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3-4.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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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는가

핵안보의 함의, 의도, 쟁점

수열 | 정책위원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으로 2010년 4월 12-13일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2009년 4월 5일 체코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상’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는데, 이 자리에서 ‘핵 테러’ 문제를 함께 언급했다. 그는 핵 테러에 대처하기 위해 “향후 4년 내에 전 세계의 관리가 취약한 모든 핵물질을 안전하게 방호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노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구상에 따라 제안된 핵안보정상회의는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나 핵물질을 탈취해 테러에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의 관리를 철저히 하고, 핵 테러에 대응할 수 있는 국제적인 공조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핵안보는 ‘핵 테러에 대한 방지와 대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010년 워싱턴 회의에는 세계 47개국 정상들과 국제연합(UN), 유럽연합(EU),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군사안보 분야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정상회의다. 물론 핵 테러 대응을 논의하는 핵안보정상회의는 일반적인 군사 협의체와는 다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간 지속된 테러와의 전쟁을 돌이켜보자. 그것은 미국의 전쟁이었고,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UN차원의 결의를 통해서건, 아니면 개별 동맹국 차원의 지원에 의해서건 다른 나라들이 동원되는 형태였다. 다시 말해 테러와 싸우는 핵심 주체는 미국이었고, 다른 나라들이 일정하게 이를 도와주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러한 구도를 바꾸고 있다. ‘핵 테러’라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미지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50개 이상의 국가와 국제기구 대표들이 일정한 틀을 갖춘 논의를 진행하고, 핵 테러의 방지대응을 위해 필요한 자국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며, 국제 공조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단지 자국의 핵시설과 핵물질의 관리 수준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핵 테러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체계 마련을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그리고 테러에 대응하는 이러한 활동은 다분히 군사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군사안보 분야에서 가장 큰 정상회의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의 반핵평화운동 진영, 더구나 제안국인 미국의 운동 진영조차 이러한 정상회의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거나,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핵안보정상회의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활동을 조직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그 이유를 추측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핵안보정상회의가 불과 2년 전에 시작되어 아직 한 차례밖에 열리지 않아 그 존재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둘째, 핵 테러에 대응하는 핵안보라는 이슈가 국제사회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셋째,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해 알고 있는 운동 진영의 대부분은 핵안보정상회의가 부족하나마 일정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첫 번째의 경우, 핵안보정상회의 대응을 조직하고 향후 핵안보라는 쟁점에 개입하려는 운동의 입장에서 넘어서야할 조건이기에 이 글에서 논의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두 번째 경우는 ‘핵 테러의 예방과 대응’이라는 쟁점이 핵 이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텐데, 하지만 핵안보가 현재 미국의 핵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향후 충분히 확대될 것임을 예상하면서 지금부터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
문제는 세 번째, 즉 반핵평화운동 진영이 핵안보정상회의를 일정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 내부에서도 쟁점이 되었던 부분이며, 핵안보정상회의 대항 국제포럼을 조직하면서 해외의 다른 운동 조직들이 제기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핵안보정상회의의 긍정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핵안보정상회의가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핵 없는 세상’이라는 전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핵물질의 관리 수준을 높이고, 핵 테러를 예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논의하는 고농축우라늄 사용 저감과 같은 의제는 일정하게 핵무기를 감축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핵안보 이슈를 반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운동진영이 보이고 있는 이러한 태도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격을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혼란이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주장하는 핵안보는 ‘핵 없는 세상’에 미달하지만 긍정적인 조치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핵 없는 세상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주장하는 핵안보라는 이슈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핵 이슈에 대한 세계적인 국제체제인 ‘핵 비확산 조약’(NPT)의 의미와 한계를 분석함으로써 핵안보 이슈가 제기되는 맥락을 파악하고, 이를 미국의 핵정책과 비교한다.


NPT와 핵 비확산

애초 핵물질이나 핵무기, 핵기술의 통제는 비확산 체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비확산이란 핵무기 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 것으로 1970년 5월에 출범한 ‘핵 비확산 조약’(NPT)으로 대표된다.

