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7-8.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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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폭력에 관한 한 보고서- 울산 효성사태를 통해 본 용역경비업체의 실태 -

정종권 | 정책기획국장, 전국민중연대(준) 정책국장
<b>실체가 드러난 노조 탄압 책동</b>

지난 5월 25일 울산 효성공장은 무쟁의 13년만에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하였다. 정리해고와 고용조정, 생산합리화, 소수의 정규직/ 대다수의 비정규직화라는 자본의 구조조정이 지속되고 확산되는 현실에서, 더 이상 벼랑끝으로 내몰릴 수 없다는 조합원들의 의지가 13년 무쟁의 역사를 끝내고 전면파업에 돌입하게 만든 것이다. 구조조정은 효성만의 특수한 경험도 예외적인 경우도 아니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의 현실이며, 분노와 투쟁의 대상이다. 효성투쟁은 민주노총 6월 투쟁의 핵심으로 떠올랐으며, 울산지역의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확산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효성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울산 효성투쟁의 과정에서 또하나의 중요한 측면이 드러났다. 노사분규의 현장마다 사측에게 고용되어 나타났던 용역경비업체의 실체가, 일부이지만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새한, 한통계약직, 이랜드, 건설운송, 대우차 노조 등의 투쟁과정에서도 사측에 의해 고용된 용역경비업체와 충돌하기로 하고, 테러와 폭행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용역경비업체의 규모가 100여명을 전후한 수준이거나 또는 용역경비업체와의 충돌보다는 공권력과의 충돌이 1차적이고, 용역경비업체의 물리력은 공권력을 보조해주는 성격이 강했었다. 용역경비업체 또한 정면충돌보다는 노조 핵심활동가들에 대한 급습과 테러 등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경우, 용역경비업체 그리고 이들과 회사, 공권력과의 관계가 은폐되거나 부차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효성의 경우 용역경비업체에서 동원한 규모가 7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동원이었으며, 노조에 대한 폭력과 탄압도 음성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파업대오와 정면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대담함을 보인 것이다. 이들이 노조의 힘에 의해 물리적으로 격퇴를 당하는 과정에서, 용역경비업체에서 동원된 폭력배, 노숙자, 불법제조된 폭발물과 폭력도구 등이 확인되면서 이들의 실체가 일부나마 드러난 것이다. 또한 회사와 용역경비업체, 용역경비업체와 용역경비업체간의 갈등과 경쟁, 부패한 먹이사슬 구조의 모순이 표출되면서 내부고발자가 발생하고,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도 한 것이다.


<b>용역경비업체의 동원방식과 돈</b>

효성 폭력사태에 동원된 용역경비업체의 수는 주요 업체만 10여개를 넘는다. 각각의 업체는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100여명을 넘는 인원을 동원하였다. 이들이 동원한 700여명 중에서 최소 200여명은 서울, 대구지역의 조직폭력배 출신이었다고 한다. 업체 중에서 대부분은 경비업 허가를 받은 업체들이며, 서울역 노숙자를 동원하여 쇠파이프와 삼단봉, 고춧가루탄을 쥐어주고 구사대 역할을 맡겼던 업체는 철거전문업체였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회사와 정식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다. 노사분규의 경우, 충돌이 생기면서 법적이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총대를 메는 몇몇 업체만이 법적으로 용역계약을 맺고 나머지는 이들 업체와 하청, 도급관계로 참여하는 형식을 띠게 된다. 원청과 하청관계는 일반 대기업과 중소기업처럼 고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영업력과 로비능력에 의해 언제든지 원청-하청관계가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현행법에서 경비업은 허가제로 운영된다. 허가제이기 때문에 이들 업체의 임원과 주요 간부들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이들 업체의 상근직원 규모는 수십명을 넘지 않는다. 대부분이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특정회사에 속해있지 않는 인력풀을 운용하고 있는데, 사안의 성격과 직종을 고려하여 이들 중에서 개별 업체들이 동원하는 것이다. 전문경비요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직폭력배나 이와 유사한 인력들도 이 틀에서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요인경호와 같은 신변보호, 현금과 같은 귀중물품의 운송경호의 경우에는 소규모의 전문인원이 담당할 수 있지만, 노사분규 현장에서 구사대의 역할은 대규모의 전문 경호요원이 담당할 수도 없으며, 담당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저비용으로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인력풀이 바로 조직폭력배나 이와 유사한 인력들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자격요건과 교육과정의 이수를 요구하며, 상대적으로 고비용이 드는 전문인력을 동원해야 할 경제적 필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 단적인 사례가 서울역의 노숙자를 일당 5만원으로 동원한 것이다. 이것은 극한적인 처지에 내몰린 노숙자의 조건을 악용하여,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강요하는 가장 반인간적인 행위이다. 효성사태에 직접 참여한 내부고발자의 말에 의하면, 노숙자의 경우 삶의 의미를 포기한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대부분이며 이들은 충돌을 피하려는 최소한의 방어본능도 없는 듯이 보였다고 한다. 이들에게 극단적인 폭력수단을 쥐어주고, 앞에 서서 노동조합을 향해 적을 공격하듯이 공격명령을 내리는 자들, 이들이 바로 자본이다. 고용주인 자본이든, 경비업체의 자본이든.

