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11-12.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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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건의료체계에 수상한 바람이 불고 있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과 당연지정제 폐지 논란

보건의료팀 |
올해 국민건강보험은 2조가 넘는 사상 최대의 당기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대다수 국민들의 눈에는 건강보험이 적자로 인해 재정위기 논란이 일어나던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 흑자를 바탕으로 보장성 강화 계획까지 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중증질환자에 대한 초음파 촬영, 부분틀니, 치석제거, 치료용 첩약 등에 대해서도 보장성을 강화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재정적으로는 안정되어 보여도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기능과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사실은 그동안 보험료는 꾸준히 올랐으나 건강보험 보장성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흑자는 건강보험 지출 감소 때문인데, 이는 경제위기로 인해 전체 의료비 지출 증가폭이 감소한 것이 원인이다.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운영 목표는 재정건전성이다. 받은 만큼 쓰겠다는 이러한 목표만 가지고는 현재의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으로 인한 의료 이용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증 질환으로 인해 고가의 의료비 부담을 걱정하는 개인들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수밖에 없고, 건강보험의 역할을 국가 스스로 제한하고 방임하는 동안 민간의료보험은 이제 건강보험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올해 하반기 민간의료보험은 또 다른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과 대한의사협회의 당연지정제 폐지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을 위하고, 의사를 위한다는 이러한 흐름이 만약 실현된다면 그 최대 수혜자는 민간의료보험이 될 것이다.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과 당연지정제 폐지의 문제점을 자세히 살펴보자.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30일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보험료가 주기적으로 급등하는 등 소비자 불만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이번 대책의 추진배경이라고 설명한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3천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국민건강보험 급여부분을 제외한 의료비(법정본인부담금+비급여)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실손의료보험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언급대로 많게는 3년 만에 60%까지 보험료가 인상되는 등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 폭등 문제는 심각하고, 무질서한 민간의료보험 시장에 대한 규제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 제시된 실손보험상품에 대한 규제안들은 대체로 실효성이 없는데다 민간의료보험 업계가 그동안 꾸준히 요구해왔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환자 정보 활용을 허용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이번 대책이 발표되자 민간보험회사들의 주가는 상승했고, 금융계에서도 보험업계에 손해될 것이 없는 대책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결국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은 2000년대 초부터 정부와 보험업계가 꾸준히 추진해왔던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보인다.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 비판: 보험료 급등 문제 해결과 무관한 생색내기 대책

이번 대책은 크게 상품구조 개편과 보험금 지급심사 강화의 두 축으로 나뉜다. 그 중 상품구조 개편안은 실손의료보험 단독상품 출시 의무화, 보험료 갱신주기 단축, 보장내용 변경주기 현실화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민간보험회사들에 해가 될 것도 없고 가입자에게 득이 될 것도 없는 생색내기 대책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실손의료보험 단독상품 출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은 다른 보험 상품에 실손의료보험을 끼워 팔기 하면서 발생되는 문제를 일정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보험료 인상 문제의 해결과는 무관하다.
보험료 갱신주기 단축은 실손의료보험이 기존에 3년마다 갱신되던 것을 1년마다 갱신되도록 하자는 것인데 갱신주기가 3년이든 1년이든 가입자 입장에서는 차이가 없다. 중요한 것은 갱신주기가 아니라 과도한 인상률이기 때문이다. 보험료 문제 해결을 위해 보험료 변동 폭이 높을 경우 사전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과 보험료 인상한도를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되어 있지만 규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보장내용 변경주기 현실화는 노인들이 비싼 보험료 때문에 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보험료를 인상하는 대신 보장범위를 축소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가입자 입장에서는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가입하지 못하든, 보험에 가입해도 질병 범위가 협소하여 의료비를 보장받지 못하든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지금도 민간보험회사는 흔한 질병은 보장범위에서 제외하고 희귀한 질병들을 무더기로 포함시키는 등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다. 이번 대책이 현실화되면 민간보험회사들은 껍데기뿐인 보험 상품을 노인 가입자에게 팔면서 또다시 폭리를 취할 것이다.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 비판: 보험자본에게 주는 선물, ‘심사권한 강화’

결국 이번 대책은 가입자의 불만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생색내기 방안을 몇 개 내놓으면서 실제로는 민간보험회사에게 환자 개인질병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 민간보험회사가 비급여 의료비의 청구내용을 확인하는 데 심평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대책에서는 ‘(실손의료보험의) 지급보험금 비중이 큰 비급여 부분에 대한 관리심사 부재’를 보험료 급등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민간보험회사가 비급여 의료비의 청구내용을 확인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므로, 여기에 심평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선 민간보험회사가 심평원을 활용하여 비급여 진료비의 건강보험 대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추후 비급여 수가기준 마련 및 적정성 심사까지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과도한 비급여 진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적절하지 않은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의 강화와 실질적인 제도 운영의 담보, 나아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늘리려는 현재의 민간 중심 보건의료체계의 개혁을 통해서 달성해야 할 일이지 민간보험 회사에 관리감독 권한을 부여해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또 이번 대책에서는 민간보험회사에게 관리감독 권한을 주면 보험료 인상이 억제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관리감독을 통해 보험금 지급이 줄어들면 민간보험회사가 알아서 보험료를 인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60%에도 훨씬 못 미치는 지급률로 지탄을 받고 있으면서도 3년 만에 60%가 넘는 보험료 인상을 단행하는 민간보험회사들이 알아서 보험료를 인하할리 만무하다. 오히려 민간보험회사들은 관리감독 권한을 이용해 보험금 지급을 줄여 이윤을 늘리고 가입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이다. 비급여 의료비 확인 장치 마련 안은 보험자본의 이윤 추구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도와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조치를 계기로 향후 건강보험공단의 의료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보험업계의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비급여 가격의 적절한 통제 및 보험료 인상률 안정화 등을 명분으로 삼겠지만, 그 진정한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에 있다. 보험자본의 궁극적인 목적은 미국처럼 의료비 심사를 민간보험회사가 직접 담당하고 의사의 의료 서비스 제공과 환자의 의료 정보 및 의료서비스 이용을 직접 통제하는 보험자본 중심의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이러한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림 1] 실손의료보험금 심사체계 흐름도(안)

