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9-10.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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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_지역과현장_박기홍.pdf

성서공단에서 쏘아 올린 희망의 불씨, 생활임금 쟁취

박기홍 | 성서공단노동조합 조직부장
임금이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준이어야 한다. 최저임금 문제를 다룰 때에도 자본이 문제 삼는 ‘스펙’, 학력, 임금체계 등의 이유로 저임금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풀어서 말하자면 ‘성서공단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왜 최저임금만 받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그 해결책을 집단적으로 찾아가야 한다. 성서공단의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으로 꽁꽁 얼어붙기 전에 짱돌을 던져 얼음판을 깨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민주노총에서 발표하는 표준생계비의 절반정도 수준이면 최저임금으로 적정하지 않냐?’라는 우리 안의 무의식을 걷어내야 한다. 이 프레임을 폐기하지 않는 한, 최저임금제도의 명줄을 늘이는 것뿐이다. 그 늘어난 명줄 때문에 저임금노동자들의 명줄은 고통스럽게 줄어들고 있다.
2012년 최저임금 인상 투쟁은 전국적으로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국민 임투’라며 싸웠던 예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대구의 서쪽에 위치한 성서공단에서의 최저임금인상 및 생활임금 쟁취투쟁은 떠들썩했다. 그리고 떠들썩한 기운은 생활임금 쟁취를 위한 희망의 불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루 8시간 일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생활임금, ‘치명적이게 매력적인’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채우고, 살을 붙이고, 튼튼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현실에 기반을 둔 상상력이다. 생활임금 쟁취 투쟁은 그 상상력을 먹고 자란다. 이를 통해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서 들불로 만들어 내어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으로 얼어버린 얼음장 같은 성서공단

대구지역은 대규모의 원청 사업장이 없으며, 규모면에서 성서공단이 6만여 명으로 대구지역 최대 공단이다. 전국 광역시도 노동자 평균임금에서 대구는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성서공단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대구지역 노동자 평균임금에서도 미달되고 있어 대구지역 저임금 구조의 배후지 기능을 하고 있다. 과거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는 최저임금 위반 사례가 허다하여 최저임금 위반 고발사업이 필요했으나, 점점 최저임금제도가 정착되면서 최저임금 위반사례는 점점 줄어가고 있다. 이는 성서공단의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제는 공단 노동자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에 묶여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최저임금이 확산되는 가운데 장기근속자에 대한 임금보상이 사라지고 있어, 회사를 옮겨도 노동조건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저임금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연장, 특근노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영세사업장에서도 용역회사를 통한 채용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불법파견은 죄다 최저임금이다. 성서공단에서 이주노동자의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우나 약 5-6천 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 중에서 미등록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 상태에 놓여있다.
성서공단을 전체적으로 보면 사업장 규모가 영세하고, 자본의 지불능력이 취약함에 따라 수당이나 임금성 복지제도가 전무하며, 노동기본권 보장 정도가 매우 취약하다. 노동자들이 절망의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임해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서공단의 현실이다.

생활임금 쟁취를 위해 한 걸음씩

<성서공단 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는 올해 4, 5월에는 매주 수요일 중식시간에 노래모임 <좋은친구들>과 함께 성서공단을 돌면서 ‘밥 한 술 뜨고 노래 한 자락 듣고’ 공연을 하며, 선전물을 나누어 주었다. 구내식당으로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와서 밥 먹고 나갈 때가 공단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전전과 대화를 할 수 있은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찰나의 공연을 보고도 노동자들은 박수를 보내고 간다. 성서공대위는 성서지역에 있는 와룡산 등반대회를 월 1회씩 총 3차례 갔다. 등반을 하며 선전물을 나누고, 현수막을 총 20여 개 게시하였다. 여기에는 성서공대위 뿐만 아니라 생활임금투쟁에 함께하는 지역동지들도 함께 했다.
특히 5월, 한 달 동안 성서공단 곳곳에서 223명의 노동자로부터 저임금실태설문조사를 했다. 주요한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급으로 임금을 표기한 노동자들의 평균 시급을 보면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고 있으나 여성노동자들의 평균 시급은 최저임금인 4,580원 보다 낮은 4,559원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는 대부분의 여성노동자가 최저임금이며, 약 11%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이 결과는 노동부의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관리감독의 공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둘째, 임금만족도에 있어 어느 정도 만족을 포함해 만족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단지 15.9%에 불과했다. 이 중에서 여성노동자, 비정규직의 만족도는 더욱 떨어지고 있으며,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만족도는 11.8%에 그치고 있어 최저임금 이하 노동자들의 심각한 임금 불만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2012년 최저임금에 대한 인지도에 있어 응답 노동자중 70.8%가 알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시급제 노동자들의 경우 81.7%가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여전히 법정 최저임금을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어, 지역의 모든 노동자가 최저임금 준수의 권리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사업주들은 처벌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2013년 최저임금 요구액 평균은 6,920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 최저임금에 비해 66.1%의 인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현실의 최저임금이 성서공단 노동자들의 요구와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이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제 사회단체의 요구안인 5,600원 보다 높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설문 결과는 성서공단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인해 연장노동을 비롯한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저임금 구조를 벗어날 때만이 장시간 노동이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성서공대위는 그간 최저임금 인상 및 생활임금 쟁취를 위한 천막농성을 해왔다. 그동안 천막농성이 성서공단노동조합이나 성서공대위의 요구를 갖고 투쟁해왔다면, 이번에는 부족하지만 처음으로 공단노동자들의 요구를 가지고 싸웠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의사를 수렴하고 피드백하는 방식이었다.

