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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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9-10.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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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전준범 | 정책위원
『안철수의 생각』 출간과 힐링캠프 출연 이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율이 더욱 상승세를 타고 있다. 양자구도 설문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후보와 미세한 차이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고, 다자구도에서도 박근혜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후보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꼽히고 있지만, 사실 그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바 없다.
정치인이 아닌 기업가 출신 교수가,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열렬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박근혜 대세론을 뒤엎을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런 상황, 즉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안철수 원장이 급부상한 계기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였다. 9월 1일 한 언론매체를 통해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보도되었다. 다음 날 그가 “국회의원과 다르게 시장은 바꿀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발언한 후, 그는 각종 여론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서울시장 선거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더욱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은 9월 6일 안철수 원장이 후보직을 양보한 일이었다. 약 50%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던 그는 약 5% 지지율을 얻고 있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안철수 원장은 기존 정치인과 대비되는 진정성, 순수성을 가진 인물로 상징되었다. 공식 선거운동 돌입 후, 안철수 원장은 박원순 후보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직후 안철수 원장은 유력한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그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상황을 가정하여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안철수 원장의 높은 지지율이 거듭 확인됨에 따라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안철수 현상이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특히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단독과반을 차지하자,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독주를 막을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부각된다.
안철수 현상이 기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기존 정치가 민생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능했고 정치인들은 사익 추구에 골몰했기 때문에, 그 실망감이 안철수 원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표출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왜 하필 그것이 안철수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을까?

공정, 공생, 공감

우선 안철수 현상에 앞서 안철수 개인에 주목해보자.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말과 행동은 공정, 공생, 공감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첫째, 그는 공정한 경쟁을 거쳐 성공한 인물로 그려진다. 안철수는 의사에서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 업체 창립자로, 기업을 그만 두고 유학을 다녀온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거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도전적인 삶을 살았고 모두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은 반칙 없이 이루어진 성공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한국경제를 삼성동물원에 비유한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경제민주화를 지지하고 재벌과 중소기업의 공생을 주장한다. 그는 과거 자신이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을 1천만 달러에 사겠다는 외국 보안업체의 제안을 거부하고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또 60억 원 상당의 주식을 업체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배분하기도 했다. 그의 과거 행적은 승자독식을 추구하는 탐욕적 기업가라는 재벌의 이미지와 그를 구분해주며, 공생이 가능하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듯하다.
셋째, 그는 2년 간 27개 지역에서 청춘콘서트를 개최하며 청년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자 했다. 청춘콘서트는 한 번 개최될 때마다 약 1,600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알려졌다. 안철수는 청년층의 고달픈 현실에 귀 기울이고, 불공정한 기업 생태계를 비판하며 청년층을 위로하고자 했다. 그 결과 이제 그는 청년들의 멘토, 나아가 ‘국민멘토’로 불리고 있다.