보험자본에 주는 또 하나의 선물, 대한의사협회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위헌소송

이러한 민간보험회사 중심의 의료체계를 앞당기려는 흐름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지난 9월 25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밝힌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위헌소송 추진 흐름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란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의 요양급여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로 국민은 모든 병의원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고, 병의원이 시행한 의료행위의 비용은 건강보험이 정한 수가로 동일하게 책정된다.
의협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의료기관의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며 수단의 정당성을 인정받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도 질병의 치료방법에 대한 개인의 선호 및 기호가 무시되어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의협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여 2002년에도 헌법 소원을 낸 적이 있으나 당시 헌법재판소에서는 합헌 판결을 받았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건강보험 급여 산정 제도가 의료행위의 질과 설비투자의 정도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고, 비급여 의료를 인정하고 있기에 당연지정제가 의료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당연지정제가 의료보험의 기능 확보라는 중요한 공익 실현을 위해 행해지므로 국민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도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간 민간의료보험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해왔다. 의협이 최초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2002년 당시,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5조 6593억 원 정도 규모였으나 2008년 33조 원을 돌파하면서 6년 사이에 6배에 가까운 성장을 이뤘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증가하면서 질적인 변화도 생기고 있다.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병원과 직접 거래를 하거나, 병원의 진료를 통제하려는 계획을 본격화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3월 발효된 한미 FTA 금융서비스 장에 따르면 정부는 건전성 사유 외에는 금융자본의 신금융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의료보험의 이윤추구와 시장 확대는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지정제까지 폐지된다면 건강보험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민간보험회사의 권한이 막강해질 것이다.

당연지정제 폐지는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고급 장비와 시설을 갖춘 일부 병원은 건강보험가입자를 받지 않고 자기들이 정한 고가의 가격으로 진료를 할 것이다. 고급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고소득층에게 건강보험의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고 건강보험료 부담에 대한 고소득층의 저항이 강해져 건강보험 재정은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건강보험 재정이 어려워져서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지 못하면 사람들은 더욱 민간보험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결국 국민들이 받게 될 의료서비스는 감기같은 비교적 경미한 질병에서부터 암과 같은 중증질환에 이르기까지 보험가입 여부와 보험서비스의 종류, 보험회사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고소득층은 민간보험에 가입해 고급 영리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저소득층은 약화된 건강보험의 보장성으로 인해 병원의 문턱도 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국민들이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것은 이러한 차별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당연지정제 폐지는 이를 주장하는 의사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사들의 불만은, 건강보험이 의료행위의 가격을 통제하고 그마저도 모자라서 심사를 통해 급여지급을 삭감하면서 의료행위 자체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건강보험이 약화된다고 의사들이 자율적 진료를 보장받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민간의료보험의 통제력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간보험회사는 계약권을 빌미로 의료기관 및 의사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둘 것이며 자신의 이윤추구에 방해가 되는 의료기관 및 의사와의 계약을 해지할 것이다. 민간보험회사와 계약이 해지되면 환자가 오지 않기 때문에 의사의 진료권은 민간보험회사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에서 의사들은 환자를 얼마나 잘 치료하느냐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보험회사의 이익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였는가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다.
또한 국민과 의사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민간의료보험, 대형병원이지만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대면하는 것은 의사다. 의사는 환자와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치료 결과도 좋고, 스스로의 삶에도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시스템이 강화될수록 환자들의 불신은 더 강화될 것이다. 의사들은 수익을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환자의 신뢰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모순적인 요구를 현장에서 의사 개인이 감당하게 될 것이다.

건강보험과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계획과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과 당연지정제 폐지는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민간의료보험의 지배력을 강화해서 민간보험자본의 이윤 창출을 더 용이하게 하려는 흐름이다. 당장 당연지정제 폐지가 추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이것을 시행하려다가 건강보험을 민영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이 시행된다면 당연지정제 폐지는 그 다음 수순일 것이다. 그리고 건강보험과 똑같은 권한을 가지는 대체형 민간보험이 나타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우선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을 폐기하고 실손의료보험 상품의 출시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 실손의료보험은 도입 때부터 보험료에 비해 실제 받게 되는 보험금이 낮고, 병력자, 장애인, 노인처럼 보험이 정작 필요한 사람은 가입을 거부하는 등 보험의 진정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판받아왔다. 또 실손의료보험이라는 형태 자체가 건강보험의 역할을 대체하여 민간보험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한 보험자본 전략의 일부다. 국민 건강의 미래를 민간보험회사에 맡길 수는 없다. 정부는 기만적인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 대책을 철회하고, 정액형을 중심으로 민간의료보험을 제한하는 방식의 실질적 규제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 볼 때, 의협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라는 요구를 철회해야 한다. 의협은 당연지정제 폐지라는 요구를 통해 정부의 무책임한 통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다. 그러나 그 해결책이 국민과 의사가 함께 건강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한 방향인지 고민하고 따져봐야 한다. 그러한 방향에서 의협은 정부가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에 국민도 공감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요구되는 시기에 의협은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한 주장은 그 부담을 직접 짊어져야 할 국민들에게는 물론, “영업의 자유”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우선시 하고자 하는 대다수의 의사들에게도 전혀 득이 되지 않는, 오히려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가는 주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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