이들의 동원방식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돈이다. 이번 효성사태에 동원된 용역인력의 경우 일당이 25만원에서 5만원 사이였다. 이것은 회사와 경비업체가 계약할 때 맺는 1인당 계약액이며, 경비업체와 개인이 맺는 일당은 별개다. 숙식비용과 활동비용 등 경상비용은 회사에 별도로 지급한다. 회사와 15만원에 계약하고 동원된 개인에게는 5만원을 지급할 경우, 100명을 10일 동안 동원하기로 계약했다면 용역경비업체에게 1억의 순이익이 남는다. 여기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경상비용 등을 포함하면 대략 그 2~ 3배인 2억~ 3억 정도의 이익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주변의 폭력배나 미성년자, 노숙자 등의 인력을 동원하여 10일동안 수억의 이익을 남기는 장사, 이런 장사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없어질 수는 없다.


<b>폭력의 양상 : 준(準)공권력으로서의 성격</b>

이번 효성사태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특히 용역경비업체가 사용한 폭력수단 때문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린치와 테러, 집단폭행들이 행해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소수의 노조활동가에 대해 다수의 물리력을 통한 폭력이었다. 그러나 효성의 경우에는 폭력수단의 종류와 강도, 다양함에서 준(準)군사집단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작년 구미의 (주)새한에서도, 노동자들에게 용역깡패들이 가스총과 전기충격기를 사용하여 사회적 충격을 준 적이 있었다. 새한의 경우에도 폭력의 정도와 극악함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지만, 가스총과 전기충격기는 등록한 경비업체가 합법적으로 소지할 수 있는 경호물품이었다. 그러나 효성의 경우에는 경비업체라고 하더라도 소유 자체가 불법이며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고무충격총과 사제폭탄까지 등장한 것이다.

고무충격총의 경우는 용역깡패와의 충돌과정에서 노조가 압수했던 총기만이 아니라 총탄도 발견되었다. 게다가, 이 총탄이 경찰에 지급된 고무충격총의 총탄과 동일하다는 진술을 일선경찰서 형사의 입을 통해 확인까지 한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 김대중 정권이 폭력시위가 격화될 것에 대비한다는 핑계로, 고무충격총을 일선 경찰에게 지급하기까지의 여론조작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등장하지도 않았고, 경찰의 자작극이라고 추측되기도 하는 인터넷상의 신종화염병 제조방법을 둘러싸고, 온갖 호들갑을 떨면서 민중진영을 위협하였던 것이 바로 몇 달 전의 일이다. 사회적 여론조작과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통해 정권은 이제 시위진압의 합법적 수단으로 고무충격총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신종화염병은 등장하지 않았고, 고무충격총은 등장했다. 사제폭탄은 더욱 충격적이다. 특히 효성 회사측에서 사제폭탄 제작을 요청하고, 재료까지 제공하였다는 사실은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권력 차원에서는 고무충격총과 같은 살상용 무기를 시위진압 수단으로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기업주와 자본은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사제폭탄 같은 군사용 무기를 사용하려 시도한 것이다. 이미 철거현장 등 빈민투쟁 현장에서는 용역집단의 폭력정도가 효성사태의 수준을 능가하고 있었다.
철거현장의 경우에는 소수 빈민을 대상으로 다수의 용역집단과 경찰이 일방적으로 테러와 집단폭행, 협박을 가하는 식이었으며 이에 대한 빈민들의 저항이 극한적이고 전투적인 투쟁으로 발전하는 양상이었다. 철거현장과는 달리, 효성의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다수의 조합원 대오를 대상으로, 비슷한 규모의 용역집단이 살상용으로 사용되는 고무총과 사제폭탄을 사용하려 한 것이다. 전시의 적을 대하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철거와 효성의 경우가 다른 점이다.