최저임금 NO 생활임금 YES, 생활임금 쟁취 천막농성

6월 7일을 시작으로 6월 27일 해단까지 성서공대위 소속의 단위가 돌아가면서 천막농성을 했다. 성서공단에서 생활임금 쟁취를 위한 천막농성은 올 해로 4년차이다. 올 해 천막농성은 경찰과의 실랑이 끝에 성서공단 입구 큰길 사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천막을 치자 노동상담이 줄을 이었으며, 음료수와 먹거리며, 밤에는 술까지 들고 찾아온다. 천막농성 때문에 시끄럽기도 할 테지만 주변 상가와 건물에서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다. 그만큼 성서공단의 최저임금은 모든 이의 규탄의 대상이 된 것 같다.
올 해도 성서공대위에 참여하는 전교조, 공무원노조, 금속노조삼우정밀지회, 산업보건연구회, 새민족교회, 산업보건연구회, 와룡배움터와 함께 출근, 중식, 퇴근 선전전과 함께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반에 퇴근문화제를 열었다. 저녁시간대에는 영상물을 상영하고, 토요일 밤에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영상물을 보았다. 천막농성장 앞은 마치 해방구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활임금 천막농성이지만 쌍차투쟁, MBC투쟁, 일제고사반대 서명도 함께 받았다.
이와 더불어 올 해는 체념이 깊어진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는 것이 필요했다. 즉, 노동자들이 출근할 때 선전물과 현수막을 보고 중식시간에 임금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게 하여 성서공단 분위기를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선전활동에 많은 비중을 두었으며, 대학생으로 구성한 ‘생활임금 실천단’을 통해 선전과 설문을 함께 하였다.
3월부터 성서공단노조 선전물과 성서공대위 선전물을 무려 만부 이상을 뿌렸으며, 천막농성에 들어갈 때 타블로이드 선전물을 4천부 제작했으나, 이틀 만에 동이나 또다시 4천부를 제작해야 했다.

“그지같은 최저임금 반대한다”

6월 28일을 넘겨 결정 난 최저임금 인상액 280원에 대한 성서공단 노동자들의 만족도 조사를 했다. 7월 2, 3, 4일 3일동안 출근, 중식, 퇴근시에 만족도 조사를 하였으며, 저임금 설문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비롯해 휴대폰을 통한 조사까지 진행하였다.
결론은 휴대폰 문자 87건 중에 83건이 불만족이었으며, 스티커 붙이기에는 869명 중 822명이 불만족스럽다고 하였다. 참여자 대비 90.5%가 불만족스럽다면 이번 최임 인상은 적어도 성서공단에서는 거부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효를 선언했다.
2013년 저임금실태조사에 참여했던 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단지 찬성 반대에 그치지 않고 반대의 이유들을 문자메시지로 거리에서 표현했다. 이번 결정액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제 성서공단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속에 삼켰던 불만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최저임금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질식사 직전의 성서공단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단지 산소호흡기로 잠시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성서공단 노동자의 문자메시지가 걸작이다. “그지같은 최저임금 반대합니다.”
성서공대위는 7월 4일 퇴근시간에 맞춰 천막을 쳤던 자리에 다시 모여 만족도 조사 결과 발표와 규탄 투쟁을 하였다.

8시간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생활임금 반드시 쟁취해야

최저임금 280원 인상 결과에 대한 반응은 썰렁했다. 예년과 달리 성명서를 발표한 곳도 전국적으로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양대노총을 배체한 채 일방적으로, 그것도 건설과 화물투쟁 전선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주말 심야에 날치기 통과시켰다는 것에 대한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하반기에 법개정을 통해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바꾸고, 대상도 넓히고, 공익위원 선정방식을 바꾸면 되므로 최임 결정 시기의 투쟁은 해봐야 안 된다는 냉소만 보이는 것 같다. 최임위에 불참을 선언하고 나서 그 후 최임위를 뒤엎든, 최임위를 해산시키는 투쟁을 배치하지 않고서, 최임 결정에 분노를 조직하지 않고서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반기 최임법 개정은 입 벌리면 들어오는 감인가? 또 다시 법 개정을 국회의원에게 맡기겠다는 것인가? 과연 아래로부터, 주체들의 투쟁과 연대투쟁 없이 법 개정이 가능하겠는가? 설사 법 개정이 된다고 한들 그 법은 누구의 이해가 많이 반영된 법일까?
이제는 최저임금제도의 부분 손질이 아니라 생활임금을 위한 법 제정에 나서야한다. 이를 위해 최임위를 해산하고, 생활임금법 제정을 위해 투쟁 방향이 필요하다. 또한 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의 패배 경험, 대중투쟁 없는 의회전술의 오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생활임금에 대한 공론화와 투쟁을 벌어가야 한다.
다시 생활임금 투쟁 전선을 구축하고 그 힘으로 생활임금법 제정투쟁을 통해 2013년 생활임금 원년을 만들어 보자.
주제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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