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3.1-2.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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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계급의 형성을 위하여

조돈문, 『비정규직 주체형성과 전략적 선택』, 매일노동뉴스, 2012.

공성식 |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선택』의 선택

조돈문 교수(이하 호칭 생략)의 『비정규직 주체형성과 전략적 선택』(이하 선택)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엄청난 희생을 감내하며 가열찬 투쟁을 전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성과가 대단히 미흡하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주체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변인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전략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1, 2부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 가능성과 제약, 대안을 다루고, 3부에서는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과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한다. 그리고 4부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심각한 스페인의 사례분석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대안의 내용과 성과들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비정규직 관련법의 제개정 방향과 전략적 대안을 제시한다.
『선택』은 민주노조운동, 비정규직 노동운동에서 원칙으로 여겨지던 것들의 실현 가능성을 탐구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비현실적 원칙들을 포기하고 비정규직 주체형성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적 목표들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업장 단위의 투쟁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요구조건의 완전한 쟁취가 아니라 조직의 보전강화가 우선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거나, 민주노총이 파견법 철폐가 아니라 간접고용의 규제 강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택』은 이러한 주장들을 통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과 대선 이후 국면에서 민주통합당과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입장을 통합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강화블럭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내적 목표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선택』의 바람과는 달리 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어 이러한 전략마저 실현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책이 제기한 주제, 비정규직 관련 법제도 개선에 대한 전략의 수립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전반이 아직은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운동도 답보 상태에 처해 있는데다 노동운동에 대해 배제적, 적대적인 정치 환경이 조성된 상황에서 현실적이고도 유의미한 법제도 개선 전략이 필요하다. 아래에서는 『선택』의 주요 주장과 그 타당성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나아가 이러한 주장의 기반이 되고 있는 조돈문의 한국 사회 계급분석과 이의 기반이 되는 계급이론에 대해서도 검토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의 실체

『선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의 극복과 노동계급 통합의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의식’비교를 수행하고 있다.
먼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를 잠재적인 적대관계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과거 연구결과들을 종합하며 이 둘 사이의 물질적 존재조건의 차이가 확대되고 있으며 양자의 관계가 통합수평적 성격이 아니라 위계적배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통합의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의식조사 결과를 분석한다.
2008년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소속 조합원 830명(유효응답수)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근거로, 조돈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급 적대의식에서는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방안에서는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자본계급과의 갈등 속에서는 계급적 이해관계로 통합되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고용형태에 구속된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적대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69쪽)”라는 결론을 내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구체적 해결방안에서 입장 차이를 보인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첫째, 정규직은 정규직화 못지않게 차별철폐를 동등한 사업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반면 비정규직은 정규직화를 차별철폐보다 우선시한다는 점, 둘째, 상시업무의 정규직화에 있어서도 비정규직은 최소한의 조건만을 요구하는 반면, 정규직은 별도의 조건과 채용과정을 요구한다는 점, 셋째, 임금격차 해소 방식에 있어서 정규직이 임금체계 통합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선택』은 “정규직 노동자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개인적 수준의 합리성과 노동계급 구성원의 계급적 관점에 기초한 계급적 합리성이 서로 각축을 벌임으로써 정규직 노동자들이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으로 결론을 이어간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의식적, 조직적 노력이 필요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같은 사업장 내에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물질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듯 보이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업주를 상대로 싸울 만한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에서 이러한 갈등은 더욱 증폭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을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다. 『선택』의 주장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상호적대적으로 보고 둘 사이의 관계를 위계적배제적 관계로만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업주와 노동자와의 물질적 적대관계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 대립을 같은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전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완화될 수는 있어도 해소될 수는 없는 적대관계지만, 후자는 상황에 따라 사라질 수 있는 대립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룬다.