경비업체의 기본임무는 신변보호, 운송경호, 시설경비의 세가지를 핵심으로 한다. 노사분규에 개입할 때 경비업체의 기본 임무는 시설보호이다. 노동자들의 불법파업과 불법적인 공장점거 등으로 회사 시설을 보호한다는 게 명분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설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경비업체가 구사대의 역할로, 상당한 물리력과 폭력수단을 갖추고 노동조합활동을 탄압하는 준(準)공권력으로 기능한다. 한마디로 자본의 '용병'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고용되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집단으로서의 성격이 아니라, 기업·자본·정권의 지배를 물리적으로 뒷받침하고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용병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집단과 인력들이 일시적인 계약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때 이것은 1950년대의 임화수와 이정재 같은 정치깡패, 1980년대 용팔이와 호국청년연합회(호청련)와 같은 정치폭력집단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미 현재의 용역경비업체와 그 인력들은 노사분규 현장에서 시설보호와 같은 '단순'업무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파괴, 파업과 노동자투쟁의 무력화라는 대단히 '정치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b>산업으로서의 용역경비업</b>

현재 서울지역에만 등록된 용역경비업체는 약 700여개, 미등록 업체는 200~300개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2,000여개로 추정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며 1990년대 후반에 경비업 시장의 규모가 질적으로 확장되었다. 용역경비업체의 주된 업무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신변보호, 운송경호, 시설경비이지만 수익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노사분규에 개입하여 얻는 수익이 절대적이다. 대략 70% 정도를 노사문제 수익이 차지한다. 연예인 신변보호나 행사경호같은 경우, 소수 업체가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2,000여개의 업체가 서로 경쟁하는 주 영역이 노사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아예 노사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용역경비업체가 생겨나고 있으며, 회사 내에 노사문제 파트를 특화시켜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회사들도 적지 않다. 건설운송노조 수원유진분회 집단폭행과 관련된 용역경비업체가 바로 <백두경호>라는 회사인데, 이 회사는 노사전담 요원만 150여명 정도를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효성사태처럼 하나의 회사가 단독으로 용역인력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원청업체중심으로 하청, 도급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원청업체가 수익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서, 서로 원청 계약을 따내기 위한 노력이 이들 사이에서도 치열하다.
노사문제에 직면한 회사에서 이들과 계약을 맺을 때, 가장 핵심적으로 보는 것 중의 하나가 이들 용역경비업체의 경력이다. 그 경력이란, '과거에 다른 노사분규 현장에 개입하여 얼마나 신속하고 확실하게 그리고 법적 소송과 같은 뒷잡음 없이 끝냈는가?' 라는 것이다. 전쟁에서 용병집단이 평가받는 측면들과 유사한 측면들이 이들의 평가지점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사후에 폭력사태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책임과 구속까지 각오하고 있는 사람까지 미리 물색해놓기도 한다. 폭력조직에서 보스 대신 책임을 지고 조직원이 구속되어 처벌받는 경우와 유사한 것이다.

용역경비업체 종사자의 경우, 대개가 군 특수부대나 유사 업종에서 일했던 사람이거나 유흥업소 및 폭력조직과 관련을 맺었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경우 단순화하자면 서로 상이한 경험과 전력이지만, 폭력을 전문으로 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는 유형의 인물군이다. 용역경비업체의 홈페이지를 보면 이들이 연상시키는 것은 헐리우드영화에 자주 나오는 특수요원, 정보요원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현재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아무리 이름을 바꾸고 경제첩보활동을 중심으로 하겠다고 공언하더라도, 반정부세력을 무력화하고 탄압하는 공안기관으로서의 본질적 성격을 벗지 못하듯이, 한국의 대다수 용역경비업체는 효성사태에서 보여주듯이 해방 이후 서북청년단의 극우 폭력집단과 유사한 것이 현재 이들의 자화상이다. 다만 이들과 차이가 있는 것은 용역경비업체의 경우 노골적인 정치성을 배제하고 이윤추구의 기업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이다.