상식파 안철수의 생각

최근 그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대담집을 통해,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복지, 정의, 평화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제시한다.
첫째, 안철수 원장은 광범위한 사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아가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의미에서 복지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급한 복지정책으로는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아동수당제 등 보육정책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의료민영화 반대 등 의료정책 △고등학교 의무교육, 대학등록금 인하, 무상급식 확대 등 교육정책 △공공임대주책 확충, 세입자 보호 등 주거정책을 꼽는다.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 각 정당이 활발히 제출해온 복지정책들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재원마련이 필수적이므로 세입을 늘려야 한다. 안철수 원장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된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고, 이 외에도 탈세에 대한 처벌 강화, 법인세 실효세율 증가, 주식양도차익과세 대상 확대, 파생상품거래세나 토빈세 도입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산층도 혜택을 볼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되,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합리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관료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증세없는 복지확대에 대한 비판, 그리고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 등을 수용한 입장이다.
둘째, 안철수 원장은 경제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의 지원과 국민의 희생 위에서 성장한 재벌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재벌대기업은 편법상속, 일감몰아주기, 골목상권 진출, 부정부패 등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그는 특히 한국의 기업생태계를 동물원에 비유하며,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독점계약과 단가후려치기)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성장잠재력 저하를 우려한다.
안철수 원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개혁 △공정거래법 강화 △정부의 중소기업 집중 지원 정책 △노사관계 개혁 △기업집단법을 통한 재벌규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을 제시한다. 이 역시 4.11 총선 전후로 각 정당이 제출한 재벌개혁-경제민주화 정책을 종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원장은 복지와 정의, 즉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평화라고 주장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그는 특히 남북 간 경제협력을 강조한다. 남북 간 경협을 진전시켜 서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접촉창구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그는 대북정책에 있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시 군량미 전용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도 필요한 발언은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또 대외정책에 있어 그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대북정책, 동북아균형자론 등을 기본 입장으로 수용하되, 보수세력이 제기해온 ‘퍼주기 논란’에 대응하기 위한 보완책을 절충한 것이다.
이처럼 복지, 정의, 평화라는 안철수의 생각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은 △경제민주화와 내수론 △사회위기에 대응한 복지정책 △남북 경협과 동북아균형자론 등 그 기본골격을 민주당에서 가져왔다. 다만, 재정건전성, 퍼주기 논란 등 보수세력이나 관료들의 문제제기를 수용하고 절충함으로써, 가장 중도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는 스스로 진보도 보수도 아닌 상식파라고 주장한다.
상식파 안철수의 절충적 대안은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가령, 그가 경제민주화를 위한 핵심과제로 제시하는 재벌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원하청 간 이윤분배를 목적으로 할뿐 노동자에 대한 분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수활성화 역시 노동자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수출재벌과 이명박 정부 역시 내수활성화를 지지해왔다. 문제는 이들이 내수활성화와 고용창출을 핑계로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복지정책 역시 사회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위기관리적 성격을 가진다.
게다가 재벌 정책이나 저임금과 노동유연화 정책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의 일부이다.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종속되어 있고 그것은 전략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재벌을 개혁하고,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안철수의 생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의 전반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세력관계의 변화없이 불가능하다. 말로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한 노무현 정부가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했고 또 한미동맹을 한층 강화했다는 사실은 안철수가 제안하는 대안의 실현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국정치의 불안정성과 정당정치의 변모, 그리고 안철수

안철수 원장에게 단적으로 드러나는 중도 지향성은 오늘날 정당정치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중도 지향성은 오랜 기간 꾸준히 강화되어 왔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극우파와는 달리 일자리 창출, 복지 정책 등을 펼친 중도우파였다. 이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중도좌파 또는 중도우파, 나아가 탈이념의 실용주의라고 호명하고 있다.
정당 차원에서도 중도로의 수렴이라고 할만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새누리당은 4.11 총선을 기점으로 복지정책을 대폭 수용하며 ‘좌클릭’을 했고 반대로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한 후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며 ‘우클릭’을 시도했다. 이처럼 탈이념 중도 지향성이 강화되는 경향은 안철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던 기본적인 배경을 이룬다. 그리고 그 구조적 원인은 한국정치의 심화되는 위기와 불안정성에 있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는 5번의 대선을 치르면서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이합집산은 이념과 노선의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선거 승리를 위한 파벌 간의 갈등과 협상에 따라 좌우되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대권 후보자의 신당 창당, 기존 야당의 통합과 분당, 정당 외부의 참신한 인물 영입을 통한 이미지 쇄신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정당이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스 정치인을 중심으로 사당화되어 있었고, 그만큼 이념적계급적 기반이 취약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그림1] 민주화 이후 선거 기점에서의 정당체계의 구성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이후 정치위기는 더욱 심화된다. 1997년과 2007년 두 번의 경제위기라는 충격과 장기불황을 경험하는 가운데 누가 대통령인지, 누가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는지와 무관하게,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관철되어왔다. 사실상의 정책적 수렴 상황에서 국회는 거수기화 되지만 오히려 정당 간, 정치인 간 이전투구는 더욱 극심해진다. 여전히 정당과 정치인은 스스로의 지지기반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지엽적인 쟁점을 크게 확대하거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폭로정치가 지배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국회는 민생문제에 무능력하고 무관심한 곳으로 상징되고, 정당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냉소가 더욱 심화된다. 이와 동시에 삼김시대가 종료하면서 노무현 정부 전후로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스정치가 약화되고 유동적 중도층 유권자가 크게 확대된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에 대응하는 한편,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정당의 핵심적인 생존전략이자 선거전략으로 부상한다.
금융시장 개방과 이에 동반하는 국내 제도 개선, 수출재벌 중심의 FTA 추진, 노동유연화, 한미동맹의 현대화 등 지배 양당의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이 사실상 신자유주의로 수렴한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이 만드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에 대응하는 것이 지배세력 공통의 과제로 부각된다. 2010년 지방선거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무상급식 논란을 계기로 크게 확대된 각 정당들의 복지정책에 대한 관심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좌클릭’으로 표현되듯 각 정당 복지정책도 일정하게 수렴한다. 여전히 각 정당의 지역적 지지기반은 중요하지만, 점차 중도지향성을 내세운 포괄적 호소가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또한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적인 전략으로 부상함에 따라 각 정당은 정당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냉소를 불식시키기 위해 선거전문가를 영입하고, 새로운 선거기법을 도입하며, 정치권 바깥으로부터의 참신한 인물을 후보로 영입하려는 경향을 강화한다. 중도층을 겨냥한 선거기법이 본격 도입된 계기는 2002년 16대 대선이었다. 노무현 후보는 최초로 여론조사를 통해 대선후보로 결정되었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정의로운 세상’과 같은 모호한 구호에 호소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이와 같은 선거기법은 각급 선거를 거치며 일반화되고 더욱 발전된다.
기존 정치권 바깥에서 참신한 인물을 찾고자하는 시도도 강화되어 왔다. 역대 대선에서 정주영, 이인제, 이회창, 조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고, 문국현,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까지 정당 바깥의 인물이 발휘하는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총선에서도 인물 영입은 계속되어왔고, 재야인사, 학생운동 출신, 법조인, 교수, 언론인, 기업가, 고위관료, 의사, 약사, 건축가, 배우 등이 정당으로 충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정치의 변모는 단기적으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정치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켜왔다. 여전히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 없고 이념적계급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휘발성 높은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아주 잠시 동안 묶어두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여러 선거기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당의 이념적 지향성과 당원의 요구보다는 당 바깥의 여론조사 결과가 가지는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당 바깥의 인물 영입이 당의 생존에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됨에 따라 정당의 존립기반 자체도 매우 취약해진다.
안철수는 이와 같은 불안정한 정치토양에서 등장했다. 안철수 현상은 정당 자체가 대중의 불신대상이 되어 정당에 몸담지 않은 전문가출신 비정치인이 미디어를 통해 기존 정치인들의 인기를 선거에서 압도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게다가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도 여전히 기존 정당으로부터의 영입 제의를 거부하고 ‘상식파’로서 제3지대에서 자기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새롭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유동적 중도층의 관심을 집중시킬 더욱 극적인 야권단일화 선거이벤트로 향해가는 사전 단계일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위기의 표현이고, 그 일부다.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의 타협점으로서 안철수