비확산 체제의 출발
1945년 미국이 일본에 핵무기를 떨어뜨리고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세계 여러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들게 된다. 세상에 처음으로 핵무기가 등장한지 불과 4년 뒤인 1949년에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고, 1952년에는 영국이 그 뒤를 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핵무기 보유국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날 것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1953년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구호를 제시하게 된다. 이는 다른 나라에 핵발전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이를 감시하여 핵무기 제조를 방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 ‘핵무기 보유국의 증가’라는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막기 위해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핵보유국의 의도를 국제적으로 보증하는 것이 바로 NPT다.
비확산 체제는 NPT가 인정하고 있는 5개 핵무기 보유국(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이외의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다. 다른 나라들이 새롭게 핵무기 개발을 포기(비확산)하는 대신에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무기를 감축하는 약속(핵군축)을 이행하고, 다른 나라들이 핵발전을 할 수 있는 권리(핵의 평화적 이용)를 보장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비확산, 핵군축,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3개의 축이 핵 통제의 핵심이다.

NPT 체제의 구조적 한계
그러나 이러한 비확산 체제로는 핵무기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핵보유국들의 핵 경쟁은 지속되었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한국 등의 핵보유 시도는 계속되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애초 NPT 체제에 들어오지 않은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인도는 산업용 핵발전 기술을 이용해 핵실험에 성공함으로써 핵발전 기술이 충분히 핵무기 기술로 전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안보 위협을 느끼는 여러 나라들이 핵발전 기술을 확보해 연구하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핵무기 개발 경쟁에 계속 뛰어들게 된다.
NPT 체제는 핵무기 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통제하지만,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이 핵무기를 수적질적으로 개량(핵무기의 수직적 확산)하는 것에는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는 불평등 조약이다. 때문에 핵무기 비보유국들의 비확산 의무는 강조되지만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군축 약속은 성실히 이행되지 않았고, 핵무기 비보유국들의 불만은 높아져 왔다. 2005년 열린 7차 NPT 평가회의에서 핵무기 비보유국들의 불만이 극적으로 터져 나왔다. 비보유국들은 지난 NPT 평가회의에서 마련된 핵 군축 약속을 핵 보유 국가들이 이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러한 요구를 묵살하면서 2000년 평가회의에서 제출된 13단계 핵군축 프로그램의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마저 거부했다. 결국 회의 개막 후 의제 설정도 못한 채 10여일을 허비하다 핵군축, 핵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3개 의제에 대한 분야별 합의를 시도했으나 참여국간 첨예한 입장 차이로 협상을 포기하게 되었다.
또한 핵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보장’의 약속 역시 정치적 선언에 불과했다. 미국은 동맹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으며, 소위 ‘악의 축’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협박을 공공연히 해댔다. 따라서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군축 노력은 미미한 상황에서, 안보 위협을 느끼는 나라들이 핵의 평화적 이용의 권리를 들어서 자신들의 핵발전 확대를 정당화하고, 뒤로는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되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국제적인 핵 비확산 체제의 3가지 축이 모두 흔들리게 된다. 2005년 7차 NPT 평가회의가 끝나고 ‘NPT 무용론’이 제기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비확산 체제의 이완
이렇게 비확산 체제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비공식적 핵보유국의 등장은 NPT 내부에 있는 나라들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군축을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만 막고 있기 때문이다. 비확산 체제가 핵무기 보유국들이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틀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처럼 NPT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해서 핵무기 개발에 성공만 하면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 미국을 비롯한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확산을 보다 확실하게 차단하지 않으면 비확산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독점적인 패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다. 핵물질과 핵기술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주장하는 핵안보의 개념은 이러한 비확산 체제의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확산 체제를 강력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핵무기 보유국의 증가를 막을 수 있고, 핵무기 보유국의 독점적인 패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핵안보라는 개념을 통해서 더욱 강력한 통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핵안보와 미국의 핵정책