조사 방식의 문제점

조사결과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구체적 비정규직 해결방안에 대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의식을 반드시 대립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음이 드러난다. 때로는 조사 문항이 의도적으로 정해진 결론을 유도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임금격차해소 방식을 묻는 질문에서 연구자는 단순한 임금체계 통합이 아니라 ‘연공급 폐지와 직무급 도입을 통한’ 임금체계 통합을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연공급 폐지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임금체계 통합에도 반대하도록 질문이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임금체계개편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공급 폐지에 반대했다고 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체계 통합에 반대했다고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조사는 주로 같은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의식차이를 연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장 내에서의 비정규직의 규모, 위치 등은 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매우 다르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는 공공운수연맹의 정규직만 조직되어 있는 대규모 정규직 사업장과 정규직 업무와 별도의 업무를 외주화된 형태로 담당하는 시설관리나 지자체 사업장이 대다수인 특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규직 응답자는 791명인데 비해 비정규직 응답자수는 39명이다!
사실 설문조사를 통한 계급의식 조사는 단편적인 인식 조사나 자의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조돈문이 그 동안 수행해 온 계급의식 연구방식이 갖는 공통적인 한계다. 더구나 이러한 의식 조사는 대부분 노동조합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노동조합의 조직체계를 통해 배포되고 수거되는데 이 때문에 대체로 노동조합 간부들의 의견만을 반영하기 쉽다. 또한 수거율이 매우 낮고 특정 조직에서 집중 수거되기 쉬우며 샘플의 수가 충분치 않다는 한계 등이 존재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심층면접을 실시하지만 이 역시 주관적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기는 마찬가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통합의 가능성

정규직과 비정직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대립적으로만 파악하는 한계는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통합의 가능성을 물질적 이해관계의 밖에서 찾는 것으로 이어진다.
『선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식의 형성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연대의식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은 계급 적대의식이 형성되는 메커니즘과 대조를 이룬다. 계급 적대의식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자각함으로써 발달하는 반면, 비정규직 연대의식은 자신들의 물질적 이해관계의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계기들이 작동해 물질적 이해관계를 극복함으로써 발달한다.”(103쪽.)
물질적 이해관계를 단순히 극복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물질적 이해관계 자체가 상호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사측으로부터 착취와 억압을 당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서로 분배의 비율을 가지고 다툴 수도 있지만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전체 양을 늘리기 위해 사업주와 맞설 수도 있다. 그리고 정세나 주체의 상태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공동의 임금인상이나 공동의 고용안정을 위해 사업주와 싸우는 사례도 찾아 볼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식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대립적 측면, 갈등적 측면을 지양하는 과정에서 형성될 수 있고 그러할 때 더욱 강력하다.
한편, 저자는 이러한 시각을 2부에서 비정규직 투쟁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폭발했던 두 사례, 캐리어와 지엠 창원의 사례를 통해 확증한다. 두 사업장은 모두 정규직 노조의 연대로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투쟁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연대가 파기되고 비정규직 투쟁이 패배로 끝난 대표적 사례다. 조돈문은 연대가 파기된 이유를 비정규직 투쟁을 계기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정의 위협을 느끼면서 자신들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재각성하게 된 것에서 찾는다. 결국 정규직 노조는 계급조직으로서의 정체성과 이익집단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고 이익집단 정체성을 택했으며 그러자 하청노조는 고립되어 전투성을 강화하고 원하청 노동자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면서 마침내 투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정규직 이기주의와 정규직 노조의 딜레마는 물질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선택』의 4장은 비정규직 노동자, 또는 노조가 정규직 이기주의의 실체와 정규직 노조의 딜레마를 인정하고 정규직 이기주의 완화를 위한 정규직 노조의 일상적 활동을 배려함과 동시에 생존에 최우선을 두고 신중한 전술의 구사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전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현실의 상황에 맞는 신중한 전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극단적으로 배제했던 사례를 들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 물질적 토대가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더구나 캐리어의 경우 노조추진 사실이 발각되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투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창원의 경우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정을 하고도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신중한 전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조돈문의 결론은 ‘사후약방문’의 성격을 띤다.
이어지는 5장은 정규직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거부감과 사측의 극단적 노동유연화 전략을 극복하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현한 사례로 타타대우를 다루고 있다. 조돈문은 타타대우에서 정규직화가 안정화될 수 있었던 이유를 회사, 정규직, 비정규직의 안정적 교환관계가 성립된 것에서 찾고 있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정규직화를 실현해 노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위계적 대변을 수용케 했고,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규직화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충성심과 생산성 향상 노력을 유발했고,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정규직화 요구를 수용해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비정규직은 회사에 충성심을 주는 대신 정규직화의 가능성을 갖게 되어 3주체 간의 안정적 교환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는 자본의 노동력 유연화 극대화 전략과 정규직에 대한 헤게모니적 통제, 비정규직에 대한 전제적 통제라는 양극화된 노동통제 전략의 모델과는 다른 규제된 유연화 전략, 비정규직에 대한 제한된 포섭 모델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의 한계는 명확하다. 저자도 지적하고 있는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모델이 주는 이득은 불분명하다.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의 지상 목표가 되면서 충성심을 강요받고 상호 경쟁심은 팽배해졌다. 사측은 생산성 향상과 노사관계의 안정화를 얻었고, 정규직들 역시 노사관계의 안정화를 이룰 수 있었고 노동조합의 현장 장악력을 지킬 수 있었다. 결국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비정규직 주체형성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구나 이러한 모델은 회사의 영업환경이 좋아 현재의 노사관계를 안정화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 노사불안을 감수하며 노동조건을 후퇴시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이득이라고 판단할 경우에만 유지 가능한 것이다.
조돈문은 타타대우의 사례를 노동조합이 추진해야 할 모범적 전략으로까지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저러한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정규직화와 1사 1조직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많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비정규직 주체형성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입장에 따르면 오히려 이는 부정적 측면이 많다고 봐야 앞뒤가 맞을 것이다.
타타대우의 가장 큰 한계는 결국 비정규직의 주체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가운데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통합은 진전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의 요구를 대리하여 교섭하여 회사와 타협하는 것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적 통합이 진전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공동의 요구를 가지고 공동의 노력으로 투쟁하는 집단적 경험없이 통합은 요원하다. 타타대우는 공동의 요구도 공동의 투쟁도 없었다.