그러나 정치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어떤 인물이 대안으로 등장하는지는 대중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된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낳았고, 이는 747 공약을 내세운 권위주의적 지도자인 이명박의 당선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2007년-2009년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7% 경제성장 공약은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또한 2008년 촛불집회는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듯 이명박 정부가 불통정부라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 분향소에서 500만여 명이 조문을 했고, 장의기간 동안 봉하마을에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탄압에 의한 희생이라는 이미지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무현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 결과 17대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던 친노계 정치인들이 일거에 정치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무능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부 시기의 온갖 실정은 잊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기 말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노무현은 물론이고, 부패한 측근들에 대한 기억도 지워질 수 없었다. 게다가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한 당사자는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 따라서 반MB 투쟁이 강화되더라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안이 구 집권세력일수는 없다는 점은 대중적으로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한명숙, 유시민, 문재인은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안철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원칙과 상식을 강조하는 인물인 동시에 성공한 경제인이다. 그는 노무현처럼 서민의 친구이면서도 노무현과 달리 경제적으로 무능하지 않은 인물로 보인다. 또 그는 반칙 없이 성공한 경제인으로, 특권층과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며 공정성을 잃어버린 이명박과도 대비된다. 즉, 안철수는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에서 대중들이 찾아낸 화해의 형상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유능한 노무현이자 착한 이명박이다.
이는 안철수 원장이 과거 노무현, 이명박에 투표했던 유동적 중도층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득표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장기적으로는 그 지지기반이 더욱 불안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이념적, 계급적 기반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그를 뒷받침할 정당 기반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지원 없이는 안철수 원장의 대선대응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여전히 그가 불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심각한 정치적 불안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안철수 지지층의 상당수는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더 지지하는 중도보수층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향후 정세에 따라 지지층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다. 게다가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소통이 성장과 고용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날 경우, 대부분의 유동적 중도층이 등을 돌릴 수 있다.
물론 안철수는 정치적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합리적 이해조정과 국민과의 소통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NGO 출신 전문가를 각종 국가위원회로 영입하고 노사정협의기구를 통해 노동운동을 포섭함으로써 합리적 이해조정의 외양을 갖추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그가 청춘콘서트,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큰 인기를 끌었던 점에 착안한 여러 이벤트를 기획하여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특정 정세를 계기로 국민들로부터 반감을 얻고 동시에 각 정당들로부터의 정치공세에 직면할 때 안철수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세력기반이 취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는 중요한 참고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그는 탄핵국면을 통해 대중에게 대통령 개인에 대한 재신임을 물음으로써 상황을 극적으로 돌파했다.