핵안보 이슈의 부상
핵안보가 미국의 핵전략, 군사 정책에서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오바마 정부가 새로운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발표하면서부터다. NPR은 발간시점에서 향후 5-10년간 유지되는 미국의 핵정책과 전략, 목표와 전력태세를 제시하는 문서다. 2010년 4월 6일 『2010 NPR』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서 미국의 ‘핵심 계획’으로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이 등장하게 된다.
NPR은 이 핵심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에너지부의 비확산 프로그램 예산을 27억 달러까지 증액하며, 핵 물질 밀수의 탐지차단 능력을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하거나 사용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거나 허용하는 행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핵 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정책을 유지하고,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으로 미국의 핵전력이 축소될 수 있으니 ‘3원 전략 핵전력’(전략 폭격기, 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방어망(MD), 재래식 장거리 타격 능력을 유지해 전략적 억지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무너져가는 비확산 체제의 복구
‘핵 선제공격’ 옵션의 유지나, 강력한 차단 조치, 핵 억지력 강화, 미사일 방어망 유지 등을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변화로 볼 수는 없다. 이는 비확산 체제의 이탈 세력(북한, 이란 등)을 압박하여 무너져가는 비확산 체제를 다시 복구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핵무기의 확산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이를 위반하는 이탈 세력은 강력하게 응징하여 핵무기 보유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핵발전이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여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핵무기 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 측면도 있지만,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러 나라들이 핵발전 기술을 전용해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에 핵의 평화적 이용은 수사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나라들이 핵무기를 가지려해서 핵무기 개발 경쟁이 발생하니 핵의 이용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져 왔다. 따라서 이러한 조치는 핵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명분을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핵안보와 반확산 정책

반확산 정책
기존의 비확산 정책보다 강력하게 핵무기와 핵물질을 통제하는 것이 ‘반확산 정책’이다. 이러한 반확산 정책의 대표적인 수행 방법이 바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다. 이는 해상이나 상공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싣고 있다고 의심되는 선박과 항공기를 세워서 검색, 나포할 수 있는 협약이다. 이때 당연히도 군사력 사용이 동반된다.
국제법에는 공해상에서 자유롭게 운항할 수 있는 권리(UN 해양법협약 87조 자유항행원칙)와, 다른 나라의 영해라 할지라도 그 나라에 해를 끼치거나 해적질을 하지 않은 선박은 자유롭게 통항할 수 있는 권리(동 협약 17/19/23조 무해통항권)가 보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PSI는 의심만으로 배를 세우거나 승선하고 나포할 수 있으며, 무력까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들어 PSI에 정식 참여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옵서버 자격을 유지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외교부 제1차관 시절인 2006년 말 국회에 출석해 “한반도 주변에서 PSI가 시행될 경우 북한과의 충돌이 우려되는 등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나을 것”이라며 PSI에 정식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정부가 인정했듯 PSI 같은 호전적인 정책은 군사적 긴장을 높여 평화를 위협할 뿐이다.

핵안보정상회의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물론 PSI 자체가 핵안보정상회의의 의제로 선정되어 있지는 않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PSI가 핵안보정상회의와 무관하다거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핵안보정상회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PSI의 제도화를 추구한다.
워싱턴 정상회의 직후 정상성명과 함께 발표된 작업계획 문서를 보면, ‘비국가행위자의 대량살상무기, 그 운반체 및 특히 핵물질과 연관된 관련 물질 취득 방지에 대한 UN안보리 결의안 1540호의 전면적인 이행 필요성에 주목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결의안 1540호에 따라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동 결의안의 전면적인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기술적 지원, 협조 제공 등을 촉구하고 있다.
결의안 1540호는, 2003년 9월 UN 총회에서 미국이 제의한 ‘대량살상무기가 테러집단에 의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수출 통제체제 강화’ 요청에 따라 2004년 4월 28일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안이다. 동 결의안은 모든 회원국이 비확산과 수출통제 입법과 집행을 의무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결의안 1540호는 아무런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PSI를 제도화할 수 있는 법적인 뒷받침을 해준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러한 안보리 결의안에 대한 강조를 통해서 ‘핵 없는 세상’이 아니라 ‘핵 테러 없는 세상’을 위해 세계 각국의 협조와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PSI로 대표되는 적극적 반확산 정책의 국제적 수용과 확산을 의미한다.