<b>효성의 사례가 주는 교훈</b>

민주노조운동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과 탄압이 발생하는 유형은 크게 네가지로 나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같이, 용역경비업체의 역량으로 대항 물리력을 조직하기 힘든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공권력을 동원한 탄압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렇지만 회사측의 관리직과 일부 어용노동자들을 동원하여 노-노 갈등과 충돌이 발생하는 유형(이에는 최근 캐리어사내하청과 같이 관리직과 어용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의 노동자집단 내부의 분할을 악용하여 노-노 갈등을 유도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효성과 같이 외부의 용역경비업체를 용병 구사대로 동원하여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유형, 정면 충돌보다는 1989년 현대중공업 식칼테러, 건설운동노조 테러 같이 노조 핵심활동가들에 대한 기습과 테러를 통해 탄압을 가하는 유형으로 나뉠 수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세번째 유형이 바로 효성 사례인데 1980년대에는 거의 보이지 않다가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유형이다. 이것은 노동자의 권리의식에 대한 자각과 투쟁이 몇몇 대공장만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등 대부분의 노동현장으로 확산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몇몇 대공장이나 전투적인 민주노조 사업장, 악질 자본가들의 경우에 제한적으로 등장하던 용병 구사대가 이제는 전(全)산업의 영역으로 전면화되고 있다. 이에 맞추어 용역집단도 수공업적이고 일시적인 양상에서 기업화·체계화·대규모화되고 있다. 폭력과 탄압의 외형도 다양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효성의 경우 극단적인 충돌로 사회적 이슈로 부각한 경우이지만,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이들의 탄압과 물리력은 노동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이번 사태를 통해 자각해야 하는 것은 효성과 같은 경우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사실, 더 많은 사례들이 은폐되거나 사회적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보자면, 용병 구사대의 임무가 충실하게 수행되어 노사분규를 신속하고 확실하게 잡음이 없이 끝냈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 입장에서는 노조의 투쟁이 자본과 용병 구사대에 의해 무력화되고 제압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효성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정당한 물리력을 통해 이들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호소와 여론을 통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의 물리력이라는 것은 자본과 같이 돈으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다. 물리력은 노조 조직력의 한 징표일 뿐이며, 조직력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 연대성의 표현인 것이다.


<b>공권력과의 관계 : 악어와 악어새</b>

일반적으로 우리는 용역집단과 구사대의 탄압을 방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검·경찰의 공권력이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형식적이지만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발전 척도는 공권력이 얼마나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느냐가 그 한 징표이다. 적어도 노사갈등의 현장에서 공권력을 중립을 유지한 적은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1980년대의 군사독재시절이나 2001년의 소위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오히려 노조탄압의 강도와 친자본적 성격을 더욱 노골화하고 확대심화시켜 온 것이 우리 노동현장의 진실이다.
4월 10일 부평 대우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공권력의 야수와 같은 폭력은 이미 예고되었던 것이다. 각종 집회 시위에 대한 제한과 규제조치, 구속 등의 법적 제재가 일상화되어 있으며, 각종 시위로 인한 구속노동자의 수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600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사업자의 수는 단 8명(올해는 1명)에 불과한 것은 상징적 사례이다.

이번 효성사태에서도 공권력의 친자본적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미 용병 구사대와 탄압활동을 지휘하는 과정에 경찰이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나, 경찰만이 소유할 수 있는 시위진압용 방패를 용역경비들이 집단적으로 구입하여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방패의 경우, 경비업체나 일반 민간인이 구입하거나 접근할 수도 없는 물품들이다. 이것은 중간에 경찰이 매개하지 않으면 결코 구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암시장에서도 가스총이나 사제폭탄의 원료, 볼펜독침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하며, 그래서 방패도 암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두개도 아닌 수십여개의 방패를 용역경비들이 사용하였다는 것은 경찰의 개입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등장하지도 않은 신종화염병을 가지고 온 나라를 들쑤셔놓았던 언론과 정권이, 노동현장에서 사용된 군사용 물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않고 있다. 심지어 회사측의 말을 인용하여 노동조합에서 자작극을 벌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공생관계는 5월 3차례의 충돌을 통해서도 노조를 제압하지 못한 용역경비업체의 역할을 대신해, 6월 5일 경찰병력을 신속하게 투입하여 공장을 장악하고 6월 12일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여 고공농성 중이던 노조 지도부를 체포한 것을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현행 경비업에 의하면 용역경비업체는 정기적으로 한국경호협회와 지역관할 경찰서에 의해 검열 점검을 받아야 한다. 검열의 내용은 경비인원 투입의 적법성, 배치신고서의 확인, 경비교육의 이행 여부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규제는 이미 규제능력을 상실한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첫째, 경비인력을 투입하고 그 명단을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경우는 그 기간이 2주일 이상일 때이다. 그러나 노사분규에 투입되는 용역집단들은 특정한 소시기에 대규모 인원을 신속하게 투입하여 노조를 제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주일 이상 장기배치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장기배치를 할 경우에는 합법적인 소수의 인력을 배치한다. 그러나 충돌이 벌어지는 몇차례의 시점에서는 전문경비인력이 투입되었는지 여부와 그 적법성을 확인할 수 없다.