여론정치가 만들어낸 안철수

대선이 1년 가까이 남아있던 시점부터 이미 여론조사 기관들은 안철수가 지지하는 야권단일후보 대 박근혜 양자구도 설문조사,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된 안철수 대 박근혜 양자구도 설문조사 등 각종 여론조사를 실시해왔다. 이중의 불확실성을 가정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기관 별로 결과의 편차도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기관들은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앞 다퉈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안철수 원장 대 박근혜 후보의 양자 구도로 선거의 틀을 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여론정치를 뒷받침하는 여론은 실제 여론이 아니라 여론조사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인 경우가 많다. 먼저, 여론조사가 전제하는 가정들이 사실 편향되어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음으로, 여론조사는 질문에 대한 선호를 즉각적으로 표출하게 함으로서 선택과정에서의 참여와 선택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과정을 누락한다. 실제 상황에서 주장은 세력관계를 반영한 것이고 따라서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 마지막으로, 여론조사는 개인의 단순한 선호를 모아 엄청난 중요성을 담은 결론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는 확률적 대표성에 기대어 과학성을 보장받고, 이를 근거로 하나의 통일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세력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여론조사는 정치적 행동의 중요한 근거이자 도구가 된다.
여론조사 기관과 함께 언론매체는 여론정치를 주도한다. 언론매체는 주어진 여론조사 결과를 단순히 보도하는 수동적 주체가 아니다. 언론매체는 여론조사의 설계 및 문항구성에 관여하고, 특정한 선거구도에 맞춰 그 결과를 해석함으로써 여론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특정 후보 대세론을 띄우는데 일조하거나, 반대로 그것을 뒤집는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여론조사는 언론매체가 구성한 문제를 정치인들에게 부과하거나, 반대로 정치인들이 구성한 문제를 언론매체가 선별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언론은 대선 3-4년 전부터 차기 대선후보군을 선정하고 선거구도를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얻는 후보에 관한 기사량이 증가한다. 선두 후보의 긍정적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미디어가 가공한 여론에 매우 민감해지고, 그 결과 미디어 정치인이 출현한다.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정치 없이 안철수의 급부상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부터 편향된 이중의 가정, 경쟁적인 여론조사 결과 발표 및 보도를 거쳐 안철수 대 박근혜 양자구도가 기정사실화되어왔다. 또한 안철수 원장 스스로도 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언급과 자신의 인생사를 적절히 혼합하면서 여론정치와 상호작용하는 미디어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왔다.
만약 그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또는 그를 후보로 내세운 야권연대 선거운동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그 정당은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의 성격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은 매스미디어라는 매개와 인물의 상징화를 통해 정치전략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정당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앞서 살펴본 정당정치의 변모, 즉 유동적 중도층으로부터의 득표를 최우선 목표로 선거전문가가 주도하고 중도적이고 포괄적인 요구를 내세우는 정당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낳은 안철수