핵 확산의 진정한 이유
핵무기나 핵물질의 확산을 막지 못하는 것은 PSI와 같은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확산 방지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에 아직도 너무 많은 핵무기가 존재하고 있고, 핵발전을 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보유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의 추정치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최대 20,500기의 핵탄두가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핵무기 때문에 안보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핵무기를 확보하려 애를 쓰고 있다.
1971년 인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파키스탄은 ‘온 국민이 풀만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핵폭탄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1998년 핵실험에 성공해 이를 실현시켰다. 이처럼 현실에서 드러나는 절대적 전력 차이는 수많은 국가들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멸의 무기 개발 경쟁에 뛰어들게 만드는 유인 요인이 된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행하고 있는 학살과 이에 대항한 테러, 그리고 이어지는 보복 공격과 또 다른 테러라는 죽음의 사슬처럼, 절멸의 공포가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평화가 아니다. 강력한 차단 조치, 군사력 사용을 동반한 반확산 정책의 국제적 확산은 핵무기 비보유국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죽음을 향한 경쟁을 보다 가속시킬 뿐이다.
핵무기와 핵물질의 확산을 막으려면 지금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핵군축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여 핵무기 공격의 위협을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적대 정책의 폐기, 일방적 군축이라는 방식으로 상호 안보 위협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의 위험성이 낱낱이 밝혀져 세계적으로 탈핵의 흐름이 일고 있는 지금, 핵발전의 비중을 시급히 줄여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 또한 동반되어야 한다.