둘째, 이번 효성 사태에서도 나타났듯이 경비업에서 금지하고 있는 만18세 이하의 인력을 동원하였을 때, 그리고 불법적인 행위를 하였을 때 현행 경비법에서는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처벌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처벌조항이 없는 법률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더욱이 용역경비업의 경우, 소수의 인원으로 쉽게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고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경우 회사를 폐업하고 새로운 용역경비업체를 설립하기도 하는 것이다.


<b>적나라한 폭로와 연대투쟁을 통한 정공법</b>

용병 구사대의 활성화는 노동조합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물리력으로 이들 구사대를 압도적으로 제압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용병 구사대의 존립근거는 노조투쟁의 무력화에 있기 때문에 이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는 효성과 대우차의 경우처럼 공권력이 직접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들이 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면 공권력은 중립의 가면을 쓰고, 용병의 탄압을 방조·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구조화되면서 노동현장의 투쟁이 개별 기업주와 용병 또는 관리직 구사대와의 대립으로 국한되고, 사회적 투쟁으로 발전·확장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민중진영과 노동운동은 세가지의 대응방향으로 이 상황을 돌파해야만 한다.

첫째는 용병 구사대의 존재가 민주주의의 기본을 파괴하는 반민주적이고 반인간적인 것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폭로해야 한다. 효성의 경우, 군사용 폭력도구의 등장과 같이 그 성격을 적나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계기와 사례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정치적 폭로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생존권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서 거액의 돈을 뿌려서 기생적인 폭력집단을 동원하는 반인간적 현실을 고발해야 한다. 노동자에게는 몇천원의 임금 인상조차 거부하는 자들이, 수억의 돈을 폭력집단에게 지출하는 이 모순과 역설을 고발해야 한다.

둘째 용병의 물리력을 제압하거나 최소한 노조투쟁의 대오를 방어할 수 있는 물리력을 형성해야 한다. 이것은 생산직만이 아니라 일반 사무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물리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와 대응능력이 없는 여론전이라는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물론 물리적 압박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느냐, 방어적으로 사용하느냐의 전술운용은 정세와 상황에 맞추어야 하지만, 이는 그러한 전술운용 능력이 갖추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셋째는 연대투쟁을 통한 돌파일 수밖에 없다. 과거 3자 개입금지라는 독소조항에 의해 수많은 민주노조와 활동가들이 탄압당할 때, 그 돌파구는 악법에 의한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대투쟁의 힘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나의 단위사업장이 갖는 물리력과 대응력으로는 정권·자본·용역집단의 입체화된 공격과 물리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역과 업종의 틀을 기본으로 하는 연대의 물리력을 통해 넘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질적 차이다. 시민운동은 언론과 여론을 통해 자신의 물리력을 행사하지만,(그래서 언론과 여론을 타지 않는 시민운동은 쉽게 무력화되지만) 노동운동은 현장의 조합원과 기업의 틀을 뛰어넘는 노동자 전체의 단결에 의해 물리력을 행사한다.

이것이 무너질 때 노동운동은 사회적 힘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원칙과 기본의 정신이 필요한 때이다. 이것이 효성사태의 교훈이다. 우회가 아닌 원칙과 기본에 근거한 정공법으로 현 상황을 돌파해야만 한다.
주제어
노동
태그
WTO DDA 도하개발의제