지금까지 살펴본 안철수 현상의 원인들은 지난 10년 간 민중운동이 직면한 현실이었고 동시에 그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전개된 민중운동의 효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나는 데에는, 지난 10년 간 전개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가 하나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1997년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선 출마를 계기로 본격화된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출범 초기 나름의 헌신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운동적 성격은 점차 축소되어왔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된 이후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 경향이 강화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으로부터 지원을 획득(세액공제, 득표)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당의 인력과 재정은 노동자운동의 역량 강화를 고려하지 않은 의정지원 활동에 편중되었다. 이에 따라 스타정치인에 의존하는 경향도 강화되었다. 민주노총 역시 정치 영역을 민주노동당에 맡겨놓고,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2007년 분당 이후 진보정당 운동은 한없이 추락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양당의 경쟁구도 속에서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 경향이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2012년 총대선에서 반MB 야권연대의 승리를 통해 연립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전략을 구체화하여 신자유주의 구집권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자 했다. 민주노총도 반MB 야권연대를 겨냥하여 진보대통합을 추진했으나 이는 진보정당 간의 갈등을 더욱 확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방조 속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내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을 둘러싼 과열경쟁, 부정선거 사태로 인해 민중운동 전체가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 실패의 직접적 원인은 의회주의 노선과 연립정부 전략을 밀어붙인 세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타정치인의 배신 또는 권력야욕도 그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왜 의회주의 노선과 스타정치인의 배신이 그토록 강화되었는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정치의 변모라는 정세 속에서,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활동가와 핵심지지층을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그 운동적 성격을 강화해나가고자 하는 진보정당 모델은 점차 현실의 다른 정당들의 운영방식과 비교할 때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은 진보정당 내 잠재적 갈등을 유발한다. 만약 진보 정치인들이 의정활동을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하고자 하고, 더 많은 유동적 중도층 유권자와 접촉하고자 할 경우, 이념적 통일성이 강한 활동가나 평당원과의 갈등이 뒤따를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소위 대중성과 선명성 사이의 갈등으로 드러나지만, 사실 어떤 유권자층을 향한 대중성인가와 관련된 문제다.
민주노동당의 성공을 상징했던 2004년 총선 사례는 진보정당이 직면한 잠재적 갈등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당시 민주노동당을 선택한 (비례)정당투표자들의 특성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이 얻은 10석은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당원이나 적극적 지지자들의 표에 의해서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노조 조합원과 그 가족들의 경우 다른 집단에 비해 민주노동당 지지 비율이 높게 나타났지만, 전체 득표에서 조합원과 그 가족의 표가 차지한 비중은 매우 낮았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계층적으로는 고학력, 화이트칼라 등 중산층이었고, 이념적으로도 열린우리당 지지층과 구분되지 않는 유동적 중도층이었다. 이들은 탄핵정국 전후로 정당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이었고, 그 실망감을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당투표로 반사적으로 표현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성장의 결과 또는 그것을 반영하는 계급투표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내 잠재적 갈등을 함축하고 있었다.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당원 및 적극적 지지자와 유동적 중도층의 이원적 지지구조에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이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를 점차 강화하게 된 것은, 결국 유동적 중도층을 중심으로 당의 노선과 운영이 변모해갔다는 점을 의미한다. 의회주의와 집권전략을 노선으로 채택한 당내 정치세력이 이 변모를 주도해나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통합진보당 창당은 이러한 진보정당의 우경화된 변모를 공식화한 사건이었다. 통합진보당은 잠재적 갈등 상황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손쉽게 주어진 정치현실에 적응하고자 했던 주체들의 합작품이었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립정부 구상을 위해 국민정당화되고자 스스로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한 민주노동당, 유시민 중심의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적 모습을 보여 온 국민참여당, 스타정치인 중심의 통합연대가 바로 그들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당 내에 그나마 남아있던 활동가 당원 중심성에 최종적으로 파산선고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원 중심성을 강조하는 구당권파는 보수언론으로부터 구태정치로 공격받고, 신당권파는 ‘국민의 눈높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포괄정당, 선거전문가정당으로 당을 재편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그 동안 진보정당에게 정치를 일임함으로써, 노동자 정치를 새롭게 형성할 주체적 역량이 심각하게 유실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민중운동 주류가 야권연대라는 목적에 종속됨에 따라 민중운동의 이념적·조직적 정체성도 혼란에 빠져있다. 이런 민중운동의 주체적 조건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안철수나 박근혜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는 현실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안철수 현상의 효과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자. 안철수는 공정, 공생, 공감이라는 가치, 그리고 정의, 복지, 평화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의 대안은 기존에 제시된 여러 정당의 입장을 절충한 것으로 가장 중도적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안철수의 대안은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그 실현가능성도 지극히 낮다.
안철수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심화시킨 정치의 불안정성에 따른 정당정치의 변모와 관련된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기 형성된 대중이데올로기 지형 속에서 안철수는 하나의 타협점으로 부각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정치는 안철수를 박근혜의 대항마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안철수 현상은 정치의 불안정성이 낳은 효과이자, 그것을 더욱 심화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안철수 지지층의 유동성, 그리고 그의 취약한 정당기반은 향후 안철수의 정치가 정치적 불안에 휩싸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반복되어 온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의 일부로 기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현실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부정할 도리는 없다. 지배 양당과 구분되는 대안세력으로서 민중운동은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자신의 전략을 민주노동당으로 구체화했다. 그러나 진보정당 운동은 결과적으로 지배 정당들의 변모를 뒤쫓아 가며 몰락했다. 이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더욱 심화시켰으며, 대안세력으로서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안철수가 급부상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중운동은 2012 대선의 구경꾼으로 머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근본적으로 평가하고, 대선 이후의 정세에 대비한 새로운 정치세력화 운동을 위해 민중운동 제 세력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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