비정규직 투쟁 승패와 조직력 변화의 원인

3부에서는 1998년 이후 26개의 비정규직 투쟁의 사례를 다룬다. 저자는 비정규직 투쟁이 가열차게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비정규직 조직화는 크게 진전되지 않았는가, 왜 많은 투쟁이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패배로 끝났는가를 분석한다.
저자는 우선 비정규직 투쟁이 정규직 투쟁에 비해 승리보다는 패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밝히고 이어 투쟁의 승리 자체가 매우 어려움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투쟁의 승리에는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가.
『선택』의 대답은 정규직 노조의 연대이다. 저자는 투쟁의 결과와 정규직의 연대의 정도에 따라 9개의 유형을 구분해보았을 때 <적극적 연대 - 승리>(기아차 광주공장, 한국산업인력공단, 금호타이어, 기아차 화성공장)와 <적대적 입장 – 패배>(한국통신, 캐리어, 현대중공업, 한국GM창원공장, 재능교육)의 군에 속하는 경우가 가장 많아서 양자가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규직 연대가 부재하거나 약했음에도 승리한 경우는 지역 사회단체(현대 하이스코, 울산건설플랜트), 상급단체의 적극적 연대(근로복지공단)가 정규직 연대를 대체했거나 노동시장이나 생산관계에서의 특정한 위치적 권력이 있었던 경우(화물연대) 등 대체적 요인이 작용했다. 반면 정규직 노조가 적극적으로 연대했음에도 비정규직 투쟁이 패배한 경우 (뉴코아, 이랜드) 자본의 비타협 의지, 계급대리전 성격, 불협화음과 전략적 혼선 등의 부차적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투쟁의 승패는 조직력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저자는 전자가 후자의 핵심적 설명변수라고 주장한다. 화물연대의 경우 투쟁의 부침과 함께 조직규모가 변하는 전형적 사례다. 반면 예외적 경우도 존재한다. 투쟁이 패배했거나 성과가 미흡했음에도 조직력이 강화된 유형인데 저자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2010년 11~12월 투쟁이다. 하지만 해당 논문이 투쟁 이후 조직의 분열과 침체 상황이 이어지기 전에 쓰였기 때문에 잘못 평가내린 것으로 보인다. 반면 투쟁에 성공했지만 조직력이 와해된 사례도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과 근로복지공단 투쟁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경우 모두 정규직 전환 쟁취로 기존 비정규직이 소멸하고 다른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거나 아니면 선별적 정규직 전환이 정규직 노조와의 적대적 관계와 비정규직 주체의 내적인 분열 속에 오히려 조직력 약화로 귀결된 경우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결국 투쟁의 승패와 조직력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정규직 노조와의 연대와 투쟁 주체의 내적인 통합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외부의 지원/연대와 내적인 단결이 중요하다는 상식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 투쟁 자체가 불리한 조건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정규직의 연대 파기, 투쟁 주체의 내적인 분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투쟁이 장기화되면 정규직과의 갈등의 여지가 증폭될 뿐 아니라 조직력이 하락하고 사측의 비타협성이 강화되는 가운데 불리한 정세를 역전하기 위한 강경투쟁전략과 더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투쟁을 마무리 하려는 양보타협 전략 사이의 선택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또한 상급조직이나 외부단체에 대한 연대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이러한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세력 간, 조직적 분열로 고착화될 수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는 투쟁 주체의 최우선 전략적 목표를 생존, 조직의 보전강화에 두어야 하고, 정규직의 현실적 조건을 인정하고 가능한 수준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추진해야 하며, 강경투쟁 전략과 양보타협 전략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투쟁 주체들이 철저하게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역량과 판단을 존중하여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처럼 현실주의적 분석과 태도, 장기적인 시야 등은 그 동안 한국의 비정규노동운동에서 부족했던 부분이다. 『선택』의 26개 투쟁 사례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의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는 측면도 많지만 현실적 판단과 장기적 시야, 전략적인 태도를 주문하는 부분에는 공감이 간다.

