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해외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또한 구조조정 및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성장전략, 그리고 이를 강화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은 노동력을 신축화함으로써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화한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민주노총의 재벌개혁 의제를 검토해보자. 민주노총 재벌개혁안은 ‘진정한 의미에서 산업경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기조로 하여, △재벌체제의 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 △노동자 경영 참가 활성화와 노사공동결정법 제정 △공정거래 확립과 원하청기업의 이익 공유 △대형유통점 및 SSM 영업시간 및 진입규제 등을 총대선 요구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닌다.
첫째, 재벌 체제를 둘러싼 계급적대는 결코 경제민주화라는 이념으로 수렴될 수 없다. 재벌 문제는 단순히 경제력 집중을 제어하기 위한 일부 법제도 개혁으로 환원할 수 없는,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구조적 문제다. 재벌 체제의 변화란 곧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과 이를 지지하는 노동신축화의 전반적인 변혁을 의미한다. 이것은 첨예한 계급투쟁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총수일가나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한국의 재벌들은 소유지배구조 개혁의 결과 주주가치를 추구하는 성격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로의존성’으로 말미암아 발전주의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총수일가와 재벌그룹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여전히 재벌개혁론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노동자운동이 산업자본의 금융화초민족화와 이로 인한 구조조정국부유출국외이전에 대해 대응하지 않는다면 ‘주주가치 최대화’를 지향하는 소액주주 운동과 실천적 차별성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노총(금속노조)의 위상에 걸맞은 운동 전략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재벌에 맞선 소액주주, 노동자, 소비자, 중소상인, 영세자영업자를 포괄하는 국민적 수준의 재벌개혁동맹’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이념적이론적 한계를 반복하는 것일뿐더러 노동조합 고유의 역할을 방기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단적으로, 민주노총은 대중소기업 또는 원하청 문제와 관련하여 기업간 공정거래나 상생협력이라는 담론을 수용하며 법·제도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을 실질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그 문제틀이 전면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가 확대되고 통일성이 저하되어 일종의 우회로로 정책 대안적 접근을 시도했을 수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의 함정에 빠지는 순간 운동 주체를 형성하고 조직의 기풍을 쇄신하기 위한 중장기 과제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지금부터라도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수직적으로 위계화된 원하청구조와 노동시장의 분단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핵심고리로서 연대임금 정책이나 교대제 개편과 관련한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과 병행하여, 산업적 위계의 정점에서 업종 전체 임금 및 노동조건을 일괄 통제하는 재벌이 산별교섭에 참여하도록 조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끝으로, 노동자 경영참가 활성화 방안으로 제시된 독일식 노사공동결정법 제정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다. 이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의 지평에서 제기되는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주목하는 것으로서, 독일 노동자운동의 역사에 대한 특정한 정치적 해석과 연관된다. 그러나 전후 독일의 ‘경제기적’에서 노동자운동은, 거시정책(산별노조)에서 성장·완전고용·물가안정을 목표로 ‘타협적 생산성 향상주의’(consensual productivism)에 몰두하고 미시정책(직장평의회)에서 경쟁력·생산성·수익성을 위해 ‘노동자의 책임’을 강조한다(‘독일의 재건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수호자’로서 노동조합). 게다가 1980년대 이후 산별노조의 조직률 하락과 기업별단협의 증가로 노동조합의 분권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세계화지역화의 압력 속에서 산별노조는 ‘경쟁력 향상을 위한 코포러티즘’(competitive corporatism)에 합의하고 직장평의회는 생산설비의 국내 입지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보장받는 대가로 내부적 신축성에 동의한다. 역사적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사공동결정제는 1919년 독일사회민주당이 집권에 성공한 이후 평의회운동을 억압, 파괴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념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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