핵안보와 핵발전 확대

핵안보가 감추고 있는 것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핵발전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얼마 전 신규 핵발전소 건설 부지로 선정된 강원도의 경우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는 핵발전소 유치 여론이 압도적이었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반대 여론이 높아져 427 재보궐 선거에 나온 여야 후보 모두가 핵발전소 건설 반대의 입장을 밝혀야만 했을 정도로 후쿠시마 사고는 많은 사람들이 핵발전의 문제점을 깨닫는 일종의 ‘충격 요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 핵발전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과 두려움이 커졌고, 이러한 상황은 핵발전을 유지확대하려는 핵 산업계와 정부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테러를 언급하면서 테러리스트들이 핵발전소를 탈취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을 상정한다.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테러에 의해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핵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핵발전소의 안전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미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두려움’을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는 ‘테러에 의한 핵발전소 파괴에 대한 두려움’으로 환원하고, 그 두려움을 오히려 핵발전소 안전 강화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즉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통해 저들이 취하는 결론은 핵발전 축소, 핵 폐기가 아니라 핵발전소 안전 강화인 셈이다. 핵발전소의 안전 신화가 다 무너진 상황임은 숨긴 채 테러 위협만 막아내면 핵발전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며, 이는 결국 핵발전 유지·확대의 근거가 된다. 실제 한국 정부가 발행한 ‘20문 20답으로 알아보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라는 자료를 보면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에 대한 논의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위축된 원자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킴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원자력 시장의 지속적이고 안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핵발전에 대한 신뢰를 높여 핵발전 확대, 수출 확대를 꾀하겠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 핵발전 확대를 위한 노림수
이는 핵안보정상회의와 연계하여 개최되는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Nuclear Industry Summit, 핵 산업계 회의)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보다 3일 앞선 3월 23-24일에 열리는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은 세계 핵산업계의 최고 경영자들과 핵 관련 국제기구 대표 등 약 200여 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진다. ‘핵안보 및 원자력 안전 증진을 위한 원자력 산업계의 역할’이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의 주요 논의 과제다.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은 핵 산업계 인사들로 구성된 워킹 그룹을 통해 핵 산업계의 공동 현안을 논의하여 정상회의에 건의하겠다고 한다. 이들이 밝힌 워킹 그룹은 고농축우라늄 사용 저감, 원자력분야 민감 정보 보안, 후쿠시마 이후 안보와 안전의 연계라는 3가지 분야다. 또한 한국의 핵산업 시찰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한국 핵산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한다.
고농축우라늄의 사용을 제한하고 줄여가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고농축우라늄 기술은 그 자체가 핵무기 제조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 기술을 줄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핵무기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 산업용 핵발전에서 고농축우라늄 사용을 줄이더라도 현존하는 고농축우라늄 핵무기나 플로토늄 핵무기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물론 핵발전에서 고농축우라늄의 비중을 줄이면 향후 핵무기 전용 가능성을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지만, 이 역시도 기존 핵무기 보유국들이 더 이상 핵무기의 확산이 일어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핵산업계 스스로도 고농축우라늄 발전을 저농축우라늄으로 전환하게 될 경우 비용과 핵폐기물이 증가하게 되는 문제점을 지적할 정도로, 폐기물 문제에 대해서는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후쿠시마 이후 안보와 안전의 연계라는 워킹 그룹은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후쿠시마 사고로 핵발전의 안전 신화가 무너진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마치 핵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핵발전소 안전을 강화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핵발전 유지확대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노림수다. 결국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의 주된 목적은 핵 산업계의 수장들이 모여 핵발전을 확대하는 근거를 만들고, 핵발전소 세일즈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열겠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로 전 세계적으로 탈핵의 흐름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핵산업계가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또 정부가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에서 한국의 핵산업 시찰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한국 핵산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것은 핵발전소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이 회의를 통해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결국 ‘핵 없는 세상’이라는 애초의 기조는 오간데 없고 핵발전을 자랑하고 핵발전소 수출 경쟁을 벌여, 없애야 할 핵발전 기술을 사고파는 죽음의 장사판을 키우게 될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 반대 행동을 적극 조직하자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공식 홈페이지는 핵안보정상회의가 ‘핵안보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핵군축 및 비확산 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핵무기를 줄이거나, 핵발전 자체를 줄이는 문제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핵무기 감축이나, 핵발전 축소는 논의조차 하지 않는 회의는 ‘핵 없는 세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또한 미국을 비롯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여하는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북한과 이란을 압박하려 한다. 그러나 미국 같은 초강대국들이 먼저 핵무기를 없애지 않는 한 핵무기 경쟁, 핵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 공격에 위협을 느끼는 나라들은 끊임없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것이고, 이런 압박은 동북아시아와 중동에서 군사적 긴장만 높이고 평화를 위협할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의 이란 제재가 강화되고, 오는 2-3월에 또다시 키리졸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이뤄지는 등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는데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주장하는 ‘핵 테러의 차단’은 결코 핵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핵 안보의 개념 자체가 비확산 체제를 보다 강화하여 핵발전의 명분을 지키고, 핵무기 보유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핵발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술책일 뿐이다. 따라서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없는 세상’에는 미달하지만 일정하게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무엇이 아니다. 핵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핵 테러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세계에 너무 많은 핵무기가 존재하고, 후쿠시마 사고에서 알 수 있듯 핵발전소 자체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무기와 핵물질의 확산을 차단해서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려고 할 뿐이고, 이명박 정부는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핵발전소 수출 계약을 따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을 폐기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는 탈핵의 흐름이 대세가 되고 있는 지금,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핵이 더 많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하게 폭로해야 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전부터 정부는 정상회의가 열리는 코엑스 주변의 노점상들을 철거하면서 정리 작업을 먼저 시작했다. 강남역 주변은 이미 정비가 끝났고 선릉역 등 주변 지역으로 정비 작업이 확대되고 있다. 서울 G20 정상회의와 마찬가지로 저들의 잔치가 직접적으로 민중들의 생존을 짓밟고 있다. 지금 당장 우리의 직접 행동이 필요한 또 한가지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에서는 3월 23일에 열리는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과 26, 27일에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맞선 직접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퍼져나가고 있는 세계적인 탈핵 흐름에 대한 저들의 반격이며, 핵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따라서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는 이 싸움은 저들의 반격을 막아내고 탈핵의 흐름을 확대할 수 있느냐, 또한 비확산 체제의 한계를 폭로하여 이를 넘어서는 핵무기 감축과 폐기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저들에게는 대안이 없다. 이제 민중의 반격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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