법제도 개선 전략의 방향

『선택』은 사업장 투쟁 뿐 아니라 비정규직 관련 법의 제개정 방향에 있어서도 각론적 시야가 아니라 전체적인 시야에서 접근하고 외적 조건과 주체적 역량을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함을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선적 입법과제로, 첫째, 비정규직 사용의 예외적 허용 원칙 수립, 둘째,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셋째, 초기업 수준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실현, 넷째, 고용보험제도 확충을 제시한다. 또한 이를 전제로 하여 간접고용에 대한 추가적 규제장치로 첫째, 노조법의 사용자 개념 확대를 통한 노동3권 보장, 둘째, 도급과 파견의 엄격한 판정기준 법제화와 불법파견에 대한 고용의제, 그리고 파견업체에 대한 징벌적 제재 부과, 셋째, 파견노동의 허용 기준을 엄격화하되 노동조합과의 사전 합의의무화와 고용의제 부과 등 파견 노동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과 파견노동 철폐라는 민주노총의 주요 요구안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우선 기간제 노동에 국한된 규제강화가 간접고용 확대라는 풍선효과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또한 파견제 철폐 구호는 구호로서는 훌륭하고 파견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발했지만 구체적 법제도화 단계에서는 현실적인 힘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의 역량을 볼 때 파견법 폐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투쟁구호와 입법과제를 분리하고 입법적 측면에서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모든 비정규직에 대한 사용사유 제한의 도입과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의 강화가 새로운 전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도입,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고용보험 확충 등의 입법 과제에 대해서는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대략 동의되는 내용이다. 필자의 주장 중 논란이 되는 것은 파견법 철폐를 유보하고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이다.
일단 단기적으로 파견법 철폐가 어려운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파견법 철폐를 가능한 조건을 만들고 단기적인 개선을 이뤄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파견제도 자체의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사실상 파견제도의 철폐가 아니라 파견제도의 합리화, 영속화를 의미할 수 있다. 사실 민주노총은 파견법 철폐를 공식적 구호로 내걸어 왔지만 현실에서는 파견법 일부 개정 혹은 파견법 개악 저지 운동을 해 왔을 뿐이다. 그 결과 간접고용 전반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파견법 상의 고용의제냐 고용의무냐, 불법파견의 기준이 무엇이냐 등에 대한 논란만 지속되어 왔다.
오히려 파견법의 프레임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저자도 제기하듯 파견은 간접고용의 하나의 형태일 뿐이다. 도급, 용역, 호출 등 다양한 형태의 간접고용 중 파견(합법적 파견)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 이러한 측면에서 간접고용 전반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입법과제를 우선시 할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저자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노조법의 사용자 개념 확대를 통한 노동3권 보장일 것이다.

노동계급형성의 미스매치와 비정규직 주체형성론

『선택』의 미덕은 비정규직 투쟁의 승패와 조직 강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 실현에 대해 당위적인 주장만이 아니라 현실적 조건을 탐색하고 그 결과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 해법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비정규센터 공동대표로서 활동하면서 현실의 운동과 호흡하려 한 산물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주장의 일부분은 경험이나 일부 설문조사의 지나친 일반화에 근거한 부분이 있고, 현실의 실행가능성에 사로잡혀 장기적 방향을 놓치는 부분도 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선택』의 가장 큰 문제는 계급형성을 비정규직의 주체형성으로 대체하고 이를 다시 비정규직의 조직 확대로 등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연대와 계급통합의 가능성을 물질적 조건에 대한 분석에서 찾지 못하고 의식적 노력에서 찾다보니 결국 자본에 대한 공동의 집단적 투쟁, 계급투쟁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상호 양보와 배려에서 해법을 찾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타타대우와 같은 사례가 양적인 비정규직의 주체 확대에도 기여하지 못했음에도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조돈문이 오랫동안 고수해 온 계급구조와 계급의식에 대한 분석틀의 한계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조돈문은 “비정규직 주체형성”이 노동계급형성, 노동계급운동의 난점을 극복하는 해법임을 주장해왔다. 그는 전작인 『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사회학』(이하 『사회학』)에서 노동계급형성, 노동계급운동의 난점을 “노동계급형성의 미스매치”로 진단한바 있다.
여기서 계급형성이라는 개념은 계급구조에 따라 정의된 어떤 계급의 성원들이 하나의 집합적 행위자로 형성되는 과정 또는 결과를 의미한다. 이러한 계급형성은 계급구조에 의하여 설정된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다. 계급 형성은 ‘조직적 형성’과 ‘이념적 형성’으로 이루어진다. 조직적 형성은 노동자가 하나의 조직으로 뭉쳐 결속력을 갖는 것이고, 이념적 형성은 그렇게 모인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얼마나 발전돼 있느냐, 한 데 모인 노동자들이 어떠한 계급적 목표를 지향하느냐 하는 문제다.
조돈문은 이러한 틀을 가지고 한국사회 노동계급의 상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조직적 형성은 정규직이 앞서지만 이념적 형성은 비정규직이 앞서는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미스매치’라고 규정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계급형성을 주도해 온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이 97년 경제위기 이후 급격히 보수화되면서 계급의식이 오히려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에 비해 뒤처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정규직 노조들이 조직력을 갖고 발언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최소한 계급 내적으로는 도덕적 지도력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조돈문의 계급이론과 연구방법의 문제

조돈문은 계급의 객관적 성격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를 포착하기 위한 계급구조라는 개념과 분석틀은 계급구조라기 보다는 계층분류에 가깝다. 착취는 재화의 소유/비소유 관계 또는 소유정도의 차이로 환원된다. 이러한 계급이론에 따르면 기술재를 소유한 전문가가 기술재를 소유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 사이에는 착취관계가 성립한다. 착취의 개념이 모호해질 뿐 아니라 사실상 사라진다. 계급관계에서 “해소 불가능한 적대”가 사라지고 분배의 상대적 차이만 남게 된다. 조돈문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 역시 이러한 틀로 접근되고 있다. 이들 사이의 불평등한 분배가 문제가 되고 이것이 계급균열로 포착된다.
그 동안 조돈문의 주요 관심은 계급형성, 특히 계급의식이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노동계급의 보수화의 원인을 계급구성의 변화나 물적인 조건의 개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에서는 계급의식을 설문조사의 문항에 대한 응답으로 계량적으로 파악한다. 그러다보니 조사의 객관성이 떨어 질 뿐 아니라 계급의식의 다양한 질적 측면을 포착하는데도 실패한다.
조돈문은 2008년 발표한 논문에서 ‘노동계급형성의 미스매치’를 실증하고 있다. 이 연구는 2003년 6-7월 실시된 “사회구조의 변화와 일자리”조사로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다. “파업 중 기업이 다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기업체란 노동자와 소비자를 희생해서 돈을 번다”, “정부가 노사관계에서 기업의 편만을 든다”에 대한 찬반여부를 점수화하여 계급적대의식을 계량화하고, “정리해고를 합법화하는 것”,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것”, “외국자본이 국내기업을 인수하는 것”에 대한 찬반여부를 점수화하여 반신자유주의 의식을 계량화한다. 이런 방식에 따르면 모든 응답자가 찬성을 하면 의식수치가 1, 모두가 반대를 하면 0이 나오게 된다. 연구 결과 정규직의 계급적대의식은 0.2444, 비정규직은 0.2958, 반신자유주의의식은 정규직이 0.1954, 비정규직이 0.3062로 계급적대의식은 큰 차이가 없으나 반신자유주의 의식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고 이를 종합할 때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계급의식이 앞서 있다고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민영화 반대는 정규직이 0.31, 비정규직은 0.19인데 반해, 해외매각반대는 정규직이 0.35, 비정규직이 0.58이라는 것이다. 결국 두 질문의 결과가 엇갈리는데 해외매각반대에 반대한 비정규직의 비율이 매우 높아 비정규직의 반신자유주의 의식이 앞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세부결과를 보면 계급의식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매우 달라질 수 있음이 드러난다. 더구나 전체 유효 응답수는 788개에 불과하여 이 연구결과만 가지고 비정규직이 계급의식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노동계급형성의 미스매치’라는 현실진단과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계급의식이 앞서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통해 계급을 형성해야 한다는 ‘비정규직 주체형성’론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계급을 새롭게 주도해 나갔던 집단은 단순히 고용형태만의 요인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반의 경우 철도, 항만, 제조업, 건설 등 당대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산업의 분야에서 형성된 미숙련 노동자들이 새롭게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나섰다. 이들은 기존의 숙련직 직공들의 세계, 그들만의 노동조합에서 배제된 자들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비정규직과 유사하지만 그들이 속한 산업이 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활기찬 산업 부문이었다는 점에서는 또 다르다. 이러한 문제는 수많은 변수들이 개입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규명되기 어려운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역사를 구성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구성되는’ 존재이다.
오늘날 노동계급형성을 위해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주체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계급형성은 계급분류표에 있는 특정 집단의 노동자, 의식이 높은 어떤 집단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다. 분할되고 서로 경쟁하는 노동자 대중들이 집단적 투쟁을 통해서 공통의 이해와 요구를 깨닫고 단결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 시대 계급형성을 위해 시급한 과제는 비정규직의 조직화일 뿐만 아니라 자본의 위기극복 전략과 정부의 위기관리 정책에 대한 정치사회적인 투쟁, 노동조건의 개선과 노동관련법 제도의 개선을 위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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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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